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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315288> 경주 오릉 慶州 五陵 | Five Royal Tombs, Gyeongju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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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colbgcolor=#fff,#1f2023>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67번지 |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
| 면적 | 185,129㎡ | |
| 지정연도 | 1969년 8월 27일 | |
| 건축시기 | 신라시대(서기 3~111년경) | |
| 소유단체 | 경주시 등 | |
| 관리단체 | 경주시 | }}} |
| | |
| <colbgcolor=#000> 경주역사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 |
| <colcolor=#fff> 국가·위치 | <colbgcolor=#fff,#1f2023> 경상북도 경주시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지정번호 | 976 |
| 등재연도 | 2000년 |
| 등재기준 | (ⅱ)[1], (ⅲ)[2] |
1. 개요
|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
| 경주 오릉(五陵) 전경[3] |
2. 상세
신라 초대 국왕 혁거세 거서간과 알영부인, 2대 남해 차차웅, 3대 유리 이사금, 5대 파사 이사금 다섯 명의 능이라고 전한다. 네 왕들의 공통점은 모두 박씨라는 것으로, 가운데 하나를 두고 나머지 네 무덤이 한쪽 면에 자리하였다.다만 삼국유사에는 이 다섯 왕릉이 4왕 1왕비 다섯 명이 묻힌 게 아니라, 5곳 모두 박혁거세의 신체 일부를 따로 묻은 것이라는 설화가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박혁거세가 하늘로 승천한 후 시체가 다섯으로 나뉘어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서기 4년) 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레 뒤에 유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으며 왕후도 역시 죽었다고 한다. 국인(나라 사람)들이 합장을 하려고 했더니 큰 뱀이 나와서 내쫓아 못하게 하므로 5체(五體)를 5릉(五陵)에 각각 장사지내고 역시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도 하니 담엄사 북쪽 왕릉이 바로 이것이다. 태자 남해왕(南解王)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 제1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 제1
오릉은 마립간 시대의 대표적 무덤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이라고 추측한다. 마립간 시대보다 몇백년 이전인 신라 건국 초기의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이 아니라 널무덤이나 덧널무덤이므로 오릉은 신라 초기의 왕릉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6] 돌무지덧널무덤, 즉 적석목곽묘로 추정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돌무지덧널무덤은 나무로 관곽을 만든 뒤 돌을 잔뜩 쌓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만든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목곽이 썩으면 위에 쌓인 돌과 흙의 무게 때문에 붕괴되어 봉분의 정상부가 살짝 내려앉아 편평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다만 봉분 윗부분이 이처럼 평평해지는 것이 꼭 목곽이 썩어야만 생기진 않기 때문에, 실제로 발굴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추측으로 남을 뿐이다.
물론 박씨 가문의 성지와 같은 곳이라 여길 발굴조사하기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무덤을 파헤쳐 열어봄은 세계적으로 터부이지만, 특히 유교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에서는 그것이 어떤 정당한 이유이든 간에, 가령 학술적인 이유라도 후손들이 결사반대할 일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왕릉급 신라 고분들은 누가 묻혔는지 명확하지 않았던 황남대총, 천마총 등이지, 특정 왕릉으로 비정된 곳을 발굴한 사례는 거의 없다.[7] 대한민국의 박씨는 본관을 막론하고 모두가 계보상 박혁거세의 후손이므로, 그냥 문화재 정도 대우만 받는 다른 대부분 신라 왕릉들에 비해[8], 시조가 묻힌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성지로서 중요시 한다.
