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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04:37:51

한푸

아시아 전통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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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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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알려진 한푸의 모습[1]

1. 개요2. 명칭의 유래3. 한푸는 현대 중국의 전통 복장이 맞는가?4. 한푸와 호복, 한복과의 관계
4.1. 들어가기 전에4.2. 오자(저고리)4.3. 제흉유군4.4. 곡거4.5. 유군(襦裙)4.6. 예살, 도포, 직철
5. 현대에 남아있는 한푸
5.1. 객가인의 경우
6. 번외: 호복7. 시대별 한푸의 모습8. 종류
8.1. 여성 한푸8.2. 남성 한푸
9. 현대 중국 내의 인식과 한푸 트렌드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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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체: 漢服(한복) 간체: 汉服 Hànfú
다른 명칭 漢裝 / 汉装 華服 / 华服

중국, 특히 한족의 전통 복식(옷).

원래 '한푸'라는 말은 그저 한나라 시대()의 복식()을 의미하는 말일 뿐이었다. 그러나 한국한복일본기모노가 널리 알려져 있고 그 이름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홍보되는 반면 중국의 복식을 일컫는 단어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중국의 복식은 제대로 된 홍보가 이루어지지도 못했으며 한복과 기모노에 비해 유명세가 저조했다. 심지어 만주족의 전통 복식인 치파오가 한족의 전통 복식들보다 유명하여 치파오를 한족의 전통 복식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였다. 이는 한푸가 중국 대륙을 정복했던 이민족 국가들의 의복은 포함시키면서 청나라치파오만은 제외한 모순적인 상황의 이유가 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 만주족 지배 이전의 한푸에 대한 복구를 진행하려 했으나 이미 만주족의 오랜 지배로 한푸에 대한 원형은 사라진 뒤였고 중국인들은 이전 벽화와 그림 등을 참조하여 완전히 새로운 한푸를 창조하게 되었다.

하지만 원래 전세계적으로 중국 전통 의상으로 알려진 것은 치파오이며 해외에서는 한푸가 만들어지게 된 전통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아직 중국의 전통 의상은 치파오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중국의 중화사상, 대한족주의 정서까지 가세하여 '한족의 전통문화들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일어나면서 중국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한푸의 의미를 한족 전통 복식, 더 나아가 중화 전통 복식으로 중국의 모든 전통 복식을 통틀어 일컫는 단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2천 년 전 한나라 기록에 漢服라는 글자가 있으니 한푸가 신조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부 한족주의자들이 있으나 이는 언어의 역사성과 성질을 고려하지 않은 궤변이다. 당시 기록의 漢服는 말 그대로 당시의 '한나라 사람들이 입은 옷'을 지칭한 말로, 당시 한나라의 '일반적인 옷'을 이른 말이었지만 최근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漢服(汉服)는 현대의 한족주의자들이 '한족의 옷을 부흥시키자'며 단어를 만든 뒤 역사 기록을 뒤져 짜맞춘 것이므로 같은 어휘로 볼 수 없다. 즉, 2000년 전 漢服와 현대의 漢服는 서로 다른 뜻인 데다 언어의 연속성, 역사성도 없으므로 다른 개념으로 봐야 한다.

이 단어가 나오기 전에는 치파오 이전의 복식들을 어떻게 칭했냐면 그냥 그 시대의 명칭에 服 자를 붙여서 불렀는데 당나라 복식은 탕푸(唐服), 명나라 복식은 밍푸(明服)라는 식이다. 한 마디로, 한푸에 속하는 복장들은 전부 실존했던 옷들이 맞지만 이들을 '한푸'라고 총칭하게 된 것은 현대부터다.

한국 한자음으로는 한국의 전통의상처럼 둘 다 '한복'이지만 한자가 漢服韓服으로 달라 보통 표준 중국어 발음에 따라 '한푸(Hanfu)'라고 구분해서 일컫는다. 타국 전통 의상도 대개 그 나라의 발음대로 부르고 표기하기 때문에 이게 더 자연스럽다. 한국인이 일본의 전통 의상을 한국 한자음인 '착물(着物)'이 아니라 기모노라고 하고 만주족의 전통 의상을 '기포(旗袍)'가 아닌 치파오[2]라 일컫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중국 전통의상으로 널리 알려진 치파오(旗袍)는 청나라 이후 전래된 만주족의 전통 복장에서 비롯된 복식으로, 이전 한족의 복식과는 차이가 크다. 즉, 치파오모든 중국 시대의 복식을 한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상술하였듯 한푸란 말도 중국 인터넷을 비롯한 민간에서 인위적으로 현대에 만든 용어이며 여기서 치파오만 한푸의 분류에서 빼는 것은 상당한 모순이 존재한다. 오랜 시간 동안 가까이서 영향을 주고받았던 만큼 유사한 부분은 있을 수도 있음에도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 위구르 등의 복장에서 조금이라도 유사한 복장을 모두 한푸라고 주장하며 매체에 노출시키는 것도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후술한다.

중국의 한푸(漢服)는 본래 남녀를 불문하고 바지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한복(韓服)의 근간이 되기도 하는 북방계 호복을 들여오면서 바지를 도입했다. 동아시아는 문화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서로의 의복 양식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조선 이전까지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단령을 관복으로 사용했으며 중국은 명나라 홍치제 이전까지 고려양이 유행하기도 했다. 특히나 중국의 한푸는 이민족의 영향을 받으면서 계속해서 변해 왔다. 당나라수나라한족선비족이 세운 국가이기 때문에 의복에서 선비족의 복식과 한족의 복식이 융합된 형식을 보이며 명나라홍치제 이전까지 몽골풍과 고려풍을, 홍치제 이후부턴 송나라의 의복과 몽골풍이 섞인 형태의 한푸가 유행했다.

한국의 한복은 본래 북방계 복식인 호복의 특징을 따라 소매가 좁았는데 이후 소매가 넓어졌다가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다시 소매가 좁아졌다. 중국의 한푸도 마찬가지로 북방 유목민족[3]의 복식에서 유래한 호복의 영향을 받아 춘추전국시대 이후부터 북방계 호복양식인 바지를 한푸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주로 거란족, 선비족 같은 몽골계 유목민이 입던 호복인 단령을 수, 당 시기부터 받아들이기도 했다.[4]

원래 위아래 한 벌인 통옷에서 발전했으며 일본의 기모노와 마찬가지로 마름질[5]을 하지 않고 바느질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더 쉽게 말하자면 각 부분을 조각조각 잘라서 잇지 않고 천을 그대로 활용하여 만든다. 이렇듯 재단을 하지 않고 옷감의 폭을 그대로 사용하여 봉제만을 하기에 각 신체 부위에 딱 맞게 만들어지지는 않는 편이다. 말하자면 다소 프리사이즈 같은 격.

전술했듯 중국은 주변 이민족들과 영향을 워낙 많이 주고받은지라 같은 시대의 복식일지라도 의복이 천차만별이라서 가령 조복식의 예복, 단령 같은 공복, 평상복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해 이 문서에 서술된 옷들은 아주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자세한 의복들은 관련 링크의 "연관목차"를 클릭하여 왕과 귀족들 의복을 확인하면 볼 수 있다. 일단 고려 때의 의복이지만 상위층은 중국의 의복을 채용하였으므로 참고하면 좋다. 조복, 면복, 구장복, 칠장복, 공복 등을 참고하면 된다. 친절하게도 그 의복에 대한 상세한 출처가 있어 어느 시대 중국 것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사실 본 링크의 의복들의 대다수가 중국의 의복에 근거하여 복원되었다.

