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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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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한국사에서2.2. 실존 인물2.3. 동아시아황제와 유사한 칭호 목록
3. 고려~조선시대 경칭4. 기타5. 같이보기

1. 개요

파일:external/24.media.tumblr.com/tumblr_lyag51XYXJ1r2rt7vo1_500.jpg
파일:세종대왕.jpg
프로이센 왕국 제3대 국왕 프리드리히 대왕 조선 제4대 국왕 세종대왕
/ the Great

거대한[1] 역사적 족적을 남긴 왕을 일컫는 말. 황제일 경우 대제(大帝)라고 한다.

2. 상세

대왕 혹은 대제라는 명칭의 사용방법은 지역마다 많은 차이가 있었으며,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 기준으로도 용어 사용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중국사에선 대왕은 공식적인 존호시호가 아니었고 군주호가 '왕'인 군주를 예의를 갖춰 높혀 불러줄 때 사용되었다. 당시 시황제황제라는 명칭을 만들지 않았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신하들이 각국의 왕을 부를 때 '폐하', '성상'과 같은 의미로 '대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대제 칭호는 한자문화권에서 사용된 예가 거의 없다. 공식적으로 대제라는 시호를 사용한 사람은 동오 대제 손권이 유일한데, 대(大)는 시법에 없는 글자로 대황제를 시호로 받은 손권이 오히려 이례적이다.[2]

현대에 들어서 서양에서의 대왕, 대제의 정의가 들어온 뒤로 대왕, 대제 칭호는 정말 대왕이 어울리는 사람에게나 붙여주는 아주 희귀한 칭호로 바뀌었다.

한자문화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대왕 및 대제가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정말 거대한 업적을 세운 군주에게만 헌정하는 칭호. 사실 한자문화권의 특성상 대왕이라 번역하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별명에 가깝다.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의 개수가 무한대에 가까운 한자문화권과 달리 대부분의 다른 문화권은 일반 명사에서 이름이 비롯되었기 때문에 이름의 절대 개수가 적다. 게다가 피휘 관습이 없고 오히려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름이 중복되는 경우가 워낙에 많고, 그래서 구별을 위해 별명을 붙이는 관습이 발달했다. 사자심왕 리처드, 존엄왕 필립의 예처럼 인물의 특성이나 업적을 칭송하는 별명을 많이 사용하였고, 대왕(the Great) 역시 이러한 별명. 시호와 비슷하게 번역하는 관행이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이러한 별명은 '사자 심장(을 가진) 리처드', '존엄한 자 필리프'라 번역하는 것이 원래 의미에 가깝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역시 직역하자면 '대(大) 알렉산드로스' 또는 '거대한 알렉산드로스'이다.

2.1. 한국사에서

한국에서는 원래 왕을 높여 부를 때 사용하는 용어였던 대왕고구려태왕과 더불어 우리식 왕중왕 격의 군주명으로서 고유명사가 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백제어라하건길지도 뜻을 풀이하면 곧 큰 + 임금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서 고구려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의 시호엔 모두 '대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이 때문에 초창기 고구려에서는 '대왕'이 잠시 정식 시호가 된 게 아닌가 추정되고 있으며 신라백제에선 묘호[3] + 임금의 이름 혹은 시호 + 대왕(大王)으로 책이나 비석에 기록되어 있는 실례가 많으므로 이 경우도 위와 같은 추측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신라나 백제의 '대왕'은 금석문에서 폐하라는 경칭으로도 등장하고 있으며[4] 삼국유사 가락국기나 여러 고고학적 유물들을 보면 가야 역시 때때로 군주를 대왕이라고 부른 듯하다.

