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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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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불교 종단
<colbgcolor=#B9A26A><colcolor=#231916> 대한불교조계종
大韓佛敎曹溪宗 |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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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지 <colbgcolor=#fff,#1c1d1f>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전법도생(傳法度生)
약칭 조계종, 대한조계종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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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종 821년[1] (신라 헌덕왕 13년)
소의경전[2] 금강반야바라밀경, 전등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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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조[6] 보우 태고 국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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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8]
총무원장 대련 진우 스님[9]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견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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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37대 집행부

1. 개요2. 상징
2.1. 종명2.2. 종단 문장2.3. 종헌
3. 구조
3.1. 종정3.2. 원로회의3.3. 중앙종회3.4. 총무원3.5. 호계원3.6. 교육원 및 포교원3.7. 교구본사제
4. 역사
4.1. 종조 논란
5. 역대 임원
5.1. 종정5.2. 총무원장
6. 25교구 및 교구별 본사(本寺)7. 산하 교육기관8. 비판9. 여담10.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9세기에 창시된 대한민국불교 종단 중 하나로, 한국 불교의 최대 종단이자 유일하게 불교 군종장교를 배출하고 있는 종단이다.

공식 명칭은 대한불교조계종[10]으로 한국불교조계종, 대한전통불교조계종, 대한불교통합조계종, 대한불교조계종삼화불교, 현대불교조계종, 세계불교조계종, 근본불교조계종 등은 모두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유사조계종 명칭을 사용하는 곳이 무려 30여 곳이 넘는다.[11]

수행체계로 간화선 중심의 선종을 표방하고 있으나 아래 역사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조선왕조의 불교 억제 정책에 따라 종파간 강제 통폐합으로 교종, 진언종, 정토종의 교리가 흡수되어 통불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비구, 비구니 승단으로 대처승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총본산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조계사이다.

2. 상징

2.1. 종명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한국어 <colbgcolor=#FFF,#1F2023>대한불교조계종
영어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중국어
<colbgcolor=#F5F5F5,#2D2F34>
간체자
大韩佛教曹溪宗
번체자
大韓佛敎曹溪宗
일본어 大韓仏教曹渓宗
현존하며 조계종이라는 종명이 분명하게 명시된 사료는 1172년 (명종 2년)에 세워진 <고려국조계종 굴산하단속사대감국사지비>[12]이다.

반면 대한불교조계종은 중국의 승려, 혜능의 법호에서 유래한다. 본래 조계라는 말은 광둥 지역의 조계산에서 유래했으나 조계산의 보림사를 중심으로 하는 혜능의 영향으로 선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13]

2.2. 종단 문장

파일:대한불교조계종 상징.svg 삼보륜
삼보륜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표현한 상징으로, 삼보의 신앙과 선교양종의 조계종의 이념을 담았으며, 사부대중의 화합 그리고 신앙과 포교를 통한 불국정토의 구현을 의미합니다.[14]
파일:대한불교조계종 상징.svg 파일:대한불교조계종 문장 금가사색.svg 파일:대한불교조계종 문장 가사색.svg
금색 별색 금 가사색 별색 가사색 별색
금색 (#B9A26A)
금 가사색 (#B6500E)
가사색 (#231916)

2.3. 종헌

종헌 전문
공유컨데 아 종조 도의국사께서 조계의 정통법인을 사승하사 가지영역에서 종당을 게양하심으로부터 구산문이 열개하고 오교파가 병립하여 선풍교학이 근역에 미만하였더니 여조의 쇠미와 함께 교세가 불진하려 할새 태고사께서 제종을 포할하사 조계의 단일종을 공칭하시니 이는 아국불교의 특색인지라 세계만방에 자랑할만한 사실이어니와 아종은 조선조 5백년의 배불훼석의 정치적 법난에도 부요부굴하고 현사의 혜명을 사속하면서 정혜쌍수와 이사무애를 제고하며 대승불교의 성불도생을 실천하여온 것이다.

