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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晉州河氏 墓 出土遺物.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 1552~1617)의 종질부인 진주하씨(晉州河氏)의 묘에서 출토된 한글 간찰 168점과 의복 81점.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유산 제229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곽재우 장군의 후손들인 현풍곽씨(玄風郭氏) 종가에서 1989년 당시 경상북도 달성군에 있는 12대 조모인 진주하씨(晉州河氏)의 묘를 이장하던 중 발견한 조선 중기의 유물들이다.
각종 의복과 침구류, 빗첩 등이 81점이 나왔고, 간찰은 총 172통이 나왔는데 그 중 한글로 저술된 편지가 168점이고 한문으로 쓴 것은 5점이다. 편지 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1602년에 곽주가 장모에게 보낸 편지이며, 주요 저자들은 곽주, 곽이창, 곽의창, 곽유창, 곽형창 등이다. 기타 종자분급기(種子分給記), 노비명부, 양조법(釀造法), 제물명(祭物名) 등 각종 고문서들도 발견되었다.
1600년대 초중기 경상도 지역의 언어, 복식, 생활문화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 중 하나로 여겨진다.
3. 외부 링크
4. 국가민속문화유산 제229호
1989년 현풍곽씨(郭氏)의 후손들이 경상북도 달성군에 있는 12대 조모인 진주하씨(河氏)의 묘를 이장하다가 발견한 유물들이다. 묘 주인 하씨는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곽재우의 종질(사촌형제의 아들) 곽주의 둘째 부인으로 족보에는 그녀의 생사(生死)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출토된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1646년경인 조선 인조때의 여인임을 알 수 있다.
출토된 유물에는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머리에 써서 몸을 가리던 장옷을 비롯하여 지금의 두루마기와 비슷한 창의, 저고리 등 의복류와 이불, 베개, 돗자리 등 침구류, 머리빗는 도구를 담아두던 빗첩 등 81점이 있고 또한 그의 남편인 곽주와 그의 시어머니 등이 쓴 편지와 금전출납을 기록한 것 등 서간문 168점이 있다.
진주하씨 묘 출토유물은 17세기초의 복식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부녀자의 주변 생활을 한글로 쓴 서간문을 통해 당시 경기도 현풍지방의 풍속이나 민속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토된 유물에는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머리에 써서 몸을 가리던 장옷을 비롯하여 지금의 두루마기와 비슷한 창의, 저고리 등 의복류와 이불, 베개, 돗자리 등 침구류, 머리빗는 도구를 담아두던 빗첩 등 81점이 있고 또한 그의 남편인 곽주와 그의 시어머니 등이 쓴 편지와 금전출납을 기록한 것 등 서간문 168점이 있다.
진주하씨 묘 출토유물은 17세기초의 복식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부녀자의 주변 생활을 한글로 쓴 서간문을 통해 당시 경기도 현풍지방의 풍속이나 민속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