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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난 섬 海南島 | 海南岛 | Hainan Island | ||
대륙 | 아시아 유라시아 | |
위치 | 동아시아[1] | |
면적 | 33,210km² | |
시간대 | UTC + 8 | |
국가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
민족 분포 | 한족: 82.6%, 리족: 15.84% 묘족: 0.82%, 좡족: 0.67% | |
언어 | 표준 중국어(주류), 하이난어, 월어, 객가어 등 | |
인구 | 10,081,232명(2020년) | |
최대 도시 | 하이커우시 |
[clearfix]
1. 개요
<colbgcolor=#dddddd,#222>언어별 명칭 | |
영어 | Hainan |
표준중국어 | [ruby(海南岛, ruby=Hǎinándǎo)] |
민남어 | [ruby(海南岛, ruby=Hái-lâm-tó)] |
월어 | [ruby(海南岛, ruby=hoi²naam⁴dou²)] |
한국어 | 하이난 섬, 해남도 |
행정구역 상으로는 이 섬 전체와 남중국해의 분쟁지역들을 포함하는 하이난성이다. 서쪽 바다 건너편에 베트남이 위치해 있으며 기후조차 북부 및 중부 베트남하고 비슷하다. 정확히는 섬의 중심지 하이커우는 하노이, 섬 남부의 싼야는 다낭시와 기후가 비슷한 편이다.
약칭은 경(琼, Qióng, 정체자로는 瓊). 과거 이 지역을 경애(瓊崖), 경주(瓊州)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다.
하이난과 레이저우 반도는 모두 제주도나 하와이 같은 분출형 화산 분화로 생긴 지역이다.
2. 지리
섬의 면적은 33,210km²로 경상도(32,289km²)보다 조금 크며 타이완섬(35,808km²)보다는 약간 작다. 이름의 유래는 그냥 이름 그대로다. 바다(海)의 남쪽(南)이다.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중화민국(대만) 정부를 부정하고 타이완섬을 자기네 영토라 주장하므로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타이완 섬이 가장 큰 섬이고 하이난 섬은 두 번째로 큰 섬이라고 한다.[2]
섬 최고봉은 우즈산(五指山, Wuzhi Mountain)이고 1,840m이다.
3. 기후
섬의 남부는 중국 대륙에서 얼마 안 되는 열대기후, 정확하게는 열대 몬순 기후에 속한다.북부 하이커우는 1월 평균기온이 17도, 남부 싼야는 19도로 겨울이 없고 1년 내내 덥고 습해서 북부 및 중부 베트남과 비슷한 기후이다.[3]
기후가 열대기후, 그것도 열대 몬순 기후인 만큼 태풍도 자주 상륙한다. 같은 열대이지만 적도 근처의 적도 무풍대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는 태풍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어서 태풍이 없다.
4. 인구
인구는 1,000만 명 정도로 인구밀도는 상당하지만 타이완 섬보다는 낮은 편이다. 섬 인구의 80%가 한족이고, 다음이 태국인의 다수인 타이족과 연관 있는 이 섬의 원주민인 리(黎)족으로 15% 정도로,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섬 전체 면적의 절반을 넘는다.5. 언어
리어와 민어를 쓰는데[4] 하이난어라고도 한다. 대만어라 불리는 민남어와 같은 민어 계열이지만 푸젠성 및 대만 등지의 다른 민어 방언들과 전혀 대화가 안될 정도로 차이가 심하다. 사실 이 곳의 경우 섬의 특성 상 홀로 동떨어져 있어 민북어나 민남어 등 타 민어 계열과는 이질적이 되었고 그나마 광둥성 동부 차오저우 지역의 치우차우와 조금 가깝지만 이들과도 이질화되었다.또한 여러가지 사료를 보았을 때 중세~근세까지는 리어나 민어 말고도 오스트로네시아어 계통의 언어도 일부 쓰였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 우선 이 지역의 소수민족인 리족은 태국인과 동계이다. 오스트로네시아어 사용 종족들은 근세 이후 남하해 전부 필리핀,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으로 이동한 듯 하다.
물론 통용어는 중국 본토 전 지역이 다 그렇듯 표준 중국어로 표준중국어가 모어는 아니더라도 다들 교육을 받았으면 할 수 있다.
6. 역사
이 곳은 한나라 시절부터 지금의 중국 북중부에 국한되었던 전통적 의미의 중원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에 변방 중의 변방, 오랑캐의 땅, 유배지 취급을 받았다. 기원전부터 백월의 일파였던 여족 내진 리족이 살던 땅이었고[5], 기원전 3세기 초에 남월에 의해 정복당하며 기원전 110년경까지는 본토의 광둥성 및 광시좡족자치구, 그리고 북부 베트남과 함께 남월의 영토였다.이후 남월이 한나라의 정복군주 한무제에 의해 멸망하면서 기원전 110년 한나라의 군현 주애군(珠崖郡)으로 편입되어 중국사의 범위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무제 정복 당시의 인력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한나라는 한원제 초원(初元) 3년(기원전 46년)에 주애군을 폐하고 이곳을 포기하였다.
