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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05:50:32

살랄라

도파르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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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만 살랄라.jpg
살랄라 시내
파일:살랄라 오만 1.jpg
술탄 카부스 (알 호슨) 궁전
파일:살랄라 오만.jpg
위성 지도의 살랄라. 알 카라 산 (도파르 산지) 덕분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린다

1. 개요2. 역사
2.1. 자파르 (알 발리드)2.2. 근현대
3. 갤러리

1. 개요

아랍어 صَلَالَة
영어 Salalah

오만 서남부의 항구 도시. 무스카트에서 서남쪽으로 950여 km 떨어져 있는 반면 서쪽의 예멘과의 국경에서는 불과 100km 떨어져 있다. 도파르 주의 주도로, 인구는 36만명으로 오만에서 무스카트 광역권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이 도시를 비롯하여 예멘 남부를 포함한 아라비아 반도의 남부 해안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드물게 6-9월에 걸쳐 우기가 있다. 이를 ‘하리프’라고 하며, 아라비아 해의 찬물이 용승을 일으켜 수온이 낮아져 인근에서 고온다습한 공기가 유입될 때 안개가 짙게 생기게 된다. 따라서 주변에 황량하던 땅이 모두 푸르른 녹음으로 뒤덮여 아라비아 반도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풍경이 연출된다.영상 그래서 숲과 풀을 구경해보기 힘든 걸프 지방의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많은 강우량 덕분에 시내에는 채소를 기르는 정원이 많아 풍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통적으로 남부 아라비아, 즉 하드라마우트의 동쪽 끝에 위치한 항구였다. 그 입지 조건을 살려 아라비아와 인도, 동아프리카를 잇는 인도양 무역의 핵심 거점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대항해시대 4에도 주요 도시로 등장한다. 도파르 지역의 어원이기도 한 당시 자파르 유적은 도시 동남부 해안에 남아있으며, 살랄라 박물관이 자리한다. 시가지는 해안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서남쪽에는 살랄라 항구, 서북쪽에는 산업 단지가 있고 북쪽에는 살랄라 국제공항이 있다. 현대 오만을 건설한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의 출생지로, 현지 주민들은 그에 대한 향수가 크다. 살랄라 방문기

2. 역사

파일:오만 향료 유적.jpg
카우리 라우리 (숨후람) 유적

도파르 산지가 사막 모래 폭풍을 막아주고, 인도양의 바람이 부딪히는 푄 현상을 일으긴 결과 100km 에 걸친 살랄라 해안은 옛날부터 남부 아라비아 (하드라마우트)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여겨졌다. 도파르 산지 동쪽 끝에는 바오바브나무가 자라는 등 식생도 다양하며, 내륙에서는 예로부터 귀중품이었던 유향이 생산되었다. 손님 맞이나 종교 / 의료 행위 등에 활용되었던 유향은 여러 문명권에서 소중하게 여겼고, 따라서 살랄라 해안에는 먼 옛날부터 유향을 외부 세계로 수출하는 무역항이 생겨났다. 그중 먼저 두각을 드러낸 것은 현 살랄라 시내에서 동쪽으로 30여km 떨어진 숨후람 (카우르 라우리)인데, 기원전 3세기 하드라마우트 왕국이 건설한 이래로 힘야르 왕국 때에 번영하였다. 그리스 인들에게는 모스카 리멘 혹은 아비사폴리스로 알려졌다. 다만 풍요를 보장했던 와디 다르바트 강에 사구가 생겨 항구가 막히자 일대는 5세기 무렵 버려졌다.

2.1. 자파르 (알 발리드)

파일:자파르 오만 1.jpg
자파르 유적지 전경
파일:오만 자파르 유적.png
위성 지도의 자파르 유적지. 동서 길이 1.2km에 달하는 큰 성벽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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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987년

바흘라 요새
قلعة بهلا
1982년

바트, 알 쿠틈, 알 아인 고고 유적
المواقع التاريخية في بات والخطم والعين
1982년

유향의 땅
(프란킨센스 유적)

أرض اللبان
1982년

오만의 관개 시설(아플라즈)
أنظمة الري ( الأفلاج)
1982년

칼하트 고대 도시
مدينة قلهات التاريخية
자연유산
1994년

아라비아오릭스 보호 지역
المها العربية ملج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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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유향의 땅
영어 Land of Frankincense
프랑스어 Terre de l’encens
국가·위치 오만 도파르 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i)[1], (iv)[2]
지정번호 1010

기원 전후 무렵 현 살랄라의 위치에 자파르 항구가 세워졌고, 점차 숨후람을 대체하며 하드라마우트의 주요 항구로 성장하였다. 로마인들에게는 사파라 메르로폴리스로 알려졌고,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에도 등장한다. 쿠란에 의하면 하나님이 선지자 살리흐 (므두셀라)에게 신앙의 증거로 '하나님의 낙타'[3]를 하사하였는데, 그 발자국이 자파르에 남았다고 한다. 현재 시가지 동부에 해당 성지가 남아있다. 이슬람 정복 후 자파르는 알 발리드로 불리게 되었고, 고대와 마찬가지로 중세에도 예멘 기반 왕조들이 지배하였다. 그러던 13세기 초엽 하드라마우트에는 독립적인 군주 하부디가 있었는데, 1222년 그들은 예멘을 통일한 아이유브 왕조가 점령할 것을 우려하여 도시를 파괴하고 북쪽에 알 아흐마다야를 세워 천도하였다. 1227년 하부디가 사망한 후 민주이 부족을 거쳐 13세기 후반 라술 왕조의 지배 하에 발리드는 재건되어 다시 번영하였다.

