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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수목 드라마 대왕의 길 (1998) King of the Wind | ||
장르 | 사극 | |
방송 시간 | 수 · 목 / 오후 9:55 ~ 오후 10:55 | |
방송 기간 | 1998년 4월 15일 ~ 1998년 8월 13일 | |
방송 횟수 | 34부작 | |
제작 | MBC | |
채널 | MBC | Arirang TV | |
제 작 진 | 제작 | 이병훈 |
연출 | 소원영 | |
극본 | 임충 | |
출연 | 박근형, 임호, 홍리나, 윤손하 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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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8년 4월 15일부터 동년 8월 13일까지 MBC에서 4개월간 방영한 한국 사극.2. 특징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 이후 대하소설 등을 사극화[1]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오랜만에 정통사극으로 돌아온 드라마이자 현존하는 MBC 최후의 정통사극이다.[2] 임오화변을 다룬 드라마로, 34부작으로 조기종영되었다.임충이 대본을, 소원영이 연출을 맡았다.
유머 코드가 매우 적다는 것도 특기할 점이다.
3. 국외 방영
아리랑TV에서 2005년에 "King of the Wind"라는 제목으로 재방송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에 남아 있는 대왕의 길의 동영상은 대부분 아리랑TV 자막이 달려있다.4. 등장인물
- 영조 - 박근형(아역: 곽정욱)
- 사도세자 - 임호[3]
- 혜경궁 홍씨 - 홍리나
- 숙의 문씨 - 윤손하
- 영빈 이씨[4] - 정혜선
- 정성왕후 서씨- 문예지
- 정순왕후 김씨 - 이인혜
- 화평옹주 - 김성령[5]
- 화협옹주 - 구혜진
- 화완옹주 - 김지연(아역: 이정윤)
- 한산부부인 이씨(혜경궁 홍씨의 어머니) - 김자옥
- 홍봉한 - 한인수
- 홍인한 - 조형기
- 김한구 - 최주봉
- 문성국 - 권용운
- 숙의 문씨의 어머니 - 김애경[6]
- 김상로 - 박종관
- 이종성 - 변희봉
- 박문수 - 이영후
- 신만 - 한규희
- 홍계희 - 박영태
- 엄흥복 - 안승훈[7]
- 대전 내관 - 남포동
- 세자전 내관 - 박종설, 김영석, 정태섭[8], 조성하
- 민별감 - 이원재
- 최 상궁 - 김지영
- 청연군주 - 장수혜
- 윤 상궁 - 김용선
- 문 숙의 처소 상궁인 하상궁 - 송옥숙
- 대령상궁 민씨 - 노경주
- 노론대신 - 최병학
- 인원왕후 김씨 - 김용림
- 숙빈 최씨 - 김영애[9]
- 숙빈 임씨 - 고호경
- 효장세자빈 - 박정숙
- 그외 신승주, 이영희, 김진구, 최성철, 조성권, 김형근, 박정순, 권혁풍, 김춘기, 김승현 등이 출연하였다. 이들은 크레딧에는 이름을 올렸으나 주요 배역은 아닌 내관, 나인 등의 MBC 소속 단역배우일 가능성이 높다.
박근형이 영조로 출연하여 폭풍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하지만 1부에서는 경종 때라 대비의 치마폭에 숨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10] 여기서의 영조는 25살의 매우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60세에 가까운 박근형이 연기해 위화감이 심했다.(...) 거꾸로 김일경 역시 60대의 노인이었음에도 이진우가 맡았던 것이 특징.[11] 메인 주인공 사도세자에는 작가 임충의 자제인 임호가 출연했다. 이 작품에서 사도세자는 한중록을 참조하여 다소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주지만[12] 한편으로는 노론을 제압하고 개혁을 단행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한다.[13] 혜경궁 역에는 홍리나.
특이한 출연자를 한 사람 소개하자면 김수미가 사도세자를 훈육한 소론계 상궁으로 출연하는데, 궁중 내에서 신왕이 즉위해야 한다는 내용의 섬뜩한 굿을 한다. 출궁당한 이후에는 남자처럼 수염을 붙이거나, 상상이지만 아들뻘인 이진우(김일경 역)와 붕가붕가까지 하는 엽기 장면을 선사한다.[14] 원래 계획에는 정조시대까지 안배를 하고 있었기에, 홍낙춘, 홍국영 부자도 출연한다. 초기에는 많은 비중을 가지고 있었으나, 조기종영 탓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윤손하의 사극 데뷔작이기도 하다. 권력을 얻기 위해 자신이 낳은 옹주와 다른 집 아들을 바꿔치기하려고까지 하고(결국 성공하진 못했지만) 사도세자를 모함하는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 역으로 출연했다. 1화에서 문 숙의의 오라비와 문 숙의가 생각시에서 나인이 되어 비녀를 꽂는 장면이 장시간 방송되는 걸 보면, 사실상 진주인공. 악역 연기가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5. 시청률
당초에는 영조→사도세자→정조로 이어지는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의 하나였으나, 시청률의 저조로 이어지지 못하고 조기종영 되었다. 그 나머지는 이후 홍국영 및 이산으로 재현되었다.결국 시청률 저조로 34회를 마지막으로 종영되었다. 34회는 뒤주 속에서 사도세자가 죽고, 정적 김상로가 그 소식을 듣고는 껄껄 웃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15] 영조는 세자가 죽은 뒤에야 김상로에게 속았음을 깨닫게 된다. 2010년대 이후엔 영조가 '이게 다 김상로, 홍계희 때문이다'를 시전한 것 자체가 정조 보기 민망했던 영조의 구차한 변명으로 보지만 말이다.