발해의 경우 임금들의 공식 시호가 모두 시호 + 왕(王)이라서 알기 어렵지만 발해 공주의 무덤 조사를 통해 발해 문왕의 존호[5]가 연호(2개) + 문왕의 존호 + 대왕(大王)[6]임을 알아내 발해 역시 '대왕'이란 용어를 사용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한국사의 고려당나라의 흥성 이래 중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아시아 문화권이 당·송 교체기를 지나 다원론적 천하관으로 정착해가는 국제 질서의 소용돌이 안에 놓여있었는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려의 군주들은 공식적으로 중원의 황제를 자처하여 '황제국'을 선포하기보단 독자적인 해동의 '천자국'으로서 '대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며 거의 모든 문물에 황제 제도를 수용하였다.[7][8]그러나 원 간섭기 이후 고려가 원나라의 심각한 간섭을 받게되면서 왕실 예법이 제후국 체제로 격하되었으며 이후 화이사상에 기반한 성리학적 질서를 중시했던 조선은 원 간섭기 이전에 있었던 고려의 해동천하관[9]을 비판하기도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고려 때 사용했던 제도의 일부를 관습적으로 받아들였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원간섭기 이후로 폐지된 묘호제도를 공식적으로 부활시키기까지 하였다. 한편 고려·조선 시대에는 간혹 왕들의 시호를 부를 때 '대(大)'자를 빼서 짧게 부른 경우는 있었어도 왕들의 공식 시호는 고려가 몽골의 부마국이 된 시기를 제외하면 모두 묘호 + 임금의 시호 + 대왕(大王)이라서 '대왕'이 정식 시호였음을 알 수 있다.[10]

정식 군주호가 아닌 칭송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서양에서의 정의가 들어온 후 한국에서 대왕이라 가장 많이 불리는 사람은 광개토대왕세종대왕이 있다.[11] 그 외에는 대왕호와 왕호가 다소 혼용되고 있으나 삼국통일전쟁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끈 문무왕이 문무대왕 칭호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12] 군함마다 위인의 이름을 붙이는 대한민국 해군에서도 대조영함 등 한국사 역대 국왕의 이름을 붙인 배는 더 있지만 그 중에서 대왕이 붙은 배는 세종대왕함, 광개토대왕함, 문무대왕함, 정조대왕함 네 척밖에 없다.[13]

2.2. 실존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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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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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동아시아황제와 유사한 칭호 목록

한국사 군주의 칭호
{{{#!wiki style="min-height: 20px; 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공통
임금 |
고조선 진국 · 삼한 백제 고구려· 신라
단군 한왕, 신지, 읍차 태왕
신라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신라· 가야 탐라 발해 고려
간지, 한기 성주, 왕자 가독부 대왕, 황제
조선 대한제국
, 대군주 황제, 대황제 }}}}}}}}}

3. 고려~조선시대 경칭

고려~조신시대엔 신사가 많았다. 신사는 역사적 인물[39], 산신, 물의 신[40] 성황신[41]을 섬겼는데 이 신 중 남성이면서 민중의 지지가 높았던 신은 대왕(大王)으로 높혀졌다.
나라에서 우리 신의 위엄있는 영혼이 의지할만하다 여겨 대왕의 호(大王之號)로 높히고(崇) 봄, 가을마다 제사를 지냈습니다.
동국이상국집 제38권 경주동서양악제문
대왕은 고려 정부에서 높여준 신의 경칭이다. 이규보는 경주의 동악대왕, 서악대왕에게 글을 써 대왕이란 이름은 나라에서 올린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 대왕 신호는 민간에서 천왕(天王)과 동일시 됐다. 그 예로 구룡산 대왕과 지리산 대왕은 달리 구룡산 천왕, 지리산 천왕으로도 나온다.

조선시대에도 이 대왕이란 경칭이 유지됐고, 태조 이성계는 한술 더 떠 진국공, 진국백, 계국백, 호국백이라는 1공 3백 작위까지 신설해 봉했다. 하지만 태종 이후 신들을 단지 '~지신'으로만 기록하게 하면서 대왕 경칭은 삭제됐다.

대왕으로 기록된 신은 다음과 같다:
이 외에 유이하게 지리산신과 태백산신은 대천왕(大天王)으로도 불렸다[44].

