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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72호 | |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 金銅癸未銘三尊佛立像 | |
소재지 | <colbgcolor=#fff,#1f2023> 서울특별시 성북구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불상 |
수량/면적 | 1구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삼국시대 |
1. 개요
金銅癸未銘三尊佛立像.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은 한반도의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구리로 주조하여 금으로 도금한 금속제 삼존불상이다. 광배의 뒤에는 '계미(癸未)'라는 육십갑자의 간지를 포함한 글씨가 새겨져 있다.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은 간송 전형필의 수집품 중 하나인데, 불상의 출토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고 전형필이 구입하기 이전까지의 입수 경위도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제작 연대 및 제작 국가에 대해서도 여러 이견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고구려 또는 백제의 불상으로 본다. 또한 본 불상의 출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보존상태는 아주 양호하다.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은 1962년에 국보 제7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은 높이 17.5cm의 금동 삼존불상으로, 연꽃형 대좌 위에 올라선 세 부처가 커다란 광배를 배경으로 하여 배치되어 있다.[1] 부처들의 배치 형식은 가운데 본존불을 중심으로 그 좌우로 작은 협시보살[2]이 배치되어 있는 형식인데, 이는 아주 전형적인 삼존불의 형식이다. 하지만 본존불이나 협시보살 모두 어떤 부처일지는 명확하지 않다.가운데의 본존불은 옅은 미소를 띠고 대좌 위에 서서, 오른손은 여원인[3]의 수인을, 왼손은 손가락이 아래를 향하게 하여 전면을 향해 펼쳐서 시무외인[4]을 취하고 있다. 본존불의 머리는 마치 상투를 튼 것처럼 둥그렇게 처리했다.[5] 본존불 뒤에는 광배가 있는데 머리 뒤의 두광(頭光)과 몸체 뒤의 신광(身光)이 각각 묘사되어 있는다. 두광은 세겹 가량의 원과 구름 문양으로 이루어졌고, 두광과 신광 모두 선 사이에 작은 점들을 촘촘하게 찍어서 장식성을 가미했다. 본존불이 입은 옷은 섬세하게 묘사해놨는데 가슴팍에서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는 옷주름과 좌우 손목에 걸친 옷자락이 뚜렷하다. 옷은 좌우로 길게 늘어져서 본존불의 발치에까지 미치는데, 발등 위의 높이에서 옷자락이 좌우로 날렵하게 뻗쳐있다.
본존불 좌우의 협시보살은 둘 다 형태가 동일한데, 광배 끝에 붙은 자그만 연꽃 대좌 위에 올라서서 오른손은 가슴에 올리고 왼손은 배에 대고 있다.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협시보살들의 표정을 명확하게 분간하기는 어렵지만, 본존불처럼 역시나 옅은 미소를 띠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본존불과는 다르게 협시보살들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협시보살들의 옷도 섬세하게 조형해놨는데, 전체적으로 사이즈는 작아졌고 간략화됐지만 그 형태와 묘사는 본존불의 옷과 비슷하다.
광배에는, 본존불 뒷 부분의 두광과 신광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불꽃이 타올라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화염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윗부분은 뾰족하게 처리했다. 본존불의 발이 닿고 있는 대좌의 꼭지는 평평하지만, 그 아래 대좌 몸체는 원통형이며 대좌 몸체 상부에는 세 겹의 연꽃잎 형상을 새겨 만들고 꽃잎마다 광배에 한 것처럼 작은 점을 찍어놔서 장식성을 높였다.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의 광대 뒷면에는 명문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석하자면 '계미년 11월 1일에 보화가 돌아가신 아버지 조?인을 위하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계미라는 기년명이 나타나며 불상의 제작 양식을 토대로 미루어 보아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의 제작 연대는 563년일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본 불상에서 6세기 초~중엽경 중국 남북조시대의 불상 조각 양식이 드러나고, 본 불상이 국보 제119호 금동연가칠년명여래입상(539년 제작)부터 국보 제85호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571년 제작)으로 계승되며 이어지는 고구려 불상 양식의 흐름 속에 있다고 평가되기 때문에,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을 고구려의 불상으로 보는 편이다.[9] 하지만 백제의 불상도 고구려의 것과 아주 크게 다르지는 않고 유사한 점도 발견되기도 하기 때문에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이 확실하게 고구려의 불상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은 비록 출토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그 형태도 뛰어나 미적인 가치도 높으며, 기년명이 나타나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는 점 등의 여러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 제72호로 지정되었다.
