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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00,#fff><colcolor=#fff,#000> 성도 | 중국 산둥성 타이산 |
| 시작 시기 | 기원전 6세기 (논란 있음) |
| 창시자 | 노자 (논란 있음) |
| 경전 | 도장(道藏) |
| 신관 | 다양하나 보통 다신론 |
| 근원 | 도가 사상, 고대 중국 민속신앙 |
1. 개요
도교(道敎)는 중국 한족의 민족종교이다. 중국 본토는 물론 대한민국, 일본, 동남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도가와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가는 정치철학이고 도교는 여기에 당대 중국의 여러 토속신앙을 혼합하여 이것을 종교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이 점에 대해선 학자들 간에도 견해가 엇갈린다.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통치자 황제와 도가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노자를 신봉한다고 하여 '황로사상' 또는 '황로교'라고도 한다.
쓰촨성에 있는 도관(道觀)[1] 청양궁(靑羊宮)의 모습. 청두 시내 서북쪽 두보초당 근처에 있어서 중간에 들리는 관광객들도 많다. # 도관 외에도 묘(廟)라 하여 한국의 마을 입구의 서낭당[2]이나 일본의 지장보살처럼 일반인들이 간단한 참배와 기도를 올리는 시설도 있다.
종교로서의 도교는 종교로서의 유교와 함께 우리에겐 약간 생소한 개념이지만[3] 국외에서는 확실히 종교로 파악한다. 적어도 유교보단 종교적 색채가 훨씬 진한 편으로, 유교처럼 종교인지 아닌지 논란이 되진 않는다. 도가 자체가 세속적인 유가와 달리 탈속적인 특성이 있는데다, 다양한 중국 신앙까지 집대성해 담아놓았기에 확연히 종교임이 드러난다.
종교로서의 도교는 삼국지로 유명한 장각의 태평도(太平道)와 장릉의 오두미도(五斗米道)[4]를 시초로 하여 남북조시대에 구겸지가 지금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실제 자신들을 도교라 지칭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이며 당나라 시대에는 국가에서 장려하는 종교로서 힘이 세지기도 했다. 현대 도교는 크게 전진교(全眞敎)와 정일교(正一敎) 등이 있다.
중국 외에도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지역과 화교의 세가 매우 강한 지역에서는 이 종교의 사원 또는 도교와 관련된 장식을 민간 건물 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상할 만큼 기세를 못 펴는 종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재래의 토착 제천신앙/신선 사상과, 이미 토착신앙과 융화를 이루던 불교에 흡수되었고, 일본에서는 음양도와 슈겐도 형성에 일부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도교 자체가 특별히 독립교단으로 출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불교와 민간신앙에는 의외로 꽤 많은 도교적 요소들이 녹아 있다.
1990년대 말~2000년도에 들어서는 도교 자체를 중국만의 민간 신앙보다는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의 자연주의 사상/토착, 민간신앙과 문화의 교류 측면으로 연구하는 관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문화교류사의 발전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5]
신자수는 2억명 정도 한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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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도교/역사#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도교/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 도교의 핵심 사상
도교의 목적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늙지 않고 오래 사는 것(불로장생)'이다.[6] 하지만 속세에서 불로장생은 언제나 실패하였기에 속인들과는 육신부터 다른 선인이 되어 목적을 이루고자 하였다.도교는 내세를 중시하는 기독교, 이슬람 등의 종교들과는 달리, 사람을 중시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 한줄요약: 살아서 잘되자[7] 중인귀생(重人貴生)의 생명관을 바탕으로 몸과 마음을 함께 수련하는 성명쌍수(性命雙修)[8]의 수련으로 역수반원(逆修返源)[9]하는 성선成仙이론을 확립하였다.
신선은 득도(得道), 도통(道通)하여 영원불멸한 도와 하나가 된 사람으로[10] 수련을 통해 정기신(精氣神)의 셋을 기신(氣神)의 둘로 되고 기신을 신(神) 하나가 되게 한다. 그리고 그 신이 도가 되어 결국에는 영원불멸의 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불사의 육체를 지니고 장생불사할 수 있는 것이다.
도교에서는 인간의 몸은 '소우주'이며 우주가 인간의 몸에 들어있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신들이 인간의 몸 구석구석에 깃들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도교에서는 태양의 신은 오른쪽 눈에, 달의 신은 왼쪽 눈에도 있다고 생각한다.[11] 이 신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이 정결하지 않고 하늘에 죄를 지으면 사람의 몸을 빠져나가려 하는데, 신들이 인간의 몸을 빠져나가면 사람이 죽게 된다고 한다.
특히, 어떤 신들은 사람이 먹는 음식들의 정精을 받아먹고 사람의 수명을 깎아내리려 한다. 따라서 사람은 정의 공급원인 곡기를 끊어 나쁜 신들을 잠재우고 마침내 기(氣)만을 호흡하다가 마침내는 기를 한 번 호흡하고는 내보내지 않고 그대로 몸에 담아 몸을 보함으로써 몸을 정갈히 해야 한다. 이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앉아 잡념을 지우고 무념무상에 빠져들어 마음을 정갈히 함과 동시에 내관(內觀), 즉 자신의 내부를 고요히 관찰하여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들과 우주를 보아야 하고 나아가 그 우주를 이루고 작동시키는 현묘한 질서인 도를 알아야 한다. 그렇게 도를 알게 됨으로써 도道와 하나 되고 우주(宇宙)와 하나 되어 영원불멸한 우주와 같이 사람도 영원불멸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도가 현실로 드러났을 때 생겨나는 덕과 지혜를 밖으로 내보이지 않는 것인데, 자연의 삼라만상에 도가 있음에도 도의 현실화된 모습인 덕과 지혜를 내보인다는 것은 도가 도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행동[12]이요, 따라서 그것은 도를 알지 못하는 자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자와 장자가 도를 아는 것은 쉬워도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어렵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도를 알고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하여 물과 같아지는 경지에 이르러야(상선약수上善若水) 비로소 '득도했다' 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교 성선成仙 수련 방법의 초점은 도교 초기의 천사도부터 당 초까지는 그 방법으로 도인술(道人術)[13], 선단(仙丹: 불로장생하는 약)[14]과 같은 '양생법'을 이용하였다. 언젠가는 반드시 썪는 곡식이 아닌 영원불멸하는 금속, 그 중에서도 정제된 수은[15]으로 만드는 외단 즉 단약을 섭취하고 곡기를 끊는 육체적인 방법을 통해 영원불멸하고 순수한 육체를 우선적으로 얻는 명命(육체)의 수련에 맞추어졌었다. 부가적으로 마음의 수련과 윤리의식 고취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양생법, 특히 선단을 이용한 불로장생술로는 신선이 되기 힘들어 보였다.
