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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9:06:32

공동번역 성서

파일:bible-1297745_960_720.png 성경의 필사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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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특징
3.1. 번역 과정3.2. 매끄러운 문체3.3. 직역과 의역의 절충
4. 비판
4.1. 번역 문제4.2. 중립성
5. 사용
5.1. 간행 버전5.2. 판매 현황5.3. 채택 현황
6. 여담7. 관련 번역
7.1. 공동번역 성서 평양교정본7.2. 외국어 공동번역본들

1. 개요

공동번역 성서 전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공동번역 성서 전문 (대한성서공회)
공동번역 성서 초판 전문 (대한성서공회)

공동번역 성서(共同飜譯 聖書)는 대한민국가톨릭개신교교회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1977년 4월 10일 부활절에 편찬한 성경이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가톨릭개신교가 공동으로 작업한 번역본이다. 개역개정, 새번역, 새한글과 함께 대한성서공회가 편찬한 공식 번역이다.

가톨릭에서 사용하던 용어 '천주'와 개신교에서 사용하던 용어 '하나님'을 서로 양보했다.# 둘 다 사용하지 않던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현재 가톨릭이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므로 공동번역 성서를 처음 보는 사람은 '개신교에서 양보했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1]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편찬했다는 점에서 이미 널리 사용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시작부터 가톨릭용과 개신교용으로 분리 간행하면서 의미가 축소됐다. 가톨릭은 공동번역 성서를 수용하여 한동안 공식 성경으로 삼았지만 개신교에서는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한 교회가 전무하였다. 현재는 가톨릭도 자체 번역 성경을 사용하므로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하는 곳은 개신교 대한성공회한국 정교회[2] 뿐이다. 그래도 첫 출간 당시에는 4만부가 금세 판매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대한민국 개신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들이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도 태생적인 문제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한 대한성공회, 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같은 개신교이긴 하지만 대한예수교장로회와 성격이 많이 다른 교단이다. 구약이 만들어지던 시기에 있었을 리가 없는 '인권'[3]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보수적인 목사들이 공동번역 성서에 자유주의 신학이 들어갔다며 비판했다.[4]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한 성경 중 가장 쉽게 잘 읽힌다는 점은 주요한 장점으로 평가받는다. 직역과 의역을 절충하였기 때문이다.[5] 영어 번역본 중 NIV 성경을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의역을 절충한 성경들을 '형식일치번역(形式一致飜譯)을 피하고 내용동등성번역(內容同等性飜譯)을 채택한 성경'이라고 표현한다. 다만 미국에서 예배 때 킹 제임스 성경[6]을 사용하더라도 판매율은 의역이 절충된 NIV가 더 높은 것에 반해 공동번역 성서는 판매량마저 미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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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부분의 공동 번역을 진행하고 있는 천주교 원주교구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좌측),[7] 연합감리교회 곽노순 목사(중간),[8] 문익환 목사(우측)[9] 관련 자료

2. 역사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쇄신과 교회 일치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가톨릭개신교 사이에 교회일치운동이 일어나고,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개신교 측의 세계 성서공회연합회 사이에 성서 공동 번역에 대한 합의(Guiding Principles)가 이루어져 성서를 원전(原典)으로부터 새롭게 공역(共譯)할 것을 결의하였다.[10]

1968년 1월,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표로 구성된 ‘성서 번역 공동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971년, 부활절에 처음으로 공동번역 성서 신약성서가 나왔다.

1977년, 부활절에 구약성서 본문까지 번역된 전서를 간행하였다.

1995년, 공동번역 초판에 참여한 번역진 일부와 새로운 번역진이 모여 '공동번역 성서 개정위원회'를 발족하였다.

1999년, 달라진 한글 맞춤법을 반영하고 일부 오역을 수정한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야훼 용례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3. 특징

3.1. 번역 과정

구약은 Masoretic Text in Biblia Hebraica(3rd edition 1937) - edited by Rudolph Kittel, 신약은 The Greek New Testament (1st edition 1966) - United Bible Societies를 원본으로 사용하였다. 일부 구절은 70인역본을 기준으로 번역했다는 주석이 종종 보인다.

