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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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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흥헌왕 주우원 2대 주후총 황제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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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제11대 황제
가정제 | 嘉靖帝
파일:Jiajing.jpg
출생 1507년 9월 16일
사망 1567년 1월 23일 (향년 59세)
능묘 영릉(永陵)
재위기간 명 흥왕
1521년 4월 15일 ~ 1521년 5월 27일
제11대 황제
1521년 5월 27일 ~ 1567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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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성씨 주(朱)
후총(厚熜)
부황 예종 헌황제
모후 자효헌황후(慈孝獻皇后)
황후 효결숙황후(孝潔肅皇后) 진씨(陳氏)
폐후 장씨(廢后 張氏)
효열황후(孝烈皇后) 방씨(方氏)
효각황태후(孝恪皇太后) 두씨(杜氏)
종교 도교
묘호 세종(世宗)
시호 흠천이도영의성신선문광무홍인대효숙황제
(欽天履道英毅聖神宣文廣武洪仁大孝肅皇帝)
연호 가정(嘉靖, 1522년 ~ 1566년) }}}}}}}}}
1. 개요2. 생애
2.1. 대례의 의2.2. 가정난치2.3. 북로남왜2.4. 해서 파관2.5. 장수와 사후
3. 여담4. 평가5. 대중매체에서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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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attachment/가정제/명세종.jpg
중국 명나라의 제11대 황제.

묘호는 세종(世宗), 시호는 흠천이도영의성신선문광무홍인대효숙황제(欽天履道英毅聖神宣文廣武洪仁大孝肅皇帝)였으며, 휘는 후총(厚熜)이었고, 연호는 가정(嘉靖)이었다.

제8대 헌종 성화제의 4남이자 제9대 효종 홍치제의 이복동생이 되는 흥헌왕 주우원(예종)의 차남으로, 전임 황제인 제10대 무종 정덕제에게는 사촌동생이었다. 훗날의 암군인 제13대 신종 만력제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명군이 많기로 유명한 '세종' 묘호[1]를 받은 황제 가운데 몇 안되는 암군이다.

황족의 방계로서 제위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후사가 없었던 전임 황제인 정덕제가 물에 빠져 죽어버리는 바람에[2] 순식간에 광활한 대륙을 통치하는 황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가 즉위한 것도 단지 계승 자격이 있는 정덕제의 직계 친족 중 항렬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었다.

즉위 당시 가정제는 겨우 15세였다. 물론 전근대 중국에서는 16세 이상이면 성인으로 봤기 때문에 당시 기준에서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고, 즉위하면 곧바로 친정을 시작할 수 있었기에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계승 서열을 거스르고 즉위한 것은 아니었기에 즉위 과정 자체도 일단 문제는 없었다.

유교 예법에 따르면 황제의 자리는 아버지 → 아들, 혹은 형 → 동생으로 계승되어야 했다. 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형이 동생에게 제사를 지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웃한 조선의 예법 역시 마찬가지였다.[3]

따라서 후사 없이 죽은 정덕제를 잇는 차기 황제는 당연히 정덕제와 같은 항렬, 또는 조카 중에 찾아야 했다. 만약 흥헌왕 주우원이 살아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정덕제의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홍치제의 바로 아랫 동생이었기에 정덕제에게는 숙부가 되었고, 조카 → 숙부로는 계승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홍치제가 성화제의 3남이었고, 흥헌왕 주우원이 4남이었으니 홍치제의 아들인 정덕제의 뒤를 이을 수 있는 가장 항렬 높은 황족은 주우원의 아들인 주후총, 즉 세종 가정제뿐이었다.

1521년 즉위 당시 가정제는 대신 양정화 등이 건의한 바를 따라 선대 정덕제의 군인들을 처치하고 그 악정을 고침으로써 국가의 안정에 일신을 꾀했다. 당연히 새 황제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히 높았다.

2. 생애

안륙주(현 중샹시)에서 흥왕 주우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훗날 황제에 오른 그는 고향인 안륙주를 3경에 해당하는 승천부로 승격시키고, 현의 이름을 상서로움이 모인다는 의미의 '종상'으로 명명했다.

2.1. 대례의 의

파일:external/photo.hanyu.iciba.com/bk_92bb022f0e0524b1ce9210ae1f1be854_d2f9rW.jpg
명예종 주우원

그러나 가정제는 즉위 직후 커다란 문제에 부딪혔다. 그것이 중국판 예송논쟁대례의 의(大禮議)[4]였다. 이 사건의 중심은 가정제가 방계 황족으로서 제위에 올랐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황제로서는 누구의 뒤를 이었다고 해야 하는가? 또한 가정제의 친부인 흥헌왕(興獻王) 주우원(朱祐杬 1476~1519)[5]은 어떻게 처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황실의 정통성을 중시하는 양정화 등을 위시한 관료들은 가정제 입장에선 혈통상 백부인 효종(홍치제)을 양부로 모셔서 황고(皇考)[6]라, 친부 흥헌왕은 황숙부(皇叔父)라 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혈통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종법상으로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제위가 이어졌다는 구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유교적 원칙에 따르면 당연한 결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정제는 이런 주장이 내키지 않았다. 그는 부모를 바꾸어서는 안 되므로 친부를 '황고', 홍치제를 '황백부'라 칭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리하여 황제파와 신하들이 정면으로 대립하는 대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가정제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양정화 등 예법파가 사직하고, 나머지 황제파를 중심으로 하여 황제의 뜻대로 결론을 지으며 흥헌왕을 '예종 헌황제'로 추존했다.[7]