이러다가 삼국시대에 다시 손권이 이곳으로 제갈직과 위온을 보내기도 했다. 육손이 반대했지만 강행했는데 득보단 실이 컸다.[6] 어쨌거나 손권은 적오 5년(242년)에 지금의 광둥성 레이저우(雷州) 반도에 주애군을 복구하고, 하이난섬 북쪽에 다시 진출해 그곳들을 다스렸으며 산하에 원래 합포군의 서문현을 관할하게 했다. 이 당시 주애군에는 몇 개의 현이 운영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오나라가 주애에 섭우와 육개 등을 보냈을 때 현재의 하이커우시에 있었던 주애현을 다시 복구하여 주애군을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하이난섬에 중국 왕조가 진출했지만 오나라의 지배는 느슨했고, 진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킨 후 진나라는 다시 주애군을 포기하고 합포군에 병합시켰다. 이후 남조 송문제 8년(431년)에 주애군을 복권하여 서문현을 다스렸으나 곧 폐군하기도 했다.
607년, 수나라는 다시금 옛 주애군에 있던 애주를 주애군으로 고치면서 하이난에 다시 행정구역을 세웠다. 당나라는 주애군을 애주로 바꾸었으며 송나라는 애주를 경주(瓊州)로 바꾸고 애주는 하이난 섬 남부인 지금의 싼야시 서쪽 애주 고성으로 옮기면서 하이난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했다. 이후로는 주애(珠崖)나 경애(瓊崖)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유배지로서 소동파가 이 곳으로 유배 오기도 하였다. 하이난이 좀 더 중국의 일부로 확실히 받아들여진 건 약간 더 뒤인 몽골인들의 원나라 때부터였고 명나라, 청나라를 지나며 확실히 중국의 일부로 자리잡게 되었다.
타이완섬이 중국사의 범주에서 사실상 벗어나 있다가 청나라 강희제 대에서야 확보되어 경영된 거와는 달리[7] 하이난은 한나라 시대부터 비록 직접지배는 못 받았을지언정 확실히 중국의 일부로 포섭되어 양광지방의 부속도서 취급을 받았으며[8], 중원이나 연경, 강남 등과 한참 먼 거리 덕에 유배지로 각광을 받았다. 어느 정도냐면 하이난 유배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나마 나올 희망이나 있던 본토 유배와 달리 하이난은 살아서 다신 못 나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극악으로 먼 거리와 극악으로 덥고 습하고 태풍이 자주 오는 기후, 그리고 배가 아니면 왕래가 불가능한 환경 때문. 이러한 극악의 고립된 환경은 파촉 지방 정도가 비견할 만 하다.[9]
근대에 들어선 청일전쟁으로 대만을 확보한 일본 제국이 추가로 삼국간섭으로 랴오둥 반도 대신 하이난을 요구하려다가 포기하였다. 이유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이다. 비행기가 없던 과거 일본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가장 일본 본토에서 가까운 편인 가고시마에서도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 1911년 신해혁명 이후 광동군벌 등본은의 지배를 받았으나 1926년에 국민혁명군 4군 군장 리지선이 원정하여 중국국민당의 세력권에 들어갔고 국민정부는 이 지역을 하이난 특별행정구라는 행정구역으로 통치했다.
그러다가 중일전쟁에서 하이난을 공격한 일본군은 중국 국부군을 대패시키고 하이난을 점령한다. 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에는 하이난에서 근무했던 일본군 학도병의 구술이 수록되어있는데, 이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은 섬 중앙부에 잔존한 저항군을 완전히 소탕하지 못하고 산발적인 교전과 대치가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하이난의 중국 저항군은 지역 독자적인 유격대와 공산당 유격대로 나뉘었고 국민당 정부의 영향력은 미미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군 해군 예비장교들 사이에서는 이오지마와 함께 미군 상륙의 우려가 높은 지역으로 여겨져 기피되었다고 하는데, 결국 옥음방송으로 전쟁이 종결되면서 하이난에서의 대규모 전투는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일본의 항복 선언 이후 중국 국민당 군대가 하이난을 접수했고, 일본군 부대들은 국민당의 관리 하에 있다가 1946년 3월에 일본으로 귀국했다.
