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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3:46:30

봉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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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북한 국기.svg 평양시의 종교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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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교회
鳳岫敎會
Bongsu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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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185064443.jpg
▲ 봉수교회의 모습
<colbgcolor=#E8E8E6,#222222><colcolor=black,white> 설립 1988년 11월 6일 ([age(1988-11-06)]주년)
2008년 (재건축)
종교 [[개신교|
파일:75px-Christian_cross.svg.png 개신교
]]
소속 조선그리스도교련맹
대표자 송철민 (담임목사)
주소

봉수교회
(평양시 만경대구역 건국동)
1. 개요2. 실체3. 교회 신도에 대한 의견
3.1. 친북단체의 주장3.2. 유엔 인권이사회와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정보센터의 근거3.3. 탈북민들의 증언3.4. 기타 학자의견과 재외교포들의 증언3.5. 서울대학교 김병로 교수의 의견
4. 역대 담임목사5. 기타

[clearfix]

1. 개요

북한의 종교시설. 평양시 만경대구역 건국동에 있다.

개신교 소속 교회로서, 한국전쟁 후 최초로 북한 땅에 설립된 예배당을 가진 교회이다. 1988년 봄에 완공되어 11월 6일 첫 예배를 드렸다. 북한에는 예배당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 교회가 칠골교회와 봉수교회 둘 뿐이었다가 2005년에 제일 교회가 설립된걸로 알려졌다.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외에 조선그리스도교련맹에 소속된 가정 예배처소들이 있다. 가정예배처소의 존재에 대해서는 남한에 침투했다가 체포된 후 전향한 신평길의 증언이 있으나 통일연구원 북한인권 백서에선 실체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 두 곳 외에도 예배당이 있는 개신교 교회가 더 있으나 나머지는 모두 금강산 관광, 경수로 공사, 개성공단 운영을 위해 방문 했었던 한국 사람들을 위한 교회였고 현재는 모두 운영이 중단 된 상황이다.

북한 유일 공인 개신교 단체인 조선그리스도교련맹에 소속되어있다.

2. 실체

북한 당국은 교회, 성당, 사찰을 해외 종교인 및 관광객 등 방문객을 대상으로한 정치적 목적의 대외선전용 시설로 활용해 왔다. 새로이 신축된 종교시설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출입이나 접근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고, 인근 주민들은 종교시설을 ‘외국인 참관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1988년 9월에 세워진 평양 봉수교회의 경우, 평상시에는 관리원 가족만 거주하고 있으나, 외국인 참관 시에는 만경대구역 내 동사무소 근무자등 노동당에서 엄선한 40~50대의 남녀 수백 명이 위장예배를 보고 있다고 한다. 북한을 방문한 외국 기독교인들이 부활절 일요일에 사전 협의 없이 교회를 방문했다가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많은 외국 방문객들은 교회활동이 연출된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2021년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
파일:external/nk.chosun.com/church2.jpg
파일:external/www.tongilnews.com/114948_48031_4355.jpg
<colbgcolor=#E8E8E6,#222222><colcolor=black,white> 2008년 재건축 전 봉수교회 모습

평양시 만경대구역 건국동(옛 봉수동) 보통강변에 있다. 봉수교회 양 옆에는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중앙위원회 청사와 평양신학원이 있고, 뒤편에는 목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봉수교회는 북한 정부의 지원과 교인들의 모금으로 1987년 착공해서 1988년 봄에 완공되었다. 첫 예배는 1988년 11월 6일 드려졌다. 당시 북한 정부가 봉수교회 건립을 지원한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대외적인 선전의 필요성, 두 번째는 대내적인 유화책이다.

첫 예배 설교는 김운봉 목사가 맡았으며, 북한 체류 중이었던 캐나다교회협의회(Canadian Council of Churches) 방북단 등 외국인들도 예배에 참석했다.

2000년대 들어서 예배당 노후화 문제가 제기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국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지원을 받아 2006년에 재건축을 시작해서 2007년에 재완공되었다.