'대례의 의'는 단순히 고루한 예법에 얽매여 치고 박고 싸운 것이 아니라, 실은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였다. 왜냐하면 가정제가 정덕제가 아니라 흥헌왕의 뒤를 이었다고 하면, 적장자를 우선으로 하는 정통 라인이 아니라 방계도 제위를 이을 수 있음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성조 영락제 시기에 발생한 사안, 즉 정난의 변과 사실상 동일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황실의 방계라도 힘만 있으면 영락제처럼 찬탈해서 황제가 되든가, 아니면 나중에 이런 상황이 또 발생할 경우 누구라도 황실의 계승을 주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문제가 없더라도 훗날 정덕제처럼 후손이 끊긴 상황이 발생하면, 비록 방계 출신이지만 자신이 제2의 가정제가 되겠다고 나서는 황족이 나올 위험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양정화 등은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가정제가 승리했다. 여기에는 가정제의 독단적인 똥고집도 작용하기는 했지만, 양명학처럼 절대적인 정통성 말고 누구라도 정종이 될 수 있다는 사상적인 뒷받침, 국법을 엄격하게 준수하기보다는 유연하고 느슨하게 적용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명대 중후기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뒷받침된 결과였다.

2.2. 가정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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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가정제는 환관의 주선으로 할아버지 성화제처럼 도교를 신봉하여 스스로를 신선이라 칭하고 긴 도호를 붙이는가 하면, 월경혈과 아침 이슬 등으로 불사의 을 만든다며 궁녀들을 학대했다. 또 궁녀들이 조금이라도 비위를 거슬리게 하면 사정없이 매를 쳤다.[8] 명나라의 역대 황제들 가운데 즉위 후 가장 빨리 여색에 빠졌는데(3년), 이것도 도교 때문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가정제가 총애하고 아꼈던 도사들은 정말로 순수하게 그를 따랐으면 따랐지, 이런 상황에서 흔하게 보이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전혀 보이지는 않았다.[9]

그가 얼마나 궁녀들을 혹사시켰는지, 여기에 견디지 못한 궁녀 16명이 총애하는 후궁과 동침하고 있었던 황제를 결박한 채 누런 비단 천으로 만든 올가미로 목을 힘껏 졸라 시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황제의 목에 두른 올가미 줄이 엉키고 말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궁녀들이 어찌할 바 모르고 있었을 때, 그중에서 장금련(張金蓮)이 황급히 황제의 침소를 빠져 나와 황후 방씨에게 급변을 아뢰었다. 이에 놀란 방황후가 급히 시위들을 거느리고 침소로 달려와 궁녀들을 제압했다. 이 사태를 임인궁변(壬寅宮變)이라고 한다. 궁녀들의 계획이 성공하여 가정제가 시해당했다면 역사상 최악의 죽음을 당한 황제가 되었겠지만[10], 가정제 암살을 시도한 궁녀 16명은 전원이 방황후의 엄명으로 서안문 밖 사패방의 서시에서 끌려가 능지처참을 당했다.

이 불쌍한 궁녀들의 이름은 양금영(楊金英), 형취련(刑翠蓮), 양옥향(楊玉香), 소천약(蘇天藥), 요숙고(姚淑皐), 왕괴향(王槐香), 관매수(關梅秀), 유묘련(劉妙蓮), 진국화(陳國花), 장금련, 왕수란(王秀蘭), 서추화(徐秋花), 정금향(鄭金香), 황옥련(黃玉蓮), 양취영(楊翠英), 장춘경(張春景)이었다. 한편 조선의 중종은 이 사변을 전해 듣고 놀라 "어찌 궁녀들이 이런 일을 저질렀겠는가? 필시 주모자가 있을 것이다" 라면서 추측하기도 했다.#

그런데 방황후가 뒷처리를 하면서 "시해 음모사건의 실질적인 주모자는 황제의 후궁 왕영빈이며, 총애를 받던 조단비도 사전에 정황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여 두 후궁도 궁궐에서 능지처참을 당했다.

방황후가 왕영빈을 주모자로 몰고 조단비도 연루되었다고 주장하여 그들을 잔흑히게 죽인 것은 궁중 여인들 사이 복잡한 암투의 소산이었다.

원래 가정제는 가정 원년(1522)에 대혼을 치르고 도독동지 진만언의 딸이었던 진씨를 황후로 맞이했다. 즉 진씨가 가정제의 첫 번째 황후였다. 가정 7년(1528) 10월 가정제와 진황후가 동석한 자리에서 장순비가 황제에게 차를 올렸다. 장순비는 피부가 백옥처럼 희고 손이 섬섬옥수여서 가정제는 장순비가 차를 따를 때 그 손을 어루만지면서 감상했다. 진황후가 곁에 있는데도 그러했다. 이 광경을 보고 진황후가 화를 내며 찻잔을 던지고 벌떡 일어섰다. 당시 진황후는 임신 중이었다. 이 일로 가정제의 분노를 산 황후는 21세 때 유산을 하고 죽었다. 세종은 진황후가 죽은 지 3개월 후에 장순비를 황후로 책봉했다. 당시 효종 홍치제 주우탱의 정실부인이었던 장태후(1471~1541)가 아직 생존해 있었다.

