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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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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어 Buddhisme / Agama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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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핵심 교리
2.1. 무아(無我)2.2. 변(變)2.3. 탐진치(貪瞋癡)2.4. 명상(冥想)2.5. 명색(名色)2.6. 오온(五蘊)과 카르마2.7. 연기(緣起)2.8. 공(空)2.9. 유식(唯識)2.10. 이타심2.11. 상징2.12. 결단2.13. 현실2.14. 종합
3. 주요 특징4. 각종 오해와 통념5. 분파6. 역사7. 불경
7.1. 근본 불교7.2. 부파불교7.3. 대승 불교
8. 성지9. 부처10. 대한민국에서의 불교11. 대한민국 불교 유튜브 채널12. 관련 용어
12.1. 부처, 승려 등을 뜻하는 용어12.2. 교리 관련12.3. 수행 관련
13. 관련 인물
13.1. 석가모니와 불제자13.2. 고승 및 불교 사상가
13.2.1. 인도13.2.2. 중앙아시아13.2.3. 중국13.2.4. 한국
13.2.4.1. 근현대
13.2.5. 일본13.2.6. 베트남
14. 부처들과 보살들, 그 외의 신들15. 불교에 영향을 받은 종교와 사상(가)
15.1. 종교15.2. 사상(가)
16. 불교 신자17. 타 종교 간의 관계18. 기타19. 관련 문서20. 둘러보기

1. 개요

自歸依 法歸依 自燈明 法燈明
𑀅𑀢𑁆𑀢𑀤𑀺𑀧𑀸 𑀯𑀺𑀳𑀭𑀣 𑀅𑀢𑁆𑀢𑀲𑀭𑀡𑀸 𑀅𑀦𑀜𑁆𑀜𑀲𑀭𑀡𑀸 𑀥𑀫𑁆𑀫𑀤𑀺𑀧𑀸 𑀥𑀫𑁆𑀫𑀲𑀭𑀡𑀸 𑀅𑀦𑀜𑁆𑀜𑀲𑀭𑀡𑀸[5]
스스로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라. 스스로를 진리의 등불로 삼아, 그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라.

《대반열반경》, 석가여래의 마지막 설법 자등명 법등명(상세내용)[6][7]
불교(佛敎)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8]이다.

종교라는 한자어를 맨 처음 만들어낸 종교이기도 하다. 이는 '유교, 도교, 경교 등은 모두 부차적인 가르침이고 불교가 으뜸 가는(宗) 가르침(敎)'이란 뜻으로 표현한 데서 시작되었다. 흔히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와 함께 세계 4대 주요 종교로 묶인다.[9] 주요 분포 지역은 대륙부 동남아시아와 스리랑카(상좌부 불교), 티베트, 부탄과 몽골, 칼미키야(티베트 불교), 동아시아와 베트남(대승 불교)이다.

2. 핵심 교리

2.1. 무아(無我)

'아트만'이 없다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 an-atman 의 번역어로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교리이다.[10] 불교의 가르침의 시작이자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숫타니파타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4장에도 언급된다.
‘이것은 내 것이다.’ 또는 ‘이것은 어떤 다른 자의 것이다.’ 하는 생각이 없다면,
내 것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그는
‘나에게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습니다.
숫타니파타 4장의 15.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 대한 경(attadanda sutta)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을, 우연한 사고나 세월이 변함에 따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괴로움이 생긴다.

우리는 내 몸을 항상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죽으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건강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재산, 사회 등의 모든 것이 마찬가지이다. 내 마음대로 되길 원하지만, 현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이다. 한때는 '내 것' 이었던 것들도 언젠가는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된다.

언젠가 상황이 변해, 보내 주어야 할 때가 오면, 붙잡지 않고 보내 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2.2. 변(變)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내 것' 또한 변해가며, 변해가는 '내 것'에 괴로워한다. 삼법인에서 제행무상, 아함경의 '무상-고-무아' 등이 여기에 해당. 근본 불교에서도 무아와 연결하여 기본적으로 설명하였다. 이후 연기에 적용되어 여러 변화의 기본이 된다.

2.3. 탐진치(貪瞋癡)

괴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될 3가지 악덕인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말한다. 이 역시 가장 오래된 가르침 중 하나이다. 숫타니파타에서 그 원형을 알아 볼 수 있는데 요약하자면
차례대로, '가진 것'에 대한 집착, '견해'에 대한 집착, '결점(완벽)'에 대한 집착, '더 좋은 것'에 대한 집착이다.[20] 여기서 앞의 3가지가 탐진치 (탐욕, 성냄, 어리석음) 삼독(三毒)에 해당한다.

2.4. 명상(冥想)

숫타니파타에서,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이며 사성제의 결론이다.[21] 지각[22]에 대한 지각도 여의고, 지각에 대한 잘못된 지각도 여의고, 지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지각이 소멸된 것도 아닌,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 이로 인해 지각된 물질적 형상이 소멸한 상태를 '적멸'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어떤 평범한 사건이 발생하면 연상작용을 통하여 이에 대한 생각을 확대 재생산한다. 근본 불교에서는 이렇게 '왜곡된 방식으로 생각이 계속 확장되어 나가는 것'을 희론[23](Papañca)이라고 한다.[24] 종종 사람들은 희론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이는 실제 입은 피해보다 사람들을 더 과도하게 걱정하고 괴로워하게 만든다. 쓸데없는 잡생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러한 희론을 경계하는 연습이 명상이라 할 수 있다.

숫타니파타 5장에 따르면, 어떤 것을 느낄 때 '좋아하는 것'을 두지 말며,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다'고 '매달리지' 마라. 내 마음이 무엇을 하는지 감정의 흐름을 끊임없이 경계해서, 이윽고 어떠한 것을 보더라도 '좋다'거나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고 말한다.

다만 '호불호를 두지 않는 평정심'에 대해서 강조하는 이러한 명상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니 아무렇게나 하자'는 상대주의적 결론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며,[25] 삶이 괴롭다고 여겨질 때 이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명상이 되어야 한다. 이렇기에, '호불호'를 버리고 나면은, '호불호를 버리고자 하는 마음'마저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2.5. 명색(名色)

'명색'은 팔리어로 nāma-rūpa. '정신과 형체'. 즉, 형체에 대한 정신적인 작용을 말한다. 한자로는 '형체에 이름짓다'는 뜻. 물질에 뜻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물체에 주의를 기울이다', '물체에 관심을 가지다' 정도로 해석된다.

숫타니파타 4장 투쟁과 논쟁의 경에서 원시적인 연기와 사성제를 설명하는데 이때 괴로움(부정적 감정)의 가장 근본 원인이 바로 명색(名色) 이다. 원시적 연기는 투쟁과 논쟁(괴로움) - 좋아하는 대상(집착) - 욕망 - 쾌락과 불쾌 - 접촉 - 명색 순 이며, 12연기와는 다르게 6개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즉, 어떤 물질에 우리가 의미(또는 이름)를 부여하면 그때부터 그것에 대한 '감정'이 생긴다는 것. 행복에 의미를 부여하면 행복해지고, 불행에 의미를 부여하면 불행해진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괴로울 때, 스스로가 '불행'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2.6. 오온(五蘊)과 카르마

우파니샤드에서 전래된 오래된 가르침[26]이 상좌부 불교에 흡수되어 전승. 근본 불교에서 우파니샤드의 아트만(자아)을 부정함으로써 나온 개념이 안-아트만[27]. 즉, '무아'이다. 무아를 강조한 근본 불교에는 '아트만'의 개념이 잠시 사라졌다가, 근본 불교의 뜻이 희석되자 상좌부 불교에서 다시 '오온'과 '카르마'라는 개념으로 부활하였다. 여기서 아트만이란, '절대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영혼'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영혼(아트만)의 특징은 '자신이 쌓아온 경험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혼(아트만)은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몸'을 빌려서 윤회를 하며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행위(카르마)'에 따라 정해지게 된다.

윤회, 업보, 신의 유무, 지옥과 천당의 존재는 아트만(영혼)의 개념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며, 아트만은 본디 무아(안-아트만[28])의 개념과 공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상좌부 불교 시대에 이르러 두 개념은 공존하여 모순을 만든다. 이렇기 때문에 상좌부 불교에서는 아트만이 있어야 개념이 성립하는 윤회를 받아들이면서도, '안-아트만'을 깨달아서 해탈하면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모순된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29][30]
atman [ruby(an, ruby=없다.)]-[ruby(atman, ruby=아트만)]
영혼, 나, 아트만 무아 (안아트만)
상좌부 불교에서의 '나[31]'는 어떻게 정의되고 응용되는지 살펴보면,

상좌부 불교에서 '나'라는 것은 나의 몸(색), 나의 느낌(수), 나의 기억(상), 내가 했던 것들(행), 나의 생각(식)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경험과 기억과 행위와 사고 들이 "쌓여서(蘊)", '나'라는 인격과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색수상행식을 "다섯 가지 쌓임, 즉 오온(五蘊)"이라 하는데, 오온 = 아트만(영혼: 수, 상, 행, 식) + 육체(색) 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상좌부 불교에서도, 이런 오온으로 이루어진 '나(아트만)'는 가상이며 이런 오온이 실체가 없는 것을 알아 '무아'를 깨달으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상좌부 불교의 가르침에 해당하는 고집멸도의 사성제와 팔정도에는 도리어 '나'라는 아트만의 개념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업보'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서 모순이 생긴다.