이래 종명을 공칭하고 종헌을 제정하여 계법을 존숭하고 이판을 추장하여 내로는 정법안장을 비전면면케 하고 외로는 도생문호를 활개하여 교화활동을 향상케 하니, 선교병창이 종차이시라 하겠다. 8·15 광복 후 교단의 청정과 승풍을 진작하려는 종도들의 원력에 의해 불기 2498(1954)년 정화운동이 일어나 자정과 쇄신으로 마침내 종단의 화합이 이룩되어 불기 2506(1962)년 3월 22일 종헌을 제정하고 통합종단이 출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단의 청정성과 삼보호지의 기본틀이 다져지고, 수행납자의 가풍이 진작되었으며, 포교와 가람불사에 힘을 기울여 한국 불교는 유례없는 교세 확장을 이루었다.

그 후 교단에 닥친 몇 차례의 법난을 극복하고 종단 개혁에 대한 종도들의 여망에 부응하여 개혁회의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에 개혁회의는 종단 개혁에 필요한 각종 조치를 취하고, 불법이 중생교화의 만대지침이 되며 교단이 수행과 전법의 영겁기단이 되도록 종헌을 개정하였으니, 종도 대중은 민족통일과 문명사의 새로운 흐름에 대비하고 종헌의 큰 뜻을 받들어 실천하여 이 땅의 불일을 만고에 빛나게 하고 삼보를 법계에 유전케 하라. 삼가 불조의 가호 밑에 우리 법손 만대의 향상과 번영을 빌며 이 헌장을 개정 공포하노라.
파일:대한불교조계종 문장 가사색.svg

3. 구조

종지는, 석가모니가 주창한 3가지 깨달음인 자각·각타·각행원만을 근본교리로 받들며, 직지인심[15]·견성성불[16]하여 중생을 이끌어 지도함을 목표로 한다. 조계종을 중흥하여 개산조사 다음 가는 공로를 세운 중흥조는 고려 말의 보우 태고국사이다.

불교에서의 분류에서 알 수 있듯 대승불교의 수행체계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선종으로 참선이나 묵조선과 같은 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인데, 조계종이 대표적이다. 신라의 9산은 모두 선종의 갈래이다. 교종은 소의경전과 교리를 준수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려 한다. 신라시대 5교란 교종을 뜻한다. 교종에선 소의경전을 종파의 이름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신라시대 열반종과 화엄종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정토종은 신앙으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극락에 환생한 뒤, 극락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는 종파로 정토종이 대표적이다. 진언종 또는 밀교는 진언(주문)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종파로 티베트 불교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불교는 조선시대에 선종과 교종이 강제로 통합되어 선교합종의 성격을 띠며 통불교적인 성향을 띈다. 조계종은 중국의 6조 혜능선사가 금강경의 구절을 통해서 깨달음의 계기를 얻었으므로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17]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이나 현상은 모두 무상하다는 공 사상이 핵심인 경전이다. 조계종은 이 사상을 바탕으로, 화두[18] 참선을 주요 수행법으로 삼는다.

조계종단은 공식적으로는 1920년부터 현재와 같은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1962년 박정희 정권이 대처승을 포함하여 '대한불교 조계종'을 인정한 것이 종단의 참 시작이라고 해야 한다.[19] 현재 조계종 직무와 조직에는 종단을 대표하는 종정[20]을 비롯하여, 중앙종회, 총무원, 호계원, 교육원, 포교원, 원로회의가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총무원장[21]이 중심이다.

3.1. 종정

종정은 조계종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가진다.
연령 70세 이상이며 승남 45년 이상, 대종사 법계를 가진 스님 중 종정을 추대한다. 임기는 5년이며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 10년 동안 종정을 할 수 있다.

3.2. 원로회의

원로회의는 17인 이상 25인 이내의 승납 45년, 연령 70세, 대종사 법계를 가진 비구로 구성한다.
원로회의에서는 종정을 추대하며 종헌 개정안 인준권, 총무원장 인준권, 총무원장 불신임 결의에 대한 인준권, 비상시 중앙종회 해산 제청권, 중앙종회 해산시 권한 대행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

