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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광복 50주년 특별기획 모래시계 (1995) Sandglass | ||
<colbgcolor=#2f3533><colcolor=white> 시청 등급 | 15세 이상 시청가 | |
방송 시간 | 본방: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재방: 수요일, 목요일, 토요일, 일요일 밤 9시 50분~[1] | |
방송 기간 | 본방: 1995년 1월 9일 ~ 1995년 2월 16일 재방: 1998년 1월 14일 ~ 1998년 2월 21일 | |
방송 횟수 | 24부작 | |
채널 | SBS | |
장르 | 시대극, 멜로, 피카레스크 | |
제작 | SBS프로덕션[2] | |
제 작 진 | <colbgcolor=#2f3533><colcolor=white> 연출 | 김종학 |
극본 | 송지나 | |
조연출 | 박창식, 김인수, 신윤섭, 정순애 | |
촬영 | 서득원, 연석돌, 유종수, 박경식 | |
카메라 | 김용원, 한상원, 손장하 | |
조명 | 송문섭 外 다수 | |
기술 | 박원희 | |
미술 | 서상정 | |
무술 | 황정리, 유창국 | |
음악 | 최경식, 정용국, 양경희 | |
출연 | 최민수, 고현정, 박상원, 이정재 外 | |
링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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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연초부터 안방극장을 강타한 95년 최고의 드라마로 설명이 필요없는 작품이다 해방 및 6.25 이후 최대의 격동기였던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개성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렸으며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 귀가를 서두르는 통에 ‘귀가시계’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당시 방영하는 시간대엔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는 레전드 드라마 |
1995년 1월 9일부터 동년 2월 16일까지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3]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부터 제6공화국 출범까지를 배경으로 YH 사건, 5.18 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첫 드라마이다.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와 개인의 인생이 맞물려, 시대의 풍파에 쓸려나가는 인간들의 비극적인 삶을 묘사한 걸작 드라마로 오늘날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2. 공개 정보
▲ 오프닝 |
개국 초창기에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던 SBS가 사활을 걸고 제작한 작품이다. SBS에서는 파격적인 사전제작 조건을 제시하며, 인력,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MBC의 김종학 PD를 삼고초려 끝에 스카웃했고, 여명의 눈동자에서 김종학 PD와 호흡을 맞췄던 작가 송지나와 음악 감독 최경식을 영입했다.
감독의 전작 여명의 눈동자 출연 배우 중 김종학 감독이 필요한 배우들을 데려왔다. 박근형, 정성모, 박상원, 고현정 등이다.[4] 경쟁사 MBC의 간판 스타 최민수, 박상원을 둘 다 빼왔으며 신인 이정재를 발굴했다. 손현주도 최민수의 부하로 등장한다. 후반부 박상원의 처로 조민수가 나오며 김보성의 젊은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이희도, 이승연, 김을동, 홍경인, 김정현, 김영옥, 김병기, 장항선, 이두일, 손호균, 박영지 등을 볼 수 있으며, 작고한 중견배우 남성훈, 조경환, 김영애, 김인문 또한 볼 수 있고 중견 성우인 김기현, 이영달, 황원, 이우신, 박태호 등도 출연했다.
3.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등장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4. 줄거리
자세한 내용은 모래시계(드라마)/줄거리 문서 참고하십시오.5. 음악
모래시계 OST 전곡여명의 눈동자 음악을 맡아 주가를 한창 올리던 최경식이 음악을 맡아 음악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여명의 눈동자가 나중에 표절로 드러나 비난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모래시계는 그런 비난은 없었다.
러시아 노래인 백학을 OST로 넣어서 이 노래를 한국에 알린 드라마이기도 하다.
6. 시청률
평균 시청률 46%를 기록했으며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때는 최종회로 무려 64.5%를 기록하였다. 다만 이는 당시 SBS의 가청 지역이 수도권에 불과했기 때문에 시청률이 과대평가된 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당시 미디어 리서치 코리아(現 AGB 닐슨 미디어리서치)는 서울 지역 300가구에서만 시청률을 집계했고 지방 표본을 선정하지 않았다. 물론 그건 SBS 사정이지 모래시계 사정은 아니라 그런 점을 감안하여도 아직 개국 5년차에 불과했고 가청 지역이 수도권 지역으로 한정됐던 지역 방송국의 드라마란 점을 감안하면 매우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이긴 했다. 반대로 말하면 좀 더 일찍 지역 민영방송이 개국해 전국에 송출됐다면 그 반향은 더 엄청났을 것이다.또 당시 지방이라도 지역RO(일명 중계유선방송)에 가입하면 SBS를 볼 수 있었다.[5] 수도권에서 시청률이 엄청나게 나온 건 분명한 사실이기에 신이 난 SBS는 기자를 모래시계 방송 시간에 서울 거리에 내보내 거리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래시계 보려고 다 집에 가서 서울 시내가 한산합니다' 식의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입소문으로만 들려오는 모래시계 전설을 들은 지방 비디오 대여점들이 불법녹화 비디오테이프를 들여오는 일도 있었으며, 이것이 SBS의 이름이 지방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고, 더 나아가 그해 5월에 개국하기 시작한 지역 민영방송사들과의 제휴를 통해 전국 송출이 되기에 이른다.
