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의 한자 독음으로, 번뇌가 소멸된 상태[1] 또는 완성된 깨달음의 세계[2]를 의미하는 불교의 교리.2. 역사
《열반경》에서 유래되었는데, 여기서의 열반은 '부처의 죽음'[3]을 의미한다. 쿠시나가라성 인근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음력 2월 15일[4] 하루 동안 설한 내용을 담은 도서[5]인데, 주로 '대열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대열반이란 부처로 하여금 부처화되게 하는 것[6]으로, 법신(法神)[7], 반야(般冶), 해탈(解脫)로 구성되며, 이를 열반의 삼법 내지 삼덕이라고 지칭한다. 이 세 요소는 상호의존적 관계이며, 단계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또한 열반의 사덕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인데, 사덕이 발현된 열반이 부처의 참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열반경》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불신상주설·일체중생유불성론·(열반의)사덕·천제불성론, 총 4가지 대의는 모두 불성을 전제로 설한 것이고, 그 불성이 현현된 것이 바로 열반이다.
3.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열반 |
산스크리트어 | निर्वाण |
영어 | Nirvana |
팔리어 | निब्बान |
네팔어 | निर्वाण |
티베트어 | བདེ་བར་གཤེགས་པའི་གནས།[8] |
한자 | 涅槃[9] |
베트남어 | Niết-bàn |
베트남어 | นิพพาน |
만주어 | Nirwan[10] |
한자로 음차해서 열반나(涅槃那), 열반(涅槃), 니원(泥洹)이라고도 한다. 원래 涅는 '녈'이라고 읽고 두음법칙으로 단어의 앞에 올 때는 '열'이 된다.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였던 것이 → 중국에서 한자어 '녈반'으로 음차되고 → 한국에서 두음법칙으로 '열반'이 된 것이다. 산스크리트식 '니르바나'와 한자를 거친 '열반' 모두 옳은 표기다. 사실 열반나(涅槃那)는 중고한어로 net-ban-na 혹은 niet-buan-na로 읽히는 음차 표기다.[12]
의역할 때는 '적멸'이라고 한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적멸'이 열반을 뜻한다. 모든 번뇌를 태워 버리고 기쁨도 슬픔도 없는 마음이 지극히 고요한 상태를 의미하며 멸도 등으로 쓰기도 하는 참으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4. 여담
- 열반이라는 개념이 서양[13]에서는 열락(悅樂)[14] 혹은 영구적 평화로 해석되어 오·남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례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신 분석에서 장치의 에너지 양이 0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열반원칙(nirvana principle)이라고 명명했다.
- 사실 불교의 최종 목표는 열반이 아니라 무상정등정각, 즉 최상의 깨달음을 이룩하는 것이다. 열반은 무상정등정각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편인 삼승 중 하나에 속한다.[15]
- 열반을 위한 방법으로 2열반·3열반·4종열반 등이 제시되는데, 그 중 2열반에는 부처처럼 육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열반에 든 경우(유여열반)와 육체가 소멸한 상태로 열반에 드는 경우(무여열반) 두 가지가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현생에서 해탈을 통해 열반에 도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죽음을 통해서 열반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상좌부 불교의 해석이며, 대승 불교에서는 상술한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유무로 구분한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처음 담아낸 책인 '디가 니까야'의 첫 번째 경인 범망경에서 이에 대해 아주 짧게 나온다. 디가 니까야는 팔리어로 쓰였으며 제1차 결집 때 아난다 존자를 중심으로 석가모니의 직계 제자 약 500여 명이 만장일치를 통해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고 써낸 책이다. 범망경이란 '견해의 그물'이라고도 하며 이런 견해에 집착 또는 머물면 열반에 들 수 없다 하고 '잘못된 견해'에 대해 설명한다.