3.3. 중앙종회

중앙종회는 국회에 대응되는 기관이다. 총원 81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 승남 15년 이상 연령 35세 이상의 승려로 구성한다.
1. 중앙종회에서는 종헌[22], 종법[23] 개정권
2. 교육원장[24], 포교원장[25], 호계원장 [26], 초심호계원장, 호계위원[27], 법규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 소청심사위원장, 소청심사위원 선출
3. 원로회의 의원 추천
4. 종단의 예결산 및 재산 처분안
5. 교구획정
6. 징계의 사면 경감, 부권에 대한 동의사항
7.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불신임 결의[28]
8. 각금 종무기관에 대한 감사 (종정감사)
9. 호법부장[29] 임명동의
10. 중앙종회 의원 징계
11. 직영사찰과 특별분담사찰 지정에 관한 사항[30]
12. 종무위원[31] 해임 건의
13. 종헌 종법에 의해 중앙종회의 권한에 속한 사항
14. 기타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3.4. 총무원

총무원은 종단 내의 행정부에 대응하며, 총무원장은 사회에서의 총리에 대응한다. 조계종 내에서 가장 많은 예산과 권한을 가지며 실질적으로 종단을 대표한다. 총무원장의 자격은 승납 30년, 연령 50세 이상의 종사 법계 이상을 가진 비구 중에서 선출하고, 1차에 한해서 연임할 수 있다.

총무원장을 포함하여 교육원장, 포교원장을 3원장이라고 칭한다. 교육원장과 포교원장은 총무원장이 추천하여 종앙종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 실질적으로 총무원장이 두 원장을 내정하는 형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총무원 내부의 직책 중 요직이라고 한다면 바로 총무부장과 호법부장이다. 총무부장의 경우 총무원장이 맡고 있는 실질적인 업무를 집행하며, 각 부서 임명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고, 총무원장 유고 시 권한을 대행한다. 또한 호법부장의 경우 종단 내의 검찰총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94년 종단 개혁 이전에는 동 부서에서 다른 스님들을 때려잡는 일이 많아 많은 견제 장치를 설치하였다.

3.5. 호계원

종단 내의 대법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3.6. 교육원 및 포교원

총무원, 중앙종회, 호계원은 우리나라에서 삼권분립에 대응되지만, 이상하게도 포교원과 교육원이 별도로 존재한다. 교육원과 포교원의 경우 총무원의 기조가 바뀌어도 그 업무와 흐름이 바뀌지 않도록 별도로 설치한 것으로 사료된다.

3.7. 교구본사제

조계종은 전국 사찰을 25개의 교구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으며, 상당한 지방자치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각 교구별 본사를 정하여 운영하는 이를 교구본사라고 한다. 각 교구는 자체적으로 총무원장 선거인단 각 10명, 중앙종회의원 등을 선출하여 중앙으로 보내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뽑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32]

그리고 교구본사의 업무 중 하나는 각 소속 사찰들로부터 분담금을 거두어 총무원에서 교구에 배정된 분담금을 납부하는 역할이다. 그렇게 해서 모인 돈이 총무원 예산으로 사용된다.

4. 역사

중국 선종 불교에서 6번째 조사 조계 혜능 계통이 이어온 선 사상이 우리나라에 활발하게 소개된 때는 신라 후반기다. 1172년에 건립된 단속사 대감국사비에 처음으로 조계종이라는 단어가 나타나므로,[33] 고려 중기에는 조계종이 이미 성립되었다고 추정한다.

고려 중기에 대각국사 의천천태종을 개창했을 때 법안종을 잇는 승려들도 대거 참여했다. 그런데 여기에 혜능 계통 선 사상을 고수하는 승려들이 반대하여 논쟁이 일어났는데, 이들이 천태종에 대응하고자 구성한 종단이 바로 조계종이다. 이로 말미암아 조계종은 화엄종ㆍ법상종[34]천태종과 함께 고려 불교계를 주도하는 4대 종단이 되었다. 그리고 조계종 스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승과[35]를 별도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와 달리 보조국사 지눌이 13세기 초, 조계산 수선사라는 절에서 사상을 크게 일으켜 세운 때부터 조계종이 시작됐다고 보는 학설도 있다. 그래서 조계종 종조는 보조 지눌이라고 주장하는 보조 법통설이 나와, 첨예한 조계종 종조 논란을 일으켰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 조계종 종조 논란 참조.