7. 인기 및 파급력
당시 SBS 가청 지역이었던 수도권에 한해,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는 20~30대 남성이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 귀가를 서두르는 통에 '귀가시계'라는 별칭이 붙었다.[6] 직장에서도 모래시계가 방영하는 날에는 야근, 회식이 중지되었다고.공을 들여 특별 기획한 이런 드라마는 주 2회 방영이 일반적이었으나 모래시계는 파격적으로 방영일이 월, 화, 수, 목. 주 4회였으므로 방영기간 동안 사실상 대부분의 평일은 방영시간대에 수도권 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확 줄어들었고 심지어 차도의 차량 수마저 줄어들어 길이 한산해질 정도였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님이 TV 보시니까 조용히 해야 했다. 유흥업소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래서 술집에서도 TV를 사다 놓고 입구에 '모래시계 방송 중'이라는 문구를 써놓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가게에 TV가 없으면 일찍 가게 문을 닫아야 했는데, 어차피 손님들도 TV 보느라 안 오고 주인도 모래시계를 보러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실제로 시간을 재는 데 쓰는 모래시계도 드라마의 인기 덕분에 많이 팔렸다. 농담으로, SBS를 시청할 수 있는 수도권 부대에 복무하던 군인이 제대하고 고향인 지방으로 가기 싫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정재가 연기한 보디가드 백재희 덕분에 검도 도장이 전성기를 맞았다.[7] 백재희가 통 말이 없다가 어쩌다 한 마디 하면 명대사였던 캐릭터라 그의 영향으로 미팅에 나온 남학생들은 벙어리 기믹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백재희가 그런 캐릭터가 된 이유는, 이정재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때 데뷔 초였던 이정재가 그 당시에는 연기를 잘 못해서 대사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힐링캠프에서 이정재가 밝힌 바에 의하면 그 전까지 느낌, 젊은 남자 등에서는 곧잘 연기를 했는데 모래시계 촬영장만 가면 이상하게 힘을 잔뜩 준 채 대사를 쳤고, 격분한 김종학 감독이 이정재의 대사를 줄이라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강원도에 엄청난 관광 수익을 가져왔다. 정동진역이 대표적으로 모래시계 버프를 받은 사례이다. 폐역도 검토되던 역이[8] 모래시계에 단 한 번 짧게 나온 장면으로[9]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정동진역은 통일호도 통과하고 비둘기호나 정차하던 간이역이 세월이 흘러서 새마을호도 필수정차하더니 이제는 KTX까지 필수정차하는 역으로 위상이 엄청나게 올라간 것이다.[10] 지금도 강릉시를 넘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국구 최고의 관광지로 거듭났다.[11]
배경음악으로 쓰인 러시아의 유명 가수 이오시프 코브존이 부른 백학 역시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매우 유명해졌다. 다만, 저작권상으로 완전히 협의가 되지 않았는지 OST 앨범에는 원곡 대신에 "이연"이라는 타이틀의 리메이크 연주곡이 수록되었다. 덕분에 원곡이 수록된 이오시프 코브존의 앨범이 국내에서 꽤나 잘 팔리기도 했다.
몽골에 1998년도에 수출되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로도 많은 한국드라마가 몽골에 수출되면서 인기를 끌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에 몽골 내 한류 드라마의 시초격으로 손꼽힌다. 다만 비슷하게 몽골에서 인기를 끈 야인시대와 같이 한국식 조폭문화도 같이 수출되는 부작용도 같이 겪었다는 문제점도 있었다.[12]
7.1. 스타덤
주연을 맡았던 배우 중 최민수와 고현정의 인생작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이 작품을 통해 199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최민수의 경우 그의 필모그라피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면서도 거칠고 반항아적인 그의 터프가이 이미지와 연기력이 한동안 고정된 이유도 바로 이 작품 때문이다. 결국 최민수에게는 이 작품이 양날의 검이 된 셈이다.
