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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22:34:32

삼국지연의/수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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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三國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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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지연의》는 원형인 삼국지평화 등의 이전 작품에 비해서 사서 내용을 상당히 많이 참고해서 반영했지만, 어쨌든 역사서가 아니라 군담 소설이므로 흥미를 끌기 위한 과장이나 각색 등이 많이 덧붙었다. 더구나 당대의 주요 사서인《정사 삼국지》가 조위정통론을 따르는 반면, 이 소설에서는 유비가 주인공이고 촉한정통론의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기 때문에 《정사 삼국지》와는 다르게 취급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민중에게 어필하기 위한 소설이기 때문에 이런 띄워주기와 낮추기는 당시 민중의 생각과 큰 연관이 있다. 이전에 나온 삼국지평화와 차별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도 있으며, 나관중의 개인적인 취향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에 따라 전반적으로 촉한의 활약자들, 특히 연의의 주역 선역인 관우제갈량이 많은 버프를 받았다. 해당 두 인물의 경우에는 실제 역사서에서도 먼치킨적인 인물들이었으므로, 버프가 그렇게까지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으나, 저 둘의 직접적인 버프보다 중요한 건, 저 둘을 띄우기 위해 수많은 인물들이 버프, 혹은 너프를 받은 것으라 하겠다.

반대로 연의의 주인공인 유비의 경우엔, 소설이 쓰여질 당시의 기준으로는 이상적인 군주상에 맞추어져 분명 수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세대에선, 이상적인 군주상이 바뀜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연의에서의 캐릭터 변화로 인해 오히려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장수들의 "전사(戰死)"에 대해서도 피해인가 아닌가를 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재중동포 작가 리동혁은 《삼국지가 울고있네》라는 책에서 고대 군담소설에서는 장수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것을 오히려 명예롭게 보았다고 쓰고 있다.[1] 실제 역사와 다르게 전사자로 처리된 서황, 태사자 등이 이러한 경우다.

2.

2.1. 가후

실제로도 뛰어난 책사였으나 정사에는 없던 군사적 활약이 추가되었다. 이각 4인방을 도와 장안성 밖으로 여포를 끌어내거나 마등과 한수를 물리칠 계책을 내주는 모습, 장수 휘하에서 조조의 성동격서를 간파하고 역으로 매복을 가하는 모습은 연의의 창작이다.

사실 가후는 삼보의 난을 부추킨 인물로 자신의 보신을 위해 후한을 멸망시킨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삼보의 난의 영향 자체가 매우 축소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의 생존을 위해 이각을 도왔지만, 헌제를 보호하고 탈출을 도왔다는 점 덕분에 나관중에게 용서를 받았는지 헌제와 단 둘이 대면해 위로하는 장면도 추가돼서 인간성 면으로도 피해를 전혀 받지 않았다. 촉한과 엮이는 오나라 책사들이 능력이나 인간성 면에서 피해를 본 것과 대조적이다.[2]

2.2. 곽가

곽가가 죽자 조조가 "곽가만 있었더라면 대업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탄식하는 장면으로 설명 끝. 과장 좀 보태서 묘사만 놓고 보면 유비에게 제위를 권유받은 제갈량에 버금간다.[3] 같은 모사들 중에서도 젊은 피에 속하다보니 변칙적인 계략을 펼 때가 많고, 그러다보니 조조의 뒤를 이을 천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순유의 공적 상당수와 조조군 no.2 참모 이미지를 빼앗다보니, 창작물에서의 순유는 투명라인이 돼버렸다. 또한 전략적 식견 면에서는 주군인 조조와 순욱의 공도 빼앗아 버렸다. 그냥 곽가 하나 때문에 대부분의 위나라 참모들이 조금씩 너프 당했다고 보면 될듯.

엄밀하게 따져서 조조군에서 내정과 대전략에서는 순욱이고 군략에서는 순유가 원탑이었으나, 곽가가 대전략과 군략 두 분야에서 지나친 버프를 받아 순욱은 그냥 집 지키는 정치가가 되었고 순유는… 오죽하면 연의에서 순욱의 비극적이고 각색된 최후는 알아도 순유가 계책을 내는 장면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정욱과 유엽을 제외한 다른 참모들 모두 너프당했지만 순유의 너프가 가장 심각하다.

2.3. 방덕

마등의 부장으로 그를 보좌했으며 마등의 아들인 마초가 출병했을 때도 함께 했다. 연의에서는 용감하면서도 지혜를 쓸 줄 아는 지용겸비의 호걸로 등장, 계책을 써서 장안성을 우려빼는 포스를 보인다.[4] 그렇게 조조군의 여러 장수와 연달아 일기토를 뜨면서 조조군을 괴롭혔으나 조조의 계책에 휘말려 배신자로 잠깐 몰렸고, 이후 일부러 약점을 내보이며 행차한 조조를 붙잡아 충성심을 보이려 했으나 함정에 빠져서 조조에게 투항한다.

이후 형주에서 관우와 용호상박의 대결을 펼치며, 연의에서 군신(軍神)으로 여겨지는 관우를 유일하게 일기토로 바른 인물이다. 정면 승부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자 타도계를 쓰는 척하다가 화살로 기습공격하여[5] 관우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데, 목까지 벨 수 있었으나 공을 빼앗길 것을 걱정한 우금이 징을 쳐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한다. 어쨌든 관우에게 화살을 날려 이마를 맞춘 것은 사실이지만 연의에서는 치명상이라고 생각했는지 팔뚝으로 바뀌었다. 정작 임팩트는 엉뚱하게도 무마취 수술을 시행한 화타와 관우가 다 가져간다.

결국 전투에는 패해 관우에게 사로잡혔지만 끝까지 절개를 지켜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다. 몇몇 삼국지 판본에서는 정중하게 자신의 휘하로 들어올 것을 권유하는 관우에게 "관공도 위왕께 있었을 때 결국 한중왕에게 돌아가지 않았소? 나 역시 놓아주면 그럴 뿐이오"라고 말하고 관우가 감탄하면서 이런 호걸은 일개 도수부의 손에 보낼 수 없다며 손수 목을 치는 전개도 있다. 정사에선 관우의 정중한 권유에 쌍욕으로 대응했는데[6] 그에 비하면 확실히 품격있는 최후를 맞은 셈. 반대로 정사 쪽을 따라 관우가 회유했으나 쌍욕으로 받아쳐서 관우가 열받아 목을 베는 판본도 있다. 한편 우금은 나중에 조비가 찌질하게 복수하는 것과 연결짓기 위해서인지 어느 판본에서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주인인 마초에 뒤지지 않는 영웅으로 묘사되며 충의를 아는 그야말로 의기의 남아로 그려진다. 정사의 기록도 연의와 별반 다르지 않으나 연의에서의 군공은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다. 연의에서는 관우를 안드로메다 일보직전까지 보내지만 우금의 시기로 인해 공을 놓치고 만다. 관을 메고 출전하여 "관우 아니면 내가 이 관에 들어가리라."고 떵떵거리는 식으로 비장함이 강조되기도 했다. 결국 그 관에 자기가 들어갔지만. 방덕이 무용이 뛰어나고 새로 섬긴 주인인 조조에게 충성을 바친 건 사실이나 조조군의 웬만한 용장들보다 뛰어나게 묘사된 용맹이나 관우에 맞서 처절하게 고군분투하는 묘사는 연의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관우와의 일기토나 하후연, 장합, 허저, 서황과 차륜전을 벌인 것은 물론 허구다. 하지만 평양에서 원상군의 상장 곽원을 직접 벤 것은 사실. 정사에 단 3명 등장하는 일기토 승리자 중 한 명이다. 관우와의 싸움에서도 불리한 처지에서 끝까지 용감히 싸우다가 사로잡혔다. 확실히 정사에서도 대단한 용장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2.4. 사마의

제갈량연의에서 엄청나게 주인공 버프를 받았기 때문에 사마의도 그 라이벌로 대우를 받아 혜택을 많이 입었다. 조진, 장합, 곽회 등에게 돌아가야 할 공로를 몽땅 몰아줬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자세한 내용은 삼국지연의/피해자 조진, 장합 문단 참고.[7]

정사에서는 일단 처한 위치가 달랐고[8] 제갈량과의 정면 전투는 전부 패했다. 그런데도 사마의가 제갈량에 견줄만한 라이벌로 여겨지는데는 연의의 역할이 크다. 물론 많이 나온만큼 굴욕씬도 많이 찍었다. 공명에게 여자 옷을 선물받으며 겁쟁이 미망인 취급을 당하는 식으로 굴욕을 겪거나,[9][10]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내었다가 대표적인 일화.

그러나 나관중의 창작 덕분에 제갈량의 북벌은 전반적으로 전투에서는 제갈량이 이겼으나 전쟁에서는 사마의가 이겼다는 식으로, 혹은 몇몇 접전에서 사마의가 완승을 거뒀다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 외에 상방곡에서 위연과의 일기토에서 위연이 진 척하고 도망가는데 의심조차 하지 않고 추격했다는 대목 때문에, 연의에서 사마의를 무력도 최상급인 인재로 설정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11] 이게 게임에도 반영된건지 삼국지 시리즈 등에서 사마의가 먼저 일기토를 거는 경우가 꽤 자주 나온다.

2.5. 서서

삼국지연의에서는 군략에 능한 군사로 등장한다. 조인의 팔문금쇄진을 간파하여 격파하고 번성까지 함락시키는 대활약을 펼치고 이후 정욱의 계략 때문에 유비의 곁을 떠난다. 조조에게는 어떤 계책도 주지 않을 것임을 맹세하고 떠나기 직전엔 제갈량을 추천해주며 적벽에서는 방통의 충고를 듣고 양주 방면 방비를 핑계로 미리 빠져나간다.

실제로는 장판파 전투 이전까지 제갈량과 함께 일했으며 유비의 곁을 떠난 이유도 정욱의 계략 때문이 아니라 장판파에서 피난 중에 어머니가 조조군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팔문금쇄진이나 적벽의 일화 등은 전부 허구이며 애초에 정사에서는 제갈량을 추천했다는 것과 어사중승 자리까지 올랐다는 것, 제갈량이 그의 의견을 높게 평가했다 정도의 기록밖에 없어서 군사쪽 재능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서서의 방촌지지 일화를 보면 서서가 단순한 문관이 아닌 책사로서의 면모가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군사 전략에 능했는지는 해당 기록만 봐선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당시 유명한 격검의 달인이었고,[12] 한미한 가문에서 태어나 문벌귀족 국가인 위나라에서 자수성가하였으며, 제갈량이 높이 평가한 것을 보면 최소한 능력은 있었던 듯 하다.

어째선지 위나라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측 촉한의 보정을 받은 특이한 케이스인데, 아마도 제갈량의 삼고초려를 끌어내는 과정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하기 위한 설정이라는 목적이 개입된 것이 아닐까 싶다.

2.6. 왕쌍

조인의 부장 상조의 지휘 아래에서 주환이 지키고 있는 유수오를 공격했다가 붙잡혀서 무창으로 보내졌다. 언제 위나라로 다시 보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갈량의 2차 북벌 때 다시 나타났는데 진창성에서 학소에게 막혀 퇴각하는 촉군을 추격하던 중 적의 반격을 받아 전사한다. 정사의 기록은 이것으로 끝.

삼국지연의에서는 엄청나게 존재감이 상승하여 조진이 추천하는데 키가 아홉자에 60근이 넘는 대도를 위두르며 유성추를 잘 다루고 대완마를 타고 다니니 믿음직해 보여서 조예가 호위장군[13]에 임명해 제갈량과 싸우고 있는 학소를 구원하러 가기 위해 출진한다. 적도(狄道) 출신이며 자는 자전(子全)이라고 나오지만 정사 삼국지에는 그의 출신에 대해서 전혀 나와 있지 않다.

때마침 학소한테 촉군이 발리고 있을 때 원군으로 등장하면서 촉군에서 사웅, 공기를 보내자 이들을 죽였으며, 장억도 부상을 입힌다.[14] 이에 촉군은 사기가 꺾이게 되면서 결국 제갈량은 퇴각하지만 그 뒤를 쫓던 왕쌍은 복병에 걸려 위연에게 죽고 만다.

특이한 이름에다가 엄청난 포스로 등장해 대단한 활약을 하고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서 죽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실제로는 매우 별 볼 일 없는 이력의 장수임에도 제갈량에게 죽었다는 이유 때문에 엄청난 맹장으로 각색됐다. '봐라, 제갈량이 이런 대단한 장수를 잡았다!' 라는 식의 버프인 듯. 더불어 위연도 원님 덕에 나팔 좀 불었다.

전체적으로 양민학살하다가 네임드에게 썰리는 화웅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2.7. 유엽

정사에서는 참모지만, 가후보다 더 늦게 들어왔고 조조의 생년 후반부부터 두각된 인재이다. 연의에서는 순욱의 다단계 추천으로 곽가가 천거하여 들어온 것으로 나온다. 조조가 진궁의 계략으로 전씨의 거짓 투항에 속아갈 때 이를 저지하는 것으로 시작으로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강노 부대로 조조를 압박하자, 발석거를 개발하여 원소의 전술을 무력화시켰다. 이 발석거는 원소 군대에서 '벽력차(번역하면 벼락수레)'라 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곽가하고 친한 기록도 없고 조조군이 발석거를 쓴 기록도 없고, 원소의 강노 부대를 견제한 적도 없다.

이렇게 관도대전 중에 발석거를 발명해 원소군을 물리친 연의의 에피소드 덕분에 삼국지 관련 2차 창작물에서 공돌이 이미지가 붙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유엽이 포차계로 나오는 삼국지 조조전. 퇴각 대사마저도 "연구가 충분하지 않았군. 돌아가서 개량해야겠다!"이다. 삼국지11에서도 병기 적성 S, 특기는 사정(정란, 벽력차 사정거리 1 증가)을 보유하고 있다.

2.8. 이전

정사에서 학문을 좋아하고 주도적으로 활약하기보다 묵묵히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성실한 군인이었지만 연의에서는 한층 더 나아가 침착한 지장의 모습이 강해졌다. 거기에 숙부인 이건과 사촌 이정의 활약까지 대신 소화하면서 실제보다 더 오래 조조군에서 활약한 최고참급 경력자가 됐다.

박망파에서 하후돈에게 계략을 경계하여 조심해야 한다는 일화도 충실히 나왔고, 장판파에서는 유비를 다시 추격하려는 조조에게 복병이 정말 있을 수 있다는 조언을 하는 오리지널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조조군 초창기 때 황건 잔당을 이끌던 황소를 사로잡거나 합비 공방전 때는 송겸을 사살하고, 2차 합비 공방전 때 사이가 좋지 않던 장료와 극적 화해를 하며 합심하여 오를 막아내는 등[15] 긍정적인 묘사가 많다. 장료와 곽가가 나관중의 버프를 화려하게 받은 위나라 인물이라면, 이전은 드러나지 않게 버프받은 인물이다.

2.9. 장료

일단 정사나 연의를 막론하고 장료가 위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힐 정도로 군사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명장이었던 것은 사실이다.[16] 거기서 그치지 않고 관우와 엮인 덕분에 인격적으로 상당히 우대를 받았다. 또한 위나라의 주요 장수들이 줄줄이 너프되는 탓에 반사적 효과를 받아 위나라의 대표 무장격이 되었다. 실제로는 조인이나 우금의 공적은 장료에 전혀 뒤지지 않고 오히려 상회한다 봐도 무방하다.

백문루의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나관중의 창작으로, 정사에서는 여포가 패망한 이후에 잔당을 인솔하여 조조에게 투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연의에선 끝까지 맞서 싸우다가 사로 잡혀서 끌려간 백문루에서 조조를 역적이라고 욕하다가 분노한 조조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관우유비가 조조에게 장료는 충의지사이니 살려달라고 청하여 살아남고 조조군의 장수가 된다.[17]

실제로도 관우와는 친우관계를 가졌던 까닭에 백마 전투 이후 조조가 그를 시켜 관우의 속을 떠본 것[18]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백문루에서 장료의 목숨을 살려주거나 하비에서 세 가지 죄[19]를 내세워 항복을 권유한 것은 모두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다.

여기에 서황이 더해져서 세 명이 제법 친하게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연의에서도 이후 방덕이 목숨을 잃자 서황이 대신 관우를 잡으러 가는 내용이 나오며, 서로 적국의 장수로서 대치하는 와중에 긴 시간 사담을 주고받다가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에 관우가 당황하는 묘사가 나오는데, 서황은 "사사로운 인정으로 나랏일을 그르칠 순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 장면은 정사에도 나오는 기록이다.

다만 관우에게 희석되어 장료 본인의 캐릭터가 흐릿해지는 경향도 있다. 다소 비판적으로 보면 관우 추종자 1로 보이기까지 할 정도.

2.10. 장호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쪽도 아버지의 덕을 받았다. 정사에서는 편장군으로 임명되었다는 기록외에는 행적이 없지만, 연의에서는 대릉, 악침과 같이 세트로 다니는데 이 둘에 비하면 비중이 크고(…) 오의의 동생인 오반을 죽이고, 공손연의 난에서 선봉으로 활약했다는 행적으로 본다면 연의의 수혜자다.[20] 다만 대릉, 악침과 세트로 다니다보니 진법 싸움에서 제갈량에게 포로로 잡히는 등, 피해를 입기도 한다.

2.11. 정욱

연의나 정사나 뛰어난 모사지만, 연의에서 참가한 적이 없는 창정전투에서 "십면매복계"로 원소군을 몰살시키는 활약도 하고, 서서의 어머니에게 동향 친구인 척 접근해 호의를 얻고 필적을 베껴서 서서를 속이고, 화용도에서 관우에게 은혜를 입은 것을 강조해서 관우가 조조를 놔두게 만드는 등 곽가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수혜를 받았다. 모사들 중에서 적벽가, 영화 적벽대전을 비롯한 적벽대전을 다룬 창작물들에서는 당시 조조의 책사로 자주 등장한다. 아니, 자주 정도가 아니라 적벽대전 시점이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책사로 등장한다.

다만 통찰력은 있지만 나쁜 품성이 두드러져 인정조차 이용하는 비정하고 냉혈한 이미지로 그려져서 이미지가 약간 손해봤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욱의 최대 논란거리인 인육 문제가 언급되지 않아서 이 정도로 끝난 게 오히려 다행일지도?

3. 촉한

3.1. 강유

막내 아이돌이다. 제갈량 사후 사실상 삼국지연의의 주인공 계보를 이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제갈량 사후부터는 대충 넘겨버리는 각종 연의 매체들 때문에 대부분의 인물들은 인지도가 바닥이지만 그나마 강유는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원래 유능한 사령관이지만, 연의에서는 더 부풀려져 상향받은 부분이 많은 편이다. 연의에서는 삼국지 최고의 문무겸장 포지션이지만, 실제 강유는 순수한 무장, 사령관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본인이 정현의 학문을 사사했고 20대 시절에 위, 촉에서 문관직인 창조연을 맡았다는 것을 보면, 군정이나 문관으로서의 능력이 탁월했던 것은 맞겠지만, 강유는 항상 최전방인 한중에서 틀어박혀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군사적인 부분에만 치중했을 뿐이다.

첫 등장인 천수전에서 제갈량의 계책를 파악하고 조운과 일대일 전으로 조운이 쉽게 이길수가 없는 무력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화공책으로 제갈량을 털어버리는 등 문무 양쪽으로 S급 능력을 발휘한다. 그 덕에 제갈량에게 알려져서 멍청한 상관인 하후무를 통해 제갈량에게 포박당해 귀순하게 된다.

그 후 서강군 및 비요와의 대결[21]에서 진언를 하는 제갈량의 참모로 등장하고, 그 후 행적은 정사와 같지만 사마사에게 연노맛을 쪼끔 맛보이고 사마소를 철릉산에서 포위해 리타이어 직전까지 가게하고 등애를 여러 번 이기는 활약를 떨쳤다.