우선 카르마에 따른 업보를 살펴보자. 업보란, 오온으로 이루어진 '내'가 지금 '올바른 행동(카르마)'들을 행한다면, 이 '올바른 행동'들이 쌓여 미래의 '나(자아)'를 만들게 되고, 이렇게 '올바른 행동'들로 만들어진 '나(자아)'라는 인격은, 올바른(좋은) 생각을 하여 괴로움을 쉽게 이겨낸다는 것. 반대로 지금 '내'가 괴로운 것은 과거의 내가 올바르지 못한 행동들을 했기 때문이다.[32]

'현재의 (어떤) 행위가 쌓여서, 이것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업보(카르마)의 개념은 사성제와 팔정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성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가인데, 고집멸도에서 '집'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집'은 집착의 '집'이 아니라, 모을 집(集)이다. 팔리어로는 'samudaya': sam- 쌓이다. udaya 일어나다. 합쳐서 해석하면, '쌓여서 일어나다.' 즉, 괴로움의 원인은 (행위karma가) 쌓여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 이는 당연히 오온과 업보의 개념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상좌부 불교에서 오온과 업보의 문제(괴로움)를 풀어주는 방법인 팔정도는 어떠한가. 팔정도의 정언, 정견 등에 보이는 正은 팔리어로 접두사 sam-, samma- 에 해당되며 sam-의 뜻은 '쌓는다'이다. 따라서 팔정도의 정언, 정견 등은 올바른 말을 쌓고, 올바른 것을 보는 것을 쌓아라는 것. 이는 마찬가지로 '(어떤) 행위가 쌓인다'는 오온과 업보(카르마)의 개념이다. 이 둘을 종합하면, 행위(경험의 축적)를 통해 '내(아트만-괴로움)'가 만들어지고, 이러한 '나'는 '올바른 행위'를 쌓음으로써(팔정도), 해결된다는 것. 즉, 올바른 말과 생각, 올바른 생활과 노력 등 팔정도에서 말하는 대상은 '나'일 수밖에 없고, '나'는 아트만을 의미하므로, 아트만이 없어야 되는 '무아' 개념과 모순을 이룬다는 것이다.[33] [34]

이 모순된 관점('무아를 말하면서 올바른 나를 또한 강조')은 상좌부 불교 이후의 대승 불교나 밀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팔정도에서의 '올바름'이란 '선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여기서 '올바름'은 해탈(무아)을 이루려는 방향을 의미하기 때문에, 무아와 모순되지 않는다" 또는 "그것은 오해이고 사실 단견[35]과 상견[36]을 부정하며 연기의 원리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교에서는 윤회를 말하고 있고 그 윤회가 '전생'과 '내생'을 인정하는 한, 이러한 윤회를 하기 위해서는 그 '윤회의 대상'인 아트만(영혼)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아트만이 없다는 무아의 정의와 논리학적으로 모순되는 지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37] 하지만 이러한 모순에도, 과거의 행위들이 쌓여 현재 '나'의 상태를 만든다는 카르마(업보)의 개념은, 사람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올바른 행위'를 쌓아 '올바른 나'를 쉬지 않고 만들어야 하며, '나쁜 행위'를 쌓으면 '나쁜 나'가 만들어져 괴로움에 빠지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는 '인과응보'의 개념으로 가치를 지니며 지금까지 불교에 이어져 오고 있다.

2.7. 연기(緣起)

결과에 따른 원인. 불교에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잇따라 추측해 보는 과정. 따라서 연기는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자 하는 모든 승려들의 연구처이기도 하다. 공(空)개념도 여기에서 나왔다.

숫타니파타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추측되는 4장과 5장인 원시 숫타니파타에서의 연기는 명색 - 접촉 - 쾌불쾌 - 욕망 - 좋아하는 대상(집착) - 투쟁과 논쟁 순이며, 근본 원인은 명색에 있다. 명색은 '물질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뜻하며, 물질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괴로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싸움과 슬픔이 생기고, 자만하거나 남을 헐뜯게 되어 괴로움에 빠진다.

반면, 상좌부 불교의 연기에서는 그 근본 원인이 '무명과 행'이 된다. 어리석은 생각(무명)과 행동(행)으로 인해서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쌓지 못하게 되므로 괴로워진다. 여기서 연기는 숫타니파타 3장에 나오는 12연기를 말한다. 이는 원시 숫타니파타의 연기(4~5장에 나옴)와 시대가 다르다.

2.8. 공(空)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생각·행동·의식도 그러하니라.

《반야심경》, 현장 번역

모든 개념은 '서로가 서로에게 인과[38]에 의해서 의존적'이므로, 한 극단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다른 극단과 함께 존재한다. 즉, "양극단은 공존한다"라는 것이 '공(空)'이다. 여기서 '공'은 양극단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양극단 각각의 존재를 인정하되, 양극단은 공존하므로 "양극단을 하나로 이해해 보자"라는 것이다. (나누어서 봐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합쳐서 보자는 것)[39][40][41]

또한 공(空)은, 모든 가치적 판단이 상대적 기준에 의해 달라지므로 '모든 게 의미가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상대적 기준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으므로 '그 어떤 것도 다 될 수 있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어떤 가치적 판단이나 개념이든 간에, '정해져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지 말고,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봐야 된다는 것. 불교를 허무주의로 보는 것은 공(空)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공(空)은 산스크리트어로는 '순야타(Śūnyatā)'라고 하며 "부풀어 속이 비어 있다"는 뜻이다. 비어 있기 때문에 물을 담을 수 있고, 주스를 담을 수 있으며, 우유를 담을 수 있다. 우리는 그릇이 비어 있다고 '이 그릇은 의미 없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비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비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42]

삶이 괴로울 때, 사소한 행복도 공존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행복은 지금보다 커질 것이라는 것도 안다. 곧, 희망이다. 반대로 삶이 행복할 때, 괴로움도 공존해 있음을 알고, 언젠가 커질 이 괴로움을 통해 거만해지지 않고 앞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를 가진다. 우리 삶에서 괴로움만 남아 있다면 그 삶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 단편적 극단에서 괴로워하거나 그저 즐거워하는 것에서 벗어나, 괴로움의 이면에 행복이 공존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삶을 이해하게 되고 또한 그 자체로서 위로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개념은 삶이 괴로울 때 '혹시 내 생각이 극단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다른 생각을 살펴보는 데서 그 뜻이 있는 것이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니까 내 마음대로 할 것이라며 극단적인 행동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이 너무나 괴로울 때, 생각의 지평을 넓혀서 여러 가지 대안들을 살펴보자는 취지이며, 따라서 '포기'나 '체념'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에 유의해야 된다.

'반야'도 '공(空)'과 비슷한 개념이다. 산스크리트어를 그대로 직역하자면, '분별하지 않는 지혜'(나누어 보지 않는 지혜)를 뜻한다.

2.9. 유식(唯識)

오직 생각의 문제라는 것.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일체유심조를 말한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일 때 눈, 코, 귀, 입, 피부 등을 통해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미각 등을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들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 '유식'의 핵심이다.

예를 들면, 길가던 나그네가 순간 뱀을 보고 깜짝 놀라고 무서웠는데, 다시 보니 노끈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무서운 감정은 '잘못된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부정적 감정들의 대부분은 왜곡되고 확대-재생산되어 우리들을 괴롭힌다. 이러한 '왜곡된 정보'가 괴로움의 원인이 되며, 왜곡된 정보로 인해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결책이다.

이렇게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내 마음을 바꾸기도 하고, 또한 내 마음이 내가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바꾸기도 하므로,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라고 말하였다.

2.10. 이타심

이타심은, '나'와 '남'이라는 양극단을 하나로 이해하는 공(空)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과로 의존하므로 '나의 이익은 남을 이롭게 하는 데서 나오게 된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개념이 만들어졌고, 여기에서 다시 자비(慈悲)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타심을 강조하는 것은 상좌부불교와는 차별되는 대승불교의 특징인데, 물론 상좌부불교 내에서도 이타심을 강조하는 부분이 많지만, 대승불교는 유독 이 이타심을 상좌부불교와는 다른 차별점이라고 특정지었다. 비교하자면, 상좌부불교에서는 '개인'의 올바른 수행을 강조하는 팔정도가 주된 가르침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나'의 깨달음을 추구하면서도 '남'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수행을 하자는 '자비'가 주된 가르침이 된다.[43]

이러한 이타심의 수행 방법은 대체로,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남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만 집중한다. 왜냐하면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집중하는 순간, '남의 반응'에 맞춰서 대응하는 '나'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는 '나'와 '남'을 구별하게 하는 '분별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더 쉽게 말하자면, 남이 나를 싫어하면 나는 그러한 남을 싫어하고, 남이 나를 좋아하면 나는 그러한 남을 좋아하게 된다면, 이것은 '너는 너, 나는 나'를 더 명확하게 구분 짓는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는 서로 다른 양극단을 하나로 이해하는 '공(空) 개념'과 일치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에서는 앞서 말했던 '내가 남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춰야 된다고 강조한다.[44]

이러한 점은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바라밀'과 '사무량심'에서도 나타난다. 바라밀에서는, '남을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는 보시'와 '남의 모욕적인 반응에도 평정심을 가지는 인욕'을 통해, '남의 반응과 상관없이 남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이타심'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45]

또한 '4가지 측정할 수 없이 큰 마음가짐'을 뜻하는 사무량심은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4가지 수행법이 있다. 자(慈)는 친절한 얼굴로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뜻하고, 비(悲)는 상대방의 불행에 같이 슬퍼하는 마음을 뜻하며, 희(喜)는 상대방의 성공에 같이 기뻐하는 마음을 뜻하고[46], 사(捨)는 상대에게 이러한 마음을 되돌려받지 못하거나 이러한 나를 남들이 어리석다고 비난해도 평정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즉 상대방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서, 상대의 아픔에 같이 슬퍼하고, 상대의 성공을 같이 기뻐하며, 내가 준 마음을 남이 나에게 되돌려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평정심을 가지는, '공감'의 이타심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남의 반응과 상관없이 남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자비'로운 마음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을 몸으로 직접 실천하는 것이 된다. 이를 통해 '나'의 괴로움을 잊는 것뿐만 아니라 나에게 영향을 주는 '사회'의 괴로움마저 돌보아, 이 공통의 괴로움을 아우르고 거기서 평정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개념에서 발전하여 세상 모든 것은 그물처럼 얽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화엄' 사상이 생겨났다.

