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 color: #fbe673; min-height: 33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혁거세 후 | 남해 후 | 유리 후 | |
알영부인 | 운제부인 | 이리생부인 | 사요왕의 딸 김씨 | |
탈해 후 | 파사 비 | 지마 후 | 일성 후 | |
아효부인 | 사성부인 | 애례부인 | 지소례왕의 딸 박씨 | |
아달라 후 | 벌휴 후 | 내해 후 | 조분 후 | |
내례부인 | 석골정의 모후 | 아루부인 | 아이혜부인 | |
조분 후 | 미추 후 | 흘해 후 | 내물 후 | |
운소부인 | 광명부인 | 석공한의 모후 | 보반부인 | |
실성 후 | 눌지 후 | 자비 후 | 소지 후 | |
아류부인 | 차로부인 | 1 복호의 딸 김씨2 미사흔의 딸 김씨 | 1 습보의 딸 김씨2 선혜부인 | |
지증왕 후 | 법흥왕 후 | 진흥왕 후 | 진지왕 후 | |
연제부인 | 보도부인 | 1 사도부인2 소비 부여씨 | 지도부인 | |
진평왕 후 | 무열왕 후 | 문무왕 후 | 신문왕 후 | |
1 마야부인2 승만부인 | 문명왕후 | 자의왕후 | 폐 폐비 김씨2 신목왕후 | |
성덕왕 후 | 효성왕 후 | 경덕왕 후 | ||
폐 성정왕후2 소덕왕후 | 1 왕비 박씨2 혜명부인3 정종의 딸 김씨 | 폐 사량부인 | 경수태후 | |
혜공왕 후 | 선덕왕 후 | 원성왕 후 | 소성왕 후 | |
1 신보왕후2 창창부인 | 구족부인 | 숙정부인 | 계화부인 | |
애장왕 후 | 헌덕왕 비 | 흥덕왕 후 | 희강왕 후 | |
왕후 박씨 | 귀승부인 | 정목왕후 | 문목왕후 | |
민애왕 후 | 신무왕 후 | 문성왕 후 | 헌안왕 후 | |
윤용왕후 | 정계부인 | 1 소명왕후2 | 문의왕후의 모후 | |
경문왕 후 | 헌강왕 비 | 효공왕 후 | 신덕왕 후 | |
1 문의왕후2 차비 김씨 | 의명부인 | 왕비 박씨 | 의성왕후 | |
경명왕 후 | 경애왕 후 | 경순왕 후 | ||
왕비 김씨 | 왕비 | 죽방부인 | ||
}}}}}}}}} |
차비 김씨 관련 틀 | |||||||||||
|
<colbgcolor=#7C2A8D><colcolor=#fbe673> 신라 경문왕의 제2비 차비 김씨 | 次妃 金氏 | |||
신라 헌안왕의 왕녀 | |||
출생 | 842년 | ||
사망 | 미상 | ||
재위기간 | 신라 차비 | ||
863년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7C2A8D><colcolor=#fbe673> 본관 | 경주 김씨 | |
부왕 | 헌안왕 | ||
모후 | 안정왕후 김씨(安貞王后 金氏) | ||
형제자매 | 자매 - 문의왕후 | ||
부군 | 경문왕 | ||
자녀 | 슬하 1남? 아들 - 궁예추정 | ||
봉작 | 차비(次妃) | }}}}}}}}} |
[clearfix]
1. 소개
신라의 공주이자 왕비. 헌안왕의 차녀이며 영화부인의 여동생이고 경문왕의 둘째 왕비(차비)다. 헌강왕, 정강왕, 진성여왕에게는 이모이자 의붓어머니.2. 생애
860년 9월, 아버지 헌안왕이 경문왕을 사위로 낙점하고 20세의 장녀(훗날의 영화부인), 19세의 차녀 중 1명을 아내로 택하게 했다. 경문왕은 부모로부터 언니는 못생겼고 여동생은 아름다우니 차녀를 택하라 들었으나, 흥륜사의 범교사의 말을 따라 장녀와 혼인하였다. 863년, 차녀 또한 경문왕의 둘째 왕비가 되었으나 언니와 달리 호가 없고 이름도 전해지지 않아 차비 김씨라고 불린다.개선사석등기에 기록된 '대랑(大娘)'이라는 인물이 기존에는 경문왕과 문의왕후의 장녀 진성여왕으로 추정되었으나, 경문왕의 차비 김씨라는 주장이 김창겸 교수에 의해 제기되었다.출처 이에 따르면 대랑이라는 표기는 대부인(大夫人)과 완전히 같은 단어인데, “대(大)”라는 글자가 이름인지, 아니면 한자 뜻 그대로 크다는 뜻인지는 불명.
안성시 측 구전에 따르면 궁예의 모친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삼국사기에서 궁예는 헌안왕 또는 경문왕의 서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 경문왕은 헌안왕의 두 딸인 영화부인과 차비 김씨 자매를 모두 왕비로 삼았다는 점에서 구전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매 중 언니가 딸을 낳고 여동생이 아들을 낳았다는 구전과 달리 영화부인은 두 아들 헌강왕과 정강왕을 낳은 이후에야 막내딸 진성여왕을 보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