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05 21:38:09

명성황후(드라마)

{{{#!wiki style="color:#FFFFFF;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1D1D1D,#E2E2E2
2001~2005
파일:명성황후 로고(흑).png
(2001)
파일:태양인 이제마 로고.png
(2002)
파일:장희빈 KBS 로고.png
(2002~2003)
파일:로즈마리 KBS 로고.png
(2003)
파일:꽃보다 아름다워 로고.png
(2004)
파일:4월의 키스 로고.png
(2004)
파일:풀하우스 KBS 로고.png
(2004)
파일:두번째 프러포즈 로고.png
(2004)
파일:해신 로고.png
(2004~2005)
파일:부활 KBS 로고(B).png
(2005)
파일:장밋빛 인생 로고.png파일:장밋빛 인생 로고 화이트.png
(2005)
파일:황금사과 KBS 로고.png
(2005~2006)
}}}}}}}}}}}} ||

KBS 2TV 특별기획 드라마
명성황후
(2001~2002)
明成皇后 / The Last Empress
파일:명성황후(2001).jpg
파일:mania-done-4d06d1d6ad98fc47d14c5485da8221d9_20160411090153_wdrpamhl.jpg
<colbgcolor=#f9b74c><colcolor=black> 시청 등급 파일:15세 이상 시청가 아이콘.svg 15세 이상 시청가
방송 시간 수요일, 목요일 밤 9시 50분
방송 기간 2001년 5월 9일 ~ 2002년 7월 18일
방송 횟수 124부작[1]
장르 대하사극
제작 삼화네트웍스, GM기획[2]
채널 KBS 2TV


<colbgcolor=#f9b74c><colcolor=black> 연출 윤창범, 신창석
극본 정하연
출연 이미연, 최명길, 유동근, 이진우
해설 설영범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홍보 영상3. 캐스팅4. 등장인물5. 비판6. 역사 탐구
6.1. 호칭 관련
7. 여담8. KBS Drama Classic 연속 무료 스트리밍 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한 KBS 2TV 특별기획 드라마.

124부작. 주연은 명성황후 역의 이미연최명길, 흥선대원군 역의 유동근, 고종 역의 이진우 등 3명이다.

2. 홍보 영상

타이틀 오프닝 영상 이미연과 최명길 버전
〈세대공감토요일: 별들의고향〉에서 드라마 내용을 정리해 제작한 영상[3] <colbgcolor=#f9b74c> KBS Drama Classic에서 드라마 내용을 정리해 제작한 영상[4]

3. 캐스팅

주인공 명성황후의 아역 시절은 문근영(1~9회)이 맡았으며, 이미연(10~78회)이 주인공을 맡았다. 원래 10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생각보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5] 24부작 연장을 했는데, 이미연이 80화까지만 나오는 것으로 계약했던 바람에[6] 갑신정변(81회)부터는 최명길이 이어 맡아서 마지막까지 이르렀다. 유동근이 분한 흥선대원군은 고집이 강한 성격으로 나오며[7], 이진우가 분한 고종황제 역은 아버지와 아내 사이에서 줏대없는 역할로 나온다. 이 외에 임혁미우라 고로 역을 맡았는데, 배우 이미지 때문인지 분명 작중에서는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 있고 강직한 면이 강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미우라 고로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위험한 군인, 외교관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마지막회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술을 마시며 "조선은 이제 우리의 것이 된다."라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사악한 포스가 제대로 드러난다.

이미연이 맡았던 명성황후가 비운의 여주인공에 천사급 이미지로 나오는 바람에 그녀의 연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탓인지 3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이후 2002년 봄, SBS 드라마 스페셜 〈명랑소녀 성공기〉가 방영됐을 때부터 시청률이 좀씩 주춤하기 시작했고, 주연 배우가 최명길로 교체된 이후부터는 시청률이 1자리까지 급락했으며[8] 그래서 이미연과 최명길을 두고 누가 연기를 더 잘 했는가는 평가가 엇갈리는데, 이미연은 청순가련했으나 정치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각성하는 캐릭터, 최명길은 지적이면서 정치적으로 노련한 여장부를 연기했다고 보면 된다.

