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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개성왕의 왕비 정의태후 | 貞懿太后 | ||
신라 성덕왕의 왕녀 김사소 | 金四炤 | ||
이름 | 사소(四炤)? | |
출생 | 704년 이후 또는 716년 이전[1] | |
사망 | 780년 이전[2] | |
본관 | 경주 김씨 | |
부왕 | 성덕왕 | |
모후 | 성정왕후[3] | |
형제자매 | 동복형제 - 효상태자, 김수충 이복형제 - 효성왕, 경덕왕 | |
부군 | 개성왕[4] | |
자녀 | 슬하 1남 아들 - 선덕왕 | |
호 | 사소부인(四炤夫人) | |
시호 | 정의태후(貞懿太后)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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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의 공주이자 추존 왕후. 제 33대 성덕왕의 딸이자 제 37대 선덕왕의 어머니. 34대 효성왕과 35대 경덕왕의 이복 누나이며 36대 혜공왕의 고모이기도 하다.이찬 김효방과 혼인해 아들 선덕왕을 낳았으나 얼마 못 가 김효방이 사망했다. 선덕왕이 즉위한 이후 '정의태후'로 추존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선덕왕 사후 김주원을 왕위에 올리라는 교지를 내렸다고 적혀 있다.
[1] 전술했듯이 보통 성덕왕의 첫째 왕비였던 성정왕후의 소생으로 추정하므로, 성정왕후가 왕비였을 당시 출생했을 것이다.[2] 37대 선덕왕이 즉위한 후 시호를 부여했으므로 그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선덕왕 사후 김주원을 왕위에 올리라는 교지를 내렸다고 적혀 있지만 이는 후대의 가필로 보인다.[3] 생모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정황상 성덕왕의 첫째 왕비였던 성정왕후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덕왕의 둘째 왕비 소덕왕후가 입궁한 것이 720년이고, 사소부인의 남편인 김효방이 아들 김양상을 두고 사망한 것이 734년이다. 소덕왕후가 입궁하자마자 사소부인을 낳았고 김양상이 유복자에 가깝게 태어났다고 치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다소 빠듯한 감이 있다. 게다가 성정왕후는 거의 입궁 7년차나 되어서야 맏아들인 김중경을 낳았는지라.[4] 본명은 김효방(金孝方)이다. 아들 김양상이 왕위에 오른 후 개성대왕(開聖大王)으로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