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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천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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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 종단
<colbgcolor=#0F5CA8><colcolor=#fff> {{{+2 대한불교천태종}}}
大韓佛敎天台宗 | Cheontae Order of Korea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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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지 개인완성(個人完成)
불국토건설(佛國土建設)
법성체결합(法性體結合)
약칭 천태종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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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종 1097년[1] (고려 숙종 2년) ([dday(1097-01-01)]일, [age(1097-01-01)]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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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FFF><colbgcolor=#f5f5f5,#2d2f34> 종조[2] 지의 천태 대사
개창조 의천 대각 국사
중창조 상월 원각 대조사
}}} }}} }}} ||
소의경전[3] 묘법연화경
종정 도용 대종사[4]
총무원장 덕수 스님[5]
주소[6]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구인사길 73 (백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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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특징4. 종정5. 사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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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불교 종단 중 하나로, 총본산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위치한 구인사이다.

2. 역사

중국 천태종은 6세기 수나라 시대 승려 지의(智顗, 538년~597년)가 597년에 개창하였다. 지의가 (오늘날 중국 저장성에 있는) 천태산(天台山)에 머물렀으므로 '천태대사'라고도 불렀고, 종문의 이름 또한 천태종이라 하였다.[7] 저장성이 한반도와 가까워서인지 삼국시대에 천태종의 가르침이 한반도에 들어온 듯하지만 뚜렷한 조직을 갖추지는 못하였다.

11세기 고려시대에 대각국사 의천송나라에 유학하여 천태종의 고승들을 만나 가르침을 배운 뒤, 고려로 돌아와 1097년(고려 숙종 2년)에 새로 창건된 국청사(國淸寺)[8] 주지가 되면서 해동 천태종(海東 天台宗)을 창종하였다.[9] 그러나 조선 세종 6년(1424년) 불교 종파를 통폐합할 때 선종에 폐합되어 사라졌고, 불교의 교세 확장을 국가 정책으로 억제한 조선왕조가 존속하는 동안에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였다.

대한불교천태종은 상월원각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1922-74)[10]가 1967년 포교원 형식으로 조직한 후 1970년에 정부에 등록한 교단으로, 과거의 천태종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상월원각대조사를 중창조[11]로 삼는다.

참고로 천태종은 9세기 초에 일본에도 건너갔는데, 구카이와 동시대 인물인 사이초(最澄)가 803년 중국으로 건너가 천태종을 배운 뒤 805년에 일본으로 돌아와 천태종을 개창하였으며, 현대까지도 맥을 이어왔다.

3. 특징

한국 불교 지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일반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대한불교 조계종과 비교하면 천태종단은 염불 중심의 의례보다는 생활 속에서 자비를 실현하는 생활불교, 실천불교를 지향한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일반 조계종 스님들과는 다르게 스님들도 땀 흘리며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을 하는 주경야선을 지향한다. 조계종에서도 노동 자체를 수행으로 여기고 스님들이 직접 일을 하는 편이지만 그 비중이 천태종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적고 참선 등의 수행의 비중이 더 크다. 아울러 조계종이 선종을 계승했다면 천태종은 교종을 계승한 것이 그 특징이다.

한국 불교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계종과 많이 다르다. 일단 가장 큰 차이는 스님으로 출가해도 구족계[12]를 받지 않고 십선계(十善戒)만 받는다는 것. 천태종에서는 상좌부 불교에서 유래한, 지키지도 못할 구족계를 받느니 차라리 모든 계율의 핵심만 취한 십선계만 받음이 훨씬 낫다고 본다. 구족계를 제대로 주려면 3사 7증 자격요건이 필요하지만, 천태종에서는 십선계만 주므로 그런 조건에서 벗어난다.

조계종에서는 먼저 출가하면 사미계(사미니계)를 받고, 그 뒤에 구족계와 보살계를 받아야 한다. 또한 구족계와 보살계를 받아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정식 스님로 인정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많은 조계종 스님들이 제대로 구족계를 지키지 못하고[13], 심지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조계종에서도 인정하는 바. 이런 범계를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고, 허용할 수 없을지 논의할 필요가 분명히 있으나,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그저 관행적으로 적당히 넘어가는 현실이다.