봉수교회 현 예배당은 3층으로 되어있다. 1층에는 사무실, 당회실, 접견실, 성가대실, 화장실을 갖췄고 2층에는 1,000여개 좌석을 갖춘 예배실이 있다. 3층에는 2백석 규모 좌석과 방송실과 자모실이 있다. 그 외에도 음향 및 영상, 동시통역, 냉난방, 보일러, 비상발전, 전압승압 시설을 구비했다.

매주 오전 10시에 열리는 주일예배에는 북한 교인 뿐만 아니라 북한을 방문한 관광객, 사업가, 외교사절들과 북한에 주재하는 외교관, 국제기구 직원, 평양과학기술대학 교수·직원 등 외국인들도 참석한다. 북한이 아무리 폐쇄적인 국가라고 할지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독교인인 외국인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에 거의 매주 외국인들이 예배에 참석한다고 선전하나.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와 외국인들의 증언으로는 부활절날 예고없이 찾아갔더니 굳게 닫혀있음을 목격했다고 증언하기 때문에 매주 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외국인 목사와 NGO에서 예배를 열려면 통일전선부에 몇만달러 이상 먼저 선입금을 해야 한다. 이는 캐나다 출신 목사로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집전해본적이 있고, 별개로 NGO 활동으로 10여년간 북한에 구호 사업을 통해 5천만 달러 이상을 지원하고도 3년 이상 억류된 임현수 목사를 포함한 일관된 증언이다.

봉수교회의 북한 교인들은 주일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평일 조별모임, 일종의 구역예배도 예배당에서 가진다고 주장한다. 교인은 300여 명이며, 직분자로는 장로 9명·권사 14명·집사 5명이라고 한다..


2012년 9월 30일 봉수교회 주일예배 영상. 손효순 목사 집전. 그는 2013년 4월 사망했다.

3. 교회 신도에 대한 의견

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 봉수교회를 비롯한 장충성당, 보현사 정백사원등의 종교 단체와 시설은 통일전선부에서 관리하는 어용조직이거나 시설이라는데에 있어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는 신도중에 진정한 신자도 일부 존재한다고 보는 김병로 교수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목회자나 승려등 종교인들도 김일성대 종교학과에서 일괄배출하는것도 잘 알려져있다. 다만 신도 전체가 가짜인지 여부는 의견이 약간갈린다.

3.1. 친북단체의 주장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수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2019. 8. 개정)

3.2. 유엔 인권이사회와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정보센터의 근거

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입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면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하려는 의욕이 없어지게됩니다. 결국 종교는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로동당출판사, 김일성저작선집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3.3. 탈북민들의 증언

3.4. 기타 학자의견과 재외교포들의 증언

국내 연구자들의 주장 역시 북한과 종북단체의 주도로 초청된 재미교포나 진보단체의 증언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다지 신뢰하긴 어렵다. 북한에서 초청할 정도의 교포나 NGO, 종교인이라면 이미 통일전선부에서 성향파악이 완료되어 북한에 도움이 될 만한 인물을 초청하고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지정된 장소와 사람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불쑥 가정집에 방문해봤다고 해봤자 이미 섭외돼서 몇달간의 학습이 완료된것. 북한과 종북주의자들의 논리가 "태영호와 탈북자들은 북한에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있으며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 북한의 종교 탄압에 대해선 잘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초청식으로 섭외된 재외교포들이야 말 할것도 없다.

3.5. 서울대학교 김병로 교수의 의견

북한 개신교 연구자 서울대학교 김병로 교수에 따르면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이 개신교 신자들의 자발적 의사로 조직된 교단은 아니나, 그렇다고 한국 정보기관이나 탈북자 측 주장처럼, 종교와 전혀 관련 없는 조선로동당 당원들의 동원으로 조직된 교단도 아니라고 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봉수교회를 포함하여 조선그리스도교련맹 활동이 북한 정부 및 당의 통제와 동원 아래 있음은 맞지만 그 구성원들은 한국전쟁 전(前)부터 믿던 개신교 신자거나 그 자녀들이라고 한다. 2002년 12월 11일 김병로 교수 본인이 방북 중 평양 대동강구역 옥류가정예배처소를 방문하면서 강량욱 목사 동료였던 강병석 목사의 딸 강세영 장로를 만나기도 했다. 그는 강세영 장로와 만난 자리에서 몇몇 주제로 진솔하게, 심지어 조만식 장로에 대해서까지 대화를 나눴다. 다만 조만식 장로가 북한과 김일성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는 다 알려진 사실이고 조만식 같은 독립유공자도 그럴진데 나머지 신자들의 운명은 뻔 하다.