구약 파트는 가톨릭에서는 선종완 신부(원주교구)[11]가, 개신교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문익환 목사[12]가 번역 원고를 마무리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이현주 목사가 맞춤법을 교정하였다. 문익환, 곽노순 목사는 히브리어는 잘 알고 있었으나 아람어를 잘 몰랐기에, 다니엘서 등에 등장하는 아람어 부분은 사실상 선종완 신부가 전담했다고 한다.

신약 파트는 가톨릭에서는 성신교정의 교수였던 백민관, 허창덕 두 신부(서울대교구)[13]가, 개신교에서는 예장통합의 박창환 목사(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와 기장의 정용섭 목사(대한성서공회 번역실장)가 원고를 마무리하고, 영어영문학 교수들인 김진만(고려대, 성공회)과 이근섭(이화여대, 기감), 두 평신도가 맞춤법을 교정하고 윤문하였다. 번역 대표 중 코이네 그리스어를 제대로 번역 가능한 사람이 박창환 목사가 유일했기 때문에 나머지 대표들은 적절한 국어 표현을 연구하거나 불가타 등 다른 번역들을 비교, 대조하여 보충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 외에도, 여러 신부와 목사들이 공동번역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번역대표들의 번역을 지적하고 수정했다. 번역 과정에서 가톨릭 측은 상대적으로 불만이 적은데 개신교 측이 불만사항을 많이 제기해 이를 조정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3.2. 매끄러운 문체

아동문학가 이현주 목사와 시인 문익환 목사가 번역에 참여했고 많은 문인이 윤문하였다. 를 읽는 듯 뛰어난 문체와 정승, 거뭇, 잠뱅이 등 한국 정서에 맞는 어휘가 사용되어 한국어의 아름다움이 표현되었다. 개역개정의 옛스런 문체에 익숙하다면 가볍다고 느낄 수 있다. 공동번역 성서도 벌써 번역한지 50여년이 돼가면서 지금 기준으로 옛스러운 부분이 보인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고린도전서) 13장의 번역 비교이다.
개역개정 공동번역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2.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8.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9.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10.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개역개정은 90년대 후반에 개역한글을 수정한 역본이기는 하지만 옛스러운 문체와 단어가 남아있다. 개역한글의 저작권 만료와 표준 새번역의 보급 실패 때문에 대한성서공회가 임시방편으로 개역한글을 최소한만 수정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동번역은 어려운 단어를 길게 풀어 써 서민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체에 녹여냈다. 코린토스 지방 교회의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반영하여 '하십시오체'로 번역하였다. 공동번역의 다른 서간들도 '하십시오체'로 번역하였다.

3.3. 직역과 의역의 절충

직역과 의역을 절충한 성경인만큼 장단점이 있다. 직역에 비해 잘 읽히는 것이 장점이고, 의역하면서 번역자의 생각이 들어갈 여지가 있다는 것은 단점이다.

직역 위주 성경인 가톨릭 성경과 비교하면 공동번역이 더 잘 읽힌다. 로마서 1장 22절 비교이다.
가톨릭 성경 공동번역 성서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 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직역 위주의 가톨릭 성경에서는 앞서 사람의 어리석은 마음을 지적하는 내용이 나온 후, '그들'이라는 대명사로 인간들을 지칭한다. 물론 공동번역 성서에서도 사람의 우둔함을 지적하는 내용이 있는 건 같지만, 이어서 사람을 지칭할 때 주어를 '인간'으로 바꾸어 의역한다. 킹 제임스 성경 등의 영어 성서에서도 이 부분은 "they"로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이 구절만 따로 떼어서 볼 때, '그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제3자인 어떤 다른 집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고 이것은 나와는 상관없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또한 한국어에서는 3인칭 대명사의 사용이 드물기에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의역을 가미하여 주어를 바꾸어 번역한 것이 돋보인다. 이것은 이 부분의 전체적인 맥락이 그렇기 때문이며, 마음대로 바꾼 것이 아니다. 또한 그래서 더 이해하기 쉬운 것 또한 공동번역 성서의 장점이다.

