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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00:35:24

국립중앙박물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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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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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77a2e><colcolor=#fff> 국립중앙박물관
國立中央博物館
National Museum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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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상징[1] 로고[2] }}}
파일:국립중앙박물관.jpg
관장 김재홍
운영주체 문화체육관광부
개장 1909년 (제실박물관 설립 연도)
2005년 (건물 설립 연도)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3] (용산기지)
우편 번호 04383
연락처 02-2077-9000
관련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소장품 검색 | 박물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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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위상3. 역사4. 소장품
4.1. 주요 소장품4.2. 오타니 컬렉션
5. 관람 정보
5.1. 전시관5.2. 부대시설
5.2.1. 기념품점5.2.2. 도서관
5.3. 야외시설
5.3.1. 야외전시장
5.4. 수장고 및 연구시설5.5. 식당 및 카페
6. 교통7. 산하 지방박물관8. 국립중앙박물관장9. 논란
9.1. 현재진행형인 소장품 목록 작성9.2. 관람비 관련 논란9.3. 가야본성 전시 임나일본부 논란9.4. 동북공정 기반 지도 전시9.5. 국가 행사 동원 논란9.6. 수장고 포화 및 관리 문제
10. 여담11.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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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10조(설립과 운영) ①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소속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둔다. <개정 2008.2.29.>
③ 국립중앙박물관은 제4조제1항의 사업 외에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1. 국내외 문화재의 보존·관리
2. 국내외 박물관자료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3. 국내 다른 박물관에 대한 지도·지원 및 업무 협조
4. 국내 박물관 협력망의 구성 및 운영
5. 그 밖에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의 기능 수행에 필요한 업무
⑦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및 국립민속박물관의 조직과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⑧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관장 1명을 두되, 관장은 정무직으로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29조(직무)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앙박물관"이라 한다)은 고고학·미술사학·역사학 및 인류학 분야에 속하는 문화재와 자료를 수집·보존 및 전시하여 일반 공중의 관람에 제공하며, 이에 관한 연구·조사와 전통문화의 계몽·홍보·보급 및 교류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용산기지)에 위치한 한국 최대의 대표 국립 박물관. 한국의 고미술, 유물을 중심으로 소장하고 있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담당한다. 행정조직법상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인데,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 국내 다른 박물관을 지도·지원하는 위치에 있다. 가까운 곳에는 국립한글박물관이 있다.

2. 위상

소장 유물 약 150만여 점, 상설 전시 유물 1만여 점[4]으로 한국 최대의 박물관이면서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규모이다. 2020년 보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13개 국립박물관의 총 소장 유물 200만 2,111점 중 국립중앙박물관은 약 20%인 41만 2,216점을 소장하고 있고 최근 10년 간 소장유물수 대비 전시율은 그 중 3%에 불과하다.

관람객 수가 아시아 1위, 세계 10위였던 적도 있지만 2017년도 관람객 수는 아시아 2위, 세계 12위로 내려갔고[5] 2018년도 관람객 수는 세계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18년 아시아 1위는 중국 베이징 고궁박물원이다. 참고로 일본이 박물관 순위에 상위권이 아닌 부분을 의아해 할 수도 있는데, 일본 최대인 도쿄국립박물관이 11만 점대이며, 생각보다 일본의 박물관은 규모가 작다. 일본은 박물관보다 개인ㆍ단체 또는 유물이 원래 위치해 있던 절이나 신사 등에서 자체적으로 시설을 갖춰 전시ㆍ보관하는 것을 선호한다.[6] 간송미술관처럼 애초부터 학술용으로 학자들에게만 한정적으로 공개하고 민간에는 한시적 외엔 거의 공개하지 않는 유물도 매우 많다. 또한 일본 황실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는 애초에 공개되지도 않고 나라에서도 관리하지 않으며 궁내청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다행히 코로나19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이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3년에는 한 해에만 418만 명이 방문하며 최대 관람객 수치를 갱신했다. 이는 당해 세계 6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TOP10 중 아시아 유일이다.[7] #1 #2 #3

3. 역사

국립중앙박물관 로고 변천사
파일:국립중앙박물관 구 로고1.svg 파일:국립중앙박물관 구 로고2.jpg 파일:국립중앙박물관 로고.svg 파일:국립중앙박물관 로고(정부상징)_좌우.svg
<rowcolor=#000,#fff> 1986~1996년[8] 1996~2004년 2005~2016 · 2020~현재[9] 2016~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력의 시작을 순종 황제가 지은 제실박물관으로 회의에 부쳐 놓았다.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 컬렉션의 기초는 조선총독부 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10], 그리고 민속학의 대가 송석하가 지은 남산의 국립민족박물관 소장품을 합친 것인데, 총독부박물관과 이왕가박물관이 모두 일제에 의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예전엔 조선총독부 박물관[11]을 인수한 뒤 새로 개편하여 1946년에 '국립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덕수궁 석조전 건물에서 개관한 것으로 역사를 설명했었다. 그러나 최광식 관장이 취임한 뒤로 이왕가박물관이 원래는 1909년 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주목하여 박물관의 시작은 제실박물관으로 보고, 2009년을 한국박물관 100주년의 해로 선포하고 몽유도원도 등을 비롯한 유물을 전시하는 대규모 특별전과 행사를 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총독부 박물관으로 이용하며 조선 전국의 문화재를 모으면서 규모를 넓혔다. 당시 일본 제국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처럼 식민지 유물들을 정부가 주도하여 일본 본토로 옮기지 않았다. 그들이 조선을 오래도록 식민 지배할 것이라 막연하게 착각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반 일본의 패색이 짙어졌을 때는 이미 미 해군제해권을 완전히 빼앗겨서 대한해협 건너 일본 본토로 옮길 수도 없었다. 서봉총 금관 실물을 기생에게 쓰게 하고 기념촬영까지 해서 물의를 일으켰던 일본인 학자 코이즈미 아키오[12]의 회고록에 따르면 기차 2량 분량의 가야 유물을 일본으로 달아나는 연락선으로 싣기 위해 보냈다는 부분이 있어서 전쟁 후반 항복 직전에 한국 유물을 일본으로 빼돌리려는 시도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가야 유물은 다행히도 나중에 되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유물들은 꽤 많은 수가 반출되었다.[13] 지금까지 해외반출된 한국 문화재가 가장 많은 곳이 일본이다.[14]

8.15 광복 이후 경복궁 경내의 총독부박물관 자리에 그대로 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물과 박물관도 임시수도 부산으로 피난가게 되었다. 북한조선중앙력사박물관 문서에서 설명돼 있듯, 과거 조선 왕실과 일제가 수집해두었던 한국사 핵심 문화재들을 그대로 물려받은 남한과 달리, 조그만 평양부립박물관 정도뿐이었기 때문에 소장한 문화재가 많지 않았다. 현 북한 지역인 개성부립박물관에서도 고려청자를 비롯한 많은 고려 시대 문화재가 있었지만 1945년 삼팔선 분단 당시에는 개성이 아슬아슬하게 남한 영역이었고, 개성이 접경지대다 보니 남북간 국지전이 많이 나서, 김재원 초대 국립박물관장이 6.25 전쟁 발발 이전부터 이미 개성분관[15]의 문화재를 죄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울본관으로 옮겨둔 덕에 나중에 북한이 개성을 점령한 뒤에도 박물관은 이미 빈털터리였다.

침공 직후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들은 아직 서울에 남아 있는 유물을 북쪽으로 가져가기 위해 박물관 직원들을 협박해서 유물들을 포장하게 했다. 그러나 당시 박물관 직원들은 어떻게든 반출을 늦추기 위해 포장을 풀고 다시하는 등 시간을 끌었고, 북한 내부에서도 광복절인 8월 15일 통일을 거론하는 등 적화통일이 거의 눈앞이라 낙관적으로 생각해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천 상륙 작전 이후 빠른 속도로 북진이 시작되자 인민군은 급히 철수하느라 대부분의 유물을 서울에 두고 떠났다.