2.11. 상징

사람은 언젠가는 잊어버린다. 오랜 수련으로 '깨달은 바'를 항상 염두에 둘 수야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간순간 잊어버리는 것"까지 완전히 없앨 순 없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모욕을 당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라 감정을 주체 못 할 때가 있다. 또는 생활에 바빠서 '깨달음'에 대해 잊고 사는 경우도 있다. 또는 '깨달음'에 대해 이해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감정 앞에서는 무기력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

이렇게 사는 게 바빠 순간순간 깨달음을 잊어버리고 괴로움과 무기력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면, 상징을 통해 계속해서 깨달음을 상기시키는 것이, 감정을 컨트롤하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대표적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것(진언[47]), 손가락 동작으로 '깨달음'을 상기시키는 것(수인[48]), 반야심경 등을 노래로 만들어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 눈에 띄는 곳에 불상을 두어 볼 때마다 '깨달음'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서 서로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것 등이 있다.

진언이나 수인, 노래나 문양 등의 상징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괴로움을 벗어나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여러 신의 존재도, 절대자로서의 신이 아니라, 교훈이나 깨달음을 상기시켜 주는 일종의 "상징"의 역할을 한다.[49]

2.12. 결단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주제이다.

불교에서는 집착을 끊으라고 말하면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한다. 집착에서 벗어나면 해탈이라는 마음의 평온함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집착이란 무엇일까? 그건 생각(또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한번 했던 생각을 다시 떠올리고, 머릿속에 떠오르기 때문에 그것을 하고 싶고, 하고 싶기 때문에 행동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도, 그 대상을 계속해서 머릿속에 다시 떠올리기 때문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 생각을 거듭 떠올리는 데서 집착이 만들어지므로, 이러한 '생각의 반복'을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마음을 먹는 것이, '결단'인 셈.

따라서 불교에서 '깨달음'이란, '반복된 생각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 또는 '틀에 박힌 생각이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창조적이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결심', '삶의 관점을 항상 새롭게 만들겠다는 다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50] [51] [52]

그렇기 때문에 '결단'은 불교의 시작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취급되어 왔다. 숫타니파타에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며 '결단'을 촉구했으며, 선종에서는 돈오(頓悟)가 '결단'에 해당되어 이 이론으로 선종이 교종에서 벗어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53]

2.13. 현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것이 공(空)이고, 하나에서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유식(唯識)이다.[54] 사람들은 지엽적이고 의미 없는 것에 목숨 걸어가며 산다는 깨달음은 공(空)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모든 것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는 깨달음은 유식(唯識)을 말하는 것이다. 공으로 집착을 버리고, 유식으로 희망을 찾는 것은 하나의 일관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원효는 공과 유식을 하나로 보아 일심(一心)사상을 주장하였는데, 이후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원효는 세상을 등져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춤추고 노래하면서까지 일반 백성들과 함께하였는데, 여기서 그가 얼마나 현실을 중요시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지눌은 교종의 이론과 선종의 수련을 합쳐서, 배워서 깨닫고 그것을 수련한다는 정혜쌍수[55]를 주장하였는데, 앞의 원효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큰 통일된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였다. 깨달음(이론)과 수행(참선)을 하나로 합치려는 정혜쌍수 역시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중국의 교종과도 다르고 중국의 선불교[56]와도 다른, 새로운 사상이라 볼 수 있겠다.[57] ("중국은 사상을 받아들여서 수많은 각론을 만들고, 한국은 중국의 각론을 받아들여서 종합하여 결론을 내며, 일본은 한국의 결론을 받아들여서 그대로 유지하고 이어 나간다"고 이야기된다)

한국의 불교는 원효와 지눌의 영향 아래서 이렇게 하나로 통합되기도 했었고, 현실을 극도로 중요시하는 유교의 영향도 컸었기 때문에, '속세'마저도 '속세를 벗어난 세상'과 하나로 보아, 현실의 삶에서도 불교의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궁리하였다. 승려가 따로 있고 일반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마저도 하나이고, 현실에서 벗어난 청정한 깨달음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세계는 현실과 하나의 세상이다.

'모든 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지만, 정작 지금 이 말 자체는 매우 관념적이다. 따라서 「'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관념」에서 다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데,[58] 세상을 버린 뒤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치인 것이다. 성철스님은 이를 두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말했다.

지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는 것은 공(空)이고,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이며,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라는 것은 유식(唯識)의 입장이다. 반면 성철 스님은 저 둘은 단지 탈속의 세상이고 거기서 얻어지는 깨달음은 또 다른 관념이라는 허상이기 때문에, 결국 현실로 돌아와야만 그 깨달음이 '끝'이 나므로, 깨달음을 얻고 나면 그 깨달음을 잊기 위해 살아야 한다(현실을 살아야 한다)[59]는 의미에서, 옛 고승의 말을 빌려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강조한 것이다.[60]

괴로움이란 삶의 현실 속에서 만들어진다. 모든 욕망에서 벗어난 깨끗한 경지가 절에 들어갈 때만 생긴다면, 절에서 나오고 나면 그게 무슨 소용이랴. 괴로움 속에서도 그 괴로운 감정에 최대한 휘둘리지 않으며, 그러한 괴로운 감정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살아가자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2.14. 종합

근본 불교에서는 무아, 명색을 강조하여 '내 것'이나 물질에 의미 부여하는 언어적 활동 자체가 괴로움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따라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언어마저 잊어버린 경지, 즉 희론(Papañca≒망상)을 없애는 명상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강조하였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자아(오온)'는 나의 행위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선한(올바른) 행위들을 쌓아가면 선한(올바른) 자아가 만들어지고, 악한 행위들을 쌓아가면 악한 자아가 만들어지므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올바른 행위[61]를 통해 '올바른 자아'를 만들어야 됨을 강조하였다. 즉 '언어적 잊힘'보다 '행위'를 강조한 것. 부처 사후, 제자들은 무리를 이끌고 승단을 만들어 장로가 되었다. 이렇게 승단이라는 '사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선한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대승불교(나가르주나)는 상좌부 불교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근본 불교는 '내 것이 없음(무아)'를 강조하는데 상좌부 불교는 반대로 '좋은 나를 만들기(오온, 카르마)'를 강조하는 모순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에 모순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으면서도 사회를 유지하는 질서까지 생각하는 개념을 탄생시켰으니 그것이 '공'이다.[62] '공'이라는 것은 모든 개념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므로, 한 극단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며 다른 극단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극단은 공존하기에 하나로 봐야 된다'는 것. 또한 모든 가치적 판단은 상대적 기준에 의해 달라지므로 '어떤 것도 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지닌다. 이러한 공개념은 나와 남을 하나로 보아서 '나의 이익은 남을 이롭게 하는 데서 나온다'는 자리이타와 자비의 개념으로 발전하였고, 이를 통해 '남을 도움으로써 사회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사회적 질서 역시 설명할 수 있었다.

이후 유식학파에서는 용수의 공사상이 모든 것을 하나로 인식하는 데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현실은 하나가 아니라 수만 가지로 다양한데, 용수의 말처럼 모든 개념이 하나로 귀결된다면 이러한 현실의 다양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또한 세상의 다양한 물질들은 우리의 눈, 귀, 코, 입, 피부를 통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생각 등으로 분별되어 각각 다른 물질들로 받아들여지지만, 이러한 정보는 쉽게 왜곡, 확대 재생산되어서 괴로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러한 왜곡된 정보들에 벗어나서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불행'이라는 정보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내가 괴로워지기도 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문제,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강조했다.

