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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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군벌인 한수의 부하이자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다.후에 이름을 염염(豔)으로 바꾼다. 자는 언명(彥明)
진수의《정사 삼국지》에는 이름이 보이지 않으며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위략》에 그의 열전이 있다.
2. 생애
어려서부터 건장함으로 이름이 알려졌고 소장이 되어 한수를 따랐으며 건안(196년 ~ 220년) 초기 한수와 마등간 싸움이 벌어졌을 때 마등의 아들 마초 또한 건장하다는 명성이 있었는데, 염행은 20대 초반의 마초를 찌르려다 창이 부러지자 창대로 마초의 목을 공격해 거의 죽일 뻔했다고 한다.오호대장군 중의 하나인 마초가 죽을 뻔했다고 하니 팬덤에서는 충격과 공포로 받아들였다. 특히 마초 팬들은《위략》에 나온 기록이라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취급하며 부정하기도 한다. 위략이 아무래도 통일전 위나라에서 쓰인 책이라 위나라 내부의 내용 외에는 유선 벤허설과 같은 터무니 없는 내용이 있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 그러나 위략 문서에도 적혀 있듯이 배송지가 반박하지 않았다면 어느정도 신뢰도는 확보 되었다고 보면 된다.
일단 건안 초에 마등과 한수가 크게 싸운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위략에 실려있는 해당 내용은 배송지가 정사의 주석으로 인용한 부분이다. 배송지는 주를 달 때 많은 사료들을 통해 교차검증을 하고 문맥을 파악했고 만약 해당 사료에 모순이 있거나 문맥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면 가차없이 비판했다. 해당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한 비판 없이 기재했기 때문에 신빙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출전이 위략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해석이다.
간단히 생각해서, 마초가 강했지만 염행은 더 강했다고 보면 아무런 모순도 없다. 마초가 당시에 약체였다가 염행에게 당한 후 수련해서 강해졌다(...)는 추측도 있겠지만, 사료 원문에서는 당시의 마초 역시 나름 용맹함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기록이 있다.
다른 해석으로는 두들겨 패서 반죽음을 만든 것이 아닌 거의 죽일 뻔한 공격이라는 설도 있다. 사료 원문의 서술[1]을 살펴보면, 일방적으로 몰아넣어서 두들겨 패는 장면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따라서 싸우다가 목을 향하여 날린 치명적인 공격을 회피한 것이거나, 아니면 모를 맞았는데 급소만 회피했던 것으로 해석해도 된다. 이렇게 해석해도 거의 죽을뻔 했다는 서술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러한 혼란이 생기는 원인은 대부분의 삼덕들이 삼국지연의와 삼국지 시리즈에서 각색한, 무력 90대 후반을 찍는 S급 맹장이라는 마초의 형상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사에서도 마초는 용맹하다고 언급되곤 하지만, 그 용맹함을 언급하는 장면이라는 게 자신의 힘만 믿고 조조를 기습하려다 허저의 눈짓 한 번에 쫄아버리는 장면이다.[2] 즉, 정사에서의 마초는 무력 기준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운 무장이다. 하지만 삼덕들에게는 90후반 무력의 마초 이미지가 익숙하니까 "죽을 뻔 했다."라는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3]
또한 염행이 마초를 상대한 게 단기접전인지, 난전 중에 벌어진 일인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209년, 한수의 사절로 조조에게 가자 조조는 염행을 매우 후하게 대우하며 건위태수로 배수했고 이에 염행은 자신의 부친을 업에 머물게 하기로 약속한다. 조조가 한수에게 교를 내려 중앙으로 입조할 것을 권하니 염행은 한수에게 돌아와 조조의 뜻을 전하고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권하며 자신은 이미 부모를 숙위로 보내기로 했으니 한수 또한 자식 한 명을 업에 인질로 보낼 것을 제안했다. 한수는 시세를 몇 년간 더 관망한 뒤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염행의 부모와 함께 자신의 아들을 보낸다.[4]
하지만 211년, 조조가 장로 토벌에 나서면서 대군이 서쪽으로 집결하자 그때까지 조조와 우호적인 편이었던 관서의 군벌들은 모두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마초를 맹주로 서로 연합하고 조조에게 반기를 든다.