서울을 수복하면서 서울에 남아 있던 대부분의 유물을 부산으로 옮겼는데, 이때 미처 옮기지 못한 대형 중국 벽화나 미라는 훼손되었다고 전해진다.[16]. 1953년 휴전 이후 서울로 오면서 경복궁 경내로 돌아왔으나 그해 10월에 경복궁 부지가 구황실재산사무총국[17]으로 넘어가자 1954년 2월부터 구 남산분관 건물에서 머물렀으나, 6월에 남산 건물이 연합참모본부로 쓰이자 11월에 덕수궁 석조전으로 옮겨 이듬해 2월에 개관하였다. 여러가지 이유로 부산에 대피해두었던 유물들을 옮기는 것을 서두르지 않았는데 부산 용두산 대화재로 인해 많은 문화재를 소실하였다.

덕수궁에 자리잡았던 시기인 1957년 12월부터 1959년 6월까지 미국 8개 도시에서 처음으로 국보급 문화재 해외 전시회를 열었으며, 1961년 3월부터 1962년 5월까지 영국·프랑스·네덜란드·독일·오스트리아에서 중요문화재 해외 순회 전시를 하여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한국사만 접했던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폭넓고 알기 쉽게 소개하는 데 노력하였다. 1960년에 학술지 <미술자료>를 창간한 뒤 1968년 7월 문교부 소속에서 문화공보부 소속으로 직제가 개편된 뒤 이듬해 덕수궁미술관을 통합했다. 1972년에 현 명칭으로 변경하여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을 신축해 이전하였다. 1973년에는 공주분관을 신설하고 1975년부터 지방분관을 '지방박물관'으로 개편했다. 1976년 보존과학실을 열었다.

1970년 정부종합청사 신축과 1982년 정부과천청사(당시 정부제2종합청사) 신설로 중앙청[18] 건물이 공실이 되자, 해당 건물을 개조해 1986년에 이전하고 동년도에 중앙청 후생관 건물[19]을 사회교육관으로 개편하였다.

중앙청에 둥지를 튼 시절에도 사회교육관 신설 말고도 1990년 버스이동박물관 '움직이는 박물관'을 개설했다. 1992년에 국립민속박물관을 독립시키고 1995년 광복절문민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으로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면서 소장품들이 임시로 근처 벙커에 들어가 있었다가 경복궁 경내의 사회교육관 건물[20]을 개축하여 이전하였다.

그 뒤로 용산기지 골프장을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하여 조성된 용산가족공원 안에 규모가 큰 건물을 신축하여 2005년에 개관하여 비로소 온전한 박물관 건물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신축 비용은 당시 약 4,100억 원이 소요되었으며 설계는 정림건축, 시공/토목 등은 현대건설대우건설, 동부건설, SK건설, GS건설 5개 회사가 맡았다.

건축적으로도 1995년 한국 최초로 UIA(국제건축가연맹) 공인을 받아 국제설계경기(현상설계) 개최를 통해 건축가를 선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설계경기에는 46개국에서 340건의 작품이 응모하는 등 국제적으로 건축계에 큰 관심을 끌었다. 2차에 걸친 심사 결과 대한민국의 '정림건축' 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개관 기념으로 잠시 무료 개방을 하다가 이듬해부터 입장료를 받았으나,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한시 무료 개방하더니 모든 국립박물관의 입장료를 폐지하여 현재는 관람료가 기획전을 제외하면 따로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앞마당 일부에 국립한글박물관을 신축하여 2014년 10월에 개관하였으며, 차후 주변 부지도 기증받아 국립민속박물관을 이전하고 전쟁기념관까지 이어두고 거대한 뮤지엄 파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다만 현 위치의 지대가 낮아 대규모 홍수가 닥치면 문화재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차관급 기관이며, 지방 국립박물관 13곳(경주, 공주, 광주, 김해, 나주, 대구, 부여, 전주, 제주, 진주, 청주, 춘천, 익산)을 거느린 대규모 기관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 직속의 별도 기관이며, 국립고궁박물관문화재청 소속으로 모두 국립중앙박물관과는 관련이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원(문화재청 소속), 대한민국역사박물관(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전쟁기념관(국방부 산하), 독립기념관(국가보훈처 산하), 국립현대미술관(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립해양박물관(해양수산부 산하)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앞의 국립한글박물관 역시 마찬가지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별도 기관이다.

건물의 모티브는 한국인들이 가장 흔하게 볼 수도 있고 권위적이거나 사치스럽게 느끼지 않는 성벽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중앙박물관이라는 역사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2013년에 동아일보와 건축 전문지 SPACE가 국내 건축가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로 나온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태작에서 17위로 랭크된 바 있다.

2009년에 국립중앙박물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했다. 이때 누가 한국 최고 최대 박물관 아니랄까봐 몽유도원도, 훈민정음 해례본, 천마도 같은 평소에 보기 힘든 국내외의 여러 박물관, 미술관에서 엄청 귀한 유물을 보내 축하했다. 전국의 역사학도, 미술학도를 비롯해 문화 계통에 관심있는 사람은 남녀노소 몰려와서 장사진을 이루었다. 특히 몽유도원도는 1인당 1분만 볼 수 있도록 관람을 제한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 특별전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해당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위상이 어떤지 잘 보여준 전시였다.

2016년부터는 용산 이전 이후 10여 년 동안 사용한 금색 로고에서 정부상징으로 로고를 교체하였다.

2018년에는 광복절에 '정부수립 70주년 및 광복 73주년 기념식'이 본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한편 그 해 용산 이전 이래 최초로 수장고를 언론에 공개했다.

대략 2020년을 전후로 한 시점부터 2016년 이전의 로고를 박물관에서 제작한 기획전 포스터 등에서 다시 사용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로고를 복구한 것이 아님에도 예전 로고를 사용하는 까닭은 알 수 없었다.

2021년 11월 15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예전의 로고를 현재의 정부상징과 병용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

2022년 10월 24일,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행정안전부가 박물관이 자체 로고를 복구시킨 사실을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체 로고를 사용하려면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행안부는 일부 국립박물관들이 자체 로고를 복구시키거나 새로 만드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지적한 이상헌 의원은 자체 로고를 정부상징과 병용하는 것은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정식으로 관련 규정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 이후에도 자체 로고를 현재까지 사용하는 것을 보면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부로고를 국립 박물관 로고로 사용하는 예는 전세계적으로 드물다. 행정편의주의에 문화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각 정부 기관이 각각의 로고를 사용하다가 단일 정부로고를 사용케 한 것은 이해되지만 그 역시 흑백일 때는 완전히 의미 없어지는 로고로 비판이 많고, 박물관까지 통일시킨 것은 너무나 기계적인 조치이다.

2024년 구석기~고구려실을 전면 개편하는데 이미 현재 광개토대왕릉비 미디어월이 생겼다. 추후 고구려실은 최신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2배 키운다.(#) 이는 용산에 입주한 뒤로 첫 대규모 개편이다. 또한 외규장각 의궤실, 이슬람실을 추가한다. 한편 2028년까지 어린이박물관 증축 추진 중이다. #

2025년 뒤편으로 문화유산과학센터가 개장 예정이다. # 또한 아카이브 센터를 건립할 계획이 있다. #

4. 소장품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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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cfs4.tistory.com/download.blog?fhandle=YmxvZzEzMjkwNUBmczQudGlzdG9yeS5jb206L2F0dGFjaC8wLzI0LmpwZw%3D%3D.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ensive_Bodhisattva_01.jpg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6세기 후반, 미상)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7세기 초반, 신라 유력)

소장품 중에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많다. 그러나 유물의 수준에 비해서는 또 많은 것이 아닌데, 가끔 보면 교과서에도 나오는 엄청 유명한 유물도 국보나 보물이 아닌 경우가 많다. 문화재의 지정 및 등록을 담당하는 국가유산청(문화재청)의 공식적인 해명은 문화재의 지정 및 등록은 문화재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관리의 문제점이나 훼손의 가능성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라고 한다. 즉 아무리 좋은 문화재라도 한국에서 가장 안전하고 전문적인 관리를 받은 국립중앙박물관 안에 있으니 지정의 시급성이 떨어져 후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지만 사실 이건 국가유산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이가 안 좋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비슷한 일을 담당하는 두 기관이 기싸움을 하면서 서로의 조직을 늘려가고 있는데, 국가유산청이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21]을 만들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왕실 유물을 대규모로 빼가 두 기관의 사이가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 소장이라는 것만으로 소장품의 권위가 어느 정도 서기 때문에 국보니 보물이니 하는 권위를 빌려와서 소장품에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권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설 기관이 좀 더 타이틀을 위한 노력을 많이 한다. 실제로 요즘 두 기관의 협력을 위해 국가유산청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여기에 협력한다는 보도 자료를 낸 적도 있다. 이건 역설적으로 두 기관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방증이 된다. #

국사책에 나오는 유물 중에서 많은 수[22]를 이곳에서 소장하고 있다. 건축물 같은 건 빼야 되니 절대 다수까지는 아니지만, 옮길 수 있는 건 정말 많다. 내부에 도 있으며(국보 86호 경천사 10층 석탑)[23] 진흥왕 북한산 순수비 등 야외에서 훼손이 될 만한 유물도 이 안으로 옮길 때가 많다.