장태후는 가정제의 백모, 즉 아버지 맏형의 부인이었다. 정상적인 관계라면 가정제는 장태후를 지극정성으로 모셔야 했다. 그런데 가정제의 친부 주우원은 홍치제의 이복동생이었다. 이런 이유로 가정제로서는 백모에게 강한 혈연관계를 느끼지 못했다. 더구나 대례의 논쟁이 일어났을 때 장태후의 남동생이었던 건창후 장연령이 예법파 대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옹호했으므로, 가정제는 장태후 일족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가정제는 대례의 논쟁을 끝내고 난 뒤 장연령을 옥에 가두었다. 이때 장태후는 새로 황후로 책봉된 장황후에게 남동생을 도와달라고 은밀하게 부탁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 챈 가정제는 즉시 장황후를 폐위시켰다. 가정 20년(1541), 인생 말년을 쓸쓸히 보내던 장태후가 죽자 가정제는 장연령을 역모죄로 몰아 죽였다. 한때 남편 홍치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부귀영화를 누렸던 장태후는 친아들인 무종 정덕제가 황위를 계승할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가정 연간 때 멸문의 화를 당하고 말았다.

한편 가정제는 방씨를 3번째 황후로 책봉했으나 아들을 낳지 못했다. 가정제는 아들을 얻지 못하여 노심초사하다가 가정 12년(1533)에 이르러서야 후궁들 사이에서 여러 아들을 얻기 시작했다. 이를 도사 소원절의 신통력 덕분으로 생각한 까닭에 가정제는 그를 더욱 총애하고 도교를 맹신했다.

가정 15년(1536)에는 왕영빈이 가정제의 둘째 아들인 주재예를 낳았다. 당시 관례에 따르면 빈이 황제의 아들을 낳으면 비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가정제는 그녀의 품계를 높여 주지 않았다. 이에 왕영빈은 가정제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당시 방황후는 아들을 낳지 못하여 가정제에게 홀대를 당하고 있었다. 가정제가 조단비에게 빠져, 아들을 낳은 왕영빈을 홀대하는 것을 본 방황후는 왕영빈의 질투심을 이용하여 일거에 조단비와 왕영빈을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결국 방황후의 눈엣가시였던 두 후궁은 궁녀들을 시켜 가정제를 시해하려고 했다는 대역죄를 뒤집어 쓰고,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아무 관련이 없는 가정제의 후궁들까지 죽여버린 것이 드러나자, 가정제는 황후 방씨한테 크게 화를 냈다. 물론 이 정도는 정상적인 것이지만, 훗날 황후궁에 불이 나자 끄지 말라고 해서 방황후가 불타 죽고 말았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야사에서 나오는 추측일 뿐이다.

황후 방씨는 가정제가 붕어했을 당시 유일하게 그의 능에 같이 묻힌 사람이었다. 가정제에게는 황제가 되기 전에 있었던 황후부터 제12대 목종 융경제의 생모인 황후 두씨까지 황후 4명이 있었는데, 오직 방황후만이 가정제와 같이 묻힐 수 있었다.

현재 가정제의 황릉에는 황후들 3명이 묻혔다. 방씨 외의 경우, 가정제가 붕어한 다음 융경제가 자기 생모인 두씨를 합장시키면서 다른 황후도 같이 합장시킨 것이었다. (합장을 못한 나머지 1인은 폐후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자신이 죽인 다음에 그 사람을 자신과 같이 무덤에 묻을 리가 없다. 사람을 죽인 다음 슬픈 척을 하면서 이런 저런 제사를 거하게 벌이는 일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저승에서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곤녕궁의 화재로 방황후가 목숨을 잃은 다음, 사람들의 상상에서 비롯한 추측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다른 주장도 있다.

가정제는 한평생 황후 4명, 황귀비 3명, 귀비 3명, 비 41명, 빈 31명 등 공식적으로 부인 82명을 거느리고 살았다. 도교의 황당무계한 미신에 홀려 살면서 이렇게 부인들을 많이 거느렸으니, 궁중 여인들의 암투는 다반사였을 것이다.

가정제는 임인궁변 이후에 서원의 영수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뒤 다시는 자금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황제가 국정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자금성 안에는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간신배와 음흉한 도사들이 넘쳐났다.

가정제는 점점 도교에 심취했다. 도교의 제문(祭文)을 '청사(靑詞)'라고 부르는데, 급기야 청사를 잘 만드는 자가 재상으로 발탁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청사를 잘 지어 출세를 하고 정권을 장악한 유명한 인물이 엄숭이었다. 그는 도교를 광신하여 정치를 돌보지 않는 가정제를 대신해 국정을 전횡하기를, 전후 20년에 달했다. 그 동안 극도의 뇌물수수 행위가 정치 전반에 만연했다. 환관의 세력이 일시 후퇴했으나 그 대신 권신의 독직 정치가 왕조의 퇴락을 촉진시킨 것이었다. 게다가 엄숭이 휘두른 권력의 배경에는 환관 세력과 적절한 타협이 있었다. 즉 환관의 권세가 일시적으로 후퇴했다고 볼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후퇴였던 것이다.

명나라 역대 황제들 중에서 도교를 믿은 황제는 많았다. 예를 들어 명군으로 손꼽히는 효종 홍치제도 도교를 믿었다. 가정 연간의 엄숭은 도교의 제문을 잘 짓기로 유명했으며,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쫓겨난 다음에도 도교의 제문으로 황제의 신뢰를 회복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청사재상'이라고 비난했다.