사실 최민수는 코믹 연기 등에도 능숙한 베테랑 연기자였다. 초창기 데뷔작인 '신의 아들' 때부터 반항아적인 이미지로 활동했지만 영화 '결혼 이야기'의 김태규 역이나 MBC 주말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이대발 역 등으로 코믹 연기도 하면서 연기 다변화를 꾀했고 흥행적인 측면에서는 코믹 연기 쪽이 더 좋기는 했다. 그러다 걸어서 하늘까지의 소매치기 '물새'역을 하면서 반항아적 이미지를 재각인시킨 후에 모래시계로 도장을 쾅쾅 찍었다.[13]
극중 박태수가 강우석에게 했던 마지막 대사 "나, 떨고 있냐?"는 당시부터 2010년대까지도 여러 패러디에 쓰일만큼 유명한 대사로 남았는데 이때 순간 시청률이 무려 74.4%였다. 그 외에 윤혜린에게 했던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란 대사도 실제론 발음이 괜찮은 장면인데, 개그맨 김준호, 이수근 등이 무슨 말일지 모를 정도로 발음을 뭉갠 오버연기로 성대모사를 하며 지금은 약간 개그 소재가 되었다.
고현정은 이 작품으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반열에 오르는 성과를 냈다. 송지나 작가-김종학 감독 콤비의 전작인 여명의 눈동자에 캐스팅될 때만 하더라도 조연이었으나[14] 모래시계에 캐스팅됐을 때는 작별, 두려움 없는 사랑, 엄마의 바다 등으로 메인 여주인공급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모래시계를 통해 부동의 톱 여배우 반열에 오르려는 순간 신세계그룹의 후계자와 결혼을 발표하고[15] 돌연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가 후술한대로 10년 후에 복귀했다.
훗날 대배우의 반열에 오른 연기자들의 무명 또는 신인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한데 20대 초반 이정재와 30대 초반 손현주의 풋풋하던 시절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이정재는 윤혜린의 개인 경호원 백재희 역을 맡으면서 무뚝뚝하면서 경호 대상인 혜린만을 바라보는 모습을 극중에 보여줬는데 최민수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당시 SBS 여의도 사옥으로 "백재희를 죽이지 말아 달라"는 시청자 편지가 쇄도했을 정도. 다만 이 작품을 통해 갑작스럽게 인기가 치솟았고 그 인기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군에 입대했다. 그 후 2020년대에 오징어 게임으로 월드스타까지 위상이 치솟으면서 전성기가 거의 끝나고 중견으로 물러난 최민수, 박상원, 고현정을 아득히 넘어서게된다.[16]
손현주도 박태수의 부하 정인영 역으로 나와 인상적이고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훗날 코미디언으로 이름을 남길 한민관도 아역 시절 7회에 나왔다.#[17]
정성모는 악역을 많이 했지만[18] 이종도 역이 그의 인생작 중에서도 최강 악역으로 꼽힌다.
8. 평가
일부 조폭 문화와 폭력을 미화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19][20], 현대사의 굵직한 실제 사건들과 가공의 등장인물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대본과 연출로 호평받았다. 1991년 SBS TV 방송 개국 이후 SBS 방송국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지금까지도 가장 유명한 드라마 중 하나이다.드라마적으로 호평받은 것 외, 역사적인 관점에서 봐도 모래시계는 5.18 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TV 드라마였다. 계엄군의 진압과 당시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그려내어, 당시에 광주사태로 불리던 광주의 실상을 그려내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우연히 광주에 내려왔다 사태에 휩쓸린 태수와 군복무 중 계엄군으로 차출되어 진압부대에 들어온 우석을 통해 1980년 광주의 실상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데, 당시 광주에는 SBS가 송출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촬영 소식을 듣자 광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엑스트라로 참여했으며, 광주광역시도 시내 주요도로를 촬영 장소로 제공했고[21] 광주 기독병원 등 5.18 주요지역이 실제로 등장한다. 극 중간 중간에 1980년 당시 일본 NHK가 취재한 광주의 기록 영상이 삽입되어 있는데, 극중 배우들의 연기와 실제 자료 영상을 섞은 연출 방식은 사실감과 현장감을 배가했다.[22][23]
5.18 민주화 운동을 최초로 공중파에서 정면으로 다룬 드라마였지만, 오히려 호남을 비하하고 지역갈등을 조장한다는 비난도 있었다. 이유는 극 중 비열한 악역인 이종도가 전라도 사투리를 썼기 때문.[24] 당시 야당 당수였던 김대중이 "모래시계를 만든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는데, 이제 막 5.18의 진상이 드러나고 당시 광주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인기 드라마 때문에 인식이 퇴보될 것을 우려했던 모양이다. 다만 이를 의식해서인지 극중 전라도 출신 선역도 나오며, 이 설정은 태수가 5.18에 엮이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또 카메오로 출연한 박남현이 대놓고 지역차별을 한탄하는 대사를 치기도 했다.