그리하여 유교/불교와의 끊임없는 교류는 도교의 신선 수련 방법의 초점을 순수한 육체를 우선적으로 갖추는 수련 방식보다 곡기를 점차 끊어 내고 기를 호흡하고 명상을 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탁하고 음陰한 기운을 남김없이 털어내어 양신陽神을 이루어 도를 얻고 영원불멸한 존재가 되는 마음의 수련 방식으로 옮겨놓았다. 결국 이후 내단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으며 도사 왕중양은 신선이 되면 육체를 버리고 양신陽神 이 빠져나와 불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무튼 전진도 이후에는 아예 내단[16]만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니까 전기의 도교는 언젠가 썩는 곡식으로 만들어진 몸은 썩어서 죽게 되니까 썩지 않는 금속을 먹자!(육체수련 중심, 외단론 중심)이었던 것이고, 후기의 도교는 수련으로 우주와 합일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자!(심성수련 중심, 내단론 중심)으로 방향이 바뀐 것이다.
이러한 후기 도교의 경향으로 인해 민간 도교가 아닌 수련 도교에서는 여러 부적술과 제사 의식 또한 단순히 술법으로 이득을 취하기보다는 신을 만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비우고 '좌망'(坐忘: 앉은 채로 자신을 잊음)할 수 없을 때에 할 수 없이 몸 안에 있는 신을 바깥으로 불러 만나보고자 하는 것이요, 이름난 명산을 유람하는 것도 그 곳에 살고 있을 신을 만나 보고 가르침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
3.1. 내단수련
내단수련(內丹修鍊)은 도교와 동아시아 전통 수련법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인체 내부에서 ‘단(丹)’이라는 불사약 또는 에너지의 결정체를 만들어내는 심신 수련법이다. 이는 외부에서 약물을 조제하는 외단(外丹)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몸과 마음 안에서 정(精), 기(氣), 신(神)이라는 세 가지 생명 에너지를 정련하여 궁극적으로 장생불사,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내단은 정(精), 기(氣), 신(神) 세 가지를 ‘삼보(三寶)’라 하여, 이들을 정련(鍊)하여 하나로 응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정(精)은 생명력의 근원, 기(氣)는 활동의 동력, 신(神)은 의식과 정신의 주재자 역할을 한다. 수련자는 이 세 가지를 단전(丹田)에 집중시켜 점차적으로 단(丹)을 형성하게 됩니다. 단은 물질적이라기보다는 고도로 응축된 정신력, 생명 에너지의 결정체로 여겨진다. 내단수련의 대표적 방법은 단전호흡(丹田呼吸)이다. 배꼽 아래 하단전(下丹田)을 중심으로 심호흡을 하면서 정기신을 모은다. 의식(意識)을 단전에 집중(意守丹田)하고, 마음으로 단전을 가열하는 듯한 심상(心想) 수련을 반복합니다. 기초적으로는 하단전(정), 중단전(신), 상단전(기) 등 세 개의 단전을 활용하며, 각 단전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수련이 깊어지면 단전이 충만해지고, 온몸의 기맥이 열리며, 외부의 기운까지 흡수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내단수련의 목적과 효과
궁극적으로는 신선이 되어 불로장생하거나, 초인적인 능력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실적으로는 심신의 건강 증진, 내공(內功) 강화, 정신적 평온, 에너지 증진 등의 효과를 추구합니다. 내단이 완성되면 의식이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지에 도달한다고 전해진다.
내단수련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대표적인 단체로 국선도, 기천문, 천지조화정부 등이 있다.
3.2. 도가와의 차이?
도가와 도교는 엄밀히 따지면 전혀 별개의 개념이라는 주장들이 있다. 도가는 노자 같은 사상가에 의해 나타난 철학사상의 하나지만, 도교는 장각, 장릉 같은 교주에 의해 확립된 종교들을 출발점으로 본다. 도교가 종교로서 발전하면서 도가사상 등을 끌어들였지만 사상적 지향점은 크게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도가와 도교는 그렇게 엄밀하게 구분되는 개념도 아닐 수 있다. 우선 도가=철학, 도교=종교로 보는 관점부터가 문제가 있다. 과연 철학과 종교가 그렇게 엄밀히 구분되는 개념인가? 그것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아니, 시간적으로만 봐도 이 때는 고대다. 수학 과학 연구하던 피타고라스 학파도 종교적 특색[17]을 지니고 있었던 시절이다. 당장 불교만 보더라도 불교 교리를 철학이라고 말하고, 그 외의 불교 의례를 종교라고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도교 역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철학/종교의 이분법에 따라 사고하는 결과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덤으로 도교가 그리 많이 연구되지 않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노자/장자의 사상은 애초에 서로 지향점이 다르고[18], 노/장이라는 범주를 억지로 묶어 만든 "도가 철학"의 지향점 역시 신비주의적 수양론이나 영생, 불멸에 대한 의지와는 전혀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노자에 대한 주석서를 집필한 사람들 중에는 물론 도교 사상에 빠진 신비주의자들도 있지만, 그 이전에 법가로 흔히 분류되는 한비자도 있다는 것에 주목하자. 한비자는 노자의 텍스트 내에 나타난 통치술에 대한 비유를 상당히 정확히 꿰뚫어보았으며,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통치에는 무위(無爲)의 도(道)를 따르는 술책으로 민(民)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노자 주해서를 통해 지적했다.[19][20] 즉, 노자의 사상은 외형적으로나 종교적인 사상으로 보이지, 이러한 외형적 비유를 통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 지배 체제를 제안한 엄연한 정치철학이다.