엄숭이 간신이기는 했지만, 그는 이미 대학사였고, 재상에까지 오른 인물이었으며 쥐뿔도 없는 인물이 청사 하나 잘 짓는다고 재상까지 오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11]

2.3. 북로남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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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제가 통치한 16세기 중엽은 북로남왜(北虜南倭), 즉 북방의 오이라트와 바다를 건너 온 후기 왜구의 연안 침공으로 명나라가 어지러운 시기였다.

우선 토목의 변이라는 희대의 굴욕을 겪은 지 101년 후인 1550년몽골 투메드부의 수장인 알탄 칸베이징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경술의 변이 일어났다.

남쪽으로는 후기 왜구가 극성을 부려 연안 일대가 대혼란에 휩싸였다. 특히 가정제 시기의 왜구는 노략질이 워낙 심해서 당시의 왜구를 가정 왜구라 부르기도 했으며, 해상 밀무역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중국인 왕직이 이 왜구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중국 남해안을 들쑤시고 다니기도 했다. 이때 명나라군이 얼마나 막장이었냐면 왜구가 가장 활개를 치던 1555년에 고작 72명의 왜구들을 1명도 죽이지 못하고, 900명의 명나라군이 전사하기도 했다.

다만 이때 명장 척계광1544년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했는데 기용이 늦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이때 그는 겨우 16살이었고, 척계광이 일군을 지휘하는 사령관급으로 기용된 것이 1555년, 27살 때였으니 이때도 전혀 늦게 임명한 것은 아니었다.

2.4. 해서 파관

암울한 황제의 치세 말년에 걸출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바로 그 유명한 해서였다. 해서는 주군인 가정제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강도높은 비난 상소를 올렸다.
황제 폐하께서는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백성들은 폐하의 연호인 도타울 '가'(嘉), 아름다울 '정'(靖)을 집 '가'(家)에 깨끗할 '정'(淨)으로 바꿔 부르며[12] 가정(家淨)이라고 하면서 폐하를 원망합니다.
라고 가정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한국 속담에도 '서 발 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게 없다.'는 말이 있는데, 집안에 가구고, 항아리고, 식량이고 전혀 없어서 부숴먹을 것도 없다는 뜻이다.

이에 가정제가 격노하여 사형을 명하려고 했으나, 옆에 있던 환관이 "해서는 이미 상소를 올리기 전에 가족과 이별하고 을 짜놓았다'고 알려주자 '이 사람은 비간과 비견될 만한 충신이지만 나는 주왕(과 같은 폭군)이 아니다.'라고 탄식하고는 결국 죽이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이걸 진짜로 죽여버리면 충신을 죽인 폭군으로 역사에 남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해서를 고문만 하고 처형은 하지 않았다. 결국 당시 재상이었던 서계[13]가 말리기도 해서 처형이 늦어지다가 가정제가 붕어한 이후에야 다시 벼슬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먼 훗날 베이징 부시장이었던 오함(吳晗)에 의해 《해서파관》(海瑞罷官)이라는 이름의 희곡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의 서곡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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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장수와 사후

수은중금속이 가득한 선단을 그렇게 먹고도, 오히려 총애하던 도사들보다 장수하여 환갑 직전에 붕어하는 등 장수했다. 명나라 역사상 태조 홍무제 주원장, 성조 영락제 주체 다음으로 장수했고, 재위 기간으로는 신종 만력제[14] 다음으로 긴 45년을 재위했다.

참고로 당시 중국인들은 수은을 신기한 힘을 가진 액으로 보고, 이를 섭취하면 장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15] 이때 지칭하는 수은은 액체 수은이 아니라, 그 원광이 되는 붉은 광물인 '주사'(朱砂, 경면 주사)를 주로 의미했는데, 이는 HgS(황화제이수은, 적색황화수은)로 인체 흡수율이나 위험성이 적은 무기 수은을 포함한 광물이었다. '수비법'이라 하여 주사를 상당히 오랜 시간 물에 띄워 걸러내는 방법으로 무기 수은만 정제했는데, 이 과정에서 증발한 수은 증기를 흡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매우 위험했다. 물론 무기 수은 중독도 없지는 않았다. 수은도 한약재로서 따로 존재는 했으나, 한의서에도 대한대독(大寒大毒)하여 절대 함부로 쓸 수 없는 한약재로 서술했다.

그런데 이런 암군이 세종(世宗)으로 추존되었다. 정덕제 이후 끊어진 황통을 가정제가 새로 이었기 때문에 분에 넘치는 묘호를 받은 것이었다.

가정제가 죽으면서 명나라의 재정난은 표면으로 떠올랐고, 결국 이자성의 농민 반란군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명나라는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렸다.

3. 여담

파일:attachment/image_174.jpg* 젊은 시절에 그린 초상화가 강호동을 닮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4. 평가

조선홍경림이 가정제의 외모를 평가한 기록이 있다.
"황제(皇帝)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했는가?" 하문하매, 경림이 아뢰기를,
"천제(天祭)를 끝낸 다음 환궁(還宮)할 때 신이 궐정(闕庭)에 줄지어 서 있었는데, 거가(車駕)가 지나는 곳이 매우 가까와서 자세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황제가 탄 연(輦)은 모양이 둥글고 바깥에는 난간을 설치했으며, 그 앞면과 양쪽은 열어 젖혀 놓았습니다. 마침 소신(小臣)이 서 있는 곳에 이르므로 신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 바, 깡마른 얼굴에 뾰족한 턱과 튀어나온 광대뼈에 긴 코를 하고 있었고, 눈꼬리는 위로 찢어져 별다른 풍채가 없었습니다."