괴로움이 '주어진 정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은, 역으로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좋게 가공된 정보'를 통해 괴로움을 피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가상의 신이나 상징을 믿어 의지하는 것도 괴로움을 잊는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에 밀교에서는 여러 신들을 믿는 것뿐만 아니라 진언(주문)이나 수인(손동작) 등의 상징마저도 괴로움을 잊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방법(무아), 물질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방법(명색), 삶은 쌓아가는 것이며 결과는 나중에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고 옳음을 꾸준히 행하는 방법(오온 또는 카르마), 양극단이 공존하는 것을 알아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하나로 합쳐 보아 삶을 이해하는 방법(공), 내가 받아들인 정보는 왜곡됨을 알아내 생각을 왜곡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게 하여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방법(유식), 의도적으로 가공된 정보를 이용하여 마음의 평안을 유도하는 방법(신이나 상징을 믿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법들을 종합하자면... 불교가 말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란,

3. 주요 특징

다른 여러 종교와 비교해 불교가 지니는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현실의 삶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현실의 삶'에 집중한 불교의 개념은 실존주의 보다 훨씬 이전부터 만들어져 왔으며 실존주의와는 다른 미묘하고도 독특한 차이가 있다. 실존주의에서 인간의 실존은 고독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긍정하거나, 또는 이러한 인간 삶을 방해하는 권위에 대해 반항을 해야만 하는 존재로 묘사되지만, 불교에서 인간은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 자신의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한다고 보아 긍정과 부정을 포함한 '감정'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아라는 점, 그리고 '자아'마저도 또 다른 권위가 될 수 있다고 보아 '내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4. 각종 오해와 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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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는 삼종정육이라는 육식의 조건이 있는데, 먹어도 되는 고기의 종류를 3가지(삼정육), 5가지(오정육), 9가지(구정육)로 정리한 것이다. 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내가 죽이거나 나를 위해 죽인 고기가 아니면 먹어도 된다'인데, 현대 사회의 정육점 등지에서 파는 고기는 '미리 죽어 있는 고기'이므로 구정육의 조건에 해당한다. 한 마디로 육식을 철저히 금하는 특정 종파가 아닌 이상 스님도 먹을 수 있는 고기들이다. 다만 활어회나 산낙지 등은 주문하면 그 즉시 잡아서 손질하므로 삼종정육에 해당하지 않고, 일부 닭요리집 등은 사육장과 붙어 있어 마찬가지로 주문 즉시 잡으므로 먹을 수 없다.
불교가 육식 금지로 오해를 받은 이유는 냉장 기술이 발전한 것이 지극히 최근이기 때문이다. 전근대에는 냉장 기술이 없어서 고기를 먹고자 하면 그 즉시 가축을 도축하여 먹었는데, 그러나보니 고기를 먹고 있던 집을 우연히 승려가 방문하여 탁발하는 것이 아닌 이상 고기를 시주하려면 승려를 위해 도축해야 하니 시주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또한 인도에서부터 대승 불교 계열에서는 대승 특유의 이상 때문이든 요기들의 영향을 받아서든 육식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고, 《대반열반경》과 같은 대승 계열 경전에서도 육식을 부정적으로 보는 서술이 곳곳에 등장한다. 부처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인 수까라맛다와(sūkara-maddava, 직역하면 '연한 돼지고기')에 대해서도 상좌부 계열에서는 돼지고기 요리로 해석하지만, 대승에서는 maddava라는 어휘를 다르게 해석하여 '돼지가 즐기는 것', 즉 버섯이나 죽순 등을 재료로 한 채식 요리로 해석해 왔다.[70] 이러한 해석은 상좌부 문화권에서도 영향을 미쳐, 주석서에서도 '죽순이나 버섯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와 같이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고 남북조시대의 양무제에 이르러, 승려들은 절대 술과 고기를 금하는 단주육문 칙령을 내렸고 금육에 대한 계율이 만들어졌다. 이는 양무제가 승랑의 삼론종 계열 문서를 통해 대승의 교리를 접한 뒤 이에 크게 경도되어 육식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이 관습이 대한민국에서도 비판 없이 전래되었다.# 반면에 상좌부 불교 쪽의 동남아에서는 과거든 현재든 고기, 생선을 가리지 않고 먹으며, 현대 불교의 어지간한 거대 종파에서도 이제는 계율 위반도 아니고 승려들도 고기, 생선을 굳이 가리지 않고 먹는다. 다만 한국 최대 불교 종파인 조계종에서는 여태껏 육식을 금지하지 않았는데 2013년 조계종 승려들 도박 파문이 벌어지면서 자체 이미지를 쇄신하겠다고 계율로 승려들은 아프지 않으면 고기 먹지 말라고 규정을 만들어서 금지시켜 버렸다. 자정 노력은 좋지만 약간 시대 흐름을 좀 거스르긴 한 케이스.
또한 고기 먹으면 '힘이 좋아져서' 수행에 방해되기 때문에 잘 먹지 않기도 하다. 이는 건강을 위해 고기를 자제하는 일반인들의 관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승려들 중에서도 힘이 필요한, 성장기의 동자승들과 소림사를 비롯한 전투승[71], 그리고 군종 승려 등은 되레 일반인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다. 다만 삼정육, 오정육, 구정육 조건을 따지며 오신채는 금한다. 물론 신도 개인이 채식을 하는 것은 자유에 맡긴다. 《대반열반경》과 같은 일부 불경에서는 굶어 죽는 등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구정육에 해당하는 고기만을 허락하기도 하지만 이는 석가모니가 직접 설파한 가르침은 아니다.
정리하자면, 육식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닌 살생 금지로 인해서, 그리고 수행을 위해서 어느 정도 자제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물론 종파에 따라 완전히 금하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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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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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종파
부파불교 설일체유부 | 경량부 | 상좌부 불교 | 대중부
대승불교 중관학파 | 유식학파 | 교종 | 선종 | 정토교 | 밀교
지역별 중국 불교 | 한국 불교 | 일본 불교 | 티베트 불교

파일:불교 종교표지(흰색).svg
근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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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파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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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설부 상좌부 불교 (테라와다)
[math(\}\!\!\!\Rightarrow)] 음광부
설일체유부 화지부 법장부
경량부 | 근본설일체유부 | 비바사사
보특가라론자 독자부 정량부 | 법상부 | 현주부 | 밀림산주부
[math(\}\!\!\!\Rightarrow)] 설산부
대중부 불교
일설부 설출세부
계윤부 다문부 | 설가부
제다산부 서산주부 | 북산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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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불교 종파
교종 정토종 · 삼론종 · 성실종 · 열반종 · 율종 · 지론종 · 섭론종 · 천태종 · 구사종 · 법상종 · 화엄종
선종 북종선 · 남종선(위앙종 · 임제종 · 조동종 · 운문종 · 법안종) · 우두종
밀교 진언종


현재의 불교는 크게 대승 불교(마하야나)와 상좌부 불교(테라와다), 티베트 불교로 구분된다. 자기인생을 자기가 살지 못하고 남에게 얹혀서 살려는 사람이 중생이고, '남의 인생을 살지 않고 자기 인생을 살며, 과거에 살지 않고 현재를 살아라'는 것이 본디 불교의 가르침인데, 여기서 '바른 말과 행동들을 쌓아서 올바른 삶을 살자'는 것이 상좌부(테라와다)이며, 여기서 '남을 조금이라도 도와줘야 되지 않겠냐?'며 자비를 강조하는 것이 대승이다. 사람들은 '좋아하던 것'이 다르게 변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데, 이 생각에서 벗어나서 보고 느낄 때 '좋아하는 것'을 따로 두지 않아 호불호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보통 괴로움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지 않고 다른 것에 의미를 두며, 과거에 얽매여서 현재를 괴롭힌다.

대승 불교는 한자문화권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인도 서북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도 흥했으나 현재는 소멸하였다. 상좌부 불교(테라와다)는 스리랑카와 태국, 미얀마를 비롯해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에 주로 분포한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와 몽골에 주로 분포한다. 티베트의 불교는 상좌부 불교, 대승 불교, 밀교를 시대별로 차례차례 받아들인 북전 불교와는 달리 인도 반도를 통해 모든 사상을 한꺼번에 받아들였으며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외에도 불교는 북미나 유럽에 전해져 여러 지역에서 다양하게 분포한다. 그중 티베트 불교가 북미/유럽에서 가장 대중화된 불교 종파가 되었다. 프랑스 같은 경우는 일본식 선불교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불교 종파이기도 하다. 게다가 티베트를 탄압하는 중국조차도 화북지역 한족이 티베트 불교를 열렬히 신봉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청나라가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에서도 세가 상당히 크며, 티베트인뿐만 아니라 한족[95]도 상당히 많이 믿고 있기 때문에, 달라이 라마 14세가 망명 중임에도 불구하고 신앙 자체에 대한 탄압은 받지 않는다. 물론 티베트 독립운동은 중국에서 국가분열죄로 다스린다. 북미/유럽의 유명인 중에 티베트 불교 신자가 의외로 많다. 리처드 기어, 스티븐 시걸 등. 티베트 불교 이외에는 일본 선불교가 있다. 일본 선불교 신자로 대표적인 이는 스티브 잡스.

대승 불교(Mahayana)가 발전되었을 시기에는 대승 불경을 읽지 않는 부파불교를 대승 측에서는 소승 불교(Hinayana)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대승 불교의 관점에서 붙인 비하적 명칭이라는 성격 때문에 1950년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선 소승 불교라는 표현은 어떠한 불교 종파에 대해서도 써선 안 된다고 결정하였다.