4. 기타

5. 같이보기


[1] 서양의 대왕(the Great) 개념은 가치평가적 의미에서 '위대함'보다는 영향과 행보의 '거대함'에 초점이 있다. 가령 이스라엘헤로데 대왕은 (현대 역사학의 연구와는 별개로) 2000년동안 유다인과 그리스도인 양측 모두에게 증오를 받았지만, 그래도 역사적 족적이 거대하니 대왕(the Great)이라 불린다.[2] 때문에 후세의 사가는 오나라의 이런 시호를 ‘무식하다’라며 깠다. 대(大)는 국호나 임금의 위대함을 가리키는 수식어로 주로 쓰였기 때문. 강희제 같은 경우 ‘강희제’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는 근대 이후의 표현일 뿐더러, ‘세종왕’처럼 수식의 성격이 강하다.[3] 예로 신라의 태조, 태종이 있다.[4] 미륵사 사리함기에 나오는 '대왕 폐하'라든지.[5] 임금이 살아있을 때 이름 대신 부르던 것, 죽었을 때는 시호라고 한다.[6] 광개토대왕릉비에 의하면 대왕의 존호 역시 연호(영락) + 태왕(太王)임을 알 수 있다.[7] "우리 동방(東方)은 옛날부터 당나라의 풍속(唐風)을 흠모하여 문물(文物)과 예악(禮樂)이 다 그 제도를 따랐으나, 지역이 다르고 인성(人性)도 각기 다르므로 꼭 같게 할 필요는 없다. 거란(契丹)은 짐승과 같은 나라로 풍속이 같지 않고 말도 다르니 의관제도(衣冠制度)를 삼가 본받지 말라" 【훈요 10조 中 제4조(其四曰)】[8] 고려에서 황제 칭호는 성황, 신성제왕 등과 함께 별칭으로써 사용됐다.[9] 신성 혈통을 부여받은 용의 후손이자 해동 세계의 주인인 고려의 군주가 중원의 천자와 구별되는 해동의 천자로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관념.[10] 다만 몽골 간섭기를 지나 조선이 건국된 후 성리학적 질서가 강화됨에 따라 대왕(大王)의 칭호는 독자적인 해동 세계의 천자라는 위상을 상실했으며 그저 중국 황제의 제후라는 수직적 관계가 견고해졌다. 이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소위 황제 콤플렉스를 갖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11] 영어판 위키백과에서도 대왕을 뜻하는 'the Great' 칭호가 붙은 한국사의 군주는 이 두 명이다.[12] 문무대왕릉은 한국의 문화재로 지정된 여러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왕릉이 아닌 대왕릉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이름붙여져 있다.(사적 158호) 2021년에는 지명도 생겼다. 문무대왕면 문서로.[13] 동시대의 태종 무열왕김유신은 현대 민족주의적 시각 기준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지만 문무왕은 고구려와 백제뿐 아니라 외세 당나라일본나당전쟁, 백강 전투에서 싸워 물리친 공적에, 죽어 동해용왕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처럼 민족주의적 시각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면모가 많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비판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14] 이 셋은 정식 명칭이 대왕이다.[15] 삼국시대 시절의 군주들 중 단연 최고의 군주이며 고구려를 힘 좀 있다 싶은 작은 산악 국가에서 동아시아를 호령하는 제국이자 중국과 대등한 천하의 중심으로 만든 한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로 꼽힌다. 또한, 성품과 정치력도 매우 뛰어나 나라도 잘 다스렸으며 그의 승하 이후 아들인 장수왕이 고구려의 문화와 경제의 최전성기를 이루었다.[16] 세종대왕, 광개토대왕은 대왕을 빼고 부르는 게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널리 쓰이지만 문무왕은 연관이 깊은 지역(경주)에서 특별히 부각하고자 쓰는 경우 외에는 그리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경주에는 문무대왕면, 문무대왕릉, 문무대왕연구소 등이 있으며 이외 대한민국 해군구축함 문무대왕함이 있다.[17] 한글을 창제했고 4군 6진을 개척하여 현대 한반도의 경계를 확정짓고 조선의 영토를 넓히는 업적을 이루었다. 그 외에도 각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쌓아 오늘날까지 명군의 대명사로 여겨진다.[18] 중국은 따로 대왕 또는 대제라고 표현하기보다는 묘호에 해당 군주에 대한 평가를 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19] 이쪽은 정식 시호가 대제다.[20] 사실상 중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대제 칭호가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는 군주.