다만 역사대로 흘려가서 등애의 모략으로 인해 어쩔수가 없이 퇴각하고 트롤러 종결자인 황호의 모함까지 더해 북벌을 거의 성공하다가 뭔가 아쉽게 되어서 실패하는 느낌으로 처리되었다. 그 후 행적은 정사와 같다. 다만 종회 부분은 강유쪽이 유리하게 서술되어서 이쪽도 역시 수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강유를 대장군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염우로 대체하려던 움직임은 연의에서 황호의 농간으로 나왔지만, 정사에서는 동궐, 번건 등의 대신도 참여하였다. 이들은 간신배 소리를 들을 인물도 아닌지라 이들과도 대립각을 세운 건 논란이면 논란이었지 절대 좋은 일은 아니다. 강유가 위연처럼 성격에 문제있었다는 언급은 없지만 아마도 무리한 북벌 정책을 무모하게 몰아붙이는 게 반대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정사에서는 유능한 인물은 맞지만 귀순할 때 연의처럼 싸운게 아니라 천수의 태수 마준이 도망가버려서 어쩔수가 없이 투항했고, 제갈량의 북벌 당시엔 오장원에서 참전할 때를 제외하면 내정하느라 서촉땅에 있었으며, 강유의 북벌에서는 1, 2차에서 곽회에게 진격이 막히고 등애에게 여러 번 이기는커녕 호제와 연계해 단곡에서 등애를 공격하려다가 호제가 미처 도착하지 못해 전투에서 털렸다.

그래도 북벌에서 이긴 전투는 있긴 하다. 이간의 투항을 받아들인 2차 북벌에서 장억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서질전에서 서질을 죽이는 전공을 올리고 연의든 정사든 크게 승리한 적도 있다. 연의와 달리 이 전투는 등애도 적도를 강유에게 내주라고 포기할 정도의 압세를 떨쳤다. 물론 3차는 말했다시피 장억이 전사하고 이간이 바친 금성의 지리가 좋지 않았고, 4차는 진태의 계책으로 인해 어쩔수가 없이 퇴각하지만. 화양국지에 따르면 위장군이 된 직후 곽회와 하후패를 이긴 기록이 존재하지만 연의에선 다루지 않아서 정사와 같이 우두산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고 이후 곽회를 죽여 설욕하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조운과의 일기토는 연의 한정이라도 강유의 무력이 실제로 뛰어났다는 기록은 정사에도 있다. 종회와 손 잡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을 때 63세의 나이에 위군 5~6명을 손수 죽였다는 기록이 버젓이 남아있다. 유비가 병들어 죽고 조조가 골골거리던 나이에 이 양반은 절륜한 무예를 보였다. 그런데 연의에서는 이 간지와 비장미가 넘치는 일화가 삭제되고 단순히 자결한 것으로 처리됐다....[22]

3.2. 관우

나관중을 비롯해 세대를 거듭하며 재창조된 중국을 상징하는 아이덴티티이며, 넓게는 동양문화권 전체에서 의리와 무(武)의 화신[23]이라 불린다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다. 항우와 함께 무의 아이콘으로 꼽히기도 한다. 기실 정식 역사서에 기록된 관우의 기록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세간에 알려진 관우의 캐릭터는 연의에 의해 창작된 것들이 많다. 흔히 연의관우하면 떠올리게 되는 굳센 충의와 고아한 인품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형성한 세세한 에피소드들은 나관중이 만들어낸 허구성이 짙다. 관우의 의를 대표하는 장면들은 각색이 더해진 것.[24]

물론 관우는 연의가 만들어지던 시점에서도 이미 민간 설화에서는 상당한 인기인이었다. 다만 일단 관우의 명성 자체를 널리 퍼뜨린 건 연의가 주된 매체이고, 나관중이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을 한건 분명한 사실이다. 즉 종합하자면 관우의 이미지를 나관중이 다 만들었다는 주장은 어폐가 있으나 그렇다고 기존에 있던 민간 이미지를 집대성 시킨 것 뿐이므로 '관우가 연의의 수혜자가 아니다' 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해당 항목에 있기는 하지만 실제 아래에 있는 모든 사항은 연의 이전에도 있었던 시각임을 유의하자.

다음은 연의에서 관우의 인품과 행적을 미화하기 위해 창작되었거나 삭제 혹은 변경된 장면들이다.
다만 정사에서는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삼국시대 최강의 무장이나, 연의에서는 여포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고 묘사에 따라서는 장비 다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부분은 너프다.

다음은 정사와 연의에서 각각 묘사된 관우의 무예를 교차 검증한 것이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연의에서 그려지는 관우의 일기토 싸움들 중 경합으로 묘사되는 장면들은 사실상 전부 허구이다. 여기에 삼국지 정사에서는 일기토 사례들이 전 장수들을 통틀어도 거의 한 손에 꼽을 정도였었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관우의 개인 무력은 한 무력하는 웬만한 무장들은 일기토로 적장 1명쯤 처치하는식으로 데뷔하는 경우가 널린 연의보다 오히려 정사에서 더 높게 평가 되어 진다. 행적과 성품의 묘사에선 연의의 최대 수혜를 받았지만, 정작 본업인 무예에서는 정사에도 안나오는 일기토 경합 장면들이 창작되어 연의에 등장하는 바람에 피해를 봤다는 점은 아이러니.

아울러 정사에서의 관우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유비군의 초창기 시절부터 적국의 모사들로부터 만인지적이란 소리를 공공연히 들었으며 범같이 용맹한 장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관도대전에서는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가 안량을 베어버렸고, 이때 원소군 장수들이 관우 한명을 당해내지 못하여 백마의 포위가 저절로 풀렸다고 정사에 기록될 정도였다. 또한, 번성 공략 당시 7군 수몰로 명성이 천하에 퍼져 잘 나갈 때는 그 조조조차도 관우를 피해 수도를 옮기려 할 정도였었다고 하니 확실히 당대 최고의 명성을 얻은 용장이었다.

관우의 충의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원래 이름 높았던 관우의 충의에 더더욱 포장을 해놨기 때문에 연의에서 수혜를 입었다고 하는 것일뿐, 아예 충의가 없었던 장수인데 미화가 되었다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연의의 오관참장은 허구이나, 실제로 당시 조조 진영에서의 약속된 부귀영화를 버리고 객장 노릇이나 하던 유비를 찾아간 건 실제 있었던 일이다. 즉, 나관중은 후한의 이 의기높은 무인을 재해석하여 천하에 이름을 떨친 충의지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재창조된 그의 이미지는 중국인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었으며, 중화를 대표하는 모범적인 캐릭터로서 피지배 계급과 이민족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되었다.

결국 관우의 충의에 대한 사실을 정리해보자면, 평생 유비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것이 확실하며 삼국시대 최고의 용장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후세에 의해 재창조가 덧씌워졌을지언정 관우의 의(義)나 무(武) 자체가 의심받을 일은 아닌 것이다. 또한 관우가 당대부터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었고, 후대에도 무신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물론 그의 무예가 대단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충의지사로서의 이미지가 더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실제로도 신의있고 무예가 출중한 무장이었으나, 연의에 의해 여기에 고고한 인품과 학식이 추가되고 무예가 조금 너프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덧붙이면 관우는 학자급도 아니었지만, 자기 이름도 못쓰는 일자무식의 장수도 아니었다. 정사부터 관우는 춘추좌씨전을 즐겨 애독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등 그의 학식이 일개 무부수준이 아니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긴 하다.

추가하자면 관우는 '삼국지연의가 쓰여지기 전부터 상당한 인기인' 따위가 아니라 북송시절부터 국가적인 규모의 숭배를 받던 인물이다. 관우에 대한 신격화가 시작되기 전인 남북조 시절부터 '관장지용'으로 그는 용맹한 장수의 대명사로 쓰였으며, 그 이후 형주에선 지역신으로 숭배되다가 북송에 들어서 국가의 수호신 위치까지 격상된다. 송철종은 헌열왕으로 관우를 봉했으며, 관우는 이후에도 남송, 원나라를 이어 명나라 대에는 황제의 칭호까지 받으며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관우신앙은 이어진다.

단, 관우 때문에 캐릭터가 뒤틀린 인물들은 많다. 관평, 주창, 관흥 등 그의 주변 인물들이 상당히 업그레이드 된 반면 그의 죽음에 관여했던 여몽, 반장, 반준, 미방 등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지게 된다. 화웅이나 안량, 문추는 상당히 애매하게 혜택을 받아서 적어도 관우에게 썰리기 전까진 신나게 썰고 다닌다. 즉, 관우와 반목하되 결국 관우에게 패배해서 죽으면 미화가 되고 되려 관우를 죽게하는 데 책임이 생기면 평가가 떨어지고 관우를 잘 우대한 사람도 좋게 평가받는다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추가하자면 관우를 죽이는데 직접 관여한 오나라 장수는 정말 어이없이 죽음을 당하거나 무능하게 나온다. 오나라의 대도독까지 역임했던 주연은 수명이 무려 20년이나 줄어들어 죽었으며, 여몽은 몸의 전 구멍에서 피를 토하면서 죽는 호러스러운 죽음을 겪었고, 반장, 이이, 사정 등은 참 황당하게 죽임을 당했다. 위나라 장수도 딱히 나은 편은 아닌데, 번성공방전에서 관우의 포위를 깨부신 위나라 최고 명장 중 하나인 서황안량에게 일기토에 패하고, 왕평을 핍박하는 소인배에 죽음마저도 맹달이 아무렇게나 쏜 화살에 맞아죽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관우를 상대로 번성을 사수해낸 조인 역시 연의에서는 여기저기 털리는 호구로 나온다. 만총은 그에 비하면 너프는 아니지만 뛰어난 지휘관이자 도독으로써의 모습이 거의 삭제되고 그저 외교전담 셔틀정도로만 등장한다.

사실 관우가 일방적인 수혜자라고 보기엔 좀 애매한 부분도 있다. 역사상의 관우는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오만했으나 아랫사람들에게 따뜻한 인물이었는데, 이 점이 연의에선 생략되었기 때문에 현대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게 되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는 형주공방전 당시 소설의 특성상 당시 복잡한 정치적 갈등을 관우와 손권의 자존심 싸움으로 단순화한 감이 있다. 관우가 손권과 반목한 것도 단순히 둘이 서로 싫어해서가 아니라 번성공방전 당시 손권과 유비는 위태위태하던 동맹이 결국 파탄이 나는 과정이었기에 직설적이고 솔직한 관우가 이에 대해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당시 손권이 관우에게 서신을 보내서 '급하게 나아가지 말라'고 했을 시기는 정확히 기록은 되어있진 않지만 서황이 전선에 투입된 8월 이후였고, 손권은 이로부터 두달 뒤인 10월달에 조조에게 칭번하면서 관우를 치겠다고 한다. 그리고 한달 뒤인 11월에 여몽과 육손이 공안과 남군을 점령한다. 지원군을 보내겠다고 해놓고 지지부진하며 몇달간 안 보내고, 기껏 사신을 보내서 한다는 말이 '급하게 가지 마시오'였던 사람이 불과 두달 후에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 관우를 습격하기로 약속하고, 곧바로 관우의 배후를 친 것이다. 심지어 조조와 밀약을 맺은지 한달도 안되어 파견도 아니고 점령까지 해버린 것이다. 이건 손권이 미리 해당 지역에 관우 몰래 군대를 보내놨기 때문이다. 애초에 관우를 도울 생각이었으면 번 쪽으로 군대를 보냈지 이 지역으로 군대를 옮겨놓을 이유가 없다.

이를 두고 배송지는 "이미 형주와 양주는 서로 겉으로는 가깝지만 속으로는 사이가 나빠서 손권이 관우를 습격하며, 군대를 숨겨 몰래 출발했습니다. 여몽전(呂蒙傳)을 살피면 정예병을 배 안에 숨겨, 범인에게 노를 젓게 하고, 상인의 옷을 만들게 했다고 이르니, 이를 근거로 말하자면, 관우는 손권에게 구원을 청하지 않았고, 손권도 필시 관우에게 마땅히 간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서로 도와주는 것을 허락했다면, 무슨 까닭에 그들의 거동을 숨겼겠습니까?"라고 '손권이 관우를 도우려 했다'는 기록에 의문을 표했다.

실제로 손권은 유비가 입촉하던 시기에 시집보냈던 손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돌아오게 했다는데, 이 점을 보면 배송지의 기록대로 둘의 동맹이 이미 끝났다는 게 더욱 명백하다. 즉 손권은 이미 군대를 관우의 후방으로 보내고, 동생은 미리 빼놓는 등 밑작업을 해놓은 것이다. 이 상황에서 관우와 혼인동맹을 맺으려는 이유는 뻔하다. 당시 혼담이 오간 것은 관우의 과 손권의 아들이다. 당시는 시집가면 남편의 집에서 살기 때문에 관우의 딸을 오에 보내놓으란 것이다.[28] 또한 관우의 군세에 조조가 위협을 느껴 천도하려 했을 당시 사마의와 장제가 이에 반대하면서 "유비와 손권은 겉으로 친하지만 속으로는 소원합니다"고 하면서 반대하기도 했다.

즉 관우가 분노조절장애라 우군한테 욕을 하면서 트롤링을 해 동맹을 한 게 아니라, 동맹관계가 사실상 파탄이 났는데 손권은 몰래 관우의 후방으론 군대를 파견하면서 정작 지원군은 안 보내고 서신으로는 "(번으로) 급하게 나아가지 말라"고 애매한 짓을 하니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정을 생략하고 (실제 역사에 없는) "호랑이의 새끼를 개의 새끼에게 줄 수 있겠느냐"는 대사를 넣으니 현대 독자들이 보기엔 이상하게 된 것이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나관중 본인도 명나라 대 인물로, 현대 독자들과는 수백년 차이가 나는 옛날 사람이란 것 때문에, 미화하려고 한 묘사가 현대에 와서 보기엔 약간 이상해진 면도 있다. 나관중은 유비를 주인공으로, 당시 관왕으로 명성이 높던 관우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려고 했으나, 당시 잣대로 미화했기에 후대에 보기엔 오히려 이상해진 것. 대표적인 것이 유비의 뛰어난 능력을 생략하고 마치 그가 인덕만 있는 인물처럼 묘사한 것이다. 나관중 입장에선 촉한 측 인물들을 최대한 미화하려고 한 의도가 분명하나 명나라 당대 소설가의 시선으로 했기에 앞뒤가 안 맞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 부분은 실존인물의 행적과 비교해본다면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3. 관평

연의에서는 관우의 양아들이라는 설정. 정사에서는 양아들이라는 말은 없고 정말 짤막하게(관우와 함께 붙잡혀 참수되었다. 끝) 기록되는 데 반해, 연의에서는 이리저리 스토리가 많이 붙어 나름 인기 캐릭이 되었으며, 이 덕에 현재 여러 곳의 관제묘(關帝墓)에서 알충왕(謁忠王)이라는 시호를 받으며 아버지와 같이 실제로는 있지도 않는 장수와 함께 신격화되어 모셔지고 있다. 실존인물이고 똑같이 관우를 모신데다 관우가 죽기 직전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원군을 요청했던 요화만 불쌍하다

3.4. 관흥, 장포

아버지들(관우, 장비의 덕을 톡톡히 본 케이스. 연의에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일어선 용맹스러운 젊은 2세들로 그려지며, 이릉대전, 남만 정벌, 제갈량의 북벌 등에 맹활약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유비손권을 공격했을 때 관흥은 반장을 죽여 원수를 갚고 청룡언월도를 되찾았으며, 장포는 손권이 화해 선물로 보낸 범강장달을 직접 죽여 원수를 갚았다. 북벌에선 위군에게 포위당한 조운을 구출하고 그 과정에서 동희, 설칙도 죽이는 공을 세운다.

장포는 아예 장비가 죽기 전에 이미 요절했고, 관흥제갈량에게 그 재능이 촉망받았지만[29] 약관 20세의 나이에 죽었다. 따라서 아무 활약도 하지 못했고 원수인 반장, 미방 등은 이릉전투 이후에도 잘 살았다.

촉빠라고 해서 이 둘을 무조건 좋아하진 않는다. 둘 때문에 왕평, 오의 등 원래 활약해야 했을 장수들의 비중이 줄어들었기 때문.[30] 오죽하면 나관중의 메리 수라는 불명예스런 칭호까지 생길정도.

3.5. 마대

연의에서는 유비군 합류 직전에 북방군의 매서움을 보여준 마초처럼, 후반부에서 서강군(ex. 철리길, 월길&아단)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고 관흥&장포와 함께 자기들끼리 뭔가 해낸 적은 드물고, 제갈량의 계책을 받고 나서야 제대로 물리치는 식이다. 게다가 남만 정벌에서도 조운 및 위연과 함께 남만군을 제대로 박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지막으로 배신자 위연을 참살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마지막으로 서서히 등장이 사라진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군공은커녕 언급되는 기록조차 찾기 힘들다. 전장에 있던 기록은 진서 선제기에 우금에게 패배한 기록 하나밖에 없다. 마초가 죽을 때 "저희 일족 중에서 살아남은건 대 하나뿐입니다. 저희 가문이 단절되지 않도록 우리 대를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는데 마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이거 하나다. 위연을 죽인 건 사실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위연의 난을 진압한 건 왕평이다.

알고 보면 이쪽도 관흥, 장포와 같이 오호대장군 2세 무장 보정. 사촌형인 마초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보통 까일 때 셋이 세트로 까인다.

그나마 관흥과 장포와는 다른 점이 어찌되었건 촉한에서 10명밖에 받지 않은 작위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 이들보다는 조금 낫게 보이게 한다. 실제 군공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꽤나 높은 후작의 지위를 받았기에 기록에만 안 남아 있지 입지나 공 자체는 더 많았을 수도 있다.

3.6. 마속

정사에서는 유비가 언과기실하고 위급할 때는 절대로 써선 안 될 인물이라 평가하며, 실제로도 나름 평균은 했으나 가정에서 1차 북벌을 말아먹은 1등공신이다. 물론 그렇다고 실력이 안 좋은건 아니고 남만은 무력이 아닌 마음으로 회유해야 한다고 하는 등 나름대로 능력는 있는 사람이다. 그를 포함한 다섯 형제 모두 능력이 출중했다는 기록이 있다. 게다가 장완 등이 사형하지 말라고 비는 것도 정사에 나오는 사실이다. 결국엔 유비 말대로 말은 앞서지만 실속이 없다는 것만 증명했지만.

그러나 연의에서는 언과기실함은 유언에서 나오나, 사마의를 실각시키는 등의 온갖 활약을 펼쳐 강유를 제외하고 "후반 촉의 최고의 참군 = 마속"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형당할 때에도 패퇴 후 도망치다 잡힌 정사와 다르게, 스스로를 결박하고 벌을 청하며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가족만큼은 살려달라는 멋진 모습으로 나와서 이미지를 전부 회복했다. 연의에서 여러가지 버프를 받았다.

3.7. 마초

마초가 주목을 받는 계기는 조조에게 싸움을 걸며 장안을 공격하면서부터이다. 연의에서는 아버지 마등의 죽음에 분개해 상복을 입고 출진, 위군을 가루로 만들며 진군하지만 가후의 비열한 이간계에 걸려 패퇴한다. 역적 조조와 대비되는 충의의 인물로 묘사되며 시종 내내 복파장군 마원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하지만 정사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우선 출병의 이유가 거론되는데 마초가 움직인 시점에서 마등은 생존해 있었으며 아들의 반역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형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마초 본인의 야망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한중으로 진격하려는 조조의 움직임을 보고 관중 진격으로 오해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각오하고 난을 일으켰다는 의견이 있다. 마초가 직접 한수에게 "저의 아버지가 처형당하면 공이 저의 아버지가 되어주십시오"라 말한 기록도 있기 때문에 마초는 마등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도 반란을 일으킨 것이 맞다. 또 무제기와 고유전 등에 조조가 한중으로 진격하자 관중군벌들이 자신들을 치려고 했다고 여겨 공격했다는 기록과 고유가 지금 거대한 군대를 움직이면 서량의 군대가 움직일테니 먼저 서량을 평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기록을 보아 조조의 진격을 본인들의 위협으로 보고 군사를 일으킨것도 사실이다.

