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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1 21:28:42

계산성당

한국천주교 주교좌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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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80045><colcolor=#fff> 계산주교좌대성당
桂山主敎座大聖堂
Our Lady of Lourdes Catheral, Daegu
기본 정보
위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 (계산동2가)
종교 가톨릭
교구 대구관구 대구대교구
지위 공동주교좌성당(Cathedral)[1]
주임사제 이기수 비오
보좌사제
제1
서대원 스테파노
보좌사제
제2
백원기 루치아노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건축 정보
본당설립 1885년 12월 1일
축성 1903년 11월 1일
증축 1918년 12월 24일
양식 고딕이 혼합된 로마네스크
파일:attachment/tgkyesan.jpg
성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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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여담

1. 개요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계산동2가)에 있는 성당. 계산오거리 매일신문사 옆에 있다. 정식명칭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 대성당'이지만, 통상적으로 '계산성당'이라고 많이 불린다. 범어 대성당과 함께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공동 주교좌 성당이다. 1898년에 본당을 세웠는데, 본당의 주보성인루르드의 성모.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계산성당에서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까지 이르는 골목길이 대구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대구고등보통학교, 계성학교, 대구신명학교 학생들이 이 골목에서 3월 8일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바로 옆에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이상화의 고택이 있다.

주교좌 성당이라 그런지 주일 미사가 매우 자주, 늦게까지 있다. 가장 늦은 미사가 일요일 오후 9시 30분. 판공성사 기간의 마지막 주일에는 고해소 줄이 꽤 길어지니 최후의 보루로만 이용하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대구 최초의 가톨릭 성당인 계산성당과 역시 대구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인 대구제일교회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본다는 것. 교파를 초월하여 계산동, 동산동 일대는 대구 그리스도교 역사의 출발지점이다.

2. 역사

건립 당시 현 위치와 서편 청라언덕[2] 전체 사이에 고민하다가 노인 신자들의 요청으로 현 위치에 성당을 건립하기로 정해졌다고 한다. 원래는 성공회 강화성당과 비슷한 한옥식 건물이었지만, 화재로 1901년에 전소되자[3] 새로 고딕식 성당을 지었다. 참고로 이 성당은 경상도에서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성당이다.
파일:gyesan_interior_asd2.jpg
1991년 보수한 현 계산성당 내부 성전
설계는 명동성당을 건축하고 전주 전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맡았고, 외부공사나 벽돌 조달은 청나라 인부들이 맡았으며, 부지공사나 벽돌공장 건설 등은 일반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했다. 스테인드 글라스 같은 것들은 프랑스에서 산지직송, 즉 직접 공수했다. 1901년 2월 성전 부지정리작업을 시작하여 1902년 12월 1일 외부 공사를 완료하고, 1903년 11월 1일 뮈텔[4] 주교가 축성식을 거행했다. 1911년 4월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설정되면서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었으며, 1918년에 증축 공사를 시행했다. 초창기 스테인드 글라스는 12사도와 성당 제대 뒷편에 위치한 성인상 그리고 성당 입구에 있는 장미창으로 이루어졌다. 1991년에는 대대적인 보수/인테리어 공사가 있었는데, 이때 한국 순교자들과 4대 복음사가 스테인드 글라스를 추가했다. 또 마루바닥을 대리석으로 교체하고 함석지붕을 동판으로 교체하였다.
파일:gyesan_glass_asd2.jpg
계산성당 정면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주교좌 성당은 주교, 사제, 부제 서품식, 성유 축성 미사 등 교구 차원의 여러 전례를 치러야 하지만 계산성당이 너무 좁기 때문에 공동주교좌 성당으로 천주교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 주교좌 범어 대성당[5]을 지었다.

사적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문화재청으로부터 관리를 받고, 가끔씩 유지보수를 한다. 2016년 7월 현재 성당 북편 벽에 습기가 차는 현상이 나타나 배수로 공사를 진행했다. 아울러 천주교 대구대교구도 교구의 성지 보호를 명목으로 여러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3. 여담


[1] 나머지 하나는 범어 대성당이다.[2] 동산의료원개신교 선교사들 주택 새로 지은 대구제일교회가 있는 그 자리, 작곡가 박태준의 동무생각에 나오는 그 청라언덕이 여기 맞다.[3] 당시 일어났던 지진으로 제단의 촛대가 넘어지면서 화재로 이어졌다고 한다.[4]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8대 교구장[5] 가톨릭 신자인 선동열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1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기사 오오 감동님[6] 박정희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무종교였지만 불자인 아내의 영향으로 조금이나마 불교에 대해 친화적인 행보를 보였고, 육영수 여사는 실제로 독실한 불교 신자다. 또한 박정희도 그래서인지 공식 약력에는 (종교가) 불교라고 돼 있다. 그렇지만 둘 다 천주교에는 호의적이었는지, 딸 박근혜는 천주교 미션스쿨예수회 계열 대학서강대학교 출신이고, 후일 냉담하고 사실상 최태민과 가까워지며 영세교에 빠져들긴 하나, 성심여자중학교 시절 '율리아나'라는 세례명을 받았던 바는 있다.[7] 결혼일이 1950년 12월 12일6.25 전쟁 중이었다.[8]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도 타종하긴 하나 주님 성탄 대축일에만 실제 종을 타종하고 그 이외에는 녹음본을 송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