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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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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도성곽과 방어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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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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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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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함경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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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888> 량강도 갑산군 함경북도 경성군 라선특별시 원정리
<rowcolor=#aaa> ‡ 갑산읍성
甲山邑城
경성읍성[병]
鏡城邑城
‡ 경흥읍성
慶興邑城
함경북도 경원군 함경북도 길주군 함경남도 단천시
<rowcolor=#aaa> 경원읍성
慶源邑城
‡ 길주읍성
吉州邑城
‡ 단천읍성
端川邑城
함경북도 명천군 함경북도 무산군 함경북도 부령군
<rowcolor=#aaa> 명천읍성
明川邑城
† 무산읍성
茂山邑城
부령읍성
富寧邑城
함경남도 북청군 량강도 삼수군 강원도 안변군
<rowcolor=#aaa> ‡ 북청읍성[북]
北靑邑城
삼수읍성
三水邑城
안변고읍성 | 학성산성[산]
安邊古邑城 | 鶴城山城
강원도 안변군 함경북도 온성군 함경남도 리원군
<rowcolor=#aaa> † 안변읍성
安邊邑城
† 온성읍성
穩城邑城
† 이원읍성
利原邑城
함경남도 장진군 함경남도 정평군 함경북도 온성군
<rowcolor=#aaa> † 장진읍성
長津邑城
‡ 정평읍성
定平邑城
† 종성읍성
鍾城邑城
함경남도 함흥시 함경남도 홍원군 함경북도 회령시
<rowcolor=#aaa> † 함흥읍성[감]
咸興邑城
‡ 홍원읍성
洪原邑城
‡ 회령읍성
會寧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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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평안도 ]
{{{#!wiki style="margin: -5px -1px -5px"
자강도 강계시 평양직할시 강동군 평안북도 곽산군
<rowcolor=#aaa> 강계읍성
江界邑城
강동읍성
江東邑城
곽주읍성 | 능한산성[산]
郭州邑城 | 凌漢山城
평안북도 구성시 평안남도 맹산군 평안북도 녕변군
<rowcolor=#aaa> 구성읍성 | 귀주성
龜城邑城 | 龜州城
맹주읍성 | 맹주산성
孟州邑城 | 孟州山城
무주읍성
撫州邑城
량강도 김형직군 평안북도 박천군 평안북도 벽동군
<rowcolor=#aaa> † 무창읍성
茂昌邑城
박주읍성
博州邑城
‡ 벽동읍성
碧潼邑城
평안북도 대관군 평안북도 삭주군 평안남도 선천군
<rowcolor=#aaa> 삭주고읍성 | 대삭주성[산]
朔州古邑城 | 大朔州城
† 삭주읍성
朔州邑城
† 선천읍성 | 선천고부
宣川邑城 | 宣川古府
평안남도 숙천군 평안남도 안주시 자강도 중강군
<rowcolor=#aaa> 숙주읍성
肅州邑城
안주읍성[병]
安州邑城
여연읍성
閭延邑城
평안남도 개천시 평안북도 운산군 평안북도 녕변군
<rowcolor=#aaa> 연주읍성
蓮州邑城
연주읍성
延州邑城
영변읍성 | 철옹성[산]
寧邊邑城 | 鐵甕城
남포특별시 룡강군 평안북도 룡천군 평안북도 룡천군
<rowcolor=#aaa> 용강읍성 | 황룡산성[산]
龍岡邑城 | 黃龍山城
용천고읍성 | 용골산성
龍川古邑城 | 龍骨山城
용천읍성
龍川邑城 | 鐵甕城
자강도 중강군 자강도 위원군 자강도 위원군
<rowcolor=#aaa> † 우예읍성
虞芮邑城
† 위원고읍성
渭原古邑城
위원읍성
渭原邑城
평안북도 구장군 평안남도 은산군 평안북도 의주군
<rowcolor=#aaa> 위주읍성
渭州邑城
은산읍성
殷山邑城
‡ 의주고읍성 | 내원성[산]
義州古邑城 | 來遠城
평안북도 의주군 자강도 고풍군 자강도 자성군
<rowcolor=#aaa> ‡ 의주읍성
義州邑城
이산읍성 | 초산고읍성
理山邑城 | 楚山古邑城
자성읍성
慈城邑城
평안남도 평성시 평안북도 정주시 평안북도 창성군
<rowcolor=#aaa> 자주읍성 | 자모산성[산]
慈州邑城 | 慈母山城
정주읍성
定州邑城
† 창성읍성
昌城邑城
평안북도 철산군 자강도 초산군 평안북도 동림군
<rowcolor=#aaa> 철주읍성
鐵州邑城
‡ 초산읍성
楚山邑城
통주읍성 | 동림산성[산]
通州邑城 | 東林山城
평양직할시 자강도 김형직군 자강도 희천시
<rowcolor=#aaa> 평양읍성[도][감]
平壤邑城
후주읍성
厚州邑城
† 희천읍성
熙川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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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남도 강령군 황해남도 강령군 황해남도 연안군
<rowcolor=#aaa> ‡ 강령고읍성
康翎古邑城
† 강령읍성
康翎邑城
연안고읍성 | 봉세산성[산]
延安古邑城 | 鳳勢山城
황해남도 연안군 황해남도 옹진군 황해남도 옹진군
<rowcolor=#aaa> ‡ 연안읍성
延安邑城
옹진고읍성 | 옹천성
甕津古邑城 | 甕遷城
옹진읍성 | 본영읍성
甕津邑城 | 本營邑城
황해남도 장연군 황해남도 장연군 황해남도 과일군
<rowcolor=#aaa> 장연고읍성 | 룡연읍성
長淵古邑城 | 龍淵邑城
‡ 장연읍성
長淵邑城
풍천읍성
豊川邑城
황해남도 해주시 황해북도 황주군
<rowcolor=#aaa> † 해주읍성[감]
海州邑城
황주읍성[병]
黃州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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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천광역시 강화군 개성특별시
<rowcolor=#aaa> 한양도성[도]
漢陽都城
강화읍성 | 강화산성[도]
江華邑城 | 江華山城
개성읍성[도]
開城邑城
경기도 광주시 인천광역시 강화군 경기도 화성시
<rowcolor=#aaa> 광주읍성 | 남한산성[산]
廣州邑城 | 南漢山城
교동읍성
喬桐邑城
‡ 수원읍성
水原邑城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 안산시
<rowcolor=#aaa> 수원화성
水原華城
안산읍성
安山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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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888> 강원도 철원군 강원도 고성군 강원도 강릉시
<rowcolor=#aaa> † 철원도성[도]
鐵原都城
‡ 간성읍성
杆城邑城
‡ 강릉읍성
江陵邑城
강원도 고성군 강원도 김화군 강원도 삼척시
<rowcolor=#aaa> † 고성읍성
高城邑城
? 김화읍성
金化邑城
‡ 삼척읍성
三陟邑城
강원도 통천군 강원도 양양군 경상북도 울진군
<rowcolor=#aaa> ? 송전읍성
松田邑城
‡ 양양읍성
襄陽邑城
† 울진고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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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강원도 통천군 강원도 회양군
<rowcolor=#aaa> † 울진읍성
蔚珍邑城
통천읍성
通川邑城
† 회양읍성
淮陽邑城
강원도 통천군
<rowcolor=#aaa> 흡곡읍성[산]
歙谷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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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충청남도 부여군 충청남도 홍성군
<rowcolor=#aaa> 공산성[도][산][감]
公山城
부소산성[도][산]
扶蘇山城
† 결성고읍성
結城古邑城
충청남도 홍성군 충청남도 보령시 충청남도 당진시
<rowcolor=#aaa> 결성읍성
結城邑城
남포읍성
藍浦邑城
‡ 당진읍성
唐津邑城
충청남도 예산군 충청남도 예산군 충청남도 당진시
<rowcolor=#aaa> † 대흥읍성
大興邑城
† 덕산읍성