2. 명칭의 유래

ㆍ한푸라는 명칭은 21세기에 들어와서 새로 생긴 신조어다. 특히 중국 민족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치파오를 비롯한 만주족(청나라) 문화가 중국을 대표하는 것에 대한 반발 심리로 정착된 용어인데 일단 한푸 부흥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은 '삼황오제 시대부터 청나라 이전까지 한족들이 입어왔던 모든 옷'으로 정의하지만 한푸라는 용어는 기준이 상당히 모호하여 중국 복식학계에서도 정의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 - 치파오 벗고 한푸 입는 중국…한족주의 부활하나라는 기사에 따르면 한푸는 민감한 주제라며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복식 전문가는 "한푸는 신조어"라고 말하며 "한족의 전통 복장을 뭉뚱그려 ‘한푸’라고 부를 뿐, 한·당·송·명 등 한족 왕조마다 독자적인 복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푸라는 단어가 정착한 것은 2000년대로 추정된다. 2001년 중국 상하이 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치파오를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여기에 일부 중국인들이 반발하면서 '한푸'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었고 기사에 따르면 2003년 정저우(郑州)의 노동자 왕러톈(王乐天)이 직접 만든 한푸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한푸 부흥운동이 시작됐으며 2004년에는 싱어송라이터 쑨이(孙異)가 한푸 부흥 운동 주제가 ‘중회한당’을 작곡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리잡은 한푸라는 명칭은 학술적인 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 복식계에서도 한푸의 정의를 두고 논란이 많으며 현지에서조차 공식 용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명칭부터 청나라에 대한 반발 및 한족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라는 문제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복식학자들은 2020년대 들어 심각해진 중국의 복식 동북공정을 우려하면서도 한족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당 양쪽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명칭과 분류에 대한 학술적 정의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 하는 상황이다.
中国青年政治学院教授张跣认为现代汉服运动倡导者所宣传的汉服概念不存在于中国传统文化和现代汉语中,他认为汉服运动倡导者为宣扬自己的思想和观念,总结了明代以前汉族服饰传统而形成的一个假定了“汉服”在发展过程中的“血统”的纯正性的“类概念”
중국청년정치학교수 장셴(张跣)은 현대 한푸 운동 제창자가 선전하는 한푸 개념은 중국 전통문화와 현대 한어 중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정하였고 그는 한푸 운동 제창자들이 자신의 사상과 관념을 펼치기 위해 명대 이전의 한족 복식 전통을 총정리하여 형성한 한푸의 발전 과정 중의 혈통적인 순수성을 가정한 유사개념이라고 인정하였다.
Kevin Carrico. Make the Han Great Agai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9-05-20].Kevin Carrico, A State of Warring Styles (页面存档备份,存于互联网档案馆), " In my time spent with movement participants, however, I found that despite this focus upon the past, the movement was primarily a product of the present and its contradictions, of which Han Clothing was at once a symptom and an attempted cure."
그러나 한푸 운동에 참여하여 할애한 나의 시간 동안 이 한푸 운동이 과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최근 그리고 현재과 모순된 것의 산물이었다. 즉, 한푸는 급조된(즉각적인 증상에 시도된 치유) 것이었다.

청나라만주족 문화를 버리고 대신 한족의 문화를 부흥시키자는 중심의 민족주의가 공고해진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위에 링크한 기사에 따르면 장셴(张跣) 청년정치학원 교수는 “한푸 운동은 한족의 순결성과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며 “한푸 운동은 ‘민족의식의 회귀’가 아니라 ‘민족의식의 퇴화’이며 ‘문화의 자각’이 아닌 ‘역사의 퇴보’”라고 주장했으며 현행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민족단결을 유지·보호하는 투쟁 중에 대민족주의(大民族主義), 특히 대한족주의(大漢族主義)를 반대한다”고 전문에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중국공산당에서는 한복을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역사 왜곡을 진행하면서도 한푸 부흥운동 세력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정도 목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적당히 방치하는 상황이다.

사실 청나라뿐 아니라 명나라, 송나라, 당나라 역시 이민족의 영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완벽한 한족의 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한나라, 길게 잡아도 삼국시대까지다.[6] 위지남북조시대 이후에는 이민족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 한푸 역시 주변 민족의 복식과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대표적으로 명나라 초 한푸는 고려양으로 인해 한복과 비슷하게 생기기도 하였다. 청나라 시절에는 만주족의 영향으로 한푸가 치파오와 비슷하게 생길 정도로 변해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아예 청나라 한푸를 자신들의 전통 복식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영어 위키백과에 명나라 한푸가 고려양으로 인해 한복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서술되어 있지 않고, 한푸가 한복에 영향을 줬다는 잘못된 정보들만 서술되어 있어서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3. 한푸는 현대 중국의 전통 복장이 맞는가?

퍄퍄킴 역사 - 한복이 진짜 중국 옷일까?/중국 한푸의 실체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위 "한푸"라는 것이 한족의 역사적 유산은 맞으며 청나라 한푸가 존재하므로 해당 한푸에 한해 전통 복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전의 한푸는 맥이 끊겼으므로 역사적 유산은 맞으나 전통 복식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애초에 시진핑 시대 이전까지는 이러한 한푸의 전통 복식화를 중국공산당이 직접 제지하였을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정치적으로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공산주의 체제인 것도 이유가 되었겠지만[7] 후술하는 대로 그 외적 문제도 수두룩하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의 의복은 당연히 중원의 영향을 일부 받았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궁중 혹은 공식석상에서 입던 옷들, 그 중에서도 관복과 예복은 중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기서 중원이란 한족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민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중원은 여러 북방민족 혹은 서쪽 민족의 옷들이 용광로같이 뒤섞여서 생산되는 곳이었고 그것이 각국에 전파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일부 중화인민공화국의 네티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훔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한푸의 구성성분인 단령, 오군, 유군, 철릭 등등의 모든 옷들이 백적(白狄) 혹은 선비족 등등 이민족의 옷에서 유래된 것들이라 순수 한족만의 옷이라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근거를 제시하고 그들의 의복학자들의 논문을 제시해도 그들의 만병통치약 같은 "이민족이라도 그들은 한족에 융화되어 이미 한족이 되었다"는 유전학적으로 증명되지도 않고 증명할 수도 없는 추측적인 가설을 절대적 논리인 양 모두 가져다 붙인다. 이 논리는 고구려 역사의 귀속 문제에도 자주 쓰이는 그들의 증거없는 가설이니 가볍게 논파하면 된다.

본론으로 들어가 이 복장들이 실제로 당시에 한족이 입었던 옷이 맞음에도 왜 현대 중국의 전통 복식이 아닌지는 후술한다.