주인공 박태수부터가 조폭 출신이다 보니, 이 드라마를 본 당시 일부 국딩들이 조폭 흉내를 내고 장래희망이 조폭이라고 말해서, 조폭미화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만 극중에서도 서브 주인공 격인 강우석이 여러차례 친구 박태수의 조폭 생활을 나무라는 등 나쁜 점도 언급하긴 한다. 박태수의 최후만 봐도.. 또 상기했듯 조폭과 검사라는 두 매개체를 통해 현대사의 굵직한 실제 사건들과 가공의 등장인물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덕에 드라마 작품성 자체는 호평받았다.
9. 수상
<rowcolor=#fff> 연도 | 시상식 | 수상 부문 | 수상자(작) |
1995년 | SBS 연기대상 | 대상 | 최민수 |
남자 최우수상 | 박상원 | ||
남자 신인연기상 | 이정재 | ||
제31회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대상 | 모래시계 | |
TV부문 작품상 | |||
TV부문 연출상 | 김종학 | ||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최민수 | ||
TV부문 극본상 | 송지나 | ||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이정재 | ||
제22회 한국방송대상 | TV드라마부문 우수 작품상 | 모래시계 | |
남자 탤런트상 | 최민수 | ||
TV작가상 | 송지나 | ||
1996년 | 제8회 한국방송작가상 | 드라마 부문상 |
SBS 연기대상과 한국방송대상 3관왕, 백상예술대상 6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웠다.[25]
암울한 현대사를 밀도 있게 그렸다는 평을 받아 1996년 3월 열린 제 8회 한국방송작가상(1994년 중후반기부터 1995년 내용) 드라마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데 자사 드라마 옥이 이모가 <모래시계>와 팽팽한 접전을 벌였으나 "한 번 작가상을 받은 사람(작가인 김운경 작가가 MBC 서울의 달로 제 7회(1995년 3월 개최. 1993년 중후반기부터 1994년까지의 내용 위주) 드라마 부문 수상)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서 탈락했다.[26]
10. 논란
모래시계를 집필한 송지나 작가가 극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2017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후보의 모래시계 검사 홍보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바로잡는다고 말했다."요즘 '모래시계의 모델이 되었던 검사'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사실관계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그분은 제가 <모래시계>를 집필할 때 취재차 만났던 여러 검사 중에 한 분일 뿐입니다. 당시 제가 만났던 검사님들이 대충 기억에도 열댓 분. 그분들이 들려준 이야기와 각 검사님의 캐릭터를 조금씩 취합해서 만든 것이 드라마 상의 강우석 검사였고요."라고 썼다.#
허나 송지나 작가가 쓴 글에 대해 홍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꺼내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홍준표 후보의 반박 이후 SBS PD를 지내며 모래시계 조연출을 맡았던 박창식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모래시계 검사가 홍준표라는 주장은 드라마를 직접 제작한 프로듀서 입장에서 부정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후 송지나 작가가 추가적인 반박문을 내놓지는 않아 설전 자체는 흐지부지된다.
종합적으로 보면, 홍준표 외 다른 검사들을 참고한 것도 사실로 보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홍준표와 많은 얘기를 나눈 것으로 보이나, 이후 홍준표가 모래시계 인기를 타고 정치인이 되고 본인 홍보를 위해 모래시계 얘기를 자주 꺼내면서 특히 대선후보가 될 정도로[27] 성장하자, 정치적 성향이 다른 송지나 작가가 홍준표만 강우석 캐릭터의 모델이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쓴 것으로 보인다. 결국 홍준표가 정치인이 되면서 생겨난 부수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11. 미디어 믹스
11.1. VHS 비디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1995년에 대우전자가 대여용 VHS 비디오테이프로 발매한 바 있으며,[28] 총 1,440분짜리를 2부 220여분짜리로 줄이고서 1부에는 실제 제작과정을, 2부 NG장면을 각각 10분간 더 수록했다. 이듬해인 1996년에는 이를 자사 계열 케이블TV였던 DCN에서 방송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SBS 프로덕션과 동서게임채널이 공동으로 인터액티브 장르의 동명의 게임을 출시하려 했으나 결국 나오지 못했다.11.2. 뮤지컬
이 드라마를 원작으로 만든 창작뮤지컬이 2017년 12월 충무아트센터에서 초연이 올라왔다. 태수 역에는 신성록, 김우형, 한지상이 캐스팅 됐다.[29] 혜린 역에는 조정은, 장은아, 김지현이 캐스팅 되고, 우석 역에는 박건형, 강필석, 최재웅이 캐스팅됐다. 문서 참고.12. 기타
- 현대자동차에서 협찬을 받아 제작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각그랜저가 엄청 많이 등장하는 반면, 라이벌 차량이었던 로얄 시리즈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 주 4일 월화수목 방영이라는, 2020년대 기준으로도 굉장히 변칙적인 편성을 해 현재까지도 스턴트 편성의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30] 이는 모래시계가 24부작에 출연진과 스태프진이 전부 초호화라 돈이 많이 들어 장기간 계약을 할 수 없어서이기도 했고, 돈을 들인만큼 동시간대에 방영하는 타 방송사들의 드라마를 완전히 압살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이 의도는 들어맞아 MBC 까레이스키는 2.4%라는 굴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KBS 인간의 땅, 장녹수, MBC 아들의 여자도 고전했다. 당시 광고 편성의 경우 월화는 기존 광고주 / 수목은 신규 광고주로 진행하였다.