4. 비판

4.1. 번역 문제

의역은 불가피하게 번역한 사람의 해석이 가미되는데, 공동번역도 주로 이 때문에 비판이 제기된다. 성공회 계열 출판사인 비아에서 발간하는 기독교 서적들에서도 공동번역 위주로 성구를 인용하면서도 의역이 심하다 싶은 구절들은 개신교 새번역 등을 인용할 정도로, 공동번역의 자의적인 의역으로 인한 논란은 여전하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가톨릭 성경)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개역개정)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새번역)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 (RSV)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공동번역)
요한복음 1장 5절

예를 들어 위 구절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톨릭 성경, 개역개정과 다른 말을 번역에 사용하고 있다. 단 이것은 변론이 가능한데, "이겨 본 적이 없다"는 말은 그리스어 ‘우 카텔라벤’(ou katelaben)을 옮긴 것으로, 직역하면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잡지 못했다'를 번역할 때 주로 '깨닫지 못했다'로 하고 있고, 예시에서 아래보다 위에 위치한 성경들이 각국에서 더 많이 쓰이는 성경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기지 못했다’는 번역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위에서 볼 수 있듯 다른 많은 번역 성경들에서도 공동번역 성서와 같이 번역하였고, 후자로 번역한 성경 중 RSV와 NRSV는 의역 위주는 커녕 직역 위주의 번역으로서 신학대학에서 성서 연구용으로 많이 쓰이는 성경이다.[14]

엄밀히 말하면 위 예는 의역의 예는 아니고 오히려 공동번역도 직역을 한 예인데, 다만 어의적으로 가능한 번역 중 번역자의 주관에 따라 부자연스러운 쪽을 택한 예이다. 진짜 문제는 다음과 같이 원문에 없는 표현을 넣는 경우이다.
사라가 두려운 나머지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부인하자, 그분께서 “아니다. 너는 웃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가톨릭 성경)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개역개정)
사라는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였다.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 (새번역)
But Sarah denied, saying, "I did not laugh"; for she was afraid. He said, "No, but you did laugh." (RSV)
그러자 사라는 겁이 나서 웃지 않았다고 잡아뗐으나, 야훼께서는 "아니다. 너는 분명히 웃었다." 하시며 꾸짖으셨다. (공동번역)
창세기 18장 15절

앞 단락을 간접화법으로 번역한 것은 공동번역 뿐이고, 뒷 단락에 '꾸짖으셨다'라는 표현을 넣은 것 역시 공동번역 뿐이다. 앞 단락을 간접화법으로 바꾼 것은 과잉친절이고 뒷 단락의 경우 번역자가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는 대신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는 셈이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가 꾸짖는 표현일 수 있지만 직역 중심의 역본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표현이다.

가톨릭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예레미야 1장 5절을 모호하게 번역하였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가톨릭 성경)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개역개정)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새번역)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공동번역)
예레미야 1장 5절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가톨릭 성경)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개역개정)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새번역)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공동번역)
요한복음 1장 1절

유명한 요한복음 1장 1절까지 이렇게 풀어서 의역할 필요가 있나라는 비판이 있다.

역시 유명한 창세기 15장 6절도 굳이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감이 다른 것을 넘어 이 부분은 칭의(稱義) 또는 의화(義化) 교리와 직접 연관되는 구절이다.
그가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갸륵하게 여기시어 (공동번역)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개역한글)
credidit Domino et reputatum est ei ad iustitiam (불가타)