이때 마초는 "종요가 나에게 장군(=한수)을 취하라고 부추겼으니 관동인들은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부친을 버리고 장군(=한수)을 아버지로 모시려 하니 장군도 아들을 버리고 나를 아들로 삼으라."는 요지의 발언을 하며 한수를 끌어들이려 한다. 염행은 마초와 연합하지 말라며 한수에게 간언했으나, 한수는 관서 제장들이 여태껏 서로 공모한 적이 없는데도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으니 이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며 염행의 반대를 묵살한다.
마초를 맹주로 한 관서 연합군은 초반에는 폭발적인 기세를 보였으나, 대치가 지속되며 점차 상황이 불리해지자 조조와 강화를 시도한다. 조조가 한수와 마상회담을 할 때 염행은 한수의 뒤에서 수행했는데, 조조는 떠나면서 염행에게 넌지시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남긴다.
"효자가 되시오."
결국 회담은 결렬되고 양군은 회전을 벌이나 관서 연합군이 패하고 염행은 한수와 함께 금성으로 도망친다. 조조는 염행이 한수를 말린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수의 자손들만 죽이고 염행에게는 "그대의 부모님은 감옥에 봉양할 공간도 없고 관청에서도 이제 못 모시는데 이제 어찌되려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니 이런 조조의 이간책에 염행은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수는 그 사실을 알자 염행의 마음을 붙잡고, 부친도 조조에게 주살되어 염행이 조조에게 반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 어린 딸을 염행의 아내로 주었고, 염행 또한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한수의 의도대로 염행이 한수의 사위가 되었다는 것을 들은 조조가 염행을 의심하자 더욱 초조해진 염행은 결국 반기를 들어 밤중에 한수를 급습하지만, 패배하자 일가를 이끌고 조조에게 의탁한다. 이에 조조는 의심을 거두었으며 표를 올려 염행을 열후로 봉한다.[5]
<염행전>의 기록은 여기까지이나 <성공영전>에 따르면 이후 215년에 하후연이 철수할 때 남겨졌다가 다시 세력을 모은 한수의 반격에 패하지만, 때마침 한수가 배신으로 살해당하면서[6] 위기를 모면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후의 행적은 불명확하다.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100만인의 삼국지 |
삼국지 12, 13, 14 |
삼국지 10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마초를 1 대 1 대결로 죽일 뻔했다는 기록 때문에 정사에만 나오는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한수 세력에서 무력이 가장 높다. 정사를 안 읽어보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저 놈은 뭔데 무력이 저리 높아 하고 놀랄 정도. 마초 세력에도 마초, 방덕에게는 딸리지만 3위권에는 들어갈 정도.[7] 지력도 후기 시리즈에서는 60대로 상승했다. 돌대가리인 서량군에서는 성공영, 한수, 방덕 다음으로 지력이 높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0/무력 86/지력 38/정치력 33/매력 50에 특기는 6개 중(돌격, 기습, 기염, 반격, 삼단, 나선) 4개가(기염, 반격, 삼단, 나선) 일기토 특기이고 나머지 2개는 돌격과 기습.
무력이 86으로 85인 마대보다 무력이 1 높다. 일기토 특기로 기염, 나선, 반격 등 쓸 만한 것들이 많아서 무력이 96인 마초와 맞짱도 떠 볼 수가 있다. 물론 무력 10차이가 뒤집기 쉬운 건 절대 아니지만. 거기다가 한수의 일족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를 죽일 경우 무력이 높은 염행과 원수 관계가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삼국지 11에선 마대가 무력 85, 마운록이 88로 84인 염행보다 높다. 거기다가 염행은 기병 적성이 A이기까지 하다.
미묘하게도 특기는 엄청나게 좋은 번식이지만 무력형 장수인데, 내정용 특기를 받았다. 재미있는 점은 마초가 염행을 상대로 전법을 사용할 때 전용 대사가 존재한다.[8] 다만 정사에서의 행적 때문에 성향이 조조 쪽과 비슷하게 설정되어 있어, 한수나 조조가 군주일 때는 상관없는데 마등이나 마초가 군주일 때는 염행의 충성도 관리를 좀 해 줘야 한다. 이 점은 마찬가지로 조조에게 항복했던 성공영도 비슷하다.
삼국지 12에서의 일러스트는 말을 탄 채 두 손으로 창을 휘두르고 있는데 마초를 말에서 떨어뜨렸다는 정사의 서술을 반영한 듯 하다.
