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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자치구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 성북구 城北區 Seongbuk-gu | }}} | |||
<colbgcolor=#001a47><colcolor=#fff> 구청 소재지 | 보문로 168 (삼선동5가) | |||||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하위 행정구역 | 20동[1] | |||||
면적 | 24.58㎢ | |||||
인구 | 422,696명[2] | |||||
인구 밀도 | 17,196.74명/㎢[3] | |||||
구청장 | | 이승로 (재선) | ||||
구의회 | | 12석[4] | ||||
| 10석[5] | |||||
시의원 | | 2석[6] | ||||
| 2석[7] | |||||
국회의원 | <colbgcolor=#001a47><colcolor=#fff> 갑 | | 김영배 (재선) | |||
을 | | 김남근 (초선) | ||||
상징 | 구화 | 진달래 | ||||
구목 | 감나무 | |||||
구조 | 참새 | |||||
지역번호 | 02 | |||||
| | | | | | |
<colcolor=#fff> 슬로건 |
성북구청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의 자치구. 이름은 한양도성의 북쪽에 있다는 뜻이다. 성동구도 마찬가지. 성북구 내의 성북동도 서울 성곽 바로 북쪽에 있다.고려대학교/서울캠퍼스 (안암동), 성신여자대학교 (돈암동), 국민대학교와 서경대학교 (정릉동), 동덕여자대학교 (월곡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한성대학교 (삼선동) 등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많은 수의 대학이 소재하고 있어 대학도시로 유명한 구다.
2. 상징
서울특별시 성북구의 휘장 | |
1994년(추정)~2009년 2월 28일 | 1994년[8]부터 2009년 2월 28일까지 사용됐던 성북구의 휘장이다. |
2009년 3월 1일~현재 | 2009년 3월 1일부터 현재까지 사용 중인 성북구의 휘장이다. 100개의 원은 문화재, 명소, 자연 등으로 이뤄진 성북 100경을 뜻한다. 부드러운 곡선은 되살아난 성북천을 표현하며, 방향성을 지닌 역동적인 이미지는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추진력을 나타낸다. 특히 100개의 원은 성북 100경과 함께 구민 한 명 한 명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비록 작은 원이지만 모이면 큰 흐름이 돼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가는 큰 물결이 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주 색상은 청색과 녹색인데, 청색은 성북천과 청렴한 구정을, 녹색은 성북의 자연경관과 희망을 상징한다. # |
서울특별시 성북구의 브랜드 | |
현재 사용 중인 성북구의 브랜드 이미지이다. 2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 |
2022~현재 |
2.1. 구가(區歌)
그 먼 날 북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겨레가 깃발 아래 들끓어 치닫던 날
성북은 하늘처럼 북한산 떠받들어
지켜온 천년 사직 부둥켜 안았더니
성북구 구가 中, 양만규 작사 / 김영광 작곡
겨레가 깃발 아래 들끓어 치닫던 날
성북은 하늘처럼 북한산 떠받들어
지켜온 천년 사직 부둥켜 안았더니
성북구 구가 中, 양만규 작사 / 김영광 작곡
직접 듣고 싶다면 여기를 참고. 중랑구의 구가와 멜로디가 상당히 유사한데, 그 이유는 작곡가가 김영광으로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3. 역사
성북구 행정구역 변천사 | ||||||||||
한성부 성저십리 숭신방 (漢城府 崇信坊, 1424) | → | 경성부 숭신면 (京城府 崇信面, 1911) | → | 고양군 숭인면 (高陽郡 崇仁面, 1914) | → | 경성부 동대문구 (東大門區, 1936, 1943)[9] | → | 서울특별자유시 동대문구 (東大門區, 1946) | → | 서울특별시 성북구 (城北區, 1949) |
한성부 성저십리 인창방 (漢城府 仁昌坊, 1394) | → | 경성부 인창면 (京城府 仁昌面, 1911) | 고양군 숭인면 (高陽郡 崇仁面, 1914) |
성북이라는 지명은 한양도성의 성곽 북쪽 지역에서 유래되었으며, 같은 서울의 성동구 역시 한양도성의 성곽 동쪽 지역에서 유래되었다. 이들 지역은 실제로 한양도성의 북쪽과 동쪽 성곽 지역에 속한 지역들이라 지명 역시 성곽의 북쪽을 뜻하는 성북과 동쪽을 뜻하는 성동으로 지어졌다.
1949년 경기도 고양군의 동북방 일부 지역을 서울시로 편입시키면서 이 지역이 한양도성의 성곽 북쪽에 있는 지역이라고 하여서 이 때부터 성북이라는 지명이 사용되었다. 한자 역시 城北으로 표기한다.[10] 즉, 해방 이전에는 크게 쓰이지 않았던 지명인 셈. 실제로 조선 시대에는 한성부 성저십리 숭신방(돈암동, 안암동 등 중서부 지역), 인창방(장위동, 석관동 등 동북부 지역) 지역이었으나, 1914년 일본에 의해 숭인면[11]으로 통합되어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1936년 경성부 확장 정책에 의해 성북동, 돈암동, 안암동, 종암동이 경성부에 재편입되었고, 나머지 지역은 해방 이후인 1949년 서울특별시로 재편입되었다.