전공도 상당 부분 과장이 섞여있다. 조조가 스스로 수염을 자르고 달아나는 장면은[31] 연의의 명장면이지만 실제와는 다르다. 실제 상으로도 조조가 강을 건나다가 허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났지만 조조가 전포를 벗는다던지 수염을 자른다던지 하는 굴욕은 없고 정사에선 조조가 간신히 살아와서는 "껄껄, 오늘 내가 도적놈들에게 당할뻔했구나!"라고 호탕하게 웃기까지 한다. 충의지사 이미지도 역시 덧씌워진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연출은 모두 훗날 촉한 오호대장군직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마초조조를 상대로 상당한 전과를 올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패배 역시 정면대결이 아닌 이간계에 의한 내분 때문이었으며 그가 기신, 경포와 비견될 정도로 영용한 호걸이었다는 것과 "마초를 살려두면 안 된다"고 조조가 탄식하고 경계한 것 또한 정사의 기록이다. (한문 원문은 "信、布之勇"이라 기록하는데 여기서 "신"은 한신으로, "포"는 여포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위수에서 패배한 이후 재기해 농서 일대를 재점령하고 하후연을 격파하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연의에서 벌인 일기토는 모두 거짓이다. 오히려 위략에서 마초는 염행과 일기토를 벌여 염행의 부러진 모에 목을 맞아 끔살 일보직전까지 갔다는 기록이 있다. 염행이 마초와 일기토를 벌이다가 창이 부러지자 부러진 창자루로 마초의 목을 공격해 죽일뻔한 것으로 기록 된것인데 실존인물 마초는 어느 정도는 용맹하기도 했고 병력 통솔에 대한 재능은 있었으나 무력에선 연의에서처럼 후덜덜한 수준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무장으로서의 용맹함이 강조되다보니 유력 군벌로서의 정치적 입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정사에서의 오호대장군 서열은 관장마황조 순이었으나 연의에서는 관장조마황으로 조운에게 밀렸다. 참고로 유비가 칭제할 때 신하들이 축하하는 표를 올렸는데, 여기서 마초가 1위, 제갈량은 8위에 그쳤으며, 조운은 아예 언급조차도 되지 않는다.

3.8. 부첨

연의에서는 강유가 북벌에 나설 때 장서와 함께 발탁되면서 등장하고 우장군에 임명되는데 꽤나 용맹하다는 설정이다. 데뷔전에서 위나라 장수 왕진이 창으로 찌르려 하자 팔로 왕진을 붙들었으며[32] 이붕을 유인하여 철편으로 얼굴을 내리쳐 쳐 죽였다.

촉나라에 거짓으로 항복한 위나라의 장수 왕관(王觀)의 계책을 강유가 간파하고 등애를 유인하는 계책을 세울 때 마른 풀을 실은 수레 수백 대를 가지고 매복해 있다가 한밤중에 등애가 당도하자 수레에 불을 붙여 군호로 삼고 위군을 공격하고 종회가 양평관으로 쳐들어갈 때 부첨이 맞아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정사에서는 부첨은 아버지 부융[33]이 죽은 후 좌중랑장에 임명되었고, 후에 관중도독이 되었다.

의 촉 정벌 당시 종회한중까지 진군하고 호군 호열로 하여금 양안관구를 공격하게 하였다. 부첨과 함께 관구를 지키던 장서가 나가 싸울 것을 주장하자[34] 부첨은 '성을 보전하라는 명을 받았으니 오로지 온전히 지키는 것이 공을 세우는 것이오. 이제 명을 어기고 출전하였다가 만약 져 하여 나라를 저버리게 된다면 죽는다 하더라도 아무 이득이 없는 것이오.'라고 말렸으나 장서가 '그렇다면 각자 알아서 하십시다.'라고 했고 부첨은 장서가 싸우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장서는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 없었기에 호열이 이끄는 위군을 만나자 바로 항복했다. 호열이 헛점을 틈타 성을 습격하자 부첨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으나 끝내 전사했고 양안관구는 위군에게 점령되었다.

애시당초 장서를 너무 믿다가 털렸지만 장서가 대놓고 항복하려고 작정을 해 그를 속인 면도 있거니와[35] 부첨은 처음부터 양안관구를 굳게 지킬 작정을 했고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기 때문에 위나라에서는 적이었지만, 촉나라 멸망 후에 부첨의 두 아들 부처, 부모가 죄인의 자식이라 노비가 된 상태에서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은 부첨의 충의를 높이 평가하여 조서를 내려 부첨이 촉나라를 위해 전사한 것을 선한 일이라고 하고 아들들인 부저와 부모를 노비 신분에서 해방시켜 서민으로 살아가도록 했다. 그래서인지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삼국지 9부터 통, 무, 지가 70대 이상.[36] 물론 게임이지만 그래도 촉빠들로써 강유의 보좌 측근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고 동상도 있다.

3.9. 미부인

정사에서는 별로 언급도 없는 여성이지만 연의에서는 조운에게 유선을 맡기고 자신은 우물에 투신하는 장면이 있다. 게다가 정사와 다르게 사후 감부인과 함께 황후로 추존된다. 정사에서는 감부인만 황후로 추존되었다.

물론 무조건 수혜만 받았다고 한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관우가 유비를 찾아 떠나는 천리행 당시 배원소&요화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그들이 도적이라서 유비의 명성이 훼손될 것이라며 그들의 합류를 거부했다. 그러는 바람에 배원소는 정황을 몰랐던 조운에게 목이 날아가고, 특히 요화는 미부인의 목숨을 구한 은인임에도 도적이라며 꺼리는 모습을 보여서 배은망덕한 지배층으로 오해를 사기 좋게 되어버렸다.

다만 연의 원작에서 요화를 거부한 사람은 관우이고, 주창의 무리를 거부한 사람은 감부인이다.[37] 간과하기 쉬운데, 연의에서 미부인은 감부인보다 서열이 낮았고, 당시 상황에서 발언권과 결정권을 가진 건 감부인이었다.

3.10. 양의

정사에서 양의는 참으로 화려(?)하다. 관우에게 항복해서 촉에 소속되었는데 유비는 양의가 능력있어 보이길래 중용했지만 유파에게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일삼았다. 열받은 유비는 양의를 홍농태수로 좌천시켜버렸다. 당연한 게 유비는 유파를 정말 어렵게 모셔왔고[38] 유파의 능력을 존중해서 유파에게 중요한 일을 계속 시키고 있었는데 양의는 매일 유파와 싸웠다. 또한 위연과도 사이가 매우 안 좋기로 유명했다. 위연의 반란 이후 양의는 내심 자기가 제갈량의 후임 승상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으나 장완이 제갈량의 후계자가 되고 승상은 영구결석이 되었으며 양의는 중군사가 되자 양의는 희대의 병크를 터뜨리고 만다. 비의와 독대면에서 '위씨를 따랐을걸!'이라고 외쳐버린 것. 정사 원문은 분명 위씨라고 밝혔으므로 위연인지 위나라인지 애매하지만 얼마 전까지 서로 못 죽여서 안달이었던 위연 밑에 들어가겠다는 말은 절대 아닐 테고, '위연처럼 반란을 일으킬 걸 그랬다'와 '위나라에 투항할 걸 그랬다' 중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반란 선언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단지 위연과 원수지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버프를 받았다. 유비에게 버림받은 것은 삭제됐고, 위연도 제멋대로 죽인 것이 아니라 승상(제갈량)의 말이 맞았다면서 위연의 명대사이자 사망 플래그인 "누가 날 죽이겠느냐"란 말을 이끌어내서 위연을 죽이고 반란을 진압한 것으로 나온다. 거기에 위연의 일족을 몰살시킨 것도 빠져 있다. 물론 '위씨를 따랐을걸!'이라고 외친 것은 연의나 정사나 내용이 일치하기 때문에 연의에서도 깠다고 볼 수도 없다.

또한 마속가정에서 진지를 잘못 구축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양의가 자신이 마속을 대신하겠다고 나서자 제갈량이 허락하는데, 상식적으로 제갈량이 연속 두 번이나 사람을 잘못 썼을 확률은 희박하니 이는 연의에서 양의가 군사적 능력도 어느 정도 갖췄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權問曰: "丞相軍前, 用誰當先破敵?" 褘曰: "魏延爲首" 權笑曰:"此人勇有餘, 而心不正. 若一朝無孔明, 彼必爲禍, 孔明豈未知耶?"
손권이 물었다. "승상께서는 누구를 선봉으로 삼아 적을 격파하시오?" 비위가 대답하였다. "위연이 그 우두머리입니다." 이에 손권이 웃으며 말했다. "그사람은 용맹은 넘치지만 마음은 올바르지 못하오. 공명이 죽은 후 화를 저지를 것이 분명한데, 공명은 왜 모르시오?"
- 모종강본 연의 102회

찌질한 명성이 외국까지 퍼져서 손권은 "양의와 위연 같은 막장인간들은 왜 쓰냐"고 촉나라 사자에게 말한 적 있는데 연의에서는 이 발언 중 양의가 짤리고 "위연이 조만간에 반역할 인물인데 왜 쓰냐"로 바뀌었으니 이것도 수혜.

그래서인지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삼국지 9부터 이 인간의 매력 스텟은 25를 넘어본 적이 없다.

이상한 것은 촉한의 입장에서는 인격적으로 이보다 더한 쓰레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연의의 수혜자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나관중이 항장에 대한 용서가 없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항복을 시도하려는 마음을 내비친 양의에 대해 평가가 좋은 것은 또 아이러니하다.

3.11. 왕보

정사에서는 이릉대전에서 전사하는 걸로 나오지만, 연의에서는 맥성이 함락되는 시점에서 관우의 죽음을 알게 되어 자결한다. 수명이 거진 3년 가까이 단축된 셈. 다만 수명이 줄어든 것을 제외하면 충의지사 마냥 관우의 죽음을 알고 성벽 위에 뛰어내려 자살하는 게 굉장히 임팩트 있기 때문에 수혜자로 볼 수 있기도 하다. 추가로 그냥 죽은 이릉전과 달리 형주전에서는 무려 형주군 수군도독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달고 있으므로 위치도 격상. 거기에 반준이 배신할 것을 알아차려 그를 기용하지 말라며 간언하는 장면도 있으므로 수명이 3년 단축된 댓가로 충의, 지모, 군사적 위치, 존재감 등이 수직 상승했다고 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소설에서 왕보가 3년 일찍 죽었다고 해서 그게 역사상 실존인물 왕보의 수명을 단축시킨 건 아닌데다 소설적 측면에서 보면 어차피 형주에서 죽지 않고 역사대로 갔었더라도 형주공방전에서도 존재감 없는 문관이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이릉에서 죽었다는 역할밖에 안 된다. 이릉에서는 황충 같은 노장 + 명장도 죽음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데 유비랑 접점도 거의 없었던 왕보가 여기서 죽어봤자 임팩트도 없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형주공방전에서 관우의 조언역 + 임팩트 있게 죽은 걸로 나와서 그나마 왕보란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지 역사상 행적대로면 나관중이 굳이 소설상 등장시킬 이유도 없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과거에는 단지 저 '원래보다 3년 일찍 죽었다'는 부분에 집중해서 피해자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수혜자 목록에서 애매한 경우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주연처럼 원래 족적을 많이 남긴 인물이 다른 인물을 1회성으로 띄워주기를 위해 허무하게 죽고 족적이 사라진 것이 피해를 입은 것이지 원래부터 족적이 거의 없었던 사람이 본래 수명보다 먼저 죽되 매우 능력있는 인물로 묘사된데다 특급 충의지사로 비극적 연출로 생을 마감해 사람들에게 크게 각인되었다면 이를 피해자로 보기 힘들다. 오히려 수혜자로 보는 게 맞다.[39]

3.12. 엄안

정사에서는 장비에게 사로잡힌 뒤에도 꿋꿋한 태도를 보여 장비가 감복했다는 내용만 남아있을 뿐, 이후에 서천 공략에 공을 세운다거나 황충과 함께 한중에서 조조군을 격퇴했다는 내용은 모두 연의의 창작이다. 정사 기록으로는 엄안이 노장인지 조차 불분명하다. 장비의 의석엄안을 띄워주려고 포장된 케이스. 연의에서는 지나치게 이 부분을 강조하려고 엄안이 장비에게 사로잡힌 후 "서촉에 목 잘릴 장수는 있어도 항복할 장수는 없다"고 소리치다가 잠시 후 바로 자신이 서촉 출신 항장 1호가 되는 웃지 못할 전개가 펼쳐진다.[40] 하여간 이 에피소드가 유명하긴 한 것인지 후일 남송의 진정한 마지막 충신인 문천상의 정기가에 엄안의 일화가 들어가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나중에는 한중 공방전에 참여, 같은 노장인 황충 밑에서 장합, 하후덕], 하후상, 한호 네 명을 개발살내버리며 황충은 한호를 엄안은 하후덕을 날려버린다. 정사에서는 항복 이후의 행적이 없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 정도면 버프중의 버프인 셈. 심지어 장합은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산 송장이라 무시한 황충과 엄안에게 개발살난다.[41]

한중 공방전 이후로 더 이상의 등장이 없지만, 실제 역사상 엄안은 장비에게 투항하고 더 이상 나오지 않았던 인물이기 때문에 수혜자로 보는 게 맞다. 한중 공방전까지 수혜를 입었고 그 이후로 안 나온다고 미묘한 경우로 치는 거 자체가 무리한 가정이다. 뭣보다도 엄안이 후대에 이름을 못 알렸으면 모르겠지만 이후 충신의 대명사가 되어[42] 엄장군의 충의라며 한시에도 나오는 관용어구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에 수혜를 입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3.13. 이엄

크게는 정사와 다르지 않지만, 탁고대신 중 제갈량에 버금가는 2인자라는 신분이 퇴색된 대신, 편지로 맹달의 침략을 격퇴하는 등 활약상을 보여주기도 했고, 제갈량의 립서비스도 많은 편이다. 데뷔전에서 황충을 상대로 무려 50합이나 싸워 무승부를 내는데, 제갈량은 이엄이 무력으로 이기지 못할 상대라고 평가하였고 북벌 때에 다른 신하들이 손권의 뒷치기를 걱정하자, 제갈량은 이엄이 육손을 대적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즉 립서비스로만 보면 무력은 촉나라의 오호대장, 용병술과 지략은 오나라의 육손에 필적하거나 버금가는 정도니, 사기캐가 따로 없다. 게다가 실제 중요한 후방 수비를 맡겼으니, 단순한 립서비스 정도로 봐주기도 어렵다.

다만 이엄의 실책으로 실패한 4차 북벌에서는 일부 각색이 들어가, 이엄이 군량을 마련하지 못했기에 제갈량이 회군하도록 만들고자 제갈량에겐 오나라가 위나라와 화친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는 허위보고를 올리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냥 실책이 아닌 참수형을 당할 조정을 기만한 것.[43]

3.14. 제갈량

물론 제갈량의 능력은 실제로도 굉장히 출중하였던건 맞고 당대나 후대나 꾸준히 높게 평가 받는 인물인건 분명하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주인공보정까지 받아 아예 자연 기후를 조종하는 수준의 먼치킨으로 등극하였다. 일각에선 원래도 뛰어난 제갈량이 오히려 연의로 인해 현실성에서 타격을 받아 희생되었다고도 하나, 매니아 적인 삼국지 팬덤을 제외한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는 굉장한 수혜를 받았다.

후술되는 제갈량의 내치나 인격적인 부분에서 너프되었다는 주장은, 삼국지를 탐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제기될 수 있을 지 모르나, 연의가 어디까지나 소설이라는 점을 볼 때 이러한 내용들은 너프가 아니라 소설의 특성으로 인해 그 비중이 줄거나(내정 능력) 묘사가 소설식으로 표현(위연의 배반에 대한 복선-위연을 반골의 상이라고 한 것을 두고 일부 삼국지 팬덤에서는 제갈량의 인격에 대한 너프였다는 주장을 하나, 이건 소설적 복선과 제갈량의 예지력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된 것들이라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전략면에서 제갈량이 수혜를 입은 것들로 인해 다른 수많은 인물들이 ‘제갈량보단 그래도 한 수 아래다.’라고 주장되기 위해 너프를 받았는데, 이릉대전 이후 부상하는 육손을 제갈량 보다 한 수 아래로 만들기 위해서 꾸며낸 돌무더기 일화가 대표적이다.
삼국지를 읽던 한 사람이 도중에 책을 세 번 집어던졌다가 다시 주워 읽었다는 일화가 있는데 그때가 각각 관우, 유비, 제갈량이 죽었을 때라고 한다. 그만큼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인데, 제갈량은 그 중에서도 삼국지 중후반부의 중심에 선 메인 캐릭터로서 최고의 수혜를 입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삼고초려, 적벽대전, 칠종칠금 등 제갈량에 관련된 대목들이야말로 나관중의 작가로서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일단 삼고초려로 대표되는 그 등용과정에서부터 형주의 석학[44]들과 제갈량의 인척들을 동원하여 몽환적이고 초월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망파, 적벽에서의 암약과 더불어 동오에서 벌어진 설전 역시 창작에 가깝다. 이러한 경향은 남만정벌에서 그 정점에 달하는데 목록대왕, 올돌골정사에 등장하지 않는 이국적인 세력들을 등장시켜 독자들의 몰입감을 높이는 한편 이들을 지혜로 격파하는 공명을 돋보이게 만든다.

또한 사마의, 주유 등은 공명을 위해 아예 캐릭터가 다시 만들어질 정도이다. 주유는 뜬금없이 공명의 재능을 시기하며 그를 죽이려고 하지만 번번히 책략에서 패배하여 결국 분사하기에 이른다. 사마의는 어떤 의미로는 공명으로 인해 평가가 올라간 인물이다. 원래 공명의 1차 북벌을 막아낸 데는 장합의 공이 컸지만, 연의에서는 그 역할을 사마의가 맡았다. 즉 중달을 공명의 유일무이한 라이벌로 만들기 위해 장합과 곽회의 공을 말소하고 그것을 사마의에게 돌려 공명은 사마의 이외의 인물에겐 패하지 않는다라는 공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창성에서 학소에게 패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공성전이었지만, 압도적인 숫적 우위를 가지고도 학소에게 패하였는데, 연의에서는 역사를 왜곡하여 기여코, 제갈량이 비록 병든 학소였지만 최후에 성을 함락하여 승리함으로 스토리를 바꾸었다.

공명은 유비의 뜻을 잇는 자로 한황실의 부흥의 중심에 있던 영웅에게는 그에 합당한 매력적인 요소를 부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유비의 유언을 철저하게 지켜내 유선을 전심으로 보좌한(정사에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의기에서도 그는 삼국지연의의 후반부를 맡길 만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제갈량의 진정한 재능은 화려한 전략보다는 건실한 내치[45]에 있었다. 남에게서 빼앗은 땅에 기반을 굳히고 이릉의 손실을 극복하여 마침내는 10배 가까운 국력을 가진 나라에게 싸움을 걸었다.[46] 위나라는 4만의 상비군을 보유하는데도 쩔쩔 매는데 비해, 훨씬 땅과 인구가 적은 촉은 그보다 많은 군사를 상비군으로 가지고 있었다.[47] 비록 북벌은 실패로 끝났지만 는 그의 생전 단 한 번(조진이 한중을 공격하려 했으나 장마로 철수)밖에 공세를 펴지 못했으며 그가 발굴해 낸 인재들은 사후 30 년간 촉을 이끌어갔다. 가히 촉의 소하나 춘추시대 제나라의 관중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의 시대 내내 촉과 위의 관계가 공세와 수세라는 부분에 있어서 국력과는 정 반대의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점, 그리고 위의 장수들 중 올스타 라인업에 해당되는 인물들이 대 촉 전선에 투입되어 있었다는 점은 그의 군사적 재능 역시 비범치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단, 내치라는 것이 소설에서 표현할 수 있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부분이었기 때문에(연의는 기본적으로 군담소설이기 때문에 문관들의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다) 여러 가지 장치들이 더해졌던 것이다. 사실 전략 단위에서의 군사 운용은 어차피 내치와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치에 뛰어났던 그가 군사적으로 뛰어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리고 위의 상술한 내치들이 연의에서는 "무후아래 백성들이 모두 잘 살고 행복했다." 라는 그야말로 어찌보면 위정자 입장에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잘 표현되어 있으므로, 소설적 과장을 감안할 때, 내치에 대한 부분도 연의에서는 짤막하지만 잘 살려두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툭 하면 징징거리는 부분도 연의에서 피해를 입은 부분이다. 엄밀히 따지면 제갈량이 걸핏하면 탄식을 할 만큼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나, 연의에서는 제갈량을 띄워주겠다고 다른 촉의 인물들까지 죄 다 띄워주었는데도 이 상황 자체를 그대로 유지하는 바람에 이해가 가지 않는 행적을 보여주는 경우가 잦다.

