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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21 19:02:36

경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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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339호
<colbgcolor=#315288> 전주 경기전
全州 慶基殿 | Jeonju Gyeonggijeon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풍남동3가)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제사유적 / 제사터
면적 49,589㎡
지정연도 1991년 1월 9일
제작시기 조선 시대[1]
1. 개요2. 역사3. 건축
3.1. 경기전3.2. 조경묘3.3. 전주사고
4. 관람5. 기타6. 외부 링크7. 사적 제339호
[clearfix]

1. 개요

국보 제317호인 조선 태조 이성계어진인 〈조선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며, 어진을 모신 정전은 보물 제1578호다.

경기전 권역은 1991년 사적 제339호로 지정됐다.

2. 역사

파일:전주_경기전_좌측에서_바라_본_본전_(촬영년도___2015년) 문화재청.jpg파일:태조 어진.jpg
[왼쪽] 2015년 정전의 모습. [오른쪽] 경기전에 봉안했던 태조 어진. 현재 정전에 걸려있는 어진은 모사본이며, 원본은 어진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원본은 1년에 1번 11월중에 약 3~4주간 전시된다고 한다.
1410년(태종 10년), 전주읍성 안에 태조의 어진을 모시는 '어용전(御容殿)'을 세웠다.[2] 1442년(세종 24년) '경기전'으로 이름을 고쳤다. '경기(慶基)'라는 이름은 조선국성(國姓)인 전주 이씨의 발상지이므로 '경사스러움(慶)이 터잡은(基) 곳'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때 경기전을 제외한 4곳은 모두 불탔고, 정유재란 때 이 경기전마저 소실되었다. 그 후, 1614년(광해군 6년)에다시 지었다. 태조 어진은 임진왜란 당시 묘향산,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 정유재란 때는 서울 명륜당, 그리고 동학농민운동 때는 위봉산성으로 옮기어 보존할 수 있었다.[3]
파일:경기전 본전 국립중앙박물관.jpg파일:경기전 배치도 일제강점기 국립중앙박물관 수정.jpg
[왼쪽] 1910년 정전의 모습. [오른쪽] 일제강점기 경기전 배치도. 그림 위가 서쪽이다. 왼쪽이 경기전, 오른쪽이 조경묘이다. 중앙에 '학교' 글자가 보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초-중학교인 전주심상고등소학교[4]를 지으면서 원래 있던 부속채 건물이 상당히 헐렸다. 2004년에 복원 완료 되었다. 인터넷상에서 경기전의 원래 영역으로 지적받는 바로 옆의 현재 중앙초등학교 부지는 조선시대에는 전주부성의 밖이었으며, 원래부터 경기전과는 전혀 무관한 장소였다. 한때 전주시립박물관도 경내에 있었으나 국립전주박물관이 생기면서 없어졌다.

현재 경기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경기전과 전주사고, 조경묘, 어진박물관, 경기전 부속채를 관람할 수 있다.

3. 건축

3.1. 경기전

파일:경기전.jpg
홍살문과 외신문

3.2. 조경묘

3.3. 전주사고

파일:%EC%82%AC%EC%A7%84_8_.jpg
실록각

4. 관람

입장료는 무료였으나, 2012년 9월에 유료화 정책이 발표되어 2018년 12월 현재는 어른이 3,000원 (65세 이상은 무료), 청소년이 2,000원, 어린이가 1,000원이다. 그리고 경기전에는 정문과 동문, 서문이 있다. 경기전과 중앙초등학교 사이길로 가면 어진박물관과 가까운 동문이 있고, 경기전막걸리, 옛촌막걸리 방향에 서문이 있는데, 사람들이 한옥마을에 면한 정문에만 줄을 길게 서서 이 쪽은 한적한 편이다.

보다 저렴하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주시민은 어른도 천원이고,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 무료관람일이다.

2018년 기준 왕과의 산책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

오전 10시 오후 2시에 찾아가면 외국인을 위한 영어, 중국어, 일본어 가이드가 제공된다.

2012년부터 경기전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경기전 정문에 수문장 배치, 교대식[5] 및 경기전 부속건물에 여러 체험[6] 이벤트가 시행되고 있는데 관광객이 몰리는 방학 시즌에는 휴무인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실시하고 있다. 가격도 저렴한 편. 1,000원 내지 2,000원 정도 된다.

경기전 정문에 서 있는 수문장은 경복궁 및 여러 궁궐에서와 마찬가지로 기간제 알바일지언정, 나름 훈련받은 전문 인력이다.

KBS 1TV의〈숨터〉에서도 파노라마 형식으로 소개되었다.

5. 기타

6. 외부 링크

7. 사적 제339호

조선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년(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헌·익랑 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경기전 → 전주 경기전)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1]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는 전주 경기전의 제작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 이외 평양, 경주, 개성, 영흥에도 건립되었다.[3]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주성이 동학군에게 함락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선 조정이 뒷목을 잡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왕조의 창업자인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전주성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전주성을 점령한 뒤, 농민군은 전주관아나 향교 같은 주요 관공서 건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애초에 조선왕조 자체를 부정하고 전복할 목적으로 일으킨 운동도 아니었다.[4] 현재의 전주중앙초등학교의 전신인데, 똑같이 심상소학교가 전신인 전주조촌초등학교와 다르게 학교 역사에 공식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5] 살아있는 왕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므로 서울의 궁궐 등에서 치러지는 것에 비하면 조촐하게 치러진다.[6] 왕실 의상, 수문장 체험, 제례 체험 등[7] 서울의 경우, 종묘공원 정문 인근에 종로성당이 있기는 하나, 종묘공원 정문과 종로성당은 30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현재의 종로성당 건물도 1987년에 지어진 건물이기에 전동성당-경기전과는 비교 범주가 다르다.[8] 두 건물을 가로지르는 태조로에는 점집과 상가 등이 가득하여 매우 종교적인 관광지 분위기를 자아낸다.[9]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을 계기로, 이때부터 한국에서도 가톨릭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었다.[10] 관찰사와의 연락을 위해 파견된 지방 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