[21] 기독교 공인 이전에는 '신격'의 칭호를 받았으며, 기독교화 이전의 황제들이 빠지는 등 기독교적 관점이 많이 들어간 평가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기독교 공인 이전의 황제 중 신격화 이외에도 동시대 혹은 후대에 별도의 경칭을 받은 황제로는 트라야누스 황제(옵티무스 프린켑스: Optimus Princeps, 지고의 황제로 번역되나 당시 로마엔 공식적으로 황제 칭호가 없었다. 직역하면 완벽한 으뜸 시민.)와 그를 포함한 오현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22] 마누일 1세의 통치로 동로마 제국은 마지막 중흥기를 맞아 역대 최고의 경제 호황을 누렸고, 외교적으로도 동로마 제국을 당대에 신성로마제국과 유럽의 패권을 다투는 강대국으로 만들었다[23] 당대에 대왕 칭호를 받긴 했지만, 현실은 그의 왕권에 기생하기 위한 귀족들의 아부성 칭호에 불과했다. 루이 14세 치세 중 대왕이라 부름받을만한 시기는 통치 전반기로 국한되며 보통은 태양왕(Le Roi Soleil)으로 더 언급된다.[24] 영문판 위키백과에 터키어로 the great에 해당하는 Koca라는 별명으로 불린다고 제시되어 있으며, 터키어판에도 그렇게 나온다. 아들인 메흐메트 2세가 워낙 유명한지라 묻혀서 그렇지 이 인물도 상당한 명군으로, 알렉산드로스 3세의 업적이 부왕인 필리포스 2세가 마련해놓은 기반 덕분이었듯이 무라드 2세가 그냥 평범한 군주였다면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비롯한 메흐메트 2세의 업적은 불가능이었거나 실제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25] 크메르 문자를 다듬어 타이 문자를 만들었다.[26] 태국 국민이 1987년에 '대왕(the Great)' 칭호를 헌정해 공식적으로 대왕으로 불린다.[27] 페르시아의 시조라는 전설이 있는 인물로 아케메네스 왕조는 그의 이름을 딴 왕조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를 부풀리기 위해 만든 가공인물이라는 설이 유력하며, 오늘날에는 키루스 2세를 실질적인 시조로 간주하고 있다.[28]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실질적인 시조. 개신교 성경에서 고레스 대왕으로 불리는 인물.[29] 1950년 이란 국회에서 대제 칭호를 헌정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Reza Shah the Great를 치면 레자 샤로 리다이렉트된다.[30] 이쪽은 프로이센 왕국의 전신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써 대선제후(Großer Kurfürst)로 불린다.[31] Wilhelm der Große : 구 독일제국 한정.[32]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서 카를 4세이며 보헤미아 국왕으로서는 카렐 1세이다.[33] 양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체 전까지 1097년부터 공식적으로 동군연합이었다.[34] 위의 숙부 카지미에시 3세가 후사가 없어 조카로서 폴란드 국왕도 겸했는데 폴란드에서는 단순히 헝가리의 루드비크(Ludwik Węgierski)로 불린다.[35] 후녀디 야노시의 아들로, 중세 헝가리 왕국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군주이다. 가문의 문장이 반지를 물고있는 까마귀(라틴어로 코르비누스, 헝가리어로는 초르빈)라서 '마차시 코르비누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며,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코르비누스 대학이 여기서 유래했다.[36] 불가리아 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이자 세계 최초의 차르. 당시 판도가 현재의 루마니아에서 마케도니아에 이르렀다.[37] 연호가 보대라서 보대제이다(...)[38] 진성여왕 대에 세워진 월광사 원랑선사 탑비에서는 진성여왕의 아버지 경문왕에게 '황왕(皇王)'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39] 삼성사의 환인, 환웅, 단군. 동명성제사의 동명성제, 석탈해사의 석탈해 등[40] 동해신사, 서해신사, 남해신사 등[41] 고을의 신이다. 유명한 성황신으론 이규보가 제문을 쓴 전주 성황대왕 등이 있다.[42] 달리 '구룡산 천왕'이라고도 한다.[43] 달리 '지리산 성모', '지리산 천왕'이라고도 한다.[44] 세종실록지리지를 따르면 진주에 지리산 '대천왕사'가 있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태백산신의 제사를 지내던 근산신사는 달리 '대천왕사'로 불렸다고 한다.[45] 후손의 별명은 대에 맞춘 소(小)다.[46] 일례로 지구 역사상 단독개체가 가장 큰 동물인 흰긴수염고래가 대왕고래라고 불려진다거나,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의 이름인 차르 봄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