중종실록》60권 중종 23년 3월 25일 병신 3번째 기사
후대 왕조인 청나라에서는 가정제를 "암군이긴 해도 신종 만력제와 희종 천계제보다는 낫다"고 평가했다.
지난해에 황제가 칙지를 내리기를 "짐이 탕산(湯山)에 행차하여 명나라의 여러 능(陵)에 제사를 지냈는데, 여러 능들이 많이 무너진 것을 보고 개탄했다. 명나라 중엽 이후로 국사가 폐이(廢弛)했고, 말년에는 유구(流寇)가 소요를 일으켜도 지킬 사람이 없어서 무너지게 되었다. 지금 국가가 하나로 통일이 된 지 이미 100여 년이 되었으니, 전 왕조의 능침(陵寢)을 수리해야겠다. 명나라 세종(世宗)에 대해서는 일찍이 윤전가(尹銓嘉)의 아룀으로 인하여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했으나 다만 명나라가 숭정(崇禎) 때 망하지 않고 만력(萬曆)과 천계(天啓) 때에 망했기 때문에 역대의 제왕 사당 안에는 그 위패(位牌)를 없앴지만 능침에는 그냥 제사를 지내었다. 세종이 비록 재초(齋醮)에 뜻이 빠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만력과 천계 같은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으니, 그 능침에도 일체로 제사를 지냄으로써 공명 정대하다는 것을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리하는 등의 공력(工力)에 있어서는 비록 100만의 내탕고 금을 풀게 되더라도 아끼지 않을 것이니, 이부상서 유용(劉𤨭), 예부상서 덕보(德保), 공부상서 김간(金簡), 시랑 조문식(曺文植), 덕성(德成)을 파견하여 완공하게 하라. 지방관이 마음을 다하여 수호하여 땔나무를 하거나 짐승을 기르지 못하게 엄히 금하라."고 했습니다.

고적(考績)하는 법은 3년에 1고(考)하게 되었는데, 그 조목은 여섯이었습니다. 첫째는 신중히 하지 않은 것, 둘째는 무능한 사람은 모두 파직할 것, 셋째는 재력(材力)이 미치지 못한 것, 넷째는 경망한 사람은 모두 등급을 내릴 것, 다섯째는 병이 난 것, 여섯째는 늙은 사람을 모두 벼슬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적할 때 이름을 점검하며 예를 행하면 연로한 사람은 흔히 수염에 물들인다고 합니다.

후대에도 명나라 멸망의 원인을 신종 만력제 시절부터 찾고, 세종 가정제에게 찾는 경우는 드물다.