德山邑城
면천읍성
沔川邑城
충청남도 보령시 충청남도 서천군 충청남도 서산시
<rowcolor=#aaa> 보령읍성
保寧邑城
비인읍성
庇仁邑城
‡ 서산읍성
瑞山邑城
충청남도 서천군 충청남도 서천군 충청북도 영동군
<rowcolor=#aaa> 서천고읍성 | 남산성[산]
舒川古邑城 | 南山城
서천읍성
舒川邑城
‡ 영동읍성
永同邑城
충청북도 청주시 충청북도 충주시 충청남도 태안군
<rowcolor=#aaa> † 청주읍성[병]
淸州邑城
† 충주읍성[감]
忠州邑城
‡ 태안읍성
泰安邑城
충청남도 서천군 충청남도 서산시 충청남도 홍성군
<rowcolor=#aaa> 한산읍성
韓山邑城
해미읍성[병]
海美邑城
홍주읍성
洪州邑城
충청남도 부여군 충청북도 영동군
<rowcolor=#aaa> ‡ 홍산읍성
鴻山邑城
‡ 황간읍성
黃澗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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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군 전라북도 정읍시 전라북도 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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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津邑城
고부읍성 | 고사부리성[산]
古阜邑城 | 古沙夫里城
고창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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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양시 광주광역시 동구 전라남도 구례군
<rowcolor=#aaa> † 광양읍성
光陽邑城
‡ 광주읍성
光州邑城
† 구례읍성
求禮邑城
전라남도 나주시 전라남도 순천시 전라북도 남원시
<rowcolor=#aaa> 나주읍성
羅州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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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安邑城
남원읍성
南原邑城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전라북도 김제시 전라남도 무안군
<rowcolor=#aaa> 대정읍성
大靜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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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頃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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務安邑城
전라북도 고창군 전라북도 무주군 전라남도 보성군
<rowcolor=#aaa> 무장읍성
茂長邑城
† 무풍현성
茂豊縣城
‡ 보성읍성
寶城邑城
전라북도 부안군 전라남도 순천시 전라남도 영광군
<rowcolor=#aaa> ‡ 부안읍성
扶安邑城
† 순천읍성
順天邑城
‡ 영광읍성
靈光邑城
전라남도 영암군 전라북도 군산시 전라북도 군산시
<rowcolor=#aaa> ‡ 영암읍성
靈巖邑城
† 옥구고읍성 | 대산산성[산]
沃溝古邑城 | 垈山山城
‡ 옥구읍성
沃溝邑城
전라북도 군산시 전라남도 장성군 전라남도 장흥군
<rowcolor=#aaa> ‡ 임피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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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城邑城
‡ 장흥읍성
長興邑城
전라북도 전주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rowcolor=#aaa> ‡ 전주읍성[감]
全州邑城
정의읍성
旌義邑城
제주읍성
濟州邑城
전라남도 진도군 전라남도 진도군 전라남도 장성군
<rowcolor=#aaa> ‡ 진도고읍성
珍島古邑城
진도읍성
珍島邑城
‡ 진원현성
珍原縣城
전라남도 해남군 전라남도 나주시 전라북도 고창군
<rowcolor=#aaa> ‡ 해남읍성
海南邑城
회진현성
會津縣城
‡ 흥덕읍성
興德邑城
전라남도 고흥군
<rowcolor=#aaa> 흥양읍성
興陽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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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경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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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시 경상북도 경산시 경상북도 경주시
<rowcolor=#aaa> 거제읍성
巨濟邑城
† 경산읍성
慶山邑城
경주고읍성 | 남고루
慶州古邑城 | 南古壘
경상북도 경주시 경상남도 고성군 경상남도 고성군
<rowcolor=#aaa> 경주읍성[감]
慶州邑城
‡ 고성고읍성
固城古邑城
‡ 고성읍성
固城邑城
경상남도 사천시 경상북도 영주시 부산광역시 기장군
<rowcolor=#aaa> ‡ 곤양읍성
昆陽邑城
‡ 구성읍성 | 구성산성[산]
龜城邑城 | 龜城山城
‡ 기장고읍성
機張古邑城
부산광역시 기장군 경상남도 김해시 경상남도 김해시
<rowcolor=#aaa> ‡ 기장읍성
機張邑城
김해고읍성
金海古邑城
‡ 김해읍성
金海邑城
경상남도 남해군 경상남도 남해군 대구광역시 중구
<rowcolor=#aaa> 남해고읍성 | 대국산성[산]
南海古邑城 | 大局山城
‡ 남해읍성
南海邑城
† 대구읍성[감]
大邱邑城
부산광역시 수영구 부산광역시 동래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rowcolor=#aaa> ‡ 동래고읍성
東萊古邑城
동래읍성
東萊邑城
‡ 동평현성
東平縣城
경상남도 밀양시 경상남도 사천시 경상남도 함안군
<rowcolor=#aaa> 밀양읍성
密陽邑城
사천읍성
泗川邑城
‡ 삼가읍성
三嘉邑城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북도 구미시 경상북도 성주군
<rowcolor=#aaa> † 상주읍성[감]
尙州邑城
† 선산읍성
善山邑城
성주읍성[감]
星州邑城
경상북도 영주시 경상남도 거제시 경상북도 안동시
<rowcolor=#aaa> ‡ 순흥읍성
順興邑城
† 아주현성
鵝州縣城
† 안동읍성[감]
安東邑城
경상남도 양산시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상북도 포항시
<rowcolor=#aaa> ‡ 양산읍성
梁山邑城
언양읍성
彦陽邑城
† 연일읍성 | 영일고읍성
延日邑城 | 迎日古邑城
경상북도 영덕군 경상남도 창녕군 경상북도 포항시
<rowcolor=#aaa> † 영덕읍성
盈德邑城
‡ 영산읍성
靈山邑城
‡ 영일읍성
迎日邑城
경상북도 영주시 경상북도 영천시 경상북도 영덕군
<rowcolor=#aaa> † 영천읍성
榮川邑城
† 영천읍성
永川邑城
‡ 영해읍성
寧海邑城
경상남도 창원시 울산광역시 중구 울산광역시 중구
<rowcolor=#aaa> 웅천읍성
熊川邑城
† 울산고읍성 | 계변성
蔚山古邑城 | 戒邊城
† 울산읍성
蔚山邑城
경상남도 의령군 경상북도 의성군 경상북도 포항시
<rowcolor=#aaa> ‡ 의령읍성
宜寧邑城
† 의성읍성
義城邑城
장기읍성[산]
長鬐邑城
경상남도 진주시 경상남도 창원시 경상남도 창원시
<rowcolor=#aaa> 진주읍성[병]
晉州邑城
† 진해읍성
鎭海邑城
‡ 창원읍성
昌原邑城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북도 포항시 경상북도 칠곡군
<rowcolor=#aaa> 청도읍성
淸道邑城
‡ 청하읍성
淸河邑城
칠곡읍성 | 가산산성[산]
漆谷邑城 | 架山山城
경상남도 함안군 경상북도 영주시 경상남도 하동군
<rowcolor=#aaa> ‡ 칠원읍성
漆原邑城
† 풍기읍성
豊基邑城
하동읍성
河東邑城
경상남도 함안군 경상남도 함양군 경상남도 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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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安邑城
‡ 함양고읍성
咸陽古邑城
† 함양읍성
咸陽邑城
경상북도 포항시
<rowcolor=#aaa> † 흥해읍성
興海邑城
}}}}}}}}}
{{{#fff † : 멸실  ‡ : 멸실 위기  ? : 실체 불명  볼드체 : 윤곽 온전/복원   [도] : 도읍지  [산] : 산성 읍치  [감] : 감영 소재  [병] : 병영 소재}}}

