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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28호 | |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慶州 栢栗寺 金銅藥師如來立像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불상 |
수량/면적 | 1구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통일신라시대 8세기 |
<colbgcolor=#315288>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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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慶州 栢栗寺 金銅藥師如來立像.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에 위치한 신라의 명찰 백률사에 봉안되었던 금동 불상.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국보 제28호로 지정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2. 내용
높이 177 cm.
신라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백률사를 창건했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장은 서기 800년을 전후하여 제작된 듯하다. 원래는 1200여 년 세월 동안 백률사에 있었지만, 1930년에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정식 이관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에서 계속 소장 중이다.
불상의 얼굴은 긴 눈썹, 가는 눈, 오뚝한 코, 작은 입 그리고 늘어진 뺨의 살, 턱에 묘사된 군살 등 비교적 우아한 용모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얼굴은 8세기 중엽경 통일신라의 이상적 불안(佛顔)에서 진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불상 전체에 황금으로 화려하게 도금이 되어 있었으나 후대의 누군가가 벗겨갔고 두 손 또한 절단하였다. 고려 후기 삼국유사의 기록에 백률사 대비상(大悲像)가 나오는데 당시에는 불상의 도금과 양손이 멀쩡했다고 하므로 조선시대에 누군가가 불상을 부수고 금박을 벗긴 듯하다.
질병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약을 주거나 병들어 죽은 후 이러한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약사여래를 형상화한 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당시 한국의 공예술과 불상 조성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 두산백과 :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 한국어 위키백과 :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 조각 :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 문화유산 알아보기 :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4. 국보 제28호
경주시 북쪽 소금강산의 백률사에 있던 것을 1930년에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것이며, 전체 높이 1.77m의 서 있는 불상으로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쳐준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며, 둥근 얼굴·긴 눈썹·가는 눈·오똑한 코·작은 입 등에서는 우아한 인상을 풍기고 있지만, 8세기 중엽의 이상적인 부처의 얼굴에 비해 긴장과 탄력이 줄어든 모습이다. 커다란 체구에 비해 어깨는 약간 빈약하게 처리된 느낌이지만 어깨의 굴곡은 신체에 밀착된 옷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두 팔에 걸쳐 흘러내리고 있으며 앞가슴에는 치마의 매듭이 보인다. 앞면에는 U자형의 주름을 연속적인 선으로 그리고 있는데 조금은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신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중후해지며 옷자락들도 무거워 보이는데, 이것은 상체를 뒤로 젖힘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단전과 더불어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손목의 위치와 방향으로 보아 오른손은 위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에는 약그릇이나 구슬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소 평면적인 느낌을 주지만 신체의 적절한 비례와 조형기법이 우수하여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크지 않은 편이며, 둥근 얼굴·긴 눈썹·가는 눈·오똑한 코·작은 입 등에서는 우아한 인상을 풍기고 있지만, 8세기 중엽의 이상적인 부처의 얼굴에 비해 긴장과 탄력이 줄어든 모습이다. 커다란 체구에 비해 어깨는 약간 빈약하게 처리된 느낌이지만 어깨의 굴곡은 신체에 밀착된 옷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두 팔에 걸쳐 흘러내리고 있으며 앞가슴에는 치마의 매듭이 보인다. 앞면에는 U자형의 주름을 연속적인 선으로 그리고 있는데 조금은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신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중후해지며 옷자락들도 무거워 보이는데, 이것은 상체를 뒤로 젖힘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단전과 더불어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두 손은 없어졌으나 손목의 위치와 방향으로 보아 오른손은 위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에는 약그릇이나 구슬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소 평면적인 느낌을 주지만 신체의 적절한 비례와 조형기법이 우수하여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과 함께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