4. 등장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명성황후(드라마)/등장인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비판

실제의 명성황후고종과 함께 각종 이권을 서구 열강에 헐값으로 팔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근대화를 했다기보다는 단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운영했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명성황후가 받은 뇌물이 애국과 개화를 위한 자금, 일제의 눈을 가리기 위한 위장으로 표현하여 명성황후를 왜곡하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실제로 민씨가 받은 뇌물들은 천연자원 등 조선의 이권을 외세에 헐값에 팔아넘기며 받은 돈이며, 애국, 개화를 위한 자금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많고 대부분은 고종과 민씨의 권력 강화에만 쓰였다는 비판을 받는 것들이다.

명성황후 뿐만 아니라 흥선대원군에 대한 왜곡과 미화 역시 상당한 편. 예를 들어 흥선대원군은 며느리 명성황후와 말년에 화해하여 함께 일본에 맞섰으며, 그에 따라 고종의 조카가 되는 이준용을 고종 대신 옹립하려는 사건에도 반대했고 을미사변에도 참여하지 않으려 했는데 일본인들이 자루에 씌워 데려갔다는 식이다.[9] 실제로 이런 이유로 드라마 시청자 중에는 명성황후가 아니라 흥선대원군이 주인공 같다거나 드라마의 제목을 잘못 정했다거나 하는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10]

그 외에도 결과적으로는 명성황후 반대파에 해당되는 김옥균도 명성황후를 존경하면서 그의 협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혁명가로 그려냈다. 방송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는지 명성황후 뿐만 아니라 조선 인물 대부분이 가치관은 다를지라도 다들 나름대로 나라를 위해 일한 인물들이었다고 묘사된다.[11] 흥선대원군도 마찬가지라 2차 동학농민운동이 흥선대원군의 지시를 받아 일어난 것으로 묘사되는가 하면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키기 전에 흥선대원군을 만나 뒤늦게 화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동학농민운동이야 실제로 흥선대원군이 연루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긴 하니 넘어간다 해도 극 후반부에 최익현이 꼭 다시 나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부분은 이 드라마의 극본을 맡았던 정하연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가 집필한 사극 대부분은 주로 역사의 패자로 남은 인물들이나 비판점이 많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성향이 강하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작중 인물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야 했고 이것이 미화와 왜곡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이 작품 뿐 아니라 전작이었던 〈왕과 비〉에서 제기된 비판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뮤지컬 〈명성황후〉로부터 촉발된 명성황후에 대한 미화가 사회적으로 팽배했던데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대단한 호평을 받았기 때문에,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은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6. 역사 탐구

}}} ||
<colbgcolor=#f9b74c> 95화, 110화에 나온 러시아 노래 〈За окошком свету мало〉
95화에서 명성황후가 들은 음악[15]과 110화에서 이완용베베르 러시아 제국 공사가 커피 마시며 이야기 나눌 때 흘러나온 음악[16]은 러시아 노래 〈За окошком свету мало(창문 밖은 어두운데)〉이다. 가수 류드밀라 즈이키나(Зыкина, Людмила Георгиевна)가 부른 버전으로 나왔는데, 이 가수는 1929년 생이다. 본작 방영 당시에도 살아있었으며 2009년에 사망했다.#

6.1. 호칭 관련

7. 여담

8. KBS Drama Classic 연속 무료 스트리밍

지금까지 2회 진행되었다. 〈서울 1945〉와 마찬가지로 스트리밍이 진행된다면 가장 우려가 되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던 드라마였고, 공교롭게도 2021년 8월에 두 작품이 같이 편성되면서 과연 과연 이 스트리밍을 진행해도 되나 걱정스럽다는 의견이 꽤나 많이 나온 작품이기도 하다.

스트리밍 자체의 평가도 매우 좋지 않은 편이다. 시대적 배경이 구한말이라는 암울한 시대인데다 전형적인 궁중 이야기와 정치 갈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 수의 상승 요소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드라마의 주인공 자체가 이미 부정적 평가가 많은 명성황후인데 그마저도 과도한 미화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등 외면받을 만한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저 시청자 수 기록을 갈아치운 적이 있으며, 평균 1,000명을 넘은 적도 거의 없다. 다만, 방영 시기가 KBS 대하사극의 전성기 시대라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 터라 드립 요소가 꽤 있었다는 점은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

해당 스트리밍 채팅 중 흥했던 별명과 드립은 아래와 같다.

