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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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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원과 역사
2.1. 한민족과의 관계
3. 생활상4. 역대 통치자5. 기타6. 대중매체 및 전설에서7. 같이보기


Scythians

1. 개요

나는 다른 점에서는 스키타이족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 가지 가장 중대한 인간사에 있어, 그들은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들을 능가한다. 그들이 해결한 중대사란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따라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략] 을 타고 을 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그들이 어찌 다루기 어려운 불패의 부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헤로도토스 《역사》 6권 46p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현대의 러시아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서북부 일대 스텝 지역에서 존속했던 이란계 유목민족이다.

스키타이족이 쓰던 스키타이어인도유럽어족 이란어군에 속했다. 오세트어가 이 언어의 후손 중 하나다.

2. 기원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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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러시아 남부, 캅카스 동부, 우크라이나중앙아시아의 스텝 지역에 거주했던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유목민족이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들 스스로는 스콜로트라고 불렀으며 스키타이는 그리스인들이 부른 말로 고대 그리스어로 '궁수'(Skuthēs, 스쿠테스)에서 유래했다. 페르시아에선 사카(Sakā)라고 불렀는데 뜻은 동일했다.[1] 스키타이와 국경을 마주하던 아시리아에선 '유목민'이란 의미의 아스쿠자이(Askuzai)라고 불렀다.

본디 이들은 그저 이란계 유목민족이었지만 기원전 11세기쯤 유입된 다른 이민족들과 섞이면서 '스키타이'라는 정체성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알려진 바로는 최초의 기마민족으로 채리엇이 아닌 직접 을 타고 이동하며 싸웠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한 기원전 9세기 즈음에 킴메르족이라 불리는 다른 유목민족이 있었는데, 스키타이인들과 경쟁을 반복하던 중 스키타이의 기술이 좋아지고 수가 많아지자 기원전 7~6세기에 걸쳐 킴메르인들을 캅카스 지역 너머로 몰아내고, 텅빈 캅카스와 카르파티아 산맥도 넘으며 동서남북으로 크게 세력을 확장시켰다.[2] 그러나 그 이후로 세력이 점점 줄어들더니 기원전 4세기에는 서방에서 몰려온 이민족들에게 서방 영토 일부를 빼앗기고, 결국 같은 어족에 속한 켈트족게르만족, 게타이족의 압박으로 서방의 영토를 영구히 상실했다.

스키타이는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넓혔는데 당시 동쪽에 있었던 스키타이 또는 샤카들의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할 때, 동쪽에서 흉노오손, 월지가 공격하여 남쪽인 그리스-박트리아와 파르티아로 옮겨가 두 국가를 침략했다. 한편 파르티아는 스키타이인들을 방어했으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은 멸망했다. 또한 스키타이들은 인도 북부에 있었던 인도-그리스 왕국도 쳐들어가 인도-스키타이 왕국이 되었으나 세력이 약해져 파르티아의 세력 일부분에게 멸망해 그 자리는 인도-파르티아 왕국으로 대체되었고, 그들이 페르시아화되었는지 멸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사라지게 되었다.

서쪽에 있었던 스키타이인들은 크림 반도와 그 근역에서 살아가다가 기원전 2세기에 세력이 약해지면서 분파 혹은 친척인 사르마티아인과 알란인에게 흡수되었다. 그 후손이 오세트인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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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게아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국과 전투를 벌인 기록도 있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흑해 지역으로 원정해 현 우크라이나 남부에 살고 있었던 스키타이족을 정벌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틈타 스키타이인들이 복수를 위해 마케도니아를 침략했다. 필리포스 2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가 기원전 329년 악사르테스 전투를 벌여 이들 스키타이인들을 물리치고 승리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3세는 굳이 동쪽의 스키타이 지역을 정복하려 들지는 않았고 적당히 체면을 세워주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그래서 스키타이인들은 자기들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물리쳤다고 주장하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2.1. 한민족과의 관계