전통이라는 단어는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ㆍ관습ㆍ행동 따위의 양식" 을 뜻한다. 이 단어를 대입하는 순간 한푸는 이미 전통이라고 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옛부터 적어도 3대를 이어오고 중간에 단절이나 망각된 것들이 없어야 전통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개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사용되는 개념이다. 아무리 그들이 실전, 멸실된 당나라 음악을 복원해도 이는 세계무형유산이 될 수 없다. 세계문화유산 중 현대에 복원된 한국의 수원 화성이 세계유산이 된 것은 복원 근거가 과학적이고 세밀하고 건축에 사용된 돌수자 사용된 기계 모양까지 완벽하게 기록된 의궤가 있어서 등록이 가능했던 것처럼 단순히 과거 무덤에서 발굴해 낸 유물을 현재 입어 오고 지켜 왔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복원하여 입거나 재창조한 것은 전통의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한푸는 여러 왕조마다 그 형태가 달랐으며 어떻게 대중 들이 입어왔고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이 단지 발굴된 것을 재봉틀에 넣어 단순히 복원한 것에 불과하여 전통의 개념에 부합하지 못한다. 한푸 복원에 있어 자기들끼리도 논란이 많다. 특히 끈을 메는 방법 등은 그들이 현대에 와서 추측해서 창조한 것이다. 중국 대모 끈을 메는 방법도 자기네들이 옛 그림을 보고 대모끈을 추측하여 귀 뒤로 넘겨 묶어야 한다는 것과 한국인들이 윗 세대부터 직접 실생활에서 물려받아서 일반인들도 쉽게 할 줄 아는 고름 매는 법, 대님 매는 법, 갓끈 매는 법의 전통과 비교해 보면 명확하다.
파일:external/faculty.trinityvalleyschool.org/toga-diagram.gif파일:attachment/Tarantella_costume.jpg
현대 이탈리아의 전통의상이 아닌 고대 로마전통의상 현대 이탈리아의 전통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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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그리스의 전통의상이 아닌 고대 스파르타의 전통의상 현대 그리스의 전통의상

예를 들어 현대 이탈리아그리스의 전통 복장은 로마와 그리스의 토가와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탈리아와 그리스 역시 현대까지 입어 오지 않았던 고대 유물을 발굴하여 고대 로마인이 입었던 것을 복원하여 입고 그것이 현대로 전승된 전통문화라는 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고대 이집트의 복장을 발굴하여 현대 이집트인이 입어도 그들의 전통 복장은 될 수는 없다. 실제로 이집트인의 전통복식은 현재 이집트인이 입는 갈라베야만이 전통 복식으로 인정된다.

그럼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의 복식은 현대 한국의 전통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보충 설명하자면 일단 고려 시대 삼국사기만 해도 신라의 옷, 고구려의 옷, 백제의 옷의 형태조차 몰라서 중국 사서의 기록을 인용하기에 이르렀지만 근현대에 들어서 여러 벽화나 기록들을 교차 분석하는 등의 고고학적 성과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해지긴 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그것들을 갑자기 복원하여 대한민국의 현재 전통복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가 크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옷은 한복의 조상일 뿐이며 당시 입던 궁고, 절풍 등은 당시 사람들의 복장에 불과하고 현대 한국의 전통문화라고는 할 수 없으며 그저 한국의 현대 전통문화의 선조라고만 봐야 된다. 상술한 대로 이 시기의 복장은 오랜 기간 단절되어 착용법은 커녕 형태조차 알 수 없었던 때가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현재 복장도 확실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유추이기 때문에 이게 100% 맞다는 보장도 할 수 없다. 물론 현대 한국의 전통 복식 안에 그들의 유습을 계승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당시의 신라 금관이나 고구려 조우관이 현재 그것들로부터 파생되어 변화된 복식이나 변화되었다고 추정되는 복식이 있긴 해도 그것들을 제쳐 두고 갑자기 신라 금관과 고구려 조우관을 현대 한국에서 끊임없이 대중들이 입고 써 오고 내려온 전통 복식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현재의 한푸도 이런 간단한 전통의 개념을 무시하고 만들어낸 현대 복원 복식으로 그들의 역사적 선조는 될 수 있어도 만주족 복식이나 인민복 등으로 대표되는 현대 중국의 전통과는 큰 관계가 없다. 한복과 비교하자면 현대에 한국인이 흔히 칭하는 한복인 조선 의상은 조선 말기 구한말의 실제 사람들이 입었던 사진들이 남아 있고 일제강점기, 그리고 현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멸실과 단절 없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전통이 되었다. 왕실과 사대부의 의복도 이왕직아악부 대동종약원 종가들의 구성원들이 계승 중이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 의복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에 반해 중국은 명나라가 1600년대에 망하고 근 400년간 한푸는 입지도 못했고 한푸가 있더라도 단순히 도교 사원의 도복이나 극히 일부 유생의 옷 정도가 내려왔으며 여자의 한푸는 고려양과 같은 양식은 일찍이 명 건국 초기에 잠시 입다가 사라져 당시의 유행 정도는 될 수 있어도 중국사의 전통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기껏 있는 여성 한푸의 근대 사진도 조선의 한복과는 전혀 무관계한 것들인데 이것도 실생활용 의복이 아니라 희극인들이 코스프레 정도로 하여 찍은 사진에 불과한 것으로 당시 전통과는 관계가 없던 것들이었다.
근데 현대 중국인들이 한푸라고 입는 의복들은 마왕퇴 기원전 출토품 박물관 의복을 가지고 당시의 바느질 기법도 모르고 복식학 전문가나 장인도 아닌 일반인들이나 업체가 모양만 보고 제봉틀에 넣어 급조한 산물들로, 전통과는 무관한 의복으로 우리가 한푸를 그들의 바람대로 중국 전통 의복이라고 부르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엄연히 중국의 전통 복식은 치파오와 청조 때 내려온 한족 여성의 의복 등만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치파오는 만주족에서 유래된 호복의 일종이긴 하지만 현 중국은 만주족 왕조였던 청나라를 계승하고 있으며 중국은 한족 단일민족국가가 아닌 다민족국가를 표방하고 있고 만주족은 이민자 집단도 아니고 중국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는 민족이며 몽골족이나 조선족 같이 모국이 따로 있는 민족도 아니고 위구르족이나 티베트인 같이 중국에게 나라를 빼앗긴 민족도 아니다.

현대에 유통되고 한푸라고 주장되고 있는 옷들은 전통의상이 아닌 유적지 출토 정보를 일반인의 상상에 더해서 재현한 복원품 내지 코스프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 덕분에 중국에서도 한푸 운동에 반발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으나 중국 특유의 체제 덕분에 목소리를 전혀 내지 못 하고 있다.
The Great Han is based in fieldwork across China with members of the Han Clothing Movement (Hanfu yundong), a grassroots nationalist group that has emerged in cities across China since 2001. Although “the Han” is China’s majority ethnicity, constituting 92% of the country’s population and playing a dominant role in the country’s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life, members of the Han Clothing Movement see the Han as an oppressed people, prevented from realizing their full potential, and thus China’s full potential. Why do these members of a dominant majority ethnicity see themselves as marginalized victims? In my analysis of majority nationalism, I interpret nationalism as an autopoeitic social system driven forward in the tension between boundless national fantasies and inherently bounded national realities, such that the reality of China today is interpreted as not corresponding to a fundamentally impossible yet alluring vision of “the real China.”
In response to this perceived dilemma, movement participants strive to bridge this distance from their “real China,” by promoting a purportedly ancient yet recently invented style of ethnic clothing, alongside reinvented rituals, etiquette, and traditional education. Having established the founding dilemma of Han nationalism in the first half of the book, in the second half I analyse various means by which participants seek to resolve these dilemmas: clothing that stabilizes, naturalizes, and eternalizes a romantic vision of Han identity; ritual that produces sequestered micro-spheres in which their ideal visions can be acted out without interference; and conspiracy theories that provide seamless narratives of Han innocence and goodness. These cultural manifestations of the movement, presented as “traditions,” in fact emerge primarily from the contradictions of the present, serving simultaneously as symptom and fleeting cure.