8.15 광복 직전인 1944년 경성부에 7개 구가 설치되었을 때 동대문구 관할이었다가, 해방 이후인 1949년 성북구로 분구됨과 동시에 고양군 숭인면의 잔여 지역을 모두 편입하여 우이리, 수유리, 미아리(현 성북구 길음동 및 강북구 미아동), 번리, 정릉리, 하월곡리, 상월곡리, 장위리, 석관리를 관할하는 숭인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62년 12월에 양주군 노해면을 편입[12]하였고, 이듬해(1963년) 2월 1일에 도봉동, 방학동, 창동, 쌍문동,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 월계동, 공릉동[13]을 관할하는 노해출장소를 설치[14]하였다.
이후 1973년 7월에 숭인출장소 중 우이동, 수유동, 미아동, 번동(현 강북구)과 노해출장소(현 도봉구 및 노원구)를 도봉구로 분구하여 넘겨주고, 1975년 10월에 도봉구 및 동대문구와 행정구역이 조정될 때에 도봉구 미아동 일부와 동대문구 보문동이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편입된 미아동 일부가 길음동으로 개칭되었다. 또한 고려대 앞 도로를 기준으로 자잘한 경계 조정이 이루어졌다. 이후 1990년대 후반에 강북구 번동
3.1. 인구
서울특별시 성북구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519,510명 |
1970년 979,584명 |
1973년 7월 1일 현 강북구·도봉구·노원구 일대 → 도봉구 승격 분리 1975년 10월 1일 도봉구 미아동 일부(現 길음동), 동대문구 보문동 편입 |
1975년 604,359명 |
1980년 588,347명 |
1985년 583,281명 |
1990년 551,017명 |
1995년 495,737명 |
2000년 460,862명 |
2005년 462,879명 |
2010년 488,932명 |
2015년 459,275명 |
2020년 437,153명 |
2024년 10월 422,69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65만 명 |
행정동별 인구 통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종암동 38,048명 |
길음제1동 34,801명 | |
석관동 34,245명 | |
월곡제1동 25,859명 | |
정릉제4동 24,338명 | |
장위제1동 23,732명 | |
돈암제2동 23,528명 | |
정릉제2동 22,675명 | |
삼선동 22,466명 | |
길음제2동 21,844명 | |
월곡제2동 19,169명 | |
정릉제1동 17,861명 | |
보문동 16,305명 | |
성북동 16,091명 | |
장위제3동 15,788명 | |
정릉제3동 15,154명 | |
안암동 15,120명 | |
동선동 15,030명 | |
돈암제1동 14,349명 | |
장위제2동 13,286명 | |
2023년 5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
법정동별 인구 통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정릉동 77,875명 |
길음동 54,084명 | |
장위동 51,957명 | |
하월곡동 38,876명 | |
돈암동 38,204명 | |
종암동 37,609명 | |
석관동 33,768명 | |
성북동 10,159명 | |
상월곡동 9,072명 | |
보문동6가 6,539명 | |
보문동7가 6,135명 | |
삼선동2가 5,594명 | |
삼선동1가 4,198명 | |
안암동5가 3,973명 | |
안암동1가 3,870명 | |
삼선동3가 3,758명 | |
삼선동5가 3,697명 | |
안암동3가 3,647명 | |
삼선동4가 3,099명 | |
동소문동4가 3,010명 | |
동선동3가 2,862명 | |
보문동3가 2,560명 | |
안암동2가 2,322명 | |
동소문동7가 2,320명 | |
동선동2가 2,146명 | |
동선동4가 2,073명 | |
동선동5가 2,035명 | |
보문동2가 2,022명 | |
동소문동6가 1,859명 | |
성북동1가 1,832명 | |
보문동5가 1,792명 | |
동선동1가 1,177명 | |
동소문동5가 1,114명 | |
보문동1가 1,016명 | |
안암동4가 984명 | |
보문동4가 941명 | |
동소문동1가 921명 | |
동소문동2가 505명 | |
동소문동3가 152명 | |
2024년 1월 기준 행정안전부 법정동별(행정동 통반단위) 성/연령별 주민등록 인구 수, 그래프 최대 값은 8만 명 |
현재의 구계가 1975년에 확정된 것을 감안하면 지금보다 약 17만 명이나 더 높은 60만 명의 사람들이 성북구에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전인 1970년대 초에는 90만이었다.[15]
다른 서울 자치구들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4. 지역 특징
4.1. '서울 토박이' 이미지
서울 성저십리 지역 중에 주택 조성이 광복 이전에 진행된 지역[16] 중 하나로,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성북구에 산다"고 하면 서울 토박이 내지는 서울에서 장기 거주한 주민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17]단, 이 이미지에 부합되는 성북구는 미아리고개 남쪽, 즉 성북, 동소문, 삼선, 동선, 보문, 안암동 인근, 즉 아래 행정동/법정동 이미지에서 동명이 직접 써 있지 않고 숫자로 써 있는[18] 동 + 성북동을 말한다. 미아리고개 북쪽 지역[19]은 난개발이 진행되면서, 재개발이 시작되기 전인 1970~1980년대만 해도 미아리고개를 경계로 빈부차를 비롯 문화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남쪽의 부유한 중고등학생들을 노리고 떼로 몰려와 갈취와 폭행을 일삼는 불량배들과 이에 맞서려는 학생들간의 패싸움이 자주 일어났었는데, 영화배우 최민식이 대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휘말렸던 패싸움이 바로 이 시기였다.