마속이야 연의에서도 삽질을 했으니 그렇다쳐도 연의에서 위연, 마대, 강유[48] 등의 군공이 상당히 부풀려지고 관흥, 장포 같은 관우와 장비 못지 않은 2세대 장수까지 추가 되어서 이릉 대전 직전의 유비군 못지 않은 올스타 팀을 꾸리게 된 반면 제갈량이 상대해야 할 위나라는 사마의만 제정신 박힌 인물이고[49] 장합[50], 조진, 곽회 등은 죄다 원래보다 못하게 그려져서 병력이랑 물자만 많은 사마의 원맨팀(...)이 되어 버리고 제갈량은 소속 장수들이 죄다 뛰어난 팀을 꾸리게 되었는데 이 상황은 확실히 정사와 반대된다. 정사에선 오히려 위나라의 올스타팀에 가까운 북벌 방어 라인을 제갈량이 고군분투하면서 뚫어나가는 눈물나는 이야기인데, 어째 연의에서는 정 반대로 인간 흉기 수십 명을 데리고 위나라를 침공하는 촉군을 상대로 무능하고 짬밥만 많으신 높으신 분들과 공적에 미쳐서 툭하면 명령에 불복종하는 장수들 사이에 치이면서 고군분투하는 사마의(...)의 구도로 바뀌었기 때문. 대체 누가 주인공이야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제갈량은 촉나라에 인재가 없다고 망언 푸념을 일삼는다. 차라리 물자나 병력이 위나라보다 못하다고 하는 거면 이해라도 되는데 연의 특유의 촉나라 뻥튀기 현상으로 인간 흉기급이 살벌하게 퍼져있는데 '아이고 내가 인재가 없어 인재가~' 이런 타령하는 게 정당성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 즉 정사에서 제갈량은 정말로 자기 혼자 내치를 다 다지고 전략 다 짜서 쳐들어가는데 그놈의 미친 인재풀 격차랑 국력차에 좌절하고 고군분투하는 승상의 이미지였다면 연의에서의 제갈량은 언뜻보면 상황이 그리 나빠보이지 않는데도 징징대기 때문에 이미지에 피해를 보는 것이다.

물론 연의에서도 여전히 길목 막으려고 보내놨더니 뜬금없이 등산을 하는 마속(...), 심심하면 시기가 안 좋다고 전쟁을 반대하는 초주, 위나라의 간계로 유선한테 제갈량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부추기는 답 없는 중신들, 그걸 또 듣고서 귀환시키는 황제 유선, 보급 힘들다고 자군 장수한테 반간계를 거는 이엄 등 공대 내부의 적들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기에 마냥 답 없는 푸념까진 아니지만 최소한 이러한 답없는 놈들은 뒤에서 정치하는 놈들이고 일선에서 싸우는 장수들은 여전히 인간 흉기들 데리고 사마의 원맨팀한테 덤빈다는 비교 우위가 있는데 저러니까 아무래도 정사의 모습에 비하면 당위성이 떨어진다. 이런 연유로 연의 제갈량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니 결국 이미지적인 피해는 내치가 생략된 점 보다 촉나라 장수들이 원래보다 푸쉬를 많이 받았고 위나라 장수들이 역으로 너프를 먹었는데도 역사상의 제갈량과 똑같은 인재 드립을 친다는 점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제갈량을 지혜의 화신으로 만들었으면서 처세에서 은근히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으로, 우선 짧게 요약하자면 재주에 대한 과시욕이 너무 강하고 상황에 따라 재주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드러나는 것이 적벽대전 무렵으로, 주유가 뭔가 계책을 시전한다 → 노숙을 제갈량에게 보내 제갈량의 생각을 알아본다 → 제갈량은 주유의 타산을 간파한고 노숙에게 알려준다 → 노숙이 주유에게 보고하고, 주유는 이러한 제갈량에게 위협을 느껴 견제를 시도한다 이러한 패턴이 자주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재주를 드러내서 다른 사람의 어그로를 끈다는 점에서 양수와 매우 비슷한 부분. 물론 이로 인하여 생기는 위기까지 제갈량이 스스로 재치를 발휘하여 해결하긴 하는데, 그럴바엔 차라리 처음부터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인격적인 면에 있어서는 상당히 많은 폄하가 이루어졌다. 정사에 따르면 제갈량은 상벌이 명확하고 공정하여 엄한 규율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불만을 가지는 자가 없었으며 촉의 문무백관과 백성들은 그런 제갈량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하니 실제 그의 인품은 매우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사람을 꼽태워서 홧병으로 죽여버리고는 그 장례식에 가서 통곡하는 쌩쑈를 한다던지, 관상 때문에 초면에 사람 목을 베라고 하고는 이후로도 계속 핍박한다던지[51]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 제갈량은 매우 성실하고 청렴하며 공명정대한 사람인데도 연의에서 인자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도쟁이스러운 껄렁함이나 보여주고 있다.[52] 오나라를 부추겨 전쟁에 끌어들이고 주술로 동남풍을 불러오는 등 현대 관점에서 보면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사기꾼인지 지략가인지 마법사인지 알 수 없는 난잡한 캐릭터로 만들어 버렸다. 덤으로 정사에서 적벽대전에서나 형주 점령전에서 손권과 연합하여 많은 역할을 한 유비 세력의 행적을 이상하게 뒤틀어 놔서 오나라가 다 해놓은 일을 주워먹거나 뒤통수나 후려갈기고 이득을 챙기는 야비한 놈으로 보이게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연의에서 제갈량을 띄워주기 위해 동원한 허구적이고 상식을 넘어서는 화려한 연출은 현대에 들어서는 오히려 그의 평을 깎아먹고 있는데, 근래에는 정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연의에 대한 반발로 안티들이 양산되는 중이다.[53]

다만 이러한 안티들은 직접 정사와 비교해서 지나치게 띄워준 부분을 까기보다는 "정사를 잘 모르지만 연의를 부정하는 게 좀 더 있어보인다"는 생각에 "그거 다 연의 거짓말임. 정사는 정반대." 라는 식의 논리를 들먹이는 경우가 많아 "제갈량은 실제 내치에만 유능했지 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은 전무하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물론 해당 주장들은 실제 정사를 참조한 것이 아닌 연의에 기반해서 정사는 반대일 것이라고 추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직접적인 피해라기보다는 연의에서 과도하게 띄워준 부작용으로 봐야 할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제갈량은 내치에도 사령관으로도 유능한 천재였다.

또한 위연에 대한 과도한 빠질이 제갈량에게 옮겨붙는 경우도 늘어났는데, "위연은 사실 반역이 아니었다" 는 정사의 내용[54]과 "제갈량이 위연을 반골의 상이라고 지적했다" 는 연의의 내용을 짬뽕하여 "제갈량이 애꿎은 위연을 반역자라고 매도하여 갈군다" 는 괴랄한 주장을 보이는 실태. 오히려 정사에서의 제갈량은 위연의 용맹과 양의의 재간을 아껴 서로 화목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고 비의가 서로의 사이를 열심히 중재하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고 위연이 정서대장군 가절후까지 받으며 출세한 시기는 바로 제갈량의 북벌 때 중임되어 쌓은 공적 덕분인데 제갈량이 위연을 핍박했다면 공적을 쌓을 기회도 안 줬다.

그리고 위연 본인은 반란 의도가 없다고 백번 양보해 그렇다고 쳐줘도 명령 위반, 동료 납치 및 감금 미수, 탈영, 거짓 보고로 국가 혼란 유도, 아군을 공격해 몰살시켜 자신이 한 짓들을 증거인멸을 시도한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반란 의도가 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일까? 사실 반역이 아니었다고 진수가 옹호해줬다지만 진수는 위연이 죽은 건 자업자득이라고 확실하게 언급한 점은 위연빠들이 교묘하게 빼버렸다.[55]

종합하자면 제갈량은 분명 삼국지의 아이돌이자 천재 지략가에 충신이라는 위치를 가지고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는 정사와 연의에서 큰 차이는 없었으나, 그 과정이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소설 특유의 과장이 덧붙여지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정작 가장 중요한 제갈량의 캐릭터성을 너무 희석시켜버린 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악한 삼국지의 과도한 팬덤이 아닌, 일반 대중의 이미지에 있어 연의는 제갈량을 중국사 전체로 볼 때 최고의 천재 군사이자 참모이자 정치가로 만드는 데 기여하였음으로, 절대적인 이미지 개선 및 인지도의 측면에서 제갈량은 삼국지연의의 수혜자로 보는 것이 맞다.

3.15. 제갈첨

정사에서도 나름대로 능력이 있다고 인정받았고 무엇보다 충성심은 아버지 제갈량 못지않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만 나이가 너무 어린 탓[56]도 있고 강유를 필요 이상으로 견제하였다는 논란이나 황숭의 간언을 듣지 않아서 등애가 평지에 진입하게 만든 사례 등의 실책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전반적인 평은 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할 수준의 호부견자는 아니지만 부족함도 있는 아쉬운 인물 정도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오에게 원군을 요청하고 황숭의 간언 부분도 생략하고 제갈량의 목상을 앞세워서 위군을 혼란에 빠트리는 등 최선을 다했으나 아깝게 패전한 인물로 묘사했다. 즉 실제보다 버프를 받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

3.16. 조운

물론 조운이 매우 뛰어난 무장이었다는 것은 정사에서도 공인된 사실이고[57], 무려 관우, 제갈량과 더불어 역대제왕묘에 공신으로 배향되었다는 점만 하더라도 조운의 능력이나 인물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58]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전공이 크게 과장되어 있으며 조운을 위해 희생된 가공인물들과 숫자는 말 그대로 수레로 실어날아야 할 판이고[59] 사실무장의 경우도 3명을 더 죽였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연의 최고의 수혜자.

등장자체도 실제로 기록조차 안된 문추와의 일기토로 등장하며, 원래 큰 전공을 세우지만 나중에 교만해져서 원소한테 숙청당하는 국의 또한 일기토로 죽인다. 조조와 싸워서 도망가는 장면에서도 실제인물인 고람을 일기토로 죽이고, 장판파에서는 아이를 안고 인물을 죽이며 무쌍난무를 펼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실제 크게 영향력이 없는 인물이거나 가상인물이라 크게 상관이 없지만 나중에 이릉대전에서는 자기보다 20년 더 오래살고 수많은 공을 세운 오나라의 주연까지 죽여버린다. 늙은이가 된 이후[60]에는 제갈량이 자기를 선봉에서 빼자 노해서 선봉에 세워주지 않으면 기둥에 머리를 찧고 죽겠다고 하는데, 선봉에 서서 가상인물이긴 해도 한덕 까지 일가족을 완벽히 파멸시킨다. 그외에도 배원소[61], 금환삼결 등이 있다.

심지어 죽은 이후에도 문앙이 등장하자 뜬금없이 시까지 붙여 문앙이 제2의 조운이라고 칭찬하면서 적국의 인물을 촉나라 인물과 비교하면서 띄우기에 이른다.

아무리 주인공으로 띄워줄만한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정도의 버프를 받은 인물은 사실상 전무하며 나관중의 동향이라 그렇다는 말이 나올 정도.

3.17. 황충

정사에서 황충의 군공 중 특별히 부각되는 것은 한중 전투에서 하후연을 참살한 것뿐이고, 그 외에 한 일이 없지는 않으나 잘 싸웠다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서술되어 있다. 다만 관우, 장비, 마초와 동급의 지위까지 오르고 진수도 황충을 하후영, 관영에 견주는 등 뛰어난 무장이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62] 그런데 연의에서는 이를 구체적이고 충실하게 묘사함으로 황충에게 명궁과 노익장으로 대표되는 확고한 이미지를 잡아줬다. 한현의 부하로 관우와 호각의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등장해 의리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많은 전투에서 활약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최후 역시 그냥 수명이 다해서 죽었지만 연의에서는 유비에게 충성하고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릉대전에 참전하겠다고 고집부리며 나섰다가 전사한 것으로 묘사된다. 나이도 불분명해서 노장인지도 알 수 없으며 오히려 황충 항목에서는 황충이 젊은 나이로 죽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어찌보면 삼국지 내에서가 아닌 중국 역사상으로도 크게 이득본 케이스인데 본래 노익장의 시초는 마원이고 황충 이전까지 노익장으로 유명한 건 염파였는데 둘다 삼국지연의의 압도적인 인지도와 인기에 밀려 황충이 노익장의 대명사로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기 때문. 마찬가지로 황충 이전에는 양유기, 이광 등이 신궁의 대명사였지만 신궁의 이미지마저 황충이 가져가 버림으로 노익장의 대명사, 신궁의 대명사 이미지를 모두 가지게 되었다.[63]

4.

4.1. 감녕

촉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버프받은 케이스.

일단 첫 등장 자체가 황조 휘하로 나오며 과거의 수적 시절이 어영부영 넘어가면서 한 때의 치기어린 시절 혹은 의적으로까지 여겨지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은 관리와 결탁해서 수상의 이동경로를 장악하고 이권을 독점한 조폭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게다가 황조 휘하로 들어가게 된 케이스는 익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황조에게 천대시받았던 건 괜히 황조가 능력있는 부하를 질투 혹은 냉대한 게 아니라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감녕이 능통의 아버지인 능조를 죽인 후에는 서로 원수지간이 되고 대면한 적이 없었던 사이였는데 연의에서는 연회 도중에 칼들고 캐삭빵를 벌일 정도로 험악했던 건 같지만 합비 공방전에서 능통이 악진과 싸우다가 조휴의 화살에 맞아 낙마하여 악진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자, 감녕이 화살를 날려 악진을 저격했다. 능통이 그 화살를 날린 사람이 누구냐고 손권에게 묻자 손권이 감녕이라고 답하자, 능통은 그대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친선을 맹세하는 사이가 되고 손권도 둘이 화해한걸 축하해 줬다고 한다. 물론 정사에는 그런 거 없다.

인격면에서도 버프를 받아서 황개의 사항계로 초주검이 될 지경에 처하자 주유에게 "황장군은 오나라의 원로이니 가혹한 처벌은 말아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장면까지 있다. 물론 주유의 분노를 사서 같이 쳐맞기는 했지만 이것도 동석해 있던 채중&채화를 속이기 위해 협력한 걸로 추정되고 있다. 반면 허물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아이 살해 사건은 삭제하였다.[64]

사망에 관련해서 원래는 그냥 병사였지만, 연의에서는 뜬금없이 이릉 전투에 참전하여 사마가의 화살에 죽는 굴욕을 당하기는 했으나 삼국지연의/피해자 항목에 나왔듯이 병사보다는 전사를 명예시여기는 특성상 이를 감녕을 깔아뭉갰다고 보기는 힘들 뿐더러, 감녕이 죽자 수없이 까마귀가 날아들어 그의 시체를 지켰다는 묘사까지 더하는 등 오히려 대놓고 감녕을 띄워주고 있다.

4.2. 감택

연의에서는 적벽대전에서 황개의 고육책을 도와 서신을 보낼 때 조조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말빨로 고육책을 성공시킨다. 이후 이릉대전에서 육손을 천거하지만 장소 등 문관들이 이에 반대하였고 이에 "육손이 아니면 유비 못 이긴다. 육손이 진다면 내 온 집안의 목을 바치겠다"라고 보증하여 손권이 이를 받아들였으며 결과적으로 그가 추천한 육손이 승리를 이끈다.

정사에서는 적벽대전에 참가한 적이 없을뿐더러, 이릉대전때도 육손은 이미 대도독 자리에 있어서 천거한 기록이 없다. 오히려 촉나라 사신 장봉에게 비난받는 와중에 대꾸를 못 했으나 연의에서 제갈량에게 무시당한 설종에게 도움받아 간신히 무마하는 기록이 있는 등 연의하고 매우 다르다. 다만 인품과 학자로써의 실력은 뛰어나고 달력에 가까운 건상력주를 저술하는 등 학술적인 측면에서 활약을 했다.

즉 정사에선 학자였던 사람을 연의에서는 조조를 속인 달변가이자 육손의 재능을 알아보는 혜안을 가진 인물로 바꾸었다. 물론 정사에서의 평가도 좋은 편이지만 정사대로 학자 포지션이었다면 군담소설인 연의에서 비중이 마땅치 않으니 컨셉 변화가 수혜인 셈.

4.3. 손권

연의에서도 연전연패하고 다녔다는 점은 정사와 똑같지만, 장소와의 불화나 말년에 저지른 병크는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 실제로는 화해시키지 못했던 능통과 감녕이 연의에서는 화해하고 의형제 같은 사이가 되도록 기지를 발휘한 창작까지 넣어줬다. 하지만 이는 연의 자체가 제갈량 사후에는 내용을 대폭 생략하였기에, 엄밀히 말하면 덕을 봤다기 보다는 관심을 못 받았다고 하겠다. 나관중이 손권을 깔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했으면 피해라고 볼 수 있을지도?

작품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궁지쟁은 구도가 굉장히 복잡한 궁중 막장 드라마이기 때문에 군담 소설이라는 기본적인 연의의 주제에 맞지 않아서 편집되었다고 봐야 할 듯. 온갖 대영웅들이 화끈하게 싸움질하는 이야기 책에다가 늙은이가 젊은 새아내나쁜 딸에게 넘어가서 아들들 죽이고 하는 에피소드는 영 안 어울린다. 사실 삼국지 후반부에서는 이궁지쟁 뿐만 아니라 다른 군담 및 영웅담의 비중은 현격히 떨어지고 대신 정치극이 많아지는데, 위나라가 사마씨에게 넘어가는 과정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즉 퇴색된 영웅이라는 관점에서는 괜찮긴 해도 후반부의 실질적 주인공은 사마씨이기 때문에 손권에게 더 비중을 줄 필요가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 관우를 죽인 일 때문에 초대형급 악역이 될 수 있었음에도 이릉대전의 실패와 도원종언을 통해 유비 삼형제가 더욱 부각된 것도 같은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즉 암군으로 말년을 마친 인물이 마지막까지 명군으로 살다 죽은 셈이 되었다.

물론 까이는 것도 있는데, 합비성 쳤다가 적군이 놀리는 거에 빡쳐서 무리하게 진격했다가 애꿏은 병사나 장군들만 죽었다.[65]

4.4. 손부인

정사에선 유비와 그냥 사랑도 뭐도 없는 정략결혼이었고 성격이 괄괄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기가 아주 센 여자여서 시집와서도 무기를 든 시녀 백여 명을 마치 사병처럼 거느리고 다녀 유비가 내심 꺼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유비 측 인물들이 손부인을 경계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조운별전 등의 기록을 보면 유비는 기껏해야 일개 군벌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오빠는 오나라 연합의 맹주였으니 그걸 믿고 법을 어기거나 깽판을 치거나 유비의 부하들을 함부로 다루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결국 촉오 동맹이 파탄을 보이자 유비의 후계자인 아두(유선)를 데리고 무단으로 오로 돌아가려다가 조운에게 제지당해서 자신만 오로 돌아가고 그걸로 기록은 끝, 이후 유비는 목황후 오씨를 새로 부인으로 들이며 그녀가 유비 즉위 후 황후에 오른다.

연의에서도 무예를 좋아하는 괄괄한 여성인건 변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사병을 이끌고 다니며 깽판을 치는 다소 조폭스러운 모습에서 단순히 무를 숭상하는 정도로 순화되었고 또 유비를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66] 정사에서 무장시녀를 대동하면서 유비측 진영에 굉장히 위협적인 인물로 여겨졌던 것과는 달리 연의에선 이를 꺼리는 유비가 시녀들이 칼차고 다니는 걸 두려워하자 평생 전장에서 산 남자가 잠자리에 칼이 있는 걸 무서워하냐고 웃으면서도 유비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시녀들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이미지로 바뀐다. 이후 유비가 몰래 형주로 돌아갈때 오군 병사들이 제지하자 유비에게 홀딱 반해버린 손부인이 "니들이 감히 내가 남편 따라 가는 길에 방해를 해?"라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대 실패. 아두를 데리고 오나라로 돌아간 것도 자기 의지가 아니라 어머니 오국태가 아프다는 거짓 편지를 오빠 손권이 보내서 그런 것으로 변경.[67] 이후 유비를 그리워하면서 지내다가 이릉대전 이후 누구보다 유비의 건업 입성을 바랐으나 유비의 붕어 소식을 듣자 장강에 투신 자살한다.