천태종에서는 모든 출가자가 전부 종정을 은사 겸 계사[14]로 삼는다. 즉 천태종은 교단 전체가 1대 종정 상월원각대조사에서 유래한 단일문중이 된다. 조계종이 여러 은사 문하로 문중이 나뉘는 것과 대비된다. 또한 출가한 뒤에도 속성에 법명을 붙여 쓴다. 조계종 스님들은 성 없이 법명만 쓰거나, 또는 옛 관습대로 석(釋)자를 법명 앞에 붙이는 것[15]이 대중적이므로, 천태종 스님들과는 아주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천태종은 대처승 종단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천태종은 상월스님 때부터 계율이 엄격한 청정비구종단이었다. (구족계를 받는 비구가 없는 상황에서 청정비구 종단이라고 할수는 없는 듯 그냥 독신종단이 맞는 표현) 천태종은 독신이 아니면 출가를 허용치 않으며 법적절차를 거쳐 정리했다 해도 절차가 독신에서 출가하는 것에 비해 상당히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다.

생활면에서는 스님의 육선이 허용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천태종 승려들이 십선계만 받았기 때문이다. 십선계에는 불음주계가 없다. 따라서 술을 마셔도 범계(계를 어김)라고 할 수가 없는 것. 물론 십선계에 불살생계가 있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지 고기도 먹지 말란 것이 아니니, 자기 손으로 동물을 잡아 죽여 요리하는 게 아니라면 역시 범계가 될 수 없다. 조계종 스님들조차 음주는 안 하더라도 육식을 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천태종 스님들은 직접 힘들여 농사 등 노동을 하기 때문에[16], 육식을 해야 힘을 쓴다는 건강 상식에서 이러한 규율이 정해진 면도 있다.

특이하게도 천태종 승려들은 닭고기달걀을 먹지 않는데, 닭은 천태종에서 신장이 환생한 동물이라고 여겨 닭과 닭이 낳는 알을 먹지 않는다. 규율이라기보다는 금기에 가깝다. 그 밖에도 개 뱀 닭 꿩 노루 고등어 갈치 꽁치 잉어 메기 뱀장어 등을 영물이나 부정하다는 이유로 먹지 않는다.

천태종을 중흥한 상월원각대조사가 깨달음을 얻을 적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서 닭을 먹지 않는다는 설도 있고, 또 다른 설로는 모든 닭 전부를 영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개벽의 상징인 봉황의 기운을 타고나는 닭이 있기에 실수로라도 봉황을 섭취하지 않기 위해 먹지 않는다는 설 등이 있다.

천태종 본산인 구인사의 형태가 닭이 알을 품은 풍수지리라서 그렇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17] 따라서 명절에도 전을 부칠 때 달걀 대신에 대량의 메추리알과 찹쌀가루 등을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천태종 모든 말사들이 경내 금연이며 담배를 엄격히 금하는 것 또한 특징이다.

상월스님의 승속불이 사상에 의해 스님들과 재가자 모두가 수행력이 말로 설명이 불가하다. 조계종이나 다른 종단들을 보면 산문 폐쇄 시간이 있어 그 시간에는 사찰에 입장할 수 없다. 하지만 천태종은 구인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말사들이 상월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고통받는 중생을 향해 24시간 개방된다. 22시부터 새벽 3시 반까지는 구인사 모든 스님들과 대중들이 관음주송을 한다.

비구니들이 머리를 삭발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자른 후 머리를 뒤로 올려 고정한 다음 법모를 쓴다.[18] 또 여러 부처들과 더불어 천태종의 역대조사들도 모신다는 게 차이점. 그래서 경내에 불전보다는 강당과 요사채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구인사는 경내에 우체국터미널이 따로 있다.

소박하고 절제된 건축양식을 선호하는 조계종에 비해 크고 화려한 한옥사찰을 많이 지어서, 고건축 마니아들의 관심을 받는다. 새로 만든 사찰이 많다보니 사찰 건물 대부분이 콘크리트 위에 한옥 지붕만 얹은 식이지만, 구인사 대조사전이나 대광사 미륵보전, 법흥사 미륵보전, 월룡사 대웅보전 등은 제대로 전통목조건축으로 지었다. 특히 대조사전은 완공되었을 때 불교계 언론만이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보도했을 정도였다.

또한 천태종 사찰은 스님이 개인적으로 창건한 사찰이 없는 것 또한 특징이다. 모든 종단을 통틀어 말사등록이 가장 까다롭다. 조계종이나 타종단들처럼 스님이 창건하여 종단에 등록시키는 경우가 없이, 신도들이 불사를 하여 종단에 등록하면 주지스님들이 파견 형식으로 사찰의 법회 및 행사를 주관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주지는 비구스님(구족계를 받지 않음으로 천태종에는 비구.비구니는없다. 남자스님.여자스님만 존재)만 맡을 수 있다.