아무튼 발굴조사는 못 해도 겉으로 보기에 무덤 양식이 고고학과 일치하지 않는 이런 모순을 설명하고자 눌지 마립간대의
오릉 경내에 알영부인이 계룡에 의해 탄생한 전설상의 장소인 알영정 우물과, 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 숭덕전, 조선시대에 세운 왕릉비가 있으며, 능원 서남쪽 소나무숲에는 숭덕전 남쪽에 있던 담암사지에서 출토된 석재를 옮겨 놓았다. 멀지 않은 거리에 박혁거세 탄생설화의 배경인 나정이 있다. 나정 자리에 있었다고 드러난 신라 신궁 역시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왕들은 즉위하면 1년 안에 신궁에 크게 제사를 지내는 관례가 있었다. 그리고 혁거세부터 사용한 신라 최초의 궁궐 금성도 아직 터를 찾지 못했고 위치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일단 삼국유사 기록상으론 오릉 바로 근처에 있는 창림사 절터 자리에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오릉과 후대의 모든 박씨 왕의 왕릉은 거의 천 년 뒤에 즉위한 신덕왕 등이 묻힌 배동 삼릉, 경애왕릉 등을 포함해 전부 경주 시가지 서남쪽, 남산 서쪽에 줄지어 있다. 그래서 경주 시가지 서남쪽, 남산 서북쪽의 이 구역이 서라벌 내에서도 박씨 세력과 특히 밀착된 지역이 아닐까 추측되고 있다.
왕릉 외에 지금 남은 건물들은 조선시대 초반인 1429년 혹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다시 지은 것들이다. 또한 매년 춘분에 신라 역대 박씨왕을 기리는 숭덕전에서 춘향대제(春享大祭)를 여는데, 박씨는 본관에 상관없이 모두 박혁거세 계열에 근간을 두므로 범박씨가 모두 참여한다. 실제 고령 박씨인 박근혜도 대통령 당선 전에는 여기에 매년 참석했다.
오릉 주위로 숲이 울창하게 조성되었는데, 별로 넓지도 않은데도 능역에 고라니가 살아 가끔 관람하다 마주친다.[10]
3. 사적 제172호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transparent><tablebgcolor=transparent>경주시내 평지 서남쪽에 위치한 4기의 봉토무덤과 1기의 원형무덤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이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으로,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당시의 무덤 형식은 아니다.
※(신라오릉 → 경주 오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경주 오릉 (慶州 五陵) ||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신라 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혁거세왕이 임금자리에 있은지 62년 만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에 몸이 흩어져 땅에 떨어지자 왕비도 따라 죽으니, 사람들이 같이 묻으려고 했으나 큰 뱀이 방해해서 몸의 다섯부분을 각각 묻었는데, 그것을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했다고 한다.
내부구조는 알 수 없으나 무덤의 겉모습은 경주시내에 있는 다른 삼국시대 신라무덤과 같이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으로, 1호 무덤이 높이 10m로 가장 크며, 2호 무덤은 표주박형으로 봉분이 두 개인 2인용 무덤이다. 이러한 대형 원형 봉토무덤은 신라에서는 4세기 이후 등장하는 것으로 박혁거세 당시의 무덤 형식은 아니다.
※(신라오릉 → 경주 오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경주 오릉 (慶州 五陵) ||
3.1. 안내판 설명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transparent><tablebgcolor=transparent>경주 오릉
慶州 五陵
사적
慶州 五陵
사적
이곳은 신라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으로 시조인 박혁거세왕(朴赫居世王, 기원전 57∼기원후 4 재위)과 그의 왕후 알영부인(閼英夫人, 기원전 69∼기원후 4), 제2대 남해왕(南解王, 4∼24 재위), 제3대 유리왕(儒理王, 24∼57 재위), 제5대 파사왕(婆娑王, 80∼112 재위)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는 네 분의 왕을 담엄사 북쪽 사릉원 내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시조왕은 기원전 37년 서울에 성을 쌓아 금성(金城)이라 하였고 기원전 32년에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남해왕은 서기 8년 탈해(脫解)가 뛰어난 인물이란 말을 듣고 불러 사위로 삼고 10년 대보(大輔)의 벼슬을 주어 나라의 일을 맡겼다. 유리왕은 9년(32)에 6촌을 6부(六部)로 고치고 이들에게 이(李)·최(崔)·손(孫)·정(鄭)·배(裵)·설(薛)의 성(姓)을 주었으며, 17관등(官等)을 마련했다고 한다. 파사왕은 가야와 백제에 대한 방어체제를 정비하면서 이웃한 소국들을 병합해 신라의 영토를 확대했다.
