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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3 04:34:48

수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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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별궁
수진궁
壽進宮
<colbgcolor=#bf1400><colcolor=#ffd700> 위치 한성부 중부 수진방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봉로 43)
설립 시기 1483년
해체 시기 1909년
파일:2017-10-10 19-30-56.jpg
<colbgcolor=#bf1400> 현재 수진궁 터 자리. 종로구청과 그 주변이다.
1. 개요2. 상세3. 여담

[clearfix]

1. 개요

조선의 별궁. 지금의 종로구청 일대에 있었으며 이 자리는 건국 초 정도전이 살던 집터의 일부이기도 하다.

2. 상세

유래 자체는 조선 세종의 일곱째 아들인 평원대군이 사망하자 영장산 남쪽에 장사지내고 그 묘소를 관리하는 수진궁(壽進宮)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으나[1] 나중에 원래 예종의 둘째아들이자 평원대군의 봉사손 제안대군의 집을 사당으로 사용하면서 봉작(封爵)을 받기 전에 사망한 왕자녀들과 출가하기 전에 사망한 12세 이하의 어린 공주ㆍ옹주들의 제사를 합동으로 모시는 곳으로 바뀌었다.

1544년(중종 39년)에 고쳐 지었고 인조 이후에는 후사가 없는 왕자의 집안 재산과 대비전의 사적인 돈을 조달하고 관리하는 곳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숙종 연간에는 현종왕비 명성왕후의 명으로 공식적으로 완전한 제사궁이 되었다.

훗날 정조는 비빈과 대군들의 사당에서 제사를 자주 지내는 것은 예법에 맞지 않다면서 묘에서는 봄과 가을에 제향을 거행하도록 하고 수진궁에서는 한식에 행하도록 하면서 이 외에 것은 모두 없애도록 명하였다.

묘소는 총 20위이다. 평원대군, 강령부부인, 제안대군, 상산부부인, 영창대군, 명선공주, 명혜공주 등 이상 7위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에 있었고 용성대군, 의창군, 양천군부인 등 이상 3위의 묘소는 풍양(豐壤)에 있었다. 낙선군과 동원군부인의 묘소는 청송군에, 숙신공주의 묘소는 서산시에, 귀인김씨의 묘소는 망우리에, 그리고 소의 유씨의 묘소는 은평 진관에 있었다. 정보가 전혀 없는 한 '대군 아기씨'의 묘소는 광주에, 숙의 나씨의 묘소는 서산에, 숙원 장씨의 묘소는 연서에, 명빈 김씨의 묘소는 아차산에, 그리고 경빈 이씨의 묘소는 풍양에 있었다. 이상은 매년 한식에 제사를 지냈다.
파일:4e12b935d9855.jpg
<colbgcolor=#bf1400> 수진측량학교 터 비석
대한제국 시기에는 고종유길준에게 찬조금과 함께 흥사단 사무실로 쓰게 했으며 순종 때는 이 곳에서 측량술을 가르치던 사립교육기관인 수진측량학교를 개교하였다. 1909년(융희 3년)에 폐궁되었다. 폐궁 후 1년간은 궁으로서의 모습이 엄연히 존재하였지만 1년 후 한일합병이 이루어지면서 망국이 되자 훼철되어 일본인들에게 팔려나갔다.

3. 여담



[1]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수진동의 유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