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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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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귀족 남작
<colbgcolor=#29176e><colcolor=#ffde09> 대한제국 군부대신
윤웅렬
尹雄烈
파일:external/yunposun.com/df0fe2d1_yun_ungryols_family.jpg
중간에 있는 노인이 윤웅렬이다.
출생 1840년 5월 18일
사망 1911년 9월 22일 (향년 71세)
본관 해평 윤씨[1]
부모 아버지 윤취동 (1798 ~ 1863)
어머니 안동 김씨 (1810 ~ 1900)
형제 남동생 윤영렬 (1854 ~ 1939)
자녀 장녀 윤선희 (1862 ~ ?)
장남 윤치호 (1864 ~ 1945)
차남 윤치왕 (1895 ~ 1982)
삼남 윤치창 (1899 ~ 1973)
약력 조선귀족 남작
비고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
친일인명사전 등재

1. 개요2. 생애
2.1. 생애 초반2.2. 생애 중반2.3. 생애 후반2.4. 사후
3. 논란4. 가계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조선 말기의 무신이자 개화파, 일제강점기친일반민족행위자.[2] 대한민국 대통령 윤보선의 큰할아버지이다.

2. 생애

2.1. 생애 초반

그는 박규수, 오경석, 유대치의 영향을 받아 개화 사상을 갖게 되었으며 그는 특이하게도 점진적인 개화를 주장하였으나 친청파가 아닌 친일파였다. 그래서 급진 개화파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온건 개화파로도 분류되기도 한다.

윤웅렬은 별기군의 총책임자였다. 윤치호는 그의 아들이었고, 그의 친구였던 어윤중의 제자였다. 주일영국공사관의 어니스트 사토우(Ernest Satow) 서기관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윤웅렬은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으며, 약간의 일본어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1882년 임오군란을 피해 잠시 조선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에서 아들 윤치호와 함께 지내기도 했는데, 이때 부자가 같이 찍은 사진도 남아있다. 1884년에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함께 갑신정변에 가담했으나 온건 개화파인 그로써는 못마땅한 방법이었고 처음부터 실패할 것이라며 굉장히 소극적으로 참여했다.

2.2. 생애 중반

1894년 갑오개혁 때 군부 대신으로 있던 중 춘생문 사건(春生門事件)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자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2.3. 생애 후반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이 벌어지자 여기에 참여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나서 1910년 경술국치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다. 얼마 뒤 1911년에 7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2.4. 사후

그의 남작 작위는 그의 아들 윤치호에게 이어졌다.

3. 논란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인가 아닌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일단 윤치호의 부모란 점은 배제하고 그 본인의 행적을 위주로만 살펴봐야 한다. 다른 예를 들어 박제순을사오적의 일원이지만 손자 박승유독립운동가이듯, 친족이라도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윤웅렬이 그냥 친일파인지 친일반민족행위자인지 아직도 의견이 나뉘어지고 있다.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의견은 친일 행위를 했기 때문에 작위를 받았다는데 근거를 둔다. 가만히 있는데 작위를 줄리 만무하다는 것.

작위를 받았지만 딱히 친일 행위를 하지 않았기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독립협회 활동 등 인물에 따라선 매국의 의도가 없음에도 일본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작위를 받은 김가진의 예와 비슷한데, 김가진은 경술국치 이후 다시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윤웅렬은 바로 사망했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 또, 한일합방에 결사반대한 독립운동가 한규설, 김석진이나[3], 독립운동에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한일합방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유길준 등도 비록 본인들이 거부하긴 했으나, 일단 조선귀족 작위가 내려졌다는 점에서 보면, 기존 대한제국의 고위 관료들에 대한 회유 목적으로 작위를 수여한 것도 없지 않아서 작위의 수여나 세습만으로 모든 조선귀족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4]. 심지어 작위를 세습했어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 섣부른 단정은 금물이다[5].

일단 친일인명사전에는 등록되었다.

2019년 8월에 광주광역시는 그를 친일인사로 규정하고 광주공원에 있던 그의 전라남도 관찰사 시절 공적비를 뽑아서 눕힌뒤에 그 앞에 윤웅렬 단죄비를 세웠다. 광주광역시가 그를 친일인사로 규정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해서 모여진 모금액 42000원(현자가치 약 15억여원)을 통감부로 이관하고 통감부는 이걸 공적이라하여 25000원(현재가치 약 9억여원)을 은사공채로 수령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 국채보상운동 관련건은 논란이 있다. 42000원을 윤웅렬이 자의로 통감부에 바친것이 아니라 강제로 빼앗겼단 주장도 있으며 은사공채 25000원도 1911년에 받았다는 점에서 국채보상운동 모금액을 헌납한 댓가가 아니란 반박도 나온다.

또 윤웅렬은 1907년 베델이 국채보상운동 모금액을 사취했다고 협회원들과 베델이 있는 자리에서 유용금액을 추궁하였다는 일본헌병 기밀보고서가 있으며 당시 베델은 일부금액 유용은 시인하였고 자신이 유용했다고 시인한 금액외는 윤웅렬에게 책임을 돌렸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요약하자면 그의 행보는 적극적으로 친일행위를 했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또한 적극적으로 일제의 국권침탈에 저항한것도 아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라 할수있다. 합병 당시 70세로 이미 고령이었고, 다음해에 바로 사망했기에 명확히 규명된 것은 없다

4. 가계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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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제공파(陶齊公派) 20세손 ○렬(○烈) 항렬이다.(족보)[2] 하지만 그가 작위는 받았지만 딱히 친일 행위를 하지 않았기에 친일반민족행위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어 있기는 하다.[3] 특히 김석진은 자신에게 조선귀족 작위가 수여되자, 이를 거부하고 자살했다.[4] 물론, 대부분의 조선귀족친일반민족행위자가 맞다.[5] 조선귀족 작위를 세습했으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으로 한국의 1세대 미학자김정록과 독립운동가인 민태곤이 있다. 김정록은 당시 일본의 적성국인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섣불리 세습을 거부하면 일제의 의심을 살 수 있어서 부득이하게 작위를 세습했다. 그리고 민태곤은 자신이 독립운동에 관여하고 있는 사실을 숨기고자 일부러 아버지의 조선귀족 작위를 세습했는데, 이것이 발각된 바람에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서 숱한 고문에 시달리다가 1944년에 순국했다. 이 두 사람 중에서 민태곤은 현재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