한국이 파란만장한 근대사를 겪어서인지 박물관 내 유물들은 온전하게 원 소유주에게 있다가 온 것이 거의 없고, 국가에서 경매에 부쳐진 걸 구매해서 회수하거나 기증받은 것이 거의 대다수다. 출토지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다. 당장 한국 불교 미술의 정수라 불리는 위 사진의 두 유물도 마찬가지다. 6.25 전쟁 때 하마터면 잿더미가 될 뻔했으나 이걸 알아본 유엔군 장교가 귀중한 문화재라고 하여 잘 보관하여 미국에서 눈독을 들이기도 했었던 문화재들이 겨우 남은 경우도 있었다.

유물의 규모에 비해 순회 전시가 잘 안 되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세계적인 박물관들은 몇 달에서 몇 해 단위로 유물을 교체해주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재개관 이후 대표 유물이 교체된 적이 거의 없다. 예외가 있다면 국보 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으로, 부처님오신날마다 서로 교대해서 전시했다. 이 반가사유상들은 현존하는 대한민국 문화예술품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것들로, 2021년 11월 14일부터 전용 전시실을 마련하여 단독 전시할 정도로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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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문화재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재로서 인정받아 외국에서 한국 관련 전시를 할 때는 거의 빼놓지 않고 초청받는다. 다만 훼손 우려 때문에 국외 전시를 나가는 것은 조심스러운 편이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가운데 뉴욕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2013년에 신라시대 유물전시회를 기획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이 반가사유상도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국가유산청이 반출에 난색을 표해서 한동안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결국 메트로폴리탄의 통사정과 정부의 설득으로 뉴욕행을 결정지었다. 당연하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건 그대로 두고 수장고에 보관 중이던 것이 국외 전시로 나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정기적으로 중앙으로 이전시킨다. 때문에 지방은 자기 유물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상당한 유물들이 수장고에 들어가 단 한 차례도 전시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가야백제 연구자들은 이를 위해 서울까지 와서 봐야 하고 지역민들은 자기들의 고장에서 나온 유물들을 볼 기회를 사실상 완전히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 국립박물관을 제외한 광역 또는 시군 박물관 유물들을 중앙에서 흡수하는 이런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4.1. 주요 소장품

