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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12:28:18

전하(호칭)

왕족 또는 귀족에 대한 경칭 (서열순)
폐하(陛下) / 성하(聖下) 전하(殿下) / 예하(猊下) 저하(邸下) / 은하(恩下) 합하(閤下) / 각하(閣下)
대하(臺下) / 절하(節下) 궤하(机下) / 안하(案下) 좌하(座下) / 귀하(貴下) 족하(足下)
조선의 용어 (서열순)
마마(媽媽) 마노라(抹樓下) 자가(自家) 대감(大監)
영감(令監) 원님(員님) 나리(進賜) 선생(先生)

1. 왕족에 대한 존칭
1.1. 동양의 사용례1.2. 서양의 사용례
2. 성직자에 대한 경칭

1. 왕족에 대한 존칭

전하(殿下)는 본디 중국 왕조에선 황후, 황태자, 친왕의 공식 칭호였다. 황후의 경우 오대십국시대 역사서인 구오대사에 따르면 황후 전하라는 호칭이 규정되어 있으며,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직접 쓴 황명조훈에도 황후 전하라는 호칭이 정해져 있다. 실록의 기록을 보면 조선이 명나라에 보낸 문서에 명나라 황후를 중전 전하(中殿殿下)로 호칭하기도 하였다.[1] 태후의 경우 왕조에 따라 폐하와 전하 호칭이 혼용되었다.[2] 동국이상국집에 따르면 고려 중기에도 왕후나 태후에게 사용했다. # 또한 태후나 황후에게 '전하'를 안 쓰고 중국 사극에서처럼 ‘낭랑’이라는 호칭을 썼다는 주장이 있다. 조선시대 사극에서 왕을 주상, 왕비를 중전마마라고 부르는 것처럼 중국 사극의 법칙으로 고착된 것이다.[3]

전하는 왕이 업무를 보는 건물인 '전(殿)의 아래()'라는 뜻으로 '임금이 계신 전 아래에서 엎드려 아뢴다'를 의미한다.

1.1. 동양의 사용례

사물기원의 설명에 의하면 한나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은 호칭이며 전하라는 존칭이 처음 쓰인 건 위왕으로 봉해진 조조두습이 전하로 호칭했던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4]

삼국사기를 보면 통일신라 이전의 신라에서는 눌지 마립간, 진평왕, 문무왕의 기록들을 토대로 군주를 '전하'로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외왕내제에 따라 문무왕, 신문왕, 효소왕, 원성왕 대의 삼국유사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체로 '폐하' 호칭을 주로 사용했다.

고려는 임금을 '폐하'라 불렀으며, 고려 문종오등봉작제를 실시해 왕족들과 신하들을 공, 후, 백작으로 봉작하면서 작위를 받은 왕족은 '영공전하(令公殿下)'로 불렸다. 즉 전하라는 경칭은 태후, 왕후, 왕태자와 공, 후, 백작 작위를 받은 왕족에게 쓰는 경칭이었다. 전하보다 격이 높은 표현으로 폐하(陛下) 등이 있고, 동격의 표현으로 예하(猊下 = Your/His(Her) Eminence)[5]가 있으며, 전하보다 격이 낮은 표현으로 저하(邸下) 합하(閤下), 각하(閣下) 등이 있다.

하지만 원 간섭기 이후 대내적인 용어가 제후국의 칭호로 격하되면서 왕을 '전하'로 호칭했고, '태자 전하' 역시 '세자 저하'로 낮아졌다.

조선 왕조는 제후국을 자처, '전하' 경칭은 조선 왕들도 사용하게 된다. 왕실 여인들의 경우, 왕비는 '왕비 전하', 왕대비는 존호를 사용하여 'OO 왕대비 전하(OO王大妃殿下)'라고[6] 불렸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극들에서 왕비와 왕대비에게 '마마'라고 하는 사극은 많은데 '왕비 전하', '왕대비 전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극은 보기가 어렵다.

1895년에 조선이 자주국임을 선포하면서 '주상 전하'는 '대군주 폐하'로, '왕세자 저하'는 '왕태자 전하'로 격상되었고, 덤으로 기타 왕족에게도 전하라는 호칭을 사용한 걸로 보인다. 독립신문기록을 보면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이전인데도 불구하고 의화군(의친왕)과 흥선대원군을 가리켜 전하라고 한 기록들이 존재한다.[7]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정식으로 '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라는 호칭을 쓰게 되었다.

대한제국 당시 황귀비는 '황귀비 전하'라고 불렸다. 고종 때 승정원일기나 당시 신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황귀비황태자의 생모이며 비어있는 황후를 대신하는 위치였기 때문이다.[8]

사극 등지에서 '주상 전하'라는 표현으로 자주 접하게 된다. 실제 역사적 사용례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주상 항목으로.