4.2. 생활권의 구분
성북구에서도 본래이자 현재 성북구의 중심지인 삼선동, 동소문동, 성북동, 동선동, 그리고 편입과 분리를 거쳐 재편입이 된 길음 쪽은 상당히 다른 생활권으로, 이 성북동을 포함한 중심 지역은 종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종로 생활권역에 속하고, 안암의 경우 성북구 중심가와도 가깝지만 동대문의 신설동, 제기동과 더 인접한 생활권이며, 길음, 월곡, 종암쪽의 경우에는 강북구의 영향이 강한 미아, 수유쪽 생활권에 속한다. 장위, 석관의 경우 강북구의 미아와 동대문의 이문쪽의 영향을 많이 받는 미아 - 이문 생활권에 속한다. 성북동에 대사관저가 다수 분포하는 등 외교관들이 많이 거주하고 관내에 있는 대학교들에 다니는 외국 유학생들도 적지 않아 생각보다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 문화를 주제로 하는 행사가 자주 열리는 편이다. 주로 성북동 큰길과 한성대입구역 인근의 성북천 분수 광장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다.4.3. 전통과 현대, 부와 중산층 그리고 빈부격차
달동네, 근대 한옥, 아파트, 중산층 주택, 부촌 등등 20세기 옛날 풍경과 고층 아파트같은 현대의 첨단적인 도시 풍경이 교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예전부터 한양도성과 가까웠던 관계로 심우장, 간송미술관, 길상사 등등 다양한 문화재와 볼거리가 많다.북한산, 북악산 같은 서울의 메이저급 산 외에도 여러 산을 끼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녹지가 꽤 많다. 하지만 성북구는 강북구, 동대문구, 성동구와 함께 난개발이 많으며, 이 때문에 대로변을 빼면 구의 서쪽 지역은 동네 전체가 고저차가 심한 언덕과 산이나 다름없다. 서울 강북 지역 중에서도 자비 없는 산악/구릉 지형이 잘 드러나 있는 곳으로 이 때문에 한때는 동네 구석구석에 달동네가 산재해 있었으며 돈암동, 정릉 같은 서부 지역은 따릉이 같은 자전거 이용률이 많이 낮다. 당장 미아리고개, 아리랑고개, 북악스카이웨이라는 서울의 유명한 고갯길이 이곳에 있다. 성북구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길음뉴타운도 엄청난 언덕길에는 예외가 아니다. 그래도 다행히 마을버스가 발달해서 그런 곳에서도 쉽게 밖으로 나가는 건 가능하다. 그나마 동부 지역(장위동, 월곡동, 석관동)은 서부 지역(정릉동, 돈암동, 성북동) 보다 낫다.
위에서 서술한 심한 고저차와 구도심 그리고 무계획적인 도시 개발이라는 특성과 맞물려 대부분의 도로가 실 풀어놓은 것마냥 얽혀있으며, 좁고 복잡해서 도로의 규칙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일제 강점기 때 신시가지로 개발된 동선동 지역은 격자형인 도로들이 꽤 많이 보인다.
5. 교통
서울 지하철 4호선, 서울 지하철 6호선,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이 있다. 4호선과 6호선은 각각 성북구 중심부와 성북구 동쪽 지역을 평행하게 지나간다. 성북구청은 성신여대입구역과 보문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두 역 모두 성북구청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2000년에 석계역이 환승이 되었으며, 우이신설선 개통으로 성신여대입구역과 보문역이 환승역이 되었다. 그래서 성북구에 오래 사셨던 분들은 3기 지하철 계획이 백지화된 일을 가장 아쉬운 일로 보는 분들이 많다. 좀 무리해서라도 추진했더라면 성북구 지역의 지하철 개판 5분전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22] 현재는 서울 버스 272 등을 이용해서 한성대입구역 - 보문역 사이를 건너가거나 추가로 안암역을 지나는 서울 버스 273, 성신여대입구역 - 보문역 - 안암역 사이를 운행하는 서울 버스 2115, 서울 버스 성북04로 간접환승을 해야 한다.[23] 스크린도어 설치 전 전국 지하철 자살자 최다역 타이틀을 달았었던 한성대입구역도 여기 있다.그리고 수도권 전철 1호선도 일단 이 구를 지나갔었다. 그러나 성북역은 성북구에 있는 게 아니라 노원구에 있다. 그러다 보니 '이게 뭥미?'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위의 역사에서 설명했듯이 1973년까지는 성북구가 현재의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일대까지 모두 관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기준으로 성북역이 있던 월계동은 성북구 관할이었다. 1973년 성북구 북부를 도봉구로 분구하고, 1988년 도봉구 동부를 다시 노원구로 분구하면서 성북역은 최종적으로 노원구 월계동 관할이 된 것. 이렇게 되어서 지금의 1호선은 이 구의 동부를 스쳐 지나가기만 하고 해당 구에 정차역을 두고 있지 않다.[24] 결국 2013년 2월 25일자로 성북역 역명이 광운대역으로 변경. 지못미 성북구... 어찌 되었건 지금의 장위동에서도 도보 거리로 광운대역을 갈 수는 있다. (광운대역 주위로는 노원구, 성북구, 동대문구, 중랑구, 강북구의 5개 구가 몰려 있다.)
