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吳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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馮熙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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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관료이며 자는 자유(子柔). 예주 영천군 출신으로 풍이의 후손이다.《정사 삼국지》 본전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배송지가 주로 단 《오서》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2. 생애
손권이 거기장군[1]일 때 동조연으로 되었으며, 오산도위를 지내고 있던 223년 4월, 이릉대전의 여파로 유비가 사망하자 손권의 명으로 파견되어 유비의 조문을 갔다.이후 오나라로 돌아와서 중대부에 임명되었고, 위나라의 조비가 아들인 손등을 인질로 보내라는 협박을 하자 이를 거절했지만 손권이 아직 조비와 완전히 외교를 끊지 않았기 때문에 촉한과의 국교를 회복시키면서 손권이 시간을 벌기 위해 풍희를 조비에게 보낸다.
위나라와 싸우는데 오나라가 반드시 패배하라는 이유란 없습니다.
등으로 대꾸하니 조비가 마음에 들어서 그를 조자처럼 자신의 신하로 만들기 위해 귀국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풍희와 같은 군 출신인 진군이 조비의 명을 받아 많은 이득으로 유혹하려고 시도했지만, 풍희는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이에 조비는 풍희를 속일 생각으로 보내주는 척 했으며, 풍희가 마피에 이르렀을 때 소환 명령이 내려졌다는 이유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풍희는 끝까지 손권을 따르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며 칼을 꺼내 자살하려고 했으나 끝내 제지당해 끌려가고 말았다.
손권이 이 소식을 듣고 소무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고 탄식했으며, 결국 풍희는 위나라에서 생을 마감했다.
[1] 손권은 209년에 거기장군이 되었고 219년에 표기장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