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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08:14:09

알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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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신라 혁거세 거서간의 왕비
알영부인 | 閼英夫人
파일:external/www.gyeongjuimage.or.kr/w_%EC%98%A4%EB%A6%8903(%EC%A0%84%EA%B2%BD)_%EB%8F%84%EB%A1%9D148P.jpg
사릉 전경
출생
(음력)
기원전 53년
진한 사로국 서라벌
(現 경상북도 경주시 일원)
사망
(음력)
4년 이후
사로국 서라벌
(現 경상북도 경주시 일원)
능묘 사릉(蛇陵)
재임기간 사로국 왕비
기원전 57년 4월 28일 ~ 4년 3월 (60년 11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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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본관 밀양 박씨
알영(閼英) / 아리영(娥利英) / 아이영(娥伊英) / 아영(娥英)
부군 혁거세 거서간
자녀
슬하 1남 1녀 [ 펼치기 · 접기 ]
아들 - 남해 차차웅
딸 - 아로공주
호칭 이성(二聖)
시호 알영부인(閼英夫人) }}}}}}}}}
1. 개요2. 탄생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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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제 천자(天子)께선 강림하셨으니, 배필이 될 덕을 지닌 여군(女君)을 찾자!"
今天子已降 宜覓有德 女君配之!
- 《삼국유사》 中, 혁거세의 강림에 고무된 사람들의 외침.
신라의 초대 국왕 혁거세 거서간의 부인이자 신라 최초의 왕비.

2. 탄생 설화

기록에 의하면 이 알영정 우물에 나타났고, 알영은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1] 박혁거세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 부분을 후대에 불교가 전래된 후 석가모니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설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발견했는데 태어났을 때 아기의 입술부리 모양이었는데[2] 목욕을 시키니 부리가 빠졌고 알영정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 알영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알영정 우물은 지금은 경주 오릉 숭덕전 구석의 외진 곳에 있는데 커다란 덮개돌 3개로 덮였고 우물물은 돌 사이로 약간 보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우물인지 뭔지 눈에 잘 안 띈다. 알영정(閼英井)이라고 한자로 쓴 커다란 바위가 큰 연못(알영지) 옆에 설치되어서 이 못을 알영정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꽤나 많은데, 엄연히 한자로 우물 정(井) 자를 쓴 지명인데도 구글에 알영정이라고 치면 우물 말고 연못의 이미지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이후 자라면서 빼어난 용모와 덕행을 갖췄다고 하고 13세가 되었을 때 혁거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알영도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남해 차차웅을 비롯한 3남 2녀를 낳았다. 이후 행실이 어질고 보필을 잘해서 당시 사람들은 혁거세와 알영을 두 성인(二聖)이라 불렀다고 한다.

알영부인 탄강 설화는 단군신화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으로 해석하는 것처럼[3] 토템을 섬기는 부족이 등장했고 외부 이주 세력인 박씨와 결합했음을 뜻한다고 해석한다.

후대의 문헌 기록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뿐 아니라 신라인들이 직접 남긴 울주 천전리 각석에도 알영 탄생 설화를 묘사한 것 같은 그림이 있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로 보이는 그림(말과 아이) 왼쪽 아래에 있는 두 용과 알 속에 있는 듯한 사람이 알영이다.

삼국유사에는 박혁거세가 승하한 직후 알영도 따라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이들을 합장하려 하니 큰 이 나타나 방해해서 결국 따로 묻어서 오릉이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1] 삼국사기에는 정확히 무슨 용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알영이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삼국유사에는 알영을 낳은 용이 계룡이며, 알영이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2] 편두한 외모를 묘사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편두를 해서 두상을 변화시키면 입 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오고 대신 이마는 들어가기 때문이다.[3] 다만 이 해석은 1980년대 이후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