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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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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등장인물
2.1. 주요인물 (엄마 및 육남매)2.2. 그 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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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억할까요? 그 애들은... 구수 ~ 한 된장국 냄새가 담을 넘던 그 때, 씩. 씩. 하게 살아가는 육남매 시절을…
장미희[1]





1998년 2월 4일부터 1999년 12월 17일까지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저 높은 하늘 위를 나는 새야…"로 시작하는 엔딩 OST가 유명했다.[2][3]

1960년대 초반을 다루고 있는[4] 복고풍 드라마로, 당시 IMF로 침울했던 사회 분위기를 이겨내고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드라마 내용이었던지라 시청률이 꽤 높았다.

원래는 저녁 10시대 수목드라마(16부작)로 방송되다가 인기가 많아지자[5] 7시~8시 사이의 금요드라마로 전환되면서[6] 1999년 말까지 정확히 100회를 채우고 막을 내렸다. 이 드라마에 나온 아역은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서도 게스트로 나왔다. 또한, 뚱보 캐릭터였던 두희(이찬호 분)는 당시 CF에 여럿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 드라마가 남긴 불후의 명대사는 "똑 사세요! 똑이에요!"가 있다.(똑=) 육남매 어머니를 맡은 장미희가 떡을 팔면서 자주 말했는데 똑으로 들려서 전설이 됐다.(여름에는 냉차도 팔았다.)[7] 이는 당대 유행어로도 써먹게 되는데, MBC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와요>의 코너였던 '울엄마'에서 조혜련이 이를 재연하기도 했다. 이경실도 코미디에서 이를 흉내냈다. 장미희는 이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뒤에 체험 삶의 현장에 출연했을 때 이경실과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후에 인터뷰에서 이경실이 성대모사를 해서 인기를 끌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것도 작품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기에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방영 당시 제작진 사이에서는 카메오 출연이라도 시키자는 얘기까지 나왔다는 모양. *

개천[8]이라는 거지 소년이 구걸할 때 쓴 "밥 좀 주세요. 네에?" 도 유명하다. 그러나 개천이는 쌀집 아저씨가 주신 미역국을 급하게 먹고는 장이 꼬여서 죽는다.[9] 장에서 쌀집을 운영하는 백일섭이 맡은 배역은 6.25 때 월남했다는 설정으로 작중에서 이북 사투리를 구사했는데, 남한에서 육남매 고모 윤미라에게 새장가를 드는데 에 두고 왔던 와 아들 원봉수(홍채훈) 역시 월남해있다가 나중에 백일섭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제법 유머러스한 장면들로 묘사됐었지만, 한국 현대사를 잘 생각해보면 마냥 웃을 수는 없었던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중간에 넷째 두희가 실어증을 겪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말순이가 중이염으로 귀가 안 들리고, 장티푸스에 걸리는 등, 다사다난한 일을 겪기도 하였다.

참고로 이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이다. 옛날에는 보통 이촌향도 때문에 공단을 따라 달동네가 많이 생겼기 때문에 이와 같이 설정한 듯하다. 마지막에는 살던 집을 팔고 신도림동 2칸 전세집으로 이사가면서 "이곳에 빵공장도 있고 연탄공장도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10]

해방 이후 세월이 오래되지 않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측면에서 극중 대사 일부에 일본어가 종종 나온다. 도시락을 벤또(변또)라고 하거나, 맥주를 삐루, 립스틱을 구찌베니(口紅)로 부르기도 한다.[11] 그리고, 물건을 구입할 때 돈을 대신하여 대체통용화폐로 받아주면서 계산을 하는 장면도 1960년대에는 실제로 가능했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시대상을 고증한 것이다.

여담으로, 송혜교가 활동 초창기에 나왔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숙희 친구 언니 역할로 부유하고 이화여자고등학교에 다니던 여학생 역이었는데,[12] 장남 창희가 좋아했다. 이후에 다른 남학생과 교제하자, 창희가 상사병이 나서 다 죽다 겨우 살아났다.

