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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0:34:36

추기경

파일:attachment/cardinal_wojtyla_cape.jpg
폴란드카롤 보이티와 추기경
(훗날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colbgcolor=#f5f5f5,#2D2F34> 한국어 <colbgcolor=#fff,#1f2023> 추기경
한자 樞機卿, 紅衣主敎[1]
라틴어 Cardinalis
그리스어 Καρδινάλιος (Kardhinalios)
영어 Cardinal

1. 개요2. 역할3. 품급과 의의4. 영향력5. 어원6. 한국인 추기경7. 특이한 제도
7.1. 인 펙토레 추기경7.2. 비밀 추기경
8. 문서가 존재하는 추기경9.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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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추기경의 붉은색 옷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굳건히 하고 하느님 백성들의 평화와 가톨릭교회의 발전과 자유를 위해 기꺼이 피를 흘릴 수 있는 용기를 갖고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봉사자로서 교회에 봉사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십시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파일:추기경 문장.svg
추기경의 문장[2]

추기경()은 가톨릭 교회의 고위 성직자다.[3] 사제품 이상을 받은 성직자 중에서 교황이 임명하며 사제품계에서 임명되면 주교품을 받아야 한다. 원래 추기경직은 주교 등 성품과 완전히 별개 개념으로[4], 주교가 아닌 추기경도 많이 있었으나 현재는 가톨릭교회법 제 315조 1항으로 "사제직에 있는 이가 주교가 아닌 상태에서 추기경에 임명되면 주교품을 받아야 한다"고 의무조항으로 명시해 놓았다.

공식 석상에서의 경칭은 전하(殿下, H. E.; His/Your Eminence). 당연히 본래는 한자어가 아니며 한국 교회에서 정한 번역어인데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제후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되었다. 일본 교회에서는 추기경에 대해 예하(猊下)로 경칭하는데 이는 본래 불교의 고승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영일사전의 라이선스를 얻어 영한사전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부 영한 사전에서 H. E.를 예하로 풀이하여 이에 따라 일부 언론에서 추기경의 경칭을 예하로 칭한 용례가 과거에 많았으나 한국 교회의 공식 경칭은 전하다.[5]

추기경은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교황) 후보자라는 위상을 감안하여[6] 국제 의전상 귀빈급의 대우를 받는다. 추기경으로 서임되면 자동적으로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다. 이 경우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다른 목적을 가지고 타 국적을 취득한 것이 아닌 데다 추기경의 국제적 위상도 감안해서 대부분 특별 케이스로 이중국적을 인정한다. 과거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았던 대한민국한국인이 추기경에 서임되면서 얻는 바티칸 시민권에 대해선 명령에 의한(즉 강제성을 띠는) 국적 부여이므로 예외로 이중국적을 허용했다.[7]

추기경은 진홍색 수단과 주케토를 착용하는데 이는 신앙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자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순교의 의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진홍색을 Cardinal red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외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은 동방 예법을 존중해서 동방식 복장을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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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할


캡션


기본적으로 교황선거권을 가지는 사람들을 말하며 대부분의 추기경들은 출신 국가의 중심 대교구의 장(長)을 겸한다.[8] 교황청에서는 바티칸 시국의 부원수인 국무원장이나 교황청 산하 9개 성(省)의 장관직을 맡는 등 교황청과 바티칸의 업무를 총괄한다. 그리고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을 갖는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교황을 제외한 최고위 성직자라고 보면 된다. 일단 교황이 직접 칙서를 반포하여 임명하는 만큼 정말 아무나 되는 자리가 아니며 이건 주교도 마찬가지다. 콘클라베 참여 권한은 나이 제한이 있지만 추기경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사망 때까지 직책을 유지한다.

역사적으로 추기경이라는 직책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서이다. 초기 교회 때는 교황 선출과 관련해 로마 제국 황제부터 시작해서 동로마 황제, 프랑크 왕,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등 온갖 세속 군주들의 입김이 난무했다. 그러다가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에 의해 비로소 선거권이 추기경들에게만 국한되면서 추기경의 존재가 크게 격상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유폐'라는 뜻의 콘클라베 방식의 선거가 정착되면서 추기경직이 현대와 비슷한 의미에 도달한 것이다.

반면 흔히 교황의 피선거권은 추기경들에게만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교회법에 따르면 교황의 피선거권은 가톨릭 세례성사견진성사를 받은 모든 남자에 한하여 주어져 있다. 이론적으로는 수십 년간 열심히 성당에 다니시던 옆집 아저씨가 교황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대통령도 이론상으로는 만 4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역대 교황들이 추기경 출신이었던 것 때문에 오해가 생긴 듯하지만 이건 추기경들만이 피선거권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교황 후보로 거론될 만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추기경이 되고도 남을 능력자들이라서 그렇다.[9]

가톨릭 교회는 성직자를 오직 주교(대사제)와 사제와 부제로만 나누며 교황, 추기경, 몬시뇰 등등은 주교나 사제가 따로 받을 수 있는 명예라고 여기는 것이 교회법에 부합하나 이에 관심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은 교황-추기경-대주교-주교같이 회사원 직급처럼 여기는 것이 현실이며 실제로도 추기경과 교황은 주교품을 받은 사람들이 단계를 밟아서 올라가고 있다.