- 상좌부 불교의 교학관에 따르면 색계 선정을 어느 정도 배양한 수행자는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들을 마음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고 여긴다. 이때 도과(道果, magga-phala)의 지혜 역시 배양된 상태라면 열반을 대상으로 삼아서 관찰할 경우 밝은 빛으로 보인다고 한다. 상좌부 명상가들은 이 지혜로워진 마음이 열반을 인식하면 그 힘으로 인해 번뇌와 오염원이 제거된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단, 이처럼 열반을 일종의 실재하는 대상으로 보는 견해가 '실체 없음(anatman)'을 말하는 불교와 상충된다는 이유로 거부하며 '번뇌 없음'에 해당하는 부정어로 열반을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 스님의 부고를 불교계에서는 '입적하셨다'라는 말로 지칭하는데, 이는 열반과 혼동하는 이들이 있다.[16] 입적이라는 말은 '완전한'이라는 의미의 접두사인 파리(pari)를 붙여 파리니르바나(parinirvana, 귀환)라고 한다. 한역으로는 반열반(般涅槃)으로 음사한다.
- 한국에 열반이라는 개념을 처음 정립한 인물은 일반적으로 원효로 간주된다. 그는 《열반경종요》를 저술하여 당시의 열반에 대한 이설들을 총정리하고 독창적인 학설을 전개시켰으며, 《열반경》에 대해서는 설법의 정수라며 극찬했다.
[1] 본래 (불을) 불어서 끄는 행위 또는 그 상태를 의미한다. 즉, 번뇌의 불길이 꺼져 이를 더 이상 체험하지 않는다는 것.[2] 단, 이것은 어떤 영롱한 실체로서의 참마음·불성을 깨치면서 이르는 오묘한 상태와는 다르다.[3] 중생의 죽음은 '고(苦)'라고 칭한다.[4] 시기는 기원전 480년경으로 추정.[5] 부처의 입멸을 통지받은 대중들이 슬퍼하는 모습, 사라쌍수 나뭇잎이 학처럼 하얗게 변하는 모습, 무변신(無邊身) 보살이 부처에게 공양하는 모습 등, 당시의 상황 역시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심지어 부처에게 독사나 악업을 행한 자들조차 그에게 찾아와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물론 비종교인의 입장에서는 과장된 속설로 취급하는데, 《열반경》 편찬 당시 기존 불교의 심각한 위기 및 힌두교의 급성장 속에서 어느 정도의 입지를 지켜야 했기에 교단의 통합을 위해 신화적인 내용을 첨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석가모니 본인은 살아생전 열반이라는 표현을 설한 적이 없다.[6] 쉽게 말해, 부처가 되게 하는 부처의 본질.[7] 시공간을 초월하는, 세계의 보편적인 이법.[8] 국제음성기호로는 bɑde̞ːbɑʁɑːɡɑʃe̞ɡɑsɑːpɑʔiːˈɡɑnɑs 이다. 직역하면 '죽은 이의 처소'라는 뜻이다.[9] 표준 중국어 발음으로는 nièpán, 광둥어로는 nihppùhn이라고 발음된다. 일본어로는 ねはん[10] 만문 금강경에서는 gasacun ci duleke doro(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도)나 mukiyebume doobuhangge(불이 꺼져 건너가게 하는 것)으로 의역하였다.[11] 현재도 시크교는 열반을 모크샤라고 한다.[12] 석가모니를 뜻하는 释迦牟尼도 산스크리트 shakyamuni를 중고한어로 sjek-kia-muw-ni로 옮긴 음차 표기다.[13] 19세기 지성인들의 영향이 크며, 1960년대 히피들이 마약 복용으로 얻었던 환락을 이에 빗대면서 불교를 유입시킨 것도 영향이 있다.[14] 유한적인 욕구를 넘어서서 얻는 큰 기쁨.[15] 무상정등각(anuttarasamyaksambodhi)은 한중일 불교에서 유독 중요시되는 감이 있는 표현으로, 인도 철학으로 접근한다면 엄격한 의미 구분보다는 그냥 하나의 이해를 돕는 수사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아 보인다. 사실 해탈과 열반도 원래는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 단어였다.[16] 물론 실생활에서는 자주 혼용된다. 일례로 첫 수능시험에서 열반의 의미를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열반에 들다'와 '입적하다'를 같은 의미로 판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