'바지·저고리차림' 한복 원류는 스키타이 문화

학계에 따르면 한복의 원류는 중국이 아니다. 그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기원전 7∼3세기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활동한 유목 민족 스키타이(사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대 한반도는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복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바지저고리, 치마저고리와 같은 이부식(二部式·투피스) 차림새가 이때부터 형성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복식 전문가인 최은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 옷은 스키타이계 문화권에 속한다""스키타이는 말을 타는 유목 민족으로 오늘날 승마복처럼 발목 쪽으로 좁아지는 간편한 차림새가 특징"이라고 말했다.《한국복식문화사》를 저술한 김문자 수원대 의류학과 교수도 <고대 한복의 원류 및 세계화 속의 한복의 위치>라는 논문에서 "우리 한복의 바지, 저고리차림의 복장은 당시 스키타이족의 대표적인 복식"이라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우리 복식의 원류를 이루는 스키타이계 복장들은 몸에 꼭 끼는 형태로 기마 등 활동에 편리한 상의와 하의가 기본"이라며 "이는 당시 서양의 대표적인 복식인 그리스복과도 다르고 중국의 대표적인 복식과도 매우 다른 양식"이라고 설명했다. 피혁으로 바지통이 좁게 만든 '세고'[4] 양식이 대표적인 예인데, 고구려 고분벽화 인물도 등에서 발견된다. 반면, 당시 중국 한족(漢族)은 겉에서는 바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긴 길이의 겉옷을 착용했으며, 옷을 여미는 부분도 매우 길어 등 뒤로 돌아갈 정도였다. 춘추전국시대 공자나 노자를 그린 그림을 떠올리면 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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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생명공학과에서 검사해서 나온 DNA분석
2009년에 제작된 KBS의 <역사스페셜> - "신라 왕족은 정말 흉노의 후예인가?" - 편에서 제작진이 아시아 지역 고인골 샘플 2,000여 개를 보유 중인 중앙대학교 생명공학과에 신라인과 흉노의 유전적 근원성에 관한 DNA분석을 의뢰했는데, 스키타이인과 신라인의 유전자가 흡사하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신라인과 흉노의 DNA 일치성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뜻밖에도 모계 DNA와 부계 DNA 둘 다 흉노보다는 스키타이와 흡사하게 나왔다. 해당 영상에서 중앙대 이광호 교수는 자신도 뜻밖의 결과라 여러 번 반복 검증했지만 신라인과 스키타이인의 유전자가 유사하게 나온다는 인터뷰를 한다. (36분 16초)

현대 한국인의 조상은 알타이 산맥에서 대이동해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연구가 있다. 그렇기에 한민족의 언어, 문화, 정치적 계보는 고조선부여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연원을 두고 있다. 건국 신화나 국호도 부여와 연관지은 고구려와 백제는 말할 것도 없고, 신라 역시 고조선 유민들이 사로 6촌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5], 고고학적으로도 신라는 건국 당시부터 고조선계 문화였음이 확인된다. 이런 만주의 초기 한민족 문화는 북방 유목민 문화의 동쪽 끝자락에 닿아있었고 최소한 많은 문화적 영향을 주고 받았거나 아예 그러한 유목민 문화의 일파로 여겨진다. 이때 그 '초기 북방 유목민 문화'가 바로 문헌상 나타나는 제일 오래된 유목민 문화인 스키타이로 비정된다.

신라의 무덤 양식이라든가 신라의 금관, 황금 보검 등은 실제로 굉장히 유사하다. 특히 신라 금관에서 나타나는 장식들은 스키타이를 비롯한 유목민 문화에서 나타나는 사슴, 나무, 새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들이다. 그 외에도 고구려를 위시한 고대 한복의 모태가 스키타이였다는 것이 국내 복식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진다.#

흉노족 신라왕족설 등 신라를 흉노족과 연관짓는 설이 있으나, 유목문화와의 연관성은 신라 이전 고조선은 물론 부여와 부여에서 파생된 국가(고구려, 백제)에서도 발견된다. 신라 문화가 흉노와의 유사성이 보이는 것은 신라가 흉노에서 파생되었기보다는 흉노와 신라가 같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파생된 흔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3. 생활상