- 2017년, 15년 동안 한국 드라마를 1만 시간(500여편) 시청한 일본인 남성 후지와키 쿠니오(藤脇邦夫·62) 씨가[31] 모래시계와 자이언트를 최고의 한국 드라마로 꼽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 1만시간 시청한 日 남자.. 모래시계-자이언트가 최고의 작품.
- 최민수의 후배 어머니 역으로 김을동이 출연했다. 자기 자식이 5.18 시민군으로 참가하여 계엄군의 총에 죽음을 맞이한 이후 자신도 싸우다 죽겠다는 최민수에게 제발 죽지 말고 살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울면서 부탁한다. 참으로 눈물없이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이후 이 사람의 정치 행보를 생각해 본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다만 김을동은 이 당시에는 민주당 소속이었기는 했고, 보수정당으로 갈아탄것은 이듬해인 1996년의 일이었다. 애초에 자기 정치 성향과 완벽히 같진 않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도 연기자의 묘미 혹은 숙명이라면 숙명이고, 그 보수 정당 자체가 군부 세력도 이어받았지만 한편으론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격상시킨 김영삼 정권을 이어받고 있기도 하다.
- 드라마에 나오는 정당명이 2017년 당시 존재하던 정당명과 비슷하게 정의당, 민주당, 한국당, 국민당으로 표기된 장면이 발견되어 모래시계가 미래를 예언했다고 하는 유머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존재했던 정당인 민주정의당, 신한민주당, 민주한국당, 한국국민당에서 뒤에 3글자만 잘려 나왔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다.#
- 종영 후 1995년 DCN을 비롯해 1998년 SBS 본채널과 지역민방, 2001년 MBC드라마넷, 2002년 SBS드라마플러스, 2005년 DTN드라마(현 이데일리TV), 2021년 SmileTV Plus,KTV 국민방송 등지에서도 수차례 재편성됐다.
- 2018년 3월 베트남 기업 VIE그룹과 공동투자를 체결하여 23년만에 영화화된다는 기사가 떴는데#, 이후 조용한거 보면 진척이 없는 모양.
- 역대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수상작 중 유일하게 9시 50분에(98년 1월 14일부터 2월 22일까지 수목-토일 4회) 재방영됐다.
- 마지막 회가 방영되는 시기, KBS2에서 방영되던 판관 포청천 또한 친구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에피소드가 겹쳐 소소한 이야기거리를 남겼다.
- 취권의 악역스타 황정리가 무술감독을 담당했고 윤재용 회장의 보디가드 역으로도 조연 출연했다. 화려한 발차기와 홍콩 느와르의 액션 노하우를 가진 황정리는 의외로 한국인이다. 그의 지도하에 최민수, 이정재 및 출연진의 호쾌한 액션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일부 계단에서 구르는 씬에선 최민수가 대역을 쓰지 않는 열정도 보였다.
- 2015년 MBC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한국갤럽에 의뢰한 '최고의 TV 프로그램은?'이라는 설문조사에서 무려 5위를 기록하였다. 방영 당시에는 SBS가 서울 지역 방송국이어서 전국적인 시청권을 확보하지도 못했던 드라마라는 점과 장기 방영작도 아닌 점에서 대한민국 시청자들에게 남긴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같이 선정된 프로그램만 봐도 대한민국 예능계의 레전드인 무한도전, 22년간 방영한 최장수 농촌드라마인 전원일기, 최장수 노래경연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 그리고 무한도전과 함께 대한민국의 예능 레전드로 꼽히는 1박 2일인 걸 감안하면...