성북구에서도 삼선동, 동소문동, 성북동을 포함한 성북구의 중심 지역은 종로와의 상호 왕래가 편하고, 길음, 종암, 월곡쪽은 강북구의 미아[25], 수유와의 상호 왕래가 편하다. 석관 - 장위의 경우 성북구 중심가와는 생활권상 연관이 꽤 적은 편이고 미아사거리 - 이문동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강북구의 미아와 동대문구의 이문간의 상호 왕래를 편히 할 수 있다.
성북구 교통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강남에 가기 까다롭다는 점이다.[26][27] 전철 노선도 엄청 돌아가거나 2번 이상 환승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고, 도로교통을 이용한다면 엄청난 정체에 휘말린다. GTX-C의 정차역이 석계역이면 그나마 좀 나았겠지만, 광운대역이 되어서 어렵다.
성북구 내에서는 서울 동북부의 다른 구들에 비해 경기도 버스나 광역버스를 볼 일이 거의 없다. 서울 구석구석으로 갈 수 있는 버스가 굉장히 많이 지나다니는 것을 알 수 있다. 105번, 146번 버스를 제외하고 서울특별시 간선버스의 1권역 전부가 성북구를 지나간다.
5.1. 관내 철도역 목록
성북구의 철도역 | |
수도권 전철 4호선 | 길음역, 성신여대입구역, 한성대입구역 |
서울 지하철 6호선 | 보문역, 안암역, 고려대역, 월곡역, 상월곡역, 돌곶이역, |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 | 북한산보국문역, 정릉역, 성신여대입구역, 보문역 |
| 105정거장(예정), 106정거장(예정), 미아사거리역(예정), 108정거장예정 |
6.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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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성북구/교육 문서 참고하십시오.
대일외국어고등학교가 위치한다. 공부를 상당히 잘 하는 여고로 알려진 성신여자고등학교 및 농구부로 유명한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도 있다. 또 서울사대부고와 명동에서 70년 가까이 있었던 계성고(여고였다 공학으로 전환)도 있다. 이외에 용문고나 비평준화 시절 서울 5대 공립고로 불린 경동고도 있다. 서라벌고와 대일고도 원래 성북구에 있었는데 노원구와 강서구로 이사갔다.
- 대학교
대학교가 매우 많은 자치구다.[30] 안암동에는 고려대학교가 있는데, 주변 상권은 많이 약한 편이라 바로 산만 넘어가면 있는 성신여자대학교 근처로 놀러간다.[31] 실제로도 성신여대 쪽 돈암동 상권이 더 발달되어 있다. 그나마 안암역이 있기 전에는 막걸리집과 헌책방만 즐비했었다. 87년 민주항쟁 시절 전후로는 북쪽의 고려대학교, 남쪽 동대문구의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경희대학교 학생들의 시위와 이를 막는 경찰의 충돌로 중간에 있던 동대문구 이문동과 안암동, 종암동, 월곡동, 석관동, 장위동 주민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투석과 최루가스에 시달려야 했었다.
돈암동엔 성신여자대학교가 있다. 돈암시장통과 연결돼 있다보니 상권[32]이 일찍부터 발달했었다. 오히려 1985년 4호선이 개통되면서 수유역으로 많이 뺏긴 게 현재 상권이라고. 인근 성신여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등 성북구 소재 고등학교, 대학교 재학생들이 많이 시간을 보낸다.
정릉동 북한산 자락에는 국민대학교(정릉3동), 서경대학교(정릉4동)가 있다. 원래는 산과 주거지역에 둘러싸여 있어 지하철 사각지대이자 버스종점(차고지)이었는데, 내부순환로도 뚫리고 우이신설선이 생기면서 접근성 자체는 많이 개선됐다. 재단에서 학교에 투자를 좀 하는지 특히 국민대학교는 학교 건물이 많이 생겼다.
보문산 자락에는 한성대학교가 있으며 월곡동 주변에는 동덕여자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다.[33] 석관동 지역 상권이 조금씩 개발되고 있고, 월곡역 인근이 갑작스러운 상권 조성이 이루어지면서 한예종 학생들도 먹을 데 없다는 소리는 예전보단 덜 하게 되었는데 그냥 그 정도다. 6호선 돌곶이역도 가깝다.
종로구이지만 혜화문을 두고 성북구와 경계에 있는 성균관대학교/인문사회과학캠퍼스,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은 대학로와도 매우 가까우며[34] 서울대학교/연건캠퍼스나 한국방송통신대학교도 인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질적으로 방통대 ~ 대학로 ~ 한성대입구 ~ 성신여대입구가 마치 하나의 상권처럼 쭉 이어져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여담으로 경기대학교의 전신인 경기초급대학이 과거 성북구에 있었으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의 전신인 서라벌예술대학 또한 성북구 정릉로에,[35] 경기도 김포시로 이전(2001년)한 중앙승가대학교 또한 고려대 본교, 병원 사이인 개운사에 있었다. 배재대학교는 성북구 하월곡동에 부지를 마련했으나 여러 이유로 대학 설립이 불가능해지자[36][37]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동의 보육초급대학을 인수했다. 서울대학교 종합화 이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이 종암동에 있었다(현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자리).
