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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주조선 일본 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 [ruby(竹添進一郞, ruby=たけぞへ シンイチロウ)] | |
<colbgcolor=#fff,#1F2023><colcolor=#b0313f,#ce4e5c>이름 | 스스무([ruby(漸,ruby=すすむ)])[1] |
자 | 미츠아키([ruby(光鴻,ruby=みつあき)]) |
호 | 세이세이(井井) |
출생 | 1842년 4월 25일 |
히고노쿠니 아마쿠사 (現 일본 구마모토현 카미아마쿠사시 오오야노마치) | |
사망 | 1917년 3월 31일 (수 74세) |
국적 | [[에도 막부| ]][[틀:국기| ]][[틀:국기| ]] → [[일본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외교관, 정치인, 한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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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도 막부, 일본 제국의 외교가, 정치가, 한학자.2. 생애
1842년 일본 구마모토 현에서 태어나 1875년 이토 히로부미의 인정을 받아 정치계에 입문했고 청에 파견되어 주(駐) 톈진(天津) 공사를 지냈으며 이후 베이징(北京) 총공사를 지냈다.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했을 때 주(駐) 조선 일본 공사관이 구식 군대들에 의해서 습격을 받자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하나부사 요시모토의 후임으로 주 조선 일본 공사로 부임했다. 이 때부터 고종과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당시에는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홍영식, 서광범 등이 주도하는 개화파를 후방 지원하며 김옥균과 개화파가 우정국 축성식 때 정변을 일으키고 민태호, 조영하 등을 살해하고 민영익에게 중상을 입히고 고종과 명성황후를 경우궁[2]으로 피신시키자 일본군 군대를 경우궁으로 파병하여 고종과 명성황후를 경호하도록 지원했다. 김옥균도 다케조에의 후방을 받아 정변에 성공했던 듯 싶었다.
그러나 3일 후 위안스카이가 이끄는 청군이 경우궁으로 들어오면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일본 본국으로부터 조선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훈령에 따라 청군이 오기 직전 일본군의 모든 병력을 경우궁에서 인천으로 철군시킨 계기로 이때부터 김옥균과 개화파에 대해서 탐탁지 않게 여겼고 결국에는 김옥균과 개화파로부터 배신했다는 낙인을 받았다. 그리고 다케조에의 배신적인 행위로 정변은 3일만에 실패했고 김옥균과 박영효, 서재필과 함께 인천으로 피신하며 일본 국적 선박 치토세마루 호를 타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정변 이후 조선 특명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와 함께 조선으로 입국했다. 이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고 일본에서 한학을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3. 기타
- 충정로의 일제강점기 명칭이었던 '다케조에초(竹添町, 죽첨정)'는 조선총독부에서 다케조에를 기리기 위해서 갖다붙였다. 8.15 광복 이후에는 민영환의 시호에서 유래한 충정로로 이름을 바꾸었다.
- 경교장의 일제시대 당시 명칭이 죽첨장이었다.
- 전임 주조선 일본 공사인 하나부사 요시모토와 생몰년도가 같다.
4. 대중매체에서
- 1973년 연극 〈동천홍〉에서는 배우 김순철이 연기했으며, 2004년 리메이크판에서는 배우 이승호가 연기했다.
- 1973년 영화 〈삼일천하〉에서는 배우 황해가 연기했다.
- 1981년 KBS2 〈TV문학관 - 횃불〉에서는 배우 이일웅이 연기했다.
- 1982년 KBS 대하드라마 〈풍운〉에서는 배우 김동훈이 연기했다.
- 1990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 대원군〉에서는 배우 장보규가 연기했다.
- 1995년 KBS 대하드라마 〈찬란한 여명〉에서는 배우 김병기가 연기했다.
- 2002년 KBS 특별기획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는 배우 김상순이 연기했다.
- 2010년 SBS 대기획 〈제중원〉에서는 배우 정규수가 연기했다.