그리고 장자의 경우 일단 노자와도 다른 노선을 걷는데, 장자는 노자가 말하는 도(道)와 같은 초월적, 형이상학적 관념의 존재 자체를 거부했으며, 또한 이러한 관념에 따르는 국가나 기타 지배 체제 자체를 혐오했다. "어리석은 자(愚者)들이 꿈(夢)을 꾸면서 군왕이시여!(君乎), 종놈아!(牧乎)라고 외치는데, 정말로 고루하다!(固哉)"는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어리석은 꿈이라 지적한 것이 지배자-피지배자가 구분되는 국가 체제라는 것이 명백해지며, 호접지몽 등을 통해 그가 그토록 깨어나라고 강조한 꿈 역시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국가 체제를 피해 도교적으로 혼자 영생을 누리거나 산 속에 은거하는 길을 택했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도교에서 말하는 "양생"이 어쩌고 하는 신비주의적 목적 역시 국가가 내세우는 통치 이념과 다름없는 헛소리라는 것을 장자 본인이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도교 수행자처럼 혼자 영생을 누리겠다는 목적으로 산 속에서 70년을 신선처럼 산 노인이 하루 아침에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는 우화가 괜히 장자에 수록된 것이 아니다. 장자의 수양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물(物)과 통(通)하라는 이야기는 국가, 이념 등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며 세상의 모든 개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는 이야기지, 절대 자연 속에 틀어박혀서 신선놀음을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물론 전 문단의 의견 역시 특정한 경향의 의견에 불과할 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21] 자세한 것은 스스로 공부해 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2000년대 기준으로 도가와 도교를 분리해 놓고 보자는 주장은 주로 일본 학계쪽에서 보는 시각이다. 반면 원조 중국 학계에서는 도가와 도교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쪽에 속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한국의 도교 문화 - 행복으로 가는 길" 도록에 수록된 논문 참조.[22]
3.3. 민간 도교의 모습
도교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도교 수련자는 다음과 같은 생활지침을 제시받았다.2. 각종 무술과 단전호흡을 비롯한 여러 가지 수련방법으로 몸을 꾸준히 단련하며
3. 심산유곡 같이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통해서 자기 안의 여러 신들[23]을 만나고 도를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현대인이라면 몰라도 옛날의 평범한 백성들이 이것을 다 지킬 수 있을 리가 없다. 따라서 도교는 민간인들에게 신선이 되기 위한 방법을 따로 마련해 주었다.
도교에서 죽은 사람의 혼은 명부로 가서 재판을 받은 뒤 지옥에서 벌 받을지, 천상계로 가 장생불사의 몸이 될지, 다시 환생할지 결정되는데, 선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도 말한다. 다만, 선행을 아무리 많이 해도 악행을 한 번 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고... 다행히도 악행을 많이 했어도 도교의 제의를 통해 속죄하고 용서를 구하면 벌이 감해질 수 있다고도 한다. 보통 사람이 중간에 악행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선행을 1200번 연달아 하면 죽어서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도 신선의 중간급인 지선(地仙)의 경우. 천선(天仙)은 1만 2천 번을 연달아 해야 한다.
그 외에 민간 도교는 민간인들이 직접 원하는 기복성이 발달하여, 도교 부록파의 부록술과 여러 의식이 그 뜻이 조금씩 변형되어 복을 부르고 화를 몰아내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점복과 참위(=예언) 등으로 민중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으로 불교 등과 섞여 신비주의적 성격을 지닌 민중 반체제 운동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사실 부록파 자체가 민간신앙에서 유래하였기에 변형이라기보다는 원래 형태로 돌아갔다는 표현이 더 맞지만.
3.4. 삼교에서의 역할
삼교(三敎)란 유교, 불교, 도교 세 종교를 아우르는 중화권의 세계관이다. 이 세 종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각기 시대와 사회의 필요에 따라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하며 동아시아 문화와 사회의 근간을 이루었다.- 도교의 역할은 삼교 내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문화·예술·종교적 보완: 유교가 사회 윤리와 정치 이념을 담당했다면, 도교는 자연과 우주의 원리, 신선사상, 다양한 신앙과 의례를 통해 문화·예술·종교적 측면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만물의 근원과 조화 강조: 도교는 ‘도(道)’를 만물의 근원으로 보고, 무(無)에서 유(有)가 생성된다는 사상을 펼쳤습니다. 이는 불교의 공(空) 사상, 유교의 인(仁)·의(義)와는 다른 우주론적 관점을 삼교에 제공했습니다. 민간 신앙과 실천적 윤리: 도교는 민간 신앙, 신선설, 양생술(養生術), 점성술 등 실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신앙과 실천적 윤리를 삼교에 더했습니다. 이는 불교, 유교가 미치지 못하는 민중 구제와 현실적 삶의 지침을 제공했습니다.
삼교 융합과 상호 영향: 도교는 불교와 조직, 의례, 신관(神觀) 등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도교의 신들이 불교의 수호신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도교의 의례가 불교에 영향을 주는 등 삼교의 융합이 이루어졌습니다.정치와 국가제사: 도교는 국가 차원의 제사, 왕실의 권위 강화, 사회 안녕 기원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조선시대 이후로도 삼교의 조화와 어우러짐을 상징하는 문학·예술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즉, 도교는 삼교에서 자연과 우주의 원리, 신선 사상, 실천적 윤리, 민간 신앙, 문화 예술, 국가 제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유교와 불교를 보완하며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3.5. 황로사상의 핵심
- 도덕경의 사상
무위(無爲)와 자연(自然): 노자는 인위적(人爲的)인 작위와 간섭을 최소화하고, 모든 것을 자연의 이치에 맡기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합니다. 이는 정치, 사회, 개인의 삶 모두에 적용되며, "최상의 군주는 백성이 임금이 있다는 것만 알 뿐, 공을 이루어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는 식으로 간섭이 적을수록 바람직하다는 관점을 드러냅니다.
도(道)와 덕(德): 우주 만물의 근원이자 질서인 '도'와, 도를 따르는 삶의 실천적 원리인 '덕'을 중시합니다. 만물이 저절로 자라고 소멸하는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며, 인간 역시 그 흐름에 순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 황제내경의 사상
음양오행(陰陽五行)과 기(氣): 황제내경은 인간의 건강과 질병을 음양, 오행, 기(氣)의 조화와 불균형에서 설명합니다. 우주와 인간을 하나의 연속체로 보고,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 건강 유지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양생(養生)과 예방의학: 건강을 유지하는 '양생(養生)'의 실천을 강조하며, 생활습관, 식이, 마음가짐 등 전반적인 삶의 조화를 중시합니다.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이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질병을 예방하는 길임을 강조합니다.
- 사상적 차이의 핵심
관심의 초점
도덕경은 우주적 원리와 인간의 삶, 정치, 존재론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 집중합니다.
반면, 황제내경은 인간 생명, 건강, 질병이라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에 집중합니다.
실천의 방향
도덕경은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황제내경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건강 관리에 적용하는 실천을 강조합니다.
공통점과 차이
두 책 모두 자연과 인간의 조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을 중시하지만, 도덕경이 존재와 삶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철학서라면, 황제내경은 그 원리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건강 실천법을 제시하는 의학서입니다.
따라서 도덕경은 우주와 인간, 정치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철학적 경전이고, 황제내경은 그 도가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적용한 의학서로 볼 수 있습니다.
황로사상(黃老思想)의 핵심은 자연의 법칙(도)에 따라 무위(無爲)로 통치하는 것을 중시하며, 도가와 법가의 요소를 결합하여 사회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는 데 있다.