언제든 유물의 소재를 옮길 수 있는 국립박물관의 특징상 중앙박물관과 소속 박물관의 유물 전체를 기록한다. 기간에 따라 유물이 옮겨다닐 수 있다.
지정구분 호(號) 지정명칭 소재지 비고
국보 3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중앙
국보 60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중앙
국보 61 청자 어룡형 주전자 중앙
국보 78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중앙
국보 79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중앙
국보 80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중앙
국보 81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중앙
국보 82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중앙
국보 83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중앙
국보 86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중앙
국보 89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중앙
국보 90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중앙
국보 91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중앙
국보 92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중앙
국보 93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중앙
국보 94 청자 참외모양 병 중앙
국보 95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중앙
국보 96 청자 구룡형 주전자 중앙
국보 97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중앙
국보 98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중앙
국보 99 김천 갈항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중앙
국보 100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중앙
국보 102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중앙 [충주]
국보 104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중앙
국보 110 이제현 초상 중앙
국보 113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중앙
국보 114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중앙
국보 115 청자 상감당초문 완 중앙
국보 116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중앙
국보 119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중앙
국보 125 녹유골호(부 석제외함) 중앙
국보 127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중앙
국보 128 금동관음보살입상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129 금동보살입상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131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중앙 이른바 국보 호적. 태조 이성계의 개국 전 고려 호적
국보 134 금동보살삼존입상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137-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투겁창 및 꺾창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145 귀면 청동로 중앙 남궁련 기증
국보 146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151-4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중앙
국보 155 무령왕비 금제 관식 중앙
국보 166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 중앙
국보 167 청자 인물형 주전자 중앙
국보 168 백자 동화매국문 병 중앙
국보 170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 중앙
국보 175 백자 상감연화당초문 대접 중앙
국보 178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중앙
국보 180 김정희세한도 중앙 손창근 기증[25]
국보 185 상지은니묘법연화경 중앙
국보 186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중앙
국보 191 황남대총 북분 금관 중앙
국보 192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중앙
국보 193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중앙
국보 194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중앙
국보 195 토우장식 장경호 중앙 두 점으로 중앙과 경주에서 나누어 보관중
국보 210 감지은니불공견삭신변진언경 권13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216 정선 필 인왕제색도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234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235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239 송시열 초상 중앙
국보 241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 권249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243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1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245 초조본 신찬일체경원품차록 권20 중앙
국보 246 초조본 대보적경 권59 중앙 송성문 기증[26]
국보 253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중앙
국보 255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중앙
국보 258 백자 청화죽문 각병 중앙
국보 259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중앙
국보 260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중앙
국보 271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중앙 송성문 기증
국보 27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중앙 송성문 기증
국보 273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중앙 송성문 기증
국보 280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중앙
국보 286 백자 천지현황명 발 중앙 이건희 기증
국보 325 기사계첩 중앙 송성문 기증
보물 2 옛 보신각 동종 중앙
보물 166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 중앙
보물 190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중앙
보물 240 백자 청화투각모란당초문 항아리 중앙
보물 269-1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 중앙 마곡사 소유. 기탁
보물 269-4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7 중앙
보물 270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6 중앙
보물 282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중앙
보물 328 금동약사여래입상 중앙
보물 329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중앙
보물 331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중앙
보물 332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 중앙
보물 333 금동보살입상 중앙
보물 338 금령총 금관 중앙
보물 340 청자 철채퇴화삼엽문 매병 중앙
보물 342 청자 음각모란 상감보자기문 유개매병 중앙
보물 343 부여 외리 문양전 일괄 중앙
보물 344 청자 양각갈대기러기문 정병 중앙
보물 345 백자 상감모란문 매병 중앙
보물 346 청자 상감동채모란문 매병 중앙
보물 347 분청사기 상감어문 매병 중앙
보물 358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중앙
보물 359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비 중앙 [충주]
보물 360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중앙
보물 361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 중앙
보물 362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 중앙
보물 363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 중앙
보물 364 나주 서성문 안 석등 중앙
보물 365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 및 석관 중앙
보물 452 청자 구룡형 주전자 중앙
보물 453 도기 녹유 탁잔 중앙
보물 454 경주 노서동 금팔찌 중앙
보물 455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 중앙
보물 456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중앙
보물 515 숙신옹주 가옥허여문기 중앙
보물 522 강세황필 도산서원도 중앙
보물 527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앙
보물 547-1 김정희 종가 유물 중앙 기탁
보물 568-1 윤봉길의사 유품 중앙 선서문 및 유서
보물 569-7 안중근의사유묵-용공난용연포기재 중앙
보물 588 강민첨 초상 중앙 진주강씨 백각공파 소유, 기탁
보물 589 강현 초상 중앙 진주강씨 백각공파 소유, 기탁
보물 590 강세황 초상 중앙 진주강씨 백각공파 소유, 기탁
보물 592-1 허목 수고본 중앙
보물 643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중앙
보물 648 승자총통 중앙
보물 767-4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중앙
보물 852 휴대용 앙부일구 중앙
보물 868 성세창 제시 미원계회도 중앙
보물 869 성세창 제시 하관계회도 중앙
보물 870 호조낭관계회도 중앙
보물 871 연정계회도 중앙
보물 886 황자총통 중앙
보물 897 조흡 고신왕지 중앙
보물 903 청자 상감매죽학문 매병 중앙
보물 904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 중앙 손기정선수 기증. 국내 유일의 서양 지정문화재
보물 928 남양주 봉인사 부도암지 사리탑 및 사리장엄구 중앙
보물 949 예념미타도량참법 중앙
보물 950 묘법연화경 권5~7 중앙
보물 953 조숭 고신왕지 중앙
보물 954 조서경 무과홍패 중앙
보물 967 상설고문진보대전전집 권7~8 중앙
보물 969 재조본 유가사지론 권64 중앙
보물 970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언해) 권상 1의1, 2의1~3, 권하1의1~2, 2의2~3 중앙
보물 971 묘법연화경 권5~7 중앙
보물 972 재조본 유가사지론 권55 중앙
보물 1023 신해생갑회지도 중앙
보물 1045 청자 음각‘상약국’명 운룡문 합 중앙
보물 1046 화개현구장도 중앙
보물 1054 백자 병 중앙
보물 1060 백자 철화끈무늬 병 중앙
보물 1061 백자 철채 뿔잔 중앙
보물 1067 분청사기 상감연화당초문 병 중앙
보물 1078-2 한호 필적-석봉진적첩 중앙
보물 1079 홍무예제 중앙
보물 1080 대방광원각약소주경 권상 중앙
보물 1081 묘법연화경 중앙
보물 1082 금강반야바라밀경 중앙
보물 1083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20 중앙
보물 1097 염제신 초상 중앙 기탁
보물 1124 대방광불화엄경소 권30 중앙
보물 1125 불설대보부모은중경 중앙
보물 1126 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별행소 중앙
보물 1127 천노해 금강반야바라밀경 중앙
보물 1137 상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 권4 중앙
보물 1138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7 중앙
보물 1139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7 중앙
보물 1140 묘법연화경(언해) 권3 중앙
보물 1156 재조본 경률이상 권8 중앙
보물 1157-1 성리대전서절요 중앙
보물 1158 고금운회거요 권27~30 중앙
보물 1159 음주전문춘추괄례시말좌전구독직해 권62~70 중앙
보물 1160 진충귀 개국원종공신녹권 중앙
보물 1161 진충귀 고신왕지 중앙
보물 1166 여주 출토 동종 중앙
보물 1168 청자 상감매죽학문 매병 중앙
보물 1204 의겸등필 수월관음도 중앙
보물 1281-1 자치통감 권236~238 중앙
보물 1325 전 낙수정 동종 중앙
보물 1326 함창 상원사 사불회탱 중앙
보물 1327 석조지장보살좌상 중앙
보물 1328 기영회도 중앙
보물 1329 백자 청화소상팔경문 팔각연적 중앙
보물 1359 감은사지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중앙
보물 1393 김홍도필 추성부도 중앙
보물 1404 봉사조선창화시권 중앙
보물 1405 비해당소상팔경시첩 중앙
보물 1437 백자 달항아리 중앙
보물 1459 해동조계복암화상잡저 중앙
보물 1483 이채 초상 중앙
보물 1484 남구만 초상 중앙
보물 1485 강이오 초상 중앙
보물 1486 이광사 초상 중앙
보물 1487 서직수 초상 중앙
보물 1496 윤급 초상 중앙
보물 1499-2 이하응 초상 일괄 - 금관조복본 중앙
보물 1538 동국대지도 중앙
보물 1626 김현성 필적 중앙
보물 1628 효종어필 칠언시 중앙
보물 1632-2 정조어필-제문상정사 중앙
보물 1662 대혜보각선사서 중앙
보물 1663 대승기신론의기 권상, 하 중앙
보물 1671 윤순거 초서 무이구곡가 중앙
보물 1676 윤순 필적 고시서축 중앙
보물 1677-1 이광사 행서 화기 중앙
보물 1677-2 이광사 행서 원교법첩 중앙
보물 1679 이인상 전서 원령필 중앙
보물 1685-1 김정희 해서 묵소거사자찬 중앙
보물 1823 농경문 청동기 중앙
보물 1869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중앙
보물 1875 정선필 풍악도첩 중앙
보물 1877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중앙
보물 1878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 중앙
보물 1882-2 고려 십육나한도(제15 아벌다존자) 중앙
보물 1883 고려 오백나한도 중앙 총 6폭
보물 1887 고려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중앙
보물 1899 은제도금화형탁잔 중앙
보물 1901-7 조선왕조의궤 중앙 화성성역의궤
보물 1907 함통6년명 청동북 중앙
보물 1925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 중앙
보물 1930 청자 퇴화초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및 승반 중앙
보물 1931 청자 죽순모양 주전자 중앙
보물 1932 청자 투각연당초문 붓꽂이 중앙
보물 1975 나전경함 중앙
보물 2001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중앙
보물 2012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 중앙
보물 2018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중앙
보물 2029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중앙
국민[28] 16 방상시 탈 중앙
국민 66 구장복 중앙
국민 67 적의본 및 폐슬본 중앙
국보 28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경주
국보 29 성덕대왕신종 경주
국보 38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경주
국보 87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경주
국보 88 금관총 금제 허리띠 경주
국보 188 천마총 금관 경주
국보 189 천마총 관모 경주
국보 190 천마총 금제 허리띠 경주
국보 195 토우장식 장경호 경주 두 점으로 중앙과 경주에서 나누어 보관중
국보 207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경주 일반 비공개
국보 275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경주
국보 318 포항 중성리 신라비 경주
보물 202 의성 관덕동 석사자 경주
보물 314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3~4 경주 광흥사 소유. 기탁
보물 315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1, 3 경주 광흥사 소유. 기탁
보물 366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경주
보물 617 천마총 금제 관식 경주
보물 618 천마총 금제 관식 경주
보물 619 천마총 목걸이 경주
보물 620 천마총 유리잔 경주
보물 621 천마총 환두대도 경주
보물 622 천마총 자루솥 경주
보물 623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경주
보물 624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경주
보물 625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경주
보물 626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경주
보물 627 황남대총 북분 은잔 경주
보물 628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경주
보물 629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경주
보물 630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경주
보물 631 황남대총 남분 은관 경주
보물 632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경주
보물 633 경주 황남동 금제 드리개 경주
보물 634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 경주
보물 635 경주 계림로 보검 경주
보물 636 도기 서수형 명기 경주
보물 884 삼안총 경주
보물 1110-1 정몽주 초상 경주 임고서원 소유, 기탁
보물 1151 청동 옻칠 발걸이 경주
보물 1152 경주 죽동리 청동기 일괄 경주
보물 1411 임신서기석 경주
보물 1474-1 경주이씨 양월문중 고문서 및 향안 경주 경주이씨 양월문중 소유, 기탁
보물 1475 안압지 출토 금동판 불상 일괄 경주
보물 1844 경주 월지 금동초심지가위 경주
보물 1870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 경주
보물 2001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경주
보물 2010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 경주
보물 2028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경주
국보 154 무령왕 금제 관식 공주
국보 156 무령왕 금귀걸이 공주
국보 157 무령왕비 금귀걸이 공주
국보 158 무령왕비 금목걸이 공주
국보 159 무령왕 금제 뒤꽂이 공주
국보 160 무령왕비 은팔찌 공주
국보 161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공주
국보 162 무령왕릉 석수 공주
국보 163 무령왕릉 지석 공주
국보 164 무령왕비 베개 공주 일반 비공개
국보 165 무령왕 발받침 공주 일반 비공개
국보 247 공주 의당 금동보살입상 공주
보물 148 공주 중동 석조 공주
보물 149 공주 반죽동 석조 공주
보물 979 공주 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 공주
국보 103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광주
국보 143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광주
보물 587 필암서원 문적 일괄 광주 필암서원 소유, 기탁
보물 1233 현자총통 광주
보물 1488 심득경 초상 광주
보물 1874 순천 매곡동 석탑 청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 광주
보물 1937 신여량 상가교서 광주
보물 1938 신여량 밀부유서 광주
보물 1993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광주
보물 1922 부산 복천동 출토 금동관 김해
보물 2019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 김해
보물 2020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 김해
국보 143 나주 신촌리 금동관 나주
보물 660 최희량 임란관련 고문서 나주 기탁
보물 1772 총마계회도 나주 밀양박씨 지산경수공파 소유, 기탁
국보 182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대구
국보 183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대구
국보 184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대구
국보 282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대구 복장유물 일부 기탁
보물 325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 대구
보물 357 칠곡 정도사지 오층석탑 대구
보물 957 김일손 거문고 대구 기탁
보물 1237 밀성박씨 삼우정파 종중 고문 대구
보물 1410 금동 당간 용두 대구
보물 1617 이헌국 호성공신교서 대구 기탁
보물 1904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대구
보물 2017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 출토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 대구
국민 65 흥선대원군 기린흉배 대구
국민 229 진주하씨 묘 출토유물 대구
국보 287 백제금동대향로 부여
국보 288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부여
국보 293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부여
국보 327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부여
보물 107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 부여
보물 194 부여 석조 부여
보물 195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 부여
보물 330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 부여
보물 1215-2 이색 초상-영모영당본 부여 한산이씨 대종회 소유, 기탁
보물 1845 부여 사택지적비 부여
국민 30-1 보부상 유품(1) 부여 기탁
국민 30-3 보부상 유품(3) 부여 기탁
국민 110 (전)박신용장군 의대 부여 기탁
국민 225 (전)고불 맹사성 유품 부여 기탁
국보 12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익산
국보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익산
보물 1753 익산 미륵사지 금동향로 익산
보물 1890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불감 및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 익산 심곡사 소유, 기탁
보물 718 전주이씨 고림군파 종중 문서 일괄 전주 기탁
보물 725 남원양씨 종중 문서 일괄 전주 기탁
보물 728 설씨부인 권선문 전주 고령신씨 귀래공파 소유, 기탁
보물 792 이상길 초상 전주 기탁
보물 1876 완산부지도 전주
보물 2033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 전주
보물 2034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 전주
보물 652-2 이형상 수고본-탐라순력도 제주
보물 1510 최익현 초상 제주
보물 2002 이익태 지영록 제주
국보 105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진주
국보 324 이제 개국공신교서 진주 기탁
보물 311 노인 금계일기 진주
보물 637 도기 바퀴장식 뿔잔 진주
보물 647 천자총통 진주
보물 668 권응수장군 유물 진주 기탁
보물 858 중완구 진주
보물 862 지자총통 진주
보물 885 현자총통 진주
보물 1020 김광려 삼남매 화회문기 진주 성산김씨 임계공파 소유, 기탁
보물 1078-1 한호 필적 - 한석봉증유여장서첩 진주
보물 1096 오희문 쇄미록 진주 기탁
보물 1212 이운룡 선무공신 교서 및 관련 고문서 진주
보물 1476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진주
보물 1632-1 정조어필-신제학정민시출안호남 진주 기탁
보물 1864 소상팔경도 진주
국보 106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청주
국보 108 계유명삼존천불비상 청주
보물 339 서봉총 금관 청주
보물 367 기축명아미타불비상 청주
보물 368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 청주
보물 1167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 청주
보물 1380 신경행 청난공신교서 및 관련문적 청주 영산신씨 충익공파 소유, 기탁
보물 1880 청주 명암동 출토 ‘단산오옥’명 고려 먹 청주
보물 1936 최석정 초상 및 함 청주
보물 1947 숙명신한첩 청주
보물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 청주
국보 124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춘천
보물 1479 유숙 초상 및 관련 교지 춘천 고흥유씨 춘천종중 소유, 기탁
보물 1509 허목 초상 춘천
보물 1871 동제염거화상탑지 춘천
보물 1872 전 회양 장연리 금동관음보살좌상 춘천
보물 1873 원주 학성동 철조약사여래좌상 춘천
국민 120 청풍부원군 상여 춘천