6.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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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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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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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경장 · 율장 · 논장)
경장의 세부 분류
팔리 경장 디가 니까야 | 맛지마 니까야 | 쌍윳따 니까야 | 앙굿따라 니까야
쿳다까 니까야 숫타니파타 | 담마빠다 | 자타카
대승경장 아함경 장아함경 | 중아함경 | 잡아함경 | 증일아함경
반야부 반야바라밀다심경 | 금강반야바라밀경
화엄부 대방광불화엄경 | 보현행원품
법화삼부경 무량의경 |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 | 관보현보살행법경
정토삼부경 무량수경 | 관무량수경 | 아미타경
경집부 지장보살본원경 | 능엄경 | 유마힐소설경 | 약사경
밀교 경장 천수경 | 대일경 | 금강정경 | 대승장엄보왕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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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7.1. 근본 불교

7.2. 부파불교

상좌부 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부파불교 시대의 '5부 니까야'라고 하는 팔리어 경전으로 전승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처의 가르침은 인도의 전통에 따라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기원전 1세기에 문자로 기록되어 수많은 경전들이 흩어져서 존재하였고, 5세기부터 합쳐진 니까야를 붓다고사가 인도 남쪽으로 전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소견이다. 니까야는 5부 니까야로 구성되어 있는데 5부 니까야란 디가니까야, 맛지마니까야, 쌍윳따니까야, 앙굿따라니까야, 쿳다까니까야를 말한다. 니까야는 다양한 나라의 문자로 번역되었는데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초기불전연구원 등에서 한국어로도 번역하고 있으며 다양한 번역자들의 개별 번역본도 존재한다. 인터넷 서점에 '니까야'를 쳐보면 나온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기준 5부 니까야 중 4부 니까야는 번역이 완역 되었고 쿳다까니까야는 《숫타니파타》, 《법구경-담마파다》가 번역이 완역 되었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디가, 맛지마, 상윳따, 앙굿따라 4부 니까야가 번역이 완료되었다. 참고로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의 전재성 박사의 번역으로 예전부터 대한민국에 널리 알려진 《숫타니파타》의 4장과 5장은 5부 니까야 중에서도 초기의 불경에 속한다.

7.3. 대승 불교

8. 성지

모두 석가모니의 인생에 주요한 분기점이 되는 장소들이다. 룸비니(Lumbini), 부다가야(Bodhgaya), 사르나트(Sarnath), 쿠시나가라(Kushinagar)를 불교의 4대 성지라고 하고, 여기에 슈라바스티(사헤트마헤트), 산카샤, 라지기르, 바이살리를 더하여 불교의 8대 성지라고 한다.

9.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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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부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부처, 불(佛), 혹은 '붓다(Buddha)'는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라는 뜻이다. 한자 佛은 이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자로, 붓다에 가까운 발음인 弗에 '사람 인' 변을 더했다. 한국에서 본래 한자음은 '붇'이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불'로 음운 변화하고 현재는 부처로 통칭되고 있다.

보통 부처님이라고 하면 석가모니(釋迦牟尼, Shakyamuni)를 가리키지만, 그 외에도 불교에는 수많은 부처가 존재한다.

10. 대한민국에서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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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불교/대한민국#|]]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0.1. 종단 목록

10.2. 한국 불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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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한민국 불교 유튜브 채널

대한민국에서 불교를 전법하는 유튜브 채널은 다음과 같다.
유튜브 채널 링크
BTN불교TV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불교방송/라디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법륜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무량수여래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광우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명상시티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월호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2. 관련 용어

12.1. 부처, 승려 등을 뜻하는 용어

12.2. 교리 관련

12.3. 수행 관련

13. 관련 인물

13.1. 석가모니와 불제자

13.2. 고승 및 불교 사상가

13.2.1. 인도

13.2.2. 중앙아시아

13.2.3. 중국

13.2.4. 한국

13.2.4.1. 근현대

13.2.5. 일본

13.2.6. 베트남

14. 부처들과 보살들, 그 외의 신들

14.1. 불(佛)·여래

14.2.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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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4.3. 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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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명왕#|]]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4.4. 신과 귀신, 그 외

15. 불교에 영향을 받은 종교와 사상(가)

15.1. 종교

사실상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종교들은 규모에 상관없이 다 불교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15.2. 사상(가)

16. 불교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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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타 종교 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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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기타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불교에 대한 KBS 다큐멘터리