중세 시절에는 별별 해괴한 경우가 다 있었다. 교회법에 '어떤 사람을 하루 안에 사제로 서품하고 주교로 축성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 이유가 어떤 성직자 아닌 사람을 정치적 이유로 대뜸 교황으로 선출한 뒤 교황으로 만들고자 얼렁뚱땅 신부로 만들고 다시 주교로 축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규정이 나온 뒤에도 무시된 사례가 있다.

만약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이 주교라면 본인이 승낙한 순간부터 교황이다. 만약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이 주교가 아니라면 본인이 승낙한 뒤에도 주교로 수품받은 뒤에야 교황이다. 원칙적으로 로마의 주교를 교황이라 부르는 것이지,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이 로마 주교를 겸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752년에 스테파노라는 나이 든 신부라테라노 궁전에서 합법적으로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선출된 지 3일만에 주교로 서품되기 전에 뇌졸중으로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16세기 이후 적법하게 선출되면 일단 교황으로 인정하는 관행이 퍼지면서 스테파노 2세라는 이름으로 교황 명록에 포함이 되는 바람에 그 이후 스테파노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교황들은 번호를 이중으로 받았으나 1961년부터 다시 원칙에 따라 교황청 연감의 교황 목록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10]

이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11] 역시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주교가 아니었으므로 교황 대관식에 주교 서품식이 같이 거행되었다.

가톨릭 교회는 추기경의 특별한 위상을 감안하여 추기경으로 임명된 이는 전 세계 어느 가톨릭 교구에서도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주교가 이를 거부하지 않는 한 고해성사를 신자들에게 베풀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법적으로 인정하였다. 고해성사는 교황을 제외하면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주교와 그 주교에게 권한을 인정받은 성직자만이 할 수 있다는 원칙에 비추어보면 상징적이긴 하지만 분명 특권이라 할 수 있다.

3. 품급과 의의

추기경의 품은 주교급, 사제급, 부제급으로 나뉜다. 흔히 추기경이라 하면 주교가 한 단계 더 상승하면 오르게 되는 최고위급 성직자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 대부분의 추기경은 주교이며, 예외도 있으나 아직 주교가 아니면 주교품을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추기경이 주교급, 사제급, 부제급으로 나뉜다는 것은 추기경에 임명될 때 로마에서 부여받는 명의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어쨌든 교황은 교황이기 이전에 도시 로마의 주교이고 로마 관구의 대주교이다. 따라서 로마 관구의 주교위 또는 로마 교구 내의 사제, 부제 직위를 받음은 곧 교황의 직속이 된다는 뜻으로 명예로운 것이다. 단, 어디까지나 명의만 부여받을 뿐이므로 실제로 해당 교구의 교구장이나 성당의 주임 사제 또는 부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추기경에 임명된 교구장 주교는 2가지 직책을 동시에 겸임한다. 예를 들어, 염수정 추기경은 로마 교구의 사제급 추기경[14]이면서 현직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서울대교구의 교구장(대주교)이었다.[15]

관료제의 시선으로는 기이해 보일 수 있으나, 초기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이고 행정적인 뿌리가 개별 본당과 교구였음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막 교세가 성장하던 초기 교회는 자연 공동체(생활 공동체)의 집합에 가까운 성질을 띠고 있었다. 말하자면 열심히 전도여행하던 초기 그리스도교 사도들이 한 도시에 도착해서 선교한 결과 그 도시에 그리스도인의 모임(=교회)이 탄생하면 그 중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앞으론 님이 이 모임을 지도하세요 혹시 궁금한 거 생기면 편지로 물어보시구" 하고 다른 도시로 계속 선교 여행을 떠났다. 이런 일이 지역 교회(교구)의 모태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리스도교의 교세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각 지역 교회들 역시 당연히 규모가 커지고, 이에 따라 하나의 모임으로 유지하기는 힘들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한 지역의 교회(교구)는 보다 작은 단위의 교회로 나뉘게 되고, 기존의 교구는 하위 교회들의 모임으로 구성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고대 교회에서는 교구민의 숫자가 적고 성직자도 얼마 안 되는 만큼, 복잡한 행정 조직보다는 성직자들과 교구만들의 인맥으로도 적당히 잘 굴러갔고, 교구들간의 교회 정치도[16] 서신 왕래나 비정기적인 시노드로 충분했다.