Kevin Carrico. Make the Han Great Agai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한푸는 현대 민족주의에 의해 날조되고 급조되었으며 최근 급조되어 발명(invented)된 옷이다' 라고 밝히는 한 서양학자. 현대 한푸가 문제가 많다는 것은 중국 뿐 아니라 서양의 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출처

4. 한푸와 호복, 한복과의 관계

4.1. 들어가기 전에


중국은 고립되어 독자적으로 성장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국가와 교류하면서 문화를 융합하면서 성장한 나라이므로 복식인 한푸도 주변 민족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新羅之初(신라지초) : 신라 초기의
衣服之制(의복지제) : 의복제도는
不可考色(불가고색) : 색채에 대한 고찰이 불가능하다.
至第二十三葉法興王(지제이십삼엽법흥왕) : 제 23대 법흥왕 때
始定六部人服色尊卑之制(시정육부인복색존비지제) : 처음으로 6부의 복색의 존비제도를 정하였다.
猶是夷俗(유시이속) : 그러나 그 때까지는 오히려 동이의 풍속을 유지하였다.
至眞德在位二年(지진덕재위이년) : 진덕왕 2년에
金春秋入唐(김춘추입당) : 김춘추가 당에 가서
請襲唐儀(청습당의) : 당의 의식을 따를 것을 요청하였다.
太宗皇帝詔可之(태종황제조가지) : 당 태종(오기. 실제로는 당 현종이다.)이 이를 허락하고
兼賜衣帶(겸사의대) : 동시에 의대를 주었다.
遂還來施行(수환래시행) : 그가 돌아와서 이를 시행하여,
以夷易華(이이역화) : 우리의 풍속을 중국의 풍속으로 바꾸었다.
文武王在位四年(문무왕재위사년) : 문무왕 4년에는
又革婦人之服(우혁부인지복) : 또한 부인의 의복제도를 고치니,
自此已後(자차이후) :이후로
衣冠同於中國(의관동어중국) : 우리의 의관이 중국과 동일하게 되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이 구절은 삼국사기 의복지에 나오는 신라가 관복으로 복두와 반령포를 제정할 때의 내용이다. 해당 구절은 중국의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 누리꾼들이 한국의 전통의복인 한복을 격하시키기 위해 고려시대 삼국사기 중 신라본기 의복지에 등장하는 구절을 가지고 한복을 한푸의 일부로 취급함과 동시에 동아시아 모든 의복의 시원(始原)을 한족의 한푸라고 왜곡하고 있는데 이는 역대 중국 사서와 기록, 심지어 현대 중국의 의복 전문가들에게도 부정되는 개념이다. 당장 하술할 중국 민족주의자들의 한푸 역사 왜곡을 반박하는 논문들부터가 죄다 중국 논문이다. 즉, 중국에서도 이들의 주장은 억지 취급받는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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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자료의 내용은 중국인이 생각하는 오사모, 반령포 허리띠, 목화신발 등 옛 관원이 입었던 관복은 남북조시대 북조 이후로 등장한 옷으로 그 이전 시대에선 볼 수 없었던 것으로 호복(胡服)에 해당하는 것들이라고 설명하고 몽계필담의 구절인 中國衣冠自北濟以來 乃全用胡服중국의 의관은 북제이 래로 호복을 모두 썼다라는 뜻이며 주자어류에서는 今世之服 大抵皆胡服이라고 하여 오늘날의 옷은 모두 호복이다라고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이는 고고학적인 연구와 유물로도 증명된 자명한 사실이며 조선시대 한민족이 전통으로 지켜온 관복도 한푸와는 관계없는 호복이 중원을 거쳐 수입되었으므로 한푸와는 관계가 없다. 즉, 중원은 당시 한족만의 활동공간이 아닌 큰 냄비와 같았다. 극단적인 한족 민족주의자들은 한푸가 순수하게 한족만의 문화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따지면 사실이 아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중국은 고대부터 극단적으로 폐쇄된 국가가 아니라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국가였으므로 주변국가들의 문화가 섞일 수밖에 없없다.

4.2. 오자(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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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저고리)
구당서 여복지에 이를길 연복[10]은 예로부터 음란한 옷(설복)인데 상복이라고 한다. 당시 강남은 갈건과 유군을 썼지만 북조는 융이의 풍습이 섞였는데 북제에 이르러 장모, 단화, 합고, 오자를 사용했다.

중국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오군을 순수 한푸라고 주장하며 한국의 저고리가 한족의 한푸인 오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오군이 한푸고 아니고를 떠나서 애초에 저고리는 한푸와는 관계가 없다. 한국의 저고리는 스키타이 호복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며 오군도 중국의 고대 기록과 학자들까지 호복이라고 입증한다. 사실 후술하겠지만 한푸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모든 복장은 북방 유목민의 복장인 호복의 영향을 받았는데 한반도 뿐 아니라 베트남, 일본의 아오자이기모노도 호복의 영향을 받은 복장이다. 당연히 한푸도 호복의 영향을 짙게 받은 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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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魏書)에 오자는 호복이다. 정진의 설문신부고에 운(云)하길 오자는 북제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오자는 고대 한족의 옷이 아니고 중세 오호십육국시대 이후 호복의 영향을 받아 나온 복장이기에 한푸 치고는 비교적 늦게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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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에 이르길, 오자는 본래 선비족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구당서의 구절로, 袄자는 이후에 생긴 글자로 한족에게는 본래 이런 의복이 없었고 해당 복식은 선비족의 영향으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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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조무령왕의 기사에도 오자는 호복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한복의 저고리는 스키타이와 북쪽 이민족으로부터 중국보다 더 일찍 들여온 것으로 중국의 북제 북조보다 더 일찍인 고구려와 신라에서 나타나므로 한푸와는 관계없는 독자적 발전과정을 거치거나 한민족의 선조인 고구려인이 먼저 입고 연나라를 거쳐 중국에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연구가 필요하다. 당장 명나라 초기 한푸도 고려양을 통해 만들어진 한푸인 만큼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사례가 없지 않기도 하다.