4.2. 오타니 컬렉션

중앙아시아의 유물인 오타니 컬렉션의 일부가 중앙박물관 본관 3층에 있는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실에서 상설 전시되어 있다. 오타니 컬렉션은 일본 교토에 위치한 유서 깊은 사찰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주지였던 오타니 고즈이가 현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베지클릭 석굴사원, 막고굴 등에서 약탈, 수집해온 벽화를 위시한 각종 예술품들이다.

이 오타니 컬렉션은 오타니 개인의 재정 문제로 3분되어 떠도는 것 중 한 갈래로, 한국에 있는 유물은 당시의 광산재벌 쿠하라 후사노스케(久原房之助)가 오타니로부터 구매하였다. 쿠하라는 친분이 있던 동향 선배인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에게 이를 선물하여 평안남도 진남포시에 설립한 제련소 사업의 이권을 얻었다. 데라우치가 사들인 오타니 컬렉션의 일부는 조선총독부에서 관리하게 되었고, 총독부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이후 광복으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에 남은 유물들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으로 귀속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설로는 중국에서 국내로 옮겨와 다시 일본으로 반출 대기 중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그대로 잔류한 유물이라는 설도 있다. 비슷한 종류의 유물이 역시 베를린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소실[29]되었기 때문에 유일본으로서 가치가 높다. 현재 해당 지역을 지배 중인 중국에서 반환을 바라고 있지만, 이에 대해 박물관 측은 무시하는 중이다.[30]

여기에 대해서 중국 측 입장은 다르다. 이들 주장에 의하면 오타니 컬렉션은 위구르인들이 도래하기 전 한나라~당나라 사이에 중국과 실크로드 도시국가 문명이 남긴 유물이 대부분으로, 위구르족은 이슬람교로 집단 개종한 이후 이 유물들을 파괴한 민족[31]이지 이 유물들을 만든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32]

다만 이는 속지주의를 무시한 주장이다. 위구르족이 당나라 시기에야 독립된 실체로서 역사에 등장한다고는 하지만 중세 위구르 칸국이 멸망한 이후 위구르 난민들이 타림 분지 동부와 투르판 일대로 피난가면서 현지 토하라인들과 통혼했기 때문에 해당 문화 유산이 위구르인들의 문화유산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투르판 분지 역시 전통적으로 토하라인들과 고창회골의 위구르인들의 주된 거주지였다.[33] 오늘날 위구르인들은 무슬림이므로 위구르인들이 불교 유산에 대해 권리가 없다는 주장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중국 불교는 원래 동튀르키스탄을 거쳐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왔으며, 대표적으로 불경을 한역한 승려 중 가장 번역 수준이 높다고 평가받는 고승 쿠마라지바쿠처 출신이다. 한겨레21에서는 이와 관련해 부끄러운 약탈이라는 등 중국의 유물을 빼앗은 투로 기사를 써서 비판을 들은 바 있다.

베제클릭 벽화 등 오타니 컬렉션 대부분을 만든 주체는 타림분지의 실크로드 도시국가의 토하라인, 소그드인들이다. 타림 분지는 실크로드의 중간 지점으로 역사적으로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던 지역이었고, 원주민인 토하라인들은 튀르크, 페르시아, 중국, 인도, 이슬람 또는 티베트의 영향을 받았다. 한나라와 당나라 시절 타림 분지는 한족의 지배를 받았으며, 중국 통일 왕조의 지배를 받지 않은 시기에는 고창국과 같은 노수호 계열 도시국가들이 존재했다.[34] 따라서 오타니 컬렉션이 한족과 완전히 관계 없는 문화유산이라는 주장 역시 논란이 있다. 해당 지역의 경제적 번영은 중국과의 중계 무역을 통해 이루어진 부분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일대의 문화는 문명의 교류가 활발했던 시대의 영향으로 중국 문화 뿐만 아니라 불교로 대표되는 인도의 문화, 조로아스터교마니교로 대표되는 이란의 문화가 섞인 다채로운 문명의 조합된 결과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문화의 유산인 오타니 컬렉션이 가치가 높은 것이다. 즉, 오타니 컬렉션과 중화 문명이 무관하다거나 아니면 중화 문명의 일부다 같은 주장은 오히려 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주장이 된다.

5. 관람 정보

관람 시간 장애인/유아동반
보조시설 안내
월/화/목/금/일 10:00 ~ 18:00
수/토 10:00 ~ 21:00
입장 마감은 폐관 30분 전

기본 관람료가 무료인 대신, 주로 기획 전시실에서 하는 특별전(혹은 기획전)은 관람료가 비싸다. 문제는 값은 비싼데 그만큼 제값을 하는 전시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게 흠이다. 특히 해외박물관 협력해서 하는 전시회 쪽은 팸플릿에 있는 게 전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부실한 사례들이 있다. 성인은 10,000원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가기 전에 할인 되는 수단을 찾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다만, 201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는 특별전도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조금은 높아졌다. 특히 지도예찬, 대고려전, 오백나한전, 실경산수화전 같은 전시들은 평이 매우 좋았다. 어르신들을 동행하고 간다면 65세 이상은 무료이다.

