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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2:05

김관창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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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임체 는 부정적으로 언급된 인물이다.
[1] 실제 홍길동을 언급한 건지 후대 인물 허균이 창작한 의적 홍길동을 언급한 건지 논란이 있지만 간접적인 언급으로 소설 홍길동전에서 대중화된 의적 이미지를 노래 가사로 사용했으므로 저자 허균을 생각하고 언급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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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동국신속삼강행실도 관창돌진.jpg
[1]
金官昌
(645~660(향년 15세))

1. 개요2. 생애3. 대중 매체에서
3.1. 노래3.2. 게임3.3. 드라마
4. 영화
4.1. 황산벌에서
5. 여담6. 참고 문서7. 둘러보기

1. 개요

신라화랑으로 장군 김품일의 아들. 역사에는 '김품일의 아들 관창'같은 식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른 관창으로 더 유명하다.

황산벌 전투에서 죽음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화랑으로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2. 생애

660년 황산벌 전투 당시에 관창은 아버지 김품일의 부장으로 참전했다. 백제계백과 5천 결사대가 신라김유신이 이끄는 5만 군사를 맞아 4번이나 신라군을 격파하면서 신라군의 사기가 떨어지자 신라군 사령부는 화랑을 돌격시켜 전의를 끌어올리는 작전을 선택한다. 김유신의 동생인 김흠순의 아들 반굴은 용감히 싸운 끝에 전사했고 다음으로 김품일은 아들 관창에게 "너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뜻과 기개가 있으니 오늘이 바로 공명을 세워 부귀를 취할 수 있는 때이니 어찌 용기가 없겠느냐?"라고 말하며 16살인 어린 아들을 적진으로 보냈다.

관창은 창을 들고 백제군을 향해 진격한 후 분전했으나 수적 열세로 사로잡혀 계백 앞으로 끌려왔다. 계백은 관창의 투구를 벗기게 한 후 얼굴을 보고 놀라면서 "신라에는 뛰어난 병사가 많다. 소년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장년인 병사들이야! 이렇게 어린 소년을 죽일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죽이지 않았고 대신 관창이 타고 온 말에 결박한 채로 올려 신라 진영으로 되돌려 보냈다.

본진으로 귀환한 관창은 "내가 적진 가운데 들어가서 장수의 목을 베지 못하고 깃발을 꺾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다시 들어가면 반드시 성공하겠다."라고 말한 후 손으로 우물물을 움켜 마시고 다시 적진에 돌진해 싸우다가 사로잡히니 계백은 할 수 없이 마음은 아프지만 씁쓸해하면서 관창의 머리를 베어 말 안장에 매어 보냈다. 목만 돌아온 아들을 본 아버지 김품일은 소매로 자신의 눈물과 아들의 얼굴에 묻어있는 피를 닦으며 "우리 아이의 얼굴과 눈이 살아 있는 것 같다. 능히 왕실의 일에 죽었으니 후회는 없다."라고 아들의 목숨을 바친 구국정신을 칭찬했다.

결국 신라군이 이를 보고 용기백배한 끝에 백제와의 마지막 5번째 교전에서 승리하면서 황산벌 전투가 마무리되었고 백제는 수도인 사비성이 함락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화 황산벌의 탓인지 관창이나 반굴이 막연히 혼자 돌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황산벌 전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종의 별동대 임무를 수행했다고 본다. 삼국사기 관창 열전에는 '적의 수가 많고 아군은 적어서(而彼衆我寡)'라고 적혀 있다. 이 말은 수가 적기는 했지만 관창 혼자서 단기 돌격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혼자 가서 죽으라는 임무를 내보내면서 "오늘이 바로 공명을 세워 부귀를 취할 수 있는 때"라며 격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대중 매체에서

3.1. 노래

1. 관창 , 관창 , 관창을 잊지말자
신라 화랑도의 으뜸소년 나라위해 용맹 떨쳤네
그의 나이 겨우 열여섯 관창을 잊지말자

싸움터에서 죽으리 결심은 변함 없지만

상대도 엄청난 계백이라
당해낼 수 있으랴

황산별에서 불꽃튀는 관창과 계백의 혈전
품일 장군의 어린 아들 관창을 잊지말자

2. 관창 , 관창 , 관창을 잊지말자
빗발치는 화살을 뚫고 홀로 적진으로 달려가
칼을 휘두르며 외치네 관창이 여기있다

싸움터에서 죽으리, 내 몸은 없어지지만.
임전무퇴 화랑정신 영원토록 남으리.