{{{#!wiki style="margin: -15px -10px -15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315288>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colbgcolor=#315288> 서울 한양도성
서울 漢陽都城
Hanyangdoseong\, the Seoul City Wall
소재지 <colbgcolor=#fff,#1f2023> 서울 종로구 누상동 산1-29번지 외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639\,920.58㎡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시대 태조 3년(1395)
소유단체 서울특별시
관리단체 서울특별시 }}}
파일:서울한양도성낙산일원.jpg
<colbgcolor=#bf1400> 한양도성 낙산 일원
문화유산채널에서 제작한 한양도성 관련 영상

1. 개요2. 성문3. 축성4. 파손 및 철거5. 복원
5.1. 세계문화유산 우선등재목록 등재
6. 한양도성 순성길
6.1. 인왕산 구간6.2. 백악(북악) 구간6.3. 낙산 구간6.4. 흥인지문 구간6.5. 남산(목멱산) 구간6.6. 숭례문 - 정동 구간
7. 기타8. 외부 링크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www.cha.go.kr/20080623131656896000.jpg
<colbgcolor=#bf1400> 〈도성도〉(18세기 제작 추정)
한양도성()은 조선수도였던 한성의 주위를 둘러싼 성곽과 문을 일컫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사적이다.[1]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1396년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후 궁궐과 도시를 방위하기 위해 지은 도성이다. 흔히 한양도성하면 성벽만을 생각하는데 숭례문, 흥인지문을 비롯한 서울 4대문과 그외 문도 한양도성에 포함된다.