일본에서는 황태자, 친왕 같은 황족뿐만 아니라 섭정관백에게 사용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경우가 대표적. 명목상 관백보다 격이 낮은 쇼군에겐 전하를 붙이지 않았으나,[9] 예외적으로 조선통신사는 조선국왕과 격을 맞추기 위해 에도 막부의 쇼군을 일본국 대군(大君) 전하로 지칭했다. 현대에는 황태자, 황태손, 친왕, 왕[10]과 그들의 배우자, 혼인하지 않은 내친왕 및 여왕[11]에게 쓰인다. 해당 사항은 황실전범에도 명시되어 있으나, 1980년대 아키히토 천황 즉위를 전후하여 공식행사 외의 자리에서는 전하보다는 '이름+사마(様/さま)'로 지칭하는 편이고[12] 언론에서의 호칭도 그렇게 바뀌어갔다. 호칭이 바뀌어가는 이유는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으나 일본 국민에게 친밀한 황실을 표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일부 보수적인 일본인들은 황실 인사를 일반인에게도 사용되는 '사마'로 지칭하는 것에 불만을 갖기도 한다고.

비황족 출신 황족의 아내에게는 비전하(妃殿下, ひでんか, 히덴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이방자 여사도 비전하라고 불렸다. 조선에서는 왕비 전하, 왕세자빈 저하와 같이 직책과 존칭을 모두 불렀다.고종 31년 12월 17일 기사

1.2. 서양의 사용례

유럽어권에서는 상대방의 신분에 따라 Your와 Highness 사이에 수식을 넣어 다르게 존칭한다. 번역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동양식 호칭과는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는다.왕족은 아니나 청교도 혁명 직후 커먼웰스 시기 영국의 통치자 직함인 호국경에 대한 경칭도 전하(Your/His highness)였다.

예외로 초창기 미국에서 대통령에 대한 경칭[18]으로 잠시 사용한 적이 있다. 다만, 이것을 전하로 번역해야 하냐 폐하로 번역해야 하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전하든 폐하든 영어에 대한 번역어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완벽히 일치하지 않고, 서양 역시 황제와 왕의 명목상 '급'은 존재했으므로, 어느 쪽으로 번역해도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단, 해당 시기에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과 영국의 호칭을 같이 표현해야 한다면, 자칫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하급이 되기 때문에, 동급으로 폐하 혹은 전하로 일치시킬 필요는 있다.[19] 이런 경칭을 사용한 이유는, 당시엔 대통령의 위치와 의전을 규정할 수 있는 선례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군주의 그것을 따라했기 때문이다. 이 호칭은 조지 워싱턴 이후 현재와 동일한 'Mr. President'로 정했다. 비슷한 이유로 당시 대통령이 스스로를 말할 때는 당대 군주들이 쓰던 3인칭화 화법을 쓰기도 했다.

2. 성직자에 대한 경칭

Your/His Eminence[20]

한국 가톨릭에서는 His/Your Eminence를 '전하(殿下)'로 번역하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전하'를 추기경에 대한 경칭으로 풀이한다. 몰타의 군주이자 총괄기사단장인 그랜드 마스터에게도 썼다.[21] 특수하게 신성 로마 제국공 (Prince of the Holy Roman Empire)이면서 동시에 그랜드 마스터 였었던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His Most Eminent Highness 라고 불러줬다.

영한사전에서는 '예하(猊下)'로도 번역되어 있으나 잘못이며, 한국 천주교에서는 '예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예하는 고승을 높이어 이르는 말인데,[22] 일본 가톨릭에서는 Your/His Eminence에 대한 번역어로 예하를 사용하고 있고, 대부분의 영한사전이 일본에서 발간된 영일사전을 라이센스를 얻어 중역한 것을 바탕으로 하기에 나타난 현상이다.[23]

현대 한국에서는 구어(口語)로서 추기경을 '전하'라고 부르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대통령 각하''라는 표현도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로 여겨져 청와대 내에서도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이 쓰이는 마당에 성직자를 높이는 '추기경 전하', '주교 각하'와 같은 표현도 자연스럽게 '추기경님', '주교님'으로 대체되어 간 것이다.