무위의 통치: 군주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스스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무위) 자세로 통치한다. 신하들은 제도 개혁과 정책 실현 등 유위(有爲)를 담당한다. 이는 군주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 사회가 저절로 안정된다는 도가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도가와 법가의 융합: 자연스러움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도가의 사상과, 법률과 규제로 질서를 확립하려는 법가의 관점이 결합되어 있다. 즉, 자연의 질서를 인간 사회의 정치에 적용하며, 제도와 법의 역할을 중시한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황로사상은 우주, 자연, 인간이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며, 통치자는 자연의 질서에 따라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도와 혁신: 인간과 자연의 괴리를 제도에서 찾고, 이를 개혁함으로써 혼란을 종식시키고 안정된 사회를 실현한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현명한 신하의 역할이 강조된다.
요약하면, 황로사상은 군주는 무위로, 신하는 유위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제도를 개혁해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4.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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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중국 신화#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중국 신화#|]]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1. 신적 존재
▲ 팔선도(八仙圖)는 도교의 깊은 이치를 체득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종리권(鍾離權)·여동빈(呂洞賓)·장과로(張果老)·한상자(韓湘子)·이철괴(李鐵拐)·조국구(曹國舅)·남채화(藍采和)·하선고(何仙姑) 여덟 신선을 각기 독특한 모습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교조로 하는 중국의 다신적 종교인 도교의 사원에는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이 여덟 명의 신선들을 모시는 팔선궁(八仙宮)을 따로 마련해 놓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 아마도 이들은 남녀노소, 빈천부귀를 대표하고 있는 데다가 그 출신 성분들이 걸인, 도사, 관리, 황제의 친척, 시인 등 각양각색이기에 도교에서 받드는 다른 신선들보다도 인간적으로 훨씬 더 가깝고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 삼청 - 삼원의 화생인 삼보군(三寶君)[24]이 관할하는 최고의 이상향 3곳[25]이라고 한다. 처음에 일기(一氣)가 있어 대라천이 되고, 일기가 삼기(三氣)로 나뉘어 삼천(三天)이라고 할 수가 있는 청미천, 우여천, 대적천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3곳은 인간이 도를 닦아 오르는 것이 가능한 최고 천계라고 한다.
- 사어(四御) - 달리 사대제(四大帝)로 불리는 삼청존신에 버금가는 위치와 격을 지닌 천지만물을 주재하는 4명의 천제들을 가리킨다. 구성원으로는 호천금궐지존옥황대제(昊天金闕至尊玉皇大帝)[29], 중천자미북극대제(中天紫微北極大帝)[30], 구진상천천황대제(勾陳上天天皇大帝)[31], 승천효법토황제지(承天效法土皇帝祗)[32]가 있다.
- 현천상제
- 태극금관제군(太極金關帝君)
- 무극지존(無極至尊)
- 삼관대제(三官大帝)
- 태을구고천존(太乙求苦天尊)
동극청화대제(東極靑華大帝), 태을천성원군, 구고천존, 시방구고천존으로 불리는 신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불교에서 나오는 보살인 지장보살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신이다.[33] 그리고 원시천존으로 설해지는 경우도 있으며, 천선의 궁전 중앙에 위치해 동방 장락 세계의 대자대인한 신으로, 천궁에 거하거나 인간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지옥에 거하기도 하며 위엄 하나로 모든 삿됨을 다스리는 있지 않은 곳이 없는 존재이고 만물에 따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여려 형태로 이 세계에 나타나는데 선동과 옥녀로 제군, 성인과 천존, 천인, 금강과 신왕, 마왕과 역사, 천사와 도사, 황인과 노군, 천의와 공조, 남인, 여자, 문무관재, 도대원수, 교사선사, 풍사우사 등등으로 변화를 이루기에, 그 신통함은 가히 광대하고 무소불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때로는 우주가 되었다고 한다. 증산도 등에서는 천상 태을궁의 가장 높은 임금이고 천지만물은 이 태을천상원군에 의해 양이 되고 태을구고천존의 명칭에 있는 '태을(太乙)'은 도(道)로부터 유래된 천지에 존재하는 법칙으로[34], 천지만물이 창조되고 이루어진 근원 아니면 우주의 본체이자 근원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삼라만상을 탄생한 것와 같다. - 옥황상제[35]
- 서왕모
- 상상태일
- 무극태상원군
- 오악대제(五嶽大帝)
- 천신(天神), 지신(地神), 일신(日神), 월신(月神), 풍신(風神), 우신(雨神), 뇌신(雷神), 역신(疫神), 산신(山神), 재신(財神)[36], 토지신(土地神), 충왕(冲王)/유맹장군(劉猛將軍)[37] 등의 다양한 자연신.
- 개로신
- 구천현녀
- 마조
- 벽하원군
- 이랑진군
- 손오공
- 항아
- 유불도의 삼교가 섞이면서 각 종교의 조사들이나 신적 존재가 신선으로 받들어지는 경우 → 공자, 석가모니, 지장보살, 미륵불, 탁탑천왕[38], 관음낭랑(觀音娘娘)[39], 염라대왕 등등...
- 나타
- 사해용왕
- 관우
- 여동빈
- 종규
- 북도풍음대제 [40]
- 주문왕, 주무왕, 태공망, 진시황, 한고조, 위무제, 진문공, 제환공 등...[41]
- 남두성군, 북두성군
- 보생대제: 의술의 신
- 이 곳도 참조할 것.
4.2. 신선
도교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그 중요성은 불교의 부처와 비슷한 수준이다.4.3. 관련 개념
5. 경전
5.1. 도장(道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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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도장(도교)#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도장(도교)#|]] 부분을 참고하십시오.6. 분파
| 도교의 종파 | |
| 후한말 | 태평도 | 오두미도(천사도) |
| 위진남북조/수당 | 북천사도 | 남천사도 | 상청파 | 영보파 |
| 북송 | 신소파 | 청미파 |
| 남송/금 | 전진교 | 태일교 | 진대도교 |
| 원 | 정일도 | 정명도 |
| 명 | 무당파 |
| 청 | 용문파 | 오류파 |
7. 한국의 도교
| |
| 도교의 영향을 받은 신종교인 동학의 성지 경주 용담정.# |
자생설은 중국의 도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한국의 자체적으로 독립 교단화된 도교가 존재했다는 것으로, 조선시대의 도교서적인 해동이적이나 청학집[42]에서 약간 등장하며, 일제시기 이능화의 <조선도교사>에서는 아예 이 주장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다만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헌들이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 국내 문헌 위주의 주장인데다, 문헌 기록에 대한 해석이 자의적이어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도입설은 중국의 도교 교단이 국내에 유입되면서 한국에 도교가 퍼졌다는 주장으로,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조선조 해동전도록에서 나타나는 주장이다. 그러나 원시 도교의 성립기에 있었던 이민족 신앙의 영향을 배제하고, 중국 중심주의적인 해석이 강하다는 비판이 있다. 원시도교의 문헌인 태평경이나 포박자에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중국 주변 이민족의 샤머니즘 신앙이 도교 형성에 영향을 주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고, 종교학적으로도 원시도교(방선도)는 이민족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인들이 도교사를 언급할 때는 아직 완전한 종교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면서 방선도 부분을 빼버리거나 대충 넘어가고 태평도와 오두미교부터 도교로 보는 경우가 많다.