2020년 4월 출판된 김병로 교수의 저서《그루터기》에는 탈북자로서는 아주 드물게 공인 종교단체 조선그리스도교련맹 교인 집안 출신 증언이 나오는데, 제한적이긴 하지만 1978년 혹은 1980년부터 북한 당국 허락으로 조선민주당평양시인민위원회 간부였던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인 할머니가 가정예배처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 증언에 의하면 봉수교회 건립 전이라 할아버지의 집 일부를 작은 예배당으로 꾸려 사용했다고 하며, 성서·피아노를 비롯하여 '기독교에 관한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허락받은 교인방북 외국인전도는 금지되었으며, 할아버지는 가족 중 아들이나 조카가 자신의 대를 이어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일'을 맡아주길 바랬지만 둘 다 본인이 강하게 거부하거나 집안 나머지의 반대가 극심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정작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성서와 이화여자전문학교 출신 할머니가 흥얼거리곤 하던 찬송가에 관심이 있던 증언자 본인은 조부모의 거절로 공인 종교단체 교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 어쨌든 이 증언에 따르면 적어도 1980년대 초반에는 합법 가정예배처소가 존재했으며, 공인 종교단체 신자는 전쟁 전 교인이거나 최소한 그 인척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병로 교수는 조선그리스도연맹이나 봉수교회의 실체는 공산당 어용조직으로 보며 "북한 당국이 완전 장악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김교수는 어용 교회 신도들이 아니라 정권의 혹독한 압박과 탄압 때문으로 지하에 있는 7만여명의 지하교회 신도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보며 2020년 인터뷰에선 "비판적인 측에선 북한 당국의 정치적 통제 목적 달성을 위해 교회가 존재한다고 보겠지만 자신은 그것만이 100%는 아니라고 본다"며 밝혔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종교의 자유를 부정하고, 봉수교회등의 종교시설도 어용교회임을 인정하지만 다른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취지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라고 분류했던신도 대다수가 예수란 말을 북한에서 전혀 듣지 못했다. 대신 ‘하늘은 다 듣고 있으니 하늘에 빌라’는 식의 신앙이라고 설명했다.

4. 역대 담임목사

봉수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는 김일성의 친척이며 담임 선생님으로 부주석을 지낸 강량욱 목사의 아들 강영섭 목사이다. 그 후 리성봉 목사, 손효순 목사를 거쳐 현재 담임목사는 송철민 목사이다.

5. 기타

봉수교회에는 여러 명사들이 방문했다. 빌리 그래이엄 목사, 그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이엄 목사, 문익환 목사, 향린교회 전(前) 담임목사 홍근수 목사의 형 재미동포 홍동근 목사 등이다.

탈북 후 침례교인이 된 태영호의 간증에 따르면, 봉수교회가 세워진 지 몇 년이 지나자 주일 11시쯤 되면 일찍부터 나와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나, 교회 주변을 맴돌다가 예배 시간이 되면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사람들 중에서는 출신 성분이 좋은 간부의 부인들도 많았다. 태영호가 그 중에 한 사람을 붙잡고 예수를 믿는지 여부를 물어봤더니, "나는 예수를 믿는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평양에 교회가 세워지기를 40년 동안 기도했고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라고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 문제는 북한에서 사과는 비싼건 둘째고 구하기도 힘들다. 굉장히 귀하다.[2] 당시 북한 외교관,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NISS) 수석연구위원 김동수 박사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