물론 이후 교세가 로마 제국을 도배할 정도로 커지면서, 실질적으로는 관료적 성격이 점차 늘어난 건 맞지만, 로마 교황이든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든 일단 기본적으로는 <로마 교구>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구>의 교구장 주교라고 생각해야 가톨릭-정교회의 기초적인 교계 행정에 가깝다. 곧, 교황이 직할령으로 로마교구를 사목한다기보다는, 로마교구의 교구장이 세계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직을 겸임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성품은 오직 셋(주교, 사제, 부제)만 있을 뿐이고, 주교 위에는 그 어떤 성품도 없다.

회사에 비교해 본다면 영업부-홍보과-광고계라는 식으로 관료제적 위계에 따라 조직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회사 전체가 여러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직급은 '팀장'과 '팀원' 밖에 없지만 어떤 팀은 상대적으로 크고 중요한 일을 맡고, 또 어떤 팀장은 자기 팀에 대한 권한뿐 아니라 다른 팀에 대해서도 영향을 끼치는 권한을 부여받는 형태로 조직이 정비된 것.

추기경 제도는 가톨릭 교회 특유의 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형태로 자리잡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교회론 신학이 발전하면서 교황권이 가톨릭 내부에서 점점 더 강력하게 인식되었고, 따라서 이런 강력한 권한의 행사를 보조할 일종의 <중앙정부>에 해당하는 조직이 필요해졌다. 결국 추기경이란 직책 역시 가톨릭의 최고-중앙조직인 <교황청>의 일을 담당하는 직책으로 만들어진 것. 하지만 이 직책을 위해 새로운 직급을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기존의 사제 직급제를 응용하여 직책의 권한과 서열을 세분화한 것이다. 위의 <팀장과 팀원만 있는 회사>에 비유해보자면... 부제급 추기경인 A는 직급상으로는 팀장이 아닌 팀원에 불과하지만 그가 속한 팀은 <임원팀>, 또는 <이사회팀> 이라는 식이다. 이러면 당연히 사원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어지간한 팀의 팀장보다 훨씬 더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고위층 인사로 보일 것이다. 여기서 더 승진하면 '특별한 권한(예를 들어 임원이나 이사의 권한)을 가진 임원팀 팀원' 이라거나 '자기 팀의 팀장이기도 한 이사회팀 팀원' 같은 형태가 되는 것이다.

또한 교회 정치의 관점에서도, 콘클라베에서의 교황 투표권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자리이다. 흔히 가톨릭의 교계 조직이 교황의 중앙집권으로 비유되지만, 바로 그 교황을 세계 추기경단이 투표로 뽑기에, 실질적이고 강력하게 각국 교회의 영향력이 바티칸에 투사된다.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교황이 세계 가톨릭 교회에 가지는 대표성이 실질적으로 구현된다. 즉 가톨릭의 체제는 로마와 각국 교회들이 서로 영향력을 쌍방으로 강력히 주고 받는 체제라 할 수 있고, 바로 그렇기에 추기경이 단지 위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중요한 것이다.[18]

그렇기에 한 개인에게 있어서 추기경 서임은 다음 교황을 뽑을때 영향력을 투사해도 좋다는 의미이고, 한 국가의 가톨릭 교회에 있어서도 투표권 있는 추기경의 숫자는 교회 정치적인 위상과 관련이 있다.

4. 영향력

전세계적으로 200여명밖에 없는 가톨릭 교회의 초고위직이라는 점 때문에 국가를 초월한 권위가 있다. 물론 현대 국가는 보통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는 데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서 중세만큼의 절대적인 영향력은 없고 예외적인 국가[19]도 있지만 이런 국가에서도 추기경 정도의 고위 성직자를 잘못 건드리면 비난을 면치 못한다. 현재 공식적인 외교적 역할은 교황청 대사관이 담당하지만[20] 그와 별개로 교회법에 의해서 교도권을 거스른 죄로 단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의 최고위 간부인 추기경을 잘못 건드렸다간 예전처럼 파문까지는 아니더라도 세계 가톨릭 국가로부터 조리돌림당하는 건 당연지사다. 전통적으로 유럽에서는 교회의 제후[21](Prince of the Church)라고 불렸고 지금도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왕족인 프린스에 해당하는 대접을 하며 국가 부원수급의 대우를 받는다.