'서울 성곽'이라는 이름도 한때 이 도성의 공식 명칭이었지만 2011년 7월 사적의 통일된 지정명칭 부여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서울 성곽이라는 단어는 통용되고 있으며 문화재 안내판에도 서울 성곽이라고 표기된 곳이 많으며 서울시가 정한 도성 순례길의 명칭도 '서울 성곽길'이다.

2. 성문

도성에는 총 8문이 있다. 흔히 4대문과 4소문으로 나뉘며, 4대문에는 숭례문(남대문), 흥인문(동대문), 돈의문(신문), 숙정문이, 4소문에는 소의문(서소문), 광희문, 창의문, 혜화문(동소문)이 대응된다. <사대문>의 실 용례는 실록 등에서 주로 기우제, 기청제를 지내는 기사에 언급되며 이는 관념상의 구분, 즉 동서남북 방위에 맞추어 부른 것으로 추측된다. (숙종 29년 6월 28일 기사 참고.) 실질적인 조선시대에 실제로 대문이라 자주 불리고 규모면에서 이름값을 한 문은 숭례문과 흥인문 둘이다. 돈의문은 신문(新門)이라 불렸으며, 숙정문은 산 속에 있어서 그냥 존재감이 없었다. <사소문>의 용례는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조선 후기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실제 운영 양상과 비교할 수 있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의 경우 조선 후기 '승정원 일기(정조 11년 기사)', '대전통편(大典通編)', '육전조례(六典條例)' 등의 예를 들어 정문(正門)과 간문(間門)이라는 관리상 구분체계를 주목했다. 이 체계는 통행량을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보이며 고종 4년 편찬된 법전인 육전조례의 경우 정문은 숭례문, 흥인문, 돈의문, 혜화문을 나타내고 간문은 소의문, 창의문, 광희문, 숙정문으로 정해져 있다. 둘의 차이는 관리 관원의 직책, 인원 수 등이다.#[2]

이외에 세조~예종 시기에 광희문 남쪽의 남산 동측 자락에 남소문(南小門)이 운영된 적이 있으나 폐쇄되었다.

다음 표에서 각 문에 관한 내용을 열람할 수 있다. 지금은 없는 문은 취소선 표시.
흥인문(동) 숭례문(남) 돈의문(서) 숙정문(북)
사대문 파일:서울_흥인지문_1_(촬영년도___2015년).jpg 파일:숭례문 정면.jpg 파일:external/munhwai.com/14081940592185.jpg 파일:attachment/640px-Sukjeongmun.jpg
혜화문(동북) 광희문(동남) 소의문(서남) 창의문(서북)
사소문 파일:2020年_혜화문.jpg 파일:external/tong.visitkorea.or.kr/1568501_image2_1.jpg 파일:서소문(소의문) 헤르만 산더 1906~1907년 촬영(국립민속박물관).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rea-Seoul-Changuimun-01.jpg

지형적으로 살펴보면 사이사이에 산들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북문인 숙정문을 제외하고는) 산을 피하여 성문을 설치하였고 방위가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다. 크게 보아 북쪽에는 북악산과 인왕산, 남쪽에는 목멱산이 있으므로 서쪽 편에서 돈의문(서문), 소의문(남서문), 숭례문(남문)은 인왕산~목멱산 사이 서쪽~서남쪽에 집중되고 창의문(북서문)은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의 골에 위치하여 서측의 의주로, 삼남로 등과 통해 있다. 동쪽 편에서 흥인문(동문)과 광희문(동남문)은 각각 낙산 기슭, 목멱산 기슭에 설치하고 혜화문은 낙산과 북악산 사이의 골에 설치하여 동쪽 교통을 담당하였다. 마지막으로 숙정문은 북악산 산중에 설치하여 실질적인 통로 역할을 하지 않았다. 공통적으로, 성문의 방어력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한쪽 성벽을 산지 지형에 의지하였다.