중도설은 현재 사학계/종교학계의 일반적인 주장으로, 단군신화나 한국 토착신앙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역사기록 등을 토대로 한국에 무속신앙(산악신앙/신선신앙/제천의식/천신사상 등)이 원시도교와 유사하게 자생적으로 존재했고, 이러한 신앙을 기반으로 중국에서 도입된 도교가 융합하여 현재 한국의 민간신앙/민족종교/신종교의 근간이 되었다고 보는 주장이다. 현재까지 나온 설 중 가장 논리적이고 학술적인 뒷받침이 잘되어있는 설이라고 볼 수 있다.
문헌으로 가장 오래된 한국의 도교 유입 기록은 기원후 624년 고구려 영류왕 때로, 고구려의 요청으로 당나라에서 도사와 천존상을 보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보장왕 때 연개소문에 의해 기존 고구려 왕실/귀족층과 결합한 상태이던 불교계를 억압하기 위해 당나라에서 도교를 받아들이고 장려하였으며, 이러한 행보가 당시 고구려 내의 분열을 오히려 부채질하여 고구려 멸망에 부분적으로 관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도교적인 신들과 신수들의 모습, 별자리 신앙, 문헌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제천의식을 기반으로 그 이전부터 한국에 원시도교적인 토속신앙이 존재했다고 보고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의 도교 문화 특별전에서는 한사군 시절의 도교(특히 외단도교)와 관련된 약재/의례용품류의 유물을 전시한 바 있다.
백제의 경우 도덕경의 구절을 언급한 막고해의 발언 기록이나 도교적인 세계관이 반영된 산수무늬 벽돌과 금동대향로 등 조형물, 도교의 토지신(토백)이 등장하는 무령왕 매지석을 통해 어느 정도 도교 문화가 유입되었다는 추정은 있으나 고구려처럼 직접적으로 교단화된 도교가 유입되었다는 기록이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다만 일본에 불교 문화를 전하면서 주금사나 도교의 술법인 기문둔갑에 대한 책들을 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신라에서는 신라사선(四仙)에 대한 기록이나 화랑들을 신선에 비유한 기록, 최치원의 난랑비서문 등을 통해 고구려 못지않게 도교가 활발하게 도입되었으며, 동시에 풍류도로 대표되는 토착신앙과의 융합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불교가 이미 중심 종교로서 우세한 자리를 잡고 있었고,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래되면서 이미 중국에서 도교와 상호 영향이 시작되어 공통분모가 많이 생긴 상황에서 도교가 고유의 색을 가진 채로 깊이 파고들 만한 여지는 없었다. 자연히 도교는 독립된 교단이 아니라 불교/토착신앙과 융합하는 형태로 한국 문화의 한 구성원이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 내려와 현재 한국 불교와 무속 신앙에서는 중국 도교적인 성격을 가진 요소를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중 한 예를 들자면 불자들이 애독하는 경전 중 하나인 <북두칠성연명경>[43]을 보면 불경이라고는 하지만 칠성신에게 비는 것은 토착신앙/도교적인 요소며,[44] 경전에서 석가모니가 아니라 중국 도교의 신인 태상노군[45]이 주연으로 언급된다.[46] 조선시대 문헌인 증보해동이적에서도 '원래 불교와 도교[47]는 주문을 읽고 부적을 쓰는 데서[48] 유사점이 많은데다, 조선에서는 서로 섞여 어느 게 불교고 어느 게 도교인지 알 수 없다'는 기록이나, 남궁두에 대한 기록에서 남궁두의 스승이 스님이면서 신선술을 연마한 도사로 기록된 점은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로 들면서 송나라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본격적으로 중국의 도교가 유입된다. 적극적으로 도교를 수입한 예종 때 최초로 도관 복원궁이 세워지고 중국에서 파견된 도사들이 초제를 지냈다. 하지만 이때도 기존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불교와 토속신앙과 충돌보다는 동화되는 형태를 보였고, 도교는 왕실과 지배층 중심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면서 기존 한국의 종교들과 서로 공존하는 형태로 유지된다. 이때 고려에서 유행한 도교는 수련도교가 아닌 제초도교로서 신선이 되기 위한 수행이나 종교의 교리 연구보다는 도교식의 초제(재초)를 통해 국가와 왕실의 복을 빌고 재액을 물리치는 데 집중된 철저한 기복신앙이었다.
7.1. 조선시대의 도교
한반도에서 도교의 신선 수련이 발달한 것은 놀랍게도 유학을 중시한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유학을 중시하면서 불교와 도교, 무속의 의례를 음사로 규정하고 유교적인 윤리주의와 유교적인 제례를 중시하게 되었다. 물론 이때도 기복신앙적인 제초도교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나 국가의례에서 도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전에 비해 쇠퇴하였고, 나중에는 마니산의 참성단 초제 정도만이 남게 된다. 이때부터 도/불 융합적인 민간신앙의 발달과 몇몇 지방 양반가에서 가풍으로 내단수련과 선행을 중시하는 이른바 내단파가 등장하면서 국내에서의 도교의 수행이론 역시 정리되는 모습을 보인다.[49] 현재 국내의 여러 단학 수련단체에서 중요시하는 용호비결이나 개운조사파에서 중시하는 선불가진수어록등의 서적이 모두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책들이다.여기서 도교의 이해에 있어서는 민간신앙과 내단파의 관점이 조금 차이를 보였다. 민간신앙에서는 도교/불교/민간신앙이 뒤섞이면서 민간신앙에서 도교의 수경신[50] 행사를 비롯한 몇몇 도교의례의 도입과 더불어 도교적인 신의 위격/호칭이 사용되었고, 이는 이후 정감록을 비롯한 도참서 및 구세주를 자처하는 민간 반란 세력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내단파에서는 종교적인 부분보다는[51] 유교/도교의 사이에서 심성을 닦고 선행을 중시하며, 삼교의 어느 극단에 치우침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중도주의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인다.[52]
조선시대 종교적 도교의 경우, 관성제군 신앙이 선조 이후 명나라를 통해 유입된다. 이러한 관성제군 신앙은 조선말 무상단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상단은 삼성을 중시했는데, 삼성은 관성제군, 문창제군[53], 부우제군[54]으로 이루어져있다.