그리스의 역사가에 따르면 스키타이에는 네 가지로 구별되는 집단이 있었다고 한다. 남아서 농사를 하는 농경 스키타이[6], 그에 찬동하는 상공 스키타이, 그 외의 기타 유목 스키타이, 그리고 이 중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로열 스키타이였다. 그중 로열 스키타이를 위주로 한 집단이 승리를 거두고, 스키타이는 유목제국으로서 발돋움하게 되었다.

또한 이들이 남긴 자료나 물건, 외부의 자료 등을 조사한 결과, 스키타이인들은 금발에 튀어나온 광대뼈와 장신에 큰 체구를 지니고, 털이 많았던 편으로 추정된다.

그리스마케도니아와 인접하여 그리스 문화를 많이 받아들였고, 무역을 하며 동쪽 알타이 지방의 황금이나 모피들을 헬레니즘 국가의 황금 세공 물건들과 교환했다. 그래서 스키타이의 황금 문화는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황금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었다. 유럽 흑해 지방 드네르프강 유역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들이 남긴 황금 유물이 출토된다. 사카오르도스로 이어지는 황금문화의 원류격이다. 출토되는 황금 유물들의 수준이 무척 높은데, 이런 조형기술은 기원전 7세기부터 흑해에 정착한 보스포로스 왕국 같은 그리스계 국가들로부터 전수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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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내몽골 일대 오르도스 고원에서 출토된 장신구. 기원전 3세기~기원전 1세기 사이에 제작되었다고 추정된다.

흉노 연맹은 초창기에 스키타이계 유목민들의 문화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했던 것 같다. 고대 중국어로 기록된 흉노 인명을 분석해본 결과 기원전 2세기까지는 흉노에서 인도-유럽어에서 기원한 이름을 즐겨 썼다.

스키타이는 호전적인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에 다소 잔인한 문화가 있었는데, 전쟁에서 잡은 포로의 가죽으로 망토 등을 만들었다. 승리자가 부자라면 포로의 두개골을 눈썹 윗쪽을 잘라내고 가공해 도금해서 술잔으로 사용했다. 헤로도토스가 스키타이를 방문하고, 이 물건들을 체험한 뒤 평가를 남겼는데 만져보면 매끈거리고 광택이 났다고 기록했다. 또한 뜻이 맞는 자들끼리 모여서 우정의 맹세를 할 때는 커다란 질그릇에 자신이 가진 무기를 집어넣고 술을 부은 뒤 거기에 서로의 피를 흘려 넣고 주문을 외우며, 그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자가 그것을 마시는 것이 의식의 절차였다고 한다.

스키타이인들 또한 제사를 지냈는데 이들은 모든 동물을 제물로 바쳤지만 오로지 돼지만은 불결한 생물이라 터부시하여 제물로 바치지도 않았고, 돼지고기 역시 먹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모로 후대의 유대인이나 이슬람의 관습이 생각나지만 이들과 스키타이의 문화적, 유전적 연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7]

또한 천막안에서 연기를 피우고 이 연기로 몸을 씻는 '연기욕'을 한다고 헤로도토스는 기록했는데 아마도 유목생활의 특성상 물이 귀했기에 원시적인 사우나를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헤로도토스의 증언처럼 실제 고고학적으로 연기욕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터가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대마초의 잔여물이 발견되었기에 연기욕을 하는 과정에서 대마초를 넣으며 일종의 유희로도 즐겼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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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8]의 저자인 존 워리(John Warry)에 따르면, 스키타이인들은 활시위를 당길 때 다른 유목민족들과 달리 중지와 검지를 이용하는 오늘날의 양궁식 사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도리어 당시 그리스인들이 엄지와 검지로 활을 당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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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세 손가락을 줄에 걸고 당기는 지중해 방식(Mediterranean draw), 위력이 약한 활을 쓰는 남미 원주민들이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활줄을 꼬집듯이 당기는 핀치 방식(Pinch draw), 그리고 몽골을 비롯한 유목민들이 쓰는 방식인 엄지에 깍지를 끼고 줄을 잡은 뒤 나머지 손가락으로 엄지를 감싸고 당기는 일명 썸 링 방식(Thumb ring) 등의 세 가지가 있다.[9]