7. 금융
성북구에 위치한 금융기관 [괄호] | |||||
제1금융권 [괄호] | |||||
국가기관 | |||||
서울우체국 (6) | 고려대학교우체국 (1) | ||||
국책은행 | |||||
중소기업은행 (5) | |||||
특수은행 | |||||
수협은행 (1) | 농협은행 (5) | ||||
시중은행 | |||||
신한은행 (6) | 우리은행 (8) | ||||
SC제일은행 (3) | 하나은행 (9) | ||||
국민은행 (9) | |||||
제2금융권(상호금융) [괄호] | |||||
농업협동조합 | |||||
서울축산농협 (2) | 한국양계농협 (2) | ||||
서울경기양돈농협 (1) | |||||
수산업협동조합 | |||||
근해안강망수협 (1) | 포항수협 (1) | ||||
새마을금고 | |||||
성북제일새마을금고 (1) | 성북새마을금고 (1) | 삼선새마을금고 (8) | 길음중앙새마을금고 (1) | ||
동소문새마을금고 (1) | 북악새마을금고 (2) | 새종암새마을금고 (2) | 석관동새마을금고 (1) | ||
성신새마을금고 (1) | 안암동새마을금고 (2) | 월곡새마을금고 (2) | 장위1동새마을금고 (1) | ||
장위2동새마을금고 (3) | 정릉새마을금고 (2) | 종암동새마을금고 (1) | 한양새마을금고 (2) | ||
서울개인택시조합새마을금고 (1) | |||||
신용협동조합 | |||||
성북신용협동조합 (1) | 새서울신용협동조합 (2) | 장위신용협동조합 (1) | 정릉신용협동조합 (1) | ||
강북신용협동조합 (1) | 영암교회신용협동조합 (1) | ||||
지점이 없는 은행 | |||||
한국산업은행[국책은행] |
8. 의료기관
상급종합병원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1,060병상)이 안암동에 있다. 의외로 안암동에 자리잡은 지는 오래되지 않아서, 1991년에 명륜동에서 현 위치로 이전해 왔다. 그래도 서울 동북권에서는 가장 큰 종합병원. 그 외 종합병원은 없고, 100병상이 넘는 일반 병원으로 성북중앙병원(109병상)이 있다.성북구 자체가 오래된 동네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터줏대감같이 자리잡은 의원들이 많다. 과거 1980년대 이전까지는 의과대학 교수들이 개인의원을 겸업할 수 있었는데, 이때 자신이 속한 의과대학(대학병원) 캠퍼스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의원을 차렸다.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고려대학교 혜화병원, 이대동대문병원, 국립의료원(울지로6가) 등 가까운 번화가 상업지역에 대학병원이 많았던 관계로, 여기에서 가까우면서 당시로는 주거지역이면서 중산층 밀집지역인 동소문로 인근에 병의원들이 많았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몇몇 의원들은 같은 자리에서 2세들(역시 의사)이 물려받아 운영중이다.
한때는 이런 이유로 1차의료기관은 넘쳐나고 3차의료기관(대학병원)도 근처에 수두룩했다. 성북구 경계 500m 거리인 대학로 북쪽 끝에 고려대학교 혜화병원, 이곳에서 700m 남쪽에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더 남쪽 동대문에 이화여자대학교 동대문병원이 있었다. 서울에 지금보다도 대학병원이 훨씬 더 적은 시절이어서, 이처럼 근거리에 병상 규모가 큰 대학병원이 가까운 곳은 전국에서 거의 유일했다. 이러면서도 2차의료기관은 전무한, 좀 독특한 지역이었다. 과거 의료보험 실시 초창기에 불편으로 다가왔었다.
9. 정치
자세한 내용은 성북구/정치 문서 참고하십시오.10. 하위 행정구역
자세한 내용은 성북구/행정 문서 참고하십시오.11. 기타
- 2007년 출퇴근 지문 입력기를 이용해서 시간외수당을 조작질한 것이 YTN 돌발영상에게 제대로 걸려서 여론의 비난을 맞은 적이 있다. 돌발영상 이 정도면 거의 만성. 제목부터 하루 2번 출근하는 구청이라고 깐다. 당시 네티즌 반응[42]
- 강동구와는 면적이 거의 같다.
- 서울 지진 역사 중 가장 지진이 많이 일어난 곳이다.
- 2024년 3월 29일 오전 9시 21분경 석계역 인근의 석관동 석계고가차도 아래 도로에서 레미콘 차량이 3개 차로에 걸쳐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들을 잇따라 들이받으면서 13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 #1 #2 #3 #4 #5
-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중상 1명, 경상 3명을 포함해 현장에서 17명을 구조했다. 부상자 16명 중 머리 등을 다친 4명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며 1톤 탑차 운전자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 사고 직전 레미콘 차량이 빠르게 내려온 차선은 고가차도로 올라가는 도로였는데 고가차도에서 역주행 상태로 내려온 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멈춰서 있던 차량들을 잇따라 들이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레미콘 차량이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정차된 앞차에 추돌한 것으로 보인다. 기록장치 등을 조사해 정확한 사고 이유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서 레미콘 차량 운전자는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출근 시간에 차들이 도로에 뒤엉키면서 사고 수습도 애를 먹었다. 약 2시간 만인 오전 11시 42분경 전복된 레미콘 차량을 세우고 남은 사고 현장 정리를 위해 드론이 투입됐다. 월릉교~돌곶이역 구간 교통이 약 4시간 가까이 통제되면서 일대는 오전 내내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성북구청은 인근 도로로 우회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를 발송하기도 했다.