그냥 위험하기까지 한데다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히 똘끼 넘치던 정략결혼 대상 A에서 거의 마성의 중년남 유비에게 홀린(...) 왈가닥 순정소녀로 이미지가 바뀐 셈인데 이 덕분에 적벽대전부터 유비 입촉 때 까지 거의 히로인급 입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후세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도 삼국지의 중요 히로인급으로 나오고 버프받는 경우가 대부분, 무예에 관심이 있었다는 기록 때문인지 게임상에선 남성무장보다 무력보정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유비의 사망 소식을 듣고 물에 빠져 투신자살했다는 일화는 후세학자들이 '그랬다는데? vs 그게 말이 되냐?'로 키배(...)를 뜰 정도로 유명해졌다.

사실 연의와 다르게 정사에서 손부인이 깽판쳐서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었는가? 하면 아무 것도 없고 심지어 손오에게도 이익이 된 건 전혀 없다. 손부인이 평범하게만 했어도 유비와 손권의 긴장감이 누그러지고 충돌이 적어졌을 테니까. 유럽 봉건주의 시기에도 딸들은 다 남편 편 들었지 자기 친정 편 들지 않았다. 남편이 잘 되면 자기는 계속 안주인인데 친정이 이기면 딱 손부인 말년 꼴이 나기 때문에. 또한 이런 이유 때문에 손부인이 영리했다면 정치 고수인 손권이 이런 극심한 견제역을 시키지도 않았다. 가기 전에 말로 이래라저래라 시켜봤자 손부인이 진짜 멍청한 수준만 아니었어도 가고 난 이후에는 응~ 난 출가외인이야~ 오빠는 알아서 해~ 하면서 손권이 시키는 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테니까. 어차피 손부인이 영리하게만 판단했다면 유비의 아내라는 위치로 촉에서는 황후나 후궁 수준의 지위를 가지면서 유비와 결혼 이유였던 감부인은 진작에 사망한 데다가 목황후 빼면 나머지 부인들 사이에 큰 격차는 없으며 (그 목황후도 손부인이 정상적으로 부인 노릇을 했으면 유비의 동족 유모의 아내(과부)로 아예 간택이 안되었을 수도 있다.) 애초에 손부인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자신이 황후가 될 가능성도 높은데다 심지어 출신은 동오의 손씨 혈통이니 오나라를 뒷백으로 둔 손부인은 황제의 생모가 아니라는 결함만 빼면 촉나라에서 제법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국가 중추에 끼어들 권력이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북벌을 위해 오나라와의 관계를 좋게 다져야 하는 제갈량 같은 경우도 손부인이 말썽만 안 피우고 무탈하게 태후가 되었다면 당연히 잘 대해주지 박대할리가 없다. 애초에 손부인이 황후-태후 루트를 밟는다면 손부인과 제갈량의 관계는 군신관계라서 정상적으로는 제갈량 따위가 어찌해볼 상대가 아니다.

또 정사건 연의건 유선 납치는 정치적 관점에서 봐서 오나라에 좋은 게 하나도 없는데 익양대치에서 형주의 소유권을 두고 유비의 지분과 손권의 형주는 빌려준것 이라는 서로 대치중인 시점에서 갑자기 유비의 적통 후계자를 납치했다?[68] 그럼 관우는 형주를 대여했네 안했네 따지지 말고 적법적인 명분으로 번성이 아닌 오나라로 방향으로 진격해야 했다.[69]

정사에선 유선 납치 및 손오로 귀국 후의 행보는 불명, 자치통감보(資治通鑑補) 및 이를 인용한 삼국지집해에 손부인의 최후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후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패배했고 다시 오와 화친을 하게 되었다. 이에 손권은 여동생 손부인을 다시 촉으로 돌아가게 했다. 손부인이 아직 촉한에 도착하지 못하고 난강에 이르렀는데 유비가 죽어버렸다. 이에 손부인은 강에 뛰어들어 자결했고 토박이가 손부인을 불쌍하게 여겨 교기에 제사를 지내주었다. (삼국지집해 선주전 인용 자치통감보) 사람들 사이에서는 교기의 영택부인사(靈澤夫人祠)가 손부인을 장사지내준 곳이라고 대대로 전해졌다. (삼국지집해 선주전 인용 일통지) 이런 손부인의 최후는 말 그대로 연의와 비슷한데 '유비와의 애정 때문에 그를 따라 죽은' 게 아니라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했다고 하면 모든 게 딱 맞아 떨어진다.

연의에선 유비 사후 유선 즉위후 촉오 동맹을 등지로 하여금 맺는다는 식이지만 정사에선 유비가 죽기전에 촉오 화친을 했다고 나온다. 이를 감안했을 때 이릉대전 이후 양국 재화친을 위해 다시 촉으로 보내졌으니 손부인 입장에선 사람이 아니라 공물 비슷한 취급을 당한 꼴이다. 한마디로 오빠인 손권이 정치적인 이유로 동생을 또 다시 촉한으로 추방시켜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손오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약도 없었고 전처럼 멋대로 행동하기는커녕 방에 갇히거나 정치적으로 공격이나 받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겉으론 화친했어도 방금전까지 피터지게 싸우던 사이인만큼 양국 간 악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손부인은 과거에 유비를 우습게 보며 깽판을 치고 유선을 납치한 전과가 있으므로 촉한에서 손부인을 구박해도 손오에서 제지하지 못할 입장이었다.게다가 유비의 뒤를 이을 사람은 본인이 납치하려고 한 유선이며 조정의 실권자는 손부인 때문에 큰 고생을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조운과 제갈량 이였다.이 시점에서 유비가 여전히 홀아비면 모를까, 이미 목황후 오씨가 있어서 이제는 유비의 정실부인 대우도 기대할 수 없었다. 이 막막한 상황에 손부인 입장상 그나마 걸어볼만한 건 유비가 한때는 부인이었다며 약간의 호의는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다지 높지도 않은 가능성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손부인이 도착하기 전에 유비가 죽으면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이제 손오로는 돌아갈수 있을지도 장담 못하고 유일한 희망이던 유비조차 죽었으니 본인은 더이상 어떤 희망도 없다고 판단해 자살했다는 것.

4.5. 손책

삼국지연의에서는 한 화를 통째로 써서 손책의 강동 정복기를 장렬하게 묘사해주었으며, 이것은 용장 손책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주게 된다. 왕랑, 동오의 덕왕 등을 그야말로 철저히 짓밟는 손책의 모습은 확실히 강렬하다.[70][71]

사실 삼국지평화 시대까지는 아직 오나라, 에 비해서 이미지가 명확하지 않았는데, 손견에서 손권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인 손책은 이야기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고 불분명했다. 이것을 3국의 비중을 적당히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사실상의 개국군주인 손책에 묘사를 많이 더해서 크게 띄워준 것이다. 물론 이렇게 손책을 띄워준 덕에 손책은 게임의 제왕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무방할 정도로 삼국지 관련게임에서는 무조건 좋은 대우를 받는다. 삼국지 11의 경우도 손책(용장)은 전투 특기 사천왕이라는 특기를 항우(패왕), 관우(신장), 여포(비장)와 나란히 달고 있으며 삼국지 12에서는 전법을 강습으로 달고 나와서 모든 장수들 중 이동속도가 제일 빠르다. 거기에 삼국지 무장쟁패 2에서는 여포나 전위보다도 더 쎄다.

고대를 죽인 일이나[72] 진등과 싸운 일(정사에 따라 승패가 다르다.)과 같이 부정적인 기록은 넣지 않았으며, 사망씬도 꽤 극적이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다만 극적이라는 게, 우길에게 시달리다 심신이 피폐해져서 죽는다는 얘기라서 다른 의미로 극적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그리 부각되지 않지만, 주유와 의형제 관계가 강조되면서 덕분에 손책과 대교&소교와의 로맨스도 강해졌다. 삼국극에서 로맨스로는 손책, 대교가 여포, 초선과 함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주유와 소교도 만만찮다. 원래 정사에서 이들의 결혼이 약탈혼이라는 걸 생각하면 참 미묘하긴 한데 어쨌거나 수혜는 수혜.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손책이 육강을 토벌한 사건이 삼국지연의에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언급된다. 비록 원술이 시켜서 한 행동이라지만 손책은 죄없는 육강을 박살내고 그 가정을 파탄내다시피 했다. 그런데 삼국지연의에서는 이게 그냥 군벌 A를 토벌하였다는 식으로 짧게만 언급되었다. 결국 손책을 띄워주려고 줄였지만 본의 아니게 원술도 같이 덕을 본 경우라 하겠다.

4.6. 정봉

시대 고증 오류에 따른 삼국지 연의의 대표적 수혜자로 등장시기가 굉장히 이르다. 정사의 정황한장주진동감릉서반정전[73]에서 마지막에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가 후시대 인물이라는데 증거를 보태는데도 말이다. 정사에서 촉한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는 점[74] 때문인지 연의에서 엄청 후한 대우를 받았다. 실제로는 천수를 다해 죽은 장료를 정봉이 사살했다고 묘사되었다.연의에서는 서성과 세트로 나오는데, 실제 정사에서 정봉이 장군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한 기록은 손권 사후부터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혜. 손권 초창기 전투에서 대부분 등장한다. 콤비로서도 덕을 보아, 천막과 지푸라기로 가짜 성벽을 만들어서 위성계로 조비에게 엿을 먹인 서성과 콤비가 되어 맹활약을 하고 장료를 사살하는 활약이 추가되는 등 삼국지 중후반에서는 나름 뛰어난 장수로 묘사되었다. 연의 기준으로 정봉>장료>태사자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75] 그렇지만 정봉의 정사 속 무용담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지는 않아서 그의 포스가 상대적으로 희석된 감은 있다. 그에 따라 강자로서의 묘사가 부족한 편. 실제로 인간흉기 문앙과 비견되는 삼국지 후반부 맹장이었지만 연의에서 추가활약상을 너무 준 만큼 문흠이 위군에 패하고 오나라로 도망왔을 때 추격해온 위군을 필마단기로 적병 수백을 베고 군기를 빼앗은 활약상은 삭제되었다.[76]

오나라 장수들 중에서는 삼국지연의의 최대 수혜자로서 오나라에 속한 장수들 중에 가장 덜 까인 편인 장수이다. 까인 부분은 적벽대전 편에서 서성과 함께 제갈량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점과 손부인에게 데꿀멍 당하는 정도.

4.7. 조무

정사에서는 손견전에서 손견이 조무에게 붉은 두건을 씌워 위기에서 빠져나왔고 손견을 추적하던 서영이 두건을 보고 속은 것을 알고는 포위를 풀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더 이상의 행적이 나오지 않는다. 반면 연의에서는 대영(大榮)이라는 자가 추가되었고 동탁군의 추격을 막고 손견을 구한 것은 정사와 같으나 추격자가 화웅으로 바뀌었고 끝내 화웅의 손에 전사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정사에서나 연의에서나 잠깐 등장하고 사라진 인물이지만 연의 쪽이 더욱 비장하게 묘사되었고 정보, 황개, 한당과 동급의 무장으로 설정되면서 많이 버프를 받았다.

5. 그 외 세력

5.1. 기령

정사에서 행적은 유비를 공격하다가 여포의 원문사극 이벤트로 물러나는 것 이외에는 언급이 거의 없는 원술 수하의 장수이다. 물론, 당시 원술과 유비와의 관계를 볼 때, 그리고 원문사극의 이벤트를 몸소 보여준 여포의 행적을 볼 때는 원술 휘하의 대표 장수였을 가능성이 높다.

다민, 연의에서는 그 행적이 좀 더 구체화되면서 장수로서 수혜를 입었다고 할 만하다.

무려 관우하고 30여 합를 붙을 정도의 용장으로 강화된 것. 게다가 용장이라는 포지션임에도 여포와의 정략결혼을 간언하는 등, 지능적인 부분에서도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원본도 원본이고, 상대하는 측들이 만인지적 2명에 인중적토여포인지라 그들에게 치이고, 치여다니는 모습 또한 많이 보인다. 게다가 관우와의 싸움에서 은근히 불리해지자 휴식을 핑계로 자신의 부장인 순정을 죽음으로 내모는 등, 비겁한 모습까지 보인다.

그래도 정사에서의 짧은 언급에 비하면 삼국지 시리즈에서 원술군의 무력본좌에 등극할 정도로 버프를 받았으니 수혜자라고 볼만 하다.

5.2. 고정

정사에서는 병사를 보내 신도현을 포위하였으나, 유비가 임명한 건위태수 이엄의 구원군에 격파당해 도주했다. 옹개, 주포와 같이 반란을 일으키고 월수태수 초황을 죽이고 자기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고 촉한에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제갈량이 이를 진압하여 옹개는 고정의 부하에게 참살당하고, 고정은 제갈량에게 목이 베였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월수태수로 있었으나 맹획의 권유로 옹개, 주포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영창군을 공격하였다. 이때 제갈량이 인솔하는 토벌군에 대해, 아장(亞將) 악환을 보내 요격했다. 그 후, 제갈량의 이간계에 걸려, 옹개주포에게 배신을 당하였다고 착각하여, 옹개주포[77]를 죽여 제갈량에게 투항하였고, 그 공로로 익주 태수로 임명되었다. 반란분자가 잘못을 뉘우친 충의지사로 바뀐 수혜자.

5.3. 관해

정사에선 잠깐 나오고 사라지는 인물이지만, 연의에선 관우를 상대로 수십합을 겨루고 패배해 죽는다. 마땅히 수혜자 목록에 올라야 하는 인물이지만 원체 듣보잡이라.

정사에서는 공융을 포위하고 쌀내놓으라고 협박했으나 태사자가 부탁한 유비군이 오자 도망가고 끝. 정사 삼국지에서 관해의 등장은 이게 전부다. 관우에게 죽임을 당했던 연의와 달리 생존하긴 했지만 존재 자체가 없어졌으니 생존여부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5.4. 괴량

원래 정사에서는 그저 그런 책사였지만, 연의에서는 계책을 써서 손견을 죽인다. 이 정도면 꽤 많이 버프를 받은 셈.다만 알고 보면 오히려 동생인 괴월이 더 활약했다.일단 연의에서도 동생이 더 뛰어난 인물임을 묘사하는 것은 많다.[78] 특히 조조가 괴월에게 한 평가는 엄청난 극찬이다.[79] 그 예로 유표가 족당의 도적 토벌 때 괴량은 '인의면 다 해결 됨'이라고(...) 했고, 괴월은 '일단 제 명성을 이용해 도적들 대장 불러서 죽이면 거의 항복할 것이니 걔들로 형주 먹으셈' 이라 했고 유표는 괴월의 말을 따랐고 결국 형주를 얻었다. 만약 유표가 괴량의 말대로 했다면.. 다들 알아서 생각해 보자(...).

5.5. 도겸

연의에선 서주에 쳐들어온 조조서주 대학살을 저지르자,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겠다고 나서고 서주 백성들의 앞날을 위해 자식들이 아닌 유비에게 서주를 넘기는 등 인의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정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른 군벌들과 비교하기도 민망한 날강도다.

당시 군벌들 중에 약탈을 한 적 없는 군웅이 거의 없다며 옹호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대부분은 적지에서 일어난 경우다. 자기 백성들을 약탈한 군웅을 영웅이라 칭송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조조의 경우도 야사에서 정욱이 부족한 군량을 고향사람들을 죽여 인육으로 포를 떠서 보급했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인지도 미심쩍을 뿐더러,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정욱은 이후 끝내 고관대작에 오르지 못했다. 도겸은 서주자사였으므로 서주에 속한 하비성을 약탈한 것은 당연히 자기 백성을 약탈한 것이다.

군사적 역량이 형편없는 인물로 묘사되면서 피해를 보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13주 중에서도 풍요롭기로 유명했던 서주를 오랫동안 다스렸으면서도 이제 간신히 연주를 통일해가고 있던[80] 조조를 상대로 지리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방어전을 치르면서 제대로 된 반격 한번 못한 사람을 군사적으로 유능하다고 보긴 불가능하다. 다만 도겸이 팽성에서 참패를 당하였음에도 수성으로 일관하자, 기세를 올리던 조조조차 이듬해 봄까지 이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저 무능한 인물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5.6. 동승

마등과 비슷한 케이스. 물론 이 경우는 대놓고 조정에 반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출신이 동탁의 휘하였고 어가를 호종하는 와중에도 동료들과 세력다툼을 벌여 헌제를 몇 차례 위태롭게 만드는 등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낙양에 복귀한 다음에는 함께 헌제를 모셨던 양봉이나 장양 등을 견제하려고 조조를 끌어들였으니 상당히 이기적이고 보신주의/권력지향적인 성향도 강했던 인물.

그런 것을 유비조조 제거계획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살붙임이 더해지고 나쁜 부분은 쏙 빠뜨려 후한의 충신으로 그려졌으니 엄연히 수혜자라 하겠다.[81]

5.7. 마등

정사에서는 이리저리 줄타기 하는데다 한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군벌이었다. 다만 처음부터 반란자는 아니었으며 원래는 반란군을 토벌하던 입장이었다. 나중에 동탁, 조조가 정략적으로 사면시켜줬다.

게다가 마등의 처우에 대해선 본디 관중의 싸움에 지친 마등이 아들 마초에게 세력을 물려주고 조조가 있는 업으로 스스로 간 것이나 연의에서는 마등의 암살계획을 눈치챈 조조가 헌제의 이름을 팔아서 제멋대로 잡아들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마등의 주살 시점도 마초 봉기 이후가 아니라 이전으로 바뀌었다.[82]

연의에서는 마초의 아버지라는 점에서 띄우기를 받았는지, 유비와 함께 황실을 보위하려는 뜻을 가진 충의지사로 묘사되었다. 당연히 반란을 일으킨 것과 친동탁파라는 사실도 전부 삭제되었고 오히려 반동탁연합에 참가했으며 동승의 혈조 사건에도 참여했다. 최후도 조조를 암살하려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것으로 멋지게 표현했다.

즉, 한나라의 역적이 촉장이 된 아들 덕에 한의 충의지사로 설정이 180도 바뀐 케이스다. 게다가 2차 창작물에서 아예 신이 되거나, 편애를 받기때문에 騰神이라고 까인다.

다만 분명 반란자에 불과하고 연의에서 미화받았다며 까이는 인물이긴 하나 의형제 한수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반란을 목적으로 활동했다고 보긴 어렵다. 군 커리어의 시작부터가 원래 조정의 공식관원으로서 반란군을 토벌하는 입장에 있었다가 조정관리의 실책 이후 반란군으로 돌아선 인물이기도 하고, 성격 자체도 정사 인증으로 반란자에 대한 묘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본래 성정이 어질고 온후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를 공경했다고 한다.

또 건안 무렵 전장군에 임명되었을 때는 외적의 침입을 막고 도적을 막았으며 어진 이를 등용하고 백성들을 구제하여 이각, 곽사 이후 난장판이던 관중을 안정시켰다고 한다. 반란자이긴 하지만 이런 인물이 단지 연의에서 마초의 아버지라고 엄청 띄워줬다는 이유만으로 오히려 인품이 지나치게 폄하받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 아들 마초처럼 적어도 어설프게 아는 작자들이 정사랑 연의랑 다르다며 무작정 깔만한 인물은 아니다.

5.8. 사마가

정사에서는 무릉만(武陵蠻)의 왕으로 이릉대전에서 유비를 돕다가 육손에게 패해 죽는다 이게 그냥 끝이다. 이릉대전에 유비를 도와주러 참전했다가 육손의 반격으로 사망한 게 전부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그 오나라의 수위급 장수이자 삼국지 전체로 따져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무예를 가진 감녕을 헤드샷으로 사살했다고 묘사되었다. 이 때문에 일부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이런 잡장이 90대 무력이라는 말도 안되는 능력치를 들고 등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삼국지 3.

물론 연의 기준으로 따져도 일기토가 아닌 활로 사살한거라 지나치게 높은 무력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다. 궁술 관련 특화라면 모를까. 그래서인지 후반으로 갈수록 무력은 80대 정도로 떨어지고 삼국지 12에서는 병과가 궁병에 진짜 궁술 관련 특기인 원사병격을 받았다.

5.9. 서모

서서의 어머니이다. 정사에서는 평범한 붙잡한 할머니였지만 연의에서는 여장부로 각색되었다.

