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991) Susan Brink's Arirang | |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장르 | 드라마 |
감독 | |
각본 | 유우제, 장길수 |
원작 | 유우제 |
제작 | 김계성 |
주연 | |
촬영 | 손현채 |
음악 | 신병하 |
제작사 | 세원필름 |
개봉일 | |
상영 시간 | 118분 |
서울 관객 수 | 163,991명 |
상영 등급 | 고등학생이상관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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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길수 감독, 최진실 주연의 1991년 개봉 영화.1989년 11월 20일과 27일에 걸쳐 방영된 MBC 인간시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해당 프로그램은 스웨덴 입양아인 수잔 브링크(Susan Brink, 한국명 신유숙, 1963~2009)의 인생유전과 그녀가 23년 만에 모국을 찾는 내용을 다룬 휴먼 다큐멘터리다. 이때까지 방치돼 오던 해외입양아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입양아를 수출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꼬집으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제작된 디아스포라 영화라 할 수 있다. # 당시 재일교포나 재중교포 외의 한국계 외국인들을 다루는 작품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2. 시놉시스
1966년 가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어머니는 가난에 못이겨 4살짜리 딸 유숙을 입양시킨다. 유숙은 이유도 모르는 채 스웨덴의 항구도시 노르셰핑[1]에 도착하고, 험난하고 힘겨운 삶이 시작된다. 낯선 환경과 생소한 모습들, 그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소외감, 친어머니와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유숙은 갈등과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낸다. 양모의 가혹한 매질을 못이긴 유숙은 13살에 첫 번째 자살 시도를 한다. 결국 18세가 되어 자립을 하게 된 유숙은 친모를 찾아나서지만 그 노력은 절망에 부딪치고, 방황 속에서 만난 한 남자와의 동침 끝에 임신을 하게 된다. 아이를 낳은 유숙은 스웨덴에서 선교사의 도움으로 한국에 친모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유숙(스웨덴 이름으로는 수잔)은 친모와 해후를 하게 되고, 기나긴 방황을 끝마친다.
3. 등장인물
- 수잔 브링크 역 - 최진실 (유년 시절 역 신진희)
- 생모 역 - 김윤경
- 유숙 오빠 역 - 안병경
- 수잔 브링크 양모 역 - 피아 그렌
- 수잔 브링크 양부 역 - 라르스 그렌
- 윌리 역 - 니클라스 발그렌
4. 수상
5. 실제 인물의 씁쓸한 뒷얘기
수잔 브링크가 한국의 가족과 절연했다는 뒷얘기와 사망소식23년 만에 친어머니를 만나 한국을 몇 차례 오가며 가족의 정을 느끼며 생활한 수잔이었지만, 한국의 사촌오빠가 수잔의 도움으로 스웨덴에서 사업을 벌이면서 친가족들과 갈등이 시작됐다. 수잔은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사촌오빠를 스웨덴으로 초청했고 수잔과 함께 무역업을 벌인 사촌오빠는 큰 돈을 벌어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동업자라 생각했던 사촌 오빠가 수잔 몫으로 준 돈은 단돈 200달러였고, 실망한 수잔은 ‘잘가세요. 당신은 더 이상 사촌이 아닙니다’는 말과 함께 200달러를 돌려주었다.
그 후에도 친오빠가 스웨덴 초청을 요구해서, 수잔은 “사업을 하기 위해 온다면 거절하겠다”는 단서를 달고 받아들였으나 오빠는 약속과는 달리 사업을 벌였고 수잔이 도와주지 않자 돌아가버렸다. 친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듣고 또 수잔만 극심하게 질책했고, 결국 수잔 브링크는 한국 가족들과 절연하고 말았다.[2] 이후 2003년에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지 마세요’라는 기고문을 발표하였으며 한국이 이제 국제입양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히며 한국의 해외입양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1월 23일 암 투병 끝에 향년 46세로 유명을 달리했다.[3]
5.1. 왜곡 논란
영화가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어 수잔 브링크가 생전에 이 영화를 싫어했다고 한다. 링크영화에 묘사된 것과는 달리 수잔은 양부모와 연을 끊지 않았고, 그 외에도 사실과 다른 묘사가 한둘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었다. 실제 현실에서 수잔은 오히려 친부모와 연을 끊었다. 즉, 수잔의 양부모가 영화에 묘사된 것처럼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는 장길수 감독의 민족주의적인 성향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위 링크에 따르면 장길수 감독은 기본적으로 미국문화의 침투로 붕괴하는 전통문화와 가치라는 주제를 담아 영화를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더럽고 퇴폐스런 미국(혹은 서양)문화에 타락하는 우리 딸들이라는 프레임의 작품을 자주 찍었는데, 이 작품 또한 그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4]
[1] 외스테르예틀란드 주에 위치한 도시.[2] 이 당시 한국의 의식 수준을 알 수 있다. 전적으로 한국 친가족들이 무개념한 탓에 발생한 갈등임에도, 후일담을 취재한 방송국조차도 이것을 ‘해외입양아가 겪는 한국의 문화 차이’쯤으로 취급해버린다.[3] 공교롭게도 최진실이 자살한 이듬해에 사망했다.[4] 다만 저 글에 언급된 은마는 오지 않는다 같은 경우, 원작 자체가 실제로 있었던 미군 범죄를 반영한 사회 고발적 성격을 띠고 있어 단순히 반미 감정으로 만든 영화로 치부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국 현대사의 치부를 건드려 불이익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