- 당시 이정재의 팬이 된 BLACKPINK 제니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는다면 작중 이정재가 맡은 배역의 이름인 '재희'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는데, 딸이 태어나서 비교적 발음이 비슷한 '제니'로 지으셨다고 한다.
- 재외동포 사회에도 인기가 높았는지, 이서진이 뉴욕에서 유학하던 당시 비디오 대여점에 모래시계가 풀리는 날은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 오래 전에 만든 드라마인 만큼 현재는 위법인 행동들이 종종 나온다. 10회에서 헬멧 없이 오토바이를 탄다던지, 17회에서 소주 한 잔 마시고 운전한다던지.
- 극 중 슬롯머신과 카지노 그룹의 싸움에 조폭들이 끼어들어서 활동한다는 설정은 슬롯머신 대부 정덕진과 파라다이스 그룹 전낙원 회장 간의 갈등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정덕진 형제는 김태촌이나 박철언과 손잡고 전낙원 회장측을 공격했으며, 전낙원 회장은 친한 관계였던 선경그룹과 그 사돈인 노태우 대통령을 동원해서 반격하여 결국 승리했다. 이때 이 사건을 해결하고 스타덤에 오른게 홍준표 검사라고 알려져 있다.
- 고현정은 2년 전인 93년 MBC 대히트작 엄마의 바다에서도 박근형이 부친 역, 최민수가 남편 역이었다. 방영 시작 때는 부잣집 딸과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남자의 사랑, 부도 등으로 아버지가 급사를 한다는 유사한 설정으로 서로 비교되기도 했지만 곧 모래시계 시청자들은 새 작품 설정에 빠져들었다.
- 다음해인 1996년에 개봉한 영화인 나에게 오라는 박태수 역으로 출연한 두 배우인 최민수와 김정현이 같이 나왔다.
- 박상원, 이승연, 조경환, 김인문, 손현주는 1996년 역대 드라마 시청률 1위에 빛나는 KBS 2TV 주말 드라마 첫사랑에서 재회했다. 본작에서는 이승연의 숙부이자 박상원을 지지했던 개념 검사장 조경환이 첫사랑에서는 정 반대로 이승연의 부친으로 나오며 자신의 딸과 박상원을 강제로 맺게하려고 수단 방법 안가리다 비참하게 몰락하는 악역으로 나왔다. 당연히 첫사랑에서도 이승연과 박상원은 맺어지지 못한채 끝났다. 한편 김인문은 첫사랑에서 주인공 성찬혁(최수종) 3남매의 부친 성덕배으로, 손현주는 김인문의 사위이자 성찬혁의 누나인 성찬옥(송채환)의 자상한 남편인 주정남으로 나왔다.
- 한참뒤인 2009년에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 주인공 삼인방(?)이 한 세력으로 만나게 된다. 미실에는 혜린역을 맡았던 고현정, 아들인 하종에는 태수 아역인 김정현, 그리고 이들의 수하인 석품 역할로는 어린 우석 역의 홍경인이 맡았다. 공교롭게도 이들을 대적하는 종도 역할을 맡았던 정성모는 이 작품에서도 반미실파인 김서현 역할을 맡았다. 부장검사였던 박영지 역시 주진으로 등장했는데 처음에는 덕만파로 미실에 대항했으나 미실 사후에는 덕만을 배신하고 미실의 아들인 비담파에 가담했으며 비담의 난이 진압되면서 몰락했다.
- 2024년 말 SBS와 넷플릭스가 컨텐츠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자사 컨텐츠를 넷플릭스에도 제공하기 시작해, 이 드라마가 계약 기간이 시작되는 2025년 1월 1일부터 넷플릭스에 공개된다.
