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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15:12:03

전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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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의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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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도 정명도
무당파
용문파 오류파


全眞敎

왕중양이 창시한 도교 북파의 종교.

1. 현실의 전진교
1.1. 역대 조사
2. 무협소설 속의 전진교
2.1. 김용무협소설
2.1.1. 전진교의 제자2.1.2. 전진교의 무공
2.2. 국내 무협소설

1. 현실의 전진교

도교에서 갈라져 나온 교단. 팔선으로 유명한 여동빈에게 가르침을 받아 왕중양이 개파했다고 전한다.

불교의 영향을 받아 이전의 천사도(天師道)[1]연단술 등을 통한 신선사상을 추구하던 도교의 교리에서 특히 정신의 수양과 양생을 강조하고 불로불사나 부적술과 같은 매우 주술적인 개념을 멀리하였다. 도가의 내단사상을 깊이 연구하여 체계적인 수행법으로 정리했다. 내단사상의 핵심을 정리한 여동빈의 태을금화종지는 대표적인 경전이다. 이 경전은 참동계, 황정경 등과 함께 도교의 대표적인 수행서로서 20세기의 이름난 심리학자 칼 융이 읽고 크게 감명받아 독일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남송 초기에서 원나라 시대까지 흥했는데 원나라 때는 전진칠자들에 의해 용문파, 우선파, 남무파, 수산파, 유산파, 화산파, 청정파로 나뉘다가 쇠퇴하였다. 쇠퇴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바로 교단의 재산 싸움이었다. 이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며 헐뜯어서 대중에게서 점차 외면받았다. 그나마 마옥과 손불이가 출가하기 전에 부부였기에, 두 사람이 세운 우선파와 청정파는 원만함을 유지하여 이런 재산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지만, 두 파도 전진교가 재산 싸움으로 몰락하자 염증을 느끼고 서로를 합친 도관을 세우면서 전진교의 몰락이 가시화되었다. 전진교 개파조사 왕중양과 직전제자인 전진칠자가 보면 매우 통탄할 것이다.

1.1. 역대 조사

2. 무협소설 속의 전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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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교
全眞敎
파일:72958688_1115130845350103_6833692176556228608_n.png
무협 속 전진교의 모습
<colbgcolor=#6F606E> 소속 정파
중심지 산시성 종남산

2.1. 김용무협소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에 등장한다.

작중에서 명문정파이자 무학의 정종으로 여겨지고 있다.

1대 장교(교주)는 왕중양, 2대 장교는 마옥. 본산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중양궁(重陽宮)이다. 바로 옆동네에 고묘파가 있다. 나중 시대를 다른 무협소설에서는 같은 동네에 종남파가 들어선다.

주백통은 왕중양의 사제인 만큼 일단 전진교와 한 문하에 속하고 있으며, 항렬상 가장 높다. 하지만 주백통은 자유롭고 소탈한 성격 때문에 교단에 대한 일에 나서기를 싫어해서 마옥, 구처기, 왕처일 등의 전진칠자가 교단의 중심이 되어 운영을 맡고 있다.

왕중양은 천하제일인이었지만 자신의 무공을 제자들에게 제대로 전해주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연배에 비해 일찍 병으로 죽어서 제자들의 무공수위는 천하오절 급에 비할 바는 못된다.[2][3] 하지만 현문정종내공심법 등 훌륭한 무공도 많이 갖추고 있다.

1대인 왕중양, 주백통은 천하최강급의 고수이고, 그 제자인 전진칠자는 각 문파의 수장급의 고수[4]들, 다만 3대째로 내려갈수록 급격하게 질이 떨어진다. 소설 초반부에는 천하무공의 정종이라는 묘사와 함께 구처기 왕처일 마옥 등이 범상치 않은 포스를 뿜어내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수준이 떨어지고 3대째인 윤지평이 소설속 찌질이 악인으로 묘사[5]되며 급격하게 문파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보낸다. 왕중양주백통천하오절의 최강자이니 천하의 5대고수 중 2명의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문파라 할 수 있으며, 전진칠자는 그에 비하면 격이 한 단계는 떨어진다, 다만, 그 중 마옥과 구처기, 왕처일등은 특히 뛰어나 어느 문파의 문주와 붙어도 손색이 없거나 오히려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데 구처기는 천하오절급이 아니라면 어디를 상대로건 무쌍을 찍으며 마옥은 그런 구처기보다 오히려 내공이 더 웅후했다고 표현된다. 실제로 마옥, 구처기 모두 훗날 전진교의 교주가 되는데 전진칠자가 평가절하된 계기가 천강북두진을 발휘하고도 황약사 한 명을 상대로 이기지 못했다는 점인데 당시에는 부상으로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도 있다.
당장 구처기 혼자도 강남무림에 명성이 자자한 강남칠괴를 상대로 혼자서 무쌍[6]을 찍으며 주인공인 곽정,양과,소용녀등과 천하오절이나 금륜법왕, 구천인등의 최상위 티어급이 아니라면 구처기와 1대1로 붙어서 이길 수 있을만한 고수는 거의 없다.
즉, 전진칠자가 평가절하 된다고는 하나 조연급들 중에서는 최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3대 제자인 윤지평 등에 이르면 강간범에 아동학대범에 매국노로 묘사되어 평가가 크게 떨어진 것인데 이는 2003년도 신판에서 개정[7]되었다. 그냥 쉽게 말해서 왕중양과 주백통은 1,2대 천하오절 가운데 으뜸가는 무림 최강 고수들이지만 3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급격히 약해진다.