조선 후기 영조 대에 이르러서는 성벽 및 성문의 관리와 수비, 도성 밖 순찰을 삼군영, 즉 훈련도감(訓鍊都監),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이 나누어 맡게 했는데, 그 영역은 <도성삼군문분계지도>(都城三軍門分界之圖)에 구체적으로 지정되어 있다.(숙정문~돈의문은 훈련도감, 돈의문~광희문은 금위영, 광희문~숙정문은 어영청) 여기에서 비롯된 용어로는 어영청이 순찰을 담당하던 소의문~숭례문 바깥의 시장을 일곱번째 구역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된 칠패(七牌)시장 등이 있다.

3. 축성

1395년 수도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이성계는 도성을 건축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를 위해 도성건축 담당기구인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의 감독하에 건설했다.

성이 낙성된 후에는 배수지(排水地)로 5칸 수문(五間水門)·2칸 수문 등을 만드는 한편 성곽의 관문(關門)으로 숙청문[3](肅淸門: 북대문)·흥인문(興仁門: 동대문)·돈의문(敦義門: 서대문)·숭례문(崇禮門: 남대문)의 4대문과 혜화문(惠化門: 동소문)·광희문(光熙門: 시구문)·창의문(彰義門)·소덕문(昭德門: 서소문) 4소문을 합해 8문을 완성하였다.[4]

초축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태종, 세종, 숙종 연간 등의 여러 시기에 걸쳐 유지보수된 흔적이 남아있으며 그에 따라서 성석을 쌓은 모습이 차이가 있다. 그 양상의 변화는 태조 시절에는 일정한 패턴 없이 자연석을 쌓는 모습에서, 점차 정방형(정사각형)의 석재로 가공해서 쌓는 방법으로 변화하며 숙종 대에 이르러서는 정교한 정방형의 형태가 완성된다. 북악산 안내소의 팜플렛에 이러한 시대별 축조 차이가 설명되어 있으며, 성벽을 조금만 살펴보면 쉽게 볼 수 있으니 알아두면 투어의 소소한 재미가 될 것이다.한양도성 성벽의 시대별 쌓기 변화 성벽 바위에는 그 구역 축성을 담당한 고을과 책임자의 이름을 새겨놓아 결과에 대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다.

성벽의 높이는 현재 소실된 높은 구간은 10 m가 넘었지만 낮은 구간은 5m 남짓이었고 해자조차 없었기 때문에 전시에 방어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적이 한양까지 쳐들어오면 한양을 버리고 도주해야만 했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모두 그러했다. 이에 대해 조선시대에도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로, 도성은 전쟁이나 내란 방어용 성곽이라기보다는 왕권의 상징이란 의미가 더 컸고, 실용적 시설이라는 측면보다 인의와 예를 강조하여 평온을 기원하고자 했던 관념적으로 운영된 성격이 컸다고 설명한다.[5]

여러 전란을 겪는 동안 한양 방위체제는 계속해서 개편되었다. 또한 한양도성이 토성이 아닌 석성이 된 이유는 조선 전기 동아시아에서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 석성으로 둘러싸인 도성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한양도성을 처음 축성했을 때 사대문을 제외한 대부분 성곽 축성기간이 49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군사적으로도 한양도성은 처음부터 지키기 힘든 곳이다. 규모가 너무 커서 방어하려면 병력이 많이 필요하고(모든 성벽을 완벽히 방어하려면 5만명 이상의 정예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5만명의 정예병력이 있다면 애초에 더 나은 선택지가 많다.), 숭례문, 흥인지문 일대는 완전한 평지라서 지형상 불리하다. 게다가 성 바깥에 잇는 안산, 인왕산, 남산, 북한산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성 내부를 관측할 수 있는 감제고지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성 자체의 방위력을 확보하려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해서 성벽을 요새화하고 대규모 상비군을 주둔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조선도 한양도성 자체의 방위력은 최소화하고 대신 남한산성, 북한산성과 같이 인근의 요새화한 산성을 방어 거점으로 사용하는 방위전략을 세운 것이다.

4. 파손 및 철거

임진왜란 당시 성곽의 일부가 부서지고 광해군이 복원 작업을 진행했지만 이후의 병자호란때 청나라와의 조약 중 성곽을 복원도 추가로 쌓지도 하지 말라는 조약으로 그냥 방치되다가 1704년(숙종 30년) 이조판서 이유(李儒)의 주장으로 5군문(五軍門)의 장정을 동원하여 1711년(숙종 37)까지 수축하였으며, 1743년(영조 19년)에 다시 고쳤다. 그 밖에도 효종·현종·영조·순조 시대에 부분적인 개수를 행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서울의 성곽은 대체로 태조·세종·숙종 때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양도성은 90%가량 복원되었으나 일제강점기6.25 전쟁으로 도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과거에는 성벽으로 연결 되어 있었지만 일제가 교통 문제로 성문 쪽은 성벽들을 철거했다.# 그래서 낙산 같이 산 같은 곳은 성벽들이 보존 되어 있다.[6]

4대문의 경우 북대문은 산 속에 위치한 덕분에, 남대문동대문은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고니시 유키나가가 입성한 곳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일제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서대문은 얄짤없이 헐려버렸고 그 자리에 도로와 건물이 들어서버려 현재로서는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또한 안타깝게도 남대문은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으로 인해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잃고 처음부터 다시 복원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적은 4소문은 더 심각하다. 북소문의 경우 북대문과 비슷하게 산 속에 위치한 덕분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부터 온전히 살아남은 유일한 4소문이 되었다. 서소문 역시 서대문과 비슷하게 일제에 의해 헐린 뒤 현재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남소문동소문의 경우 일제에 의해 파괴된 후 현재 복원되긴 했으나, 원래 있던 제자리에 복원되지 못했다.