12.1. SBS 빽드 연속 무료 스트리밍
2024년 8월 23일 오전 11시부터 AI 리마스터 형식으로 개시하여 고전작임에도 스밍 기간 내내 최대 1천명대를 달성했다. 동시간대 옛드라마 스트리밍 최대 시청자를 주로 기록하는 KBS Drama Classic 채널의 태조 왕건/유튜브 스트리밍과 같은 시간에 스트리밍되면서도 더 많은 동시간대 실시간 시청자를 일시적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일정구간에 따라 마치 영상을 빨리 돌린 것과 같은 오류가 종종 발생했고, 이를 지적하며 차후에 수정 리마스터링을 요청/건의하는 댓글에 관리자가 "그 부분은 그냥 보시는 게 어떨까요?"라고 댓글을 올려서 이 점에 대해서는 수정 계획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 이는 8월 30일부터 이틀 간 2차 스밍 때 색감 등 화질이 보정되었다.- 배역/배우의 별명
- 주요 인물
- 박태수(최민수 분): 대발이
- 어린 박태수(김정현 분): 미모사, 황정식
- 강우석(박상원 분): 파크랜드
- 어린 강우석(홍경인 분): 연살타, 엄석대
- 윤혜린(고현정 분): 미실, 김모미, 정용진 전 부인
- 백재희(이정재 분): 제다이, 덩대, 구멍이 2개, 수양대군, 이자성, 성기훈
- 이종도(정성모 분): 한승재, 천명수
- 주변 인물
- 신영진(이승연 분): 위안부
- 백민재(손호균 분): 이석재, 돌대가리
- 장일도(임대호 분): 협보, 모두루, 남은
- 박승철(김진해 분): 유천궁, 진산기업 회장
- 민 변호사(김종결 분): 문극겸, 쇼타이, 희락당
- 강동환(김병기 분): 김정일, 연타발
- 강만석(김인문 분): 박달재
- 오 계장(임현식 분): 임오근, 순돌이
- 서울지검 검사장(조경환 분): 호랑이 선생님, 양예수
- 박성범(이희도 분): 허문도
- 장 형사(장항선 분): 왕평달, 흑개, 개소리좌
- 마 중사(조형기 분): 킬러조
- 조 순경(김보성 분): 으리
- 정인재(송금식 분): 김후옥, 레이
- 강 일병(김동수 분): 고바우
- 김 노인(박종설 분): 백성좌, 박항서
- 폭행 피해자(박남현 분): 절봉이
- 장근석(황정리 분): 취권 사부, 황정리 선생, 발차기 달인
- 노주명(현길수 분): 타쿠마, 멍멍, 나는 개다
- 강동환의 변호사(이영후 분): 김구, 쓸기담좌
- 드립
- 합창단 드립: '백학 합창단', '우우우 합창단' 등으로 불린다.
- 황달 드립: 영상 색조가 노란빛을 띠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심슨' 등 파생 드립도 있다.
[1]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일주일 4회 연속 방영하였다.[2] 2009년 법인 청산 당시 방송제작 사업은 SBS Plus로 이관.[3] 애초 계획은 4개 지역민방들이 개국된 이후에 방송될 예정이었다가 앞당겨졌다. SBS의 지역민방들이 신설된 후 수도권에 있지 않아 방송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1998년 1월 14일부터 1998년 2월 22일까지 모래시계를 재방영(수~목, 토~일)하기도 했다. 당시에 SBS는 이를 위해 별도의 시사회를 가지기도 했다. 모래시계를 시청하지 못한 지방시청자를 위한다는 그럴싸한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IMF로 인해 SBS도 재정상태가 악화되자, 드라마 재방영을 통해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모래시계를 재방영할 경우 시청률은 확실히 보장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4] 최재성은 태수 역으로 물망에 올랐고 감독도 강력하게 출연제의를 했지만 권투로 진로를 정하여 본인이 거절했다.[5] 1993년도부터 중계유선방송의 테이프 넷(녹화 테이프를 이용한 중계)이 허용되었다.[6] 이것은 정찬용의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에필로그 편에서도 "귀가시계가 된 모래시계"라고 짤막하게 언급된다.[7] 2023년 현재 검도관 성인부 관원이 보통 10명 남짓인데 반해 모래시계 방영 당시에는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00명 가까이 되어 성인부 수련시간을 촘촘하게 쪼개야 했다고 한다. 다소 매니악한 스포츠였던 검도가 동네마다 도장이 생기고 대중화가 되어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은 이 때의 영향이 크다.[8] 당장 이 역 근처인 옥계역과 안인역은 여객 취급을 하지 않고 화물만 취급한다.[9] 그것도 작중에서 딱히 중요한 장면도 아니고, 학생운동을 하다가 시골로 피신했던 혜린(고현정)이 거처를 옮기려다가 경찰에 잡혔을 때 잠깐 등장한다.[10] 잠시였지만 강릉역의 시종점역의 역할까지 넘겨받기도 했다.[11] 드라마 이듬해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인기가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그 사건의 작전반경 속에 있는 정동진이 뉴스에 너무 자주 나오다보니 오히려 인지도를 더 끌어올려버렸고 여기에 더해 새해 해돋이 명소로 명성이 알려지면서 한 층 더 부각되게 되었다.