14세기 중반 무렵에는 태고 보우가 왕으로부터 승려 인사권을 위임받아 불교계를 장악하면서, 사실상 조계종이 불교계를 주도하였으며, 이때 원나라에서 새로 들어온 임제종의 법맥을 이었다고 하는 등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36] 그 후 조선왕조가 숭유억불 정책을 실시하면서 조계종단도 타격을 받아, 세종 6년(1424)에 천태종ㆍ총남종과 함께 선종으로 강제 통합되었다.

그 결과 조계종 특성은 희석되었고, 사회 경제 전반으로 기반이 무너지고 박탈당했다. 그리고 연산군중종 대에 이르러서는 연이어 불교가 탄압 받으며 종단 자체가 사실상 해체되는 사태가 일어났고, 승려 대부분이 산속으로 도망쳐 비구계 전승조차 힘든 상황에 처한다.[37]

조선 중기에는 명종대에 문정왕후(섭정)의 주관으로 현 탑골공원 일대에 원각사를 중건하고 원각사 10층석탑을 지어올리는 등 불교 중건이 잠시 이뤄졌으나 문정왕후 사후에는 원각사가 폐지되고 도성내에는 승려 출입을 엄금하고 사찰을 지을 수 없으며 흥인지문 밖 10리 안으로 출입을 엄금하는 정책이 유지 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혼란한 사회상과 구복 신앙적 성격인 관음신앙이 널리 퍼지면서 행상, 상단 즉, 상업의 발달과 함께 부유한 자본 계층이 등장하였고 그들은 자신의 명복과 내세를 위해 전국 곳곳에 거대한 사찰을 짓고 다층탑을 지어 올렸다. 이시기에 지어지는 대표적 사찰로는 법주사를 예로 들수 있고 법주사 5층 목탑을 대표적 조선 후기 목탑으로 볼 수 있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는 불교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조계사를 창건한 후 조계사를 조계종 본산으로 두고 그 외 종단을 배척하는 사찰령을 반포하였다. 사찰 문화유산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추진된 정책이었으나 사실상 일제에 항거하는 불교계 인사들을 감시 감독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만해 한용운을 중심으로 불교정화운동이 펼쳐졌고 일본 만종에 반하여 탄생된 선학원이 주축이 돼 조계종과 대립각을 이루게 되었다. 광복 후 이승만 대통령 주도하에 불교계 통합 운동이 이어졌고 선학원은 조계종단으로 귀속되고 여타 다른 종단들도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나 여전히 일제 시절의 잔재가 남아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행 조계종은 1962년에 박정희 정권이 불교계 전체를 통틀어 조계종만을 유일한 종단으로 인정해주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권의 조치에 대처승 등이 반발했기 때문에 법적투쟁을 벌인 끝에 태고종이나 천태종 등이 설립을 인정받았지만, 대부분은 조계종 산하로 남았다.

4.1. 종조 논란

종조(宗祖)에 관한 논란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 시기에 서산대사 휴정 문하에서는 보우 태고국사를 우리나라 조계종 종조로 보았다. 1625년에 서산대사의 상좌[38] 언기 스님이 태고보우 국사가 종조라는 태고법통설을 제기했다. 1630년에 묘향산금강산, 그 이듬해에는 대흥사에 각각 휴정 비문을 세우면서 태고법통설을 정설로 받들었다. 나아가 휴정대사 상좌들이 조선 중기 이후 불교계를 주도하였으므로 우리나라 불교계 전반에 태고법통설이 정통으로 자리잡는 듯했다. 그런데 구한말 이후 이능화(李能和, 1869-1943)가 최초로 조계종 종조를 언급하며, "보조국사 지눌 이후에 조계종이 성립됐다. 그러므로 조계종 종조는 보조 지눌!"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1918년 조선불교통사)

이에 보태어, 당시 일본에서 유학하며 조계종 연구에 몰두한 불화 이재열은 "태고 보우는 조계종 성립 후 200여 년이 흐른 뒤 활동한 인물이므로, 종조가 될 수 없다." 하며 보조 법통설에 힘을 실었다.

