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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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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Ἰερεμίας (Ieremíās, 고대)·Ιερεμίας (Ieremías, 현대)
라틴어 Liber Ieremiae[1]
영어 Book of Jeremiah
한자(한국어) 예레미야書
중국어 耶肋米亞
일본어 エレミヤ書 (エレミヤしょ)
기본 정보
저자 예레미야
기록 연대 B.C. 600년대
분량 52장
주요인물 예레미야

1. 개요2. 내용 요약 및 기독교적 해석3. 설명4. 새 언약5. 여담

[clearfix]

1. 개요

그 날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줄 내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 31장 33절 (공동번역 성서)
너는 나를 불러라. 내가 대답하리라. 나는 네가 모르는 큰 비밀을 가르쳐주리라.
예레미야 33:3 (공동번역 성서)

성경의 30번째/24번째 권이자 해당 책의 저자.[2]

본서는 아나톳에 살던 제사장 가문[3]인 힐키야의 아들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들의 간절한 회개와 심판을 촉구하고 새로운 믿음을 위해 쓰였으며, 서기관인 바룩의 대필로 기록하였다. 그는 유다의 멸망 직전에 활동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에 나타날 심판(멸망)만을 전했기 때문에 많은 핍박을 당하였다. 구약 시대 때 가장 고통스럽게 활동했던 선지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 자체는 유대의 부흥 운동이 실패한 후, 바빌로니아 군대를 피해서 이집트로 함께 갔다라고 마무리짓는다. 하지만 교회 전승에 따르면 도망친 유다인들과 이집트에 대한 징벌을 예언하다 결국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성서비평학적으로 1장부터 25장까지가 예레미아 본인의 저작으로 여겨지며, 이후 예레미아의 제자들이나 기원전 6세기의 신명기계 사가들에게 무수한 수정과 첨가를 겪었다고 본다. 특히 예레미아 25장은 신명기계 문헌의 영향을 대놓고 드러내며, 33장 14-15절은 포로기 이후 시대의 문체를 반영한다.

2. 내용 요약 및 기독교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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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데, 구약의 예언서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은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해석과 영적인 해석을 적절히 혼합하여 해석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3. 설명

본서의 내용은 예레미야의 소명(1장)으로 시작하여, 유다 백성의 범죄로 인한 야훼의 징벌(2~25장), 바빌론을 통해 나타날 멸망과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26~33장), 왕들의 불순종과 그로 인한 예루살렘의 함락(34장~38장), 예루살렘 함락 이후 남은 자들의 운명(39~45장), 아홉 이방 족속에 대한 야훼의 심판(46~51장), 유다 왕국의 종말(52장)로 끝을 맺는다.

내용만 봐도 90프로가 암울한 내용이니 예레미야가 당대에 활동할 적에는 핍박을 줄기차게 받아왔다. 제사장과 예언자들에 의해 소송을 당하거나(예레미야 26장 10~16절),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복종하는 것이 야훼의 뜻임을 선포하다 매국노로 찍히거나[5] (예레미야 27장 1~11절), 거짓 예언자들과 키배를 뜨게 되거나(예레미야 26~29장)[6], 반국가 사범으로 몰려 여러 차레 고문을 당하고 투옥을 당했다. 그래서 그를 눈물의 예언자, 수난의 예언자라 부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핍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과 이스라엘, 예루살렘이 당하는 야훼의 징벌에 대한 쓰라린 괴로움으로 인해 비통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참상을 직접 목격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의 사역 동안 유일하다시피 볕이 든 기간은 리즈 시절이었던 요시야 왕 때이다. 잘 알려진 대로 요시야는 평생 야훼에게만 충성하고 개혁을 일으켜 이교 숭배를 뿌리 뽑다시피 했던 왕이다. 요시야는 모세의 율법을 발견한 이후로 야훼가 결단한 멸망을 돌이켜 보려 무진장 애를 썼고 그중에서 예레미야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예레미야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가뭄에 비가 쏟아지는 듯한 감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는 이집트의 네코 2세에게 죽임을 당했고, 그의 막내아들 여호아하스도 이집트의 침공에 의해 폐위당하게 된다. 이집트는 여호야킴을 왕으로 세웠는데, 이 때문에 야훼 신앙 개혁 운동은 중단돼 버린다. 또한 이집트가 바빌로니아와 싸워야 한다는 이유로 전쟁 비용을 요구하면서 조세 부담도 늘어났는데, 정통성이 약한 그가 권위를 세운답시고 궁궐 공사나 벌이는 바보 같은 짓을 해서 백성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여기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다 보니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공개적으로 자기를 비난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예레미야를 눈엣가시로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 활동하던 화친파 예언자인 우리야가 정권의 핍박에 못 이겨 이집트로 망명했지만, 2600여년 뒤의 아이히만처럼 유다의 첩보원들에 의해 현지에서 체포되어 본국으로 압송된 후 처형당한 일도 있었다.[7] 다만, 우리야 사건은 당대의 일이 아니라 훨씬 후대의 일을 그 당시의 일로 윤색한 것이라는 견해도 보이는 편이다. 윤색한 이유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만큼 위험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역설적으로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에 대해선 보다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예레미야의 조언을 여러 번 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드기야(치드키야) 왕은 매파에 휘둘려서 예레미야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항전을 해서 예루살렘 사람들을 굶겨 죽게 만들고 자신은 두 눈이 뽑히고 아들들을 모두 죽게 만들었다며 비판을 하고 있다. 참고로 치드키야도 나름 복잡한 사정이 있었는데 여호와킴이 죽자 그의 아들 예코니야(여고니야)가 왕이 되었는데 바빌로니아군이 예루살렘을 침공해서 예코니아를 폐위시키고 그를 본토로 압송했다. 작은아버지 치드키야는 그렇게 되어서 왕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이집트군이 올라오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바빌론 군이 파라오 군대가 이집트에서 출동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물러간 때였다.
예레미야 37:5 (공동번역성서)