어느 누가 욕하랴 관창이 성급했다고
계백 장군도 고백하네. 관창을 잊지말자
대한민국 군가 가사에도 관창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육군훈련소가 2번째 소절에 '관창의 어린 넋이 지하에 혼연하니'라는 가사가 나온다. 훈련소가 있는 논산 땅에서 벌어진 황산벌 전투를 나타낸 가사다. 이 노래는 육군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훈련병[2]과 기간병[3]이라면 수료 또는 전역 때까지 질리도록 부르기 때문에 관창이라는 이름은 적어도 논산 땅에서 매일 들을 수 있다.

1983년 8월 10일 《화랑관창》이라는 노래가 《독도는 우리땅》으로 유명한 가수 정광태가 발매한 첫 솔로 앨범인 《도요새의 비밀》에 수록된다. '관창, 관창, 관창을 잊지 말자.'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곡은 박인호(본명: 박문영)가 작사ㆍ작곡한 곡이다. 일종의 건전가요인 셈인데 1991년에 다시 어린이를 위한 동요리메이크되어 어린이 혼성 5인조 그룹인 다섯동이의 1집에서 재발매된다.

박인호는 최영준이 부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도 작곡했는데 1절 후렴구에서도 '황산벌의 계백, 맞서 싸운 관창'으로 언급한다.

3.2. 게임

삼국시대를 다룬 게임 천년의 신화에서 신라군 장수로 등장하며 실제 역사처럼 신라편 시나리오 3인 황산벌 전투에서 전사한 이후의 시나리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있는 곳 주변을 상대에게는 탐사한 적이 없는 지형처럼 가려버리는 암전술이 특기. AI 상대로는 먹히지 않으나 유저끼리의 대전시 기습에 유용하게 사용할수 있다.

3.3. 드라마

1990년대판 전설의 고향에서는 계백이 신라에 보낸 여첩자가 관창과 사랑에 빠졌지만 자기 신분을 감추고 있었고 관창이 백제와 싸우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자 계백이 보낸 첩자의 상징인 물건을 관창에게 부적 개념으로 줬다. 관창이 계백에게 처음에 사로잡혔을 때 물건을 본 계백은 괴이하게 여기면서도 일단 한번 살려보내지만 관창이 다시 돌격해왔다가 붙잡히자 결국은 처형한다. 이후 여첩자도 정체가 탄로나 고문을 받고 죽지만 시체는 미라처럼 됐고 영혼은 성불하지 못했다가 현대의 주인공이 그녀의 미라와 얽힌 사건을 해결하면서 관창의 혼과 재회하자 같이 성불한다.

개그콘서트 초창기에 이를 소재로 한 코너인 '화랑관창'이 잠깐 존재했다.[4] 화랑전사 마루에서는 주인공 마루가 관창의 정기를 이어받은 아이로 나온다.

2006년작 SBS 연개소문에도 나온다.

관창이 등장하는 창작물에서는 관창이 다시 출진할 때 물로 목을 축이거나 몸에다 물을 뿌리는 장면이 꼭 나온다. 또한 관창의 2번째 돌격은 김유신의 작전이나 의도가 아닌 '10대 소년의 충동적 혈기'라는 관점으로 해석되기도 했는데 후술할 영화 황산벌이나 신라의 삼국 통일을 다룬 드라마 대왕의 꿈도 어느 정도는 이런 관점을 가미해서 관창의 2번째 돌격을 묘사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김유신의 의도가 본바탕이기는 했지만 두 작품에서는 관창이 상당히 혈기 넘치는 소년으로 등장한다.