4.3. 제흉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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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흉유군의 모습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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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흉유군(齐胸襦裙/齊胸襦裙)은 당나라 시기에 처음 중국사에 등장한 복장으로, 여성용 탕푸(당나라 한푸)의 대표적 복식이다. 현대 동아시아 문화의 기틀을 잡은 나라인 당나라 복식인 만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 국가들에게도 일부 개량되어 착용된 복장이기도 하다. 역시 기원은 선비족이 착용한 호복이 중국으로 들어온 복장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당나라가 이민족 국가였던 북조계열 국가들의 계승을 받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당나라 초기 석실묘에서 나오는 치마를 가슴까지 올려 묶고 길게 늘어뜨린 복식은 선비족의 독특한 전통복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출처:《史更几兴废,物华常流传——马面裙的始末、解构与重组》作者:祁姿妤,艺术设计研究. 2015年02期

4.4. 곡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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曲裾袍在汉代就已经灭亡了,曲裾是深衣的一种,现代汉服圈的曲裾,是模仿之马王堆汉墓出土的曲裾袍
곡거포는 한나라가 망하고 없어졌고 곡거는 심의의 일종으로, 현대 한푸의 곡거는 마왕퇴한묘에서 출토된 곡거를 모방한것이다.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듯 해당 복식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묘족의 복장을 기초로 한 복식이다.

그곳에서 출토된 2건의 치마와 12건의 포를 그 형식면에서 한족의 고전에 나와 있는 의복과 비교했을 때 전혀 같지 않았고 심지어 그 차이가 너무 심했다고 판단했다. 요약하면 출토된 복식은 한족의 전통복식과 비교했을때 명현히 같지 않았다고 결론내렸다.

출처:《试谈长沙马王堆一号、二号汉墓的族属问题》作者:容观夐,《民族研究》1979年第1期,(马王堆汉墓族属问题的讨论》作者:云峰《民族研究》1983年04期

4.5. 유군(襦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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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군류의 옷은 윗도리를 치마 안에 넣어 입는 복장을 뜻한다.

유군은 백적계 국가인 중산국에서 유행한 옷이 기원으로, 후일 중원지역 한족의 복식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간혹 백적은 전설 속에 나오는 염제황제의 후예들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민족주의자도 볼 수 있는데 근거는 없다. 애초에 염제와 신농은 어디까지나 신화 속 인물이기 때문에 실존여부가 불투명하며 논문에서도 구분하여 백적의 문화가 중원 한족에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하고 있다.

출처:《中国古代服饰》 -任继愈主编,出版时间1991

4.6. 예살, 도포, 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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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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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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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철
曳撒源自蒙元的质孙服,在明朝成了全民皆穿的服装,甚至成了皇室的赐服(什么地位可以想象一下清朝的黄马褂),而明朝人自己则认为曳撒、道袍、直裰都是源自蒙元的袴褶(不同于南北朝、唐朝的袴褶),其实不管这些交领类袍服以及只在明朝早期存在的交领袄裙(中后期就被立领袄裙取代了)是起源什么,但肯定是蒙古人在元朝带入中原的习俗,因为之前唐朝、五代和宋朝,汉族人并不穿这些服装,除了少量连贵族自己一辈子都很难穿几次的礼服类服装,以及南宋朱熹复原的、只在少数士大夫中间穿着、被更多士大夫斥为妖服的深衣外,绝大部分汉人并不穿交领的袍服和交领的袄裙,当时男人主要穿圆领袍,女人穿对襟的襦裙和褙子。穿交领袍服和袄裙并不是唐宋时期汉人的传统。
예살은 몽골의 질손복에서 기원하며 명나라 때 전국민이 모두 입는 의복이 된다. 심지어 황실의 하사복이 된다(청조의 황마궤가 어떤지위인지 상상해 보자). 그리고 명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예살 도포 직철 모두 몽골 기원의 의복이라고 여겼다(남북조 당나라의 주름바지와 다른것으로). 사실 이 교령류의 도포 및 단지 명나라 초기 존재한 교령오군(중후기에는 입령식 오군으로 교체됨)은 기원이 어디냐 다만 분명 몽골인이 원나라 때 중원으로 가지고 온 풍속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전의 당나라 오대 그리고 송나라때는 한족들이 결코 이런류의 의복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종류의 극히 소수의 귀족들이 몇 차례 입을수도 없는 예복류의 복장과 남송의 주희가 복원한것으로 단지 소수 사대부들만 입었고 대다수 사대부들에게 요사스런 옷으로 고발당한 심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족(漢族)들은 교령의 도포와 교령의 오군을 입지않았다. 당시 남자들은 주로 원령포, 여자들은 중국식 윗옷의 두 섶이 겹치지 않고 가운데에서 단추로 채우게 되어 있는 것인 유군과 배자를 입었다. 교령 도포와 교령오군은 당송시기 한족의 전통이 아니었다.
출처: 文献《明代的蒙元服饰遗存初探》
해당 복식은 쑹푸 말기와 밍푸 초기에서 나온 복식들로, 이들은 원나라의 영향을 짙게 받아 몽골식 호복과 비슷하였으며 예살은 고려양을 통한 고려 말 여성용 한복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복제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멸만흥한을 외치며 탄생한 중화민국과 같이 몽골식 복제를 제거하려고 시도한 명나라 조정에 의해 빠른 속도로 중국 의복사에서 사라진다.

이 복식은 현재 중국의 한복 왜곡 논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복식으로, 그 이유는 고려양을 통해 탄생한 복제인 예살이 존재하고 고려말~조선 한복은 몽골 호복의 영향을 받아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작 당시 중국에서는 현 치파오와 같은 위상을 가졌던 것을 생각하면 참 흥미로운 부분이다.

한복의 도포, 철릭, 직철 등 교령의 복식도 전통적인 한푸와는 다른 형태로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시기의 복장은 치파오와 함께 한족이 입는 옷이기는 하지만 호복의 영향이 강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인데 본래 한푸는 옷을 교차시키지 않는 직령 형태의 복장(밑에 있는 상~송대 한푸 사진 참조)을 입어 왔으나 이 복식들은 옷을 교차시키는 교령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나라 조정이 이러한 특징을 금지시킨 후부터 서서히 이러한 복장이 사라져갔고 명나라 중후반부터는 이러한 교령 형태가 아닌 직령에 단추 형태의 옷으로 발전하는데 역시 몽골의 형태가 어느 정도 들어간 한푸다. 자세한 것은 한푸/명나라 항목 참조.

5. 현대에 남아있는 한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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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푸는 각 왕조마다 풍부하게 이민족의 영향을 받아 왔다. 수나라당나라 한푸는 선비족의 영향, 명나라 한푸는 고려양몽골풍이 깊숙히 들어가있으며 근대 진정한 전통으로서 내려오는 한푸의 형태는 만주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통의 개념에 맞게 누대가 이어오고 대중성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착용법과 만드는 법이 전해오는 위 복장이다. 해당 복장은 만주족의 복장인 치파오의 영향은 받았지만 복장 자체는 다른 엄연한 한족의 복식인 한푸의 일종이 맞다.

다만 한푸는 현대에 만들어진 언어이므로 전통적인 명명법을 따라 부르면 칭푸(清服)로 불리울 수도 있겠다.