5.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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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서울성곽 복원 개요도. 2012년 자료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국방 유적 보존 및 정비 지시에 따라 구자춘 서울특별시장이 본격적으로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다. 1975년 광희문 문루 복원을 시작으로 훼손된 체성과 여장 복원, 주변 가옥 매입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75년부터 삼청지구(창의문~숙정문) 복원에 이어 2013년까지 진행된 인왕산 정상구간까지 총 길이 18,627m 중 69%인 12,771m의 복원작업이 완료되었다. 하지만 이때 이루어진 복원은 광화문과 같은 박정희 정권 특유의 엉터리 복원이었다. 성곽을 복원하는 데 15개월 밖에 들이지 않은 날림공사였으며 문화재의 원형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콘크리트 떡칠만 해놓았다. 당시 복원사업에 참여했던 이태기 서울대 교수가 "문화재의 비중은 그 역사성에 있으므로 새로운 조형은 문화재가 아니라고 전제하고 보수를 하기 전 상태를 상세히 기록, 원형 유지에 힘써야 하고 콘크리트는 전도체이므로 문화재에 해를 끼칠 우려가 많은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되었다. 결국 그 결과 당시에 복원된 성벽을 보면 시멘트를 떡칠해놓아서 원래의 성곽과는 전혀 다른 구조이며 시각적으로도 이질적이다. 이 정도면 복원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고 그냥 모조품을 세워 놓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과 함께 숭례문 남동측 광장구간 성벽복원까지 마무리 됐으며 남산 구간, 시장공관 구간, 동대문 성곽공원 구간이 추가로 복원될 예정이다.

2019년 정동길에서 돈의문터에 이르는 순성길을 정비하기로 했다. 그동안 사유지였거나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창덕여자중학교에 속해 있어 우회해야 했던 순성길을 원래 도성터 근처로 정비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성곽이 건물에 가려져 있거나 아직도 땅속에 파묻혀 있으며, 일부는 여장이 없는 채로 복원 된 곳도 있다. 그리고 숭례문같은 대문에 비해 성곽은 인지도가 많이 떨어져 일반인들의 관심도 필요할 듯 하다.

땅에 묻혔던 서울 남산 한양도성 유적 100여 년 만에 공개된다.

5.1. 세계문화유산 우선등재목록 등재

2012년 11월 23일 서울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르면 1년 뒤부터 등재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유네스코 권고 기준에 맞는 보존 관리를 하기 위해 올해 한양도성 전담부서를 신설한 데 이어 내년에 한양도성 연결 사업 등에 71억 원 가량을 우선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2013년부터는 연차별로 총서와 자료집을 발간해 이를 바탕으로 2014년 초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만약 서울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성곽은 물론 그 외 숭례문,흥인지문,숙정문같은 서울 4대문도 세계유산에 등재될수 있다.[7] 서울시는 체계적인 한양도성 관리를 위해 시 내부에 전담조직인 한양도성도감을 올해 하반기에 새로 만들고 책임자로 ‘도제조’[8]를 두기로 했다. 책임자는 4급 공무원이 맡게 될 예정으로 규모는 시 조직의 1개 과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 공간을 활용해 한양도성 박물관과 연구소도 설립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7년 3월 21일 이코모스로부터 다른 나라의 세계유산 도시 성벽과 비교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등재 반려되었다.#

현재 2022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자료를 보강하여 재추진하는 중이다. 참고로 이 성 내에 자리한 5대 궁궐중 하나인 창덕궁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2022년 12월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한 데 묶어《조선 수도성곽과 방어산성》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등록 성공하여 추진 중이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조선 수도성곽과 방어산성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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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양도성 순성길

한양도성은 서울 도심을 순환하며 수록이 적당히 우거져 시원하면서 보기 좋고 높낮이도 적당히 있어서 산책하기에 매우 좋다. 과거에도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면서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는 여행을 순성(巡城)놀이라고 하며 조선시대 당시 한성부 사람들이 여가활동으로 하였다. 현대까지 풍경이 잘 남아있는 인왕산-북악산 지역은 물론이고 낙산, 목멱산(남산)등지 또한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명승지였다. 최근들어 한양도성 순성길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시내에 위치한 순성길 주변에 많은 편의 시설이 갖춰지기 시작했으며 외국인 들에게도 인기코스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산책의 소소한 재미로 각 구간에서 지정된 가장 높은 곳에서 인증 셀카를 찍어서 홈페이지에 등록하면 인증 배지를 받을 수 있으며 사계절 인증 배지 네개를 모두 모으면 인증메달을 받을 수 있다. 동대문이 있는 동대문역한양도성박물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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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한양도성 순성길 세부지도, 2012년 자료[9]