5. 대중매체에서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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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권 「방상붕등전(龐尚鵬等傳)」
방상붕 · 송의망 · 장악 · 이재(李材) · 육수덕 · 소름 · 가삼근 · 이이 · 주홍모 · 소언 · 손유성 · 사걸 · 곽유현 · 만상춘 · 종화민 · 오달가
228권 「위학증등전(魏學曾等傳)」 229권 「유대등전(劉臺等傳)」
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첨이선 · 탕개원 · 성용 · 진룡정
259권 「양호등전(楊鎬等傳)」
양호 · 원응태 · 웅정필 · 원숭환 · 조광변
260권 「양학등전(楊鶴等傳)」
양학 · 진기유 · 웅문찬 · 연국사 · 정계예 · 정숭검 · 소첩춘 · 여응계 · 고두추 · 장임학
261권 「노상승등전(盧象昇等傳)」 262권 「부종룡전(傅宗龍等傳)」
노상승 · 유지륜 · 구민앙 부종룡 · 왕교년 · 양문악 · 손전정
263권 「송일학등전(宋一鶴等傳)」
송일학 · 풍사공 · 임일서 · 채무덕 · 위경원 · 주지풍 · 진사기 · 용문광 · 유가인 · 유지발
264권 「하봉성등전(賀逢聖等傳)」
하봉성 · 남거익 · 주사박 · 여유기 · 왕가정 · 초원부 · 이몽진 · 송사양 · 마희 · 왕도순 · 전시진
265권 「범경문등전(范景文等傳)」
범경문 · 예원로 · 이방화 · 왕가언 · 맹조상 · 시방요 · 능의거
266권 「마세기등전(馬世奇等傳)」
마세기 · 오인징 · 주봉상 · 유이순 · 왕위(汪偉) · 오감래 · 왕장 · 진량모 · 진순덕 · 신가윤 · 성덕 · 허직 · 김현
267권 「마종빙등전(馬從聘等傳)」 268권 「조문조등전(曹文詔等傳)」
마종빙 · 장백경 · 송공 · 범숙태 · 고명형 · 서견 · 녹선계 조문조 · 주우길 · 황득공
269권 「애만년등전(艾萬年等傳)」
애만년 · 이비 · 양구주 · 진우왕 · 후량계 · 장령 · 맹여호 · 호대위 · 손응원 · 강명무 · 우세위 · 후세록 · 유국능
270권 「마세룡등전(馬世龍等傳)」 271권 「하세현등전(賀世賢等傳)」
마세룡 · 하호신 · 심유용 · 장가대 · 노흠 · 진양옥 · 용재전 하세현 · 동중규 · 나일관 · 만계 · 조솔교 · 관유현 · 하가강 · 황룡 · 김일관
272권 「김국봉전(金國鳳等傳)」 273권 「좌양옥등전(左良玉等傳)」
김국봉 · 조변교 · 유조기 좌양옥 · 고걸 · 조관
274권 「사가법등전(史可法等傳)」 275권 「장신언등전(張愼言等傳)」
사가법 · 고홍도 · 강왈광 장신언 · 서석기 · 해학룡 · 고탁 · 좌무제 · 기표가
276권 「주대전등전(朱大典等傳)」
주대전 · 장국유 · 장긍당 · 증앵 · 주계조 · 여황 · 왕서전 · 노진비 · 하개 · 웅여림 · 전숙락 · 심진전
277권 「원계함등전(袁繼鹹等傳)」
원계함 · 김성 · 구조덕 · 심유룡 · 진자룡 · 후동증 · 양문총 · 진잠부 · 심정양 · 임여저 · 정위홍
278권 「양정린등전(楊廷麟等傳)」
양정린 · 만원길 · 곽유경 · 첨조항 · 진태래 · 왕양정 · 증형응 · 게중희 · 진자장 · 장가옥 · 진방언 · 소관생
279권 「여대기등전(呂大器等傳)」
여대기 · 문안지 · 번일형 · 오병 · 왕석곤 · 도윤석 · 엄기항 · 주천린 · 장효기 · 양외지 · 오정육
280권 「하등교등전(何騰蛟等傳)」
하등교 · 구식사
281권 「순리전(循吏傳)」
진관 · 방극근 · 오리 · 요흠 · 고두남 · 여언성 · 사성조 · 오상 · 사자양 · 황신중 · 하승 · 패병이 · 유맹옹 · 만관 · 엽종인 · 왕원 · 적부복 · 이신규 · 손호 · 장종련 · 이기(李驥) · 왕영 · 이상 · 조예 · 조등 · 증천 · 범충 · 주제 · 범희정 · 유강 · 단견 · 용사언 · 정적 · 전탁 · 당간 · 탕소은 · 서구사 · 방숭 · 장순 · 진유학
282·283·284권 「유림전(儒林傳)」
범조간 · 사응방 · 왕극관 · 양인(梁寅) · 조방 · 진모 · 설선 · 호거인 · 채청 · 나흠순 · 조단 · 오여필 · 진진성 · 여남 · 소보 · 양렴 · 유관 · 마리 · 위교 · 주영(周瑛) · 반부 · 최선 · 하당 · 당백원 · 황순요 · 진헌장 · 누량 · 하흠 · 진무열 · 담약수 · 추수익 · 전덕홍 · 왕기(王畿) · 구양덕 · 나홍선 · 오제 · 하정인 · 왕시괴 · 허부원 · 우시희 · 등이찬 · 맹화리 · 내여덕 · 등원석 · 공희학 · 안희혜 · 증질수 · 공문례 · 맹희문 · 중어폐 · 주면 · 정접도 · 정극인 · 장문운 · 소계조 · 주천 · 주서(朱墅)
285·286·287·288권 「문원전(文苑傳)」
양유정 · 호한 · 소백형 · 왕면 · 대량 · 위소 · 장이녕 · 조훈 · 서일기 · 조총겸 · 도종의 · 원개 · 고계 · 왕행 · 손분 · 왕몽 · 임홍 · 왕불 · 심도 · 섭대년 · 유부 · 장필 · 장태 · 정민정 · 나기 · 저권 · 이몽양 · 하경명 · 서정경 · 변공 · 고린 · 정선부 · 육심 · 왕정진 · 이렴 · 문징명 · 황좌 · 가유기 · 왕신중 · 고숙사 · 진속 · 전여성 · 황보효 · 모곤 · 사진 · 이반룡 · 왕세정 · 귀유광 · 이유정 · 서위 · 도륭 · 왕치등 · 구구사 · 당시승 · 초횡 · 황휘 · 진인석 · 동기창 · 원굉도 · 왕유검 · 조학전 · 왕지견 · 애남영 · 장부
289·290·291·292·293·294·295권 「충의전(忠義傳)」