라술 왕조의 지배 하에 발리드는 전성기를 맞아 예멘 뿐만 아니라 이집트, 인도, 페르시아, 오만, 아프리카인 상인들이 방문하였다. 중세의 내로라하는 여행자들 역시 방문하였다. 1290년에 도시를 방문한 마르코 폴로는 말 등 내륙의 동물들이 집결되어 (아랍 말을 선호하던) 인도 등지로 판매되는 것을 기록하였다. 1329년에 방문한 이븐 바투타 역시 유향과 건어물의 판매로 인한 도시의 번영을 기록하였다. 동시대 중국 서적들에서 발리드는 유향, 용연향, 진주, 몰약, 알로에, 벤조인, 소합향, 낙타, 타조 등 현지 특산물을 판매하는 항구일 뿐만 아니라 상아와 코뿔소 뿔 등 아프리카의 물산이 유통되는 중간 기착지로 묘사되었다. 이중 많은 물품이 비단, 도자기와 교환되어 중국에 유입되었고, 15세기 명나라 대함대를 이끈 정화 역시 이곳을 방문하였다. 이렇듯 발리드는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해상 실크로드 (바닷길)의 중심 항구였고, 인도인과 기독교도 구역이 따로 있었다.

15세기 중반 라술 왕조의 쇠퇴 후에는 카티리 왕조가 지배하였다. 그러던 16세기 카우르 알 발리드 하구에 사구가 생겨 항구가 막히고, 포르투갈오스만 제국의 인도양 패권 경쟁 속에서 현지 군주인 바드르 빈 타와리크가 양측의 탐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역을 금지하는 강수를 두었다. 이로써 발리드는 침공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기득권 층이던 상인들이 빠져나가며 크게 쇠퇴하였다. 남에게 넘기느니 스스로 망하자 주민들은 이익을 위한 상품 작물 대신 생존을 위한 곡식을 제배하기 시작해였고, 서서히 해안보다 경작에 유리한 내륙의 마을들로 이주해갔다. 그중 하나가 살랄라였다. 1590년 일대를 방문한 예수회 선교사들은 발리드가 버려져 피폐해졌다고 기록하였다. 이후 발리드는 인근 마을 주민들의 쓰레기 장이 되었고, 17-18세기 지층에서 전부 부서진 도자기 만이 발견되는 이유이다. 유적으로 변한 알 발리드는 1992년 미주리 주립 대학 고고학팀에 의해 발굴되었다. 알 발리드에 대한 글

2.2. 근현대

파일:오만 살랄라 2.jpg
1985년 세워진 앗 나흐다 (르네상스) 타워

17세기 중반 카티리 조가 쇠퇴하자 자이디 이맘국이 일대를 지배했는데, 곧 오만 제국이 해안을 봉쇄하고 발리드를 장악하였다. 다만 오만은 기존 무스카트를 더 우선시 하였기에 발리드는 쇠퇴하였고, 800m 가량 내륙의 살랄라로 대체되었다. 20세기 들어 살랄라에는 영국군 기지가 있었고, 도파르 지역의 식량은 세계 1차 대전 당시 이라크에서 싸우던 영국군을 보급하였다. 그러던 1932년 오만의 술탄에 오른 사이드 빈 타이무르는 무스카트 대신 살랄라에 알 호슨 궁전을 세워 머물렀다. 동시에 오만 제국의 쇠퇴와 함께 도파르 지역에서는 반외세, 반왕정 저항군이 조직되었다.

이러한 도파르 해방전선은 1962년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술탄 사이드 빈 타이무르는 현지 민병대를 구성해 맞서려 했지만 1966년 오히려 이들에게 암살 기도를 당하자 살랄라의 궁전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였다. 그러자 살랄라에서 태어난 아들 카부스 빈 사이드 1970년 알 호스 궁전을 점거하는 정변을 일으켜 부왕을 내쫓고 술탄이 되었다. 그는 살랄라를 거점으로 영국군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진압하였고, 다시 무스카트로 천도하였다. 다만 2006년 현지 지도자들과 면담을 위해, 2010년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재방문하였고, 몰려든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3. 갤러리

파일:숨후람 오만 1.jpg
숨후람 유적지 1

파일:숨후람 오만.jpg
숨후람 유적지 2

파일:살랄라 오만 이집트 1.png

파일:자파르 오만.jpg
자파르 유적지 1

파일:발리드 오만 1.jpg
자파르 유적지 2

파일:발리드 모스크 오만.jpg
알 발리드 대사원. 10세기에 건설되었고, 144개의 석조 기둥이 있었다

파일:오만 살랄라 1.jpg
하나님의 낙타 발자국 유구


[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2] [3] 낙카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