9. 관련 문서



[1] 야인시대도 124부작이다.[2] 1회부터 78회까지 공동 제작했는데 당시 이미연의 소속사이기도 했다. 물론 주연이 교체된 이후에는 제작 역시 철수하였다.[3] 임오군란까지 다뤘다.[4] 을미사변까지 다뤘다.[5] 이 탓에 이 드라마를 본 당시의 어린이들 중 상당수는 명성황후를 "나라를 위해 일본에 맞서다 억울하게 죽은 비운의 인물"로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명성황후가 끝나고 12년 뒤에 나온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조선 총잡이가 방영되면서 당시 어린이였던 세대들이 장성해서는 명성황후에 대하여 비로소 조선을 말아먹은 악녀로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6] 이미연이 연장 출연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사실은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드라마 제작사와의 계약이 최초 기획되었던 100회까지가 아니라 80화까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KBS와 드라마 제작사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7] 오죽하면 흥선대원군 평생의 진정한 친구로 묘사되는 김병학이 죽어가면서까지 그의 고집불통스런 성격을 걱정하는 것으로 묘사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동근의 연기력 자체는 호평을 받은 편이며, 그 외에 주연급 배우 전반이 극중의 캐릭터를 잘 표현한 편이다. 유동근은 이 배역으로 생애 두 번째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8] 최명길의 연기력 자체는 흠잡을 곳이 없었지만, 문제는 유동근과의 대립 구도가 〈용의 눈물〉 시즌 2(...)를 연상케한 탓에 시청자들에게 다소 식상한 느낌을 주었다는 것. 게다가 무려 80화 가까이 이미연이 배역을 맡아 이미지가 고정된 캐릭터를 뜬금 다른 배우가 나와서 맡으니 변화된 이미지에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배우의 이미지라도 비슷하다면 모를까 이미연과 최명길은 이미지의 갭이 굉장히 크다.[9] 이준용 옹립 사건의 경우 실제로는 근왕파 관료들의 반발과 일본공사관의 반대로 실패했으며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사이가 더욱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는데, 실제로는 이준용을 끝까지 지지했던 흥선대원군이 극에서는 "그렇게 일본이 좋으면 일본 놈들이 좋아하는 할복을 하라는 게야!" 라고 호통을 치는가 하면, 이 문제를 걱정하는 명성황후에게 사과를 하며(...) "내, 그 아이를 죽여서라도 버릇을 고쳐 놓으리다..." 하기도 한다. 을미사변의 경우 강제로 끌려간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일본이 아닌 청나라였고, 그 때도 국왕의 생부를 자루에 담아 끌고 가는 수준은 아니었다.[10] 실제로 이 드라마는, 을미사변 이후는 대강대강 다루기는 하지만 대한제국 선포와 대원군의 사망까지 다룬다. 대원군이 위중하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던 고종이 이미 대원군이 세상을 떠나 통곡하는 소리를 듣고 "부인도 가고 아버님께서도 가시고 나 혼자 남았구나..." 하고 망연자실하는 것이 드라마의 사실상 마지막 장면이다.[11] 훗날 만고의 역적이 되는 이완용 역시 본 드라마가 다루는 시기상 친러파로 나오는데, 툭하면 아라사공사관으로 피신해야 한다는 말을 내뱉어 왕후에게 꾸짖음을 당하는 등 부정적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게 다 조선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나름대로 애쓰는 것이라는 식으로 나온다.[12] 저기서 말하는 순종 7년은 아마 1914년인 듯 하다. 이왕 시절 순종의 행적을 적은 《순종실록부록》을 보면 1914년을 순종 7년으로 표기했다.# 그리고 저 때 고종의 후궁이 죽긴 했는데, 내안당 이씨라는 다른 사람이다.[13] 통신사가 글이나 그림을 써 주는 활동이 활발했던 것은 일단 맞는데, 처음부터 문화를 전파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일본과의 우호를 증진한다는 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던 정도로 이해하면 딱 좋다. "왜인들이 우리나라의 글이나 그림을 그렇게 받고 싶어하더라. 