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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부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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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눌지 마립간의 왕비 차로부인 | 次老夫人 | |||
<colbgcolor=#7C2A8D><colcolor=#fbe673> 신라 실성왕의 왕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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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효과로 복원한 황남대총 피장자의 모습 | |||
출생 | 393년 이전[1] | ||
사망 | 미상 | ||
능묘 | 황남대총(추정) | ||
재임기간 (음력) | 신라 왕비 | ||
417년 5월 ~ 458년 8월 (41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7C2A8D><colcolor=#fbe673> 본관 | 경주 김씨 | |
부왕 | 실성 마립간 | ||
모후 | 아류부인 | ||
부군 | 눌지 마립간 | ||
자녀 | 슬하 1남 2녀? 아들 - 김자비 딸 - 조생부인, 성국공주?[2] | ||
신장 | 143cm(추정)[3] | ||
호 | 차로부인(次老夫人) | ||
이칭 | 아로부인(阿老夫人) |
1. 개요
신라의 공주이자 왕비. 본관은 경주 김씨. 실성 마립간과 아류부인의 딸, 눌지 마립간의 왕비, 자비 마립간의 어머니.아버지와 남편 사이의 관계가 막장인데, 차로부인은 아버지 실성 마립간을 시해한 친척 눌지 마립간의 왕비가 된 것이다.
별칭은 아로부인(阿老夫人)[4]이지만, 아효부인의 별칭과 한자까지 똑같아서 혼동할 우려가 있다. 다만 둘의 성씨가 김씨와 박씨로 다르기 때문에 성씨를 병기하면 혼동을 피할 수 있다.
아로(阿老)라는 이름을 개인의 인명이 아닌 농경사회에서 사제를 수행하는 집단이나 특정한 직능을 표현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5]
능묘는 비정된 곳이 없으나 대릉원에서 두 무덤이 합쳐진 모습의 황남대총 남분이 남편 눌지 마립간의 무덤이라는 설이 인정받고 있으니 차로부인도 황남대총 북분에 묻혔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북분의 주인이 그녀라면 황남대총 북분 금관의 주인이기도 할 것이다.
2. 관련 기록
- 삼국사기 신라본기 눌지 마립간조: (눌지 마립간의) 왕비는 실성왕의 딸이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자비 마립간조: (자비 마립간의) 어머니 김씨는 실성왕의 딸이다.
- 삼국유사 왕력편 자비 마립간조: (자비 마립간의) 어머니는 아로부인인데 차로부인이라고도 하며, 실성왕의 딸이다.
[1] 눌지 마립간이 393년 이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차로부인이 눌지 마립간과 결혼할때 당시 결혼 연령인 15세때 결혼했고 결혼 당시에 눌지 마립간과 같은 나이였다면 차로부인은 393년 이전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2] 조생부인과 동일인물일 가능성 있음.[3] 출처 황남대총의 북분 주인 머리부터 발까지의 길이로 추정한 키인데 황남대총 북분의 주인이 차로부인이라고 가정하면 차로부인의 키는 143cm가 된다.[4] 次와 阿의 상고한어 발음은 각각 /*[s-n̥\]i[j\]-s/, /*qˤa[j\]/로 서로 상당히 다르다. 차로(次老)는 훈차표기인데 차로(次老)의 로(老)는 말음 첨기이다. 일본서기에 가야의 관직 하한기(下旱岐)와 차한기(次旱岐)가 보인다. 둘은 한자표기만 다른 같은 관직으로 下를 훈으로 아로시(アロシ)로 적고있다. アロ는 아래(下)를 シ는 사이시옷을 적어 놓은 것인데 次 또한 アロ로 볼 수 있으므로 아로(阿老)와 차로(次老)는 서로 같은 음을 적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5] 신라 상고기에 왕비의 이름 중에는 'ar'계 인명이 자주 보인다. 신라 시조 혁거세의 누이가 娥伊英(娥英)이고, 왕비는 閼英이다. 또한, 남해차차웅의 비인阿婁, 누이 阿老, 탈해이사금의 비인 阿孝(阿老, 阿尼), 아달라이사금의 비인 內禮, 지마이사금의 비인 愛禮, 조분이사금의 비인 阿爾兮, 내물의 비인 內禮希, 실성의 비인 阿類, 눌지마립간의 비인 阿老 등이다. 이들은 동일한 의미의 이름을 가진 왕비로 나오며,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과 남해차차웅의 누이 아로를 통해 사제적인 성격을 상정할 수 있다. 결국 'ar'계 인명은 사제의 성격을 가진 인물을 의미한다. 'ar'계 인명이 신라 건국기부터 왕실 여성에게 사용된 이유는 사제라는 특수한 직능과 관련되어 있으며, 여사제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ar'는 농경사회에서 사제를 수행하는 왕이나 왕비가 농작의 풍요를 기원하다는 의미에서 司祭와 연결시킬 수 있다.(신라 마립간시기 왕위계승원리와 왕권의 성격, 김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