3. 기타
900원 보통우표 |
- 2022년 1월 27일,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과 금동삼존불감이 경매에 나왔는데, 이는 사상 처음으로 국보가 경매에 올라온 경우다. 경매 시작가의 경우, 본 불상은 32억에 금동삼존불감은 28억으로 시작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결국 유찰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연간 39억7000만 원으로 책정된 유물구입비의 한계로 인해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고, 개인 수집가들은 과도한 관심에 부담감을 가져서 입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11]
4. 외부 링크
5. 국보 제72호
커다란 하나의 광배(光背)를 배경으로 중앙에 본존불과 양 옆에 협시보살을 배치하고 있는 삼존불(三尊佛)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불상 전체 크기에 비해 크고 높게 표현되었다. 미소를 띤 갸름한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으며, 어깨와 가슴은 약간 좁은 듯 하지만 둥글고 강인하게 처리되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정면으로 V자형 옷주름이 있으며, 좌우로는 새의 깃같은 옷자락이 뻗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손끝이 위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손끝은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손가락 2개를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양 옆에 배치한 협시보살은 광배의 끝에 매달리듯 표현하였으며, 세가닥으로 올라간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신체 표현은 본존불과 비슷하지만, 앞면에서 X자로 교차하고 있는 옷주름과 손모양이 다르다.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가는 선으로 장식한 광배(光背)는 끝이 뾰족한 배(舟) 모양으로, 본존 주위에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도드라지게 새기고 그 안에 연꽃무늬, 덩쿨무늬, 인동초무늬를 새겼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바닥이 밖으로 퍼진 원통형이며 연꽃이 새겨져 있다.
금동신묘명삼존불(국보 제85호)의 양식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중국 남북조시대의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이 불상은 광배 뒷면에 새겨진 글에 의해 백제 위덕왕 10년(563)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본존불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불상 전체 크기에 비해 크고 높게 표현되었다. 미소를 띤 갸름한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으며, 어깨와 가슴은 약간 좁은 듯 하지만 둥글고 강인하게 처리되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정면으로 V자형 옷주름이 있으며, 좌우로는 새의 깃같은 옷자락이 뻗치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손끝이 위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고 손끝은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손가락 2개를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양 옆에 배치한 협시보살은 광배의 끝에 매달리듯 표현하였으며, 세가닥으로 올라간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신체 표현은 본존불과 비슷하지만, 앞면에서 X자로 교차하고 있는 옷주름과 손모양이 다르다.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가는 선으로 장식한 광배(光背)는 끝이 뾰족한 배(舟) 모양으로, 본존 주위에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도드라지게 새기고 그 안에 연꽃무늬, 덩쿨무늬, 인동초무늬를 새겼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바닥이 밖으로 퍼진 원통형이며 연꽃이 새겨져 있다.
금동신묘명삼존불(국보 제85호)의 양식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중국 남북조시대의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이 불상은 광배 뒷면에 새겨진 글에 의해 백제 위덕왕 10년(563)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 이를 일광삼존(一光三尊) 형식이라고 칭하는데, 이런 형태의 금속 불상을 만들 때는 하나의 틀을 이용하여 광배와 여기에 붙어있는 부처들을 한 번에 만드는 경우가 많다.[2] 협시보살(또는 협시불)은 본존불을 좌우에서 모시고 있는 불상을 뜻한다.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의 협시보살까지 총 세 분의 부처가 삼존불을 이룬다. 출처: 두산백과 - 협시불[3] 與願印 : 손바닥을 편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이 위를 향하도록 하여 밖으로 향하는 자세[4] 施無畏印 : 손바닥을 펴고 밖으로 향하여 물건을 전하는 듯한 자세[5] 이를 육계(肉髻) 또는 무견정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을 지칭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육계4[6] 宝로 보는 견해도 있다.[7] ?에 들어갈 문자는 명확하지 않다.[8]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9]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10] 2016년 1월 5일에 발행중단 되었다.[11] 하지만 금동삼존불감은 이후 소장자 이름이 변경된 걸로 확인되면서 거래가 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