아직은 전면전을 할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퇴각을 명하면서 다시 친이집트파가 득세하게 되었다. 치드키야는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고 바빌로니아의 힘으로 왕이 된 그는 결국 바빌로니아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말한다. 내 뜻을 알고자 너희를 보낸 유다 왕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여라. 너희를 도우러 출동하였다는 파라오의 군대는 제 나라 이집트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바빌론 군은 되돌아와 이 성읍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불사르리라.
예레미야 37:7~37:8 (공동번역성서)

물론 이 소식을 들은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당연히 격노했고 제국과 이집트 사이의 완충 지대는 더 이상 필요없다고 판단하여 친정을 하게 된다. 그 결과는 보다시피 아는 대로...
나 야훼가 말한다. 내가 이 곳에서 너희를 지켜보고 있음을 보여줄 조짐은 이렇다. 이 조짐을 보거든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겠다고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줄 알아라. 똑똑히 일러둔다. 보아라, 이집트 왕 파라오 호브라를 죽이려고 벼르는 원수가 있는데 내가 이제 그를 원수의 손에 넘겨주리라. 유다 왕 시드키야를, 죽이려고 벼르는 원수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준 것처럼, 그를 넘겨주리라.
예레미야 44:29~44:30 (공동번역성서)

그런데 친이집트파는 왜 그를 몰아내지 않았냐면 요시아의 남자 후손은 그밖에 남지 않았고 그 밖에서 찾으려면 너무 혈통이 멀었기 때문이다.

한편, 백성들은 좋아했냐고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는데, 갈그미스 전투 이후 메소포타미아 땅으로 끌려온 유대인들은 얼마 안 있어 자신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70년 후에나 돌아갈 수 있다라는 예레미야의 말에 현지인들도 에제키엘을 포함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분노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선택받은 백성인데 그분께서 우리를 멸망시킬 리가 없지 않습니까?"라며 예레미야를 불신자, 패배주의자 취급을 했다.

결국 유다 왕국은 멸망했고 예루살렘은 파괴되었다. 그래도 네부카드네자르는 유대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고려해서 같은 유대인인 그다리야를 총독으로 삼았다. 하지만 방계 왕족 중 이스마엘이라는 사람이 그다리야를 죽이고 부흥 운동을 일으키다 실패해서 도주하고 가담은 하지 않았지만 총독 암살에 대해 바빌로니아가 자비를 베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이집트로 끌려가서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8] 참고로 전지전능하신 그분은 전쟁 중에 예레미야에게 부동산 거래를 시키는데(예레미야서 32장), 결국 땅 주인은 한 번도 자기 땅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단, 이 거래는 나중에 다시 팔레스타인 지방으로의 귀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레미아서에 미세하게나마 나오는 회복에 대한 내용과 연관되기도 한다.