조선 후기를 거쳐 근세로 들어오면서 민족의식의 발달과 유교의 경직화, 신분제도의 붕괴 등을 거치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졌고, 이 때 들어서야 조선에서는 처음으로 교단화된 도교[55]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한반도의 특성상 중국처럼 순수한 도교 교단을 갖추기보다는 유불선 삼교와 토착신앙이 섞인 성격을 하고 있었으며,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에는 도교의 영향을 받은 민족종교들이 난립했다. 이 민족종교들은 유불선 삼교의 융합을 주장했으며, 주요 종파로는 동학, 남학, 증산교, 봉남교, 각세도 등이 있다.
특히 동학과 증산교단은 도교의 신인 상제(上帝)에 대한 언급(동경대전에 상제라는 표현이 나온다.*)과 더불어 다양한 도교계 신령들[56]과 원시/민간도교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부적을 태운 물을 마시는 의례와 이 과정에서 믿음을 강조하는 모습, 선계(仙界), 신선, 무위이화(無爲而化) 등의 다양한 도교적 관념과 표현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 신종교의 사상은 중국 도교의 사상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 독자적인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57]
천지공사, 천도교 문서 참고.
7.2. 대한민국의 도교
오늘날 한국에서의 도교는 조직화된 대규모 교단 종교로서보다는 소수의 종파와 다양한 민간 신앙, 문화적 요소로 남아 있다.도교의 영향을 받은 신종교로는 동학계 종교, 증산계 종교, 봉남계 종교 등이 있으며, 대개 도교만이 아니라 유불도 삼교의 통합을 주장한다.
8. 일본의 도교
일본에 현존하는 도관의 모습.#
일본에 처음 도교가 전래된 것은 백제를 통해서였다. 위덕왕 24년(577)에 백제에서 일본으로 불교와 관련된 사람들을 파견하였는데, 이 중에 주금사(呪禁師)[58]가 있고, 무왕 3년(602)년에는 승려 관륵이 일본에 여러 책을 전했는데, 그 중에 도교와 관련된 역서(曆書), 둔갑(遁甲), 방술(方術)에 대한 책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렇게 일본에 도교가 전해지면서 일본서기에 상세(常世)신앙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신선들이 사는 세계로 이곳에 사는 상세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가난이 해결되고 젊어진다는 믿음이 널리 퍼졌으나 중앙 정부의 통제로 교단화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본격적으로 일본에 도교가 흥하게 된 시기는 나라 시대, 헤이안 시대를 거치면서부터였다. 이 시기 일본은 중국에 직접적으로 유학승/견당사를 파견하면서 중국이 제초도교가 들어와 점을 치고 개인의 구복을 비는 방기주술이 크게 발달하였고, 일본의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지나치게 미신적인 경향을 띄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비노 마키비(吉備眞備)처럼 도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많은 도교서적을 수입한 자들도 있었으며, 이는 헤이안 시대에 들어 화려한 귀족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외래문화를 토착화시키면서 그 유명한 음양사가 등장했다.
반면에 백성들은 귀족들의 착취를 당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구원을 꿈꾸었고, 도교의 은둔적이고 기복적인 성격은 민중들에게도 잘 맞아 민중들과 민간신앙에도 파고들었다. 중앙정부의 관청인 음양료에 속하지 않은 음양사들인 외법사들 역시 많이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 시절 일본 도교는 하나의 독립된 종교 교파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교의 주술 위주로 일본에 들어와 귀족층을 중심으로 후원을 받아 성장하였고, 또 그런 집단들이 주류로 인정받는 상황이었다. 외법사들은 통제의 대상이었고, 민간신앙에 흡수된 도교는 일본에 들어올 때부터 기복적인 주술 위주로 들어와 독자적인 색깔을 드러내는 수준은 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종교적 신비주의를 강조하는 밀교가 발달하였기에 타 종교와 융합되기가 한국만큼 널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귀족 중심적이던 헤이안 시대가 몰락하고 막부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일본 도교계는 된서리를 맞았다.[59] 항상 언제 죽을지 모르는 무사계급에게 도교의 신선사상이나 불로장생 사상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60] 오히려 이들에게는 생사를 초탈한다는 사상을 가진 불교가 더 구미에 맞았고, 당시 일본의 종교계에서도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도교보다는 당연히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컸다. 당연히 도교는 귀족들의 몰락과 더불어 주류 무대에서 밀려나고, 궁중의 음양사는 민간에서 떠돌이 주술사로 일하는 박사로 변하였다.[61]
이후 일본의 도교는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간신앙(신토, 슈겐도)과 불교에 흡수되어 독자적인 교단을 이루지는 못한다. 에도시대에 들어서 중국 도교의 경전들과 더불어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민간 도교가 전래되나, 이 역시 독립된 교단의 형태를 이루지는 못했다. 일본에서 도교는 민간 신앙과 불교의 일부로 대부분 흡수되었다.
9. 기타
중화권은 그 지분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대륙이 공산국가인 특성상 아시아에서 가장 무신론 비중이 높으며, 유불선이 오늘날 한국의 고사처럼 역사에 기록된 것이 아직 많이들 남아서 홍콩의 소방서는 관우상을 갖다 놓는다. 무신(武神)으로서 경찰이나 소방관 등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여겨서이다.화상이 하는 가게는 어디나 1월 1일에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고사를 지낸다. 물론 젊은 층으로 오면 세속주의가 대세라 미신이라고 여긴다. 기껏해야 대만에서만 선전하지만, 이 동네도 도사들이 많이 세속화하여 일본 정토종계 승려들이나 신토의 아르바이트 무녀들처럼 평소에는 일반인으로 살다 초제 요구가 들어오거나 하면 그럴 때만 도사복을 입고 도교의례를 하는 등 수도자로서의 도사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중국 본토에서도 대형 도관들을 소림사처럼 무술공연자 양성 학교로 쓰고 공산당 휘하 조직에서 도관들을 관리하는 등 영 상황이 좋지 않다.
베트남도 도교의 영향이 적지 않아 응우옌짜이, 응우옌빈키엠 등이 그 영향을 받았다.
배타적 요소가 전혀 없는 종교라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새로운 대안이 도교라고 인식하는 부류도 있다.
선단을 만드는 기술인 연단술은 아직도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하는 사람이 있다.
도교에서는 신(神)의 대우가 좋지 않은데, 도교에서 중하급 수준의 신들은 아직 득도를 못해서 수련 중이다. 물론 이들은 도에 대해 평범한 인간보다 엄청 많은 것을 깨달았으며 신통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인간을 도와줄 수도 있고 인간의 스승이 되어 도에 대해 가르쳐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신들도 도를 얻지는 못했기에 인간을 득도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 (물론 득도를 한 사람도 도가 사상에 의하면 도를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해줄 수 없긴 하다.) 물론 도교의 모든 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원시천존 같은 고매한 존재들은 이미 그 경지를 훨씬 넘어선 존재들이다. 다만 그만큼 일반인들과의 거리감도 커서 역사적으로도 도사님들을 숭배했고, 민간도교에도 열중이다.
