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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08:53:48

손청

孫淸
(? ~ 1177)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고려 중기의 인물. 손청의 난의 주도자.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예산 지역의 토착 성씨인 4개의 성씨 중 하나로 손(孫)씨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예산 지역 호장의 향리 가문 출신으로 추정하고 있다.

2. 생애

1176년 9월 9일에 남적이 예산현에서 군사를 일으켜 감무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손청의 근거지인 가야산이 예산에 있는 것을 고려하면 손청이 예산현을 함락했다고 할 수 있다. 11월 1일에는 병마사를 자칭했다.

1177년 2월 29일에 우도병마사의 공격으로 가야산에서 붙잡혀 처형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예산의 민란 지도자로 공주에서 민란을 일으킨 망이의 세력과 연합하는 것으로 나오며, 공주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고려 조정에서 선유사를 파견하기로 한다. 손청은 망이에게 선유사를 파견하면서도 바닷길로 진압군 3천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조정에서 망이의 뜻을 살피면서 방심한 틈을 보내 뒷통수를 치려는 것이라며 군사 천 명을 빌려달라면서 자신이 쓸어버리겠다고 한다.

망소이와 함께 선발대로 나서서 밤 중에 정황재가 이끄는 진압군을 격파하지만 조정에서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하고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하자 손청은 조정과 화친하는 것을 반대하고 조정의 약조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망이가 백성들을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없다는 말에는 손청은 진압군을 이기지 못할 것은 알고 화친을 하면 백성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후손들은 조정의 횡포로 인해 죽은 목숨보다 못하게 살 것이라며 예산 백성들은 모조리 죽는다고 해도 개처럼 살지는 않겠다면서 조정의 군사와 싸우기로 하고 망이와 갈라선다.

조정의 직위를 낙향하고 예산에서 머물고 있는 경대승, 김자격을 조정에서 보낸 밀정으로 의심하고 잡아들이고 추궁하며, 경대승의 증언을 듣고 밀정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후환을 없애기 위해 참수를 지시하지만 예산 백성인 머루의 할아버지가 그를 구명해주자 풀어준다.

망이가 고려 조정과 교섭을 하기 위해 직접 조정으로 찾아간 사이에 정세유의 군사가 예산을 공격해 백성들을 도륙하며, 손청도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우지만 패하면서 퇴각한다. 죽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조정의 군사에게 추포되어 참수되었다는 언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