교도권(敎導權)에 대한 강한 존중심을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들은 이런 세태를 아쉽게 여기고 '추기경 전하', '주교 각하'라는 표현을 고수하고자 의도적으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나마도 문서상으로만 사용될 뿐이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전하 하면 왕, 즉 임금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라서 대화 중에 '추기경 전하'라는 표현을 쓰면 어색한 지경이 되었고, 대화 중에 사용되는 성직자에 대한 경칭은 사실상 '교황 성하(聖下)'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민주화 과정에서 반권위주의 정서가 생긴 한국의 특이한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서구권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His/Your Eminence라는 경칭에 딱히 거부감이 없고,[24]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일상 대화 중에도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쓰이는 편이다.

영문으로 된 서한 등 공식 문서에서는 직함과 성명 앞에 His Eminence의 줄임말인 H. E.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전하'란 뜻으로 'H. E. Stephan Cardinal Sou-Hwan Kim'이라고 쓴다.

한국 대중매체에서 추기경을 전하라고 부르는 작품은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네이버 웹툰 어글리후드에서 헨리 브라이언트가 쎄타시 추기경 체스터 그린마일 한테 '전하'라고 했는데 이게 고증에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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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조가 아뢰기를, "승문원의 계사에 ‘제본·주본·표·전 등의 양식 각본(刻本)이 새것과 예전 것이 규례가 다른 따위의 절목은 예관으로 하여금 강론하여 시행하게 해야 한다.’고 한 것에 대해 윤하(允下)하셨습니다. 지금 이 각본은 이미 예부가 제본과 주본에 대하여 격식을 판각 제정하여 통행하도록 하고 아울러 각양의 간행 각본을 반급하였으니, 이 뒤로부터는 다만 마땅히 준수해 시행할 뿐 별도로 다른 의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중에 판각된 양식이 예전의 관례와 동일하지 않아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은 승문원에서 이미 조목마다 구비하여 아뢰었습니다. 다만 황태후전(皇太后殿)을 예전 규례에는 ‘자성 선문 명숙 정수 단헌 황태후 폐하(慈聖宣文明肅貞壽端獻皇太后陛下)’라고 칭하였는데, 각본에는 ‘자성’ 위에 ‘성모(聖母)’ 2자가 있으며, 중궁전(中宮殿)을 예전 관례에는 ‘중전 전하(中殿殿下)’라고 칭하였는데, 각본에는 ‘황후 전하(皇后殿下)’라고 칭하였으니, 이 두 조목도 역시 마땅히 고쳐야 할 규례에 해당됩니다.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804024_004[2] 황태후 폐하는 송사에 2회, 한서에 1회, 진서에 1회, 후한서에 1회, 명사에 3회 나온다. 단 금사에는 '황태후 전하'라는 호칭 또한 2회 나오는데, 금나라의 경우 유목민족이라 정통 한족 왕조와 예법에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명나라의 경우에는 여느 중국 왕조에 비해 황태후에게 '폐하'라고 호칭한 기록이 많다. 조선 또한 상국인 명나라에 표문을 올릴 때 황제의 모후를 가리켜 '황태후 폐하'라고 호칭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황제가 후궁 소생이라 적모와 친모가 따로 있을 경우에도 둘 다 '황태후 폐하'로 호칭해주었다. 다만 황후의 경우에는 조선 왕비의 호칭과 같은 '중궁(중전) 전하'로 불렀으며 황태후 및 황제보다 그 격이 낮았다. 조선 세종은 명나라에서 황후를 조선과 같은 중궁이라 부르는 것을 파악하고 피휘를 위해 왕비를 중궁(중전)이라 칭하지 말 것을 명하기도 했다. 다만 당시 중궁 칭호는 이미 관례처럼 굳어진 상태였기에 이후 조선 왕실 내에서 '왕비 전하'와 '중궁 전하' 모두 빈번히 사용되었다.[3]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따르면 왕태후는 '전하', 성상(국왕)은 '폐하', 왕후는 '전하', 왕태자는 '전하' 호칭이었으며(왕태자비는 기록이 없으나 '전하'로 추정 가능), 이것은 고려가 당나라 제도(당육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안이다. 