호수를 끼고 계단을 올라가서 광장에 도착하면 광장 계단 위로 남산타워가 우뚝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이곳에 처음 방문하였거나 역사에 관하여 잘 모른다면, 1층을 둘러보면서 기본적인 흐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 1층에서 금동대향로[35] 3층의 조각공예관에 있는 유물이 유물사적으로 더 가치있는 것들이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은 매해 한국의 고찰들에서 보관하고 있는 유명 괘불을 빌려와 2층(불교회화실)과 3층, 두 층에 걸쳐 4~6달 동안 전시하고 있다. 괘불은 그 절에 가도 실물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유명 괘불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여느 박물관처럼 가이드가 있으며, 가이드의 해설을 듣고 싶다면 일정을 확인한 뒤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된다. 그리고 굳이 가이드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3천 원에 PDP(음성 + 영상), 1천 원에 MP3(음성만 지원)를 대여하면 된다. 게다가 무료 전시 안내 앱까지 있다. 구글 플레이나 앱 스토어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맨 위에 똑같은 이름의 앱 2개가 있는데 하나는 KTO에서 만들었고 하나는 애니모비에서 만들었다. 한때 상설전시관에 한하여 안내가 되었지만 현재 특별전시관도 안내를 하고 있다.

방해 안 받고 조용히 관람하기 상당히 어려운 곳 중에 하나이다. 방학 시즌에는 학생들, 행락철에는 노인 관람객이 많아지고 해외 관광객과 가족 단위 방문객까지 해서 1년 내내 시끄러운 곳이다. 이를 피할려면 행락철과 소풍 기간을 피한 평일, 특히 오후 9시까지 개관하는 수요일 오후~저녁 정도가 가장 좋다.

국내 순회나 해외 전시로 인해서 간판급 유물들이 사라지고 안내판만 덜렁 있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면 유물이 전시돼 있는 전시관이 진열된 복도로 들어가게 되는데 가기 전 왼쪽을 보면 기부함이 있다. 이 돈들은 전액 유물보존 및 해외유출문화재 환수에 사용된다고 한다.

2012년 12월 27일 이촌역에서 박물관으로 연결되는 지하보도 "박물관 나들길"이 완공되어 보다 쾌적한 관람을 할 수 있다.

예전에 조선총독부 청사 시절 지적받았던 '휴식 공간이 모자라다'는 평을 의식해서 인지 현재 박물관은 곳곳에 의자가 많다. 박물관 면적이 넓기 때문에 대충 둘러본다고 해도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배터리 충전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휠체어 및 대형 물품 보관소에 가서 말을 하면 1시간 안에 충전이 되는 고속 충전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전시실 내 사진 촬영은 자유롭지만 유물 훼손 및 다른 이의 관람 방해를 막기 위해 플래시와 삼각대는 금지된다. 사실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미술관 등 서구권 전시관들은 대부분 플래시를 꺼 둔다는 전제 하에 사진 촬영을 허용한다. 허나 방문객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일본인들은 이 사실에 놀라거나 감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박물관 내 사진 촬영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5.1. 전시관

상설전시관 정보[36]

5.2. 부대시설

안내
도서관 및 교육관, 극장 '용' 등의 시청각 시설, 기념품점 등을 갖추고 있다.

5.2.1. 기념품점

상품점 1, 2, 어린이 상품점, 뮷즈 브랜드 전시장 등 여러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념품점에서 파는 기념품(굿즈) 디자인이 상당히 호평을 받는다. 자칫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옛 문화재를 현대식으로 센스 있게 구현했다. 품절대란 ‘국립 굿즈’가 뜬다. 특히 고양이를 메인으로 내세운 오묘한 녀석들 시리즈와 훈민정음을 테마로 한 한글과 생활은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아예 따로 온라인 샵까지 운영하고 있다.

2024년 들어서도 여전히 독특한 신규 기념품을 계속해서 추가해 힙스터들에 인기몰이 중이다. # 2023년에 역대 최대 수익을 거두는 등 급속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

5.2.2. 도서관

소개 및 주의사항

고고학, 역사학, 미술사학 등 박물관 관련 분야 단행본 11만여 권, 학술지 3만여 권 등을 소장한 대한민국 최고의 박물관 전문도서관이라 한다. 최근 높은 서가가 있는 도서관 리모델링을 하였다. 중앙 계단을 올라가면 왼편으로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듯하다. 조용하고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5.3. 야외시설

건물 주변으로 탁 트인 느낌을 주는 거대한 호수와 정원, 숲속도서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꽃이 만발할 때에는 가족 단위로 놀러 나온 사람들이 많고 소풍 장소로도 인기가 있다. 그리고 2014년 10월에 개장한 국립한글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이 바로 근처에 있어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5.3.1. 야외전시장

염거화상 탑(국보 104호)을 비롯하여, 고려 태조 왕건이 가장 공을 들여 세운 흥법사 진공대사탑과 석관(보물 365호), 개성에서 옮겨온 것으로 고려 석탑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남계원지 칠층석탑(국보 100호)과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종으로 알려진 보신각 종(보물 2호) 등 다수 전시품들의 전시 중에 있다.전체 야외 전시 문화재

5.4. 수장고 및 연구시설

현황에 따르면 22개 수장고 총 1만2천 여m²에 달한다. 물론 회화·전적, 목제품, 피모직물, 도자기·토기, 금속 수장고로 분류해 소장품 소재별 맞춤 관리가 되고 있다. 소재별 수장고 모습

1층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철저히 출입이 통제된다. 수장고는 복층 개조가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고 전문가용 열람실, 데이터베이스 등이 갖춰져 있다. 첨단 장비도 보도에 같이 나오므로 함께 딸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첨단 장비는 컴퓨터 단층 촬영기, 전계방사형 주사 전자 현미경, X선 회절 분석기, X선 형광 분석기, 라만 분광 분석기, 푸리에 변환 적외선 분광 분석기를 보유하고 있다.기자재 현황

5.5. 식당 및 카페

식당 목록
카페 목록

박물관 식당은 내부의 푸드코트, 경천사지 10층석탑 옆에 있는 경천사탑 식당 by 두레, 야외 겨울못 앞에 있는 겨울못 식당, 박물관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야미당 이렇게 네 개가 있다.

카페의 경우 박물관 내부에는 2층에 으뜸홀 카페, 3층에 사유 공간 찻집, 1층 푸드코트 옆 투썸플레이스, 극장 용 로비에 있는 용 카페가 있으며 외부 CU 옆에 투썸플레이스가 같이 위치하고 있다.

6. 교통

서울 지하철 4호선,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환승역인 이촌역[49]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이촌역에서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주요문화재를 LED로 꾸며놓고 무빙워크를 설치한 박물관 나들길이라는 지하보도 통로가 있다. 지하 보도가 4호선 하행 방면 거의 끝쪽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4호선을 타고 갈 때는 진접/당고개 방면 뒷쪽, 사당/오이도 방면 앞쪽에 타는 게 좋다.

국립중앙박물관 앞을 지나는 시내버스는 400번, 502번뿐이다. 모두 용산역을 경유하므로 용산역에서 오는 것도 편하다. 머잖아 신분당선 용산 연장 구간이 완공되면 박물관 바로 앞에도 역이 생길 예정이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주차료는 기본 2시간에 2,000원 정도로, 크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평일에는 주차 공간이 여유있는 편이다.

7. 산하 지방박물관

문화체육관광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35조(지방박물관) ① 각 지방에서 제29조에 따른 사무를 관장하게 하기 위하여 중앙박물관장소속하에 지방박물관을 둔다.
② 지방박물관은 경주박물관·광주박물관·전주박물관·부여박물관·공주박물관·진주박물관·청주박물관·대구박물관·김해박물관·제주박물관·춘천박물관·나주박물관 및 미륵사지유물전시관으로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산하에 각 지방의 국립박물관을 두고 있다. 지방에 소재한 국립박물관들은 그 지역의 문화재(매장문화재 포함)들을 보관하는 광역 수장고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각 지역의 박물관은 소재지의 역사, 문화에 특성화된 테마를 갖추고 있다. 영남권 4곳, 호남권 4곳, 충청권 3곳[50], 강원, 제주에 각각 1곳의 국립박물관이 있다.

