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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7-02 15:53:21

학소

조위의 진창태수
잡호장군(雜號將軍)학소
(郝昭
파일:attachment/학소/crane_cow_novel.jpg
작위 잡호장군(雜號將軍)
성씨(郝)
(昭)
생몰 기간 미상[1]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이며 는 백도(伯道)로 병주 태원군 사람. 수성(守城)의 대가.

2. 정사 삼국지

真以亮懲於祁山,後出必從陳倉,乃使將軍郝昭、王生守陳倉,治其城。明年春,亮果圍陳倉,已有備而不能克。增邑,并前二千九百戶。

조진제갈량이 기산(祁山)에서 혼났으므로, 나중에 출병할 때는 반드시 진창(陳倉)으로 나아갈 것이니, 이에 장군 학소(郝昭)와 왕생(王生)을 보내 진창을 지키게 하고 그 성을 다스렸다. 이듬해 봄, 제갈량이 과연 진창을 포위했으나, 이미 대비가 있었기에 함락시킬 수 없었다. (이 공로로 조진의) 식읍이 앞선 것과 합쳐 2,900호가 되었다.
정사 삼국지』 조진전

정사 삼국지에서는 조진이 학소에게 진창을 지킬 수 있게 대비하라고 명하며, 그 덕분에 제갈량이 진창을 함락할 수 없었다고 나온다. [2] 정사에서는 더 자세히는 나오지 않는데,「명제기」에 "태화 2년 12월에 제갈량이 진창(陳倉)을 포위하니, 조진이 장군 비요 등을 보내 그를 막아내게 했다." 는 기록 밑에 달린 배송지 주석으로『위략』의 야사가 언급되는데 여기서 학소의 활약이 매우 자세하게 나온다.

3. 위략

『위략』에 따르면, 학소의 자는 백도(伯道)이며 태원(太原) 사람이다. 사람됨이 웅장하고 젊어서 군대에 들어가 부곡독(部曲督)이 되었으며, 여러 차례 공을 세워 잡호장군(雜號將軍)이 되었다. 마침내 하서(河西) 지방을 10여 년 동안 엄격하게 지키니 백성과 오랑캐들이 두려워하고 복종했다.

제갈량이 진창을 포위했을 때, 제갈량은 학소의 고향 친구인 근상을 시켜 성 밖에서 멀리서 그를 설득하게 했다. 학소가 성루 위에서 근상에게 응답하여 말했다.
위나라의 법은 자네도 익히 아는 바이고, 나의 사람됨 역시 자네가 아는 바이네. 나는 나라의 은혜를 많이 입었고 가문도 책임이 막중하니, 자네는 더는 할 말이 없고 그저 내가 반드시 죽을 각오라네. 자네는 돌아가서 제갈량에게 말을 전하고, 곧바로 공격하라고 하게.

근상이 학소의 말을 제갈량에게 고하자, 제갈량은 다시 근상을 시켜 학소를 거듭 설득하게 하며 "사람과 군사로 대적할 수 없으니, 부질없이 스스로 파멸하고 말 것이오" 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학소가 근상에게 말했다.
앞서 한 말로 이미 결정되었네. 나는 자네를 알아보지만, 내 화살은 자네를 알아보지 못할 걸세.

이에 근상이 마침내 물러갔다.

제갈량은 스스로 수만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있는 반면, 학소의 병사는 겨우 1,000여 명에 불과하고, 또 동쪽의 구원병이 곧바로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 헤아려, 마침내 진격하여 학소를 공격했다. 제갈량은 운제와 충차를 만들어 들이 닥쳤다. 그러자 학소는 운제와 충차에 불화살을 쏘았는데, 사다리가 불타버려 사다리 위의 사람들이 모두 불타 죽었다. 학소는 또 큰 돌로 그 충차를 내리눌러 충차를 부수었다.

제갈량은 이에 다시 백 자 높이의 정란을 만들어 성 안을 내려다보게 하고, 참호를 흙으로 메워 곧바로 성벽을 기어오르고자 했다. 그러자 학소는 또 성 내부에 겹성벽을 쌓았다.

제갈량이 성 밑으로 땅굴을 파서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학소는 또 성 내부에 해자를 파서 이를 차단했다. 밤낮으로 서로 공격하고 막아내기를 20여 일 동안 하니, 제갈량이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다했으며 적의 구원병이 도착하자 제갈량은 군사를 이끌고 퇴각했다.

조정에서 조서를 내려 학소가 잘 지켜낸 것을 기특하게 여겨 열후의 작위를 내렸다. 그가 조정으로 돌아오자 황제 조예가 중서령(中書令) 손자(孫資)를 돌아보며 말했다.
경의 고향에 이와 같은 쾌남아가 있어서 장수 노릇을 이토록 명백하게 잘해내니, 짐이 다시 무엇을 걱정하겠는가?