허나 현대 한족은 청나라 이민족에게 지배받던 트라우마가 있어 많은 논리상 모순점이 발견되고 있다. 실제로 극단적인 한족 민족주의자는 해당 한푸조차 치파오라고 주장하면서 부정하기도 한다. 애초에 중국 최초의 공화정인 중화민국도 멸만흥한을 외치면서 세워진 나라이고 국민혁명 이전에는 청나라 문화를 배제한 채로 과거 한푸를 부활시키려는 시도도 여러 번 하기도 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초기에는 민족주의를 억누르면서 그나마 나았으나 시진핑 시대부터 중국 정부가 이러한 일을 종용하면서 다시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청나라 시대의 한푸와 만주족의 치파오, 그리고 이것들을 서양 의복의 양식과 결합시켜 개량한 민국시대[11]의 의상들은 국민혁명 이후 청나라 문화에 대한 배제를 그만두고 국부천대 이후 청나라 문화를 적극적으로 보존하게 된 중화민국이나 그 중화민국과 문화적 교류가 깊었던 홍콩, 그리고 세계 각지의 화교 사회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5.1. 객가인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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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가인의 전통 복식인 객가난삼(客家藍衫)을 입은 핑둥현의 여성들. 남성들도 해당 복식을 착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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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가난삼의 남녀 복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진. 보면 알겠지만 옷을 매는 법이 다르다. 사진 속 사람들은 메이눙구청 공무원들로, 객가 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구청장부터 저렇게 입고 출근하였다.
객가인은 폐쇄적인 문화를 가진 한족집단 답게 일반 한족들과는 다른 형태의 한푸를 계승중이다. 특이하게도 남녀 모두 같은 형태의 복식을 착용한다는 것이며, 푸른색을 띄기 때문에 이를 객가난삼(客家藍衫)이라고 부른다. 이 문화는 현 가오슝시 메이눙구(美濃區)에서 종주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중국 대륙의 경우 광둥성 차오저우시의 객가인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객가인은 남녀 모두 상의를 객가난삼으로, 하의를 바지로 입었고 치마는 입지 않았다. 남성들의 경우, 청나라의 영향력 하에 있었기 때문에 폐쇄적이었어도 결국에는 중요한 자리에서는 만주족 복식을 입어야만 하였으며 일상 생활에서만 객가난삼을 착용하였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6. 번외: 호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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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호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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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시기 흉노족 가죽 상의

호복은 북방계 유목민족, 기마민족 복식들의 총칭이며 남방계 정주민족, 농경민족 복식인 한푸와 대비되는 복식이다.

호복은 한족주의자들이 존재를 부정하고 한푸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는 복식이기도 한데 이는 자신들의 조상이 오랑캐의 옷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심리에 기반했다. 호복은 한푸보다 오히려 한복과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는데 소매가 좁고 고름이 있으며 모자에 깃털이 있는 등 고구려 벽화에서 등장하는 복식과도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애초에 한복 자체가 북방계 복식인 호복이 근간이니 닮은 것은 당연지사다.

남방계 복식인 한푸와 달리 북방계 복식인 호복과 한복이 지니는 대표적인 특징은 을 타기 편하도록 바지가 존재하고 을 쏘는 등 무기를 다루기 편하도록 좁은 소매 형태라는 것이다. 유목과 기마 생활을 하던 북방 민족들이 입던 옷에서 유래한 만큼 높은 활동성을 고려한 구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자연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푸는 더운 남방 지역 환경의 영향으로 바람이 잘 통하도록 소매가 넓고 남녀 모두 치마를 입는 형태를 띄는 반면[12] 호복과 한복은 추운 북방 지역 환경의 영향으로 바람을 잘 막도록 소매가 좁고 남녀 모두 바지를 입는 형태를 띈다는 것이다. 북방계 민족들의 주요 활동 지역이었던 지금의 중앙아시아, 러시아 남부, 몽골고원, 중국 북부, 만주, 한반도는 알다시피 겨울이 오면 굉장히 춥다.

호복은 전국시대였던 기원전 3세기 이후 중국의 한푸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대표적인 영향이 바지를 도입한 것이다. 한푸는 원래 상의하상(上衣下裳)형 복식으로 남성도 치마를 둘렀으며 상의에 바지를 입는 상유하고(上襦下袴)형 복식은 원래 기마민족들이 입는 복식이던 호복의 특징이다. 그러다가 조무령왕이 기마전술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오랑캐의 야만적인 옷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격렬하게 반대하던 신하, 왕족, 태자 등을 무시하고[13] 호복령을 도입한 것을 기점으로 하여 전국시대 국가들이 일제히 군사력 확충을 위해 기마병을 운용하며 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한푸에서도 북방계 바지가 생겼고 이후 단령을 비롯한 호복도 한푸로 편입하였다.

자세한 것은 호복 문서로.

7. 시대별 한푸의 모습

7.1. 상/주 시대

상(은)나라 시대 한푸. 오스프리에서 그린 주나라 시대 한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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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알타이 복식 계통인 호복 스타일과 달리 바지가 없고 남녀 모두 치마가 발달했으며 몹에 겹겹이 둘둘 감는 형식이다.

7.2. 춘추전국시대

남성들은 이때부터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중국의 기마술은 이 시대에 도입되었고 한푸의 바지도 전국시대 조나라에서 조무령왕이 중원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북방 민족들의 기마병을 도입하면서 말을 타기에 유리한 바지가 함께 도입된 것이다. 처음엔 '어찌 우리가 오랑캐들 옷차림을 따라하느냐'면서 반대여론도 많았지만[15] 전란의 시대에 군사력 증강을 위한 기마병 편제가 전 중원에 퍼지면서 군복 격이었던 바지가 전 중국에서 남성 의상이 되었다.[16]

7.3. 진나라, 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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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계의 옷인 한복과 달리 한푸는 바지를 입지 않거나 가랑이가 트인 풍차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빙글빙글 돌려 허리에서 묶는 원피스 형태인 곡거포(曲裾袍)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목을 완전히 목도리처럼 감싸던 형태가 점차 아래로 내려와 내의와 중의가 드러났으며 고대 유물에서 남아 있는 다양한 모양의 상투에서 여러 민족들이 융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몸을 한벌로 깊게 감싸는 옷인 심의(深衣)는 곡거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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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초기에 옷자락이 곧은 직거포(直裾袍)가 잠시 유행하였다가 한나라 중기 이후부터 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함께 자리잡게 된다.

7.4. 위진남북조시대

전통 예법과 교리를 중시했던 한나라가 멸망하고 사회 혼란기 속에서 중국인들은 자유로운 기풍을 추구했는데 남자들이 화장을 하기도 하고 여자들의 옷은 화려하고 복잡한 형태로 꾸며진 잡거수소복으로 발달하게 된다. 워낙 많은 나라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그 형태가 획일화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도교의 유행으로 선녀를 형상화한 기풍이 유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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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의 발달로 점차 옷깃과 옷자락이 곧아지고 바지저고리, 치마저고리의 두벌옷 형태로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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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대수관삼으로 남성들이 입던 옷이다.