2017년도부터는 각 지역 박물관별 특색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특화하는 브랜드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각 박물관별 대주제를 수립하고, 중장기 계획을 통해 기관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목록
박물관 개관일 테마 주제
파일:국립경주박물관 시그니처.svg 1913년 신라 문화
파일:국립부여박물관 시그니처.svg 1945년 백제 문화 (사비시대)
파일:국립공주박물관 로고(정부상징).svg 1946년 백제 문화 (웅진시대)
파일:국립광주박물관 로고.svg 1978년 아시아 도자 실크로드 거점(전남 문화, 신안군 해저유물 등)
파일:국립진주박물관 로고.svg 1984년 임진왜란과 한일교류 (경남 서부권 문화, 임진왜란 등)
국립청주박물관 1987년 충북 문화, 금속공예미술 (중원 문화 중심)
파일:국립전주박물관로고.png 1990년 전북 문화, 조선 선비 문화
파일:국립대구박물관 시그니처.svg 1994년 복식 문화, 경북 문화
국립김해박물관 1998년 가야 문화
파일:국립제주박물관로고.png 2001년 대양과 섬 문화 (제주 문화, 탐라국 문화 등)
파일:국립춘천박물관 로고.svg 2002년 한국의 이상향 금강산관동팔경 (강원 문화, 동예 문화)
국립나주박물관 2013년 영산강 유역 독널문화 (마한 문화)
파일:국립익산박물관 MI.svg 2019년 미륵사지와 고대불교사원
국립충주박물관 2026년 예정

8. 국립중앙박물관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국립중앙박물관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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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논란

9.1. 현재진행형인 소장품 목록 작성

소장품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현재도 소장 목록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 특히, 없어졌다던 유물이 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발견된 대동여지도 목판 원본[51]과 2010년 발견된 구 황실 관련 표피#[52] 등이 있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와 관계가 있다. 해방 이후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소장품을 이관 받아 제대로 정리를 마치기도 전에 한국전쟁이 발생해, 수장함이 뒤섞이고 소장품 상당수가 사라지며 기존의 소장 목록은 큰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한국전쟁 뒤로도 독립된 박물관 청사를 지니지 못하고 소재지가 계속 옮겨다니다 보니 주요 소장품을 뺀 절대 다수의 소장품은 수십 년 동안 수장함에 처박힌 채로 방치되었다. 수장함을 모두 개봉해 제대로 된 목록을 작성하게 된 것은 2003년 뒤의 일로, 용산의 신축 박물관 청사로 이사를 준비하면서부터이다. 하지만 소장품이 워낙 방대하고, 수장함 내 소장품을 조사하는 과정이 꽤나 길기 때문에 현재도 소장 목록[53]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보와 보물 같은 주요 소장품 위주로 전시하며 순회 전시에 약점을 보이는 원인이다. 현재도 전 소장품에 대한 학예 조사, 유물로서의 가치 평가 등은 고사하고 목록을 업데이트하는 데도 허덕이기 때문에 순회 전시를 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의 경우 세계적으로도 모범적인 순회 전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서너 배에 이르는 소장품에 대한 정확한 목록 작성은 물론이고 각 소장품에 대한 학예 및 학술적 조사가 이뤄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9.2. 관람비 관련 논란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유홍준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 관람비를 더 받아야 한다"라면서 "왜 문화재 보는 값어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냐"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가 들려준 일화로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온 적이 있는데 당시 2,000원이란 관람비를 2,000엔[54]으로 듣고 한국 돈으로 10배가 넘는 돈을 내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은 당연히 자국 중심문화재를 보여주고 보관하니까 이 정도는 당연했다며, 비싸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이래야 한다면서 "일본이 문화재를 아끼는 게 괜히 그런 것이냐"라고 일갈했었다. 2018년 기준으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입장료가 15유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입장료가 25달러[55]인 것을 감안한다면 유홍준 교수가 소개한 그 일본인들의 에피소드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유 교수가 제기한 관람비 문제는 사실 굉장히 실질적인 문제로, 이게 충당이 안 되면 운영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건 박물관 운영 비용 마련 가능/불가능의 문제지, 관점의 차이 운운하며 옹호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화 복지의 차원에서 국립박물관은 무료로 운영하는 국가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런 나라들은 국가가 박물관 운영에 거액의 세금을 투입하거나 부유층의 자발적인 기부가 막대한 경우이다. 대영박물관이 그런 사례이다. 박물관 운영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며 이것을 국가가 세금으로 충당하든, 관람비를 비싸게 받든, 혹은 부유층의 기부를 호소하던 그건 나라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문제는 지금의 대한민국 박물관은 위의 세 가지 방법 모두 형편없다는 것이다. 국가는 문화재 보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박물관 운영예산도 쥐꼬리 만큼 편성한다. 근데 관람비는 터무니 없이 싸다. 그렇다고 기부 문화가 활성화된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재 모든 박물관들이 심각한 만성 적자 상태에 있고, 이 때문에 수많은 유물들이 연구되지도 못한 채 창고에서 썩어가는 지경이다. 유 교수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박물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도 바라보아야 하는 게 근대의 박물관은 본래 지배 계층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으며 태생적으로 갖게 되었던 권위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입장료는 개방 요일 및 시간과 더불어 박물관이 권위성을 띠게 하고, 계급 간의 차별의 선을 암시적으로 긋는 제1의 도구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예전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평일에만 개방하다가 주말에 개방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을 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주말 개방하면, 주변 못사는 동네의 아일랜드 잡역부들이 대거 진입해서 박물관을 망쳐놓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을 정도였다. 관람료도 마찬가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그 돈을 박물관에 써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사람들만 박물관에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설명은 부과 제도를 이원화하여 '자국민 대상으로는 무료 개방을 하더라도 최소 외국인에게는 입장료를 받자'라는 방안에 대해 전혀 타당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존재한다.

9.3. 가야본성 전시 임나일본부 논란

'임나일본부'와 '임나' 자체[56]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권과 유사역사학자들이 얽히면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9.4. 동북공정 기반 지도 전시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있는 중국 유물 전시관에서 중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 지도가 전시되었다. 문제는 삼국지 위나라3세기 백제마한이 있던 지금의 수도권충청남도 일대까지 다스린 것으로 나오며, 한나라 영토가 한강 이북 지역까지 겹쳐 있는데 모두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 학자들의 논리와 다르지 않은 지도를 제작했으며 외부 전문가 자문도 받지 않았다. # 해당 지도가 전시된 여섯 달 동안 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박물관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같은 해 10월 7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으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 동북공정 시각이 담긴 전시를 50만 명이 관람하도록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자 이를 인정하며 사과했다. #

이후 보도에 따르면 이 논란은 박물관 측에서 위키백과 자료를 그대로 사용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한다.#

9.5. 국가 행사 동원 논란

장소가 장소라서 이곳에서 국제행사가 꽤 열린다. 가끔 박물관 앞 주변을 무장한 채 돌아다니는 경찰을 볼 수 있다. 2010 G20 서울 정상회의 때 환영 만찬이 개최된 적이 있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한 국가 정상들과 만찬을 가졌는데 하필이면 그 장소가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그것도 강당이나 교육관이 아닌 유물을 전시하는 제1전시실. 박물관에는 음식은커녕 음료수 한 잔도 들고 가지 못한다. 이렇게 상식에 어긋난 행동에 대해 전우용"미친 짓"이라며 비판했는데, 박물관 측은 "뉴욕이나 프랑스도 국립박물관 안에서 만찬을 즐길 수 있다"라든가 "유물들은 모두 벽부장으로 격리되었고 온습도 조절 장치가 있어 피해는 없다"라고 해명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콜베르 재단과 연계하여 2015년 5월부터 8월까지 전시회를 열고 싶어했다. 별 문제가 안 될 듯한데 문제가 되었다. 콜베르 재단은 카르티에, 루이비통을 비롯한 프랑스 명품 업체들의 연합체로, 쉽게 말하면 명품 전시회를 이곳 국립박물관에다 열려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상업성이 강한 전시는 할 수 없다"라며 완강히 반대하면서 전시회는 무산되었다.(관련 기사) 노태강 당시 국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700만 원~800만 원짜리 원피스 등 프랑스 명품을 전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시관 앞에서 판촉 행사까지 하겠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지나친 상업성에 박물관 직원들이 나자빠졌다. ‘병인양요’에 빗대 ‘병신양요’라고들 했다”라며 “김영나 관장은 끝까지 반대하다가 잘렸다”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2022년 5월 21일 한미정상회담 만찬이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당일 임시 휴관 및 사전예약 취소를 사흘 전인 5월 18일에 알려주어 정부가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 등 각종 비판이 쏟아졌다. 박물관에서 취식이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으나 이미 G20 정상회의 때 선례가 있어서 아주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1 #2 #3

2023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정부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가 주요 행사를 열 경우 당일 예정된 전시가 있더라도 임시휴관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9.6. 수장고 포화 및 관리 문제

2022년 수장고 점유율이 96% 정도로, 수년 전 80%대에서 빠르게 상승 중이나 언론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라는 등 포화 문제에 제대로 대책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산하 박물관도 심한게 2016년 100%를 넘는 곳이 5곳이나 됐는데# 그나마 그곳들은 나무위키 각 박물관 문서에 나오듯 공용 수장고나 확장 이전 추진 등이 보이므로 나은 축에 속한다.