그 밖에 원문에는 같은 단어이고 어려운 단어도 아닌데 굳이 번역자가 딴에 문맥에 따라 알기 쉽게 옮긴답시고 자신의 해석을 넣어 각각 다르게 번역하거나 심지어 생략한 것도 있다. 그 결과, 한마디로 말해 공동번역 갖고는 concordance(성구색인)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공동번역 개역한글 불가타
창 41:38 그리하여 파라오는 자기 신하들에게, "우리가 이처럼 신통력을 지닌 사람을 어디서 찾겠느냐?" 하고는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locutusque est ad eos num invenire poterimus talem virum qui spiritu Dei plenus sit
삼상 10:6 그 때 야훼의 기운이 갑자기 내리덮쳐, 그대도 그들과 함께 신이 들려 아주 딴사람이 될 것이오.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et insiliet in te spiritus Domini et prophetabis cum eis et mutaberis in virum alium
시 51:11 당신 앞에서 나를 쫓아 내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뜻을 거두지 마소서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ne proicias me a facie tua et spiritum sanctum tuum ne auferas a me
사 63:10 그런데도 그들은 거역하였다. 그의 극진하신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원수가 되시어 몸소 그들과 싸우셨다.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ipsi autem ad iracundiam provocaverunt et adflixerunt spiritum Sancti eius et conversus est eis in inimicum et ipse debellavit eos
미 3:8 그러나 나에게는 (?) 거역하기만 하는 야곱의 죄상을 밝히고 못할 짓만 하는 이스라엘의 죄를 당당하게 규탄할 힘과 용기가 차 있다.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verumtamen ego repletus sum fortitudine spiritus Domini iudicio et virtute ut adnuntiem Iacob scelus suum et Israhel peccatum suum

4.2. 중립성

신약 사본비평학의 대가 메츠거 박사 등 종파별 저명 성서학자들이 협업해 신학적 중립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영미권의 대표적 공동번역 성경인 NRSV[15]와 다르게, 이 공동번역 성서는 신학적 중립성을 위한 치열한 신학적 토론을 거친 번역이라기보다는 파트별로 개신교측 번역자와 천주교측 번역자가 역할 분담한 것에 가깝기 때문에[16] 그 부분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일례로,

5. 사용

5.1. 간행 버전

대한성서공회에서 이 성서를 간행할 적에 개신교용, 가톨릭용으로 분리해서 간행하였고, 개신교에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은 제2경전을 수록한 '외경 포함본'을 별도로 발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1971년에 먼저 발행된 신약성경에 관련 그림, 사진 등을 추가하여 '현대인을 위한 하느님의 말씀'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간행되었던 공동번역 판본은 다음과 같다.

현재 소량으로 판매 중인 판본은 외경(제2경전)을 가톨릭 성경 방식으로 배열하였지만 목차 페이지 상 목록옆에 괄호안에 외경 표시한 버전이다.

제2경전(외경)이 포함되지 않고 편집된 개신교용 공동번역 성서는 기장 교단 소속 일부 개별교회 등에서 사용했었지만, 현재는 개신교용이 절판되었다. 제2경전이 포함되어 편집된 가톨릭용 공동번역 성서 구판은 절판되었으나, 1999년에 출간된 가톨릭용 개정판은 아직도 대한성서공회에서 소량으로 출판되고 있다.

1977년 초판본의 경우 글자의 가로 폭이 크고[19] 단락 나눔 없이 편집되어 있어 책의 부피가 크고 페이지 수가 많았는데, 1977년판 가톨릭용 공동번역은 2,400 페이지가 넘었고 개신교용 역시 2,100 페이지에 달해 개역한글판 1,700여 페이지보다 많았다. 이후 1999년에 나온 가톨릭용 개정판은 글자의 가로 폭이 줄고 2단으로 편집되면서 다이어트어느 정도 얇아졌다.

공동번역의 구약성서 제2경전/외경 부분은 1977년 초판에서 구약과 신약 사이에 제2경전(혹은 외경) 파트로 별도 수록되었으나, 1999년 가톨릭용 개정판에서는 노바 불가타의 구약 목록에 따라 구약으로 통합 재편성되었고, 현대의 표준어 맞춤법에 따라 일부가 수정되었다(예: ~읍니다 → ~습니다). 에집트도 이집트로 개정되었다.

5.2. 판매 현황

2005년 한국 천주교가 자체 번역으로 갈아타면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어 현재는 소량만 간신히 발매되고 있는 중이다.