사조영웅전의 전진칠자는 왕중양이 일찍 죽은 탓인지 진전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8]왕중양이 전해준 천강북두진을 7명이 사력을 다해 펼쳐야 천하오절 중 하나인 황약사와 팽팽한 수준[9]이었다. 그리고 빈틈을 노린 구양봉에게 담처단이 죽고, 마옥이 병사해서 신조협려에서는 전진오자만 남는다.
신조협려에서 곽정 한 명이 전진교의 3대 및 4대 제자 수십명~백명 수준이 펼치는 천강북두진을 와해시키고 빠져나가는 지경이다. 남아있던 전진오자는 너무 떨어지는 제자들 때문에 고심해서 칠성취회라는 진법을 만들었지만 금륜법왕과 소용녀에게 당한다. 의천도룡기까지 가면 아예 소식이 없다.[10]
다만, 이런 내용들은 주인공을 뛰어주기 위해 가장 강한 문파를 희생시키는 클리셰[11]로 보아야 마땅하다.
실제로 전진교는 수많은 도가 문파의 창설에 영향을 주었는데 전진칠자 중에서도 비교적 약체로 평가받는 학대통이 창설한 화산파가 굉장히 각광받으면서 전진교의 수준이 낮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모순이다.

소오강호》 등 이후의 시대를 다룬 김용의 무협소설에서 전진교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무협소설만 본 사람들 중에는 사라졌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 현실 속에서 전진교나 그 계통의 도가 문파들은 현재까지 멀쩡히 영업하고 있다.

섣달그믐 사흘 전에 문하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서 무공을 겨루는 관례가 있다. 우선 전진칠자의 제자들을 스승 단위로 조를 짜서 겨루는 것을 소교(小較)라고 하고, 거기에서 승리한 제자들이 겨루는 마지막 결전은 대교(大較)라고 했다.

전진교 제자들의 급수는 다음과 같다. 처(處), 지(志), 청(淸), 정(靜)을 항렬로 삼는다고 하며, 전진칠자는 좀 다르지만 윤지평 이하는 이름에 반드시 지, 청, 정 자가 들어가는 걸로 통일되어 있다.

김용의 무협소설인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 등장해서 유명한데 작중 이들은 실제 활동시기보다 30년에서 50년정도 생몰년대가 늦춰졌다.
실존인물들의 생몰연대는 아래와 같은데

왕중양 1112년생 ~ 1170년 사망. (58세)
마옥 - 1123년생 ~ 1183년 사망. (60세)
손불이 - 1119년생 ~ 1182년 사망. (63세)
담처단 - 1123년생 ~ 1185년 사망. (62세)
왕처일 - 1142년생 ~ 1217년 사망. (75세)
구처기 - 1148년생 ~ 1227년 사망. (79세)
유처현 - 1147년생. ~ 1203년 사망. (56세)
학대통 - 1140년생. ~ 1212년 사망. (72세)
윤지평 - 1169년생 ~ 1251년 사망 (82세)

사조영웅전은 1199년(송나라 영종 경원 5년 동짓달) 구처기(당시 30세)와 곽소천, 양철심의 만남으로 시작되며 곽정이 1200년에 출생한다. 곽정이 20세인 1220년에 25년만에 이뤄진 2차 화산논검이라는 서술로 보아 1195년에 1차 화산논검이 벌어졌고, 1217년생인 양과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1240년대까지도 전진칠자들은 계속 등장한다. 이들을 작품에 등장시키기 위해 왕중양은 대략 1140년대생정도, 실제 사형제끼리 나이 차이가 많았던 전진칠자들은 모두 동년배에 1160대~70년대 출생 정도로 설정한 듯 하다. 작중 곽정보다 2살 위로 묘사되는 윤지평조차 실제로 1169년생으로 곽정보다 31세 연상이다.

2.1.1. 전진교의 제자


전진교의 제자들 중 진지익, 방지기, 유도녕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존인물이다.