종영 관련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종영 후 시청자들이 '왜 조기종영하냐'고 항의하자 담당PD는 그러면 방송할 때 잘 좀 보지...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21세기에도 시청률에 따라 연장 및 조기종영의 폐해가 큰데, 거기에 대한 좋은 경종이 될 것이다. 그나마 훗날 들어 저주받은 걸작으로 매니아들에게 재평가받기도 한다.
6. OST
대왕의 길 메인 테마
7. 평가
이덕일에게 오염되기 이전의 영, 정조 관련 마지막 사극이다.[16][17] 궁중어를 살리면서도 영조의 심리나 말을 잘 묘사한 대사들도 수준급. 이후로는 이덕일 사관이 떡칠된 사극[18]이 판을 쳤다. 이산도 예외가 아니다.[19]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번역, 보급되기도 전의 사극이라서 오류도 일부 존재하고,[20] 위에 보듯이 사도세자가 노론 개혁을 꿈꾸는 세자라는 둥 역시나 깨지는 묘사도 없진 않다. 또한 옛날이나 지금이나 잘 구현되지 않는 궁중 호칭들[21]을 표현한 몇 안 되는 사극이다.극 중간에 화완옹주가 사도세자를 사모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 설정이 나온 것은 나중에 화완옹주가 세손(정조)를 모해하는 한 이유가 될 것이 아닌가 추측되지만, 조기종영 덕분(?)에 알 수 없게 되었다. 사실 한중록에 화완옹주가 사도세자의 처소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둘이서만 있었다는 기록이 몇몇 존재한다.[22] 이를 차용한 것.
당의를 입은 궁중 여인들이 족두리를 쓰는 것을 다른 사극에 비해 비교적 잘 재현한 편이지만 첩지머리만 한 장면도 많다. 링크
8. 기타
- 같은 제목의 책은 있으나 드라마 소설이다.
[1] '일출봉', '미망' 등[2] 아이러니한 점은 사실 대왕의 길도 당대에는 일부 기자들에게 당대에는 정통사극을 표방하면서 역사를 벗어난다고 씹혔다는 점이다. 1화에서 첫 장면부터 김일경이 영조를 죽이려고 칼부림을 벌이거나, 사도세자가 내시들을 진검으로 위협하면서 술레잡기를 하는 것이 역사에 없는 일인데(!) 이런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장면들을 집어넣었다는 비판이다. 사실 첫 장면은 영조의 고난을 (경종 역의 배역이나 여러 장면을 동원할 필요 없이)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신이며, 사도세자가 실제로 내시들에게 굴었던 모습을 생각하면 해당 신은 기록에 없을 뿐 과장 된 것은 아니다.(...) 이렇게 기자들의 비판이 좀 과도한 측면은 있었지만, 2000년대 전만 해도 '정통사극'이란 개념이 얼마나 빡센 개념이었는가를 되짚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3] SBS 월화 드라마 장희빈 당시 숙종 역할을 맡았다.[4] 드라마 상에서는 선희궁으로 호칭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선희궁'은 사당의 호칭이고 사당은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한 시설이므로, 영빈 생전에 선희궁으로 호칭하는 것은 오류이다.[5] 이른 죽음으로 빠르게 퇴장하는 비중이지만 그 역할은 적지 않다. 진주인공 격인 숙의 문씨의 승은에 화평옹주의 죽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화평옹주는 출산을 앞두고 문 숙의의 방자함에 격노하여 그를 당장 끌어내라고 외치지만, 오히려 그 분노가 독이 되어 진통이 시작되고, 결국 난산 끝에 숨을 거두기 때문이다. 영조는 그야말로 통곡. 뒤이은 효장세자빈의 죽음 역시 문 숙의가 승은을 입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승은까지 문 숙의의 삶은 구사일생 기사회생의 모습을 보이는데 대표적인 천운이 화평옹주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문 숙의를 줄곧 내쫓려다가 승은을 입자 귀신같이 태세전환 하여 옥가락지에 포섭된 상궁이, 문 숙의의 승은은 모두 하늘의 뜻이며 세자의 어머니는 못 되겠냐고 꼬드기는 신에서도 화평옹주가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냐는 말을 한다.[6] 조선왕조 오백년에서는 정성왕후 역으로 출연했다. 본격 신분 하락[7] 세자와 끝을 같이하는 무인으로 나온다.