4. 영화

4.1. 황산벌에서

배우는 양진우.

반굴과 관창의 활약상이 재해석되어 나오는데, 익히 알려져 있는 전개와 거의 같으나 앞서 치렀던 4번의 전투가 1차전은 신라와 백제의 응원전 속에 열린 기마장군들의 2:2 활싸움, 2차전은 욕설과 패드립으로 점철된 신경전, 3차전은 짝눈이 장군의 눈깔을 걸고 격돌한 1:1 맞짱, 4차전이 김유신계백의 1:1 장기 한 판[5]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4차전에서 나온 중요한 대사가, "계백아, 인간은 지가 아무리 날고 긴다 캐도 지 입으로 지 팔꿈치도 핥지 못하는 존재데이."

그리고 반굴은 혼자 백제 진영으로 돌진하여 어설프게 괜히 창 휘두르면서 "칼 받으라" 미친놈 처럼 왈왈 짖어대고 자기소개 한답시고 김유신의 조카이자 사위[6]라 했다가 거시기에게 "개족보" 소리나 듣고 계백에게 나오라고 소리 지르다가 "니 주둥아리에서나 존댓말 나오라 캐라!"라는 소리나 듣던 중 결국 백제군이 성벽에서 던진 창 한 번에 꿰여 허무하게 죽는다. 관창의 경우는 반굴과 달리 제법 독기를 품고 돌진하여 난리를 치다 때마침 그 장소에 나와본 계백의 명령으로 사로잡힌다. 보통은 계백이 관창의 활약에 감탄하여 놓아주며 보내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본작에서는 관창이 무모하게 돌격한 것을 김유신의 계책으로 여기고 여기에 휘말릴 수는 없다는 이유로 보낸 것이다. 즉 김유신은 신라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지체 높은 젊은이를 희생하고자 했고, 이 젊은이가 관창이라는 것까지 간파해 냈다는 것.

되돌아온 관창은 아버지인 김품일 장군에게 보내지나, 김품일은 화랑답지 못한 처사라며 성을 내고는 관창의 따귀를 때린다. 그러자 관창은 백제군이 죽이지 않아 할 수 없이 왔다며 대들지만, 김품일은 오히려 죽지도 못하고 왔다며 검을 뽑아들고 성을 낸다. 그걸 보고 관창은 이번에는 죽어서 오겠다며 우물물을 얼굴에 끼얹은 후 다시 돌진했다. 관창은 그 후 다시 포획당해 백제의 진영으로 끌려가고, 계백은 이번에도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관창이 "니는 누가 시키가 니 가족을 몰살시켰는갑제!!!"[해석] 하며 계백에게 돌직구를 던지자, 결국 계백도 "좋아, 김유신... 핥아주지."라 중얼거리며 목을 치라 명령한다. 이렇게 관창은 목이 잘려 신라 진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걸로 끝난 것이 아니었고, 김유신은 더 확실하게 사기를 올리기 위해 화랑을 여러명 더 보내 단독 돌진 시켰다. 이렇게 단독으로 돌진한 화랑들은 모조리 몰살. 신라군이 이해할 수 없는 짓거리를 계속하자 백제군은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비와 진흙을 이용한 김유신의 계략에 의해 패배하고 만다.

5. 여담

6. 참고 문서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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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림 중간에 한자로 '관창'이라고 적혀있고 목이 잘린 사람이 있는데, 그가 김관창이다.[2] 사회복무요원 등 보충역을 포함.[3] 분대장 등.[4] 해당 코너는 임혁필이 비중있게 나왔던 코너중 하나였던듯함.[5] 그냥 장기가 아니라 각 진영의 병사들을 인간 장기말로 배치하여 말을 하나씩 딸 때마다 서로가 자리에 배치된 병사들을 실제로 죽인다.[6] 근데 김유신의 사위라는 건 <화랑세기>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한국 상고사가 <화랑세기>에 의해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해석] '너는 누가 시켜서 네 가족을 몰살했나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