5.10. 신평

원소 사후 곽도와 함께 원담을 지지하고 원상과의 사이를 이간질해 원가 분열에 일조했으나 연의에서는 트롤링은 곽도 혼자 다하고 신평은 조조에게 항복사절로 갔다가 원담 말고 자기를 섬기라는 권유를 딱 잘라 거절하고, 원담이 자길 의심하자 분사하는 충신으로 나온다.

5.11. 심배

부정부패, 권력 독점, 정치 싸움과 원가 분열에 앞장섰던 부정적 이미지는 아예 통편집되었다. 능력적인 면에서는 기주의 행정을 담당하는 등 행정적 부분이 나오지 않긴 했지만 군사적 활약이 대폭 늘었고 지모 쪽으로도 어느 정도 보정을 받았고 조조에게 사로잡혀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 "내 주인은 북쪽에 계신다"라는 실제 역사의 유언을 그대로 재현하여 그야말로 원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었다.

5.12. 안량, 문추

관우 버프의 수혜자. 역시 관우에게 죽을 운명이지만 그 전까진 절대무쌍의 힘을 발휘했다.[83] 실제로도 이들은 하북의 명장 소리가 나왔고 이들의 패사가 원소군에 상당한 동요를 일으켰다는 기록만 봐도 원소군의 필두를 맡을 만큼 뛰어난 무인들이었음에는 의심이 없지만 연의에서와 같은 맹활약은 사서상에 나오지 않는다. 정사에선 행보상으로는 하북의 명장이라는 말 빼곤 백마, 연진에서 죽었다는 기록뿐인데 사실 이건 원소군에 있던 시절 장합같이 기록이 부족한 원소군 장수들 전반의 문제들이다. 오죽했으면 삼국지연의에서도 원소군은 주로 문관, 책사들만 주로 비중을 받을까. 연의에서도 주로 용맹만 앞서는 인물들로 묘사되는데 실제 정사에서도 이들은 용맹하긴 하지만 그뿐이라는 평가가 있기도 했다.
순욱이 조조에게 아뢰기를 "안량과 문추는 필부의 용맹을 지닌 인물에 불과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 했다.
저수가 원소에게 아뢰기를 "안량과 문추는 성격이 병력을 지휘하기엔 지나치게 급하고 인격적으로 도량이 너무 좁아서 군대를 맡기면 안됩니다."라 했다.

다만 공융처럼 안량과 문추를 칭찬하는 평가도 있다.
공융이 조조에게 아뢰기를 "안량과 문추는 능히 삼군을 이끌 지도자입니다."라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안량은 관우에게 너무나 허무하게 죽었고 문추는 안량보다 더욱 허무하게 죽었다. 이쪽도 관우를 띄우기 위해서 보정을 받아먹은 예.

5.13. 여포

정사에서도 여포는 무력이 뛰어나서 '비장(飛將)'이라고 사람들에게 불렸다고 기술되어 있고 맹장 곽사와의 일기토나 원문사극의 일화도 사실이지만, 연의에서처럼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거나, 허저, 전위, 하후돈, 하후연, 악진, 이전 등의 여섯 사람과 동시에 싸우는 천하무적의 무력킹까지는 아니다. 연의에서 절대적인 무력을 지닌 것처럼 묘사되는 반면에 정사에서는 그냥 힘이 센 무장. 그의 인간적 결점도 오직 배신과 부하들의 말을 안 듣는 것으로만 제한되어있고 부하들의 아내와 간통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84] 도리어 초선을 통해 로맨틱한 남자로 비추어지기도 한다.[85] 무력만 빼면 이 사람과 상당히 비슷한 듯 하다.

정사에서는 여포가 갈곳없는 자신을 받아준 유비의 뒷통수를 거나하게 친거지만 연의에서 여포가 유비를 배신한 장면에서는 모두 여포에게 유비를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준 것도 특이하다. 유비가 원술과 싸울 때 뒤치기한 장면에서는 여포는 오히려 이전에 장비가 도발을 하거나 대놓고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도 그냥 참거나 떠나려고 하는 수준에 그치고 유비의 제안으로 얌전히 소패성에 가있었는데 장비가 여포의 장인으로 설정된 조표에게 술을 못마신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강요하는 것도 모잘라서 채찍으로 조표를 매질하고 여포에게도 폭언을 함으로써 조표에게 원한을 샀을뿐만 아니라 여포를 먼저 도발한 셈이 되었고, 원문사극 장면 이후 여포가 유비를 공격한 것도 여포는 가만히 있는데 장비가 도적으로 가장해서 여포의 말을 빼앗아갔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며, 조조의 중재로 유비와 화해하면서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나중에 다시 유비와 싸우게 되는 것도 조조가 유비에게 여포를 제거하자고 포섭했을 때 유비가 동의하면서 여포의 뒤통수를 치겠다고 조조에게 서신을 보낸 것이 여포에게(정확히는 진궁에게)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유비군이 여포의 말을 훔쳐갔다는 것은 영웅기에 나오는 기록이고 연의에서도 여포가 서주를 통째로 차지할 욕심으로 유비를 공격했다는 묘사는 빠지지 않지만,그래도 여포는 얌전히 있었는데 장비가 여포의 장인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매질했다거나 여포의 말을 도둑질 했다거나 유비가 먼저 여포의 뒤통수를 치려고 했다는 명분이 붙은 것은 확실히 인격 면에서 수혜라고 할 만하며 좀더 극단적으로 보면 여포는 유비와의 관계에서 먼저 잘못한 게 없음에도 일방적으로 유비쪽에서 민폐를 끼쳐놓고선 여포의 통수를 친거라고도 볼수 있다.

물론 나관중의 이상적인 모델인 '충의지사'에는 백만 광년 쯤 떨어진 인물이었지만 최강의 무장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부여받았으며 여기에 인간적인 찌질함과 나름대로의 명분이 더해져서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기회주의적인 군웅 중 한 명에서 단숨에 주연급 조연으로의 발돋움이다. 또한 나관중은 여포를 무력에서 최종보스의 포지션으로 올려놓기 위해 삼국지 전체최강을 여포로 설정해 놓고 이 때문에 유비-관우-장비 3형제가 여포에게 동시에 덤벼서 겨우 물리치는 일기토를 보이는 것으로 묘사했다. 2~3 스테이지의 보스 정도밖에 안되는 캐릭터를 나관중이 최종보스로 대폭 승격시켜 놓은 셈. 당연히 작중 일기토도 대부분 허구다.

또한 정사에서 손견과 싸운 양인 전투 때와 학맹의 난 때에는 겁에 질려서 상황파악할 생각은 안하고 무작정 도망부터 치는 추태까지 보였는데 연의에서는 말끔히 삭제.

이러한 연의의 버프 덕분에 후대의 2차 창작물들에서 여포의 이미지가 대폭 상승하기까지 한다.대표적인게 삼국지 조조전이나 진삼국무쌍의 여포.

한가지 소소한 너프라면, 정사에서의 여포가 어느 정도 학식에 능통했다는 점이[86] 연의에서는 드러나지 않아서 무식한 놈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지만 어차피 정사의 여포가 지략이나 학식에서 크게 부각되는 것은 아니므로 장합이나 장비처럼 큰 피해를 입었다고 보긴 힘들며 무예에서 확실한 버프를 받았으니 수혜라고 할만하다.

5.14. 오습

본래는 곽사의 부하로 천자를 핍박했다가 후에는 주군을 배신하고 습격해 죽인 인물이지만 연의에서는 곽사의 부하라는 것과 천자를 핍박하는 것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곽사를 죽인 것을 통해 역적을 죽여 한 황실을 도운 이미지로 남았다.

5.15. 유표

유비와 의형제를 맺고 유비를 의동생으로 뒀다는 설정이 추가. 그리고 유비를 매우 적극적[87]으로 도와줬다고 묘사되었다.

반면 황제에게 바치는 조공을 끊고, 교사를 지내며 황제와 동일한 복식을 갖추어서 칭제를 시도한 것은 생략되어 역적 이미지는 없어졌다. 본디 황제에게 공물을 보내는 군벌들이 거의 없었는데 유표는 그나마 좀 보낸 편이라 보정이 들어갔다고 보기는 무리인 것이, 조조의 협천자 이전까지 관동에서 황제의 최대 지지자는 원술이었다. 물론 원술과 달리 강역 내에서의 행정은 매우 건실한 편이었기에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편. 다만 초중반부에는 별 비중이 없고, 하필 역사상으로도 우유부단함이 두드러졌던 말년의 레임덕(...)시기에 유비와 엮이면서 분량이 집중되어 우유부단한 이미지가 강조되는 등 이미지 상으로 약간의 손해를 봤다고 볼 수는 있다.

5.16. 원담

원소가 그를 폐출했다는 사실이 쓰여있지 않다. 이것은 후에 원담원상에게 한 막장행위를 어느 정도 정당성 있게 보이게 한다. 그리고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담을 옹호하는 면도 있다. 원담이 명목상 장자임을 내세웠기 때문에 호의적으로 기록한 게 아닌가 싶다. 당시는 유교 사회였으며, 이후 비슷한 전철을 밟고 망한 ¥유표 일가(유기, 유종)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몇살 못살고 죽은 손책도 나관중에 의해 장자버프를 받았다.

그리고 연의에서 서주를 잃고 방황하는 유비를 받아들인 게 바로 청주를 관할하던 원담이었다. 그가 유비를 융숭하게 대접한 뒤 업의 원소에게 보낸 것. 유비와 얽힌 이상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는 듯.

다만, 군사적인 활약이 대부분 잘려나갔기 때문에 군재쪽으로는 손해를 보았다.

5.17. 이유

정사에서 이유는 기록이 한두 줄 정도 있는 듣보잡 인물에 불과하다. 다만 동탁의 명령으로 소제를 독살한 건 사실.

연의에서는 그걸 뻥튀기했는데 엄청난 회춘을 거쳐 동탁사위이자 심복이 되어 온갖 계략과 묘계를 짜내는 동탁 휘하 최강의 모사로 만들어놨고, 왕윤초선이 꾸민 연환계를 간파해내는 모습을 보여서 삼국지연의 극초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킨 인물이 되기까지 했다. 다만, 이런 모습들 때문에 완전히 삼국지연의의 최대 빌런급 인물로 이미지가 낙인찍히게 된 건 옥의 티라고 볼 수도 있다.

5.18. 장임

정사에서 방통이 죽기 전에 유비에게 포박당해 회유를 거절해 죽는 인물이었나, 연의에서는 방통를 죽이고, 유비를 거의 포박할 뻔하고 장비를 고전하게 하는 명장으로 등장한다. 사실상 제2의 화웅이라 봐도 무방하다. 명장 포지션은 확실한 게 낙성을 지키다 항복한 오의, 뇌동, 오란"장임을 잡지 못하면 저 성 못넘어요."라고 하기도 했다.

5.19. 조숭

정사에서의 매관매직 사건을 연의에서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연의만 보면 그저 억울하게 살해당한 사람으로 보인다. 조씨 일족 중에서 드물게 수혜자.

5.20. 진궁

정사에서 여포가 말을 안 들어서 학맹과 모의해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한다던지, 여포의 처인 엄씨가 여포한테 진궁은 고순과 불화하고 조조가 우리보다 진궁을 후대해줬는데도 배신때렸으니 진궁한테 성 전체를 맡기면 안된다라고 말하는 장면같은 게 대거 삭제됨에 따라 충신 진궁의 말을 미련한 여포가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서 수혜를 봤지만, 그냥 조조의 부하 출신이었던 진궁이 조조가 동탁암살에 실패하고 그것을 붙잡고 풀어준 중모현 헌령으로 나오고, 이후에는 조조의 의기에 감동하여 조조를 따라가다가 여백사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조조를 죽일까 하면서 망설이다가 떠나게 되고 조조하고 진궁의 관계가 한때는 더욱 가까운 사이였다고 각색되었다.

연의에서 진궁이 긍정적으로 묘사가 되었지만 그 여백사를 죽인 조조보다 더한 패륜아인 여포를 따르는 모습과 유비를 쫓아내서 서주를 얻으려고 한 것을 보면 완전히 수혜를 받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처음에 서주를 침공한 것은 장비가 술을 안 마신다는 이유 + 여포의 장인이라는 이유로 죄없는 조표를 두들겨패면서 조표가 원한을 품고 여포를 부른거고, 두번째로 소패로 침공한 것 역시 장비가 여포의 말을 빼앗은 게 원인이었고 이후 유비를 다시 친 것도 조조의 중재로 여포는 유비와 화해를 했는데 정작 조조가 유비에게 여포를 죽여버리자 했고 유비가 여기에 동의하여 서신을 보내던게 발각된거라 확실히 명분이 생겼으므로 수혜를 받았다 할만하다. 그리고 이후에 나오는 드라마 삼국처럼 연의를 기반으로 한 2차 창작에서는 여포의 막장성을 어느 정도 희석시켜서 진궁한테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5.21. 조표

정사에서 조표유비를 배신한 것은 그냥 깔쌈하게 유비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유비의 뒷통수를 친거지만, 연의에서는 장비가 술을 마실 줄 모른다고 하는데도 계속 조표에게 술강요를 했으며 여포가 조표의 사위라는 이유로 네놈을 때리는 게 여포놈을 때리는 것과 같다면서 채찍으로 얻어맞게 됨에 따라 장비에게 원망을 품고 배신하게 된 것이라, 연의에서는 조표의 배신에 확실한 명분이 주어졌으므로 소소하지만 수혜를 입었다 할만하다.

5.22. 착융

정사에서는 도겸에게 식량 수송업무를 맡게 되자, 그걸 꿀꺽해서 불교 전파자라는 착한 시민 코스프레를 하더니, 서주 대학살을 피해 광릉으로 도망칠 때 그 곳 태수 조욱의 환대를 받자, 되려 조욱을 죽여버리고, 그 재물을 약탈, 끝내 유요에게 의탁하던 중 손책에게 예장이 공격당할 위기에 놓이자, 유요의 부하들을 죽이고, 예장을 점거하는 미친 광기를 보여주고, 결국 모든걸 잃고 도망치던 중 백성들에게 살해당하는 배신자다운 최후를 맞이했다.

그런데 연의에서는 정사의 배신자 이미지나 일화 따위는 싹 편집되고, 아예 처음부터 유요의 부하 D 정도의 포지션으로만 등장하며, 심지어 우저를 지키다가 패배한 장영을 유요가 죽이려하자, 이를 극구 말리는 지극히 상식인(?) 포지션으로 완전히 이미지가 세탁되어 있다. 비록 정사의 화려했던 이력에 비해 등장 분량이 대폭 줄어들긴 했지만, 유요가 끝내 손책에게 패하자, 유요와 함께 원술에게 의탁하러 도망간다는 식으로 등장이 마무리되며, 정사상의 비참한 최후까지도 편집되는 혜택(?)을 누렸다.

5.23. 한복

이 경우는 미묘하다. 정사에서는 남을 이용해 먹으려는 기회주의자였는데 연의에서는 어리석지만 그래도 사람이 좋은 인물로 그려졌다.

즉, 원소가 한복을 속여 기주를 빼앗은 건 정사에선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연의에선 간계한 속임수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돼버렸고 한복은 원소에게 속은 착한 사람이 된 셈.

5.24. 한수

연의에서도 정사와 마찬가지로 군벌로 등장하지만 언급이 적어서 마등에 비해 약한 군벌처럼 여겨지는 경향도 있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조조와의 싸움에서 정사에서는 끝까지 항거하다가 조조에게 사망하는데에 비해, 연의에서는 사망이 아니라 팔 하나 잃는데만 그치고 조조에게 항복한다.

또 초반부에 마등과 함께 이각, 곽사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도 황제가 마등과 한수에게 밀서를 보내 부탁해서 내려온 것으로 묘사된다. 마등과 세트로 묶여 의리면에서도 혜택을 본 셈.

게다가 "병사가 강을 건너는 도중에 공격하라"는 병법을 언급하면서 조언을 하는 등(게다가 먹혔다.), 지능적으로도 어느 정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 덕분에 삼국지 시리즈에서 한수는 마등/마초군의 브레인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사에서는 머리를 쓰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5.25. 화웅

연의에선 관우를 띄우기 위한 장치로 등장하지만, 그 이전까진 손견을 기습하여 격파하고 여러 가공 무장들을 끔살하는 등 이런저런 활약이 있었다. 또한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려 하십니까?" 하는 인상깊은 대사까지 남겼고 덕분에 여포를 띄워주면서도 오히려 본인이 활약할 기회를 채가며 여포에게도 예를 갖춘다는 상당히 인상깊은 모습을 남겼으며, 오히려 화웅의 상관이었던 호진이 연의에선 화웅의 부장으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정사에는 손견전에 손견에게 패해서 전사한 사실만 달랑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심지어 동탁전에는 본래 주장이었던 호진이 손견에게 패했다는 사실만 있을 뿐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더구나 손견을 대파해 손견이 조무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할 만큼 굴욕을 안겨준 장본인도 본시 화웅이 아니라 서영이었다. 한마디로 화웅 하나 띄운다고 호진은 물론이고 서영까지 폄하된 셈.

5.26. 효인황후 동씨

연의에서는 그저 어머니를 잃은 유협을 거둬 키우고 그의 총명함에 주목해 차기 황제로 밀어주다가 하태후에게 악독하게 복수당한 인물로만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그저 멍청하게만 그려져서 묘하게 수혜를 받았다는 평을 받는 아들 영제 이상으로 심하게 미화된 인물이다.

영제가 매관매직을 하도록 부추겨 후한 멸망의 일익을 담당한 인물이며, 최후에도 순전히 억울하게 며느리에게 복수당한 것이 아니라 소제가 황제가 된 이후 정무에서 배제되자 이에 대해 항의했는데, 항의야 할 수 있다 쳐도 그 내용이 조카[88]를 이용해 하진을 죽여버리겠다.는 선전포고 수준의 협박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권력 싸움을 보면 유협을 황제로 내세운 의도 역시 크게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6. 정사에 등장하면서 연의에는 등장하지 않은 악인들

실제 역사에는 각종 악행을 저지르거나 평가가 안 좋은 인물과 결탁했음에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악행이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황호와 함께 촉을 말아먹은 진지[89]와 거짓격문으로 손견을 꾀어 왕예를 추궁하러 가게 만들고 왕예를 자살하게 만든 조인이 있다.

7. 미묘한 경우

7.1. 일부 가공인물

피해자 항목에도 수많은 일기토 전용 엑스트라로 동원된 가공인물들이 거론된 만큼, 반대로 일부 대접이 좋은 가공인물들도 수혜자 항목에 추가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주창. 관우라는 주인을 따른 덕분에 조운과 엮인 가공인물이라는 사망 플래그를 깨고 당당히 생존, 거기다 선역으로 고평가 받는 인물, 사실 주창의 경우 연의 이전, 그 민간전승의 일화가 송나라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물이라서 좀 미묘한 편이긴 하지만. 그리고 좀 마이너한데 가공인물들인 촉한의 영수, 노손 등도 여기에 해당되는데 영수는 실제로는 강유 본인이 고안해낸 제갈서 페이크 전략을 제안해냈고 노손도 연의에서 창작한 가공인물이지만 종회를 죽일뻔 하는 기염을 토했다.[90]

7.2. 공손찬

군웅할거 초반, 북방 4주에 압도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신생 세력 원소를 압박하던 강자였으나 연의에서는 오히려 공손찬 쪽이 영세 군주에 가까운 인상으로 나와서 그 강대함을 알 길이 없다. 작중 취급은 유비 일행에게 구원당하는 피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계교 전투야 정사에서도 공손찬이 패한 전투이니 피해가 아니라 쳐도 사서상에 나왔던 공손찬의 미친 무용과 군재는 살짝 언급되는 수준에만 그치고 호뢰관에서 여포에게 발리기까지 거의 능욕에 가까운 왜곡을 당했다.

이렇듯 효웅 캐릭터가 싹둑 잘려나간 대신 유비 버프로 인해 정사에서의 막장 행각들은 잘려 악독하던 인격이 많이 순화된 것은 확실한 버프. 다만 여기에서도 주의해야 할 점은 악인 속성이 순화되었을 뿐, 근본적으로 소설의 공손찬도 선한 캐릭터는 아니다. "포위된 자들을 구해주면 이후 병사들은 남들이 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힘써 싸우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병사들을 구원하지 않고 버리는가 하면 조운에게도 "공손찬도 원소와 다를 바 없는 인간" 이라고 까인다. 사실 정사에서 조운이 공손찬에 의탁할 때도 "딱히 니가 덕있는 사람이라 너한테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어쩌다 이렇게 왔다"는 식으로 조운한테 까였고 결국 조운은 형이 상을 당했다는 핑계로 낙향해 버린다. 연의에서 확실하게 성인군자로 환골탈태한 도겸과는 다른 부분.