따라서 신선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도사는 마음을 정갈히 하고 부적이나 제사를 통해 신들을 초청해 득도하는 방법을 묻기도 하지만, 결국 나중에 가면 좌망이나 내관을 통해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이라는 스승'을 뛰어넘어 우주 전체를 관조하고 더 나아가 스스로 도를 깨우쳐 우주의 질서와 법연을 확고히 하여야 한다. 참고로 도교의 사원은 도관(道觀), 남자 수도자는 도사(道師)나 건도(乾道), 여자 수도자는 여관(女冠)이나 곤도(坤道)라 한다. 당나라의 양귀비도 한때 여관이었다.
현재 중국 도교 종파 중 하나인 화산파 남천문의 장문인은 한국인이다. 곽종인이라는 여성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절밥처럼 도교 역시 도교 요리라는 고유의 요리법이 있다. 도교의 사상과 목적을 살려 도교 역시 음양과 오행사상을 기반으로 차가운 음식과 뜨거운 음식의 공존과 조합을 만들었다.
[1] 도교의 사원. 보통 '00관'이라고 쓰지만, 궁관(宮觀)이라고도 부르며 이때는 궁(宮)자를 붙여 '00궁'이라고도 한다.[2] 사실 서낭당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성지(城池)신앙에서 생겨난 성황당(城隍堂)에서 온 것이라는 설이 있고. 실제로 성황당이라는 표현과 혼용된다. 산왕(산신)을 모시는 곳이라는 뜻인 산왕당(山王堂)이 변했다는 설도 있고, 서낭당의 다른 이름인 천왕당에 근거해 천신 신앙에 기초해 생겼다는 설, 유라시아 지역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적석단에 기초한 민간신앙설, 절충설 등 다양한 설이 있다. 서낭당 관련 네이버캐스트 링크.[3] 태극기의 도안 때문인지 중국에서는 한국인의 조상들 중에 도사가 많았거나 혹은 한국 자체가 도사들이 세웠던 나라가 아닌가 생각하며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참고로 실화다.(...) 밑의 본문 내용을 쭉 보면 알겠지만, 한국과 도교는 의외로 밀접한 관련이 있긴 하다. 물론 태극기의 형성은 도교와는 직접 관련은 없다.[4] 학술적으로는 천사교(天師敎)라 불린다.[5] 물론 중국에서는 아직 국수주의적 관념으로 도교 문화를 연구하는 경향이 짙다. 사실상 중국의 도교학 논문에서는 교류 분야는 찾아보기 힘들고, 찾는다 해도 전래/교류보다는 전파를 위주로 보고 있다.[6] 그 외에도 남을 도와 명성을 떨치는 일도 한다. 손오공이 그 예시 버스[7] 이 자세만큼은 도가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덕경, 장자 텍스트뿐만 아니라 비슷하게 세트로 묶이는 열자, 양주의 발언 등에도 국가의 대의명분에 휘둘리지 말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있음을 생각하면 쉽다.[8] 몸과 마음을 동시에 갈고 닦음[9] 수련함으로써 근본으로 거슬러 돌아감. 도에서 만물이 나왔으므로 만물에서 도로 돌아감.[10] 한국의 신종교인 증산교단의 교리에 의하면 득도하면 일원세계(一元世界)가 눈앞에 있고 사해중생(四海衆生)이 마음에 나타나며, 모든 이치가 뚜렷이 드러나고 만상(萬象)이 펼쳐지며 서양에도 마음대로 가고 하늘 끝으로 새처럼 날아오르기도 하며 풍운조화(風雲造化)가 마음대로 되고 둔갑장신(遁甲藏身)이 하고자 하는 대로 이루어지며 천지가 내 마음과 일체가 되고 삼교(三敎)를 두루 쓰며,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바가 없게 된다고 한다.[11] 도교신자들은 태양에 뻐큐질만 해도 한쪽 눈이 멀거나 그에 상응하는 나쁜일이 일어난다고 믿는다.[12] 이게 바로 그 유명한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도덕경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라는 뜻.)[13] 일종의 체조 등을 통한 양생법[14] 실제로는 온갖 중금속 덩어리인 경우가 많아 도리어 명을 단축시키기도 했다. 당나라 때까지 천자들도 단약 먹고 여럿 죽어나가서 결국 유교,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송대 이후로는 단약 섭취를 제외한 다른 수행법들이 부각되었다.[15] 수은이 다른 금속을 감싸서 녹여버리는 도금 공정, 상온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수은의 특징 등등을 보고 옛 중국인들은 수은이 신선의 현묘한 특징을 닮은 금속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썩어 없어지는 곡식 대신 신선의 성질을 닮은 금속을 먹으면 신선을 닮아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간이 허하면 간을 먹고 정력이 허하면 해구신을 먹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의 연장선상이다. 이 사고방식 때문에 진시황 시절부터 당송변혁기까지 수은 중독으로 죽어나간 금단술사들이 불쌍하다[16] 명상과 단전호흡, 기공체조[17] 지켜야 할 계율이나 윤회설같은 세계관이 있었다.[18] 쉽게 말해 노자와 장자의 사유 차이는 형이상학vs실존주의, 국가주의vs아나키즘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지경이다.[19] 만약 노자의 "소국과민" 이나 "병기불상지기" 등의 문장에 혹해서 "노자가 평화롭고 자연주의적인 소규모 공동체, 국가 없는 사회를 꿈꿨구나"라고 생각하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어찌보면 당신도 노자의 통치술에 낚인거다. 노자의 통치술은 민중이 이렇게 생각하게끔 통치자가 도에 따르는 교묘한 술수를 써서 백성의 복종을 받아내야 한다고 역설하기 때문이다.[20] 단 이는 한비자의 견해이지 본래 뜻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도덕경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아나키즘부터 전체주의까지 극단적으로 나뉜다.[21] 도가철학을 아나키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신비주의적인 도교에 결코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애초에 아나키스트 중에 반종교적 정서를 지닌 사람들도 있지만 영성(Sprituality)이라는 화두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많다. 그리고 요즈음의 반종교적 정서들에 좌파들이 경계심을 가지는 추세인지라...[22] 요새 중국철학이나 불교철학 전공자들 사이에는 동아시아의 신비주의 전통을 아예 무시하며, 동아시아 철학의 실용적, 정치철학적 모습만을 크게 강조하기도 하고, 과학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형이상학적, 오컬트적 서양철학 및 종교를 까는 경향도 많이 보인다. 