연출상의 특이점으로 매회가 마무리 될 때마다 화면에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자막으로 한 회를 관통하기도. 또한 미래 현재의 육남매를 말하는 짧은 글을 적어놓는다. 예를 들어 준희가 말썽을 부려 가출했다가 집에 돌아온 에피소드가 끝날 때는 '엄마는 돌아온 준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밥상을 내오셨습니다. 준희는 그 밥상을 받아 먹었습니다. 깊고 깊으며 걱정으로 문드러진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지금 다시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당시의 후진적인 촬영환경과 인권의식이 여실히 보인다. 막내 남희 역할의 아역배우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말도 제대로 못뗐을 정도로 어렸는데 다른 아역배우들에게 실제로 수차례 맞거나 다치면서 고생하는 장면들이 여럿 나온다. 또 첫회에 준희 역의 노형욱 배우가 기차가 달리는 선로 바로 옆에 앉는 위험한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기차가 뿜어내는 풍속에 몸이 휘청거려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그외에도 남자배우들은 성인, 아역 가릴 것 없이 엉덩이 노출이 당연하다는 듯이 나오며[13] 특히 45회에서 나온 목욕탕씬은 그야말로 압권 그 자체다. 어떤 성인 배우는 음모가 살짝 나왔을 정도.

무한도전에서도 이 드라마를 패러디한 육남매 특집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대만에도 수출되었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2019년 2월 18일에 개국한 MBC ON 채널에서 재방송했다.

Wavve에서 전편 시청가능하다.
==# 에피소드 #==

2. 등장인물

2.1. 주요인물 (엄마 및 육남매)