이렇게 태고 VS 보조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와중에, 1970년대 들어 성철 스님의 등장으로 조계종 종조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967년 해인사 초대 방장이 되면서 현대 한국불교를 이끈 성철 스님은 "조계 혜능을 원조로 임제선 계통을 이어 받은 태고가 종조"라고 주장했다. (출처: 한국불교의 법맥)

여기에 당시 동국대학교 교수이자 훗날 총무원장까지 역임하는 지관 스님도 "보조 종조론은 모든 이가 공감하기 어렵고, 조계종 법통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태고→환암→구곡→벽계→부용→서산 등으로 확정했다." 하며 태고 종조설 굳히기에 들어갔다. (출처: 조계종사. 동국역경원. 1976)

당시 성철 스님과 지관 스님이 종단 내에서 영향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조계종 종조 논쟁은 태고 종조설로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재열ㆍ이종익ㆍ고익진ㆍ최병진 등이 연이어 조계종 종조 문제를 거론하고 연구하며 끊임 없이 의의를 제기했기 때문에 논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처럼 끝이 보이지 않을 듯 보이던 종조 논쟁은 1994년 종단 개혁과 함께 마련된 종헌 종법에서 도의 국사[39]를 종조로 확정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동안 종헌에서 종조는 보조 지눌과 태고 보우가 번갈아 차지했다. 1954년 불교정화 당시 양 종조설이 대립했다. 1962년 2월 불교재건 비상총회에서는 태고를 내세웠으나, 현 조계종단을 세운 비구 측은 보조를 종조로 한 종헌을 단독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80년 10.27 법난 이후 개정된 종헌은 태고를 종조로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94년 개혁불사 직후 9월 29일에는 새로운 종헌에서 도의 국사를 종조로 내세우면서 태고는 중흥조임을 밝혔다. 그러니까 현 종헌은 도의 종조설과 보조 종조설, 그리고 태고 종조설을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현행 조계종 종헌 종법에는 도의 국사를 종조로 본다. 그러나 그 규정을 다소 애매하게 정했으므로 논쟁이 다시 일어날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누구를 종조로 보느냐에 따라 조계종 정체성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으므로, 이 문제는 종단 내 정치역학 문제와 맞물려 학계에서도 민감한 부분이다.

5. 역대 임원

5.1. 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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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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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B9A26A>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rowcolor=#231916,#FFF> 학눌 (효봉) 순호 (청담) 상언 (고암) 석호 (서옹)
<rowcolor=#B9A26A> 제5대 제6·7대 제8대 제9대
<rowcolor=#231916,#FFF> 벽암 성철 (퇴옹) 홍근 (서암) 명근 (월하)
<rowcolor=#B9A26A> 제10대 제11·12대 제13·14대 제15대
<rowcolor=#231916,#FFF> 성관 (혜암) 법전 (도림) 법원 (진제) 성파 (중봉)
※ 괄호는 법호를 의미함.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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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총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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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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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대행
제18대 제19대 제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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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B9A26A>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rowcolor=#231916,#FFF> 진경 서운 정일 녹원
<rowcolor=#B9A26A> 제25·26대 제27대 제28대 권한대행
<rowcolor=#231916,#FFF> 의현 탄성 월주 도법
<rowcolor=#B9A26A> 제29대 권한대행 제30대 권한대행
<rowcolor=#231916,#FFF> 혜원 원택 정대 선용
<rowcolor=#B9A26A> 제31대 권한대행 제32대 제33·34대
<rowcolor=#231916,#FFF> 법장 현고 지관 자승
<rowcolor=#B9A26A> 제35대 권한대행 제36대 제37대
<rowcolor=#231916,#FFF> 설정** 진우 원행 진우
* 2대종정이었던 청담의 비구계명.
** 중앙종회의 불신임안 가결로 퇴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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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교구 및 교구별 본사(本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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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교구 및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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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산하 교육기관

8.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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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담