이외 상월스님이 종단을 처음 중창하셨을 때 종법에 관여치 않고 등록한 사설말사(경주 원원사, 충주 몽선암, 제천 성공사, 울산 선광사, 양산 복천정사 등)가 있다고 알려졌으나, 비불교적인 부분(샤머니즘)을 배척하는 종단 특성과는 달리 비불교적인 부분이 있으며 종단에서 주지를 파견하지 않고 한 주지가 지속적으로 주지를 맡는다. 말 그대로 천태종 이름만 빌려쓴 개인 암자에 불과하다.

또한 천태종은 국내 수많은 종단 중에서 밀교계통인 총지종, 진각종과 더불어 무속신앙을 철저히 배척한다.[19] 그 이유로 인해 산신각, 칠성각 등 무속과 관련된 전각이 정식으로 등록된 말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20]

이는 바람직한 불교, 불교다운 불교를 지향했던 상월스님의 가르침에서 유래된 것이다. 천태종의 특징을 하나 뽑자면 천태종은 다른 종단과는 달리 장례풍습을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한다.

산하 교육기관으로 충청남도 논산시 소재 금강대학교가 있으며 천태종 스님들의 교육기관인 금강승가대학과 포교사를 육성하는 금강불교대학이 있다. 종단소식과 불교소식을 전하고 격월간 잡지를 만드는 금강신문#이 있다.

4. 종정

5. 사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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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각 국사에 의해, 고려에 중국 천태종의 개조(開祖)인 천태 대사의 '천태교학(天台敎學)'이 처음 전해졌다.[2] 宗祖. 종단을 처음으로 일으킨 스님.[3] 所依經典. 종단의 근본이 되는 경전.[4] 속명: 김영춘[5] 속명: 박종렬[6] 총본산 구인사[7] 지의가 법명이고 지자(智者)가 법호라 '지자대사'라고도 부른다.[8] 중국 천태산에 있는 천태종 본산도 이름이 국청사(國淸寺)이다. 천태산 국청사의 이름을 따서 고려에도 국청사를 세운 것이다.[9] 송나라 때 중국에서는 당나라와 주나라(5대10국 시기)에 일어난 훼불사태로 고려의 천태학을 역수입해가기도 했다.[10] 통상적으로 1911년생이라고 하는데, 최동순 교수가 고증한 바에 따르면 1922년생이다. 밀양 박씨 집안으로 강원도 삼척시에서 태어났다. 속명도 교단에서는 박준동(朴準東)이었다고 설명하지만 종교학자가 고증한 바에 따르면 박준각(朴準角)이다. 법명이 상월(上月)이고 법호가 원각(圓覺)이다.[11] 사라졌던 종단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뜻[12] 비구(남승) 250계, 비구니(여승) 348계. 이 계율은 상좌부 불교와 공용한다.[13] 육식은 재가불자와의 소통 등을 위해 지키지 못할 경우가 있다고 보면 된다.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라면 술은 재가자들이 알아서 권하지도 않으나, 만에 하나 곡차를 마시려고 하다가 재가불자에게 발각이 되면 압수당한다.[14] 은사는 스승, 계사는 계를 주는 스님을 가리킨다.[15] 출가함으로써 석가모니 집안의 일원이 되었다는 뜻이다.[16] 하루 300-400명이 먹을 3끼 재료를 경작으로 마련한다고 한다.[17] 비단 닭고기와 달걀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여러 이유로 먹지 않는다.[18] 꼭 터키 모자 페스처럼 생겼다.[19] 총지종과 진각종은 무불습합이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였으나 천태종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모든 종단을 통틀어 무속을 가장 철저하게 배제를 시키는데도 불구하고 무속인들은 구인사가 터가 좋고 기운이 좋다는 이유로 왔다 가곤 한다.[20] 제주 문강사에는 영문각이라는 전각이 있으나, 이는 처음 종단을 등록할 때 제주지역의 특성을 상월스님이 배려해준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때 세워진 사찰이라 현재까지도 유지를 시켜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사찰을 매입해 천태종에 등록을 시키는 것이 가능했던 시기에는 삼성각, 산신각 등 무속전각들을 전부 정리시키고 등록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매입해서 종단에 등록하는 것이 불가하고, 신도들이 힘을 모아 절을 건립하고 어느 정도 포교활동이 되어야 사찰로 승격되는 형태이다.(이 주장 역시 무리가 있다. 위에서 상술한 닭고기와 계란 금지에서 닭의 신장 환생설, 개벽설, 풍수지리설 모두 불교교리와는 무관한 무속이나 민속종교 도교의 설이다. 그리고 천태종에서 보급하는 모든 달력에 삼살방과 대장군방이 표시되고, 음력 1월.2월 초하루 정오 이전 여성출입금지 역시 비 불교적인 무속이나 토속신앙의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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