12. 산하 기관
- 성북구도시관리공단
- 성북문화재단
13. 관련 항목
[1] 39개 법정동, 20개 행정동[2] 2024년 10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3] 2024년 10월 기준[4] 성북구 가선거구 (성북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2동, 안암동, 보문동): 김육영, 소형준, 임태근
성북구 나선거구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양순임, 이용진, 정윤주
성북구 다선거구 (돈암1동, 종암동): 오중균
성북구 라선거구 (길음2동, 월곡1동, 월곡2동): 이인순, 정해숙
성북구 마선거구 (장위1동, 장위2동): 김경이
성북구 바선거구 (장위3동, 석관동): 이호건
성북구 비례대표: 경수현[5] 성북구 가선거구 (성북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2동, 안암동, 보문동): 이관우, 정병기
성북구 나선거구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박영섭, 임현주
성북구 다선거구 (돈암1동, 종암동): 권영애
성북구 라선거구 (길음2동, 월곡1동, 월곡2동): 이일준
성북구 마선거구 (장위1동, 장위2동): 진선아
성북구 바선거구 (장위3동, 석관동): 정기혁
성북구 비례대표: 강수진, 고영옥[6] 성북구 제2선거구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김원중 (초선)
성북구 제4선거구 (장위1동, 장위2동, 장위3동, 석관동): 김태수 (초선)[7] 성북구 제1선거구 (성북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2동, 안암동, 보문동): 한신 (초선)
성북구 제3선거구 (돈암제1동, 길음제2동, 종암동, 월곡제1동, 월곡제2동): 강동길 (재선)[8] 그 해 통계연보에 처음 나온다.[9] 하지만 정릉동, 길음동은 이때 경성부에 편입되지 못했다. 고양군 숭인면의 일부로 잔류하다가 1949년에 서울시에 편입.[10] 유사한 지명인 경기도 성남시의 경우 이쪽은 남한산성의 성곽 남쪽에서 유래된 지명이라 한양도성과는 관련이 없다.[11]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숭'신과 '인'창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12] 서울特別市·道·郡·區의管轄區域變更에關한法律(서울특별시·도·군·구의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 법률 제1172호, 1962.11.21. 공포)
大韓民國憲法第5號(대한민국 헌법 제5호, 1960.11.29. 일부 개정)
公布式令(공포식령, 대통령령 제429호, 1950.12.30. 일부 개정 · 공포)[13] 같은 날에 공덕리에서 개칭[14] 서울특별시 조례 제274호, 제275호, 제276호[15] 다만 이때는 현재의 성북구 영역에서 보문동 일대가 제외되고, 도봉구·강북구·노원구가 포함된 수치임을 감안해야 한다.[16] 성저십리 지역 자연 촌락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1930년대 도성 외곽 신도시 조성 지역 중 하나였으며 일제 패망 이전에 완료된 2군데 중 하나다. 위치는 지금의 한성대입구역, 성신여대입구역, 보문역 인근 지역. 지금도 삼선교에서 성북구청으로 가는 2차선 도로변에는 그 시절 심은 가로수가 지금은 아름드리 나무가 된 채로 존재한다.[17] 출처: <뿌리깊은 나무> 서울 편.[18] 즉 '~가'로 잘게 분산된[19] 이 지역은 크게보면 현재의 강북구 미아동(삼양동)과 성북구 길음동, 정릉4동, 하월곡동으로 구성된다. 현재는 각각 뉴타운 재개발이 되었으나 아직 낙후된 지역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다. 지금은 여러모로 다양하게 개선되어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20] 길음뉴타운 개발로 인해 도심권으로 출퇴근하는 중산층이 늘어났으나 이 지역은 여전히 동북권이다. 도심권 출퇴근자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해서 도심권이라는 논리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바로 인근의 미아뉴타운에도 4호선 미아사거리역을 이용하는 도심권 출퇴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그곳을 도심권이라고는 부르지 않음을 참고해야 한다. 내부순환로 바깥이라 도심권으로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21] 정릉동 지역은 같은 행정동 내에서도 동서로 흐르는 정릉천(내부순환도로)를 경계로 북쪽과 남쪽의 생활권이 갈리는데 정릉2동 중 남쪽 지역은 완전히 돈암동 생활권이며 전체가 북쪽에 위치한 정릉3, 4동은 성북구의 중심부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나 이 지역 내의 아파트촌에는 길음뉴타운과 마찬가지로 도심권 출퇴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정릉1동은 인근의 길음동이 대규모 재개발이 되면서 길음역 주변의 생활권으로 흡수되었다.[22] 6호선 고려대역과 4호선 길음역이 종암동 행정복지센터 기준으로 1.4km로 멀지 않은 데도 4호선과 6호선은 삼각지역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 지하철 6호선 참고. 6호선 고려대역과 4호선 길음역은 엄청나게 멀다. 굳이 지하철로 가려면 보문역에서 우이신설선으로 갈아탄 뒤 성신여대입구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을 해 2번을 갈아타야 된다. 종암동에서 길음역까지 거리는 2.5km이나 지하철로는 4.3km를 가야해 멀고 시간이 더 걸린다. 월곡역이면 몰라도 고려대 - 길음 거리는 버스로도 5 정거장은 된다.[23] 가는 길에 성북구청 경유. 