7.5. 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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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 남자들과 일부 여자들이 관복 겸 기본 복식으로 자주 입던 단령. 서역에서 유래한 호복(胡服)의 한 종류다. 동아시아 나라들이 관복으로 단령을 입는 문화가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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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초당(初唐), 무주(武周),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晚唐) 시기 여자 복식

북방계 이민족인 선비족 출신의 호한 혼혈 무천진 관롱집단이 다스리던 당나라한족 입장에서 보면 오랑캐() 문화로 해당할 요소들을 다수 받아들일 정도로 개방적이었고 그만큼 실크로드를 통해 외국과의 교류가 많고 문화와 경제가 크게 번성했다. 기존까지 형성된 중국 고유 문화에 여러 지역의 이민족 문화가 융합하여 많은 발전을 보였는데 의복도 개방적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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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나라 시기의 중국은 여러 국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성문화까지 개방적으로 변하여 유교적인 관습으로 제한받던 여성들의 의복은 굉장히 개방적으로 변했는데 옷깃이 내려가고 소매가 넓고 크며 치마를 허리 높이 묶어 가슴골을 크게 강조했으며 투명한 얇은 비단으로 몸만 가리는 형태의 복식이었다.

이러한 발전 덕분에 당나라 시기의 한푸가 현재 중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전통의상이다. 흔히 최고의 전통의상으로 당나라 때 의상을 꼽는다.

한국남북국시대 들어 신라발해에서 고위층을 중심으로 이러한 당나라풍 복식을 반영했고[17] 일본도 비슷한 시기였던 나라 시대~헤이안 초기부터 고위층이 입던 기모노에서 당나라 복식의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가 동아시아 각국의 복식이 가장 닮은 시기였다.

참고로 한중일 일부가 당나라 복식 전파를 과도하게 해석하여 한국의 고대 한복과 일본의 고대 기모노를 형성한 근간이 당나라 한푸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고 전문가들마저 진지하게 그런 주장을 펴는 경우도 있으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대 한복은 호복에서 기원한 것이며 고대 기모노도 호복이 기원이다.[18] 당나라, 남북국시대 신라와 발해, 나라 시대 일본이 동시기 당나라의 영향을 짙게 받았더라도 한 시대에 유행했던 스타일일 뿐이지 아예 당나라 복식이 한복과 기모노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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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를 추구하는 풍조가 성행해 화장술이 발전했다. 얼굴을 새하얗게 칠하고 짙은 눈썹, 펭귄 같은 입술, 과한 볼터치, 인도의 빈디 영향을 받은 미간의 꽃점 등으로 포인트를 주는 게 특징이다.

7.6. 송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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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의복은 당나라 의복에 송나라만의 특징을 더했다. 당나라와 달리 정세가 안정적이지 못한 데다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당나라보다는 덜 화려하고 조금 더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당나라 때의 과감함은 어디로 가고 여러 겹으로 꽁꽁 싸맸다 전대의 당나라와 후대의 명나라도 그랬지만 송나라의 복식도 고려거란 등 주변 민족들과의 복식과 적지 않은 교류가 있었다.

남성 복식은 당나라 때도 입었던 기존의 단령복두 이외에도 조선 후기의 고사인물화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포(袍) 종류 비슷한 겉옷 위에 치마를 두르는 복장이 등장했으며 사복 겸 일상복으로 동파관과 심의를 입게 되는데 동파관과 심의는 고려에서도 수입하여 연거복으로 입었던 것이 이후의 조선에도 전해졌다.

여성들은 가슴가리개 형태의 속옷인 말흉(抹胸)을 두르고 속바지인 개당고와 합당고를 차례대로 껴입은 뒤 그 위에 치마/바지를 입고 마무리로 배자를 걸쳤다. 배자는 소매 길이와 기장이 길거나 짧은 것부터 시작해서 소매 폭이 넓은 것과 좁은 것이 있는 등 종류가 다양했으며 소매와 옷깃에 자수를 넣어 장식했다. 착장법

7.7.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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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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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전기와 후기의 대표적인 여성 의상과, 청 초기의 한족 여성 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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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중후기~ 근대로 넘어가는 때의 여성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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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시대의 한푸를 입은 중국 한족 여성 일러스트. 해당 일러스트 작가가 중국을 구성하는 민족들(한족+소수민족)의 전통의상 차림을 그렸는데 한족의 의상이 청 시대의 한푸이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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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후궁견환전>에서 입궁 전 한족의 평상복 차림을 한 주인공 견환. 견환은 한군기 출신이다.

청 시대 한족 여성들은 치파오를 입는 만주족 여성과 달리 치마(췬)와 저고리(아오)로 구성된 복장을 계속 입었으며 전족 풍습도 유지했다. 청나라가 강요한 남자들의 복식은 만주족 의상에 동화되었으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한족식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바깥 활동이 적은 여자들의 풍습은 청나라 정부에서[20] 그냥 내버려 둔 측면이 크다.

명나라 시대에 존재했고, 조선에도 전해졌던 하피는 청나라 시대에 와서는 본래의 긴 띠의 형태에서 조끼 형태의 겉옷으로 변화했고 한족 명부(귀부인)는 길일이 되면 망포(蟒袍)라는 한족의 의복 위에 조끼로 변한 하피(霞帔)를 덧입고 그 위에 운견(雲肩)이라는 역시 명나라 시대부터 이어온 어깨 망토를 걸쳤다. 머리에는 명나라 시대부터 내려왔던 봉관을 썼다. 이런 식으로

청 시대에는 이질적으로 정주민족인 한족들이 이부식으로 나뉜 복장을 하고 만주족이 긴 치파오를 입었는데 이것은 원-명을 거치면서 한족 문화에 이부식 옷차림이 정착된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주족의 의복도 완벽한 원피스 형태의 현대 치파오 복장이라고 보기 힘들다. 만주족의 옷은 명나라조선과 마찬가지로 이부식 복장 위에 포를 덧입는 것으로 봐야 맞다. 만주족의 치파오는 창파오(長袍), 긴 겉옷(포)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안쪽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저고리와 바지의 이부식 복장을 갖추어 입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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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시대의 아오와 마면군.

청나라 시대의 한푸는 만주족의 영향을 짙게 받아 상의는 옷의 형태와 여밈이 치파오와 비슷한 단추 여밈으로 바뀌었다. 반면 치마는 명나라 시대부터 입었던 마면군을 계속해서 입었는데 청대에는 더 화려하고 정교하게 변했다. 난간 모양처럼 치마폭에 선을 두르거나 무수히 많은 주름을 잡고 그 위에 자수를 놓는 등 사치스럽게 장식한 치마가 많았다. 명나라를 포함한 순수 한족 왕조에서 유교의 영향으로 검소함을 추구한 반면 이민족계 혼혈왕조인 당나라와 순수 이민족 왕조인 원나라, 청나라는 상대적으로 화려함을 추구했기 때문에 한족 여성들의 의상도 그 영향을 받아 이민족계 왕조 치하에서는 상대적으로 화려해진 듯하다.