제2경전(외경)이 포함되지 않고 편집된 개신교용 판본과 가톨릭 제2경전이 노바 불가타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가톨릭용이라 표기된 가톨릭용 판본은 절판되어, 지금은 가톨릭용 판본에서 가톨릭용 표기가 빠지고 목차에서 '(외경)' 표시가 추가된 판본이 대한성서공회에서 소량 출판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가톨릭용 판본과 거의 같다. 신약성경만 있는 판본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며 가톨릭 계열 출판사들의 공동번역 성서 역시 이미 모두 절판되었다. 2023년 기준 공동번역 성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Yes24, 교보문고, 알라딘과 같은 주요 인터넷 서점과 대한성서공회 직영점, 성공회 성당 내 성물방과 성공회출판사 공식 온라인 스토어 정도이다. 2018년 12월 당시 인터넷 서점 물량이 매진되었지만 대한성서공회 측에서 또 찍어내어 2018년 2월말부터 다시 구입 가능. 다만 기존의 대형 판본(1900여 페이지)[20]은 한때 절판되었고, 판매 중인 것은 2001년에 디자인된 중형 판본(1350여 페이지)이다. 교보문고. 2023년부터는 대형 판본도 다시 인쇄되어 판매 중이다. 현재 인조가죽 판본은 성공회용만 있다.[21]

성공회 성당 성물방에서 판매되고 있는 공동번역 성서는 내용은 기본적으로 인터넷 서점 등에서 파는 공동번역 성서와 동일하다. 목차에서 외경 부분에 따로 표시가 되어 있는 것도 같다.[22][23] 또한, 반달 색인이 파여 있고, 커버가 비닐이 아닌 인조가죽이라는 점도 다르다. 성공회 서울대성당 곳곳에 비치된 성경은 가톨릭용 1999년 개정판이 아닌 가톨릭용 혹은 외경 포함본 초판(1986년에 조판된 버전)인 것들이 많다.

5.3. 채택 현황

현재 한국 기독교에서 공식적으로 공동번역 성서를 표준 성서로 채택하는 교단은 대한성공회[24]정교회뿐이다. 이외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중 교회 극소수가 채택하고 있다. 이외 교단에서는 예배에 사용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

출간됐을 때부터 개신교 교단은 하나님 대신 하느님, 여호와 대신 야훼를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표현하였다. 또한 주류 교단에서는 번역에 참여한 문익환 목사를 민중신학의 대표 인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가톨릭에서도 불만이 있었다. 가톨릭용에 있는 구약 중 제2경전은 라틴어 노바 불가타(Nova Vulgata) 순서대로 배열된 게 아니라 따로 빠져 카테고리가 뒤죽박죽이었다.[25] 이는 특히 가톨릭 버전의 구성이 복잡한 에스델기 독서에 문제가 되었다. 시편 번역을 만족스럽지 않게 생각해서 공동번역 성서 출판 후에도 최민순 사도 요한 신부의 시편 역본을 계속 사용했다. 후에 개정판(개정된 표준어 맞춤법이 적용되었다)이 나오면서 순서를 라틴어 불가타순으로 맞추었지만, 2005년부터 한국 가톨릭에서는 자체적으로 새로 번역한 '성경'을 표준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개신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 가톨릭만 계속 개신교 단체인 대한성서공회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것도 지적 사항이었다.

교회 일치를 강조해야 하는 문서에서 의도적으로 공동번역 성서를 선택하여 인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톨릭개신교가 함께 만들었고, 성공회정교회도 쓰고 있는 성경이다 보니, 문서 인용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되는 곳에서도 성경 구절을 들어야 할 때 공동번역 성서가 좋은 선택지가 된다. 각 교단마다 공동번역 성서에 불만이 있지만 가톨릭 성경과 개신교 개역개정 간의 격차가 크고, 공동번역 성서가 한국어로서 현재 유일한 초교파적 번역이기 때문에 특정 교파가 아닌 기독교 공통적인 맥락에서 성서를 인용할 때 이만한 번역이 없다.