설령 추기경의 국제적 권위를 무시하더라도 추기경들은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못 건드렸다가는 국제법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22] 교황청이 추기경들에게 자동적으로 바티칸 시민권을 부여하는 이유는 각국 정부가 추기경들에게 가하는 육체적·정치적 탄압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다. 김수환 추기경이 이 점을 잘 이용했는데 1971년 12월 24일 KBS에서 생중계되던 성탄 자정 미사 강론 도중 대놓고 10월 유신을 비판하는 등 민주화 운동의 스피커로서 대활약했다. 이 때 천하의 박정희조차 김수환 추기경에게는 어떤 해도 가하지 못했다.[23] 그리고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추기경 시절 폴란드에서 공산당 정권 반대 운동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 가톨릭 국가에서는 추기경이 정치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프랑스리슐리외 추기경이지만 그 외에도 루이 14세, 루이 15세 모두 추기경이 왕을 대신해 국정을 이끈 기간이 길다. 이와 비슷하게 영국도 가톨릭 국가였던 시절에 추기경이었던 토머스 울지가 재상을 지내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헨리 8세아라곤의 캐서린과의 혼인 무효를 교황과 협상하는데 실패해 몰락했다. 그 밖에 스페인을 비롯한[24] 유럽 국가에서는 사제가 된 들이 추기경으로 서임된 사례가 많다. 중부 이탈리아에 있던 토스카나 대공국의 3대 대공이었던 페르디난도 1세는 추기경이었다가[25] 환속해서 대공이 된 케이스다. 이렇게 된 이유는 형인 2대 대공 프란체스코 1세가 사망할 당시 살아남은 자식이 두 딸[26]밖에 없었다.

개신교무신론자 등에게 상당한 공격의 대상이기도 하다. 당장 김수환 추기경의 사후 올라온 댓글만 봐도 알 수가 있다. 한편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와는 별도로 일제강점기 시절 징집되었던 경력 때문에 까는 비율도 상당했지만 히틀러 유겐트에서 일했다는 베네딕토 16세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나치스일본군제2차 세계 대전 말기부터 남자란 남자는 당사자들의 의사 따윈 무시한 채 억지로 징병하는데 급급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도 자발적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강제로 징집된 것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5. 어원

추기경을 일컫는 라틴어 Cardinalis는 경첩을 의미하는 cardo에서 유래하는데 문을 여닫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교회의 중추가 되는 막중한 직책을 뜻한다고 한다.

추기경은 일본에서 만든 번역어로 추기(樞機)라는 단어에는 중추가 되는 기관이라는 의미가 있다. 주역 계사편에 '언행은 군자의 추기(樞機)이며, 추기의 발동은 영욕의 근원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중요한 요직을 일컬을 때 '추기'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라틴어 원어와 비슷하게 지도리(돌쩌귀) 추(樞)자가 들어가니 초월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추기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전에는 추기경들이 입는 붉은 수단에서 유래한 '홍의주교(紅衣主敎)'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참고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MLB)나 애리조나 카디널스(NFL) 등 스포츠 팀의 마스코트로 들어간 '카디널'은 추기경이 아니고 홍관조라는 뜻으로 쓰였다. 다만 홍관조가 추기경과 관련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홍관조의 털 색이 추기경의 수단과 색상이 비슷해서 이 새가 cardinal이라고 불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6. 한국인 추기경

대한민국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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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cardinalstephenk_coatofarms.jpg 파일:attachment/jjsnicolas02.jpg 파일:external/aos.catholic.or.kr/cardinal-ysj_mj.png 파일:유흥식추기경_문장.jpg
김수환 스테파노 정진석 니콜라오 염수정 안드레아 유흥식 라자로
PRO VOBIS ET PRO MULTIS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Amen. Veni, Domine Jesu!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
LUX MUNDI
(나는 세상의 빛이다)
}}}}}}

한국 천주교 역사상 한국인 추기경은 2024년 1월 기준 역대 4명이 서임되었다. 1969년에 47세의 젊은 나이에 추기경에 서임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2006년에 만 74세의 나이로 서임된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그리고 2014년에 만 70세로 서임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 2022년 5월에 만 70세로 서임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있다.

2022년에 유흥식 주교가 추기경으로 임명되기 전까지는 모든 한국인 추기경은 현직 서울대교구장인 상태로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다른 주교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도 추기경이 되는데 문제는 없으나 서울대교구장이 관습적으로 한국 가톨릭의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2005년에도 서울대교구정진석 대주교를 포함하여 춘천교구장익 주교제주교구강우일 주교가 함께 추기경 후보에 올라가는 등 서울대교구 이외의 교구에서도 추기경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으나[27]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면서 이뤄지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2014년에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가 추기경에 서임되면서, '서울대교구 출신 추기경'이라는 타이틀이 깨지지 않았다.

이는 황해도가 지금도 서울대교구 관할이고, 북한의 함경도와 황해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인 평안도평양교구 관할인데, 서울대교구장이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통일북한 선교를 대비해서라도 서울대교구장이 추기경이 되어야 침묵교회인 평양교구를 통치 및 관할하기에 이롭고, 북한 최고지도자를 만났을 때에도 명분이 있는 만남"이라는 논리다.