[8] 2001년 졸로 전원일기의 이노인으로 방송 중 사망하여 극중에 장례 에피소드도 있다.[9] 신분을 무수리로 보는 설을 채택하여 구수한 서남방언으로 영조가 정성왕후를 소박 놓은 걸 병상에서 질책하는 연기가 일품이다. 이 말은 결국 숙빈 최씨의 유언이 되는데, 개별 신이 아닌 작품 내에서의 비중을 생각하면 아쉬운 점도 있다. 이 유언이 영조가 어머니의 무수리 신분에 대한 컴플렉스를 극복하는데 도움도 되지 못했을 뿐더러, 숙빈이 유언으로까지 경계했음에도 영조가 직접적으로 서씨를 박대하는 행각을 거둔 것도 아닌지라. 졸지에 인과적으로는 의미 없는 신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영조만 청개구리 불효자식이 되어버렸다 물론 진지하게 생각하면 실제로 영조는 본인의 적모이자 최대 은인인 인원왕후가 아무리 사도세자를 박대하지 말고 잘 지내라는 조언을 했어도 귓등으로도 안 들었기에 조선시대 기준으로나 지금으로나 드라마상에서나 진짜배기 불효자식인것 또한 맞긴하므로 고증적으로는 의미있는 신이긴 하다.[10] 이때 영조를 죽이려 달려드는 무사가 바로 김일경이다.[11] 이진우가 50대가 된 2020년대 시점에서는 해당 시기의 김일경을 이진우가 맡아도 그렇게까지 큰 위화감은 없겠지만 당시 이진우는 30대 초반이었다.[12] 다만 의대증이나 경빈 박씨를 때려죽이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13] 이덕일이 '사도세자의 고백'을 출판하기 바로 전이다.[14] 원래 김수미가 맡은 무당은 금혼을 지켜야 하는 나이든 상궁이었으나, 젊은 관리였던 김일경을 흠모하고 있었고, 1화에서 연잉군 시절의 영조를 죽이려 했던 김일경이 사사된지 오래라 거기에 대한 깊은 원한을 가지고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어 김일경의 혼을 부르는 의식을 한 것이다.[15] 영조의 회상과 김상로가 노론 일당들과 함께 웃는 것이 두 차례 반복된다. 극 중에선 김상로가 원한을 가질만도 한 게, 세자가 궐에서 직접 활을 쏘며 '상로야, 간다!' '상로야, 받아라!' 하며 활을 쏘아댄 것이 건너건너 결국 김상로에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김상로는 이 작품에서 노론의 영수로서 나오기 때문에 결국 세자의 활쏘기는 노론 자체를 겨냥한 것이지만, 결국 그 때문에 노론 전체가 세자의 죽음을 기도하는 것으로 그려진다.[16] 실제로 이덕일이 자신의 칼럼을 엮어서 펴낸 책인 "역사에게 길을 묻다"에서는 아예 대왕의 길에 대한 파트를 하나 할애해서 사극과 관련된 자기 생각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냈다.[17] 다행히도 2015년을 기점으로 영화 사도의 흥행이 성공하면서 이덕일에 대한 환상과 더불어, 노론 음모론이 대중들 사이에서 확실히 힘을 잃었다. 이후로는 노론 음모론을 철저히 배제한 작품들이 속속들이 등장하여 흥행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옷소매 붉은 끝동의 흥행은 영조와 정조 시기를 다룬 창작물에서 이덕일의 영향이 확실히 사라졌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18]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조암살미스터리 - 8일과 한성별곡. 독살 떡밥만 빼면 수작이지만 애초에 독살, 암살 드립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니..[19] 그래도 독살설은 안 집어넣은 게 어디냐는 소리도 있다.(...)[20] 드라마 마지막회에 사도세자의 자녀를 소개하면서 4남 3녀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5남 3녀. 요절한 정조의 동복형 의소세손의 존재가 빠졌다. 대개 이런 자잘한 정도의 오류이다.[21] 옹주 자가, 동궁 마노라 등.[22] 다만, 주류 역사학계는 이 기록을 단순히 남매끼리 밤새도록 술판을 벌인 기록으로 해석한다. 근친상간 운운하는 음란마귀 낀 해석을 채택하기에는, 주변의 내시들과 궁녀들까지 몽땅 헬렐레해서 나가떨어졌다는(...) 기록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들 남매의 주당 기질은 정조에게도 그대로 이어져서, 모든 업무가 끝나자마자 조정 대신들과 밤새 술판을 벌이거나, 그 와중에 여러 권신들과 총신들에게 술 강요를 일삼아서 강제로 취하게하고는, 중신들이 술에 취해서 해롱대는 모습을 보고 낄낄거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