2.2. 그 외 인물



[1] 매 회차, 이젠 인생의 말년을 바라보고 있어 백발과 주름이 성성한 현재의 장미희의 오프닝 멘트.[2] 제목은 '작은 새 이야기'로, 유대인 민요 Tum Balalaika를 리메이크한 곡이다.[3] 흔히 유대인 민요라 이스라엘 민요라고 알려져있지만, 정확히는 디아스포라 이후 동유럽 및 러시아쪽에 정착한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의 민요로 영어판 위키 등에도 러시안 유대민요로 언급된다. 당장 곡 제목의 balalaika도 러시아 악기의 이름이다.이스라엘이 아닌 러시아, 폴란드 등의 동유럽 아슈케나짐 민요이기 때문에 가사도 히브리어가 아닌 이디시어로 되어있는 곡이다. 육남매 Ost앨범의 곡명에도 이디시 민요로 수록되어 있다.[4] 작중 배경이 1960년대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준희가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서 "난 최정민이다!" "난 함흥철이다!" 라고 외치는 모습이 나온다. 최정민은 당시 1960년대에 활약하던 국내 최고의 스트라이커였고, 함흥철은 골키퍼였다. 시간이 흘러서 두 선수 모두 나중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좀더 구체적인 시기로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대통령 출마를 운운하는 원씨나, 원씨와 고모가 영화관에 데이트하러 갔을 때 나온 대한뉴스에서 5.16 정변 기념 퍼레이드를 방송하는 것을 보면 1960년대 초반이며 최종회에서도 육남매네 집 방 안의 달력은 1964년을 가리키고 있다.[5] 초반에는 SBS 월~목 4회 재방영 드라마 모래시계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이 작품이 막을 내린 뒤 시청률이 갈수록 상승했다.[6] 마지막 수목드라마 방송은 4월 9일이었으며 같은 달 17일부터 금요일 오후 7시 25분에 방영되었다.[7] 장미희의 캐릭터 해석으로 만들어진 말투다. 곱게 자라 가정주부 생활만 해 본 사모님이 생업전선에 나가 낯선 사람들에게 장사를 하려니 부끄럽고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아 그런 말투와 발음이 된 것.[8] 진짜로 배역 이름이다.[9] 실제로 오랫동안 굶주렸다가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나서 큰일나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되는 이나 미음 같은 음식을 먼저 섭취해야 한다.[10] 이때 동네 사람들도 말죽거리로 이사가는 것이 어떻겠나고 제안하였고 남매들도 찬성하였지만 남매들의 어머니가 아무것도 없는 동네가 사람 살 곳 되려면 한참 걸리고 남매들의 통학 문제로 포기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 시절에 말죽거리 가서 터 잡았으면[11] 극중 16회에서 육남매 고모가 쌀집 원씨와 데이트하기 위해 육남매 어머니에게 외제물건 구찌베니를 구해달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구찌가 일본어로 입, 베니는 붉다는 뜻.[12] 참고로 송혜교의 출신 고등학교는 은광여자고등학교이다.[13] 여자 아역들도 엉덩이가 훤하게 노출될 때가 있다.[14] 사실 장미희가 원체 귀부인 역할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장면에서는 오히려 가녀린 연기가 더 어울리기도 했다. 괄괄한 성격으로 그려지기에는 고지식한 면도 강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위 아줌마들은 대부분 괄괄한 대신에 좀 더 생활력 있고 덜 고지식하게 그려졌다. 이때문인지 극 초반부에 해당하는 10회차까지는 입술색도 있고 화장기가 있는 얼굴이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장미희의 얼굴에서 화장기가 없어진다.[15] 사실 육남매의 어머니가 동네의 다른 어머니들과 다르게 곱고 여린 것에 대해서는 드라마 속에 개연성이 충분히 깔려 있다. 친정이 양반 집안이라는 것과, 오빠들이 천자문 공부할 때 어깨너머로 천자문을 익혔다는 사연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예스러운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을 알 수 있다.(우리나라의 신분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지만,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인 1960년대에 들어서야 양반이니 평민이니 하며 출신계급을 따지는 풍조가 완전히 사라졌다.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수필에도 6.25가 끝난 직후인 1950년대 초반에 양반 가문 출신인 박완서가 중인 가문 출신인 남자를 신랑감으로 데려와 인사시키자, 박완서의 어머니와 외삼촌이 중인과 결혼한다는 것에 무척 당황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 그렇잖아도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옛 풍습이 많이 남아있던 시절인데, 양반가의 딸로서 항상 예의범절과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교육받았을테니, 수다스럽고 감정표현에 자유로운 같은 동네의 다른 아줌마들과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스포일러1] 결국은 사정이 안 되어서 집을 팔고 이사가게 된다. 그런데 말죽거리로 가면 아직 강남 개발 전이기에 초반에 고생하더라도 땅도 한 100평 사서 갈 수 있던 상황이였고, 장남 창희까지 가난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라며 강남으로 갈것을 주장하지만 결국 신도림의 방 두 칸짜리 전세를 간다.[17] 죽은 남편이 사업을 하다가 진 빚의 원금은 갚지도 못하고 이자만 겨우 갚는 중이고, 줄줄이 딸린 자식들의 월사금에 기성회비 등을 내야 한다. 게다가 드라마 전개를 위해서지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 때문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에 지출이 더 늘어났음 늘어났지 줄어들 일이 없다. 물론 선술됐듯 처음부터 집을 팔고 빚을 갚았으면 깔끔하게 해결 될 일이었다. 자꾸 빚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도 집을 지키기 위해 이자가 높은 빚을 자꾸 빌리는 악순환이 반복됐기 때문. 처음에는 도와주던 시누이(육남매의 고모)도 나중에는 밑바진 독에 물붓기 같은 상황에 지쳐 집을 팔아 빚을 청산할 것을 강권한다.