다섯 무덤 가운데 서쪽 무덤이 가장 큰데 직경 약 33m, 높이 약 7m이다. 이 무덤의 동쪽에는 최근에 만든 상석, 표석과 진입부가 있고, 진입부에는 일자 제각(一字祭閣)이 있다. 남쪽 무덤은 봉분 두 개가 이어져 있다. 무덤의 외형으로 보아 가까운 대릉원 일대의 고분처럼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일 가능성이 있다. 능원 안에는 박혁거세왕을 제향하는 숭덕전(崇德殿)과 그 내력을 새긴 신도비가 있다. 동쪽에는 알영부인의 탄생지로 전해지는 알영정(閼英井)이 있다. ||
시조왕은 기원전 37년 서울에 성을 쌓아 금성(金城)이라 하였고 기원전 32년에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남해왕은 서기 8년 탈해(脫解)가 뛰어난 인물이란 말을 듣고 불러 사위로 삼고 10년 대보(大輔)의 벼슬을 주어 나라의 일을 맡겼다. 유리왕은 9년(32)에 6촌을 6부(六部)로 고치고 이들에게 이(李)·최(崔)·손(孫)·정(鄭)·배(裵)·설(薛)의 성(姓)을 주었으며, 17관등(官等)을 마련했다고 한다. 파사왕은 가야와 백제에 대한 방어체제를 정비하면서 이웃한 소국들을 병합해 신라의 영토를 확대했다.
다섯 무덤 가운데 서쪽 무덤이 가장 큰데 직경 약 33m, 높이 약 7m이다. 이 무덤의 동쪽에는 최근에 만든 상석, 표석과 진입부가 있고, 진입부에는 일자 제각(一字祭閣)이 있다. 남쪽 무덤은 봉분 두 개가 이어져 있다. 무덤의 외형으로 보아 가까운 대릉원 일대의 고분처럼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일 가능성이 있다. 능원 안에는 박혁거세왕을 제향하는 숭덕전(崇德殿)과 그 내력을 새긴 신도비가 있다. 동쪽에는 알영부인의 탄생지로 전해지는 알영정(閼英井)이 있다. ||
4. 숭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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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내동리 쌍무덤. 옥야리 장동 방대형 고분 4기 총 5기 |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 14%" {{{#!folding ⠀[번호없음-2]⠀ {{{#!wiki style="margin:-10px 0" | <tablebordercolor=transparent><tablebgcolor=transparent> 2026.05.1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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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금척 |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제1릉은 가장 남쪽에 있으며 높이 약 10m로 5기 가운데 가장 높고 크다. 제2릉은 제1릉의 동북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9m이다. 제3릉은 제2릉의 동쪽에 표주박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높이는 약 7.2m이다. 제4릉은 제2릉의 서쪽에 있으며 높이는 약 3.6m이다. 제5릉은 제4릉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1.8m이다.[4] 舊 사적 제172호[5] 2021년 9월 기준.[6] 이근직 《신라왕릉연구》 학연문화사, 2012년.[7] 그 외에 신덕왕릉처럼 도굴 피해를 입은 뒤 수습하는 과정에서 내부 구조가 드러나는 경우는 있었다.[8] 이곳 외에 후손들이 중요시하는 신라왕릉으로는 경주 김씨의 중시조인 경순왕이 묻힌 경순왕릉이 있다.[9] 대릉원 권역 내에서도 후대에 적석목곽묘로 개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인 검총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냥 무시할 만한 가설은 아니다.[10] 오릉 안내판에도 고라니가 출몰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