화운 · 왕개 · 손염 · 모로 · 왕강 · 왕의(王禕) · 웅정 · 역소종 · 금팽 · 황보빈 · 장영(張瑛) · 왕정 · 만침 · 주헌 · 양충 · 오경 · 곽은 · 손수 · 허규 · 황굉 · 송이방 · 왕면 · 진문시 · 왕부 · 전순 · 주부 · 손당 · 두괴 · 황천 · 왕덕 · 왕일중 · 소몽양 · 장진덕 · 동진륜 · 공만록 · 관양상 · 서조강 · 희문윤 · 주만년 · 장요(張瑤) · 하천구 · 반종안 · 장전 · 하정괴 · 고방좌 · 최유수 · 정국창 · 당환순 · 이헌명 · 장춘 · 염생두 · 왕조곤 · 손사미 · 교약문 · 장병문 · 언윤소 · 길공가 · 형국새 · 장진수 · 등번석 · 장혼방 · 장윤등 · 장광규 · 이중정 · 방국유 · 하승광 · 방유 · 윤몽오 · 노겸 · 공원상 · 왕신 · 사기언 · 양지인 · 왕국훈 · 여홍업 · 장소등 · 왕도(王燾) · 장가징 · 서상경 · 완지전 · 학경춘 · 장극검 · 서세순 · 무대열 · 전조징 · 성이항 · 안일유 · 반홍 · 진예포 · 유진지 · 이승운 · 관영걸 · 장유세 · 왕세수 · 허영희 · 이정좌 · 노세임 · 유인 · 하섭 · 조흥기 · 하통춘 · 진미 · 심길신 · 노학고 · 진만책 · 허문기 · 곽이중 · 최문영 · 서학안 · 풍로운 · 채도헌 · 장붕익 · 유희조 · 왕손란 · 정양주 · 황세청 · 양훤 · 당시명 · 단복흥 · 간인서 · 사오교 · 도임 · 축만령 · 진빈 · 왕징준 · 정태운 · 하복 · 장나준 · 김육동 · 탕문경 · 허담 · 왕교동 · 장계맹 · 유사두 · 왕여정 · 윤신 · 고기훈 · 장요(張耀) · 미수도 · 경정록 · 석상진 · 서도흥 · 유정표
296·297권 「효의전(孝義傳)」
정렴 · 서윤양 · 전영 · 요비 · 구탁 · 최민 · 주완 · 오홍 · 주후 · 유근(劉謹) · 이덕성 · 심덕사 · 사정가 · 권근 · 조신 · 국상 · 왕준(王俊) · 석내 · 사오상 · 주오 · 정영 · 부즙 · 양성장 · 사용 · 하경 · 왕원(王原) · 황새 · 귀월 · 하린 · 손청 · 유헌 · 용사언 · 유자(兪孜) · 최감 · 당엄 · 구서 · 장균 · 왕재복 · 하자효 · 아기 · 조중화 · 왕세명 · 이문영 · 공금 · 양통조 · 장청아
298권 「은일전(隱逸傳)」
장개복 · 예찬 · 서방 · 양항 · 진회(陳洄) · 양인(楊引) · 오해 · 유민 · 양보 · 손일원 · 심주 · 진계유
299권 「방기전(方伎傳)」
활수 · 갈건손 · 여복 · 예유덕 · 주한경 · 왕리 · 주전(周顚) · 장중 · 장삼봉 · 원공 · 대사공 · 성인 · 황보중화 · 동인 · 오걸 · 능운 · 이시진 · 주술학 · 장정상 ,유연연,
300권 「외척전(外戚傳)」
진공 · 마공 · 여본 · 마전 · 장기(張麒) · 호영(胡榮) · 손충 · 오안 · 전귀 · 왕천 · 주능 · 왕진(王鎭) · 만귀 · 소희 · 하유 · 진만언 · 방예 · 진경행 · 이위 · 왕위(王偉) · 정승헌 · 왕승 · 유문병 · 장국기 · 주규
301·302·303권 「열녀전(列女傳)」
정월아 · 제아 · 정금노 · 노가랑 · 탕혜신 · 묘총 · 만의전 · 왕묘봉 · 당귀매 · 양태노 · 정은아 · 두묘선 · 초낭맹 · 호귀정 · 오길고 · 서아장 · 양옥영 · 우봉랑 · 예미옥 · 고형와 · 항숙미
304·305권 「환관전(宦官傳)」
정화 · 김영 · 왕진(王振) · 조길상 · 회은 · 왕직(汪直) · 양방 · 하정 · 이광 · 장종 · 유근 · 장영(張永) · 곡대용 · 이방 · 풍보 · 장경 · 진증 · 진구 · 왕안 · 위충현 · 왕체건 · 최문승 · 장이헌 · 고기잠 · 왕승은 · 방정화
306권 「엄관전(閹黨傳)」
초방 · 장채 · 고병겸 · 최정수 · 유지선 · 조흠정 · 왕소휘 · 곽유화 · 염명태 · 가계춘 · 전이경
307권 「영행전(佞倖傳)」
기강 · 문달 · 이매성 · 계요 · 강빈 · 육병 · 소원절 · 도중문 · 단조용 · 공가패 · 호대순 · 전옥 · 왕금 · 고가학 · 성단명 · 주융희
308권 「간신전(奸臣傳)」 309권 「유적전(流賊傳)」
호유용 · 진녕 · 진영 · 엄숭 · 주연유 · 온체인 · 마사영 이자성 · 장헌충
310권 「호광토사전(湖廣土司傳)」
311·312권 「사천토사전(四川土司傳)」
313·314·315권 「운남토사전(雲南土司傳)」
316권 「귀주토사전(貴州土司傳)」
317·318·319권 「광서토사전(廣西土司傳)」
320·321·322·323·324·325·326·327·328권 「외국전(外國傳)」
조선(← 고려) · 안남(대우후여조막조후여조) · 일본 · 유구(삼산유구) · 여송 · 합묘리 · 미락거 · 사요 · 계롱 · 파라 · 마엽옹 · 고마랄랑 · 풍가시란 · 문랑마신 · 점성 · 진랍 · 섬라 · 과왜 · 삼불제 · 발니 · 만랄가 · 소문답랄(팔석아제) · 수문달나 · 소록 · 서양쇄리 · 람방 · 담파 · 백화 · 팽형 · 나고아 · 여벌 · 남발리 · 아노 · 유불 · 정기의 · 파나서 · 불랑기 · 화란 · 고리 · 가지 · 소갈란 · 대갈란 · 석란산 · 방갈랄 · 소납박아 · 좌법인 · 목골도속 · 불랄왜 · 죽보 · 아단 · 알살 · 마림 · 홀로모사 · 유산 · 비날 · 남무리 · 가이륵 · 감파리 · 급란단 · 사리만니 · 저리 · 천리달 · 실랄비 · 고리반졸 · 알니 · 하랄비 · 기랄니 · 굴찰니 · 사랄제 · 팽가나 · 팔가의 · 오사랄척 · 감파 · 아왜 · 타회 · 백갈달 · 흑갈달 · 불름 · 의대리아 · 달단(북원) · 와랄 · 올량합
329·330·331·332권 「서역전(西域傳)」