[18] 동경 유학 중 머물던 하숙집 딸로,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옥님이가 청소하던 중 히데코와 원장의 오래된 사진을 발견하는데, 사진 속 인물은 다름아닌 장미희[19] 일단 죽은 남편의 삼년상을 다 치르지 않았고,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주인공 어머니가 재혼하지 못한 이유처럼 과부의 재혼(특히 아이가 있는 과부의 재혼)은 비난받고 손가락질 받는 시대였다. 일례로 18회에서 보생의원 사모님이 집에 찾아온 일로 동네 사람들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며 수군거린 에피소드만 봐도 알 수 있다.[20] 창희, 숙희, 준희만 반대하고 두희와 말순이는 좋아했을 것이다.[21] 당시엔 의무교육이던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람이 굉장히 많았고(그나마도 땜빵으로 다니다 말다 하며 겨우 졸업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고졸은 고학력자로 치던 시절이었고, 대학은 그야말로 초엘리트 코스였다. 창희가 진학한 선린상업고등학교(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는 서울에서 1, 2위를 다투는 명문 고등학교였다. 요즘 같아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가난 탓에 대학 진학률이 워낙 낮았기 때문에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도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경우 대부분 고교 졸업 후 바로 은행이나 대기업 취직 루트를 탔다.[22] 극중에서 롤 모델이 김활란 박사라고 언급한다. 당시에는 김활란의 온갖 친일 행적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23] 제51회에서 보생의원 원장 김학영이 미국에 가게 되자 숙희에게 어머니와 함께 가지 않겠냐고 제안하자 마음이 흔들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숙희에게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박사의 꿈이 꺾여버려 마음의 상처로 남았으니 어쩌면 이 제안이 솔깃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결국 이 문제로 오빠 창희와 이야기하다가 이를 듣고 있던 고모가 와서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라 꾸짖고 가고 창희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라며 만류한다.[24] 특히 고학력자에 대한 동경이 있는지 작중 첫 번째로 사랑에 빠지는 상대는 초반부 육남매네 하숙생이었던 대학생 김정현, 그리고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게 표현하지만 관심과 흠모의 대상인 서울대 법대생인 봉수가 있다.[25] 특히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숙희가 공장에서 월급을 가불받아서 온다.[26] 청년은 자기가 결핵에 걸린 줄 모르는 상태로 숙희를 만났고, 나중에 자기 병을 알고는 숙희의 앞날을 생각해서 헤어지려고 했다. 사정 모르는 숙희는 자기 또래 여자가 공장에 찾아와서 청년의 손을 붙잡고 우는 걸 보고, 청년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며 배신감을 느꼈다. 알고보니 그 여자는 청년의 사촌동생인데 사촌오빠가 결핵에 걸렸단 소식을 듣고 찾아와 울었던 것. 숙희는 청년의 병을 알고도 헤어지지 않겠다고 말하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포옹했다.[스포일러2] 결핵 요양소에 들어가게 된 청년을 요양소까지 데려다준다며 무단 결근까지 하고 같이 경남 마산에 가는 기차를 탔지만, 청년은 기차 안에서 숙희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다가 그대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잠든 상태에서 각혈한게 그대로 목구멍에 걸려 사망한 것. 이후 청년의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의 제사상에서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 어머니와 이야기하였고, 어머니가 문래동 집을 팔고 신도림 2칸 전세집으로 이사가니 같이 사는 것이 어떻냐고 제안하면서 설득하였고 결국 기숙사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왔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신도림으로 이사하였다.[28] 훗날 이 배우는 똑바로 살아라에 출연하게 된다.[29] 교복을 입고 중학교 합격증을 들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 묘소에 가서 합격 인사를 드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어머니의 나래이션에 의하면 육남매 중 준희가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다고 한다.[30]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 오봉구 역할을 맡았던 배우. 1989년 1월 8일생으로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31] 당장 어려운 상황에서 가족들이 전부 참고 있는데, 쌀밥이나 특정 음식이 먹고 싶다고 투정 부리는 일이 잦다. 또 좁은 방에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자야 하는데도 복작거려 불편하다, 공부하는데 시끄럽다 등의 불평을 잘하고 할 말과 못할 말을 못 가리는 편이다. 한때 물놀이 사고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렸지만 이후 다행히 실어증이 치료되었다. 고지식한 어머니조차 두희가 하도 어수룩하고 약아빠지지를 못해서 걱정이라는 말을 할 정도다.[32] 어머니도 다른 형제자매들도 모두 날씬한데다가 얼굴도 잘난 편인데, 두희만 뚱뚱하고 울퉁불퉁하게 생겼다.[33] 유일하게 남매 중 혼자 이름의 돌림자를 쓰지 않은 아이. 말순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아마 이 아이가 마지막일 거라 생각하고, 혹은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며 지은 모양이다. 