무력의 경우마대는 무력 85, 염행은 84다. 그러나 전법이 사용하면 무력 20이 상승하는 강용이라서 마초든, 방덕이든, 강용 쓴 염행을 이길 수가 없다. 특기들도 일기와 연병, 보수 특기를 보유하고 있어 나름대로 구색은 갖추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동일하고(통솔력 76/무력 84/지력 66/정치력 58) 특기는 훈련 2, 신속 4, 일기 5. 전수특기는 일기로 전법은 기병수비진이다. 병종 적성은 창병 B/기병 A/궁병 C라 기병은 사실상 S라고 보면 된다.
다만 이번작에서는 전법이 11의 번식, 12의 강용과는 달리 성능이 좋지 않으니, 전법 포인트는 마초나 방덕 등에게 투자하자. 초반 마등군이라면 주장급으로 나설 것이고, 장수가 좀 늘어나도 무력이 높고, 통솔력과 지력도 나쁜 편은 아니라 부장으로 괜찮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3, 무력 84, 지력 61, 정치 58, 매력 60으로 전작과 달리 통솔력이 3, 지력이 5 하락했다. 개성은 과감, 호걸, 주의는 패도, 정책은 추행강화 Lv 3, 진형은 어린, 추행, 전법은 급습, 교란,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3.2. 김경한 삼국지
서량 최강의 장수로 묘사되어 있으며 마초나 방덕보다도 훨씬 무예가 강력하다. 마초와의 일기토에서 마초를 완전히 짓밟아버렸다.3.3. 기타
일부 소설에서는 염충의 아들 혹은 조카로 설정되어 있지만 사실무근이다.[1] 行嘗刺超,矛折,因以折矛撾超項,幾殺之 어떤 식으로 "거의 죽였다."는 설명이 없다.[2] 해당 내용은 연의에서도 비슷하게 각색되었다. 그래도 체면은 다시 살려줬는데, 그 후 허저와 만나 처절한 일기토를 벌인 끝에 약간 우위를 점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 그런데 쫄았다고 마냥 폄하할 수 없는 것이 허저는 당연히 자기 휘하 호위병을 대동했을 테고, 마초와 조조가 대면한 자리는 회담장이다. 회담에서 수틀리거나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상대 수장을 죽이려 든다는 건 명분에서도 실리에서도 손해를 볼 여지가 크며, 허저와 호위병들이 막을 동안 조조는 얼른 도망가서 병사를 이끌고 역습을 가해 오히려 마초가 진퇴양난에 빠지게 될 수 있다. 애초에 이 둘은 진짜로 대결해본 적이 없으니 누가 우위라고 단언하는 건 섣부르다.[3] 애초에 역사적으로 명시된 삼국지 시대 장수들 간의 1대1 대결은 손꼽을 정도로 적다. 마초는 염행과 싸움이 전부이며, 관우 vs 안량, 손책 vs 태사자, 여포 vs 곽사(주석) 등 극소수다. 장비나 서황, 장료, 장합, 하후연 등 용맹하다는 언급이 있는 장수들의 1대1 대결은 전혀 언급이 없다. 저런 장수들은 용맹하다는 기록이 있고 실제 전적이 있으니 지휘관으로서 훌륭하다는 점은 명확하지만, 정확히 누가 누구보다 얼만큼 1대1 싸움을 더 잘하는지는 후대 사람들이 알 방법이 없으며 사실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다. 일례로 여포는 곽사를 1대1로 발라버리고 그의 막강한 무력에 대한 기록이 넘쳐나지만 지휘관으로선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왔다. 실제로 곽사가 여포와 대결에서 패한 직후 군대끼리 붙었을 때 여포군은 대패해 달아났다. 마초가 진짜 염행보다 무력이 약해 1대1 싸움에서 발렸다고 해도 이게 마초나 염행의 평가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란 것이다.[4] 이 무렵 마등은 아예 중앙으로 가버리는데, 조조가 중앙의 고관직을 떡밥으로 관서 군벌들에게 대대적인 회유공작을 벌였던 모양이다.[5] 한수의 딸은 어떻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염행이 계속 데리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염행이 한수에게 반기를 든 시점에서 염행 자신에게 살해되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해를 입거나 조조에게 주살됐을 가능성도 충분하다.[6] 혹은 병사했는데 머리를 잘라 조조에게 보냈다고도 한다.[7] 마대, 마운록과 비슷한 무력으로 나온다.[8] "어릴 적 이야기를 언제까지 주절거릴 생각이냐!", "지금 싸운다면 내가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