그러니 이걸 적극적으로 해 주면 왜와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고, 또 해 준다고 우리나라의 체면에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굳이 안 해 줄 이유는 없다." 라는 논리.[14] 실제로는 대전 내관인 이 내관이 고종에게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의 이름을 주욱 읊을 때 유홍기와 이동인이 언급되긴 한다. 다만,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소개하지 않았기에, 이 무렵의 역사에 어둡다면 김옥균 등의 일가친척이나 추종자쯤 되겠거니 하고 오해하기 딱 좋다.[15] 55분 19초 ~ 55분 39초, 55분 59초 ~ 56분 14초.[16] 27분 40초 ~ 29분 00초.[17] 이것은 같은 극작가가 쓴 〈왕과 비〉에서도 보이는 문제점이다. 이 작품에서는 단종과 그의 할아버지 항렬인 양녕대군이 등장하는데, 역시 왕의 할아버지 항렬이라는 게 뭐라도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국왕을 가볍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능멸하는 대사가 수시로 쓰인다.[18] 예를 들어 임진왜란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인데 선조든 류성룡이든 전라좌수영 군관이든 이순신을 부를 때 일괄적으로 '이순신 씨'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극중에서 일본 공사 다케조에가 부하인 시마무라를 가리켜 "시마무라 さん" 이라고 하는 장면이 많았으며, 명성황후를 모시는 홍 상궁이 황후에게 그녀와 친교를 맺은 일본인 여성인 미치코를 가리킬 때 '미치코 さん'이라고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さん'을 빼고 시마무라, 미치코라고 하면 충분했다.[19] 다만 배우는 한국인 김진아(2014년 사망)였다. 한국인인데 서양인을 연기한 특이한 케이스.[20] '비숍'으로도 잘 알려진, 기행문 《조선과 이웃나라들》의 저자. 첫 회에서 명성황후의 티타임 상대로 등장한다. 암살을 방지하기 위해 상궁들이 기미(氣味)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자, 명성황후가 "야만적으로 보이냐."라고 묻는데, 그에 대해 "영국 왕실에도 암살당한 임금들이 많습니다."라고 말한다.[21] 연출이 신창석 PD라서 〈명성황후〉에 이어서 연속으로 출연한 배우들이 많다.[22] 채팅창에서 역사왜곡 논란이나 비판을 놓고 으르렁거린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 〈명성황후〉는 이런 점에서 더욱 크게 번질 여지가 크기도 하다.[23] 이는 정치사극을 표방한 작품들의 태생적 한계이다. 같은 제작진이 만들고 비슷한 분위기의 〈왕과 비〉도 시청수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였다.[24] 예를 들자면 조선 멸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우리가 일찍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상황이 반전될 수 있었을까 / 아프가니스탄 상황과 연계한 누가 더 막장이었는가 등[25] 구체적인 이유가 밝혀진 바는 없으나, 1회차 중간 스트리밍 중단 사고에 대한 보상 차원의 추가 방영이라는 추측과 단순 관리자의 조정 실수로 인한 사안을 그대로 중지시키지 않고 끝까지 스트리밍을 계속 이어가는 방향으로 간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26] 바로 전에 연기한 성종은 어머니 인수대비에게 치여서 마마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여기서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에게 치이며 파파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27] 중전에게 시도 때도 없이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자주해서 생긴 별명. "미안합니다"라고 말할 때마다 "또안합니다"라고 채팅창에 등장한다.[28] 이에 대해서 감사합니다를 패러디한 내용도 채팅창에 등장했다.[29] 대원군을 부르는 호칭 대원위 합하에서 파생된 드립, 드라마 <대조영>에서도 합하로 불린 연개소문에게도 합하 관련 파생 드립이 붙여졌다.