특히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방식이 현대 올림픽양궁으로까지 발전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아주 옛날에 만들어진 도자기 그림이나 벽화를 보면 그리스의 활쏘기 방식은 정말로 핀치 내지는 썸 링 방식이었든 듯하다. 정작 고대 유목민인 스키타이인들은 썸 링을 안 썼다. 사족으로 이 차이점은 활의 위력과 관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으로 활이 튼튼하지 않거나 줄 힘이 강하지 않으면 핀치 방식으로, 활을 무조건 강하게 멀리 쏴야 할 때는 썸 링으로 당긴다. 대표적으로 몽골 활은 활줄에 걸리는 무게가 무려 40kg대에 달하기 때문에, 썸 링 이외 다른 방법으로는 당기기도 힘들다.

거세마를 처음으로 만든 것도 스키타이인들이었다. 거세마는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으니 충동적인 성향이 덜하고, 기수의 통제가 용이하며 다른 말들이 근처에 있어도 주도권을 잡으려고 싸우거나 울지 않아서 무리를 지어 사육하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아주 먼 훗날의 스페인에서는 군마로 거세를 안 한 수말만 썼다는 것과 비교하면 대비된다.

4. 역대 통치자

※ 중간에 계보가 끊겼기 때문에 기록상 알려진 순서로 적었다.
Scythians
스키타이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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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이쉬파카
,2대,
프로토튀아스
,3대,
마뒤에스
,4대,
아리안트
,5대,
스파르가피프
,6대,
그누르
,7대,
사울리오스
,8대,
이단튀르수스
,9대,
아리아페이테스
,10대,
스퀼레스
,11대,
옥타마사데스
,12대,
아테아스
,13대,
아가르
,14대,
스킬루르스
,15대,
팔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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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야훼의 말이다. 북녘 땅 한 끝에서 한 강대국이 일어나 쳐들어온다. 활과 창을 움켜잡은 잔인무도한 자들이 설레는 바다같이 고함지르며 말타고 달려온다. 수도 시온아, 너를 쳐부수려고 일제히 무장하고 나섰다.
<예레미야> 6:22-23 (《공동번역성서》)

《구약성경》의 <예레미야서> 6장에는 북쪽에서 말을 탄 군대가 나타나 유다 왕국을 약탈할 것이라는 내용이 써있는데, 일반적으론 당대의 패권국인 아시리아신바빌로니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를 스키타이로 비정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근세의 서유럽에서는 러시아를 부르는 멸칭으로 '스키타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19세기에 민족주의 열풍을 탄 서양의 낭만주의 수정주의자들은 스키타이족을 잔인한 야만인에서 아리아인의 거칠고 자유로우며 민주적인 조상으로 변형시켰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시 대영제국에서도 샤론 터너와 존 윌슨 같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스키타이족을 자신들의 민족인 앵글로색슨족의 조상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었다.[10]

대낫(큰낫)을 영어로 Scythe 라고 하기 때문에 해당 단어가 스키타이와 "어원적인 유사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이도 있으나 별개의 어원이다. scythia는 위에서 언급한 인도유럽조어 (s)kewd-에서 왔고, scythe는 인도유럽조어 어근 sek-(자르다)에서 온 고대 영어 sīþe에서 왔다.

6. 대중매체 및 전설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에키드나헤라클레스의 자식인 스키테스의 후손들이라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이걸 포함해서 기원에 대한 네 개의 설을 소개했다. 영어위키백과에 나온다.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 트라키아의 왕 레소스가 주인공인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레소스》에서 레소스가 원래 예정보다 트로이 전쟁에 뒤늦게 참전했는데, 헥토르가 이를 질책하자 스키타이와의 전쟁 때문에 늦어졌다고 해명하는 대목이 있다.

