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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2호 | |
선희궁터 宣禧宮址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종로구 필운대로 103 (신교동 1-1번지)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건물지 |
수량 / 면적 | 건물 1棟, 기단 및 계단 1基, 토지 695.2㎡ |
지정연도 | 1975년 5월 10일 |
관리자(관리단체) | 서울농아학교 |
<colbgcolor=#bf1400> 옛 선희궁 터에 위치한 본래의 선희궁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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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暎嬪 李氏)의 제향을 위해 건립된 제사궁(祭祀宮)이다. 본래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교동(新橋洞)에 해당하는 한성부 북부 순화방(順化坊)에 있었으나 이후 인근 궁정동에 있는 칠궁으로 옮겨갔다. 서울특별시에서 선희궁이 칠궁으로 옮겨가기 전에 위치했던 자리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2호 '선희궁 터'로 지정했다.2. 역사
영빈 이씨가 졸서한 1764년(영조 40년)에 세워졌다.[1]. 처음에는 '의열궁(義烈宮)' 으로 불렀다가 1788년(정조 12년)에 '선희궁(宣禧宮)'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선희궁의 주 용도는 영빈 이씨의 제향을 지내는 것이었지만, 영빈방에 영빈방(暎賓房)에 속해 있는 궁장토와 재산을 관리하는 역할도 했다. 1896년(건양 원년)에는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씨(淑嬪 崔氏)의 제사궁인 육상궁으로 위패를 옮겨 모셨다가 1897년(광무 1년)에 선희궁에 다시 봉안했다.그러다 1907년(융희 1년)에 궁내부에서 내수사(內需司)와 궁장토의 도장(導掌)을 폐하면서 선희궁 소속 토지도 제실 재산 관리국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1908년(융희 2년)에는 황실 제사궁을 정리하면서 육상궁으로 합사했고, 제사도 1년에 2번만 지내게 했다. 저때 서울 곳곳에 있던 다른 후궁들의 사당[2]도 육상궁으로 옮겨왔고 이를 칠궁이라 부른다. 그래서 현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청와대 옆의 칠궁 내에 있다.
3. 여담
보은 법주사에도 이 선희궁이 있다. 이 건물을 언제 지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빈 이씨의 위패를 두다가 나중에 법주사의 큰스님들의 초상화를 모셔두는 조사각(祖師閣)으로 성격이 변했다.[1] 『영조실록』 40년 11월 5일[2] 영조의 후궁이자 효장세자의 친어머니인 정빈 이씨(靖嬪 李氏)의 연호궁(延祜宮), 조선 선조의 후궁이며 추존왕 원종의 친어머니인 인빈 김씨(仁嬪 金氏)의 저경궁(儲慶宮),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친어머니인 희빈 장씨(禧嬪 張氏)의 대빈궁(大賓宮), 정조의 후궁이자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綏嬪 朴氏)의 경우궁(景祐宮). 1929년에는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친어머니인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의 덕안궁(德安宮)도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