한국 가톨릭 주교들 중 교구장 주교들 이외에도 유일하게 교황대사를 수행해왔던 장인남 대주교[28]도 추기경 후보로 올라가는 등 서울대교구 외에도 추기경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2021년 6월 11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인 유흥식 라자로 주교가 교황청 심의회 중 하나인 성직자성의 장관으로 지명됨에 따라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부제급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 교황청 주요 직위들은 추기경이 맡는 관례가 있고[29], 실제로 역대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을 역임한 성직자들은 추기경으로 임기를 마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 천주교에서 다시 현직 추기경이 2명이 되는 시대가 개막되며, 동시에 처음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 아닌 추기경이 탄생한다. 다만, 유흥식 주교도 현재 만 70세인 점을 감안하면, 추기경이 된다고 해도 고령의 성직자들이 맡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30]

유흥식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31] 가능성 외에도 한국 교구에서도 추기경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데, 2021년 10월 28일 염수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정순택 주교가 후임자로 임명되어 대주교로 착좌했다. # 2020년 말부터 새로 임명되는 대주교들은 중견급 주교들 중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50대 내지 60대 초반 나잇대인게 특징인데, 이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를 비롯한 한국천주교회 지도부의 세대교체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기 때문에 1961년생인 정순택 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임명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염수정 추기경이 2024년 이후 80세가 넘어 교황 선거권이 사라지고, 그와 유흥식 추기경의 서임 당시 연령에 비슷하게 맞춰 새로운 한국인 추기경이 서임된다면 별다른 일이 없을 경우 향후 10년 이내에는 정순택 대주교도 서임될 것이 유력하다.

2022년 5월 29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대주교가 예상대로 추기경으로 임명되어 한국인으로서 네 번째 추기경이 되었다.

7. 특이한 제도

추기경 제도에는 인 펙토레 추기경비밀 추기경이라는 독특한 추기경들이 있다.

7.1. 인 펙토레 추기경

in pectore란 라틴어로 '가슴 속에'라는 뜻이며 의역하면 내 마음 속의 추기경. 교황이 임명하는 추기경이긴 한데 누구인지는 교황만이 알고 있는 추기경이다. 심지어 임명받은 본인도 모른다. 추기경이 정치적으로 박해받을 수 있는 지역에 있는 경우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 뒷날 인 펙토레 추기경이 임명된 지역에서 가톨릭에 대한 박해가 끝나면 이때 임명된 사람이 현지의 가톨릭 교회를 복구하는 중책을 맡도록 하기 위해서 임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 정체는 교황만이 알도록 하는 것이며 당연히 그 지역의 가톨릭 박해가 끝나거나 교황이 내정한 추기경이 완전히 추방되어 귀국길이 철저히 막혔을 때 그 정체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이다. 아래에서 언급하는 비밀 추기경도 이런 이유로 임명되기는 하나 차이가 있다. 비밀 추기경은 적어도 종교의 자유가 명목상으로나마 보장되는 지역에서 배출된 가톨릭 주교가 임명되는 것이고[32] 인 펙토레 추기경은 종교의 자유가 전혀 없어서 가톨릭 성직자라는 사실이 들통나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곳[33]에 있는 사람이 임명된다.

그렇기 때문에 추기경이지만 추기경을 상징하는 어떠한 상징물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추기경 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다.[34] 단, 나중에 교황이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밝힐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정식 추기경에 임명된다. 예를 들면 2000년에 사망하면서 추기경이었음이 밝혀진 중국의 전(前) 상하이 주교인 이냐시오 궁핀메이 추기경이 있다.[35] 요한 바오로 2세가 아직 중국이 공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던 시절에 상하이 주교로 재직하던 그를 인 펙토레 추기경으로 임명했는데 결국 궁핀메이 주교가 중국공산당에 충성하는 어용 가톨릭 교회인 중국천주교애국회에 참여하길 거부하여 30년 수감 생활 끝에 병보석으로 풀려난 후 1988년 미국으로 추방당하고 1991년 입국 금지되자 그제서야 그의 정체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 펙토레 추기경이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로 교황이 선종해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그 사람이 추기경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요한 23세는 3명의 인 펙토레 추기경을 서임했으나 한 사람도 밝히지 않고 선종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임 중 인 펙토레 추기경을 4명 임명했으며 마지막인 2004년에 서임된 1명은 누군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모스크바 대주교라는 설도 있고 요한 바오로 2세의 비서 역할을 충실히 했던 스타니스와프 드지프스키 주교[36]일 것이란 추측만 나왔다. 3명은 위에 언급된 궁핀메이 추기경과 더불어 르비우의 대주교 마리안 야보르스키 추기경, 리가의 대주교 야니스 푸야츠 추기경이었다.