2024년 10월 보도에 따르면 9개 문을 통할 정도로 보안이 엄격한데 정작 수장고 2곳이 물이 새 여러 유물이 훼손됐다. 내부 보고서에는 누수 사실과 보수업체 출입 기록이 누락됐다. 결국 박물관장이 10월 29일자로 사과문을 올렸고, 수장고, 유물 모두 복구 완료했다 밝혔다.@

10. 여담

11. 관련 문서



[1] 2016년부터 공식 로고로 사용해왔으나 2020년 10월부터 기존 로고와 병용하고 있다.[2] 본래 2005년 현재의 위치에서 개관했을 당시에 제작하여 2016년에 정부상징으로 통합하기 전까지 사용했으나 2020년 10월부터 재사용하고 있다.[3] 용산동6가 168-6[4] 2020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배기동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밝힌 내용이다.#[5] 2017년 아시아 1위는 대만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이다.[6] 몽유도원도 같은 경우도 대한민국이라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했을 법한데, 일본에서는 원래부터 소유하고 있던 텐리대학 도서관에서 자체적으로 보관하고 있다.[7] 이 외 2023년 박물관 관람객 수 TOP 10 순위는 1위 루브르 박물관 886만 명, 2위 바티칸 박물관 676만 명, 3위 영국박물관 582만 명, 4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536만 명, 5위 테이트 모던 474만 명, 7위 오르세 미술관 387만 명, 8위 워싱턴 국립미술관 382만 명, 9위 프라도 미술관 333만 명, 10위 에르미타주 미술관 327만 명 순이다.[8] 다만 박물관 홈페이지의 연혁 페이지에서 앞의 로고를 먼저 소개했기 때문에 그 순서를 따른다. 단, 확실한 것은 전자의 로고가 1986년에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9] 2004년 12월 24일에 낸 <국립중앙박물관(1996~2004) 전시보고서> 표지에 선행 사용된 바 있다.[10] 해방된 뒤의 덕수궁미술관,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국립고궁박물관이다.[11] 이 박물관 건물은 경복궁 동궁에 있었는데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철거했다.[12] 1935년 설립 때부터 해방까지 평양부립박물관장.[13] 구한말, 일제시기 일본인들은 역사적으로 연관성이 많은 옆나라 유물 수집에 특히 열성적이었는데 그중 일본내에서도 이름 높았던 고려청자는 그 가치가 높았다. 그중에는 공식적으로 구매한 것 부터 장물까지 다양했는데 아예 가루베 지온 같은 도굴범이 무단 반출한 것도 있다.[14] 국외반출문화재가 가장 많은 곳이 일본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영향도 있지만 삼국시대고려 때 있었던 왜구의 침략, 그리고 임진왜란도 큰 영향을 미쳤다.[15] 개성부립박물관은 1946년에 국립중앙박물관 개성분관으로 승격되었다.[16] 이때 훼손된 7~8세기 소녀 미라는 지하수장고에서 보관 중이라고 한다. 한겨레 기사(삭제됨)[17]문화재청.[18]조선총독부 청사[19] 1979년 건립[20]국립고궁박물관[21] 지금의 국립고궁박물관[22] 그리고 그 많은 수를 뺀 나머지 상당수는 국립경주박물관(13점), 국립공주박물관(13), 간송미술관(12), 리움미술관(36), 호림박물관(8) 등에 있다. 고서의 경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도 7점이 존재한다.[23] 경기도 개풍군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반출되었다가 경복궁으로 환수한 탑이다. 환수된 뒤 심각한 손상을 입었음이 확인되어 장기적으로 탑 복원 공사를 했고, 산성비 등으로 인한 훼손을 우려하여 내부로 옮겼다.[충주] 현재 수장고에 보관 중이며, 2026년 개관 예정인 국립충주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25] #[26] 성문영어의 저자[충주] [28] 국가민속문화재[29] 베제클릭 석굴사원의 벽화를 독일인 알베르트 폰 르콕이 독일로 반출했다. 전시할 때 다수를 박물관 벽에 박아서 이전이 불가능했고,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박물관이 전소하면서 영원히 사라졌다.[30] 국제 협약상으로도 책임이 없고, 반환을 요구하는 주체가 없다는 근거를 들고 있다. 소유권을 주장할 만한 민족을 크게 나눠도 티베트계, 튀르크계, 몽골계로 나뉘며, 위구르의 것이라고 해도 막고굴이 위치한 간쑤성은 유고족이 더 많다. 즉, 명확한 주체가 없는 상황이다.[31] 이슬람교는 우상숭배 금지 교리에 따라 우상 파괴를 해왔다.[32] 1980년대 NHK에서 만든 <실크로드>라는 다큐멘터리는 중앙아시아 유적들을 대거 보여주었는데, 불상들 상당수가 목이 잘려 있었으며, 이는 현지에서 이슬람교가 주류가 되면서 기존 불교 유적들을 파괴했다는 멘트가 나온다. 한족들이라고 이 유물들의 가치를 알아봤던 건 아니다. 막고굴의 문서 등 대부분의 타림 분지 실크로드 유산들은 중국인들의 무지와 묵인 끝에 대부분이 약탈, 유출당했다.[33] 다만 역사를 속지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건 신중해야 한다. 중국도 속지주의를 동북공정의 논리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옛 고구려인이 만주에 남아 계속 통혼하면서 현재의 동북 3성 한족이 되었다는 논리로 동북공정을 주장하고 있다.[34] 고창국에서 화폐를 주조할 때 한문을 쓸 줄 몰라서 한문 모양만 어설프게 베낀 문양이 발굴되어 중국 문화권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고, 반대로 복희여와도 같은 전형적인 중국 유물도 나온다. 복희여와중국 신화의 신이다.[35] 모조품. 진품은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 이 모조품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 안내와 함께 만져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이지만 눈이 잘 보이는 일반인도 만져보며 감상하면 보다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다. 이런 시각장애인용 모조품은 신석기시대 돌칼이나 철기시대 철검, 신라시대 오리 물병 등 여러 군데에 있다.[36] 단, 층수 표시는 건물 전체 안내에 근거함[3층] [3층] [4층] [4층] [4층] [6층] [6층] [3층] [3층] [3층] [4층] [3층] [49] 4호선 한정으로 부역명이 여기다. 즉 4호선은 이촌(국립중앙박물관). 경의중앙선은 그냥 이촌이다.[50] 1곳 추가 예정이다.[51] 발견 전까지 박물관 측과 학계에선 1950년 6.25 전쟁 시기 유실됐다고 추정했고 수장고에 처박혀있었던 진짜 목판은 복각품으로 생각해서 면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52] 명성황후의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는 명성황후와는 관련이 없는 유물로 추정했다. #[53] 박물관의 소장 목록은 단순한 리스트가 아니라, 소장품의 메타 정보는 물론 박물관 내 정확한 위치까지 포함된 정보이다. 박물관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정확한 위치와 이동 내역에 관한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54] 2018년 기준 약 20,000원이었다.[55] 현재는 관람객들이 1달러 이상으로 자유롭게 지불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56] 당대에 실제로 쓰인 가야나 그 일대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57] 국립박물관은 이 외에도 많지만, 일부러 국박이라고 줄여서 부른다면 99%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리킨다고 봐도 무방하다.[58] 일부러 영상에서 입었던 옷을 뮤직비디오에서 그대로 입고 나왔다. 자세한 내용은 BENTLEY 2 문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