한성대입구나 성신여대입구나 두 역 모두에서 건너가기 애매한 자리에 성북구청이 있다.[24] 그나마 석계역 일부가 성북구에 걸쳐있기는 하다. 근데 6호선 석계역은 성북구에 있다! (다만 대표주소는 6호선도 노원구 월계3동 주소를 쓴다.)[25] 정릉 또한 미아와의 상호 왕래가 편하다.[26] '불편하다'가 아닌 '까다롭다'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아예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리 떨어진 서북쪽이나 동북쪽 구와는 달리 직선거리는 가까우면서 지하철 노선이 굴곡 및 환승이고, 도로교통 또한 정체가 심한 동대문 인근을 통과할 수 밖에 없어서 직선거리가 가까운 이점이 퇴색된다. 단, 이 점은 동북선이 개통되면 좀 나아 질 듯.[27] 삼선동이나 보문동 등은 일단 절대 거리가 가깝다 보니 교통정체가 있더라도 비교적 강남 접근성은 좋다.[28] 1호선은 행정상 노원구 월계3동에 있으며, 6호선의 경우 시설물은 성북구 석관동에 있으나 대표주소는 1호선처럼 노원구 월계3동 주소를 쓴다.[29] 미개통[30] 이것 때문에 성북구는 1970년대 당시 서울의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핫플레이스로 통했다. 하기야 여자대학이 둘이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31] 성신여자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은 철책담장으로 둘러싸인 각자의 캠퍼스들 사이에 오솔길 하나를 두고 서로 등을 대고 있는 구조라서 도보로 산을 넘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32] 여기서 상권이라 함은 옷가게, 헤어숍 등과 먹자골목을 말한다.[33] 노원구의 핵심지역이 중랑천 동측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이고 월계동은 그쪽과 생활권이 다르므로 광운대학교도 사실상 성북구(정확히는 석계역) 생활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같은 노원구인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 또한 최근까지도 석계역 생활권이었다.[34] 종로구청에서 대학로까지 거리보다 성북구청에서 대학로까지의 거리가 더 가깝다.[35] 길음역 옆 현 돈암동부센트레빌 아파트 부지[36] 1950년대 배재학당 출신인 이승만 대통령이 대학을 세우라고 하월곡동에 부지를 무상 제공했으나, 5.16 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이 다시 회수, 국유지가 되었다.[37] 참고로 이곳(월곡동 산 2-11)의 일부는 국유지로 회수하고도 관리를 허술하게 해 판자집들이 난립했고 1981년 5공 정부가 민심을 얻기 위해 무허가 주택 양성화 조치로 판자집들을 철거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재개발이 추진, 국유지를 민간(재개발 조합)에 불하하여 아파트가 들어선다. 현재 하월곡동 대우아파트 부지.[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국책은행] 종로지점이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42] 해당 링크의 동영상은 삭제되었다.
성북구 나선거구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양순임, 이용진, 정윤주
성북구 다선거구 (돈암1동, 종암동): 오중균
성북구 라선거구 (길음2동, 월곡1동, 월곡2동): 이인순, 정해숙
성북구 마선거구 (장위1동, 장위2동): 김경이
성북구 바선거구 (장위3동, 석관동): 이호건
성북구 비례대표: 경수현[5] 성북구 가선거구 (성북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2동, 안암동, 보문동): 이관우, 정병기
성북구 나선거구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박영섭, 임현주
성북구 다선거구 (돈암1동, 종암동): 권영애
성북구 라선거구 (길음2동, 월곡1동, 월곡2동): 이일준
성북구 마선거구 (장위1동, 장위2동): 진선아
성북구 바선거구 (장위3동, 석관동): 정기혁
성북구 비례대표: 강수진, 고영옥[6] 성북구 제2선거구 (정릉1동, 정릉2동, 정릉3동, 정릉4동, 길음1동): 김원중 (초선)
성북구 제4선거구 (장위1동, 장위2동, 장위3동, 석관동): 김태수 (초선)[7] 성북구 제1선거구 (성북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2동, 안암동, 보문동): 한신 (초선)
성북구 제3선거구 (돈암제1동, 길음제2동, 종암동, 월곡제1동, 월곡제2동): 강동길 (재선)[8] 그 해 통계연보에 처음 나온다.[9] 하지만 정릉동, 길음동은 이때 경성부에 편입되지 못했다. 고양군 숭인면의 일부로 잔류하다가 1949년에 서울시에 편입.[10] 유사한 지명인 경기도 성남시의 경우 이쪽은 남한산성의 성곽 남쪽에서 유래된 지명이라 한양도성과는 관련이 없다.[11]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의 '숭'신과 '인'창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12] 서울特別市·道·郡·區의管轄區域變更에關한法律(서울특별시·도·군·구의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 법률 제1172호, 1962.11.21. 공포)
大韓民國憲法第5號(대한민국 헌법 제5호, 1960.11.29. 일부 개정)