[12] 물론 이 당시 몽골의 상황이 많이 안 좋았던 시절이라 마피아들이 판을 치기 딱 좋았기는 했었다. 윗나라 러시아도 이때는 레드 마피아들이 위세를 부렸을때였다.[13] '걸어서 하늘까지'와 '모래시계' 사이에 자상하고 따뜻한 역을 했던 엄마의 바다가 있기는 하다.[14] 여기서도 박상원이 서브 남주로 등장했고 메인 주인공(최재성)의 죽음을 지켜보았다는 점이 모래시계와 겹친다.[15] 이미 모래시계 촬영 당시 연애 중이었고 고현정의 마지막 씬이 촬영된 현장에 정용진이 응원차 방문했다고 전해진다.[16] 박상원은 송지나 작가-김종학 감독 콤비의 2007년작 태왕사신기에서부터 조연으로 나왔으며 2020년대 현재는 주로 주말 드라마의 아버지 캐릭터로 나오고있다. 최민수는 2017년 MBC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 오랜만에 주인공 역을 맡았으며, 고현정은 연예계 복귀 후 2009년 선덕여왕으로 두번째 전성기를 누렸다.[17] 이러한 일화는 2010년 2월 15일 KBS2 <설 특집 빅스타 패밀리 대격돌>을 비롯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9월 18일 방영분, KBS2 <국민히어로 명 받았습니다> 2011년 3월 18일 방영분, SBS <한밤의 TV연예> 3월 31일 방영분 등에서 각각 다루어졌다.[18] 대표적으로 제빵왕 김탁구의 한승재와 모래시계와 같은 SBS 대작 펜트하우스 시리즈에서 역대급 악녀였던 천서진의 아버지인 천명수가 있다.[19] 본방 당시 첫 회(95년 1월 9일)부터 5회(2월 16일)까지 매회 폭력배들의 패싸움 장면 등 폭력장면을 반복묘사해 방송심의규정을 위반했다는 탓인지 방송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고 재방 1~2회분에서 과도한 폭력장면을 지적받아 방송위원회로부터 '주의' 조치를 받았었다.[20] 2023년 현재의 드라마들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심각한 수위의 폭력적 장면은 아니지만 방송 당시로서는 충분히 높으신 분들의 심의에 걸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21] 단 금남로 시위장면은 금남로가 아닌 계림동 부근(계림초에서 광주고등학교 사이)에서 촬영됐으며, 광주시외버스터미널 장면도 항쟁 당시에 위치한 대인동터미널이 아닌 광천동 유스퀘어에서 촬영됐다.[22] 지금은 고인이 된 김종학 PD가 당시 한겨레 신문 인터뷰에서 고백한 바에 따르면 열악한 촬영요건에 의한 임시변통이었다. 그는 제작비 부족과 군당국의 비협조로 제대로 찍지 못한 장면이 많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실제로는 엑스트라를 포함해 불과 43명의 배우로 광주 장면을 만들었으며 극중 등장하는 APC 장갑차 두 대도 일일이 나무로 수제작했다고 한다. 또 NHK 자료 필름을 활용한 것도 어떤 특별한 효과가 아니라 시내로 탱크가 진입하거나 군용 트럭이 대거 몰려오는 장면의 재현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첨언했다. 하지만 외려 이러한 타협책이 역설적으로는 영상미학적 효과를 상승시킨 셈.[23] 여담으로 이때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은 영화 킬링필드의 OST인 Requiem For A City인데, 제목의 함의와 드라마 속 광주의 풍경을 교차해 본다면 여러모로 묘한 부분이다.[24] 정확하게는 전라도 사투리와 서울말을 섞어서 썼다.[25] 최다 기록은 감독, 작가의 전작인 여명의 눈동자가 7관왕을 세웠다.[26] 역대 드라마 최고 시청률 베스트 10과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았던 작품은 <모래시계>(64.5%로 시청률 3위) 외에도 MBC 그대 그리고 나(62.4%로 시청률 6위)(1998년 12월 개최되었으며 1997년 중후반기부터 1998년까지의 내용을 기준으로 한 11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 KBS 1TV 태조 왕건(60.2%로 시청률 8위)(2001년 12월 열렸으며 2000년 중후반기부터 2001년까지의 내용을 위주로 한 14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이 있다.[27] 물론 당시 대선은 홍준표가 낙선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긴 했다.[28] 제작은 동우영상, 배급은 우일영상이었다.[29]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에 함께 출연한 인연으로 신성록의 출연 회차에 원작에서 태수 역을 맡았던 최민수가 응원차 관람 왔다고 한다.[30] 이후 그나마 비슷한 케이스가 금토일 방영을 한 2022년의 재벌집 막내아들 하나 뿐일 정도.[31] 출판업을 했는데 최근 '정년 후의 한국 드라마'라는 책을 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