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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3 20:54:36

대군주

1. 갑오개혁 이후 조선 군주의 칭호
1.1. 개요1.2. 대군주 일람1.3. 동아시아황제와 유사한 칭호 목록1.4. 같이보기
2. 봉건제에서의 역사학적 개념어3. 대중매체

1. 갑오개혁 이후 조선 군주의 칭호

한국사 군주의 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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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에 찍은 옥새 (대조선국 대군주보인·大朝鮮國大君主寶印)[1]

1.1. 개요

大君主

고종갑오개혁(1894) 때 기존의 책봉의례를 통해 성립되는 '조선국왕'의 명칭을 폐지하고 '대조선국 대군주'로 칭호를 바꾸었다. 1894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의 폐기, 조일합동조관과 조일맹약[2]의 체결 그리고 홍범 14조 반포 등, 조선의 '자주독립(自主獨立)' 강요를 비롯한 일본의 내정개혁 기도 가운데, 황제에 준하는 칭호로 격조를 높인 것이다. 고종의 서고(誓告)에서 빌리자면, “청국에 부의(附依)하는 생각을 끊어버리고 자주독립의 터전을 공고히 한다“, 즉 조공책봉관계의 탈피를 의미한다.

이때 '주상 전하'는 '대군주 폐하'로, '왕대비 전하'는 '왕태후 폐하'로, '왕비 전하'는 '왕후 폐하'로, '왕세자 저하'는 '왕태자 전하'로, '왕세자빈 저하'는 '왕태자비 전하'로, '전문(箋文)'은 '표문(表文)'으로 바뀌었다.[3] 또 국왕의 자칭인 '과인(寡人)'은 '짐(朕)'으로 바꾸고, 대군주의 명령은 제후의 '교(敎/教)'가 아니라 황제와 마찬가지로 '(勅/敕)'이라고 부르게 하였다. 단 대군주라는 칭호에는 ''이라는 글자가 포함돼 있지 않지만 '왕' 자는 왕후, 왕태자 같은 표현에서 대군주와 관계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글자로 계속 사용되었다.
나는 (박영효에게) 조선의 왕중국 황제를 부를 때 ‘신’(臣, 대신 혹은 봉신)이라는 글자를 사용하는 것이 종속성과 종속 관계의 표시가 아닌지 물었다. (I inquired whether the use by the King of Corea of the character "Chen"(Minister or vassal), in addressing the Emperor of China, was not a mark of dependence and subordination.)
1882년 10월, 주일영국공사 파크스(H. Parkes)가 외상 그랜빌(G.L.G. Granville)에게.
김옥균박영효 등은 《속방조회(屬邦照會)》를 비롯한 외교 의례들이 조선의 지위를 청나라에 종속시키고 있다는 외국인 관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갑신정변(1884) 때 조공체계의 폐지를 기도하면서 해당 칭호를 도입하려고 했었으나 정변이 실패하면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10년 후 일본이 수립한 친일내각이 갑오개혁 때 드디어 실행된 것이다. 이후 대한제국 수립(1897)으로 황제 칭호를 사용할 때까지 모든 공식 문서에 대군주 칭호를 사용하였다.

대군주는 또한 서양 국가의 국왕(king) 칭호를 번역하는 데에도 사용했다. 유교 세계관으로 보기에 봉신을 거느린 군주는 그냥 황제인데, 유럽 군주들이 대부분 칭제는 하지 않으니 고민 끝에 선택한 번역이다.

사실, 봉건제 하에서 명목상으로나마도 주군이 없는 독립 공작그냥 군주였고, 이런 인식은 동아시아에도 존재하였다. 이들이 주군을 가지게 될 경우 공작으로 격하되는 제국신성 로마 제국 뿐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속 사정은 당대 조선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대군주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현대 중국의 드라마에서 조선 국왕을 그냥 황제로 불러주는 것에서 보이듯 이런 개념은 아시아에서도 그대로 통용되어왔다. 인도에도 라자 개념이 있는 것에서 보면 전 지구적 현상이다.

서유럽과 비슷하게 유일 황제 개념이 조선에서도 단 하나의 천자로 존재하였기 때문에 주변 독립 군주를 명목상의 봉신으로 두어 권위를 세웠으나, 이런 전통적 조공외교에 대한 인식이 약해지면서 정작 중국 본토에서 독립 군주인 조선의 군주가 칭제가 아닌 칭왕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어찌보면 대군주는 혁명이 휩쓸고 난 이후에도 황제위는 하나뿐이란 개념이 강하게 남아있던 것을 꽤나 반영한 번역이다. 대군주란 개념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지금 중국 드라마에서 하는 것처럼 독립 군주들을 모두 황제로 불러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각 나라 군주의 이름은 아래와 같다.

1.2. 대군주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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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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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동아시아황제와 유사한 칭호 목록

1.4. 같이보기

2. 봉건제에서의 역사학적 개념어

Overlord

봉건제도 아래서 휘하에 여러 군주들을 거느리는 통치자이다. 기본적으로 "군주들의 군주"라는 뜻이나, 이 용어는 군주의 칭호나 작위로써는 안 쓰이고, 학술용어나 비유적인 표현으로써 사용된다.

학술적으로는 중세 봉건영주 간의 상하 분봉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어이다. 중세 유럽의 봉건제도에서 영주(lord)들은 크기가 크든 작든 자기 영지를 독자적으로 소유하고 경영하는 지배자들이다. 이 영주들은 쌍무적 계약 관계로써 더 높은 영주에게 복속되며, 국가의 최고 주권자인 왕이나 황제로부터 최말단의 기사에 이르기까지 지배계급 전체가 여러 단계의 계약-복속 관계를 이루는데, 이렇듯 계서적 지배구조에 속한 영주의 관점에서 계약 관계상 상위에 있는 영주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overlord이다.