19. 관련 문서

20. 둘러보기

인도-이란 계통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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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종파
부파불교 설일체유부 | 경량부 | 상좌부 불교 | 대중부
대승불교 중관학파 | 유식학파 | 교종 | 선종 | 정토교 | 밀교
지역별 중국 불교 | 한국 불교 | 일본 불교 | 티베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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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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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파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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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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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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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경장 · 율장 · 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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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 경장 디가 니까야 | 맛지마 니까야 | 쌍윳따 니까야 | 앙굿따라 니까야
쿳다까 니까야 숫타니파타 | 담마빠다 | 자타카
대승경장 아함경 장아함경 | 중아함경 | 잡아함경 | 증일아함경
반야부 반야바라밀다심경 | 금강반야바라밀경
화엄부 대방광불화엄경 | 보현행원품
법화삼부경 무량의경 |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 | 관보현보살행법경
정토삼부경 무량수경 | 관무량수경 | 아미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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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스크리트어로는 다르마차크라(Dharmachakra)라고 한다. 조화와 화해의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깨달음에 이르는 8가지 길, 팔정도를 보여준다. 법륜을 간단히 말하면, '진리의 수레바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진리(법, 다르마)란, "'아트만'이라고 불리는 '나'와 '내 것'이라는 것은 사실 없다"는 것. 즉, 제법무아. 무상, 고, 무아의 핵심은 '무아'에 있다. 일체개고(제행개고)와 제행무상은 '제법(모든 법)'이 '무아(아트만이 아니다)'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설명이다. 여기서 아트만은 '자아'나 '영혼'을 말한다.[2] 중국의 불자 수 집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이 통계에 따르면 13억 중 대략 2억 5,000만 이상이다. 일단 공식적인 통계상 세계 불자 수는 약 5~6억 명 정도로 본다.[3] ※ 틀:불교의 종파 및 틀:근본 불교와 부파불교 참고.[4] +러시아, 칼미크어[5] 팔리어 원문: atta-dīpā viharatha atta-saraņā anañña-saraņā dhamma-dīpā dhamma-saraņā anañña-saraņā[6] 전통적으로 '등불'로 번역된 dīpā는 석가모니가 쓰던 팔리어로는 '섬'을 뜻하기 때문에, 전통과 차별하더라도 원어를 그대로 옮기고자 하는 현대의 움직임에서는 이를 '섬'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7] dīpā를 '섬'으로 번역하는 것을 선호하는 측에서는 그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dīpā의 번역어인 '섬'은 강물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감정을 강물에 비유하여 감정에 휘둘리고 괴로워하는 것을 '거센 흐름'이라 하였다. 또한 깨달음을 '감정이라는 강물을 건너는 것'에 비유하여, 감정이 격해지면 이 언덕에서 강을 건너 저 언덕으로 갈 때 감정이라는 강물에 휩쓸리지 말고 섬에 의지하여 건너라는 것이다. 결국 깨달음이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스스로에 의지해서 평정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진리, 법(dhamma)은 '모든 법에 내 것이 없다'(sabbe dhammā anattā)는 것을 아는 것. 즉, 제법무아를 아는 것이다.[8] 석가모니 및 부처는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에겐 그저 '불교에서 믿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불교 교리상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최종목표 해탈까지의 과정을 안내하는 일종의 선배나 스승에 가까운 존재다.[9] 2020년대 기준 불교 신자 수는 약 5억여 명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약 1/5 ~ 1/4, 힌두교의 절반 정도 수준이지만 5위인 시크교 신자 수가 약 3000만 명으로 그 아래 순위의 종교보다는 훨씬 교세가 강하기에 4대 주요 종교로 묶이기에는 손색이 없다. 게다가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남부와 필리핀, 오세아니아 일대를 대표하는 기독교, 중동 지역과 일부 동남아 지역을 대표하는 이슬람교, 인도권을 대표하는 힌두교처럼 불교 역시 동아시아와 일부 남아시아 일대를 아우르는 확실한 문화권이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참고로 오늘날 힌두교에선 (불교에서 보면 좀 황당하긴 하지만) 석가모니도 힌두교 신 중 한 명으로 모시기에 힌두교인들에게도 석가모니는 숭배받는다.[10] 없다를 의미하는 an- 이 무(無)로 번역되었고 atman은 我로 번역된 것이다. 아트만은 '변하지 않는 나', 즉 '영혼'을 의미하므로, 안아트만인 무아는 '변하지 않는 나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의어는 아트만, 진아(眞我)다.[11] 탐진치에서 말하는 "탐욕"의 원형이라 볼 수 있다.[12] 집착의 뜻과 같다. 집착은 한자로 '잡을 집', '붙을 착'. 즉, 딱 잡고 붙어 있다는 뜻. 따라서 동굴에서 떠나라는 말은 '집착을 버려라'는 말과 같다. 잡지 말고 놓아버리고 붙어 있지 말고 거리를 두라는 것. 도망칠까 봐 개에 목줄 걸고는 죽을 때까지 줄만 잡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목줄을 풀고 개가 스스로 다가오는지 아닌지를 시도해 볼 것인가? 놓는다고 다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거리를 둔다고 개가 도망을 칠 거라곤 볼 순 없다. 도망치느냐 아니냐는 내가 개한테 어떻게 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지, 개는 다 죽어가는데 개 목줄만 잡고 있을 것인가? 삶 역시 '절대로 이것만은 놓칠 수 없다'며 붙잡고 있지만, 놓아버려야 비로소 '괴로움'에 변화가 시작된다.[13] 괴로움이 심해지면 놓아야 될 때인 걸 알고 놓을 줄 알아야 되는데, 해온 게 아까워서 놓을 줄 모르는 것이 '집착'이다. 즉, 과거에 좋아했던 것들이 점점 변해서 이젠 내가 원하는 것이랑 다른데도 불구하고 보내주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14] 여기서 옳음은 자기만의 옳음을 뜻한다. '자기만의 옳음'으로 다른 사람을 비하하지 말라는 것. 하지만, 사회적으로 합의된 옳음으로 다른 사람을 비평하는 것까지 하지 마라는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는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논하는 것들이 많다.[15] 탐진치에서 말하는 "성냄"의 원형이다.[16] 일체개고(一切皆苦):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17] 탐진치에서 말하는 "어리석음"의 원형이다.[18] 이는 알베르 카뮈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계속 묻는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면 결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19] 탐진치에는 해당 사항이 없으나, 숫타니파타에서는 언급된다. 원래 탐진치는 4개였는데 후대에 전해지면서 가르침도 미묘하게 변하고 그중 하나는 빠져버리게 된다.[20] 이는 최근에 팔리삼장(니까야) 보다 더 오래된 책이 발견된 『현겁경』에서 "마음에는 네 가지 병이 있다. 첫째는 탐내는 마음과 음욕이고, 둘째는 성내고 미워하는 것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고, 넷째는 아만심이다."라고 말한 것과 비슷하며 첫째, 둘째, 셋째는 탐진치에 해당된다. 또한 연기 중 4취(욕취(欲取) · 견취(見取) · 계취(戒取) · 아취(我取))와도 비슷하다.[21] 보통은 사성제의 결론은 팔정도로 생각하지만, 이는 상좌부 불교에서 말하는 결론일 뿐, 숫타니파타에서는 다르다. 숫타니파타에서 사성제에 해당되는 부분을 찾아보면, "지각을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지각을 잊어버리려고 하는 마음' 마저 잊어버리라"고 한다. 즉, 명상을 말하는 것.[22] 감각 기관을 통하여 대상을 인식하는 것.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함.[23] Conceptual proliferation (팔리어: papañca, 한자: 戲論)[24] 불교에서는 언어학의 격 중에서 처격, 탈격, 소유격을 왜곡된 사유, 즉 희론의 산물이라고 풀이한다. 일반적인 사람은 무언가를 대격으로 경험한 후 그 지각된 바를 기억에 저장해서 사유화하는데, 이때 그 지각을 '나'처럼 여기는 단계에서 처격('지각의 가운데에서')이 나오고, 그 '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이를 기준으로 한 이런저런 생각이 덧붙는 단계에서 탈격('지각으로부터')이 나오며, 이로 인해 '나의 것'이라는 자아관념의 기초가 형성되는 단계에서 소유격('나의 지각')이 나온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희론이 인간의 언어 세계를 확장시킴과 동시에, 그만큼 자아 관념을 비롯한 망상을 고도화시킨다고 본다.[25]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니 아무렇게나 하자는 마음가짐은, 결국 허무해지기 때문이다. 허무해지고자 명상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점마저 극복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26] 불교의 제사 배격, 아트만, 업보, 윤회와 해탈 등은 원래 우파니샤드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아트만은 '나(아트만)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인간 내면의 근원 정신으로써, 여기에 육체를 더하면 불교의 오온에 해당한다.[27] an-: '~없다.'를 나타내는 접두사. 따라서 anatman(안-아트만)은 '무아(無我)'를 말한다.[28] an-: '~없다.'를 나타내는 접두사. 따라서 anatman(안-아트만)은 '무아(無我)'를 말한다. 즉, 영원불변의 영혼(아트만)은 없다는 것.[29] '무아'의 깨달음을 통해 아트만(자아)을 부정하면 윤회나 업보를 믿을 필요가 없고, 아트만을 긍정하면 '무아(안-아트만)'의 깨달음은 헛된 것이 된다. 아트만을 부정하여 나온 개념이 근본 불교의 안-아트만(무아)이기 때문에 두 개념은 본디 공존할 수 없는 것인데, 상좌부 불교 시대에 이르러 '우파니샤드의 아트만의 개념'과 '불교의 안-아트만의 개념'은 서로 공존하게 되어 모순을 만들게 된다.[30] 정작 부처가 살아 있을 적의 초기 불교에선 대놓고 정확히 이런 오해와 모순이 발생하는 걸 경계하고 있다. 초기 불교의 '무아' 개념은 영원불변한 자아(= 아트만)는 객관 세계에선 없다. 딱 거기서 멈추며 자아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여기에 더해 부처는 경험론적이던 초기 불교답게 우리가 경험 자체를 할 수가 없는, 그래서 확인이 불가능한 오온 외의 자아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아(無記) 의외로 이쪽에선 모순이 발생하진 않는다. 업 개념 역시도 결정론의 우파니샤드&자이나교, 단멸론의 물질주의 학파들과는 다르게 업은 원인"들" 가운데 하나 라는 입장을 취해 환경, 상황, 결과, 동기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데 사람들은 대부분 동일성 = 연속성이라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헷갈리는 단어 상의 문제까지 맞물려 이미 당대부터 신학자들까지 오해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학사 - 데이비드 J.