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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03:41:30

서위

중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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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 | Wei Dynasty
파일:동위-남량.png
지도의 진한 주황색 부분 (542년 기준)[1]
535년 ~ 557년
<rowcolor=#ece5b6>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북위북주
별칭 서위(西魏)
위치 중국 화북 서부
수도 장안(長安)
면적 980,000km²
인구 12,000,000명
민족 선비족, 한족
언어 중세 북방 중국어, 탁발 선비어[2], 한문
문자 한자
종교 대승 불교, 유교, 도교
화폐 오수전
정치체계 전제군주제 (명목상)
승상제 (실질상)
국가원수 황제
정부수반 승상
국성 하남 원씨
주요 황제 중종 문황제 (535년 ~ 551년)
주요 승상 우문태
현재 국가
[[중국|]][[틀:국기|]][[틀:국기|]]

[[몽골|]][[틀:국기|]][[틀:국기|]] (일부)
1. 개요2. 상세3. 역대 황제

[clearfix]

1. 개요

서위(西魏)는 535년부터 557년까지 존속했던 중국의 나라이다. 내몽골 서부와 중국 서부 내륙지역에 걸쳐 있었던 나라였다. 짧은 존속기간 동안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554년 남조에게서 사천 (촉)을 정복한 바가 있다. 물론 이것도 서위 황실이 아닌 권신 우문태의 공이긴 하다.[3]

2. 상세

육진의 난을 진압을 한 뒤에 선비족의 이주영(爾朱榮)이 득세하게 되었다. 이주영의 세력에는 휘하에 고환(高歡), 우문태(宇文泰), 후경(侯景) 등이 있다. 허나 이주영은 이후 530년 궁중 암투로 인해 효장제에게 암살당하였고, 조카 이주조(爾朱兆)가 복수를 내세워 군을 일으켜 효장제를 살해하고, 장광왕 원엽(元曄)을 옹립한다. 그러나 방계로 가치가 없었던 원엽은 531년 이주세륭(爾朱世隆)에 의해 폐위되었고, 절민제(節閔帝) 원공(元恭)을 옹립하였다. 위에서 적은 후경은 우문태가 자신을 받아주지않자 서위를 배신해서 양나라에 붙는다.

이에 반발한 하북 각지의 명족들이 이주씨에 대한 반항 운동을 시작했고, 과거 휘하 장수였던 고환과 연계하여 원랑(元朗)을 추대하며 연합 정권을 수립하였다. 532년 연합군은 을 점령하였고, 이주조는 토벌군을 보냈으나 한릉산 전투에서 대패하였다. 낙양마저 연합군에게 함락당하였고, 이주씨는 소멸되었다. 낙양에 입성한 고환은 이주씨가 세웠던 절민제(전폐제)와 과거 옹립하였던 원랑을 함께 폐위시키고, 새로 효무제를 옹립시켰다.

고환은 진양에서 마음대로 북위 조정을 주물렀다. 효무제는 고환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낙양에서 탈출하여 장안으로 도망가서 우문태(宇文泰)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이에 고환은 황족 원선견(元善見)을 추대하게 되면서 화북 지역에는 효무제를 받아들인 우문태 세력과 효정제 원선견을 옹립한 고환 세력으로 동서로 대치하게 되었다. 그 결과 북위는 고환 휘하의 동위(東魏)와 우문태 휘하의 서위(西魏)로 분열하게 되었다. 고환은 수도를 동쪽의 업(鄴)으로 옮겼고, 옛 북위의 수도였던 낙양은 양국가의 최전선 지대로 바뀌며 잿더미가 되었다. 이는 북위의 몰락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동위와 서위는 여전히 원씨들이 황제였으나, 둘다 고환과 우문태의 꼭두각시 내지 허수아비 황제들이었으며, 동위와 서위는 각각 북제북주가 정식으로 건국되기 전의 프로토타입에 불과했다.

건국 후 동위처럼 우문태가 화주에서 모든 정사를 휘둘렀다. 535년 도망온 효무제와 사이가 틀어지자 효무제를 독살하고 새로 문제(文帝)를 옹립하였고, 서위가 건국되었다. 556년 우문태가 죽자 아들 우문각(宇文覺)이 후계자가 되었다. 그러나 실권은 사촌인 우문호(宇文護)가 가지고 있었으며 556년 우문호에 의해 공제(恭帝)가 우문각에게 선양하면서 북주(北周)가 건국되었고, 서위 정권은 31년만에 멸망하게 되었다.

3. 역대 황제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북위조 비정통
(자립)
- 문경황제(文景皇帝)[4] 원유(元愉) 건평(建平) 508년 508년 -
1대 중종(中宗) 문황제(文皇帝) 원보거(元寶炬) 대통(大統) 535년 ~ 551년 535년 ~ 551년 영릉(永陵)
2대 - 폐제(廢帝) 원흠(元欽) - 551년 ~ 554년 -
3대 - 공황제(恭皇帝) 원곽(元廓) - 554년 ~ 557년 -


[1] 554년 사천 정복[2] 몽골어족이나 튀르크 어족에 속했다고 여겨지는 언어이나 사용자가 없는 사어이기에 둘다 정설에 이르지는 못한 상황이다.[3] 조위 정권 말엽 사마소가 촉한을 정복한 것과 비슷하다[4] 서위 문제에 의해 추존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