6.1. 인왕산 구간

강북삼성병원 입구 돈의문 터에서 인왕산 정상, 창의문에 이르는 인왕산 구간은 비교적 최근 지어진 경희궁자이 단지를 끼고 있어 무난히 출발할 수 있다. 가는 길 중간에 홍난파 가옥과 사직터널 위를 통과하며 세븐일레븐 편의점 앞 길을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행 코스가 시작된다. 평소에 운동을 좀 했다면 무난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꽤 힘든 여정이 될 수 있다. 의외로 외부 순성길에서 바라보는 성벽이 훨씬 멋지므로 외부 순성길을 통해서 오르다가 인왕산 정상에 가까워 질 무렵 내부 순성길로 들어갈 수 있다. 참고로 해가 지기 1시간 반 정도 전부터 강북삼성병원에서 오르기 시작하면 서울 사대문 도심의 마천루들이 조명을 켜는 순간을 볼 수 있으므로 일몰 시간을 체크한다면 멋진 서울 도심의 야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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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인왕산 중턱에서 본 사대문안 도심
참고로 인왕산 정산 뿐만 아니라 인왕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꺽어 창의문, 윤동주 기념관 방향으로 5-10분 가량 걷다보면 시야가 홍제동, 한강 하류 방향과 서울 사대문 도심 방향이 모두 보이는 포인트가 있으니 참고할 수 있다. 입산 시간이 한정되는 북악산 구간에 비해 산행이 자유로우며 풍경은 그에 못지 않아 야경을 보기 위해서는 낙산 구간과 더불어 서울 야경을 위한 멋진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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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창의문 방면 야경 포인트에서 바라본 사대문안
참고로 반대편에 보이는 입장료를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남산서울타워에서 보는 서울 야경보다 인왕산-창의문 구간에서 보는 서울 아경이 더 멋지다고 하는 외국인 후기들도 많다. 인왕산을 거쳐 창의문으로 들어오게 되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기념관이 있는데, 운영시간에 맞춰 들어가면 윤동주 관련 동영상(12분)뿐 만 아니라 윤동주의 일생에 대해서도 훑어볼 수 도 있다. 저녁 때 창의문까지 왔다면 북악산 구간을 입산 제한 시간으로 바로 들어갈 수는 없으므로, 버스를 타고 광화문 인근으로 와서 삼청동에서 택시를 타고 삼청터널을 거쳐 한성대학교 쪽에 있는 혜화문-낙산 구간으로 이동하거나, 삼청동-계동길을 거쳐 와룡공원-경신고-혜화문 구간을 거쳐 낙산 구간을 향할 수 있다. 계동길중앙고등학교창덕궁 후원, 북촌한옥마을, 사대문안 종로 도심과 더불어 상당히 멋진 풍경을 제공한다.

6.2. 백악(북악) 구간

숙정문 부터 혜화문까지의 순성 구간으로, 북악산을 지난다. 한옥 건축가로 유명한 황두진이 지은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2005년 출판, 해냄출판사)를 보면 그 당시만 해도 개방되지 않은 구간이라 상상으로 북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사대문안을 스케치한 이미지를 실을 정도로 이 구간에서 바라본 사대문 도심, 경복궁과 창덕궁 후원이 매우 아름다울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악산, 청운대 뿐만 아니라 구간 대부분에서 서울 사대문안이 멋진 모습으로 보이며 인왕구간의 곡장처럼 이곳도 곡장이 있어 아리랑 고개 뒷편과 성북동 방향도 아주 잘 보인다. 창의문 방향에서 숙정문 방향으로 가다보면 1.21 소나무(68년 무장공비 침투 때 생긴 총탄 흔적)도 볼 수 있다. 2007년에야 개방되었기에 나무가 꽤 우거졌다. 말바위 안내소에 있는 화장실은 사용된 물을 정화해서 다시 사용하는 순환수세식 화장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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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백악 구간 스케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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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실제 모습
창의문 안내소-말바위 안내소 구간의 순성길은 탐방시간과 출입구에 제한이 있다. 1968년 김신조 일행이 침투해온 루트였기 때문에 국가보안상 중요한 곳이기 때문. 사건 이후 40년 동안 민간인 통행 불가지역이었던 이곳은 2007년 4월 오픈되었는데, 양끝의 안내소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며, 신분증[11]을 보여주고 신청서를 작성하면 표찰을 빌려주며 반대편 안내소로 나갈때 반납하면 된다. 오픈시간은 하절기는 09시부터 18시까지(입산은 16시까지), 동절기는 09시부터 17시까지(입산은 15시까지)였다. 2019년 4월 5일부터 탐방시간이 확대개방되었다. 겨울(4개월, 11~2월)은 09시부터 17시, 봄가을(4개월, 3~4월/9~10월)은 07시부터 18시, 여름(4개월, 5~8월)은 07시부터 19시까지이다. 동시에 탐방절차가 간소화되어, 신분확인 절차가 생략되어 바로 표찰을 빌려준다. 신분증은 필요하지 않게되었지만 수시로 등산복 차림의 군인들이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확인하고 곳곳에 CCTV와 탐조등과 감지장비가 있으니 허튼 짓은 생각도 하지 말자. 특히 드론 촬영 역시 군사지역이라 허가 없이 불가능하니 꼭 주의하시길...