칼루파하나의 '불교철학 역사분석' 참고.[31] 우파니샤드에선 아트만, 상좌부에서는 오온에 해당한다.[32] '업보'(카르마)의 개념이다. 따라서 업보나 인과응보 등은 아트만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며 '올바른 아트만'을 만드는 일은 상좌부 불교에서 권장하는 바 이지만, 이는 '무아(안아트만)'해라는 근본 불교의 가르침과는 모순되게 된다.[33]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올바름을 쌓아라'는 개념은 근본불교에는 없는 개념이다. 어떤 사람은 법구경의 내용이나 부처 오도경을 들고나와 근본 불교에 '윤회'의 개념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틀린 얘기이다. 법구경은 '올바름을 쌓아야 된다'는 개념과 승단의 개념을 서술하고 있는 상좌부 불교 영향하에 있는 저술이기 때문이다. (시기상으로도 숫타니파타 4,5장보다 훨씬 늦게 지어졌다.) 이는 근본 불교와 상좌부 불교의 차이점을 잘 모르는 셈. 숫타니파타 4,5장은 근본 불교, 숫타니파타 1,2,3장은 상좌부 불교에 해당되며, 이후 저술된 아함경과 법구경 등도 상좌부 불교의 영향하에 있다. 숫타니파타 4,5장에는 '윤회' 개념이 없다. 정리하자면, 근본 불교는 언어자체가 현실을 1대1로 반영하지 못하며 이로 인해 괴로움(탐욕, 싸움, 어리석음)을 유발한다고 보았고 사회와 가정을 떠나 무소의 뿔처럼 홀로 살면서 깨달음을 추구하였다. 반면, 상좌부 불교는 이러한 가르침을 전수받은 장로들이 모여서 승단을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올바른 것들을 쌓아' 계와 율을 지켜야지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34] 또한 '행위(카르마)'를 중시하는 상좌부 불교에서는, 근본 불교의 명색(名色)보다는 무명(無明: 올바른 행위를 알지 못하는 것. 무명도 우파니샤드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과 행(行: 행동, 행위)을 중요시 여기게 되고, 이에 따라 근본 불교의 원시연기(숫타니파타 4장 '투쟁과 논쟁의 경'에서 나오는 원시적 형태의 연기. 명색이 근본 원인으로 나오며, 여기서 무명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는 상좌부 불교의 연기로 변하게 된다. 이는 사실상 과거의 우파니샤드 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모순되는 두 개념, 근본 불교의 안아트만(무아)와 우파니샤드의 아트만(나)은 상좌부 불교 하에서 공존하게 된다.[35] 윤회하지 않음[36] 영혼과 같은 실체가 항상함[37] 즉, 윤회 개념은 아트만의 개념 없이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아트만을 인정해야 하나, '아트만이 없다'는 무아의 가르침과 서로 논리학적으로 모순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도 이에 대한 논쟁이 일어난 적이 있다.[38] 원인과 결과. 하나가 다른 하나로 이어진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된다. 이 인과에서 벗어나는 물질은 없다. 모든 물질과 개념은 다른 것이 원인이 되어 생긴다.[39] 여기서 '하나'로 보는 것을, 왜 '공'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라고 의문을 표할 수 있다. 쉽게 설명을 해보자면, 범주로 볼 때에 두 개의 범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범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기준으로 볼 때에는 범주를 두 개로 나눈 그 하나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아 이 기준을 없애서 사건을 바라보아야 된다는 뜻에서의 '공'이 되는 것이다. 즉 모든 개념은 '범주'와 '기준'으로 추상화하여 정리할 수 있으며, 이 범주와 기준으로 추상화된 언어들은 절대적인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믿어왔지만, 사실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이, '공사상'에서 말하는 주요 핵심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40] 그럼 상대주의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사상과 상대주의는 다르며, 엄밀히 말하자면 상대주의는 공사상의 일부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절반에 해당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니까 어떤 것에도 특정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가 상대주의라고 본다면, 불교에서는 여기에 더해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니까 모든 것에 각각의 특정한 의미를 둘 수 있다'는 개념까지 포함하고 있다. 상대주의가 '색즉시공' 만을 말한다면, 불교에서는 '색즉시공'과 함께 '공즉시색'까지 말한다는 것이다.[41] 여기서 '하나로 합쳐서 이해해 보자'는 것은, 개념을 '구별'하는 '기준'을 없애서 이해보자는 것이지,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주의. '하나로 합쳐서 이해하자'는 '하나가 되자'랑 다른 것이며, '하나가 되자'는 것은 또 다른 극단에 지나지 않는다.[42] 엄밀히 말하면, 어떤 것의 의미는 확정할 수 없어 비어 있다는 것까지가 공(空)이고, 그러한 빈 부분에 어떤 것이든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은 유식(唯識)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불교가 허무주의가 아닌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해하기 쉽게 공과 유식을 다 말한 것이다.[43] 한때 이런 관점에서 상좌부불교를 '소승 불교'라고도 불렀지만, 이는 대승과 비교하여 비하적 단어로 여겨져서 최근에는 쓰여지고 있지 않다. 자세한 것은 상좌부 불교 참조.[44] '남'과 '나'를 구분 짓는 마음은 '나'라는 존재를 더 부각시켜서 '무아'의 가르침에 위배되고 '나'는 괴로움에 빠진다. 따라서 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자 한다면, '남의 반응과 상관없이' 남을 도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를 간략하게 말하면, "무아(無我)를 하고 싶다면 이타(利他)를 해야 된다"는 것.[45] 바라밀의 나머지 부분인, 지계(持戒)·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는 '개인의 깨달음'이나 '계율'을 강조한 팔정도와 비슷하다. 대승불교에서 유독 '보시'와 '인욕'을 강조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46] 불경에서는 자비희사 중 가장 수행하기 힘든 것이 '희(喜)'라고 말하였다.[47] 범문을 번역하지 아니하고 음(音) 그대로 외는 일[48] 불교 깨달음의 내용이나 활동을 손가락 동작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시를 말한다.[49] 절대자를 믿고 의지하는 종교로서의 의미는 희박한데, 이는 불교가 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를 믿으며 스스로가 깨닫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에 나오는 신과 보살들은 교훈이나 깨달음을 다시 상기시켜 주는 '선배'나 '멘토'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50] 그럼 창조하는 피곤한 일을 매일 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어제를 매일 버리면 오늘을 항상 새롭게 살 수 있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라는 것은 바로 어제를 버릴 때, 오늘에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굳이 창조를 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이는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다. 더럽고 엉망진창인 진흙탕에서도 고귀하고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이, 괴로움의 삶, 그 한가운데서도 저절로 그 꽃을 피워내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51] 매번 망각하는 것에 자신이 없거나, 창조하기 힘들다는 경우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배운 것으로 자신을 바꿔나간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 배우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달라지며 행동이 달라지면 그 행동으로 자신만의 삶을 풀어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깨달음이 결코 어렵거나 추상적인 것은 아니며 실제로 행동하고 실천하기 쉽다는 것을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즉, '배우겠다'는 액션의 중요성을 깨달으라는 것. 이것이 창작의 기본이고 망각의 출발이며 행동의 시작이고 실천의 근거가 된다.[52] 오해가 가능하기 때문에 덧붙여 말하자면, '망각'이나 '창조'나 '배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 각자의 삶에 집중하게 만드는 핵심가치가 있음을 알고, 그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도구가 '망각', '창조', '배움'이 되는 것이다.[53] 간화선에서 강조하는 것이,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도록 결단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묵조선은 결단보다 명상에 가깝다. 선종은 이렇게 '명상'과 '결단'의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상은 모든 생각을 없애는 것이고, 결단은 모든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명상은 '공(空)'에 해당하고, 결단은 유식에 해당한다.[54] 참고로 색즉시공은 공을 말하는 것이고, 공즉시색은 유식을 말하는 것이다.[55]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함께 수련한다는 뜻.[56] 선불교의 화두 특성상, 하나의 틀에 넣어지지 않아서, 수백 가지의 종파로 나뉘게 된다. 결국 이러한 흐름은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는데, 때문에 도교와 합쳐져서 변질되어 버리기도 했다. 반면 한국의 불교는 수백 가지의 종파를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57] 당시 중국의 불교는 수십 개의 다른 이론을 가지고, 서로가 자신의 이론이 맞다며 이론에 따라 여러 종파를 세웠다. 하지만 한국 불교는 종파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교종이든 선종이든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불교로 가는 길일 따름이라고 생각했다. (한국불교의 주류가 그렇다는 것)[58] 근본 불교가 비슷하긴 하지만 결론이 다르다. 근본 불교는 언어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생각마저 벗어나라며, 언어자체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고, 지금 관념에 대한 말은 관념을 벗어난 뒤에도 '관념에서 벗어나고자'하는 관념에 집착하게 되므로 현실로 돌아와 그것을 잊는다는 것이다. '언어를 버리느냐, 불교를 버리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59] 왜냐하면 깨달음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강력한 증거이기 때문이다.[60] 성철 스님이 돈오돈수를 말했던 것도 여기에 있다. 어차피 삶 자체가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는데, 수행해서 과거의 습관을 없앤다고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습관에게 굴복하면서도 다시 습관에 지지 않겠다는 뜻을 세우는 것이, 삶인 것이다. 완벽하게 과거의 습관을 없애려고 하는 것 자체가 집착인데, 과거의 습관을 없애려고 수행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61] 행위에는 생각, 일 등도 포함된다. 즉, 올바른 무엇인가를 하는 것. 팔정도를 의미한다.[62] 사실 그전 초기불교 때부터 '공'개념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구체적이지 못했다. 상좌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는 사성제와 팔정도였다. 