이름 때문에 준희에게 주워온 아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한다.[34] 두희가 소풍을 가게되자 어머니가 가난한 살림에 어렵게 김밥을 마련해 두희에게만 줬는데, 말순이도 김밥을 먹고싶어하자 두희는 절반을 남겨서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두희는 처음에는 정말로 김밥 절반을 안 먹고 남겼는데, 문제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딱 한 개만"이라면서 한 개씩 먹어서 집에 도착했을 때는 김밥이 하나도 안 남는 일이 벌어진 것. 하루종일 김밥 먹을 기대를 하며 두희 오빠만 기다린 말순은 엉엉 우는데, 정작 김밥을 다 먹어치운 두희는 "어, 김밥이 어디 갔지?"하며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난처해하는게 웃음 포인트다.(...)[35] 그 전에 10~13회에도 할머니 댁에 간 사실이 있으나, 그 때는 출연은 정상적으로 한 반면 이때는 아예 출연을 하지 않았다.[36] 극중에서는 여자 아기로 나오지만 실제 아역 배우는 남자아이다. 43화에서 두희의 등에 업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장미희가 “형아가 업어준다.”라며 NG를 냈다. 그런데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방송됐다.[37] 이 때문에 거의 모든 동네사람들과 트러블이 있었으며. 특히 원 씨 역의 백일섭과는 이 때문에 툭하면 얽히는 기믹이다. 특히 최종원의 말실수 때문에 작 중반에 백일섭이 정말로 죽을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원 씨와는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된다.[38] 그런데 재미있는 건 압구정동의 유래가 된 압구정은 한명회가 지은 정자로 최종원은 왕과 비에서 한명회 역할을 했다.[39] 2017년 11월 27일 신장 쇼크로 작고.[40] 실제로 임계순 배역을 맡은 이미지는 전라남도 구례군 출신이다.[41] 드라마 속 시대인 1960년대만 해도 영호남 간의 정치적 갈등은 없었다.[42] 야인시대에서 망치역으로 나온 배우다.[43] 44회에서 엄마가 보낸 편지를 전달하는 우체부가 '니가 김장구냐?' 라고하고, 49회에서 컨닝하다가 담임한테 들키자, 담임이 김장구! 라고 이름을 부른다.[44] 쌀 1되를 팔 때도 됫박 윗부분을 칼같이 깎아 딱 1되 이상은 절대 주지 않는다.[45] 이북에 있는 가족들을 그리워해서 북한 라디오 방송을 청취했는데 이 때문에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다행히 진범이 잡혀서 풀려났는데, 알고보니 진짜 간첩도 아니고 군대에서 기합받다가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이었다.[46] 재회한 날 그간의 사연을 말하며 남편에게 저녁상을 차려 내오는데, 생전 처음의 겸상이라고 말한다. 극중 원씨는 이북에 있을 때는 "자신은 모친과 겸상해서 밥을 먹었으니 아내와의 겸상은 처음이네" 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남녀차별이 심하던 옛날 시대 고증의 한 장면.[47] 평준화 이전의 경기고는 한국 최고의 명문학교였다. 공부 잘 하는 남학생은 경기중과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로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엘리트 과정이었다. (여학생은 경기여중경기여고서울대) 이를 KS 마크라고도 했다.[48] 2019년 작고.[49]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여주인공 다림의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효정으로 출연했다.[50] 이날 숙희는 위험에 처한 선배를 구해주고 회사의 재산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서 모범공원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녀는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극적으로 화해한다.[51] 1980년대까지도 자가용 승용차가 있는 집은 부잣집으로 간주되었는데,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보다 자동차가 훨씬 더 귀했던 1960년대 초반이다.[52] 은경이는 짱구를 안좋아한다고 고구마가 짱구에게 말하는데 은경이가 그러더냐고 물어보고 그냥 자기 생각이라고 말하니 한 대 때린다. 하지만 정말 은경은 짱구를 안좋아하고 창희를 좋아한다.[53] KBS 어린이드라마 누룽지선생과 감자일곱개의 김무생 손자역의 치국역.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꼴찌 4인방의 정두섭역 이라하면 누군지 알 것이다.[54] 고구민역 정승원의 친동생이라고 한다.[55] 준치는 준희의 작중 별명[56]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인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울진은 강원도에 속해 있었다. 울진이 경상북도에 속하게 된 것은 1963년부터.[57] 작중에서는 울진까지 기차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데 이는 설정상의 오류.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까지 울진군에는 철도역이 화물, 여객을 막론하고 존재하지 않으며 가장 가까운 역은 삼척역 또는 포항역이다. 포항역보다 영덕역이 더 가깝긴 하나 작중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역이었다. 현실에서 얼마 있지 않아 울진에 철도가 들어오지만 이는 작중시점과 60년 정도의 시차를 지닌다.[58] 이 때문에 없는 살림에 식모를 부린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한다. 특히 짱구엄마가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짱구 아빠에게 "우리도 식모를 두자"고 하는 장면은 개그포인트[59] 용순을 엄마처럼 육남매를 진짜 친형제처럼 생각하는 듯 하다.[60] 그동안은 짱구네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보았다.[61] 물론 천성은 아주 착한 캐릭터이다. 등장부터 하차 때까지 그 천성덕에 도움도 많이 받는다.[62] 물론 센티멘탈, 니힐리즘, 노스텔지어등의 코드는 육남매 전체의 연출을 관통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특히 강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