6.3. 낙산 구간

혜화문 옆을 통과하는 창경궁로를 건너면 바로 낙산 구간에 진입할 수 있다. 한양도성 성곽의 산 구간 중 가장 완만하고 듬성 듬성 있는 장수마을 카페나 외부 순성길의 도성은 특히 저녁이나 밤에 로맨틱한 광경을 제공해 내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길게 연결된 도성에 비치는 조명이 상당히 독특하면서 로맨틱한 장면으로 보이는 듯. 낙산공원 정상에서 동숭동, 서울대 병원 방면으로 나즈막히 보이는 도심 풍경과 멋진 구간이다. 이후 암문을 거쳐 내부 순성길을 통해 이화벽화마을로 진입할 수 있으며 이후, YWCA방면으로 갈 수도 있다. 계속 순성길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보면 한양도성박물관 - 서울성곽공원 - 흥인지문까지 갈 수 있다.
파일:482B4819-69D8-4D41-8E2B-129BB2C79DF0.jpg
<colbgcolor=#bf1400> 낙산공원 인근의 한양도성

6.4. 흥인지문 구간

이곳 흥인지문 구간은 흥인지문을 걸쳐 이간수문, 동대문 운동장 터에 세워진 DDP, 광희문을 연결한다. 간선도로 및 전차도선이 이미 일제강점기 때부터 놓였기 때문에 숭례문-정동 지역더불어 한양도성이 가장 많이 파손된 지역이다. 오간수문도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 복원 같지 않게 복원되었다. 사실 사대문안을 관통하여 물길이 빠져나가는 청계천은 이전 조선 시대부터 사대문안 구역의 하수도 역할도 맡았으며 운반된 퇴적물이 막혀 바닥 준설을 주기적으로 해줘야 했던 곳이다. 이후 한양공고부터 광희문(수구문, 시구문)에 이르는 구간은 그 한양도성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6.5. 남산(목멱산) 구간

광희문에서 이어져서 서울신라호텔, 국립극장, 남산서울타워를 거쳐,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백범광장을 거쳐 서울 힐튼호텔, 숭례문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목멱산(남산)에는 굳이 입장료를 내고 N서울타워에 오르지 않더라도 경관이 좋은 전망대가 여러군데 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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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목멱 구간의 한양도성

6.6. 숭례문 - 정동 구간

한양도성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소의문(소덕문, 서소문)과 돈의문(서대문, 새문)의 멸실 과정에 대해 많이 들어봤을 것이며 이후,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이 구간 대부분의 도성이 멸실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지역도 그 위에 빌딩이나 학교가 들어서 있어 앞으로의 실질적인 복원에도 매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왕 구간 중 사직터널 윗 구간도 마찬가지. 본 지역도 소실된 곳이 많아 별도의 구간을 형성하지 못하고 인왕구간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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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성문 폐문 시간 이후 소의문 근처 성벽을 넘는 외국인과 안내인 소년: 한양도성박물관 내 모형 촬영
한양도성박물관에 가면, 폐문 시간에 급한 일이 있어 소의문 근처 도성 낮은 부분을 넘어가는 외국인과 그를 안내한 소년의 모습을 모형으로 전시한 것을 볼 수 있다. 박물관 기록에 따르면 실제 있었던 일을 재현한 듯. 숭례문 양측의 성벽이 복원되기 이전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인근에 있던 소의문을 잊고 살았음을 느끼게 해준다. 외국계 회사 지사, HSBC빌딩, 상공회의소 건물에 가려져 있고 파손되어 잊혀져가는 이 구간의 한양도성 터를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7. 기타

8. 외부 링크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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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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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지정될 당시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문화유산에 번호를 매기는 것이 유산의 중요도로 오인될 수 있음을 고려해 따로 번호를 매기지 않고 있다.[2] 홍순민, "조선후기 도성문 관리 방식의 변동", 서울과 역사, 2019, vol., no.101, pp. 61-105 KCI[3] 또는 숙정문(肅靖門)[4] 위키백과[5] 나각순. 2012. "서울 한양도성의 기능과 방위체제". 향토서울 80. 서울역사편찬원 자료제공[6] 산은 성벽이 있으나 없으나 낭떠러지므로 지나 갈 수 없으니 그냥 놔둔 것이다.[7] 돈의문은 아직 복원을 못했다.[8] 실지 제조, 도제조는 대게 판서, 정승급의 대신들이 겸직했다. 그리고 도제조는 정일품 관료들의 명예직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우측 링크를 참조. # 대장금 등 드라마에 나온 개념을 차용한 티가 팍팍 난다.[9] 연합뉴스 인터랙티브 미디어 랩에서 원본 이미지 열람 및 다운로드가 가능하다.[10] 그림 출처 -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황두진 저, 2005, 해냄출판사.[11] 반드시 원본이 필요하고 사본이나 사진은 인정되지 않는다.[12] 잠두봉[13] 4. 복원 단락 이미지 참조[14] 현재 시안 시에 있는 성벽은 명나라의 것으로, 약 14km이다.[15] 개경성은 한양도성처럼 1단 구조가 아닌 4단 겹구조이다. 가장 바깥의 외성만 있는것이 아니고 내성, 황성, 궁성이 외성 안에 또 있었다. 개경성은 강감찬 제의 왕가도 건설으로 1009년~1029년의 21년간 30만 4,000여명의 인력으로 나성(외성), 황성(발어참성), 궁성 3중 구조로 건설하고 여말선초 1391년~1393년 8.5㎞의 내성 축조로 총 둘레 약 23㎞의 나성(외성), 내성, 황성(발어참성), 궁성 구조의 4중구조, 25개 성문으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