2.1.2. 전진교의 무공

2.2. 국내 무협소설

대한민국무협소설에서 전진교(전진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도교계 문파의 역할은 무당파가 있기에), 모산파와 비슷하게 무공보다 도술(방술)에 주력하는 문파로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며 종남파의 근원이 되었다는 설정[14]으로 자주 나온다.

전진교가 등장하는 국내 무협소설의 설정은 대개 종교적 성향을 좀 지니고 있으며 방술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는 항상 문을 열어놓고 있는 것으로 나오며, 문호를 개방하고 있기 때문에 도사들의 수는 엄청나지만 질적으로는 모산파에 못 미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보통 국내 무협소설에서는 망한걸로 나온다….

묵향에서는 황당하게도 (일단 명목상은) 북송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는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던 전진교가 전설의 문파가 되어있다. 전진교가 아닌 '전진'이라는 문파라고 나온다. 전진교와는 다르다. 전진은 혈마 한 명을 남기고 멸문(혈마가 살겁을 일으켰을 때 휘말림)당했다. 혈마가 전진의 전인으로 왕중양을 키우고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1] 후한 말의 오두미도에서 시작된 도교[2] 선천공 같은 무공이 후대에 그 누구도 쓰거나 연성하는 묘사가 없는걸 보면 거의 확실하다.[3] 애초에 천하오절급 고수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천부적 자질을 가졌거나 기연을 얻지 못하면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그 수준에 다다를 수가 없다. 밤낮으로 머릿속에 든게 연공 뿐인 무공덕후 주백통조차도 구음진경을 익히기 전까지는 황약사보다 몇 수 뒤쳐져 있었음을 생각해보자. 구음진경에 쌍수호박이라는 치트키를 쓰고난 이후에나 황약사를 약간 넘어설 수 있었다.[4] 전진칠자가 비록 천하오절을 상대로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각 문파의 수장급은 족히 되는 무공고수들이다. 천하오절이 격을 뛰어넘는 괴물들일 뿐이며 전진칠자역시 그 중 상위권인 마옥과 구처기등은 천하오절의 바로 다음 수준으로 논해진다.[5] 다만 이는 다소 억울한것이 실존인물 윤지평은 전혀 그런게 없는 도사였으나 소설에서 악인+찌질이+강간범 컨셉이 씌워지며 문파의 이미지에 크게 먹칠을 했다. 김용이 말년에 윤지평 가문의 항의를 받아 다른 인물로 교체했지만 이미지는 손상될 대로 손상된 후였다.[6] 강남칠괴의 무공이 약하다는 오해를 받고는 하는데 강남칠괴는 강남무림에서 약 12년 간 활동하면서 강호의 싸움에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고, 회양방(淮陽幇)이라는 단체와 싸울 때 백 명의 호걸을 물리쳤다고 나온다. 전국구 고수는 아니더라도 지역무림의 강자라 할 수 있다.[7] 소설속 허구인데 윤지평 가문에서 작자인 김용에게 항의하여 내요을 바꾸었다.[8] 다만 같은 천하오절인 일등의 제자 어초경독, 황약사의 제자 진매곡육, 구양봉의 조카 구양극도 무공수위로는 전진칠자와 별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데 이들중 실질적으로 구처기와 일기토를 벌여 이길 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홍칠공의 제자들의 경우 곽정, 황용 이전까지는 무공을 제대로 전수받은 제자가 없어서 개방 장로들의 무공은 오히려 전진칠자보다도 떨어진다. 학대통과 동급인 곽도가 개방 장로중에 그나마 무공이 강한 편인 노유각을 비교적 손쉽게 패퇴시킬 정도. 오히려 천하오절의 제자들중에 구처기가 최강급이라 할 수 있고 나서지 않아서 그렇지 마옥은 구처기보다 위라고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니 특별히 전진교의 제자들이 약해지는게 아니라 천하오절이 사기급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다.[9] 다만 이때는 부상등의 핸디캡이 있었고, 황약사 자신도 정상적인 상태의 천강북두진이라면 자신이 위험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황약사는 진법 등에 통달한 천재형 고수인지라 진법 파훼에 유리한 점도 있었다.[10] 계보대로라면 당시 몽골에 의해 종남산이 폐관되었고, 남아있던 전진오자는 그대로 흩어져 각종 문파를 창설한다. 그 중 확실한 문파가 바로 학대통이 창설한 화산파.[11]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에서 F22 랩터가 전투력 측정기로 평가받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것과 비슷한 이치.[12] 역사상으로는 이지상, 왕지경, 왕지탄, 기지성 등이 차례로 장교를 역임했다.[13] 舊 삼화취정장(三化聚頂掌)[14] 역사적으로 보면 전진칠자 중 일인인 학대통이 화산파를 창건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