10. 관련 문서



[1] 도의 국사에 의해, 통일신라에 중국 선종의 제6조(6번째 조사(祖師))인 혜능 대사의 '남종선(南宗禪)'이 처음 전해졌다.[2] 所依經典. 종단의 근본이 되는 경전.[3] 宗祖. 종단을 처음으로 일으킨 스님.[4]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명적이 법명, 도의가 법호이다.[5] 重闡祖. 종단의 종지를 밝힌 스님.[6] 中興祖. 종단을 다시 일으켜 세운 스님.[7] 한국 선종의 초조(初祖)이며, 한국불교태고종의 종조이기도 한다.[8] 속명: 조봉주[9] 속명: 김영철[10] 大韓佛敎曹溪宗,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11]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이외 유사조계종은 소속되어 있지 않다.[12] 高麗國曹溪宗堀山下斷俗寺大鑑國師之碑[13] 출처: 조계종 홈페이지 - 종명·종지[14] 출처: 조계종 - 종단문장[15] 교리를 캐거나 계행을 닦지 않고, 직접 사람 마음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깨닫게 하여 번뇌를 떠난 깨달음에 이름.[16] 자기 본성을 깨달아 부처가 됨[17] 어느 종단이든 그곳이 지향하는 바를 알아보려면 중시하는 경전(소의경전)이 무엇인지 살피면 된다. 불경이 6500여 권이 넘다 보니, 어느 경전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 종단의 특징이 드러난다.[18] 참선하는 자가 깨달음에 이르고자 답을 구하려 애쓰는 문제.[19] 종단이 없어 사설 사찰이나 땡중이 넘쳐나니 통합종단을 하나 인정해주고 이 종단이 사찰과 승려들을 관리감독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박정희 정권이 이때 대처승까지 통합종단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대처승들이 '우리들도 별개의 종단으로 인정해주세요.' 하고 법정투쟁을 벌여 태고종이 나왔다.[20] 조계종을 의원내각제 국가와 비교하면 종정은 실권 없이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대통령인 셈이다.[21] 총무원장은 중앙종회 의원 78명과 전국 24개 교구 본사에서 각각 10명씩 선출한 선거인단에서 뽑힌다. 의원내각제 국가로 따지자면 총리라고 볼 수 있다.[22] 종단의 헌법[23] 종단의 법률[24] 출가자 교육 전문[25] 포교정책 총괄[26] 종단의 대법원장[27] 법관[28]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29] 종단의 검찰총장[30] 조계종의 예산구조를 보면 국가처럼 모든 예산이 중앙으로 모아서 각 조직으로 분배하는 것이 아닌, 각 교구본사, 각 사찰 별로 분담금을 납부한다. 총무원이 관리하는 사찰은 조계사와 봉은사, 보문사 등에서는 직접 총무원장이 주지를 임면하여 재산과 예산 관리를 하며, 이를 직영사찰이라고 한다.[31] 종단의 국무위원[32] 단 각 교구본사의 주지들과 협상하여 누구로 총무원장을 뽑을지, 어떤 사람으로 뽑을지 협의를 하기도 한다.[33] 참고자료: 한국불교와 조계종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34] 유식학파 계통이다[35] 고려·조선 시대에 승려에게 시험을 보여 뽑던 과거 시험.[36] 당시 스님들 중에는 실제로 중국에 유학가서 임제종 법맥을 받아온 승려들이 있었고, 그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 근세불교의 틀이 마련되었다.[37] 구족계를 수계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구족계를 수계하신 스님 열 분을 모셔야 하는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차 도저히 구족계 수계 스님 열 분을 모시기가 어렵게 되어 산사마다 사미승들만 계시는 사태가 벌어진다.[38] 上佐. 원래는 '윗사람을 보좌한다.'는 뜻이지만, 불교에서는 고승의 제자를 뜻하는 말로 쓴다.[39] 道義, 783-821. 통일신라 성덕왕시대에 당나라로 가 조사((祖師)가 되어 신라로 돌아온, 중국으로 치면 선종의 시조 달마대사 같은 인물.[40] 淸規. 불교 승려도교 도사로서 지켜야 할 계율[41]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교.[42] 승려나 재가자 개인이 적대적인 경우는 있지만, 종단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반대 집회를 열거나 하진 않는다.[43] 대표적인 사례로 충주에서 일어난 소가죽을 벗긴 사건은 충주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일광조계종이라는 무속인 단체가 물불 안 가리고 무속인들을 받다가 발생한 사건이다. 절대로 바깥에 무속인들에게 맡겨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