현대의 컨텐츠들에선 정사드립을 통한 촉까위빠 성향 때문인지 성격적으로도 찌질하게 묘사되면서 전투력 면에서는 정사 보정을 못 받고 연의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온다. 하지만 공손찬의 적수였던 원소 역시 정사 보정은 못 받는다. 원소나 공손찬이나 삼국지연의의 중심 플롯 자체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물론 당시에도 비난 받았고 현대에도 두고두고 까이는 유우와의 대립이 잘리면서, 공손찬을 무능한 장수로는 기억해도 인간말종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몇 없다는 건 큰 수혜다. 반대로 이렇게 각색된 바람에 충분히 동탁 못지 않은 악역으로 만들 수 있음에도 빌런으로서 활약을 할 기회를 잃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정사에서의 공손찬은 막강한 세력과 최악의 인성을 동시에 가진 엄연한 중간보스이나, 연의에서는 무력도 악행도 잘리고 무능함만 강조되는 히로인조연이 되었다.

7.3. 누규

원래 유표를 따라 형주 북부를 관리하던 소군벌이었고, 조조 밑에서도 조조가 누규의 계책을 따라잡지 못하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유능했지만, 마지막에 경솔한 발언으로 조조의 뒷담을 까서(위서) 혹은 야심을 드러내서(오서) 처형당한 인물이다.

그러나 연의에서는 '몽매거사'라는 은둔 현인으로 캐릭터가 뒤바뀌었고 조조에게 "모래에 물을 뿌려 추위로 굳히면 모래로도 방벽을 만들 수 있다"는 계책을 알려준다.

결과적으로 컨셉이 판이하게 바뀌어서 비중과 능력 면에서는 너프를 받았지만, 양수와 비슷하게 유능하고 지혜로웠지만 처세를 잘못한 책사에서 고결한 은둔 현인이 되었다. 그런데 인물 외적으로도 기껏 마등과 마초를 한나라의 충신으로 탈바꿈 시켜놓고선 그런 마초를 놔두고 '고결한 은둔 현인'이 조조를 도왔다는 점에서 개연성이 부족해졌다.

7.4. 동탁

무능하고 비열한 지휘관에 잔인하고 포악한 권력자로 나오는 등 기본적인 묘사가 워낙 부정적이지만, 그게 사서상의 행적, 평가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권모술수를 부리는 등 머리 쓰는 역할이 이유에게 넘어간 것 외에는 전반적으로 딱히 손해를 봤다고 보긴 어렵다. 동탁 개인의 무용 역시 이미 최고권력자가 된 동탁이 선봉에서 무쌍을 찍는 것도 말이 안 되거니와 권력을 잡는 시점의 동탁은 상당한 고령이었기 때문에 강조되지 않는 편이 자연스럽고, 오히려 원소와 서로 칼을 뽑아들고 대치하는 일화나, 암살을 시도하는 오브를 역관광 태우는 일화, 여포에게 창을 던진 일화가 전부 묘사되는 등 그냥 만만한 늙은 뚱보가 아니라는 것이 작중에서 이미 수차례 강조되기에 너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진정한 수혜는 여포와 마찬가지로 분량에 있는데 관동 연합군에 '반동탁 연합' 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그 진행을 실제 역사와 완전히 다르게 마개조시킨 결과, 동탁은 (작중 동탁 자체의 능력과는 별개로) 작중 포지션을 대마왕, 한없이 절대악에 가까운 최종보스로 확고히 자리매김했고, 여기에 초선을 둔 여포와의 삼각관계 끝에 암살당하는 드라마틱한 최후까지 더해졌기에 연의를 기반으로 한 평역, 혹은 3차 창작물에서는 오히려 작품 초반의 절대악적인 메인빌런으로서 어마어마한 푸쉬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작 연의에서 동탁 자체의 능력은 무능하게 묘사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작품 외적으로는 장점이 되었는데, 제갈량의 남만원정급 판타지로 허황되게 각색되었으나 이미 독자들의 뇌리에는 강하게 남은 반동탁연합의 구조 자체를 손보는 모험[91]을 벌이지 않으면서도 작중 대마왕 포지션의 동탁에게 메인빌런 역에 걸맞은 능력과 카리스마를 주는 것만으로 독자들에게 연의를 따라가지 않아 독창적이고 신선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기 때문.

이 때문에 승자의 역사에서 왜곡된 비운의 개혁가, 이민족 출신이라 한족 중심사관에서 배제되었다는 등 골수팬들 뒷목 잡게 하는 헛소리 또한 쉽게 나타난다. 작품 자체에서는 부정적으로 묘사되었으나, 오히려 이야기 전체의 뼈대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비틀기 쉽다는 점 때문에 작품 외적으로는 엄청난 고평가를 받기 쉬운 미묘한 케이스.

7.5. 문앙

정사에서 무쌍찍은 것도 나오고, 8척 장신의 소년 장군이자 동편과 창의 명수로 그려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를 조운과 견준 시까지 창작되어 실렸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에게 얼마나 거대한 버프가 들어갔는지를 감안하면 후반기 인물치고는 엄청나게 고평가를 해준 셈.

단신으로 사마소의 추격병을 격퇴할 때, "쥐 같은 놈들이 어찌 목숨을 아끼지 않느냐!"라는 대사를 내뱉었는데, 후반부 인물이라서 쉽게 묻히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삼국지의 멋진 대사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또다른 문앙의 주요 전공인 독발수기능 토벌은 해당 파트 자체가 연의에서 통째로 생략되었다는 피해를 입었고, 문앙의 사망은 삼국통일 이후 시점이라 연의에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인물의 마무리가 흐지부지되어 그냥 제갈탄의 난 이후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즉 연의에서 버프와 너프를 모두 받은 셈.

7.6. 방통

적벽전투에서 연환계를 성공시켜 연합군의 승리에 큰 도움을 주는 버프를 받았고 그동안 쌓인 업무를 반나절만에 처리해서 장비를 놀라게 하고 유비한테 직접 능력을 보여 증용되는 수혜를 입었다.

하지만 외모가 추하다는 설정이 붙은 데다가 제갈량의 충고를 자신에 대한 질투로 착각해 공을 서두르다가 장임의 습격으로 죽는 너프를 받았다.

7.7. 양수

채옹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것 같은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일화가 나오지 않고 계륵의 의미를 알아채서 죽는 것도 똑같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조조가 양수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그의 말대로 철수하기를 거부하고 싸우다가 큰 부상을 당한다. 결국 죽었지만 양수의 말이 옳았다는 게 증명된 셈.

7.8. 원술

정사의 원술은 삼국지연의에서 나온 것보다 더욱 악행을 많이 했다. 손책을 시켜서 죄 없는 육강을 토벌시킨 것, 기껏 손책이 육강을 토벌해놓으니까 그 대가로 주겠다는 여강태수 자리를 뜬금없이 유훈에게 줘서 손책의 뒷통수를 후린 것[92], 손견옥새를 발견하자 손견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옥새를 강탈한 것 등등 정사에서 원술의 개차반스러운 행동들 상당수가 연의에서는 잘려나가거나, 간단하게 언급되는 정도에 그쳤다.[93]

다만 육강 토벌의 경우는 나관중이 원술을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라 손책을 띄워주려다가 원술까지 덤으로 수혜를 입은 경우고, 본디 주종관계에 가까웠던 손견과의 관계가 대등한 입장으로 묘사된다거나, 찌질한 계략이나 세우면서 손견을 팀킬하다 빡친 손견에게 죽을 뻔하는 등 전반적으로 찌질한 이미지가 강조됨과 동시에, 군웅할거 초반 동탁 토벌전 때 단독 낙양 입성에 성공하며 원소, 동탁을 견제하는 정치적 신성으로 떠올랐던 위상은 완전히 편집되는 등 분량 면에서 크게 손해를 본 편이라 전반적으로는 너프에 가깝다.

7.9. 유비

누가 뭐래도 삼국지연의주인공인 만큼 시작부터가 뭔가 다르다. 연의에서의 그의 이미지는 부드럽고 자애로우며 인정이 많은 군자다. 스스로는 능력이 없으면서도 사람을 잘 다루는 한고조 유방과 유사한 타입의 군주로 묘사된다.

정사도 인물평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연의에서의 유비는 개인의 능력이 과소평가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피해자의 유비 문단 참조.) 전투에서 연전연패하여 계책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우유부단하여 결단력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인정에 치우쳐 중요한 선택을 그르치는 모습도 보여준다. 실제로는 독우를 직접 두들겨패고, 칼을 들고 사신을 위협하는 등 열혈스럽고 과격한 인상이다. 군재도 모자란 것이 아니어서 유대, 왕충을 관광태우고 하후돈의 대군을 격파하는 등 그가 지휘하여 승리로 이끈 싸움도 많다. 이렇듯 그가 보여준 모습은 당시 일반적인 군웅들의 행동원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나관중은 여기서 효웅, 장수로서의 유비를 잘라버리고 무위의 치로서의 캐릭터로 재창조해낸다. 여기서 중국인들의 인물상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이 무위의 치는 한고조 유방을 비롯하여 중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었던 친숙한 영웅상이다. 사실 유비를 유방에 비유한 건 정사 삼국지 저자 진수부터가 그랬으니 이런 인물로 재해석되는 건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의 재능은 매력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유방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듯, 진정한 군주의 덕목은 일선에서 재능을 뽐내기보다는 가슴 속에 큰 계책 하나를 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합비에서 장굉손권에게 올린 간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상을 읽을 수 있다.

이로서 유비는 다른 군벌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인물상을 가지게 되며, 특히 개인의 재능이 극에 달해있던 조조와 대비되는 캐릭터로서 완벽한 대비구도를 만들게 되는데 이는 둘의 싸움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즉 유비는 난세 속을 헤치고 나가는 단 하나 남은 신의의 사자로서 다른 인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묘사되는 것이다. 원소, 조조가 아무리 세력을 떨쳐도 유비의 영웅상에는 근본부터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사에서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 유비의 이중성을 만든 점에서 엄청난 디메리트. 거기다가 반대급부로 능력 면에서 많이 손해를 보기도 하였다.

삼국지연의/피해자 항목에선 유비가 미묘한 경우에 서술 되어 있다. 위에서의 서술대로 정사에서의 능력을 모두 잃어버린 것, 이중성으로 인해 수혜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입었기 때문.재밌게도 이건 유비와 닮았다는 선조인 한고제가 초한지 소설에서 은근히 능력치 너프를 받는 것과 유사하다. 정사의 한고제 역시 단순히 사람좋은 건달만은 절대로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 때문인지 삼국지 게임에서 고대무장으로 한고제가 나오면 후손보다도 능력치가 낮을 때가 종종 있다[94]

7.10. 유종

연의에서는 조조에게 암살당해 일찍 죽지만, 형을 후계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탐욕스러운 모습은 나오지 않고 내부의 암투와 조조 세력에게 이용당할 뿐인 착하고 힘없는 아이의 모습으로 나온다.

7.11. 정무

아버지가 그 유명한 정욱이란 이유로 촉vs위 2세 대결의 위나라 측 책사로 나왔다. 무적 기믹을 받은 조운에게 잠깐 위기를 주기 위해 상향받은 케이스다. 그러나 그 장면만 빼고는 그 이후로 전혀 나오지 않는데다 결과적으로는 지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수혜를 받았다고 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다.

정사에서는 정욱의 뒤를 이어받았다는 기록만 있고 별다른 활약상은 없다.

근데 연의에서는 하후무의 참모로 등장해 그 무적의 조운를 매복 계책으로 잠시동안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메리 수 관흥, 장포의 방해로 실패했지만. 조운를 위기에 처할 정도의 지력이 돋보여서 코에이 삼국지 시리지 초창기에서 지력 80대 이상을 차지한 적이 있다.

7.12. 조조

사실 나관중이 작정하고 띄워주기 했다기보다는 유비의 숙적이자 라이벌 포지션으로 받은 간접적 수혜자. 후반 들어 악인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나관중이 삼국지연의를 집필할 당시 조조의 이미지는 그냥 절대 악이었던 것[95], 오히려 연의야말로 조조의 긍정적 재평가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될 정도.[96]

유비의 활약이 적은 초반부를 장식하는 주인공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허자장으로부터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는 인물평을 들으며 껄껄 웃는다든가 동탁을 죽이는데 실패하고 달아나 반동탁연합군을 주도하며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자 다른 군웅들을 질타하고 자신의 군세만으로 동탁을 추격한다. 사방에 적을 둔 연주에서 일어나 사방에서 몰려오는 여포, 원술, 유표, 장수, 원소 등 당대의 쟁쟁한 군웅들과 사력을 다한 혈전을 벌인다. 이각, 곽사로부터 핍박받는 천자를 구해내고 허도에 새로운 조정을 새우는 등 사직을 받들며 나라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동탁 암살 등의 이야기를 새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원소군의 포로들을 생매장한 일화가 어물쩍 넘어가는 등 상당한 보정을 받았다. 안목이 좋기로 유명한 유비조차 처음엔 천대했던 방통을 처음부터 높이 평가하고 매우 정중하게 대접한 유일한 군주이기도 하며, 관우를 휘하에 두고 벌어졌던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 유비의 숙적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관우를 후하게 대접하며, 결국 관우가 떠나려고 마음 먹었을 때도 내적갈등끝에 쿨하게 보내주고 무사히 돌아가길 기원해주는 대인배급의 멋을 선보이기도 했다.

능력 면에서 적벽대전, 한중공방전 등 제갈량이나 주유, 법정, 장수, 마초 등에게 당하는 등 손해를 보긴 했으나 당시 소생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던 조조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했다는 점 또한 존재한다. 덕분에 조조는 고전소설에선 찾아보기 힘든 입체적인 캐릭터성을 갖게 된다.

7.13. 황개

일단 손견을 따르던 시절에 일기토로 소소한 활약이 꽤나 된다. 이 때문에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도 대대로 80대 무력을 확보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적벽대전에서의 활약상으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다.

우선 제갈량이 동오의 문관들과 설전을 벌일 때 난입하여 동오의 선비들을 꾸짖는 것으로 개념인 인증을 한다. 그후 화계를 스스로 고안해내여 주유에게 진언하며 화계의 성사를 위해 고육지책까지 마다하지 않는 등, 충성스러움과 비장함이 여러모로 겹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오 공기화 분위기 때문에 산월 정벌, 무릉만 통치 등 행적들이 삭제되고 적벽대전 이후 존재감도 급격하게 줄어드는 피해를 봤다.[97] 한마디로 원래 전공은 그 사건 자체가 비중이 없어지고 대신 다른 전공을 얻은 셈.



