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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8-05 14:44:55

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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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 초대 황제
손권 | 孫權
파일:손중모.jpg
출생 182년 12월 22일
후한 양주 오군 부춘현
(現 저장성 항저우시 푸양구)
즉위 229년 5월 17일 (46세)
손오 형주 무창군 무창현 남교
(現 후베이성 어저우시)
사망 252년 5월 21일 (향년 69세)
손오 양주 단양군 건업
(現 장쑤성 난징시)
능묘 장릉(蔣陵)
재임기간 후한의 장군
200년 ~ 220년[1]
재위기간 후한의 남창후
219년 12월~ 221년 11월
조위의 오왕
221년 11월 ~ 229년 5월 14일
손오의 황제
229년 5월 17일 ~ 252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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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B0000><colcolor=#ece5b6> 본관 부춘 손씨
권(權)
부모 부황 시조 무열제
모후 무열황후
형제자매 5남 3녀 중 차남
배우자 정실 사부인, 서부인, 보황후, 반황후
후궁 대의황후, 경회황후
자녀 7남 4녀
신장 180cm[2]
중모(仲謀)
종교 불교
작호 남창후(南昌侯) → 오왕(吳王)
묘호 태조(太祖)
시호 대황제(大皇帝)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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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黃武, 222년 ~ 229년)[3]
황룡(黃龍, 229년 ~ 232년)[4]
가화(嘉禾, 232년 ~ 238년)
적오(赤烏, 238년 ~ 251년)
태원(太元, 251년 ~ 252년)
신봉(神鳳, 252년 ~ 2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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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호3. 생애4. 평가5. 가족 관계6. 기타7. 대중매체에서8. 둘러보기

1. 개요

파일:오대.jpg

중국 삼국시대 삼국의 하나인 손오개국군주이며 초대 황제. 묘호는 태조이며 시호는 대황제. 손견의 차남이자 손책동생으로, 자는 중모(仲謀)다.

강동 손씨 세력의 기틀을 닦은 형 손책이 급사한 이후 그 자리를 이어받아 적절한 군사 활동과 외교로 강동을 천하를 삼분하는 한 축으로 키워냈다. 외정에서는 비교적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자신의 통치 구역을 잘 다스리고 외적을 물리치는 등의 성과를 거두어 자신의 권위와 위상을 크게 높였으며, 229년에 황제로 즉위하면서 오나라를 건국했다.[5] 그러나 말년에는 여러 실책[6]을 보이기도 했다.

보다 광범위한 역사적인 측면에서 오나라를 건국한 손권은 강남을 본격적으로 중국 역사의 보다 중심적인 무대로 옮기기 시작한 인물로 볼 수도 있다. 그가 세운 동오의 통치를 통해서 강남 지역의 여러 이민족들이 토벌되고 중화 문화권으로 서서히 편입되었으며[7], 강남을 배경으로 하는 본격적인 국가 및 사회 체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동오의 유산은 거의 그대로 육조시대로 이어짐으로써[8][9] 남북조시대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2. 시호

시호로서는 안 쓰이는 글자고, 흔히 대황제라고 하면 시호가 아니라 단순히 황제를 더 높여 부르는 보통명사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시호는 유교적 예법을 따졌을 때 제대로 지은 시호라고 보기 힘들다. 그래서 '대황제'라는 시호는 후대에 오나라가 기본적인 예절도 모르는 촌동네라고 비난당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아 추존군주 조조를 무제(武帝), 위나라를 건국한 창업군주이며 초대 황제 조비를 문제(文帝), 2대 황제 조예를 명제(明帝) 등으로 호칭했고, 자기가 한때 섬겼던 촉한은 유비, 유선을 각각 선주(先主), 후주(後主)로 어느 정도 권위있게 존중해서 표현했다.

반면 오나라의 경우 손권은 오주(吳主)전, 이후의 황제들은 삼사주(三嗣主)전[10]으로 일괄처리했고, 손견, 손책도 추숭된 시호를 부르지 않고 다 생전 관직인 '파로토역'으로 전을 처리한 걸로 봐선 아무래도 손권만 특별 대우를 받은 듯 싶다.