국공내전에서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물러난 이후에는 바이충시 휘하 18만명 대군이 넘어가, 중국본토에서 결판이 난 지 오래인 1950년까지도 중화민국이 통치했다. 대만섬도 그렇지만 당시 인민해방군의 빈약한 해공군 전력으로 바다 건너의 섬을 공략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민해방군이 그해 5월 1일에 민간어선 수백척을 동원하여 하이난섬에 상륙하여 공세를 벌이고 중앙정부로부터 아예 보급하달이 끊겨버린[10] 18만대군은 효율적으로 하이난 섬을 지키기 어려웠다. 또한 지휘관 바이충시도 장제스의 권유로 이미 비행기를 타고 대만으로 도망쳤으며 하이커우와 충저우 사이의 좁은 해협을 수십만명의 대군을 밀어넣은 인민해방군에 의해 중과부적 으로 밀려 결국 중화민국군은 철수했다.[11]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치에 들어간 이후로 광둥성에 속해 있다가 1988년 하이난성이라는 별개의 성으로 승격되었다. 한때 전라도에 속해 있다가 독립한 제주특별자치도와 유사한 케이스.
1980년 중국의 개방 정책과 함께 광둥성 선전시와 산터우시, 주하이시, 중산시, 포산시, 산웨이시, 푸젠성 샤먼시, 푸저우시 등과 함께 경제특구로 섬 전체가 지정되면서, 1990년대까지는 특별행정구가 아닌 국내 경제특구임에도 중국 인민은 출입증이 필요했다.
2010년대 이후 그간 듣보잡으로 외면하던 한국인들도 하이난 관광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있기 시작했으며 원래 많이 찾아오던 러시아인 관광객들의 수도 항공편 증가로 더 늘어났다. 거기에 2013년 이후 하이커우가, 시진핑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일대일로 정책으로 인해, 해상 실크로드가 개발되어 중요도가 오르고 있는 추세이다.
후베이성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서 티베트, 내몽골과 함께 그나마 조용한 몇 안되는 곳인데 바다를 건너야 하는 섬의 특성 상 그런 게 큰 듯 하였다. 그러나 오미크론 대유행에는 여기도 뚫려버렸다.
7. 관광
따스한 지역이라 중국에서는 관광 겸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좋은 편이다.
외국인 무비자 입국지인 한국의 제주도마냥 여기도 외국인 좀 끌어보려고 중화인민공화국 육지 쪽인 베이징시, 상하이시, 칭다오시, 광저우시 등 일부 지역처럼 무비자를 시행하는데 이들 지역과 달리 하이난은 여행사를 통해 신청할 경우 굳이 복잡한 절차 없이 무비자가 보장된다.
한국인들은 골프 여행 등으로 제법 많이 간다. 1년 내내 따뜻하고 그린피 싸고 꽤 오래 걸리는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보다 가까운 편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인에게 해변 휴양지로서 하이난은 아무래도 태평양 섬들이나 동남아시아의 푸껫, 코타키나발루 등 유명 휴양지는 물론 하다못해 저가항공이 잔뜩 취항하는 일본 오키나와에 비해서도 인기가 저조한 편이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홍보가 덜된 탓인 듯 하다. 사실 하이난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듣보잡 여행지였으며 2009년 이후 이 곳을 중국의 하와이라 하며 띄우기 시작한 걸 감안해야 한다.
일단 중국 내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상당히 북적북적한 편이며 홍콩인들도 크루즈 목적지 중 하나가 하이난이라 많이 찾는 편이다.
그 외 하이난의 역사적 관광지로는 당/송나라 시대 때 하이난으로 유배를 간 5명의 관리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오공사(五公祠)와 하이난에서 가장 잘 보존된 건축물 중 하나이자 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공묘인 원창 공묘(文昌孔庙)와 하이난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건축물이자 석탑으로 알려진 메이랑 쌍탑 등이 있다.
8. 여담
대한민국에도 동일 지명인 해남군이 있지만, 규모 차이가 크다.여러모로 제주도와 공통점이 많은데, 본토 남쪽 해상에 있는 섬이라는 점이 비슷하고, 온화한 휴양지로 인식된다는 점도 똑같다. 또한 본토를 관할하는 광역행정구역에 포함되어 있다가 분리된 역사가 있다는 점도 동일하고,[12] 역사적으로 유배지로 사용되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배틀필드 4에서 하이난 리조트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중앙에 위치한 호텔을 붕괴시킬 수 있는 Levolution이 등장한다.
메가로돈(영화) 후반에 중국 하이난성 싼야시 일대가 나온다.