[1]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삼국시대에서 황산벌 전투 당시, 신라김반굴김관창 역시 신하이자 장수로서 스스로 목숨을 걸고 싸우다 죽었다.[2] 사실 가후는 촉한과 엮인 일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 지도.[3] 중국의 이문열이나 김운회 소리 듣는 이중텐은 아예 곽가의 요절이 제갈량에게 천만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했다.[4] 성을 맹렬히 공격하다가 공격을 멈춰서 적들이 천천히 수비를 풀게 했다(계속 닫아두고 있으면 백성들이 밖에서 식량을 못 구해오니까). 그렇게 서서히 방심하는 틈을 타 기습했고, 급히 성 안으로 들어가는 백성과 군사들 속에 첩자들을 잠입시켜서 내부에서 문을 열게 했다.[5] 정확히는 도망치는 척하면서 타도계를 쓰려고 했지만 관우에게 들통이 나자 임기응변으로 화살을 날려 대처한 것.[6] '니 주인 유비는 그냥 하찮은 듣보잡이고 우리 조느님은 킹왕짱이신데 어딜 유비 따위를 섬기는 네놈에게 투항하냐?' 이런 식으로 말했다.[7] 장합은 확실한 피해자이며, 조진의 경우 장합보다는 약하지만, 주로 정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연의의 피해자가 맞다.[8] 제갈량은 일국의 재상, 사마의주유, 육손같은 도독의 위치에 있었다. 정사에서 이 둘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은 군사적인 부분뿐이다.[9] 다만 이 옷 얘기는 정사에도 나오는 이야기이고, 오히려 "적게 먹으면서 일 많이 하면 퍽이나 오래 살겠다"면서 제갈량에게 역공을 날렸다. 그리고 제갈량은 정말로 과로사로 죽었다.[10] 여기서 나관중이 조진과 사마의가 내기하는 걸로 각색추가한다. 조진은 황제에게 하사받은 선물을 주겠다고 하고 사마의는 여자옷을 입겠다고 하는 것, 일부 불만이 나와 군령을 확립하기 위해 병사를 목베기도 하고 이후 조진이 제갈량이 보낸 격문으로 분사하자 조정에서는 조진의 원수를 갚으라고 독촉하고 제갈량의 팔문금쇄진과 사마의의 혼원일기진 진법대결이 나온다.[11] 일단 촉한의 전투력 1순위인 위연이 1대 1로 싸우자는 걸 받아들인 것부터가 본인의 무력에 자신이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12] 그래서 나관중은 비록 단가(單家, 친척이 없는 핵가족)를 "선이라는 성씨"로 잘못 해석하긴 했지만 친구의 원수를 갚고 나서 '선복'이란 가명을 썼다는 창작을 넣기도 했다.[13] 조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호원이 아니고 호랑이 같은 위세다.[14] 근데 정작 장억은 손례를 털어갈때는 부상이 나은 것인지 잘 돌아다닌다.[15] 장료가 맞서 싸울 것을 건의했으나 이전은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아 침묵으로 반대했고 악진도 이를 보고 몸을 사렸다. 이에 장료가 "이 겁쟁이들, 계속 그러고 있어라! 나 혼자 가서 싸우겠다!"라고 화를 내자 이전도 "적이 눈 앞에 있는데 개인적인 감정만 내세울 수는 없지! 나도 가겠다!"라며 동참했고 장료도 감격하여 좌우에서 협공하는 계책을 내서 멋지게 동오군을 막아낸다.[16] 단 연의에서는 가상의 일기토 기록으로 많은 무장들이 파워인플레를 받으면서 상향평준화가 되었기 때문에, 정사에서도 일신의 무예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장료는 상대적으로 너프가 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17] 하후돈이 눈알을 잃기 이전에, 장료가 여포의 명령에 따라 소패성을 공격하자 관우가 "당신 같은 충의지사가 어찌 이런 짓을 하냐"라고 타이르자 공격을 하지 않고 물러갔다는 식으로 서로 마음이 맞는 걸로 나온다. 그래서 백문루에서 관우(&유비)가 목숨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더욱 자연스러워졌으며, 이후 관우가 조조에게 잠깐 투항하도록 설득하는 식(후술할 세 가지 죄와 세 가지 조건)으로 조조와 관우의 의견을 사이에서 전달하는 식의 역할까지 맡는다.[18] 안량을 베고 난 후 공을 세운 그가 떠나버릴까 염려하여 장료를 시켜서 '조공이랑 유비랑 누가 더 이쁨?'하고 물어보게 한 것.[19] 관우가 싸우다 죽으려 들자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말렸다. 첫째, 관우 같은 뛰어난 장수가 목숨을 가벼히 여기는 것은 한황실에 대한 불충. 둘째, 같은 날 같은 시에 죽기로 한 결의를 어기는 일이 됨. 셋째, 유비의 가솔들을 책임질 책무도 버리는 것임.[20] 첨언하자면 정사에서는 오반은 장호에게 죽지 않았다. 즉 연의에서 오반은 장호의 칼밥이 되었다. 지못미[21] 원래 조진을 잡으려고 했던 작전이었는데, 비요가 뭔가 이상하다고 해서 대신 나섰다.[22] 그래도 '아오 다 망했네' 하면서 자포자기하고 죽은 건 아니고, 다른 설정을 추가해 다른 방면에서 비장미를 살렸다. 작전 회의 중 심장 발작이 일어나 실신했다가 겨우 깨어났고(마치 실패를 암시하는 복선 같기도 하다), 최후의 전투 때 재차 발작이 일어나 더 이상 싸울 수가 없게 되자 하늘의 뜻임을 한탄하며 자결한다는 묘사.[23] 농담이 아니다. 이후 재물신 타이틀까지 얻으면서 삼관왕을 달성했다.[24] 애초에 촉한의 1세대 장수들은 마초를 제외하면 남겨진 기록이 매우 적다.[25] 그러나 결국 그녀의 미모에 반한 조조가 두씨를 데려간다.[26] 다만 연의에선 익양대치 자체가 누락되어 있다.[27] 많은 만화나 영상에서는 관우가 투구대신에 관을 쓰고 있는데 방덕이 그 관의 윗부분을 맞춰서 이마 근처를 맞추면서도 목숨자체는 위험하지는 않은 방식으로 영리하게 방덕의 무를 높였다.[28] 손권이 이전에 손부인을 유비에게 시집보낸 것도 '내 동생이 그쪽에 있으니 난 당신을 공격할 마음이 없다'는 정치적 제스쳐이다. 사실 당시 혼인동맹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손권 본인은 손부인을 오로 돌아오게 해 인질을 빼놓고, 관우의 딸은 자기한테 보내라는 건 의도가 명확하다.[29] 이 때문에 문관으로 여겨지지만, 기록이 적어 무관이었는지 문관이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30] 진삼국무쌍 7에서 촉 신무장 후보로 관흥&장포와 왕평&요화가 경쟁하다가 결국 전자가 나왔다. 이것만 봐도 촉 2세대 무장들이 저 둘에게 얼마나 피해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31] 수염만 자른 게 아니라 나중엔 전포도 벗었다. 이때의 묘사가 저기 붉은 전포를 입고 달아나는 자가 조조다! (전포 벗음) 저기 수염이 긴 자가 조조다! (수염 자름) 저 수염 짧은 자가 조조다! 딱 이런 식이다.[32] 그 후 왕진은 이붕이 죽고 나서 촉군들에게 창에 찔려 사망(…).[33] 연의에서는 부융의 아들이란 말이 없다.[34] 아다시피 연의에서는 부첨이 했다.[35] 물론 비판은 있다. 자치통감에 주를 단 호삼성은 '장서가 뭐 어떻게 이길줄 알고 따로 대비를 안하다 털렸냐? 부첨에게도 죄가 있다.'라고 깐다.[36] 무력은 무려 80대.[37] 주창의 무리를 거부한 것도 따지고보면 관우가 요화 사건에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38] 그래서인지 연의에서 황권과 유파는 유장이 유비에게 항복했을 때 인정 못한다며 집에서 버티다가 유비의 부탁에 합류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황권은 이후 위나라로 도망가서 매국노 취급을 받는 반면 유파는 딱히 반발했다는 묘사가 하나도 없다.[39] 이게 안 와닿는다면 실제 역사상 그저 그랬던 인물이 왕보와 같은 식으로 표현됐다고 상상해보라. 예컨대 유선같은 경우는 실제 역사상 등애가 오자마자 항복하고 천수를 누렸고 연의에도 그렇게 묘사된다. 근데 반대로 연의에서 등애에게 결사항전을 하였으나 중과부적이라 이길 수 없었고 결국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며 유비와 (검각에 있는) 강유에게 사죄를 한 뒤 성벽에서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고 남은 신하들이 촉을 갖다 바치는 식으로 항복한 거라 표현됐다면 원래 누려야 할 천수보다 일찍 죽은 걸로 나오겠지만 이게 유선을 피해자로 만든 건지 띄워주려고 묘사한 건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40] 그러고는 낙성까지 가는 33개의 관문을 자기가 다 열어버린다. 물론 그 덕에 장비는 빨리 도착했지만.[41] 두 번이나 개발살난 시점에서는 아예 황충과 엄안에게 후덜덜해져 있었다.[42] 정작 엄안은 위 일화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충신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고 충의를 강조하다 정작 첫번째 투항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충신의 대명사가 된 거 자체가 다른 진짜 충신들에게 실례인 수준이다.[43] 연의나 정사나 4차 북벌은 제갈량의 북벌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우세한 상황이었다. 마속은 판단을 잘못하여 일을 그르쳤으나 연의의 이엄은 자신의 실책을 무마하기 위해서 정사보다 더한 잘못된 짓(오군과 위군의 협력이라는 거짓정보)으로 무마하려고 했다.[44] 연의에선 나오지 않지만 이 석학들은 제갈량과 방통을 제외하고 전부 위나라에 임관했다. 서서만 어머니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갔고 나머지는 자발적으로 갔다.[45] 그렇다고 군사적인 재능이 떨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사마의가 그가 죽은 직후 오장원의 진영을 둘러보고는 "천하의 기재"라고 말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46] 그렇다고 싸움을 걸어서 이기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지지도 않았다. 즉 어떻게든 무승부(이 부분은 좀 논란이 있을 듯하다. 사실 대부분은 군량이 딸린다든지, 내부의 적(이엄)이 나온다든지 하는 내적인 문제였다.)였던 것. 사람들은 이 부분을 많이 칭송한다.[47] 물론 상비군의 문제이지 전쟁 동원 능력은 조금 다르다.[48] 강유가 능력자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제갈량 생존 때 이렇게까지 활약한 장수는 아니었으므로 제갈량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높은 대우를 받는 장수는 아니었다.[49] 학소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지만 연의에서 딱 두 번 밖에 안 나와서...[50] 연의에서 제갈량이 칭찬하고 마속을 격파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실제 장합에 비하면 멧돼지형으로 묘사되었기에 관흥, 장포, 위연 등보다 한 수 아래로 느껴진다. 물론 한중전에서 장비한테 털리는 장면이 앞서서 나왔기 때문에 이래도 위화감은 없다[51] 여기서 한 술 더 떠 연의 파생 창작물에서는 제갈량이 위연을 자오곡에서 불태워죽이려는 장면까지 추가하면서 토사구팽해먹으려는 모습까지도 나온다.[52] 다만, 정사에서도 초야에 묻혀 살던 시절부터 본인을 관중악의에 비견하는 자신감 넘치는 성격이긴 했다. 이 발언은 제갈량 쯤 되니까 자신감인거지, 웬만한 사람이 했으면 그냥 망언 수준이다(...).[53] 유비, 관우 등에게도 해당된다. 반대로 주유, 조조 등 연의에서 악역으로 평가받았던 인물들은 팬들이 생겼다.[54] 단 위연이 반역급은 아니더라도 주위와 불화하고 결국 연의에서처럼 촉군 퇴각의 길을 끊어놓은 대형사고를 친 건 맞다, 단지 그가 마지막에 도망간 곳이 위나라가 아니라 한중이라는 점에서 진수 등이 반역이 본심이 아니라고 평가할 뿐이다. 그러나 하술하지만 이런 진수도 위연의 최후에 대해서는 '평소에 그리 개차반이니까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도 할 말이 없다.'며 비판했다.[55] 특히 나무위키의 위연 항목에서는 위연빠들이 지속적으로 반달을 시도한 흔적이 수정 역사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56] 제갈첨은 제갈량이 47세 때 태어난 늦둥이로, 촉한멸망전 당시 나이는 겨우 36세였다.[57] 역사적으로 조운의 직무는 (지휘관 역할도 하긴 했지만) 특공대나 선봉장수, 최고사령관 (유비, 유비 사후엔 제갈량)의 친위대장에 가까웠다. 오히려 지휘관보다도 무력이 중요한 역할인만큼 매우 뛰어난 무예를 가졌을 것이다. 애초에 기록상으로도 용맹스럽다고 나오고...사실 실제 삼국시대의 지휘관급 무인들은 인간흉기인 관우 정도를 제외하곤 일기토 기록이 거의 없다.[58] 역대제왕묘는 단순히 공이 높거나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중국사 수천년의 역사를 통틀어서 수없이 많은 검증이 이루어진 공신 중의 공신들만 들어갈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고조에게 천하를 안겨다 준 장본인이자 중국사 최고의 명장으로서 공적으로만 따지면 중국사를 통틀어 상대할 자가 없는 한신조차 뒤끝이 안좋았다는 이유로 제왕묘에 들지 못했다. 들었던 인물은 끽해야 한삼걸 장량이나 소하, 조참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59] 장판파 전투에서만 50명도 넘는 장군이 희생되었다고 했다.[60] 문추와 싸울 때는 소년장수였는데, 불가사의할 정도로 나이를 빨리 먹었다. 사실 이 시기쯤에는 조운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인물들이 거의 다 죽어나간 이후라서 한 세대 전의 인물이라는 느낌이 있기는 하다.[61] 굉장히 어이없이 죽었는데, 주창배원소관우를 모시기 위해 합류하러 오던 도중 난데없이 창을 쓰는 젊은 장수를 만나 배원소는 바로 죽고, 주창도 부상을 입은채 겨우 도망나왔는데, 격노한 관우가 복수하러 찾고보니 조운이었다. 당연히 이 시점에선 이제 막 관우를 모시기로 한 주창과 배원소보다 잃어버린 동료였던 조운이 백배는 소중했기에 배원소를 죽인거나 주창을 반죽음 만든건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사실 배원소 자체가 그리 무예가 뛰어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버프라기보단 관우와 조운이 재회하는 걸 좀 더 박진감 있게 그리기 위해 기워넣은 에피소드에 가깝다.[62] 하후연은 연의에서는 뜬금없이 무력 버프를 엄청 얻은 하후돈에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정사에서는 위나라 최고의 맹장 중 하나였다.[63] 역으로 생각하면 마원, 염파, 양유기, 이광은 시대는 달라도 이렇게 보면 삼국지연의의 피해자인 셈이다. 차라리 황충이 진짜 노인이고 신궁이었으면 억울할 것도 없고 그저 후대에 더 이름난 사람에게 칭호를 뺏긴 거 뿐이지만(마치 조식시성 칭호를 두보가 대체하게 된 것처럼) 황충은 노인도 아니고 신궁도 아니었는데도 진짜 노익장과 신궁의 대명사들을 묻혀버리게 만들었으니 이들이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64] 주방에서 일하던 한 어린아이가 감녕과 갈등이 생겨서 여몽에게 보호를 요청했는데, 분명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한 감녕이 그 어린아이를 죽여버려서 여몽이 엄청나게 분노했다가 여몽의 어머니가 중재해서 겨우 무마된다.[65] 그러나 손권은 정사에서도 걸핏하면 만용을 부렸다고 나온다. 손권의 가장 큰 패배 중 하나인 합비 공방전에서도 얼른 퇴각할 생각은 안 하고 가장 뒤에 남아 몸소 적을 막는답시고 굴다가 진무가 전사하고, 능통은 손권 호위하다가 자기 식객이 다 전사했다.[66] 사실상 적의 가족임에도 진심으로 사랑에 빠진 비운의 여성이라는 캐릭터성+유비의 매력을 강조하려는 각색이었던 걸로 보이는데, 아이러니하게 실제 이런 케이스였던 조조의 딸 조황후는 남편 헌제에게 헌신적인 부분은 전부 없어지고 오히려 아버지의 의도에 충실하게 헌제를 핍박하는 악역으로 그려진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위나라는 악역, 촉나라는 선역에 가깝기 때문에 편애를 받는 경향이 있다.[67] 정사의 상황대로라면, 유괴 내지는 납치 의도였겠으나, 여기서는 손부인이 아두를 친자식처럼 사랑했다는 설정으로 바뀐다 또 손권이 주선의 조언에 오국태가 아프니 얼른 와달라는 거짓 편지를 전하고 이때 '죽기 전에 아두(유선)를 보고 싶어하시니 데려와라'라는 말을 추가적으로 넣어 마치 손권이 유선의 납치를 사주한 것으로 묘사한다.[68] 이 납치도 많은 전문가들은 연의마냥 편지로 손권이 유선을 납치하라고 사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만약 사주했다면 최소 많은 지원을 하거나 좀더 치밀하게 계획했을 텐데 그런것이 없다는 게 근거다 그냥 손부인이 "아 형주생활 더럽네 ㅋㅋ 유비야 엿이나 먹어라 결혼했으니 유선 내 아들이지? ㅋㅋ 혹은 아 형주생활 드러웠다 나는 이제 간다~ 참 오빠가 돌아오라니까 가는데 가는 김에 유비 아들 선물로 데리고 가면 오빠도 좋아하고 내가 큰 공을 세우는 격이 되겠지?" 하고 독자적으로 벌였을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69] 정사에서 관우는 이 사건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지 불온한 행동을 자주했던걸 감안하면 납치가 성공했으면 촉오전쟁은 관우가 시작하게 된다.[70] 게다가 우미를 목조르기로 질식시켜 죽이고 뒤치기를 하려던 번능에게 고함쳐 낙마해 죽게 하는 등 역발산기개세를 보여주는 후덜덜한 모습도 나온다.[71] 여기서 회계태수였던 왕랑삼국지연의/피해자에 해당한다. 실제 역사대로 임지를 빼앗기고 떠돌다가 조조 진영에 붙는 묘사는 동일하나 이후 황실을 겁박하는 이미지가 붙어버렸고, 최후도 비참해서 제갈량에게 편지를 보냈다가 "그래서 너는 왜 인생을 그 따위로 살았냐." 라는 뉘앙스의 편지를 받고 빡쳐서 사망한 것으로 묘사된다. 게다가 연의의 특성상 문관에 대한 묘사가 별로 없는데다가 공백기도 길어서 동일인물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72] 대신 후술할 우길을 죽이는 에피소드는 사실상 고대를 죽일 때 일화를 거의 반영했다. 그나마 우길은 억지이기는 해도 사이비 교주를 처단한다는 구실이라도 내세울 수 있었지 정사에서 고대를 죽인 건 명망높은 지식인에게 찌질하게 열폭한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73] 정보, 황개, 한당, 장흠, 주태, 진무, 동습, 감녕, 능통, 서성, 반장, 정봉.[74] 정확히는 형 정봉은 위나라가 촉한정벌에 전력투구하지 못하도록 주의를 끄는 역할을 했으며 동생 정봉이 손이와 함께 촉한을 구하기 위해 건업에서 성도로 출발했다. 하지만 손이와 동생 정봉이 도착하기 전에 유선이 항복하고 말았다.[75] 사실 삼국지에서 등장인물의 강함은 고전 소설답게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현대 작품들처럼 엄밀하게 무예 서열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76] 군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대의 상징으로서 지휘관의 생명과 더불어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할 대상이다. 이런 군기를 탈취당했다는 건 부대가 아예 박살이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77] 사실 먼저 옹개를 죽이고 제갈량에게 옹개의 목을 바치는데, 제갈량이 '주포가 말하길 니가 나를 죽이려하구나 하고 저놈의 목을 쳐라' 하다가 고정이 '주포의 이간질입니다'(…)라고 하자 제갈량이 '주포를 죽이면 살려준다'고 하며 고정을 살려주었다.[78] 단, 괴량과 괴월이 형제간이라는 것은 연의의 창작으로 정사에는 그런 언급이 없다.[79] 나는 형주 땅을 얻은 것보다 이도(괴월의 자)를 얻은 것이 더 기쁘다.[80] 그나마도 포신이나 장막 등은 조조의 동맹에 가깝지 조조의 수하라고 보긴 어려웠다. 게다가 허창성 또한 조조에게 복속되기 이전이었으므로 국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조가 도겸을 이길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았다.[81] 그렇지만 동료들과의 다툼 같은 경우 원소원상에게 죽을 때까지 충성하던 심배도 한 적이 있고, 조조 제거계획을 주도했다가 살해당한 부분에 경우 이각곽사는 동탁 수하 출신에 세력도 막강하다보니 멀리있는 군벌 원소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조조를 불러들여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조조를 불러들인 것도 황실을 받들어 충성할 사람으로 기대한건데 조조는 자기 국가를 세우기 원하는 야심가였으니 동승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조조의 두뇌이자 멘토이던 순욱도 조조를 한실 부흥을 할 수 있는 인물로 철석같이 믿고 돕다가 자기가 잘못봤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연의처럼 지극한 충신은 아니지만 마냥 간신이라고 보기는 미묘하다.[82] 사실 이것도 조조가 종료에게 장로(張魯)를 토벌하게 하자 관서 지방의 여러 장수들은 자신들을 치려는 것이 아닌지 의혹을 품어 봉기를 일으킨 것이고 마초측에서 계속 협상을 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83] 그나마 조운이 데뷔전에서 문추와 50합을 대등하게 싸운 적이 있다.[84] 물론 이야기 구조상 그런 부분이 필요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85] 그런데 따지고보면 연의에서도 여포는 호색한이라는 설정이고, 왕윤의 연환계도 이것을 노린 것이다. 애초에 연의에서 초선 만났을 때 여포는 이미 자식까지 있는 유부남이었던데다 초선의 외모에 홀려 군침을 흘리는 등 흔히 익숙한 로맨틱 가이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연의에서는 원래의 아내에 초선, 그리고 서주에 와서 조표의 딸까지 받아냈다. 둘의 러브스토리가 부각된 건 연의를 기반으로 한 창작물들의 재해석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신삼국이나 진삼국무쌍 시리즈가 있다.[86] 정사에서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소건에게 보내는 항복 권고 편지나,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할 때 관중, 악의의 고사들을 예로 들어서 말하는 점, 그리고 정원의 휘하에서 주부라는 문관직을 지낸 걸 보면 어느 정도 배운 게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87] 채모채부인이 유비를 죽이려 할 때 실드를 쳐주거나 죽음을 앞두고 형주를 유비에게 주려고 하는 등이 대표적.[88] 당시 표기장군인 등중.[89] 그래도 진지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황호는....[90] 실제로 이런 가공인물들 때문에 이 공을 가져갈 수도 있었던 촉한 2세대, 3세대 무장들이 묻힌게 가장 아쉬운 점이다.[91] 삼국 중심의 전개에서 듣보잡에 가까운 원소,원술,공손찬의 비중은 철저히 편집되었고, 의외로 삼국에 골고루 비중이 가 있다.[92] 물론 연의에서는 여강태수 자리를 유훈에게 주는 장면은 나온다.[93] 육강 토벌은 간단하게 언급되긴 하지만, 육강이란 인물에 대한 지식이 없을 경우, 육강 토벌에 대해서 악행이 아닌, 단순한 군벌 A와의 싸움으로 인식하기 쉽다.[94] 사실 한고제도 유비와 마찬가지, 아니 그 이상으로 인덕에서 너프를 받은 구석이 있다. 특히 한신 관련으로 그런 면이 강한데 마치 아무 것도 안 한 유방이 한신을 질투해서 그를 왕에서 끌어내린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유방이 항우를 붙잡고 늘어지느라 한신이 쉽게 공을 쌓을 수 있었고 또, 한신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오만해져서 유방이 한신을 믿을 수 없는 자로 인식하도록 자초했다. 그럼에도 유방은 한신으로부터 군권을 박탈하고 강등을 시킬지언정 직접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한신은 하극상이나 명령불복종 등 유방의 이목을 끌만한 어그로는 잔뜩 저질렀다. 특히 괴철의 충동질에 넘어가 제나라를 공격하고 결과적으로 제나라를 항복시킨 같은 편의 중심 인사인 역이기를 죽게 만든 것은 사실상 반역이나 다름 없는 짓이였다. 그리고 대전쟁이 끝나서 당연히 다들 군축 기조로 들어서고 반란도 일어나고 있을 때 멀리 떨어진 초나라에서 전후처리보다 군사양성에 집중하는 것도 강력한 어그로였다.)[95] 당장 망탁조의 문서만 봐도 조조의 분량이 제일 길 정도. 게다가 재평가 문단에서마저 조조만이 결국 부정적 평가로 귀결되어 버리는 맥락이다. 동탁은 재평가 자체가 없다 연극에서 조조 역을 맡은 사람이 관객들에게 맞아 죽은 사건이 일어났을 정도였다고 한다(...). 배우는 무슨 죄(...)?[96] 평역 삼국지를 내놓은 이문열이 작중 내내 조조를 정사 이야기를 끌어내며 찬양하기도 했다. 물론 정사나 실제 사료에 더 버젓이 나온 조조의 안 좋은 이야기들은 교묘하게 빼먹었다.[97] 손부인 에피소드에서 한당과 함께 언급이 되긴 하는데 정말 말 그대로 언급만 하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