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17:34:41

다케조에 신이치로

갑신정변
甲申政變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파일:Gim_Okgyun.png
파일:박영효 흑백.jpg
파일:서광범.png
파일:sketch-1682508745183.png
파일:홍영식.jpg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홍영식
갑신정변 주동자
<colbgcolor=#94153e><colcolor=#ffd700> 배경 메이지 유신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아편전쟁 · 청불전쟁
전개 갑신정변 · 정각 14조와 내각 개편 · 삼일천하
관련 인물 <colbgcolor=#94153e> 급진 개화파 김옥균 · 박영효 · 서재필 · 서광범 · 홍영식 · 유혁로 · 이규완 · 박영교 · 서재창 · 정난교 · 신응희 · 윤웅렬 · 윤치호
친청파 민영익 · 민태호 · 조영하 · 이조연 · 한규직 · 민영목 · 윤태준 · 민영소
기타 인물 다케조에 신이치로 ·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 · 호러스 뉴턴 알렌 · 위안스카이 · 후쿠자와 유키치
영향 한성조약 · 톈진 조약 · 청일전쟁
기타 우정총국 · 삼일천하 · 정강 14조 }}}}}}}}}


파일:일본 황실.svg 주한 일본 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 다케조에 신이치로 곤도 마스키

제2대 주조선 일본 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
[ruby(竹添進一郞, ruby=たけぞへ シンイチロウ)]
파일:다케조에 신이치로.png
<colbgcolor=#fff,#1F2023><colcolor=#b0313f,#ce4e5c>이름스스무([ruby(漸,ruby=すすむ)])[1]
미츠아키([ruby(光鴻,ruby=みつあき)])
세이세이(井井)
출생1842년 4월 25일
히고노쿠니 아마쿠사
(現 일본 구마모토현 카미아마쿠사시 오오야노마치)
사망1917년 3월 31일 (수 74세)
국적
[[에도 막부|
파일:에도 막부 국기.svg
에도 막부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
[[일본 제국|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외교관, 정치인, 한학자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에도 막부, 일본 제국의 외교가, 정치가, 한학자.

2. 생애

1842년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태어나 1875년 이토 히로부미의 인정을 받아 정치계에 입문했고 청에 파견되어 주(駐) 톈진(天津) 공사를 지냈으며 이후 베이징(北京) 총공사를 지냈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했을 때 주(駐) 조선 일본 공사관이 구식 군대들에 의해서 습격을 받자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하나부사 요시모토의 후임으로 주 조선 일본 공사로 부임했다. 이 때부터 고종과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당시에는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홍영식, 서광범 등이 주도하는 개화파를 후방 지원하며 김옥균과 개화파가 우정국 축성식 때 정변을 일으키고 민태호, 조영하 등을 살해하고 민영익에게 중상을 입히고 고종명성황후경우궁[2]으로 피신시키자 일본군 군대를 경우궁으로 파병하여 고종과 명성황후를 경호하도록 지원했다. 김옥균도 다케조에의 후방을 받아 정변에 성공했던 듯 싶었다.

그러나 3일 후 위안스카이가 이끄는 청군이 경우궁으로 들어오면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일본 본국으로부터 조선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훈령에 따라 청군이 오기 직전 일본군의 모든 병력을 경우궁에서 인천으로 철군시킨 계기로 이때부터 김옥균과 개화파에 대해서 탐탁지 않게 여겼고 결국에는 김옥균과 개화파로부터 배신했다는 낙인을 받았다. 그리고 다케조에의 배신적인 행위로 정변은 3일만에 실패했고 김옥균과 박영효, 서재필과 함께 인천으로 피신하며 일본 국적 선박 치토세마루 호를 타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정변 이후 조선 특명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와 함께 조선으로 입국했다. 이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고 일본에서 한학을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3. 기타

4. 대중매체에서


[1] 참고 신이치로는 이름이 아니라 통칭(通稱)이다.[2] 오늘날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의 자리에 있었던, 23대 임금 순조의 친어머니 수빈 박씨를 모신 사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