어째서인지 구글 지도 한국어판에서는 '에노'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나왔다. 2022년을 기점으로 구글 지도 한국판이 완전 개정되어 한국 현실을 맞추면서 이 엉터리 표기도 사라졌다. 그러나 그때에도 영어로는 Hainan이라고 제대로 나왔다. 모종의 이유로 벨기에의 프랑스어권 에노(Hainaut) 주[13]와 혼동된 것 같은데, 2022년에서야 고쳐졌다. 사실 구글 지도 한국어판은 발음들이 워낙 엉망이라 그냥 영문판으로 보는 게 더 속 편했다. 이는 구글 지도 출시 초창기에 지명을 한국어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구글 번역 엔진을 사용하여 생긴 문제로 추정된다. 유콘 준주를 유콘 테리토리라고 표기하는 식으로 그냥 음역해서 표기해버린 곳이 많은데,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욘 F. 케네디 국제공항"이라고 표기하는 등 그 음역조차도 틀린 곳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2020년 이후 구글 지도 한국판이 현실을 반영하면서 전면 개정이 일어나 엉터리 표기도 모두 수정되고 실제 한국 현실에 맞게 업데이트되었다.[14]
일부 일본인들은 하마섬 또는 하마도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남성들이 하도 벗고 다녀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9. 관련 문서
[1] 한국 여행사나 항공사 홈페이지에서는 동남아시아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2] 과거 중국에서 나온 아이들 교육용 장난감에도 타이완 섬이 중국의 가장 큰 섬이라고 나오는 게 있어 대만인들이 분노해서 그 장난감을 부숴버리는 퍼포먼스를 한 바 있다.[3] 그런데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사실상 이 섬 전체, 더 넓게는 중국에서 홍콩, 마카오보다 남쪽에 위치한 거의 모든 지역이 열대기후가 되다시피했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대만도 북부는 아열대, 남부는 열대기후이다. 열대기후 지역에 있는 대만의 대도시로는 가오슝이 있다.[4] 민어는 푸젠성 쪽 방언으로 민남어/대만어가 여기 속한다.[5] 다만 21세기 들어 여족이 원래 토착민이 아닌 중국 남부로부터 들어온 민족이었다는 얘기가 학계에서 슬슬 나오고 있기는 하다. 물론 그런 식이면 구 대륙인 아시아에서 넘어갔다고 보이는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대부분은 원주민이 아니라는 소리라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여족을 하이난 섬 원주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6] 오나라는 이 때 대만과 류큐 심지어 일본 열도 규슈 남단까지 정벌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특히 손권의 진출 시도는 한족의 대만 진출 시도 첫 사례이기도 하다. 결국 중국의 대만 진출은 원나라 때 원세조 쿠빌라이 칸이 일본 원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곁다리로 대만 북부를 정복해서 한족이 아닌 이민족인 몽골인이 최초로 성공했다.[7] 물론 중국 정권의 지배를 받지 않았을 뿐 한족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대만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었으며 이러한 푸젠성 출신 이주 어민들이나 상인들이 기반이 되어 네덜란드를 전쟁으로 쫓아낸 한족 수군 군벌 정성공이 정씨 왕조를 세우기도 했다.[8] 대만은 대만해협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풍랑이 심하면 배편이 끊길 정도로 접근하기가 어려웠으나 하이난은 대륙 바로 코앞에 있기 때문에 고대부터 경영되어 왔다.[9] 비슷한 취급을 받은 곳은 현재 베트남 중부 다낭 일대인 일남군으로 일남은 더위가 화끈한 열대 지방이며 거리도 절망적으로 멀어 아예 유배갈 때 장례식을 치를 정도였다. 거기에 일남군은 이민족인 참족의 공격으로 결국 뺏겨버리고 거기에 참파가 들어섰다.[10] 이미 국부천대로 장제스는 대만으로 도망쳤었다..[11] 이곳을 접수하고 그 다음 최종 목표가 바로 대만 섬 점령이었는데 미국이 대만 해협에 군함을 파견하고 6.25 전쟁이 터지면서 대만 진공을 무기한 보류했다. 하이난이 몇 개월만 더 버텼다면 지금 와선 대만과 같이 공산화를 피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 본토와 하이난 섬을 가르는 충저우 해협은 폭이 약 30km 정도로 타이완 해협에 비해 크게 좁았고, 진먼 섬과는 달리 대만 섬과의 거리가 멀어서 방어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에는 해군이 거의 없다시피했던 인민해방군도 민간 어선을 징발해 건너올 수 있었다.[12] 하이난섬은 광둥성 관할이었다가 1988년에 하이난성으로 분리되었고, 제주도는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관할이었다가 1946년에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다. 다만 하이난은 제주도보다는 본토와 가까운 편이어서 그런지 분리된 시기가 비교적 늦었다.[13] 한국어로 '에노'로 발음된다.[14] 사실 지도 반출 문제가 해결된 것보다는 구글이 티맵 등 한국 토종 지도앱들을 종합해 정보를 많이 획득한 것에 가깝다. 문재인 정부도 지도 반출만큼은 불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