6. 여담

7. 관련 번역

7.1. 공동번역 성서 평양교정본

북한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는 공동번역 성서를 문화어로 교정한 번역본을 내놓았는데 편의상 공동번역 성서 평양교정본이라고 한다.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은 공동번역 성서를 북한 문화어 철자법과 표현법으로 교정하면서 일부 어휘는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성경의 어휘를 차용했다. 구약성서를 1983년, 구약성서를 1984년에 출판했으며, 신·구약 합본 성경전서를 1990년과 2008년 출판했다.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이 한국의 많은 성경 역본들 가운데 왜 공동번역 성서를 기반으로 성경 출판을 단행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시 다른 개신교판 번역이었던 개역한글판 성경의 문체·단어가 고풍스럽고 어려웠다는 점, 공동번역이 문자가 아닌 의미 위주의 번역을 함으로서 북한에서도 받아들이기 편했다는 점, 당시 북한 정치인과 종교인들에게 익숙한 문익환 목사가 번역에 참여했던 점 등이 그 이유로 추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공동번역 성서 평양교정본의 일부 어휘는 개역한글판 성경의 어휘를 차용하는 등 다른 한국의 성경 역본 또한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공동번역 성서를 북한 문화어 철자법과 표현법으로 교정한 사람은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소속 이영태 목사라고 한다. 그는 일제강점기 장로교인으로서 영어에 능통하였으며 일제강점기의 미국인 선교사 이눌서의 조수로 활동했다. 남북분단·한국 전쟁 후에도 월남하지 않고 북한에 남아 평양신학원 교수 등 조선그리스도교련맹 간부로 활동했다. 그는 성서 편집 작업 외에도 평양신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교회사》, 《세계교회사》, 《조직신학》, 《조선기독교도연맹 약사》 등 몇 권의 신학 서적을 저술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북한에 3만 5천 부의 공동번역 평양교정본 성경이 배포되어 있다. 1983년과 1984년에 조선기독교도연맹에서 신,구약 별권으로 각각 1만 부를 발행했고, 1990년 조선기독교도연맹에서 신,구약 합본을 1만 부 발행했다. 2010년에 조선그리스도교련맹에서 추가로 신,구약 합본을 발행했다. 현재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소속 봉수교회·칠골교회·가정예배처소들과 조선가톨릭교협회 소속 장충성당 및 가정 공소들, 조선정교회연맹 운영 정백사원에 배포되어 있다.

공동번역 성서 평양교정본은 공동번역과 본문 번역의 어순과 의미에서 거의 대부분 일치하지만 표현 방식에 있어 북한 사회에서 사용하는 문화어로 다듬어져 있다.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대한성서공회 성서학도서관은 북한에서 출판된 1983년판 신약성서·1984년판 구약성서·1990년판 성경전서를 소장하고 있다. 1990년판 성경전서는 여러 종교 관련 방북자들이 이를 구했기 때문인지 인터넷 서점이나 인터넷 경매소에 가끔 판매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7.2. 외국어 공동번역본들

영미권에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편찬한 일종의 공동번역 영역본이 존재한다. 원래 개신교 번역으로 발간되었으나 추후에 가톨릭교회의 승인을 받은 NLT, ESV와 같은 성경은 여기서는 제외한다.

독어권에도 공동번역이 존재한다.


