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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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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편찬 및 저작
3.1. 열녀전3.2. 설원3.3. 전국책3.4. 초사3.5. 칠략(별록)3.6. 관자3.7. 신서3.8. 상서홍범오행전론3.9. 오경통의/춘추곡량전설3.10. 기타

1. 개요

劉向
(기원전 77년 ~ 기원전 6년)

전한 때의 학자. 자는 자정(子政). 한고조의 동생 초원왕의 현손이다. 예주 패국 사람으로 본명은 갱생(更生).

2. 생애

12살 때 아버지 유덕으로 인해 연왕 유단의 낭이 되었으며, 성인이 되자 품행이 훌륭하다고 해서 간대부가 되었다. 유향은 문장을 짓는 것에 뛰어나 부, 송 수십 편을 선제에게 바쳤고 유덕이 회남에서 가져온 책을 어릴 적에 익히고 진기하다고 여겨 황금을 만들 수 있다고 상주해서 상방이 되어 금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실패한데다가 비용이 많이 들어서 관리에게 넘겨졌다가 황금을 위조했다고 탄핵받아 사형 죄로 감옥에 갇혔다.

형인 유안민[1]이 선제에게 글을 올려 봉지의 호수 절반을 조정에 헌납하는 것으로 죄를 대신했으며, 선제도 그의 재능을 훌륭하다고 여겨 형벌을 감형했다. 춘추곡량전에 대한 학관을 설치하자 초청받아 춘추곡량전을 전수하면서 강론했으며, 사황문, 산기간대부급사중 등을 역임하다가 원제 때 소망지, 주감 등의 추천을 받아 산기종정급사중으로 일하다가 소망지, 주감 등과 함께 외척인 허씨, 사씨, 중서성의 환관 홍농, 석현 등이 권력을 휘두르자 그들을 파직시키기 위해 상주하려 했다.

그러나 상주하기 전에 참소당해 감옥에 갇혔고 성제가 즉위하자 기용되어 이름을 향(向)으로 고쳤으며, 중랑에 임명되었고 여러 번 상주문을 올려 광록대부가 되었다. 당시에 성제의 외숙부인 왕봉이 권력을 휘둘렀고 유향은 성제의 명으로 궁중에 소장된 오경의 비서를 맡아 교정하게 되자 홍범오행전론을 저술해 상주했으며, 또한 열녀전, 신서, 설원 등을 저술해 상소했고 성제는 유향의 진언을 다 수용할 수는 없었지만 훌륭하게 여겨 감탄했다.

그는 사람됨이 소탈하고 위엄을 차리지 않았으며, 청렴하고 도를 즐기면서 오로지 경학에만 전념해 낮에는 서적을 읽고 밤에는 별자리를 관찰하느라 아침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유향은 여러 차례 기용받았지만 높은 지위를 차지한 왕씨로 인해 구경이 되지 못했으며, 30여 년 동안 열대부로 있다가 향년 70세에 사망했다.

3. 편찬 및 저작

3.1. 열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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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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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전국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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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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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고(最古) 판본은 후한 안제(安帝) 때 왕일(王逸)은 유향이 엮은 <초사>에 주석을 달고 자신이 직접 쓴 <구사九思>를 넣어 <초사장구楚辭章句>라는 책을 펴냈다. 유향이 엮은 <초사>는 실전되었으나, 이후 왕일의 이 <초사장구>가 지금까지 전해온다.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초사> 주석본이다.

3.5. 칠략(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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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말 성제 시기에 시황제분서갱유로 산실된 도서를 수집하고 이를 교정하라는 칙명을 받은 유향이 본문을 정확하게 대교한 것에서 교수학이 비롯되었다. 그는 대교가 끝난 서적마다 목록 및 해제를 만들어 왕에게 올렸다. 이 해제를 모은 것이 별록이다. 또한, 정리한 해제를 모아 문헌마다 서록(敍錄) 이루어졌으며, 그 기술 방법은 <한서예문지>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유향은 여러 서적을 교열하여 문헌정보학, 서지학에서 쓰이는 서목 제요(書目 提要) <별록> 20권을 완성했다. 이는 <칠략>으로 알려져 있는데, <칠략>중에서 <별록>만 완성하고, 그 작업은 아들인 유흠이 이어서 간소화하여 <칠략>을 완성했다. 현재 <별록>은 실전되었지만 그 일부가 <전국책>과 <순자>등 7편의 서록이 남아있다.

3.6. 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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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향은 당시 전해져 유포되던 <관자> 문헌 564편을 모아서 중복되는 것을 정리하여 86편으로 편집했다. 유향은 86편을 편집하면서 경언, 외언, 내언, 단어, 추언, 잡편, 관자해, 경중 등 크게 여덟 부분으로 구분했다. 86편 가운데 양수시대에 이미 10편이 사라졌고, 송나라 때 「왕언」 편이 사라져서 송대 이후에는 11편의 제목은 있으나 본문은 남아 있지 않고, 75편의 내용만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망실된 것의 상당 부분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전해지는 75편 가운데 그 내용이 편입된 것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 완전히 망실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3.7. 신서

<신서>(新序)는 중국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 유향(劉向)이 편집한 고사집이다. 상고시대부터 한대에 이르는 숱한 사람들의 일화와 고사를 중심으로 한 언행을 기술하였다.

3.8. 상서홍범오행전론

반고의 <한서>「유향전」에서 유향은 상고 이래로 춘추시대와 육국을 거쳐 진과 한에 이르는 시기의 여러 징조와 재이의 기록을 모아 그와 관련된 일들을 추적하고 화복을 연결하며 그 징조와 증거를 정리하여 비슷한 종류로 분류하고 각각 조목을 붙여서 모두 11편으로 엮어 <홍범오행전론>이라 이름을 지어 황제에게 상주하였다.

전해져오는 내용은 복생의 <상서대전(尙書大傳)>가운데 <홍범오행전(洪範五行傳)>은 오행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지만, 유향의 <상서홍범오행전론(洪範五行傳論)>에 의해 오행설(五行說)은 더욱 완비(完備) 되었다. 뒷날 점법(占法)에 영향을 미친 저술이기도 하다.

3.9. 오경통의/춘추곡량전설

<오경통의(五經通義)>, <춘추곡량전설(春秋穀梁傳說)>가 있었으나 유실되었으며 청나라 마국한(馬國翰)의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 속에 각각 1권이 집록되어 있다.

3.10. 기타

<열선전>의 저자로 추정되기도 하지만, 그가 편찬했다고 하는 문언소설인 <열선전(列仙傳)>은 한위(漢魏) 시대의 방사(方士)가 유향의 이름을 가탁한 것이다. 갈홍과 함께 <서경잡기>의 저자로 추정되고 있다. 이외에도 명대(明代) 사람이 그의 작품을 모아놓은 <유중루집(劉中壘集)>이 있다.

이외에 옛날에 전해져 오던 것을 교정하고, 정리를 했다. 순자가 말한 <손경신서>, <세본>, <예기>, <효경>, <효자전> 등.
[1] 아버지의 작위 양성후를 이었다. 송 무제의 선조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