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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23:32:28

정병하


김홍집 내각
(갑오개혁을미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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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진 김가진 정병하
※ 1차 내각은 6조 판서를 8아문 대신으로, 2차 내각은 아문을 부로 고침. 2차 내각은 출범당시, 3차 내각은 특정기간을 기준으로 함. 4차 내각은 을미사변 이후 친일성향으로 조각되어 을미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아관파천 이후 고종에게 을미사적으로 불리고 처형 명령이 떨어지면서 실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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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공무아문대신 (1894~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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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농상아문대신 (1894~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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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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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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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송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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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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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3대 농상공부대신
정병하
鄭秉夏
<colbgcolor=#94153e><colcolor=#c0c0c0> 본관 <colbgcolor=#FFF,#1f2023>온양 정씨 (溫陽 鄭氏)
자화(子華)
남고 (南皐)
출생 1849년
사망 1896년 2월 11일 (향년 47세)[1]
한성부 경무청 (현 서울특별시)
직업 정치가, 관료
종교 유교 (성리학)
국적 파일:조선 어기.svg 조선
주요 경력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사관
농상공부대신

1. 개요2. 생애3. 같이 보기

1. 개요

정병하(鄭秉夏, 1849년 ~ 1896년)는 조선 말기의 개화파 대신이다. 중인(中人) 출신으로,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자는 자화(子華)이며, 호는 남고(南皐)이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

2. 생애

김옥균의 영향을 받아 개화파 정치인이 되었으며,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서 통상사무아문(通商事務衙門) 관리로 광산과 조폐, 제철 및 피혁 등에 관련된 기계의 구입을 위해 오사카에 파견되었다.

1883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사관으로 임명되었다[2].

1888년 밀양부사로 부임하기 전 신병으로 경기도 안산에 있던 집에서 한동안 요양하였고, 1894년경까지 밀양부사로 재임하면서, 나라가 상업으로 자강하기 위해서는 먼저 농업을 진흥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동양과 서양의 농학을 종합한 『농정촬요(農政撮要)』를 편찬하였으며, 낙동강의 둑을 막아 농토를 넓혔다.

김홍집 내각에 들어가 1894년 갑오개혁, 1895년 을미개혁에 참여했다.

갑오개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친일 성향으로 많이 기울었으며,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들이 침입한 것을 알면서도 아무 일이 없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을미사변 이후 명성황후의 폐비를 주장하였으며 단발령 때에는 고종이 직접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직접 고종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1896년 아관파천 당일 고종은 정병하를 역적으로 분류했고, 개화파 인사를 체포하는데 이 때 사망하였다. 경무청 앞에서 김홍집과 함께 순검에게 참살되었다는 설과 길에서 보부상(褓負商)[3]에게 김홍집과 함께 돌에 맞아 죽었다는 설이 있다.

그의 동료였던 유길준, 조희연, 장박, 우범선[4]일본으로 망명했다.

1907년 충희라는 시호를 받는다.

3. 같이 보기

아관 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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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 배경 <colbgcolor=#FFF,#1f2023>갑오사변 · 을미사변 · 삼국간섭 · 을미개혁
전개 1차 시도 (춘생문 사건) · 2차 시도 (아관파천)
관련 인물 정동파 이범진 · 이완용 · 이재순 · 이윤용 · 안경수 · 윤웅렬 · 윤치호 · 이하영 · 민상호 · 김홍륙 · 임최수 · 이도철 · 남만리 · 이규홍
친일 내각 김홍집 · 유길준 · 어윤중 · 김윤식 · 조희연 · 장석주 · 정병하 · 서광범 · 김종한
기타 인물 카를 베베르 ·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 이진호
관련 장소 아라사공사관 (주한러시아공사관) · 미국공사관 (주한미국공사관) ·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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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관파천 문서 참고.[2] 이로 보아 1884년 퍼시벌 로웰과 함께 화계사로 놀러갔던 '정 사관'도 이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당시 화계사에서 로웰이 찍은 사진이 남아있으며, 여기서는 사관 이시렴(사진 우측 둘째)과 최경석(우측 첫째)은 식별되나 정병하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당시 로웰과 동행했던 인원은 최경석, 이시렴, 정 사관, 윤치호와 그의 비서격 역할을 한 사서기(司書記), 기생 4명, 그 외 놀이패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진 속 인물이 총 4명이고 모두 사대부의 복식을 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인물의 중요도로 유추했을 경우 사진 나머지 인물들은 왼쪽부터 윤치호와 정병하로 추정된다. 중앙은 로웰이 마음에 들어한 기생이다.[3] 고종이 아관파천을 계획하면서 지방에 있던 근왕파 성향이 강한 보부상을 서울로 불러들였다.[4] 도주하였지만 고종이 고영근을 보내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