그러나 막상 내용으로 들어가면 촉서 선주전에서는 "선주의 성은 유, 휘는 비, 자는 현덕이다."라고 소개하고[11] 유비를 계속 선주라고 부르는 반면, 오주전(손권전)은 그냥 다짜고짜 "손권은 자가 중모이다."로 시작한 이후 그냥 계속 손권이라고 부르고 있다.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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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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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족 관계

6. 기타

파일:손권묘_ama217.jpg
파일:손권동상.jpg
파일:손권묘유지_안내판.jpg
난징시 문물 보호단위, 오 대제 손권 장릉, 난징시 인민정부
2023년 9월 14일에 공포하여 난징시 인민정부가 세움
* 손권의 무덤 근처에 조성되어 있는 손권의 석상과 비석. 제법 화려한 유비의 무덤을 생각하면 좀 쓸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래도 손권이 난징시의 실질적인 아버지 격이라 그런지 시 정부에서 2020년대 들어서 신경을 좀 써서 원래는 덜렁 '손권묘유지(遺址)'#라고 안내문만 적었던 이곳을 '난징시 문물 보호단위'로 새로이 지정하고 비석을 새로 세운 뒤 이곳이 '오 대제 손권의 장릉'이 있는 곳이라고 단장하긴 했다. 여담으로 2006년 조사 당시 인근 지하에서 '갑(甲)'자 형태의 인공 구조물을 확인하기는 했다고 하나 발굴하지는 않은 듯하다. # 엄밀하게 말하면 손권의 장릉은 난징 중산릉과 홍무제의 릉인 명효릉경구 안에 있는 부속묘지 취급이라 눈에 안 띄는 것에 가깝긴 하다. 삼국지 덕에 유명하긴 하지만 지역왕국의 군주에 불과한 손권의 위상은 현대 중국의 시조 쑨원에는 비교할 수도 없고 통일 왕조의 창건자인 홍무제에 비해서도 많이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파일:손권.jpg
파일:external/i3.ce.cn/W020100703475471729418.jpg

7.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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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로장군 200년 ~ 209년
거기장군 209년 ~ 219년
표기장군 219년 ~ 220년
[2] 키가 7척 6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척단위인 23.7cm로 계산하면 180cm가 나온다.[3] 독자 연호를 선포하기 이전에는 후한과 위의 연호를 사용했다. 참고로 손권이 황무라는 연호를 썼을 때는 손권이 아직 황제를 칭하기 전이며 동시에 오나라를 건국하기 전이다. 본래 연호는 천자가 선포하는 것이니, 독자 연호를 선포한다는 것은 향후 적절한 시기에 위나라에 대한 신종(臣從)을 철회하고 스스로 황제가 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더불어 222년에는 조비가 태자 손등을 인질로 보내라는 요구를 해오자, 손권이 이를 거부하여 위나라와 강동의 손씨 세력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손권이 명목상 위나라의 신하를 칭하면서도 독자적인 연호를 선포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이다.[4] 229년에 손권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오나라를 건국한 이후에 사용한 공식적인 오나라의 첫번째 연호.[5] 새로이 세력권을 창출해내거나 영토를 크게 확장하는 것보다 물려받은 것을 잘 지켜냈다는 점에서 나라를 건국한 창업군주인 동시에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수성 군주로 알려져 있다.[6] 예를 들어 이궁지쟁이나 동연과의 외교 문제 등[7] 예를 들어 그의 재위 시절에 안휘호남을 비롯한 각 지방의 산월 소수 민족과 그 밖의 이민족들을 토벌하고 대만해남도 방면에 원정군을 보내는 등의 활동이 있었다.[8] 육조시대 자체에 동오가 포함되므로, 손권은 육조의 첫 군주라는 상징성을 갖는다.[9] 보다 정확히는 서진 말기의 대혼란으로 인해 강남으로 피난한 화북 출신의 귀족들과 강남 호족들의 결합체[10] 세명의 계승자라는 뜻[11] 라는 말은 일단 황제급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말[12] 손익의 아내다.[13] 길게 보면 위촉오 셋 중에 오나라가 가장 간을 보면서(?) 오래 살아남다가 멸망하는 후반부 전개를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14] 삼국지연의에서 손권과 유비가 칼질로 만들었다는 십자문석으로 유명한 절이다.[15] 이때 주목할 만한 건 이때 올려진 진상품에 말 수백필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교주가 의외로 말 산지였던 것. 비단 교주뿐 아니라 촉이 평정한 운남 지방에서도 명마가 났다고.[16] 〈헌제춘추〉의 기록에는 장료합비에서 손권을 격파 후 항복한 오나라 장수들에게 "오나라 퇴각 후미에 남아서 싸운 장수가 자줏빛 수염에 상체가 길고 하체는 짧은데, 말을 잘 타고 궁술에 능했소. 그 장수는 누구요?" 라고 묻자 그들이 "그 사람이 손회계(손권)입니다." 라고 대답해 악진과 서로 멍하니 바라보다 뒤늦게 쫓았지만 잡을 수 없었다고 나온다.[17] 주연이 모신 황제는 손권밖에 없다. 손권 시대에 활동하여 손권이 죽기 2년 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18] 문서 맨 위의 초상화(역대제왕도권)는 실제 손권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당나라 시기에 손권을 추정해서 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