7.2. 비밀 추기경

인 펙토레 추기경과 비슷하지만 교황뿐만 아니라 다른 추기경단과 본인까지는 누군지 아는 추기경을 말한다. 정체가 극비일 뿐이지 일단 추기경이므로 추기경 회의에 참석할 수도 있다. 주로 중국이나 러시아 같이 바티칸과의 관계가 영 좋지 않은 나라의 성직자들이 임명되는 추기경직이다. 정확히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일단 '명목상'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는 있으며 정부 시책에 반대하지만 않으면 개인의 신앙을 노골적으로 건드리지는 않는 나라의 사람이 임명된다. 그래서 종교의 자유란 게 아예 없는 나라에서는 비밀 추기경이 아니라 아예 교황만이 그 존재를 아는 인 펙토레 추기경이 임명된다.

비밀 추기경이나 인 펙토레 추기경은 어디까지나 이 추기경의 관할구역 내의 사람이 임명된 경우만을 가리키고 외부인이 임명된 경우는 지칭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이 천주교 평양교구의 교구장 서리를 겸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비밀 추기경에 해당하지 않는다. 염 추기경은 대한민국 사람이지 북한 사람이 아니므로 북한의 비밀 추기경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의 존재도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교구장 서리직과 주교대리직은 추기경직과는 다른 구분이다. 추기경은 성직의 품계 구분에 해당하고, 서리직 및 대리직은 교구의 운영, 즉 기능 구분에 해당한다.[37]그리고 일반적으로 교구에 주교가 임명되지 않은 경우에 사무처장이나 대리 신부 등이 교구의 관할을 임시적으로 담당하기도 한다.[38] 이들 지역은 교구연합인 서울관구에 속하고 관구장이기도 한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이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한 비밀 추기경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가톨릭 교회 외에도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종교 단체나 기타 조직들은 한국의 지사나 조직이 북한까지 커버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당 차원에서 국가 무신론을 강요하며 대한민국의 헌법상 영토는 북한까지 포함하므로 남한의 성직자들이 북한까지 관할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 영토에 진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므로 명목상의 관할만 할 뿐 실질적으로 전교 등의 활동은 할 수 없다.

8. 문서가 존재하는 추기경

9. 대중매체

서브컬처 창작물에 등장하는 추기경들은 대개 가상의 종교의 추기경이 많으며, 높으신 분들답게 악역으로 등장하는 일이 잦다.