합밀위 · 유성 · 화주 · 토로번 · 안정위 · 아단위 · 곡선위 · 적근몽고위 · 사주위 · 한동위 · 한동좌위 · 합매리 · 서번제위 · 오사장 · 아난공덕국 · 니팔랄국 · 타감오사장행도지휘사사 · 장하서어통영원산위사 · 동복한호선위사 · 살마아한 · 사록아해 · 달실간 · 새람 · 양이 · 갈석 · 질리미 · 복화아 · 별실리팔 · 합열 · 엄도회 · 팔답흑상 · 우전 · 실자사 · 엄적간 · 합실합아 · 역사불한 · 화랄차 · 걸력마아 · 백송호아 · 답아밀 · 납실자한 · 매진 · 일락 · 미석아 · 흑루 · 토래사 · 아속 · 사합로 · 천방 · 묵덕나 · 곤성 · 합삼등29부 · 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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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종 묘호는 그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명군에게 부여하는 것이었다.[2] 정확하게는 폐에 물이 차서 염증이 생기는 익수 사고로 죽었다. 심지어 죽었을 당시 아들은커녕 남동생인 울도왕 주후위마저 죽어버린 상황이었던지라 대가 끊겨버린 상황이었다.[3] 단 이러한 불문율이 몇 번 깨진 적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당나라 말기의 무종(조카) → 선종(숙부)의 사례와, 금나라 말기의 장종(조카) → 위소왕(숙부) →선종(장종의 이복형), 고려 중기의 헌종(조카) → 숙종(숙부), 조선 말기의 헌종(조카) → 철종(숙부)의 계승이었다. 단 당나라는 국정을 환관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환관 세력이 즉위시킨 경우였고, 금나라는 이후에 선종이 되는 완안오도보가 서자라 계승권이 없었던 데다가 장종의 다른 동생이나 후계자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고려에서는 반강제적인 양위였고, 조선 철종은 항렬상 헌종의 숙부였지만 나이가 어린 데다가 왕통이 귀해서 가장 가까운 왕족인 철종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철종이 후사 없이 죽은 뒤 즉위한 고종은 철종과 촌수를 따지면 자그마치 17촌이었다.[4] 혹은 대례의분의라고도 한다.[5] 성화제의 4남이자 홍치제의 이복동생이었다.[6] 고(考) 자는 망부(亡父), 즉 '돌아가신 아버지'라는 뜻이다.[7] 이는 조선 시대에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흥미롭게도 인조가 자신의 생부인 정원대원군을 추숭하려고 어거지를 쓴 추숭 논쟁과 매우 닮았다.[8] 《중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이로 인해 죽은 궁녀가 200명이 넘었다고 한다.[9] 세계사는 가볼 것도 없이, 당장 중국사만 봐도 십상시나 왕현충 같이 황제의 총애를 받던 이들이 나라를 쥐고 흔들다가 말아먹은 사례는 차고 넘친다.[10] 이렇게 죽은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동진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였던 효무제는 사랑하던 후궁한테 "네 나이도 이제 30살이구나. 더 젊은 여자를 찾아야겠다."라고 말했다가 질식사당했다.[11] 기실 명나라의 재상이라고 말하는 내각대학사는 원래 황제의 자문 역할을 하던 정5품 정도의 관직이었으나, 태조 홍무제 시기 승상직이 폐지되면서 중요해졌고, 세종 가정제 시기 예우(禮遇)를 1품관인 6부 상서(六部尙書)의 상위에 두면서 사실상 재상이 되었다.[12] 집 안이 깨끗하다, 혹은 집이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잘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집 안에 아예 아무 것도 없다, 즉, 아무 것도 없이 가난하다는 말이었다. 한국어 독음만이 아니라 중국어 발음도 嘉靖과 家淨은 둘 다 jiajing으로 같다. 현대의 중국어 발음과 달랐던 명나라 시대의 중국어 발음으로도 두 단어의 발음이 같았던 모양이다. 《홍무정운》에서도 家는 嘉운, 靖은 淨운에 속하는 동음 글자로 나온다.[13] 서계는 간신이 아니었다. 황제 앞에서 사바사바해서 오래 자리를 보전했다는 혹평이 있기는 하지만, 명재상이라는 호평을 받는다. 또한 명나라 말기인 만력 연간의 대표적인 명재상으로 꼽히는 장거정을 키운 인물이기도 했다. 즉 일종의 멘토인 셈이었다. 물론 장거정도 일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비리 정치인이었지만.[14] 참고로 가정제는 만력제의 할아버지이기도 했다.[15] 수은 같은 중금속은 인체에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장기간 복용하여 몸에 축적되면 신경이 파괴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16] 중국을 플레이어가 아닌 경쟁자가 발견해야 하고(게임상으로는 바스코 다 가마가 발견) 자금성도 스폰서와의 계약으로 발견해야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