뭔가 이렇게만 보면 예레미야는 친바빌로니아파의 거두로 보이지만 그 역시 그의 반대파들과 마찬가지로 유다의 존속을 희망하고 있었다. 망국을 겪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우리의 신이 우리를 언젠가 해방시키시리라고 선포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입장에선 심판을 피하기 위해 회개하라 할 땐 안 듣더니 막상 심판이 확정되어 지배받게 되는 것이 주의 뜻이니 그걸 선포하자 그걸로 매국노 취급을 하는 등 유다인들의 적반하장이 답이 없는 수준이다.[9] 그도 옳은 말 해봤자 얻어터지고 욕 먹는 신세에 울분이 터져 이젠 이 일 못해먹겠다고 여기다가도 내가 주님이 불어넣어주시는 이 마음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 사역을 계속하니 자신을 도와달라는 호소가 등장한다.(20:7~13)

예레미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칼, 기근, 전염병, 재난, 수치, 심판, 죄와 벌, 하느님의 말씀이다, 바빌론, 계약, 황무지, 내 말을 듣지 않았다이다.

4. 새 언약

앞으로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가문과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 나 야훼가 분명히 일러둔다.
예레미야 31장 31절(공동번역)

기독교에서는 새 언약에 대해 언급한 예레미야 31장 31절이 상당히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 문서 참조.

5. 여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내가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케 하던것 같이,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예레미야 31장 27-30절 (개역한글)
나의 백성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생수가 솟는 샘인 나[10]를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하여 물이 괴지 않는 팠다.[11]
예레미야 2장 13절 (공동번역성서)
야훼가 하는 말이다. 나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사람을 믿는 자들, 사람이 힘이 되어주려니 하고 믿는 자들은 천벌을 받으리라.[12]
예레미야 17장 5절 (공동번역성서)


[1] 약칭은 예레미아스(Ieremias).[2] "주님께서 세우신다."는 뜻을 지닌다. '눈물의 선지자'라는 호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3] 아비아달, 즉 엘리 가문의 후예란 설과 그렇지 않다는 설로 나뉜다.[4] 아몬드 나무가 히브리어로 '샤케드'(‎שָׁקֵד)이고, 지키다가 히브리어로 '쇼케드'(‎שֹׁקֵד)인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성 환상이다.[5] 당시 유다 사람들 입장에선 바빌론에 항복하라는 그를 매국노로 보았지만 당시 바빌로니아는 영토, 경제력, 군사력 등에서 남유다를 매우 압도했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에 대들어 봤자 오히려 남유다 영토 전체가 처참하게 짓밟힐 게 뻔했다. 실제로 예레미야애가를 보면 바빌로니아에 멸망당한 남유다의 참혹하고 공포스러운 장면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록되어있다.[6] 특히 하나냐와의 대결이 유명한데 하나냐는 예레미야가 목에 멍에를 메자 멍에를 빼앗아 꺾으면서 야훼께서 "2년 안에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망하게 하리라"는 황당무계한 거짓 예언을 한다. 그러자 참다못한 예레미야는 "야훼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어째서 백성들에게 거짓을 믿게 하느냐"며 화를 냈고 하나냐에게 금년에 죽으리라고 예언했다. 그로부터 2달 뒤 예언대로 하나냐는 그해 7월에 숨지게 되었다.[7] 예레미야 26:20~26:24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8] 다만 결과적으로 이집트로 망명 간 사람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는데 실제로 재침공은 일어났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또 잡혀갔다.[9] 판관기에서 나오지만 야훼는 징벌로서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게 하기도 한다.[10] 신학, 교리, 표적, 교회에서의 인정 등등 예수님이 아닌 기독교적인 무언가에게서 만족을 찾으려고 하게 되면 마음 속에 죄가 올라오게 되고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11] 예를 들자면, 의사와 같은 직업을 갖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이 아니고, 의사라는 직업이 자신의 인생을 보장해줄 것 같기에 의사가 되려고 하는 것이 저주받을 죄라는 뜻이다.[12] 하느님이 사람을 통해 도움을 주시기도 하지만, 먼저 죄를 회개하고 순수하게 하느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여 마음 속의 모든 죄들을 제거한 후에 믿음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즉, 우선적으로 순수하게 하느님만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진 채로 하느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 일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 까지는 괜찮지만, 스스로 판단하기에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그 사람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먼저 지닌 채로 그것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서 든든함을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