[1] 붉은 옷의 주교. 오늘날엔 중화권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2] 비어 있는 방패 자리에는 추기경 개인의 문장을 넣는다.[3] 흔히 교황 다음 가는 위치로 알려져 있지만 추기경은 관료제의 "n급 공무원" 같은 개념이 아니다. 물론 콘클라베를 통해 지역 교회가 로마에 영향력을 투사하는 수단이라는 점, 어지간해서는 나라마다 1명 있는 수준으로서 그 희소성도 크다는 점, 주요 요직들은 보통 추기경 직함도 달고 있다는 점 등 때문에 추기경을 교황 다음 가는 위치라고 봐도 크게 틀린 건 아니다.[4] 가톨릭 교리상 주교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서품'되지만, 추기경은 사도좌의 보좌직으로서 교황의 권위로 '서임'된다.[5]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전하'를 추기경에 대한 경칭으로 풀이하는데 한국 교회의 공식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6] 사실 교황 후보자는 추기경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남성 가톨릭 신자들이라 이론적으로는 일반 사제는 물론 평신도도 콘클라베에서 이름만 적히면 교황이 될 수 있다. 콘클라베는 자서 투표제로서 선거권이 있는 추기경들이 뽑고 싶은 사람을 한 사람이 3분의 2 이상 득표할 때까지 적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는 명망 있는 성직자가 선출될 확률이 압도적이고 교황에 뽑힐 정도로 명망 있는 성직자는 이미 추기경일 확률이 높기에 사실상 추기경들을 교황 후보자로 간주하는 것이다.[7] 다만 추기경의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명시적인 법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두 사람에 불과한 추기경을 위해 예외규정을 두는 것도 좀 그렇고, 관행적으로 불문에 부친 것.[8] 한국 출신이라면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이에 해당함.[9] 전현직 교황들을 보면 인성 문제로 논란이 없어야 할 정도로 온화한 성품은 기본 옵션이었고 분쟁을 중재하는 등 이런저런 활약을 했을 뿐만 아니라 권위 있는 신학자들이기도 했다.-더구나 추기경단의 투표로 선출되는 직위인 만큼 동료 성직자들과의 인간관계 역시 원만해야 하고 교황은 바티칸의 국가 원수이며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절반이 믿는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만큼 국제 정치에도 능해야 한다.[10] 이 때문에 스테파노 2세(3세) 같은 해괴한 경우가 문헌상에 등장한다. 저렇게 쓰는 이유는 상술했듯 스테파노(2세)가 있기 때문이다.[11] 1831년 9월 9일 한국 최초의 가톨릭 교구인 조선대목구, 곧, 훗날의 천주교 서울대교구를 설정한 교황이었다.[12] 오스티아 교구는 명의교구로 설정되었다. 즉 지역 교구가 아니다.[13] 물론 주교품을 받지 않은 추기경들도 다른 추기경들과 동등하게 주교급으로 대우받고 주교 표지를 사용할 수 있는 특전이 있다. 한편, 주교품을 받지 않은 추기경의 문장에는 가운데 주교 십자가가 없고, 방패와 갈레로만 있다.[14] 추기경은 기본적으로 로마 교구장(=교황)의 보좌직이므로, 명목상이나마 로마 교구에 속하는 명의를 받는다. 염수정 추기경은 로마 시내에 있는 산 크리소고노 성당의 주임사제 명의를 부여받았다. 물론 해당 성당의 실제 주임사제는 따로 있고 염 추기경이 관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당 입구에는 로마 교구장인 교황의 문장과 함께 염수정 추기경의 문장도 함께 걸린다.#.[15] 이는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현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는 아직 추기경이 아니다. 김수환 추기경 이래 지금까지 서울대교구장은 계속해서 추기경에 승격되어 왔으니, 정순택 대주교도 향후 추기경이 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한다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 도쿄, 오사카, 나가사키 대주교가 번갈아가며 추기경이 되었다.[16] 교구들은 인근의 대도시 교구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오늘날의 관구와 비슷한 모습이 나타났다. 로마 교구의 경우, 교황직이 교리적으로 적법한가 하는 교단간 논쟁과는 별개로, 늦어도 AD 1세기 말에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중심 교구로 활동했다.
「The slow growth of papal influence began no later than ca. 95, when the church of Rome intervened to settle a dispute at Corinth, and as the Protestant historian Harnack observed, "From the close of the first century the Roman church was in a position of practical primacy over Christendom."」
[교황의 영향력의 느린 성장은 늦어도 기원후 95년에 시작되었다. 이때 로마교회는 코린토의 논쟁을 해결하는 데 개입하였다. 개신교 역사가 Harnack이 관찰했듯이, "1세기 말부터 로마교회는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실질적 수위권이 있었다."]
-Jeffrey Burton Russell, 《Medieval Civilization》,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5, p.69
[17] 나무위키에 항목이 있는 지역을 꼽아 보자면 인구 5천의 코르티나담페초, 인구 7천의 카프리, 인구 8천의 판텔레리아 등이 있다.[18] 때문에 교황은 기본적으로 로마의 교구장 주교임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으로 이탈리아 고유성보다는 국제성을 띌 수 밖에 없고, 시대가 발전하고 교계 행정이 정교해질수록 이탈리아의 고유성은 옅어졌다. 이미 19세기에도 이탈리아 가톨릭 신학은 프랑스 가톨릭 신학이나 독일 가톨릭 신학보다 민족성이 옅었으며, 각국 교회의 영향력이 투사된 교황은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에게 거의 원수 취급을 받았다. 현대에는 아예 '이탈리아의 수석 주교'인 로마 주교 자리에 요한 바오로 2세를 시작으로 40년 넘게 이탈리아인이 못 앉고 있다.[19] 제정일치라기보단 종교적 자유가 제한(e.g., 북한)되거나 국가적인 개입과 간섭이 심한(e.g., 중국) 경우가 대부분이다.[20] 공식적인 수교 관계 수립 이전에는 각 지역의 천주교가 바티칸 시국대사관 역할도 겸했다.[21] Prince는 왕자라는 의미 이외에도 고귀한 자, 제후, 공작, 대공 등의 의미도 있다.[22] 후천적 복수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적법에서도 추기경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인정해 왔다. 