公布式令(공포식령, 대통령령 제429호, 1950.12.30. 일부 개정 · 공포)[13] 같은 날에 공덕리에서 개칭[14] 서울특별시 조례 제274호, 제275호, 제276호[15] 다만 이때는 현재의 성북구 영역에서 보문동 일대가 제외되고, 도봉구·강북구·노원구가 포함된 수치임을 감안해야 한다.[16] 성저십리 지역 자연 촌락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1930년대 도성 외곽 신도시 조성 지역 중 하나였으며 일제 패망 이전에 완료된 2군데 중 하나다. 위치는 지금의 한성대입구역, 성신여대입구역, 보문역 인근 지역. 지금도 삼선교에서 성북구청으로 가는 2차선 도로변에는 그 시절 심은 가로수가 지금은 아름드리 나무가 된 채로 존재한다.[17] 출처: <뿌리깊은 나무> 서울 편.[18] 즉 '~가'로 잘게 분산된[19] 이 지역은 크게보면 현재의 강북구 미아동(삼양동)과 성북구 길음동, 정릉4동, 하월곡동으로 구성된다. 현재는 각각 뉴타운 재개발이 되었으나 아직 낙후된 지역이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다. 지금은 여러모로 다양하게 개선되어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20] 길음뉴타운 개발로 인해 도심권으로 출퇴근하는 중산층이 늘어났으나 이 지역은 여전히 동북권이다. 도심권 출퇴근자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해서 도심권이라는 논리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바로 인근의 미아뉴타운에도 4호선 미아사거리역을 이용하는 도심권 출퇴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그곳을 도심권이라고는 부르지 않음을 참고해야 한다. 내부순환로 바깥이라 도심권으로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21] 정릉동 지역은 같은 행정동 내에서도 동서로 흐르는 정릉천(내부순환도로)를 경계로 북쪽과 남쪽의 생활권이 갈리는데 정릉2동 중 남쪽 지역은 완전히 돈암동 생활권이며 전체가 북쪽에 위치한 정릉3, 4동은 성북구의 중심부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나 이 지역 내의 아파트촌에는 길음뉴타운과 마찬가지로 도심권 출퇴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정릉1동은 인근의 길음동이 대규모 재개발이 되면서 길음역 주변의 생활권으로 흡수되었다.[22] 6호선 고려대역과 4호선 길음역이 종암동 행정복지센터 기준으로 1.4km로 멀지 않은 데도 4호선과 6호선은 삼각지역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 지하철 6호선 참고. 6호선 고려대역과 4호선 길음역은 엄청나게 멀다. 굳이 지하철로 가려면 보문역에서 우이신설선으로 갈아탄 뒤 성신여대입구역에서 4호선으로 환승을 해 2번을 갈아타야 된다. 종암동에서 길음역까지 거리는 2.5km이나 지하철로는 4.3km를 가야해 멀고 시간이 더 걸린다. 월곡역이면 몰라도 고려대 - 길음 거리는 버스로도 5 정거장은 된다.[23] 가는 길에 성북구청 경유. 한성대입구나 성신여대입구나 두 역 모두에서 건너가기 애매한 자리에 성북구청이 있다.[24] 그나마 석계역 일부가 성북구에 걸쳐있기는 하다. 근데 6호선 석계역은 성북구에 있다! (다만 대표주소는 6호선도 노원구 월계3동 주소를 쓴다.)[25] 정릉 또한 미아와의 상호 왕래가 편하다.[26] '불편하다'가 아닌 '까다롭다'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아예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리 떨어진 서북쪽이나 동북쪽 구와는 달리 직선거리는 가까우면서 지하철 노선이 굴곡 및 환승이고, 도로교통 또한 정체가 심한 동대문 인근을 통과할 수 밖에 없어서 직선거리가 가까운 이점이 퇴색된다. 단, 이 점은 동북선이 개통되면 좀 나아 질 듯.[27] 삼선동이나 보문동 등은 일단 절대 거리가 가깝다 보니 교통정체가 있더라도 비교적 강남 접근성은 좋다.[28] 1호선은 행정상 노원구 월계3동에 있으며, 6호선의 경우 시설물은 성북구 석관동에 있으나 대표주소는 1호선처럼 노원구 월계3동 주소를 쓴다.[29] 미개통[30] 이것 때문에 성북구는 1970년대 당시 서울의 장발, 미니스커트 단속 핫플레이스로 통했다. 하기야 여자대학이 둘이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31] 성신여자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은 철책담장으로 둘러싸인 각자의 캠퍼스들 사이에 오솔길 하나를 두고 서로 등을 대고 있는 구조라서 도보로 산을 넘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32] 여기서 상권이라 함은 옷가게, 헤어숍 등과 먹자골목을 말한다.[33] 노원구의 핵심지역이 중랑천 동측 상계동, 중계동, 하계동이고 월계동은 그쪽과 생활권이 다르므로 광운대학교도 사실상 성북구(정확히는 석계역) 생활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같은 노원구인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 또한 최근까지도 석계역 생활권이었다.[34] 종로구청에서 대학로까지 거리보다 성북구청에서 대학로까지의 거리가 더 가깝다.[35] 길음역 옆 현 돈암동부센트레빌 아파트 부지[36] 1950년대 배재학당 출신인 이승만 대통령이 대학을 세우라고 하월곡동에 부지를 무상 제공했으나, 5.16 쿠데타 직후 군사정권이 다시 회수, 국유지가 되었다.[37] 참고로 이곳(월곡동 산 2-11)의 일부는 국유지로 회수하고도 관리를 허술하게 해 판자집들이 난립했고 1981년 5공 정부가 민심을 얻기 위해 무허가 주택 양성화 조치로 판자집들을 철거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재개발이 추진, 국유지를 민간(재개발 조합)에 불하하여 아파트가 들어선다. 현재 하월곡동 대우아파트 부지.[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국책은행] 종로지점이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42] 해당 링크의 동영상은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