[30] 인수대비 남자버전이라는 의견이 있었고, 인수대비와 흥선대원군을 합쳐 인수대원군이라는 별명도 생겼다.[31] 임오군란 이후 정권을 잡은 뒤 용포를 입은 장면이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닮아 생긴 별명. 청룡포[32] 대원위 합하의 몬데그린[33] 청나라에 억류된 이후 복귀하고 나서 베트남 관복을 입고 있어서 붙은 별명[34] 대원군 역을 맡은 유동근의 연기력이 훌륭해서 주인공 명성황후보다 존재감이 더욱 부각되는 인상을 시청자에게 주었기 때문에 드라마 제목을 흥선대원군으로 정했어야 한 게 아니었느냐는 이야기도 있었다.[35] 극 후반부로 갈수록 노인연기를 하면서 랩을 하듯이 읊조리는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생긴 별명.[36] 흥선대원군 + 아자개, 노인연기를 할 때 태조왕건의 아자개를 보는 것 같아서 생긴 별명[37] 임오군란 이후 빈 관에 못을 박고, 을미사변 이후 명성황후의 유골을 수습하는 모습에서 나온 별명[38] 고종 앞에서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는 이야기를 해서 나온 별명[39] 월남 대원군과 같은 이유로, 대원군의 이름 이하과 베트남인 성씨 우옌이 결합한 별명.[40] 어머니 영보당 이씨를 연기한 배우 정선경이 후일 연기하는 이의민 처에서 나온 별명이다.[41] 자녀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진단결과에 대한 별명으로 여기에서 파생되어 서울1945에서 성불구였던 오철형 드립도 등장했다.[42] 평소 언행이 눈치를 보지 않고 상황에 맞지 않는 막말을 많이 하여 생긴 별명.[43] 흥인군의 본명 이최응에서 따온 별명, 여기서 파생되어 이정태우라는 별명도 생겼다. 유래는 최yes → 최응→ 정태우....[44] 흥인군 특유의 흥 많은 성격을 보고 MBTI가 ESFP일거 같다는 의견에서 나온 별명[45] 김좌근의 호가 하옥(荷屋)인 것을 빗대 나온 별명[46] 함부로 입에 올리기 힘든 동명이인 때문.[47] 무속인으로 전직한 이후 2차 스트리밍에서 생긴 드립[48] 영의정(총리대신)이 되면서 위로는 대원군과 고종에게 치이고, 아래로는 주변 대신들에게 치이면서 고통을 받아 생긴 별명.[49] 친일파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을미사변 이전까지 친러파였던 이완용의 성향을 두고 나온 별명.[50] 일본의 농간으로 할아버지한테 대들기 시작하면서 생긴 별명.[51] 본 작에서 명성황후 아역으로 나온 문근영과 유독 모녀사이로 자주 만나기에 생긴 별명.[52] 풀하우스에서 정지훈 엄마 역으로 나왔다.[53] 훈련대 연대장 직책을 수행하게 되면서 생긴 별명. 현재 한국군에서 연대장 직책은 대령 계급이 맡고 있다.[54] 둥근 선글라스를 착용한 모습이 스타크래프트의 벌처를 연상케 하여 생긴 별명[55] 고종을 만난 후 물러갈 때 인사하는 특유의 동작이 황비홍을 연상케 하여 나온 별명[56] 손탁이 명성황후 앞에서 커피를 탈 때 나온 별명[57] 심지어 의화군 역의 강성민이 1979년생, 장상궁 역의 이재은이 1980년생이다. 이재은이 빠른 생일이라 사실 동갑이긴 하지만. 극중에서는 장상궁이 출궁당할 때 아예 극에서 퇴장하는 것처럼 묘사했다가 나중에 다시 나온 것인데, 사전에는 재출연시킬 계획이 없었는가 싶기도 하다.[58] 이재면은 〈대조영〉에서 '당고종 이치'를, 김윤식은 〈태조 왕건〉에서 '전의 성주 이치'를 연기했다.[59] 원세개 역의 박진성은 〈한명회〉에서 성종을, 고종 역의 이진우는 〈왕과 비〉에서 성종 역을 맡았다.[60] 고종은 이 드라마에서 고종 역을, 이재면은 〈대조영〉에서 당 고종 역을 맡았다.[61] 순종 역의 백승우는 〈무신〉에서 원종 청년기를, 의화군 역의 강성민은 같은 드라마에서 바로 뒤를 이어받아 중년 원종 역을 맡았다.[62] 이경하 - 위홍 / 홍순목 - 유염 / 최익현 - 도선대사 / 한계원 - 김율 / 박규수 - 신라 장군 / 신철균 - 파달 / 민승호 - 김효종 / 데라지마 - 양길 / 구로다 키요타카 - 오다련 / 민영익 - 왕신 / 김옥균 - 마의태자 김보현 - 설부도인 / 김장손 - 박유 / 유복만 - 용개 / 유춘만 - 김락 / 어윤중 - 숭겸아우 / 김윤식 - 이치 / 심순택 - 박지윤 / 김병시 - 신덕 등등[63] 예를 들자면, 39회 민승호의 죽음이 다뤄진 회차에서 당시 〈태조 왕건〉에서는 155회 견훤의 서라벌 수학여행이 나왔다는 식으로.[64] 애초에 드라마가 80부작이 아니라 100부작이었기에, 배우의 잘못은 아니다.[65] 이와 관련된 것은 을미사변 문서와 〈조선왕조 오백년〉 문서를 보는 것을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