이러한 개념은 분권적이고 수렴적인 사회·정치구조를 지녔던 유럽식 봉건제도를 바탕으로 탄생하였다. 중세의 통치자들은 자연법이나 관습법 등에 의해 제약되는 존재였던 까닭에, 각 영주는 봉신으로서의 의무만 수행한다면 자기 영지에 대해서는 주군한테 침해받지 않는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예컨대 프랑스 국왕이 자기 봉신 중 일개 성주 수준의 봉토를 소유한 약소 백작영지 안에 머무른들, 백작에게서 주군으로서 성심성의껏 대접받고 봉신으로서 맹세한 봉사(병력, 납세·부조 등)를 받더라도 그와 별개로는 백작에게 그 영지에 관하여 무언가 강요할 수는 없었고, 따라서 서로 지킬 것만 지키면 문제 될 일이 없었다. 만약 어느 일방이 서약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다면 다른 일방에게는 상대를 응징할 명분과 자격이 주어지기에, 그러한 문제가 벌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철저한 교육을 받았고, 일어난 갈등에 관해서는 전쟁 외에도 유리한 법적 배경 하에서 주변의 중재와 동맹을 활용하는 등 다른 해결방안도 고려되었다.

한국사에서는 이러한 지배구조가 존재한 적이 없으므로, 한국어에는 이 역사적 의미의 overlord에 정확히 대응하는 번역어가 없고, 따로 합의된 용어 없이 대충 대군주, 상위(상급) 군주, 최고 군주, 지상(至上)의 군주, 지존의 군주 등으로 번역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봉건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이 역어를 보고서 "군주=왕"이라고 인식하여 휘하에 여러 군주를 거느리는 군주라면 그냥 "황제" 아니냐고 오해하기 쉬운데, 상위 영주에서 하위 영주로 영토가 분봉되는 봉건제도 아래에서는 모든 영주가 자신의 영지에서는 "군주"(lord)이므로 하위 영주를 거느린 대영주는 "대군주"(overlord)가 된다. 즉, 이는 역어에서 비롯하는 오해이며, 이러한 오해를 방지하고자 사용되는 한자는 같으나 조어 순서가 다르고 정의와 용례가 더 잘 들어맞는 "주군(主君)"으로 옮기기도 한다.

한편, 단순히 비유적 표현으로써는, 특히 고대, 중세의 역사적 배경과 상관없는 글에서 overlord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에는 단순히 지배자, 패권자, 권력자 정도의 의미가 된다. 이 경우 불합리한 권위나 억압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들어가는 경우가 잦다.

정확히 반의어라 할 수는 없지만 반대 의미에 가까운 개념으로 봉신의 봉신을 가리키는 표현인 vavasor이 있다, 이는 중세 라틴어 단어인 vavassor가 중세 프랑스어 및 영어 단어 vavasour를 거쳐 현대 영어로 정착된 표현이며, 의미는 'subvassal', 또는 'vassal of vassals'. 말 그대로 '봉신의 봉신' 이다. 번역어로는 종종 주나라 봉건제도에서 봉신의 봉신, 즉 천자의 관점에서 볼 때 제후의 신하를 가리키던 표현이던 배신(陪臣)을 사용한다.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뒤통수를 때린다는 그 배신(背信)이 아니다.)

간단한 예시로 《왕→대영주→소영주→기사》의 전형적인 봉건적 지배구조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왕'이나 '대영주'는 휘하에 (자신의 영지에서는 군주인) 다른 영주를 거느리고 있으므로 대군주(overlord)에 해당한다. 반면 소영주나 기사는 '왕의 관점에서 볼 때' (자기 봉신에게 또 분봉받은 봉신이므로) 배신(vavasor)에 해당한다. 당연히 대영주의 관점에서 보면 소영주는 그냥 봉신(vassal)이고 기사만 배신이다. 물론 두 개념을 자세히 비교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overlord와 vavasor이 서로 반의어(반대말) 관계라고 이해하면 그 역시 다른 오해가 되므로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되고 단지 두 개념이 가리키는 바가 반대에 가까워서 서로 비교해보면 이해하기 편하다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봉건제가 쇠퇴한 이후 유명무실해진 본래의 의미보다 가리키는 바가 확장되어 지배자나 패권자, 권력자를 널리 일컫는 표현이 된 overlord처럼 vavasor 역시 (중앙집권화의 진행으로 봉건제의 복층적 지배구조가 단순화를 겪은 이후) '자기 아래에 다른 봉신을 두지 못하는, 자신과 자기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의 토지만을 가진 최소 토지 보유자' 라는 의미가 되어 장교나 관료, 기술자 등 영주 밑에서 일하는 전문가를 일컫는데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진 것 역시 공통점.

3. 대중매체

3.1.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유닛 대군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군주(스타크래프트 시리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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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엘더스크롤 시리즈에 등장하는 몬스터 종류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드라우그(엘더스크롤 시리즈)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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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레전드히어로 삼국전의 최종보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군주 사마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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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전체로 '대조선국 대군주보'라고 적혀 있다.[2] 조선은 이전까지 청국의 속방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제3국과 동맹조약을 체결할 수 없었으나, 일본군이 조중장정을 일방적으로 폐기함으로써, 독립(independence) 유지를 내세운 동맹 조약을 체결할 수 있던 것이다.[3] 고종실록 1894년 12월 17일(기미) 1번째 기사[4] 진성여왕 대에 세워진 월광사 원랑선사 탑비에서는 진성여왕의 아버지 경문왕에게 '황왕(皇王)'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