청나라 시대에는 하의로 바지만을 입기도 했는데 이것은 만주식 문화로, 치마를 입지 않고 바지만 입는 것은 초중기에는 주로 하급 계층의 여성이 그렇게 했지만 청나라 후기에 들어서면서 신분과 민족을 막론하고 한족 여성도 저고리와 바지만 입기도 했다. 이후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한족 여성들은 이부식 의상을 고수했지만 정작 한족 국가인 중화민국 수립 후에는 오히려 만주족이 입었던 치파오를 입기 시작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차이나 드레스' 이미지는 중화민국 시기인 1920~30년대에 한족들이 개량한 의상으로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차이나 드레스'는 알고 보면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옷[22]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청나라 시대의 한푸는 중국식 전통 혼례 복장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23] 요새 들어 일부 한족 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이 거세지면서 명나라 시대의 한푸나 그 이전 시대의 한푸를 혼례 복장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화교들을 포함한 많은 한족 집단이 여전히 청나라 시대의 한푸를 혼례 복식으로 쓴다.[24] 청나라 시대에도 한족 새색시는 만주족 새색시와 다른 차림으로 성장(成裝)하였으므로 그 전통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여성용 한푸 외에 남성용 한푸도 명맥이 끊기지는 않았다. 도교 도사들은 한족의 한푸와 속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고 만주족 귀족이나 황족들은 한푸를 취미삼아 입을 수 있었으며 반청 인사들을 비롯한 민간에서 한푸를 전승시켰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경극배우들도 무대의상으로 속발 가발을 쓰고 한푸를 입는 것이 허용되었다.

8. 종류

8.1. 여성 한푸

8.2. 남성 한푸

9. 현대 중국 내의 인식과 한푸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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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중국이 명나라 시절의 한푸라고 주장하는 이 의복은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초•중기까지 유행한 고려양이다.
파일:고려양.jpg
[2] 중국어 위키백과에는 만주어sijigiyan(시지갼)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만주 문자 표기는 ᠰᡳᠵᡳᡤᡳᠶᠠᠨ를 오른쪽으로 세운 것이다.[3] 원, 명 시기 잠깐 동안은 한반도 계통 복식을, 청 때는 만주식 복식도 받아들였다.[4] 수나라와 당나라 자체가 황실 지도층이 한족에 동화된 선비족 계통이어서 선비족의 호복문화가 당대 중국 의복문화에 매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5] 천을 자르는 일[6] 애초에 어느 민족이건 극단적으로 폐쇄된 지역에서 거주하지 않는 이상 완벽한 자민족만의 문화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도 마찬가지다.[7] 지금 중국과 북한의 행태를 보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산주의는 특정 민족을 내세우는 사상을 반동으로 취급하고 사라져야 할 사상으로 본다. 당장 소련도 스탈린 이전에는 공용어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레닌의 민족해방론에 따라 기존 러시아 단일체제에서 여러 소비에트 공화국의 연합체제로 국체를 개편한 것에도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중국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초기에는 기존 중화민국 시기의 단일체제를 혁파하고 각 소수민족 자치지역을 부여하여 상술한 민족해방정책을 펼쳤다. 괜히 주체사상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가 사이비 공산주의 취급을 받는 게 아니다.[8] 대표적으로 사대부의 복장으로 널리 알려진 철릭은 아예 이름부터가 몽골어이다.[9] 다만 칭푸의 경우 후기 밍푸인 마몐췬(马面裙)이 그대로 계승되는 등, 확실히 만주족과는 구분되는 성질을 가졌다.[10] 연나라 복식. 연나라는 현재 허베이성에 있었던 나라로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11] 국부천대 이전 중화민국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시대를 말하며 청나라 말기와 합쳐 청말민초(淸末民初)라고도 한다. 중화권에서는 이 시대를 일본다이쇼 시대다이쇼 로망을 통해 추억하는 것과 비슷한 시각에서 추억거리로 삼는다. 자국이 근대화되면서 동서양의 문화가 혼합되기 시작한 시대라는 점에서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개화기라는 점이나 항일이라는 테마가 강조된다는 점에선 한국경성시대와도 유사하다.[12] 예를 들면 기모노도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 열도의 고온다습한 환경의 영향으로 소매와 바지통이 넒어지고 어깨나 겨드랑이 부근에 트임이 생기는 등 남방계 복식과 가까워졌다.[13] 조무령왕은 산더미로 쌓인 상소를 무시하고 아예 호복령을 반대하던 태자를 폐위하는 강경책을 펼치며 호복령을 밀어붙였다. 그야말로 당대 상식을 뒤엎은 개혁가였다.[14] 춘추시대만 하더라도 지금의 황허 일대는 수풀이 우거진 밀림지대에 가까운 식생이었다. 실제로 아직도 심심하면 당시의 코뿔소코끼리의 유골이 발굴되기도 한다.[15] 무엇보다 북방 민족들이 틈만나면 중국을 침공하고 약탈한 터라 중국인들에게서 북방 민족들에 대한 악감정이 심했다.[16] 이는 비슷한 시기의 서방(고대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의복의 형태가 치마이니 원래는 다들 남녀 할 것 없이 치마만 입고 다녔지만 추운 지방에 사는 북방민족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또 말을 타기 위한 이유 등으로 바지를 발명해냈다. 중국은 전국시대에 중원의 북방 기마민족들로부터 바지가 전해졌고 라틴족고대 로마 시대에 켈트족으로부터 바지가 전해졌다. 다만 초기에는 완전한 긴바지가 아닌 종아리를 드러내는 반바지였으며 긴바지는 게르만족으로부터 로마 후기에 전해진다.[17] 기존까지의 한복 고유 복식도 동시에 존재했다.[18] 일본 고분벽화와 일본서기 백제, 가야 관련 기록들로 확인할 수 있다.[19] 해당 일러스트 작가는 대만인이다.[20] 만약 한족 남성들이 한푸를 입다가 청나라 정부에게 발각당할 경우 아마 바로 처형당했을 것이다. 그나마 유교도나 도사, 승려들은 속발이나 아예 삭발을 하고 한푸를 입었지만. 남성 한족 전통 한푸를 유지시켜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만주족인데 만주족에겐 복식을 제한하는 법이 없어서 만주족 남성이 한족식 한푸를 입고 다녀도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륭제 초상화 중 한족 한푸를 입고 코스프레 그린 것이 있다. 정작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중화권 사극에 등장하는 만주족 캐릭터는 한푸를 입은 모습이 전혀 안 나오지만.[21] 고대 한국의 기본 복장도 바지-저고리 위에 포를 덧입는 것이었다. 유목 문화가 남아 있는 기마민족의 공통적인 복식 문화라 할 수 있다.[22] 여기서 말하는 '차이나 드레스'는 기존 치파오를 개량하여 타이트하게 만들고 여러 가지 디자인을 한 근세의 물건이다. 물론 현대에 개량된 치파오도 엄연히 그 원본으로 만주족의 치파오가 있기에,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의상이라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근세에 들어 한족-만주족 가리지 않고 중국 국적의 여성이면 치파오를 전통 의상으로 입게 된 역사가 오래지 않았다>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23] 현대 만주족은 언어, 문화적으로 한족에 거의 동화되긴 했지만 신부가 전통 혼례 복장으로 청나라 만주족 여성의 복장을 입는 점에서 한족과는 차별화된다. 한족계 무슬림회족도 한푸와 전혀 다른 형태인 자신들의 전통의상을 전통 혼례 복장으로 입는다.[24] 동남아시아로 간 화교 집단인 "프라나칸" 집단의 전통 혼례 복식은 청 시대의 아오췬과 매우 비슷하다.[25] 한복은 반대로 위에 저고리, 밑에 바지를 입는다 하여 상유하고(上襦下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