이내 그를 크게 등용하려 했으나, 학소는 머지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 학개(郝凱)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는 장수로 일생을 살았으나 그게 그리 좋은 일은 아니었던 듯 싶다. 내가 싸울 때 여러 번 남의 무덤을 파헤쳐 돌과 나무를 취해 싸움도구로 썼었기에 후장하는 것이 죽은 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너는 반드시 나를 평소 입던 옷으로 염하거라. 사람이 살아있을 때 처소가 있을 뿐 죽은 이가 따로 어디에 있으리? 내 묘는 동서남북 어디든 네가 마음대로 정하도록 하거라.

4. 삼국지연의

농서(濃西) 사람으로 바뀌었고, 9척 장신에 팔이 원숭이처럼 길어 활을 잘 쏘았다고 하며, 무엇보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을 완벽하게 패배시킨 유일한 인물로 나온다. 연의 후반부에 적의 성을 어렵지 않게 함락시키는 제갈량을 훨씬 적은 병력으로 완벽하게 막아내는 학소는 연의에서 정말로 대단한 장군처럼 묘사된다.

정사에서는 그냥 조진이 시켜서 학소가 진창성을 지켰다고만 간략하게 나올 뿐이지만, 연의에서는 학소가 엄청난 활약을 펼친 것으로 나오며 그 분량도 꽤 된다. 소설 삼국지연의 후반부는 제갈량을 신격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는데도 연의에서 왜 이 부분을 생략하거나 왜곡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학소가 맹활약을 펼친다. 물론 상세한 활약상 자체는『위략』의 야사[3]를 그대로 옮긴 것이긴 하지만, 연의에서 학소의 수성과 제갈량의 실패를 너무나 비중있게 다루기 때문에 학소의 맹활약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확 튀어 보인다. 성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손자병법에서도 하책 중의 하책으로 언급할 정도로 책략가에게 있어서 잘 알려진 금기 사항인데, 연의에서 거의 신선의 경지에 이른 책략가로 표현되는 제갈량이 진창 공략에서는 너무나 정직하게 성만을 공격하고 평소에 자주 썼던 기만술은 전혀 쓰지 않는 것도 이상한 부분이다.[4] 어쨌든 매우 불리한 상태에서 제갈량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다는 이 묘사 덕분에 학소는 삼국지연의 후반부에 짧게 활약한 인물치고는 꽤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 되었다. (한편, 정사에서는 불리한 상황에서 학소의 활약으로 막은 것이 아니라 미리 대비를 잘 해놨기 때문에 제갈량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위략』과 연의의 다른 점도 많이 보인다.『위략』과는 다르게 연의에서는 사마의가 파견한 것으로 변경되어 있으며, 학소는 선봉 위연의 공격을 막아내는 모습도 보여준다. 또 제갈량이 학소를 회유하기 위해 나타난 장면이 달라졌는데, 근상이 학소의 지인 은상이라는 인물로 변경되었고 근상이 두 번째로 갔을 때는 학소가 그에게 활을 겨누면서까지 거절한다.

또한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몇 년 뒤 진창성을 재차 공격했을 때 당시 병상에 있던 학소가 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집어 넣었는데, 이건 나관중의 창작이긴 하나『위략』에서도 학소는 출세하기 직전 뜬금없이 병으로 급하게 죽어버리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능력과 충의에 감탄한 제갈량이 시신을 본국으로 돌려 보냈다는 내용까지 연의에 나온다.

5.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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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229년 봄에 제갈량의 2차 북벌을 막아낸 후 병사했으며 바로 시작된 3차 북벌 대응에 투입되지 못했다.[2] 「소칙전」에서도 짧게 나오긴 한다. 학소는 금성을 지키는 역할을 맡아서 서량 쪽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소칙의 지휘에 따라 반란을 진압하였다고 나온다.[3] 배송지 주에서『위략』의 야사를 언급하는데, 여기서 학소의 활약상이 매우 상세하게 나온다.[4] 물론 연의가『위략』의 내용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제갈량이 이렇게 무력한 모습으로 보이게 된 것이겠지만, 그렇다면 소설의 입장에서 왜 이 부분을 과감하게 날리지 않았는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다. 연의에서 제갈량 북벌의 이야기 구조는 '계략에서는 제갈량이 이기지만 외부요인(보급, 내부정치 등)으로 인해서 퇴각하게 된다'는 공식을 따르는데, 학소의 경우만 이 공식을 따르지 않고 제갈량이 철저하게 패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