허나 이에 대해 과학만능주의와 옥시덴탈리즘이 묘하게 혼합된 방어적인 모습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또 과학만능주의 맹신자들에게는 동서양 철학 자체가 쓰잘데기 없는 소리로 취급되기도 하며, 불교의 과학성을 열렬히 주장하는 의견은 유사과학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신비주의를 까는 것도 좋지만 지나치면 좋지 않다.[23] 약 3만 6천 위가 있다고 한다.[24] 천보군(天寶君)/영보군(靈寶君)/신보군(神寶君)[25] 원시천존이 사는 대라천(大羅天) 아래 삼천(三天)이라고 한다.[26] 청미천(淸微天),시기(始氣),청(淸)으로, 천보군이 다스리는 성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27] 우여천(禹餘天),원기(元氣),황(黃)으로, 영보군이 다스리는 진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28] 대적천(大赤天),현기(玄氣),백(白)으로, 산보군이 다스리는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29] 도교에서 신봉하는 천도를 총괄하여 집행하는 삼청에 버금가는 사어의 수석이라고 한다.[30] 옥황상제를 도우며 천경지위, 일월성신, 사시기후를 주관하는 신이라고 한다.[31] 옥황상제를 보좌해 남북극과 천지인삼재를 주관하여 뭇별들을 통제하고 인간의 병기와 군대를 주관하는 신이라고 한다.[32] 사어의 홍일점.[33] 천상의 세계에 있는 도안에는 동방의 장락세계의 태일복신을 하며, 괴로움을 구하고 액을 미리막는 대자인자를 한다고 한다.[34] 태을구고천존은 이 태을이 구체화된 존재.[35] 이외에 황천과 호천을 비롯한 다양한 상제가 있다.[36] 재물과 복을 가져다주는 신.[37] 메뚜기 떼의 신이다. 중국은 메뚜기 재해가 워낙 대륙 스케일이다 보니 이런 신도 있다.[38] 불교의 비사문천을 도교식으로 받아들였다.[39] 관세음보살을 도교에서 부르는 이름. 낭랑(娘娘)은 여신을 말한다.[40] 한백무림서의 무당마검에 나오는 풍도대제다.[41] 사후에 '신선이 되었다'라고 추앙받은 경우다.[42] 단, 청학집의 경우 환인과 헌원의 스승이 둘 다 중국 서방의 공동산의 선인 광성자라고 기록하고 있다.[43] 고려 시대부터 유입된 '불설북두칠성연명경'을 주로 사용했는데, 1534년(중종 29년)에 안동 광흥사에서 불공용으로 발행한 북두칠성공양문(北斗七星供養文)에는 칠성청, 불설북두칠성연명경, 칠성하강일, 칠성부(민속에서도 사용하는 부적으로 당나라 때 바라문승이 번역한 불설북두칠성연명경에 수록되어 있는 부적) 등이 수록되어 있다.(성수신앙의 일환으로서 북두칠성의 신앙적 화현 양상) 링크되어 있는 논문 파일 자료에서는 북두칠설공양문에 수록된 것이 그냥 일반 북두칠성연명경이라고 되어 있는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직접 북두칠성공양문의 원문을 보면 "불설" 북두칠성연명경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도 북두칠성공양문에 수록된 것이 불설북두칠성연명경이라고 제대로 나왔다.[44] 북두칠성 숭배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에서도 발견되는 유서 깊은 토속신앙이지만, 현재의 칠성신앙은 도교적인 요소의 영향이 강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은 중국과 달리 칠성신을 인간에게 생명과 복을 주는 긍정적인 존재로 보는 시각이 강하며, 반대로 중국에서 칠성신은 무서운 죽음의 신이다.[45] 노자[46] 사실 이 북두칠성연명경 자체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책이며, 노자가 등장하는 점에서 도교의 칠성숭배가 유입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당장 한국 사찰에서 칠성단 예불시 언급되는 존재인 태을신이나 자미대제는 모두 도교의 신이고, 치성광여래는 북극성 신앙과 불교가 혼합된 존재다.[47] 여기서의 도교는 중국식 도교가 아니라 한국의 토착신앙과 결합해 한국화된 도교/도교로 이해된 토속신앙을 말한다. 해동이적이란 책 자체가 중국과는 다른 한국 고유의 신선들의 선맥을 정리한 책인데, 등장 인물들 중 고대의 선인들은 단군, 해모수 등 초자연적인 권능을 발휘했다고 전해지는 제정일치 시대의 군장들인 경우가 많다.[48] 엄밀히 말하면 부적을 쓰는 것 자체가 토속신앙의 영향이다.[49] 양반들은 장시간 앉아서 공부를 하다 보니 쉽게 문약(文弱)해졌고, 건강을 해치는 일이 많았다. 또한 경신대기근 등의 자연재해와 돌림병의 유행 속에서, 향촌 양반들 사이에 건강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50] 경신일에 삼시충이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자신이 기생하는 인간의 죄를 일러바쳐 수명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동안 잠을 자지 않는 것[51] 종교적인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신에 대한 저술이나, 천제를 지낸 유적도 남아있다.[52] 대표적인 내단파 인물인 김시습의 경우 중국 내단도교의 불로장생 사상에 대해 장수에 대한 집착을 비판했고, 정렴이나 권극중 등 다른 내단파의 인물들도 정도나 방향의 차이는 있지만 중도주의를 추구한다.[53] 유불선 삼교일치적 측면에서 중시되었다.[54] 여동빈을 의미[55] 무상단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러한 조선말 교단도교는 민간 자생 교단이기보다, 당대 정부와의 관계속에서 성립, 성장하였다.[56] 동학에서는 한울님 외에 다른 신에 대해 특별히 다루지 않으나, 증산계의 경우 엄청난 수의 도교계 신령들이 등장한다. 관우, 28수, 28장, 칠성신 등이 모두 도교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신격들이다.[57] 참조문헌: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 정재서 저.[58] 주문을 읽어 주술로 병을 고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무당 겸 의사(위치닥터)를 말한다.[59] 비슷한 예로 한국의 밀교계가 있다. 한국의 밀교는 비록 순밀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라 후기/고려시대 동안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였으나 이후 조선 건국으로 대차게 타격을 입는다. 이후 조선시대에 불교 의례집에 밀교적인 요소가 많이 발견되기는 하나 민간신앙/도교적 요소가 혼합된 현세구복적 잡밀 수준이다.[60] 전국시대에 그리스도교가 들어왔지만 에도 막부의 탄압도 겹쳐서 일본에선 널리 퍼지지 못했다.[61] 박사란 활줄을 두드리며 주문을 읽어 재액을 물리치는 일본 주술사를 말한다. 한국의 무당도 지역에 따라 박사(博士)라 하나 호칭의 유래와 관련해서 일본의 박사와 관련은 없다. 원래 박사는 옛날부터 전문 지식인에게 주는 벼슬 이름이었으니, 나라에 상관없이 존칭으로 붙였다고 보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