일부 고려 사극(무인시대, 고려거란전쟁)에서 태후를 '폐하'로 부르는 것으로 극중 설정된 경우가 있었으나 이것은 훨씬 훗날인 명나라 제도를 차용한 것이며 실제로 당시 태후에게 국왕과 같은 호칭인 '폐하'를 사용하는 사례는 드물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고려와 동시기에 중원을 지배한 요나라, 송나라, 원나라의 경우에는 태황태후와 황태후에게 '폐하' 호칭을 사용한 사례가 기록에 남아 있다. 고려가 당시 태후들에게 일일이 어떤 호칭을 붙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명의태후나 공예태후 등의 일부 태후가 국왕과 동일한 '절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으며 출신 가문이 나름의 권세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이들 역시 태후 재위 기간에는'폐하'라 불렸을 수도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울러, 고려 시기에 국왕은 제1왕후를 포함해 여러 명의 정부인을 둘 수 있었으며 이들은 서열상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왕후의 경우는 '전하' 호칭이 맞지만, 고려의 태후는 무조건 현직 국왕의 생모만이 될 수 있었기에 단 한 명만이 태후로 존재할 수 있었고 이에 표문 등의 공문서가 아닌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국왕과 동일한 '폐하' 호칭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는 분석도 있다. 때문에 무인시대나 고려거란전쟁에서도 그러한 분석을 받아들여 공예태후와 천추태후에게 '폐하' 호칭을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무인시대는 태후와 국왕을 제외한 왕후들에게도 전부 '폐하' 호칭을 설정한 바 있으며, 고려거란전쟁은 동국이상국집의 고증에 맞추어 제1왕후와 여타 후/비에게 '전하' 호칭을 설정한 바 있다. 물론 국왕의 정후인 제1왕후는 여타 귀비, 숙비, 현비 등과 차이가 있기에 호칭이 달랐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동아시아에서 제1왕후(황후)가 국왕(황제)과 같은 폐하 호칭을 쓰게 시기는 근대의 일로, 청나라는 아편전쟁 이후, 일본은 쿠로후네 사건 이후이다. 조선도 갑오개혁 이후 태후(대비)와 국왕, 왕후의 호칭을 '폐하'로 동일하게 맞추었지만 이전에도 3명의 호칭 자체는 '전하'로 같았다. 이유는 전기 고려와 명나라, 일본의 경우 그들의 군주가 '천자'이고 복수의 황후(정부인)를 둘 수 있어 천자와 그들의 부인의 호칭이 달랐지만, 조선의 경우 군주가 '제후'이고 천자처럼 복수의 정부인을 둘 수 없으며 표면상 둘 다 명나라 황제의 신하였기에 국왕과 왕후의 호칭을 동일하게 '전하'로 맞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전기의 고려는 조선과 다르게 국왕을 천자로 대우했고 복수의 정부인을 두는 것이 가능했으므로 국왕이 왕후보다 호칭의 격이 더 높았다. 아울러 고려의 왕후는 처음부터 왕후나 왕비로 책봉되는 것이 아닌, 궁주 생활을 거친 뒤 아들을 낳아야만 비로소 왕비로 책봉되고 오래 살아서 생전에 태후가 되지 않는 이상 사후에나 왕후 시호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고려의 왕후들은 누가 아들을 먼저 출산하느냐에 따라 그 상하관계가 역전될 수도 있었으며 용손(왕가) 출신이 아닌 이상 서열상 큰 차이도 없는, 군주의 신하이자 제후 신분에 불과했다. 따라서 천자격인 고려 국왕은 죽음에 대해서도 붕어라는 표현을 썼지만 왕후가 세상을 떠날 경우 붕어가 아닌 훙서라는 표현을 썼다.[4] 漢以來皇太子諸王稱殿下漢之前未聞唐初百官于皇太后亦稱之百官洎東宫官對皇太子亦呼之今雖親王亦避也始于漢續事始曰漢以前未有此呼魏志太祖定漢中杜襲始呼之時操封魏王故襲呼殿下按此自杜襲始也酉陽雜俎曰秦漢以来于天子言陛下皇太子言殿下將言麾下使者言節下轂下二千石長吏言閤下父母言膝下通類相呼言足下
한() 이래로 황태자(皇太子)와 제왕(諸王)을 ‘전하(殿下)’라고 칭했다. 한나라 이전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당() 초에 백관(百官)들이 황태후(皇太后) 또한.그리 칭했으며 백관과 동궁관들이 황태자를 대할 때 역시 그리 칭했다 지금()은 그러나 친왕 또한 그리 칭한다 한나라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속사시(續事始)》에 이르기를, “한나라 이전에는 이런 호칭이 없었다.”라고 하였고, 《위지(魏志)》에는 태조(太祖)가 한중(漢中)을 평정할때 두습이 처음으로 그리 칭하였다고 했는데 이때는 조조가 위왕에 봉해졌기 때문에 두습이 그를 전하라고 불렀던 것이다.이 호칭은 두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사물기원(事物紀原)》 제2권 - 8부: 공식성휘부(公式姓諱部) - 전하(殿下) #