심지어 선천적 이중국적자에 대해서도 이중국적의 '보유'만을 허용할 뿐 한국 영토 내에서는 외국 국적을 행사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하는 것과 달리 한국인 추기경은 한국에서도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이 아닌 지금 꼭 바티칸 시민권을 방어의 수단으로 내세워야 할 만한 상황이 생길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한국에서는 한국 국적만 행사할 뿐이다.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전쟁, 재난 등의 특수한 상황이 일어나면 외국 국적을 행사해서 바티칸으로 피난을 가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추기경 정도의 지위에 오를 정도의 사제가 그런 비양심적인 짓을 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천주교 평양교구홍용호 프란치스코 주교를 비롯한 평양교구 소속 사제들이 남으로 내려올 수 있었을 텐데 전원 평양에서 순교한 예와 대비되어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을 것이며, 교황청의 의중에 따라 징계를 받을 여지도 있다.[23] 당시 박정희는 청와대에서 이 미사 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에 격분한 나머지 KBS에 득달같이 전화해서 미사 중계방송을 끊으라고 지시한다. 이후 교황청에 김 추기경에 대한 직위해제 등 징계를 요구했지만 당연히도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24] 대표적으로 30년전쟁 당시 뇌르틀링겐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군과 함께 스웨덴-작센군을 격파하고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을 지낸 펠리페 4세의 동생인 페르난도 데 아우스트리아가 있다. 당시 합스부르크는 장자가 아닌 아들들은 추기경을 하게 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30년 전쟁 이후 이들 중 상당수가 환속을 하여 군 지휘관이 된다. 이 사람은 환속하지 않고 군 지휘관이 된 케이스다. 여담이지만 안 도트리슈 왕비의 동생이다. 즉 루이 14세와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의 외삼촌[25] 13살 소년 시절에 서임된 추기경이었다.[26] 1남 6녀. 프란체스코 1세의 6녀인 마리아는 앙리 4세의 2번째 부인이자 루이 13세의 모후인 마리 드 메디시스 왕비다. 이 딸은 프롱드 반란과 1620년대 프랑스의 반란들의 원인이다.[27] 일각에서는 당시 정진석 대주교가 만 74세로 곧 교구장 정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추기경에 오르지 못할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오히려 언급된 주교들 중 나이가 가장 젊은 강우일 주교가 추기경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앞선 추기경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만 47세에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근거가 있는 관측이었다.[28] 네덜란드 교황대사다.[29] 옛날 교황청의 실무를 부제들이 담당했던 전통에 따라 대부분 부제급 추기경으로 임명된다. 지명받은 당사자가 추기경이 아닌 경우도 많지만 임명되면 아무리 늦어도 1년 이내로 추기경에 서임된다.[30] 무엇보다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의 경우, 전체 추기경들 중 만 80세 미만일 경우에만 참여할 수 있다는 세부 규칙을 따르고 있다. 다만 제12대 서울대교구장이었던 정진석 대주교가 만 74세라는 고령임에도 추기경으로 임명된 것을 보면 유 대주교가 만 70세이더라도 충분히 추기경으로 서임될 가능성이 높다. 염수정 추기경은 2021년 11월 만으로 77세다.[31] 서임 시 부제급 추기경이다. 교황청 장관은 주로 부제급으로 서임된다.[32] 그래서 뒤늦게 정체가 공개된 비밀 추기경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이 정부가 종교 문제에 깊게 간섭하는 나라에서 배출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33] 예를 들면 중동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이나 북한중국 등지의 가톨릭 성직자들이다. 어쩌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인 펙토레 추기경이 이들 중에 있었을 수도 있다. 특히 탈레반 정권 시절 아프가니스탄 쪽에 인 펙토레 추기경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 많았다.[34] 단지 교황이 내정한 것일 뿐일더러 추기경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추방은 예사고 숙청당할 위험까지 있는 지역 출신의 추기경을 내정해 두는 것이기에 당연하다. 애초에 본인조차 추기경인줄 모르는데 회의에 갈 수 있을까?[35] 궁핀메이 추기경 본인은 1988년에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했을 당시 자신이 추기경으로 임명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의 혹독한 탄압으로 인해 중국 땅에서 영구히 벗어나기 전까지는 이 사실을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36] 나중에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37] 군대로 치면 소령, 중령 하는 계급과 "제XXX부대장" 혹은 "제XXX부대 ○○참모"하는 보직이 다른 것과 유사한 개념.[38] 그러나 그 담당했던 신부가 반드시 그 교구의 주교로 임명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쾰른 교구만 하더라도 교구장 사망 후에 1년 여 정도 교구장 임명이 안 되어 총대리 신부가 공백을 메꾼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신부가 교구장으로 임명되지 않고 다른 교구의 주교가 그곳으로 임명을 받았다.[39] 가톨릭 역사상 스스로 사임한 첫 추기경이다.[40] 일곱 개의 대죄에선 성기사였으나 후속작인 묵시록의 사기사에선 추기경이 되었다.[41] 크퀘 시즌 2 에피소드 1의 흑막.[42] 원 역사의 그 사람과는 어머니도 다르고 태어난 해도 다르니만큼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어릴 적 홍역을 앓고 몸이 과도하게 약해진 반동으로 종교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어차피 형이 후계 구도를 완전히 안정시킨 탓에 제위에 대한 욕심은 없고 유일한 소원이 있다면 바다로 나가서 해군 제독이 되고 싶어하지만 몸이 워낙 약해서 답이 없다.[43] 의친왕 이강과 영국의 빅토리아 멜리타 공주와의 정략결혼, 세계대전을 앞두고 프랑스와 미국 모두와 적대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영국이 동맹을 위해 먼저 요청하고 대한제국이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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