만화 《히스토리에》에서는 주인공인 에우메네스의 출신으로 나오고, 스키타이의 왕인 아테아스가 잠깐 등장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의 아틸라 미션에서 스키타이 여전사(Scythian Wild Woman)들이 등장한다. 무슨 짓을 한 건지 길마다 시체들이 널려있으며, 만나면 일꾼을 달라고 한다. 일꾼을 일정수 갖다주면 일꾼은 나무하러 보내고 보수로 늑대와 자폭병을 준다. 결정판에서는 늑대와 자폭병 대신 만구다이 9개, 보강된 공성추 3개, 아나저 투석기 3개를 준다.

<로마: 토탈 워>에서 논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등장하며, 야만인 하위세력이다. 올팩션으로 수정해야만 플레이가 가능하다. <토탈 워: 로마 리마스터드>에서는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바뀐다.

<토탈 워: 로마 2> 유목민 문화팩 DLC에서 플레이어블 세력으로 등장한다. <토탈 워: 로마2/로얄 스키타이> 항목 참조,

<토탈워 트로이>에서 아마존 진영과 신화 모드의 아리마스포이들이 스키타이 문화권의 유닛이다. 아마존들이 스키타이계라는 학설에 따라 스키타이식 복장을 하고 있다.

<문명 6>에서 토미리스 여왕을 지도자로 하는 스키타이 문명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영화 <올드 가드>에서 주인공 "앤디"가 스키타이 출신으로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의 대전차미사일 Skif가 스키타이에서 이름을 땄다.

<워해머 판타지>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Warhammer)의 모티브가 되었다. 여기서는 고스포다르족과 쿠르간족의 조상격 민족으로, 오직 배경 설정에서만 등장한다.

오래 전, 국내의 토랜드에 '스키타이의 황금'이라는 텍스트 파일이 돌아다닌 일이 있었다. 아마 어느 작가가 소설을 썼다가 출판이 안 되어 그냥 웹 토랜드에 올린 모양인데, 스키타이족이 황금처럼 사용했다는 마약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스키타이' 표기에 관한 글.

7. 같이보기

중앙아시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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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둘 다 인도유럽조어에서 '쏘다'(Shoot)를 뜻하는 어근 (s)kewd-와 관련있으며, 이 어근에서 영어 shoot도 유래했다.[2] 기원전 8세기에 영토를 확장하면서 이에 겁을 먹은 메디아 왕국의 국왕이 대규모 침공을 단행했으나 격퇴당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명군다리우스 1세도 스키타이 정벌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유목민족 특유의 기동성을 이용해서 청야전술을 펼치며 치고 빠지는 전술을 행하자, 페르시아군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퇴각해야했다.[3] 오세트인이 스키타이의 후손들인 만큼, 그들의 언어인 오세트어 역시 스키타이어와 관련이 깊다는 설이 제기되었는데, 실제로도 오세트어가 스키타이어의 직계 후손임이 밝혀진 바 있다.[4] 細袴: 가는 바지[5] 마한 지역은 아예 고조선 왕이 직접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건마국, 준왕 항목 참고.[6] 일설에 의하면 이 농경 스키타이 주민들이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의 주류민족인 슬라브족이라고 한다.[7] 사실 유목민들은 공통적으로 돼지를 먹지 않는 관습이 있다. 키우는 데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드는 반면, 고기를 제외하면 유용한 자원을 얻을 수도 없고 노동력이나 이동수단으로 써먹기도 힘든 가성비가 심히 떨어지는 가축이었기 때문이다.[8] 한국어 번역본[9] 국궁의 활쏘기 방식도 썸 링이다.[10] 하지만 앵글로색슨족이 속한 게르만족과 스키타이족이 속한 이란족이 같은 인도유럽계 민족이라고 해도 촌수가 너무 먼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