[5] 한국 가톨릭에선 전하로 번역한다. 그 이유는 예하는 불교의 고승에게 사용하는 경칭이기 때문.[6] 'OO 전하' 혹은 '왕대비 전하'라고도 함. 예를 들어 정희왕후의 경우 '자성 왕대비 전하(慈聖王大妃殿下)[7] 네이버 지식백과 독립신문 1897년 1월 9일 토요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26172&cid=51385&categoryId=51385 네이버 지식백과 1897년 7월 31일 토요일 독립신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26265&cid=51385&categoryId=51385[8] 비슷하게 정조 때에 왕세자의 생모 자격으로 수빈 박씨 또한 '수빈 저하'라고 불렸다.[9] 쇼군에게 사용하는 호칭은 일반적으론 우에사마(上様)였다.[10] 천황의 직계로 3촌 이상 떨어진 남계 후손[11] 천황의 직계로 3촌 이상 떨어진 황족 여성[12] 가령, 2024년 현재 천황인 나루히토의 딸인 아이코 공주는 '내친왕 전하'가 아니라 '아이코사마(愛子様)'로 호칭하고 있다.[13] 단, 룩셈부르크의 경우 샤를로트 여대공이 프랑스와 스페인의 왕가였던 부르봉 가문의 이탈리아계 분가인 부르봉-파르마 가문의 펠릭스 공자와 혼인했기에 그 후손들인 현재의 룩셈부르크 대공가 구성원들은 모두 왕족에 대한 존칭인 Royal Highness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가, 올덴부르크 대공가에선 Prince에 해당하는 Prinz가 아니라 Duke에 해당되는 Herzog를 사용했기 때문인지 이들은 His/Her Highness를 경칭으로 사용했다. (ex/올덴부르크의 엘마르 공작 전하 (His Highness Duke Elimar of Oldenburg))[14] 단, 실제로는 Most Serene Highness가 Highness보다 급이 낮았는데 이는 오역 때문으로 선제후의 경칭을 정확히 번역하자면 Most Serenity가 된다.[15] 단, 실제로는 Serene Highness가 Highness보다 급이 낮았는데 이는 오역 때문으로 Serene Highness보다 정확한 번역어는 Serenity이다. 1911년에 발간된 영어 백과사전인 Encyclopædia Britannica에 의하면 이 호칭의 가장 적절한 번역은 "Your Transparency"라고 한다. 단, 프랑스에선 Serene Highness가 Highness보다 높았다고 한다. 다만, 실제로 Serene Highness를 사용하던 Prince du Sang들은 Mademoiselle나 Monsieur le Prince라는 존칭으로 불렸다고.[16] 단, 실제로는 Illustrious Highness가 Highness보다 급이 낮았는데 이는 오역 때문으로 Illustrious Highness보다 정확한 번역어는 illustrious이다.[17] 후에 Majesty, 즉 폐하로 바꾸었다.[18] Your/His Elective Highness[19] 사실 미국이 독립한 당시에 주권국가의 군주들에게 보편적으로 사용된 경칭은 흔히 '전하'로 번역되는 'Highness'였고, '폐하'로 번역되는 'Majesty'는 본래 신성 로마 황제가 자신의 전용 경칭으로 고안한 표현이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국왕들은 신성 로마 황제의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을 황제와 대등한 신분으로 내세웠고 'Majesty' 호칭도 따라하여 황제와 갈등을 빚었다. 'Majesty'가 유럽에서 주권국가의 국왕들에게도 널리 사용된 것은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된 19세기 이후였다.[20] 추기경은 전부 남성이므로 당연히 Her Eminence는 없다.[21] 몰타의 군주를 역임하고 있지 않고 그냥 가장 높은 기사에겐 각하라고 한다.[22] 한국 불교에서 종정(종단의 최고 정신적 지도자)에 대한 경칭으로 '예하'를 사용한다.[23] 일본은 교황도 '법황'(法皇)으로 부르는 등, 가톨릭의 성직 계급 명칭을 불교식 명칭으로 의역하는 관례가 있다. 기독교 인구가 1% 미만으로 극히 적어서 일어나는 현상. 참고로 천황이 생전 퇴위하고 불교에 귀의했을 때에도 태상법황, 줄여서 법황이라 불린다. 불교에 귀의하지 않으면 그냥 태상천황, 줄여서 상황이 된다.[24] 영국 등지에서는 명예상이기는 하나 아직까지 봉작제가 남아있고, 경칭을 받을 명예와 자격이 있는 인물에게는 상대방은 이를 존중하여 'Sir' 등 경칭을 붙여서 불러줌이 예절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유럽보다는 이런 정서가 옅은 미국에서도 조지 W. 부시 대통령교황 베네딕토 16세를 대면하여 Your Holiness라고 부르지 않고 Mr. Pope라고 불렀다가 결례를 범했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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