[1] '천주'라는 용어는 사도신경에서 '전능하신 천주 성부'라는 것에서 남아있다.[2] 이마저도 콘스탄티노플측 뿐이며 러시아 정교회 한국지부에선 한국 천주교 성경을 사용한다[3] 신명기 24장 17절. 떠돌이와 고아의 인권을 짓밟지 마라. 과부의 옷을 저당 잡지 마라.(공동번역) /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개역개정)[4] 대한예수교장로회가 개신교 자체 번역인 새번역 성경도 거부하고 1938년 이래 개역 성경만 예배에 사용하고 있는 점은 참고해야 한다.[5] 또 문장 자체가 수려한 것도 이유일 수 있다. 가톨릭, 개신교 문인이 여럿 참여하여 번역문을 돌려 읽고 문장을 다듬었기 때문이다.[6] 킹 제임스 성경이 직역 중심 성경은 아니다. 옛날부터 사용해온 역사성 때문에 계속 예배에 사용하고 있다.[7] 선종완 노렌조 신부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가톨릭대학 신학과 교수였으며 공동번역 성서가 출판되기 1년 전에 지병이던 간암이 성서 공동번역 과정 중 과로로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문익환 목사의 경우는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투옥되는 바람에 두 번역자 모두 공동번역이 출판되는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었다.[8] 당시 미국 남감리교대학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구약학 석사. 1979년에 하트퍼드 감리교신학대학원(Hartford Methodist Seminary)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기독교대한감리회로 전입, 목원대학교 교수가 된다.[9] 당시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 교수(구약학). 배우 문성근의 부친이기도 하다.[10] 당시 결의된 내용은, 양측의 다른 용어들을 최대한 통합하여 한 단어를 두고 다른 표기를 쓰지 않도록 하고, 공동번역의 저작권은 가톨릭이 갖지 않고 각국 성서공회에 양보한다는 것 등이었다. #[11] 선종완 신부가 원고를 내고 얼마 안 가 사망하는 바람에, 신약 파트를 번역했던 백민관 신부가 후견인을 맡아주었다.[12] 이 쪽은 당시 수감된 상태여서, 번역 과정에 동참했던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곽노순 목사가 후견인을 맡아주었다.[13] 김창렬 신부도 참여했었다가, 가톨릭대 학장을 맡게 되어 중도 하차했다.[14] 첨언하자면, 재미있는 점은 위의 예시를 보면, 국문이든 영문이든 중문이든 '이겨본 적이 없다'/'has not overcome'/'胜过' 등 마치 현재완료형 같은 의미로 번역한 성경이 있고, '이기지 못하였다'/'did not overcome it'/'胜' 등 기본형으로 번역한 성경이 있다는 것이다.[15] 자유주의가 묻어난 번역이 있다는 지적은 들어도, 개신교 내지 천주교 편향 번역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중립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리고 의역이 심한 공동번역 성서와 다르게 의역이 가미된 직역 중심적 번역이다.[16] 윤문, 검토도 번역상 신학적 중립성 유지보다는 보다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으로 다듬기 위주였다.[17] 개신교 새번역, 개역에서는 '오는 세상'. 현대 영어성경에서는 in the age to come.[18] 가톨릭용이라는 문구는 사라졌고 목차에서 괄호안 외경 표시가 추가된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19] 1977년 당시는 아직 세로쓰기 영향이 남아 있어 인쇄 활자들의 가로 폭이 지금보다 컸다.[20] 책 옆 여백에 색인이 없어서 찾기가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21] 천연가죽으로 된 가톨릭용 판본은 중고로 구해야 한다. 2005년까지 나왔는데 묘하게도 2005년 전후는 성경과 사전 모두 천연가죽에서 인조가죽으로 교체되던 시기다.[22] 성공회가톨릭의 제2경전을 정경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장로회 등 주류 개신교 교단처럼 '읽을 가치가 없는 문서'로 평가절하하지 않고, 일부 구절을 독서본문에 포함시켜 매 전례에서 봉독하고 있다.[23] 2005년까지는 대한성공회에서 가톨릭용 판본을 그대로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24] 단 신세계역 성경을 제외한 다른 판본의 성경 사용도 허용한다.[25] 불가타(Vulgata)는 가톨릭 전례용 표준 성경인 라틴어 성경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정 작업을 거쳐 현재는 1979년에 개정 공포된 노바 불가타(Nova Vulgata)가 쓰이고 있다. 공동번역 성서가 노바 불가타보다 먼저 간행되었으므로 노바 불가타의 순서를 따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 사실상 노바 불가타나 공동번역 성서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으로 탄생한 것으로 작업된 시기 또한 겹친다. 결국 가톨릭 측의 요청으로 1999년에 개정판이 나왔다.[26] 이 어휘 문제 때문에 대한성공회에서도 사제가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으로 일부러 바꿔서 봉독하기도 한다.[27] 사실 오역이라기보다 완곡어법에 더 가까운 워딩이다.[28] 사실은 2010년대 영어가 아닌 1960년대 영어 어투라는 지적은 있다.[29] '메인라인(Mainline)'은 미국 개신교 내 메이저 교단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메인라인(Mainline)' 교단은 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교단들 중 특정 교단을 의미하는 단어다. 감리교는 지금도 미국 내 개신교 교단 중에서 메이저 교단이지만 나머지 '메인라인(Mainline)' 교단들은 현재 미국 개신교 내 메이저 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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