하지만 용수(나가르주나)가 중론을 써서 팔부중도(八不中道)를 통해 '공'을 설명하자 비로소 그 개념이 구체화되고 각 불교 종파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63]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남'과 공존하기 때문에, '나'는 '남'과 하나로 합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남을 돕는 이유이다. '공'개념 참조[64] 물론 저런 말을 하는 (주로 무신론적인) 사람 입장에서는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 같아서 좋다는 긍정적인 뉘앙스로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종교 극단주의자들은 불교는 종교도 아니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의도로 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불교는 종교 아니니, 불경 읽으시면서 교회도/성당도/etc. 나와보세요'라는 식으로 전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불교는 종교가 아니시라니, 님도 절에 한번 다녀보세요. 그래서 실제로 개방적인 개신교 신자의 경우 우상숭배가 되지 않는 선에서 불교의 교리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공부하기도 한다. 또한 가톨릭 신학교에서도 불교의 교리를 교양 과목으로 공부한다.[65] 런던대학 골드스미스 칼리지 불교윤리학 명예교수.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atic Society) 회원[66] "그러나 ‘불교 현대화론(Buddhist modernism)’이라고 명명된 이런 불교 독해법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있어왔고, 현대 서구의 태도와 덜 조화되는 그 종교의 몇몇 특징들을 상쇄시킨다. 기적과 만뜨라, 주송, 부적의 효용성에 대한 믿음이 그런 사례이다. 오늘날에도 티베트 망명 정부는 중요한 사안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국가의 신탁을 참고하고 있다. 신과 정령들이 거주하는 초세간 적 영역에 대한 믿음과 보이지 않는 업의 힘에 대한 믿음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불교의 가르침들에서 핵심적인 또 하나의 교리이다."(같은 책)[67] 여기서 방편, 원, 역, 지의 4가지 바라밀을 추가한 10바라밀도 있다.[68] 단테의 신곡에는 천국과 지옥을 층별로 분류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후세에 지어진 예술적 창작물이다.[69] 한국 무속의 경우 쇠퇴하긴 해서 반론의 여지가 있지만, 불교를 옹호하는 측은 무속이 쇠퇴한 것은 불교 탓이 아니라고 보는데 그 근거로 내새우는 것은 조선 건국 이후 성리학이 숭유억불로 불교를 탄압하면서 불교는 무속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을뿐더러, 무속도 함께 퇴화해 버렸다. 무속은 신토나 도교처럼 불교 옆에서 성장할 수 있었음에도 성리학의 방해로 인해 쇠퇴한 것이라는 주장이다.[70]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부처의 시대에는 약초의 이름에 '돼지'와 같은 접두사를 붙이는 언어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어에서도 돼지감자와 같은 사례가 있다.[71] 무술 시범승(무술 시범단) & 무술 수련단 이들은 무술을 연마하는 스님들인데, 이 둘을 합쳐서 전투승이라고 한다. 이 자격을 중국 불교계에서 취득해야 무술 시범승과 무술 수련단에 속해서 무술 연마가 가능하고 군종 승려 지원자격이 생긴다.[72] 실제로 가수 박준형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인 와썹맨의 촬영 중에 동국대학교 불교동아리를 방문했을 때, 동아리의 자문을 맡은 스님들이 커피를 타서 대접하는 것에 놀란 적이 있었다.[73] 문제는 이것 때문에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사찰음식이 마냥 건강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흔히 고기를 안 쓰니까 사찰음식 = 채식 = 건강식으로 오해하는데, 고기와 오신채만 없으면 뭐든 먹을 수 있다 보니 기름이나 고추, 치즈, 빵 같이 살찌기 쉬운 음식도 아무 문제없이 먹는다.[74] 육식을 완전히 금하는 종파에서도 유제품의 섭취까지 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석가모니가 고행을 잠시 중단하고 우유를 공양받아 마셨다는 기록이 떡하니 남아 있기 때문이다.[75] 진짜 내용이 짧은 불경들은 글자크기 10포인트 기준으로 A4 용지 몇 장 분량 남짓한 것도 있다. 대표적으로 정토종의 소의경전 중 하나인 불설아미타경은 내용이 2천 자도 안된다.[76] 성철 스님은 억센 동남 방언으로 유명했다.[77] 저승 10왕 개념 자체가 불교와 도교가 교류하면서 생긴 것이다. 당연히 도교가 마이너한 지역의 불교에선 저승10왕 개념을 찾을 수 없다.[78] 예시 : 외모가 빼어난 사람, 재주가 뛰어난 사람 등등[79] 사실 불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자살을 가장 무거운 중죄 중 하나로 간주하며 엄격히 금하고 있다. 교리가 엄격하고 빡빡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종교로 유명한 이슬람조차도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경우 생존을 위해서라면 규율을 위반해도 괜찮으며, 그로 인해 범하게 된 죄는 나중에 참회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르친다.[80] 지옥마다 다르지만 중죄로 가는 지옥들은 겁 단위는 금방 지나간다. 참고로 한 겁은 보통 우주 하나가 태어났다 사라져 무로 돌아가는 수준의 까마득한 시간이다.[81]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의미하는 귀신이 아니라 아귀 같은 귀신을 말한다.[82] 흥미로운점은 바로 이런 교리 때문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불교를 국교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즉 주군에 대한 충성도 선행의 일종이니 주군에게 충성하면 좋게 윤회할 수 있다는 논지로 민중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83] 런던대학 골드스미스 칼리지의 불교윤리학 담당 명예교수.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atic Society) 회원[84] 로힝야족은 무슬림이라서 차별받았다기보다는 과거에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지배할 때 그 앞잡이 노릇을 했기 때문에 타 민족들의 미움을 받은 탓이 크다. 하지만, 로힝야족 말고도 불교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탄압받는 민족이 미얀마에는 많다. 그리고 미얀마 승려들 중에서도 특히 악명 높은 근본주의자였던 아신 위라투의 이교도 박해는 그를 불교 버전 오사마 빈 라덴이라고 비난받게 만들었다.[85] 애초에 이런 사상은 기독교 등 다른 종교에서도 보인다. 당장 성경에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는 구절이 나온다.[86] 당장 근대 이전만 해도 전 세계 GDP 1,2위를 자주 하던 중국, 인도권이 불교 강세지거나 발흥지였다.[87] 일본의 최대 종교는 신토와 불교인데, 신토의 경우 전통문화로 뿌리내린 케이스라 종교적 측면에서 보면 불교를 최대 종교로 간주할 수 있다.[88] 2000년대 기준 불교가 인구의 약 1/3로 최대 종교다. 다만 2020년대 기준은 확인 필요.[89] 2020년 기준 불교가 인구의 약 31.1%로 최대 종교다.[90] 다만 이중 불교가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순수 불교 국가는 없긴 하다.[91] https://www.msn.com/ko-kr/entertainment/tv/%EB%89%B4%EC%A7%84%EC%8A%A4%EB%8B%98-%EB%89%B4%EC%8A%A4%EB%A3%B8-%EC%A0%84%EA%B2%A9-%EC%B6%9C%EC%97%B0-%EC%9C%A4%EC%84%B1%ED%98%B8-%EA%B7%B9%EB%9D%BD%EC%99%95%EC%83%9D-%EC%9D%B8%EA%B8%B0-%ED%8F%AD%EB%B0%9C/ar-BB1mcOao[92] 물론 아함경조차 후대 기록이라고 불교에 불리한 기록을 부정하는 주장도 많지만, 이런 초기 경전조차 부정한다면 정말로 유의미한 불경이 경집밖에 없다. 물론 이 경집만 고집하는 태도 또한 이제까지 불교의 발전을 부정하는 태도에 불과하다.[93] 어디까지나 원칙상으로는 그렇고, 현실상으로는 보살 신앙, 약사여래 신앙으로 인한 타력 구원이 대승불교에선 보편적이었다.[94] 일례로 일제시대 조선에서 벌인 정책중에 억유숭불이 있다.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격하시켜 교육 기능을 박탈시켰고, 지방 유생들을 회유하여 친일파로 편입하는가 하면, 일본불교를 조선에 진출시키는가 하면 관립 단체(불교옹호회, 삼십본산연합사무소, 조선불교중앙교무원)를 설립해 조선불교를 친일화시켜 부흥 및 통제하기도 했다.[95] 한족 티베트 불교 신자는 주로 북중국에 많다. 장위안도 티베트 불교 신자이다.[96] 여러 부파로 갈라지기 전까지의 불교로 근본 불교, 원시 불교라고도 한다. 다만 원시라는 표현이 단어의 원래 뜻과 달리 '미개한', '발전이 덜 된'이라는 늬앙스를 주기 때문에 보통 근본 불교라는 표현을 쓴다.[97] 남방불교의 기록에 의거함. 북방불교의 기록인 세우의 부집이론은 대중부로 분류하고 있다. (부집이론 소승20부)[98] 상좌부라는 단어는 이 Theravada와 더 윗단계 분류인 Sthaviravada를 지칭하는 말로 혼용된다. Sthavira와 Thera는 산스크리트어냐 팔리어냐의 차이일 뿐 둘 다 장로, 상좌를 뜻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처음 한자로 번역될 때 둘 다 상좌부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99] 한글번역본과 우측상단에 원문을 클릭하면 한자원문까지 볼 수 있다. 서버가 동국대에 있는 작은 서버라서 최초 로딩 속도가 느릴 때가 많지만 대부분의 불경이 한글로 번역되어 있어서 유용하게 사용된다.[100] 니까야는 저본이 2개가 있다. 남쪽으로 전해져 팔리어로 써진 니까야와 북쪽 중국으로 전해져 한자로 번역된 아함경[101] 4대 성지 중 유일하게 인도가 아닌 네팔에 위치해 있다.[102] 본래 한국의 종단 중 2위였으나 2015년 12월 15일부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비 미납, 폭력 사태로 인한 총무원장 구속 등으로 회원 자격이 정지되었다가, 2016년 7월 12일 자격이 회복되었다.[103] 빔라오 람지 암베드카르가 만든 맹세로 알려져 있다.[104] 1,000명 중 999명을 죽인 전승도 있다.[105] 이름에 불교가 들어가긴 하지만 불교 분파가 아닌 엄연한 민족종교이다.[106] 구약성서, 신약성서, 금강경, 동경대전 등 여러 종교의 경전들을 열람했다.[107] 부처(석가모니)가 저술한 핵심 경전이란 뜻이다.[108] 그의 범신론은 불교 및 도교 사상과 유사하다는 설이 있지만, 정작 그가 불교를 공부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109] 불교 신자이긴 하나 그 신앙이 사상에 영향을 준 사실은 없으며, 억불 정책을 쓰라는 상소를 쓴 것으로 보아 불교도이기 이전에 성리학자로 보는 게 옳다.[110] 과거 일각에선 이를 놓고 유학자의 관점에 입각한 불교 비판이라 폄하하기도 했으나, 동국역경원 역경의원을 역임한 박건주 능가선연구소장이 저술한 책 '선종사상 왜곡의 역사와 간화선'에서 전모를 밝히고 있다. 보면 간화선 제일주의와 선종 문헌에만 빠져있던 당시 선승들의 문제를 추사가 청나라 옹정제의 교서까지 인용하며(추사 본인은 옹정제의 교서라는 걸 숨겼다) 비판한 것이다.[111] 힌두교는 다신교를 가장 먼저 연구한 플레이어가 선점한다. 문명 4에선 이슬람교의 창시 가능 시기가 왕권신수설이 연구되는 중세로 가장 늦다.[112] 5편은 시스템상 불교를 우선적으로 만드는 문명이 시암밖에 없고, 6에서는 크메르나 일본 등이 추가되었다.[113] 시스템상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타 종교도 동일하다.[114] 다만 도킨스의 평가에서 불교가 제외된 이유는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이라기 보단 현대 종교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현대 불교는 표면적으로는 합리성, 비배타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115] 삼악도의 나머지 두 개인 지옥도와 아귀도. 나머지 아수라도와 인간도, 천상도는 삼선도라 부르며, 삼선도와 삼악도를 묶어서 육도라고 부른다.[116] 패리스 힐튼의 애완 돼지, 빌 클린턴의 애완 고양이, 마이클 잭슨의 애완 침팬지 등.[117] 불교에서는 이를 전생의 선업에 따른 인연의 하나라고 설명한다.[118] 유럽의 축산 관련 과학자들과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수록 고기 육질이 부드러워져서 더욱 맛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유럽의 축산업자들은 어지간하면 방목을 선호하며 심지어는 농장에 관현악 음악을 틀어서 소나 돼지들이 그걸 감상하게 해주기도 한다.[119] 튀르크인들이 이민족 농민 집단 전반을 일컫는 멸칭인데, 중앙아시아에서는 불자들 전반을 비하하는 어휘로도 사용되었다.[120] 불교의 대표 경전인 반야심경이 대중적으로 널리 전파되는 계기가 된 영상이다. 이로 인해 불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쌓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